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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1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童蒙敎官 朴載彬(63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1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童蒙敎官 朴載彬(63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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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4년에 康津縣監이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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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박재빈(朴載彬)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8년(광무 2) 전라남도 강진군수 신성휴가 작성한 강진군 고군내면 약산리 4통 3호에 거주한 유학 밀양 박재빈의 70세 당시 호적표. 1898년(광무 2) 전라남도 강진군 고군내면(故郡內面) 약산리(樂山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밀양 박재빈(朴載彬)의 70세 당시 호적표(戶籍表)이다. 호적표는 1896년(건양 1)에 조선왕조의 구호적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작성하게 된 대한 제국의 호적부 양식으로 광무 연간 직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광무연간에 주로 시행되었으므로 광무호적이라고 한다. 한 호에 한 장의 '호적표'를 작성하여 그것을 지역단위로 묶어서 책자로 편철하였다. 본 문서는 그 중 일부인 전남 강진군 고군내면 약산리 제4통 제3호에 거주했던 박재빈(본관 밀양)의 70세 당시 호적표이다. 그의 직업은 유업(儒業)이다. 생부, 조, 증조, 외조의 란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동거친속으로는 처 김씨, 아들 장현(章鉉), 그의 부인 김씨, 손자 윤원(潤瑗)과 그의 부인 김씨, 차손 윤통(潤統)과 윤성(潤成), 윤옥(潤玉)과 딸 1명(이름이 기재되지 않음)이 기재되어 있다. 고용하고 있던 사람으로는 남자 1명이 있었기에 총 인구가 남7, 여4, 합계 11로 기재되어 있다. 살고 있던 집은 자신의 소유 초가 3칸과, 빌린 초가 5칸으로 총 초가 8칸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지막줄에는 광무 2년 2월에 군수 신성휴(申性休)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寄口: 男 口 女 口 雇傭: 男1口 女 口 現存人口: 男七口 女四口, 共合: 十一口 家宅 : 己有 瓦 間 草 三間, 借有 瓦 間 草五間, 共合: 八間 光武二年二月 日 郡守 申性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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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박씨(朴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34 谷城縣監 朴氏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34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34년(순조 34)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寡婦)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박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6통 1호이다. 올해 나이는 62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가족으로 아들 유학 환부(鰥夫) 최종득(崔宗得)은 나이 38세 정사생(丁巳生)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 상원(尙元)은 나이 51세 갑진생(甲辰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관인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31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신묘식상준자(辛卯式相凖者)'가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박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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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34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 34)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호주 김재우는 김상우(金相祐)에서 개명(改名)했으며,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37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연령 37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외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75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상채(相彩)의 개명 재영(在榮)은 나이 24세 신미생(辛未生)이며,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33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31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신묘호구상준인(辛卯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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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장지성(張至誠)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至誠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6년(헌종12) 장지성(張至誠)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846년(헌종12)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장지성은 현재 나이는 58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아내가 없는 홀아비이고, 딸 아지(阿只)는 21세로 출가하였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因),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이 없다. 이 문서는 병오식년의 호적대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실제 작성은 반년 전인 을사년(1845)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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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장철봉(張哲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哲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哲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3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7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7세이고, 딸 아지(阿只)는 10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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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3년(정조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3년(정조7) 강진현에서 계묘년(1783)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9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사망하여 고(故)로 표시되어 있고,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9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현(鄭武賢)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현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선(鄭武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일인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9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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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0년(정조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0년(정조4) 강진현에서 경자년(1780)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77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6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현(鄭武賢)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현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현(鄭武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6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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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재풍(張載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載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載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장재풍은 본래 홀아비였던 장계득(張啓得)의 사망으로 인하여 대신 호주가 되었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29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홀아비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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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장철봉(張喆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喆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3년(순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喆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3년(순조13) 강진현에서 계유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0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4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4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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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장재풍(張再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再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순조1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再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9년(순조19) 강진현에서 기묘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38세로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앞의 준호구들에 나온 '장재풍(張載豊)'과 동일인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한량(閑良)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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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계중(稧中) 토지전당명문(土地典當明文) 고문서-증빙류-전당문기 張明化 張明化<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0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밭 2두락지를 계중(稧中)에 전당을 잡히며 작성한 전당문기 1900년 장명화가 서계전(書稧錢) 14냥 3전을 마련할 길이 없어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상자(霜字) 밭 2두락지를 계중에 전당을 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이다. 전당 기한은 절월(節月)을 기한으로 하였으며, 이 기한을 넘기게 되면 밭을 팔아서 보태도 좋다는 약속을 하였다. 다른 증인이나 필집은 없이 장명화가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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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박장현(朴章鉉)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章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광무 3) 2월에 강진군수 신성휴가 기록한 고군내면 약산리 4통 3호에 거주했던 박장현의 46세 당시 호적표. 1899년(광무 3) 2월에 강진군수(康津郡守) 신성휴(申性休)가 46세 박장현(朴章鉉)에게 발급한 호적표이다. 같은 집의 전년도 호적표에는 호주가 박장현의 아버지 박재빈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호주가 바뀐 것으로 보아 그 사이 박재빈이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박장현이 살았던 주소는 전라남도 강진군 고군내면(故郡內面) 약산리(樂山里) 제4통 제3호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아버지는 재빈(載彬), 할아버지는 천익(千益), 증조는 웅준( 碓俊), 외조는 김쾌갑(金快甲)이다. 이전 구호적과 다른 점은 외조 및 자신의 처, 어머니 등의 본관을 기록하지 않은 점과 처의 4조(祖)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함께 살던 식솔로는 어머니 김씨, 아내 김씨, 아들 윤원(潤瑗), 윤원의 처 김씨, 둘째아들 윤통(潤統), 셋째아들 윤성(潤成), 넷째아들(潤玉)이다. 딸 1명도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현존인구는 남7명, 여4명, 도합 11명이다. 집은 자신의 소유 초가 3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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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載彬 康津郡守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97년에 康津郡守가 朝奉大夫 前童蒙敎官 朴載彬(69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贈通政大夫 工曹參判 千益 祖 贈通訓大夫 司僕寺正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樂山里 4統 1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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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6_001 1837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37년(헌종 3)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재우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0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연령 40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78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재영(在榮)은 나이 27세 신미생(辛未生)이다. 제수[嫂] 박씨는 연령 27세 신미생(辛未生)이고 본적은 밀양(密陽)이며, 아들 용탁(龍鐸)은 나이 19세 기묘생(己卯生)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36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호구상준인(甲午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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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박씨(朴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37 谷城縣監 朴氏 谷城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781_001 1837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37년(헌종 3)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과부(寡婦) 박씨가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박씨의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4통 1호이다. 올해 나이는 65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성(密城)이다. 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가족으로 아들 유학 최종득(崔宗得)은 나이 41세 정사생(丁巳生)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 상원(尙元)은 나이 54세 갑진생(甲辰生)이다. 이 문서에 '호구단자(戶口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관인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기재되어 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상준인(甲午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박씨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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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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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장대은(張大銀)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銀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9년(정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은(張大銀)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9년(정조13) 강진현에서 기유년(178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은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은은 현재 38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처(妻) 한씨(韓氏)는 34세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처의 아버지는 한덕영(韓德永), 조부는 한신재(韓信載), 증조부는 한득계(韓得戒), 외조부는 김상원(金尙元)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솔녀(率女)로는 올해 6세인 딸 금상(今相)이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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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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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9년(영조3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59년(영조35) 강진현에서 기묘년(175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18세이고 직역은 업무(業武)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밀양최씨(密陽崔氏)는 20세이다. 밀양최씨의 사조는 칸이 비어있다. 장대언의 아버지인 장무량의 같은 해 호구단자를 보면 장대언이 분가하였다고 적혀 있는데, 이로써 장대언이 혼인하여 따로 호주가 되어 첫 번째로 작성된 호구단자임을 알 수 있다. 장대언의 다른 준호구에는 아내 최씨의 본관이 초계(草溪)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밀양은 오류인 것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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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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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92년 장대은(張大銀)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銀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2년(정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은(張大銀)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2년(정조16) 강진현에서 임자년(1792)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은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은은 현재 41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처(妻) 한씨(韓氏)는 37세이고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처의 아버지는 한덕영(韓德永), 조부는 한신재(韓信載), 증조부는 한득계(韓得戒), 외조부는 김상원(金尙元)으로 본관은 김해이다. 솔녀(率女)로는 두 딸이 올라 있는데, 9세 금상(今相)과 6세 아지(阿只)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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