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68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8년(영조4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68년(영조44) 강진현에서 무자년(1768)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27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최씨(崔氏)는 29세이고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최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최경천(崔擎天), 조부는 최효남(崔孝男), 증조는 최학수(崔鶴壽), 외조부는 김수성(金守星)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47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47년(영조2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47년(영조23) 강진현에서 정묘년(1747)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44세이고 직역은 군관(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장구전(張九田), 외조부는 김선안(金善安)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김소사(金召史)는 44세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김소사의 아버지는 김애련(金愛連),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89세이고, 아들 태언(泰彦)은 14세, 둘째 아들 대언(大彦)은 6세, 셋째 아들 성언(聖彦)은 2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6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37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37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金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계철(張啓哲)은 13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56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6년(영조32)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56년(영조32) 강진현에서 병자년(175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5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장구전(張九田), 외조부는 김선안(金善安)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김해김씨(金海金氏)는 53세이다. 김해김씨의 아버지는 김애련(金愛連),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사망하여 고(故)로 표시하였고, 아들 대언(大彦)은 15세, 성언(聖彦)은 11세이다. 장무량의 관련 호구문서인 1744년과 1747년 준호구에는 첫째 아들 태언(泰彦)이 있었는데 이 문서에는 빠져있다. 혼인하여 분가하였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9년 장계득(張啓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9년(정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啓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9년(정조13) 강진현에서 기유년(178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직역이 대변군관(待變軍官)인 장태익(張泰翼)의 사망으로 인하여 아들로서 대신 호주를 이었는데, 현재 25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태익,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이다. 어머니인 김씨도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40년 장용(張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0년(헌종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張龍)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40년(헌종6) 강진현에서 경자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61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데리고 살던 누이는 출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기해년(1839) 8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기해년의 다음 해인 경자년(1840)이다. 그러므로 1행의 도광(道光) 18년은 도광 20년의 오기로 봐야 한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27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0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은 15세 딸인 아지(阿只)가 있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6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이씨(李氏)는 46세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이중이(李重伊), 조부는 이선용(李善用), 증조는 이봉하(李奉夏), 외조부는 김연분(金延分)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딸 아지(阿只)는 14세이고 둘째 아들 연금(延金)은 11세이다. 장대언의 이전 준호구에는 처가 초계최씨(草溪崔氏)로 되어 있다. 경주이씨는 초계최씨가 사망한 뒤에 두 번째로 얻은 부인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25년 장용이(張龍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伊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순조2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이(張龍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25년(순조25) 강진현에서 을유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이는 현재 46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홀아비였던 장재풍(張再豊)이 사망하고 그의 형인 장용이가 호주가 되었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8세인 딸 하나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34년 장지성(張至星)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星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星)에게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으로 21세 딸이 있으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86년 장대은(張大銀)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銀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은(張大銀)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은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은은 현재 35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처(妻) 한씨(韓氏)는 31세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처의 아버지는 한덕영(韓德永), 조부는 한신재(韓信載), 증조부는 한득계(韓得戒), 외조부는 김상원(金尙元)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34년 장용이(張龍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이(張龍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34) 강진현에서 갑오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이는 현재 55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가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17세인 딸 하나가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계사년(1833)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계사년의 다음 해인 갑오년(1834)이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61년 박재정(朴載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鼎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61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朴載榮이 朴載鼎으로 개명함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67년 박재정(朴載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鼎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7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67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8년 박재영(朴載榮)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朴載榮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철종 9) 강진현 고군내면 박동리에 사는 밀양 박재영의 38세 시 호구단자. 1858년(철종 9) 강진현(康津縣) 고군내면(古郡內面) 박동리(朴東里)에 거주하는 박재영(朴載榮)의 38세(신사생) 당시 호구단자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학생(學生) 천익(千益), 조부는 학생 웅준(雄俊), 증조는 학생 사정(師正), 외조는 학생 김용욱(金龍郁, 본관 김해)이다. 당시 어머니 김씨(金氏)의 나이는 65세(갑인생), 처(妻) 김씨의 나이는 36세(계미생, 본관 김해)였다. 처의 아버지는 학생 노헌(魯憲), 할아버지는 학생 수일(守鎰), 증조는 학생 맹렬(孟烈), 외조는 학생 신효철(申孝喆, 본관 평산)이다. 거느리고 살았던 가족은 아우 유학(幼學) 재빈(載彬, 당시 나이 30, 기축생)이 적혀 있다. 문서에 어떤 서압이나 인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관에 접수하지 않은 문서이다. 당시 기록된 노비는 앙역비(仰役婢) 양례(良禮, 당시 나이 35) 1구(口)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2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2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5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24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朴東燦이 朴載彬으로 개명함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2년 박재영(朴載榮)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榮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榮(32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52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榮(32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07년 최동룡(崔東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07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07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07년(순조 7)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2통 3호이다. 그는 양인(良人)이고 올해 나이는 59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60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덕련(德連)이 있으며, 그의 나이는 19세 기유생(己酉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현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동룡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01년 최동룡(崔東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01 谷城縣監 崔東龍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01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01년(순조 1)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동룡이 주소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최동룡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7통 1호이다. 최동룡은 양인(良人)으로 올해 나이는 53세 기사생(己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동룡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할아버지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 성남(聲南), 증조(曾祖) 증통정대부 공조참의 석벽(錫壁), 외조(外祖) 학생 오태위(吳泰位)이다. 최동룡의 아내 황씨(黃氏)는 나이 54세 무진생(戊辰生)이며,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황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경하(慶河), 할아버지 가선대부(嘉善大夫) 진상(進相), 증조 가선대부 서(叙), 외조 학생 김노적(金老迪)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최동룡이 모시고 사는 어머니 오씨(吳氏)의 나이는 82세 경자생(庚子生)이며,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곡성현 관인(官印)과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및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후 최동룡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22년 장지성(張之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之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2년(순조22)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之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22년(순조22)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之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34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앞의 준호구에 나온 장지성(張指誠)과 동일인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은 9세 딸인 아지(阿只)이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 형식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