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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제군신병문(關聖帝君新病文) 고문서-치부기록류-병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을 물리치는 비방과 부적을 쓰는 방법을 전하는 관성교(關聖敎)의 포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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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聖帝君新病文關王이下京ᄒᆞ여謂曰내가朝鮮을세번報【輔】給할지라已往의두번은報【輔】給ᄒᆞ여신니ᄒᆞᆫ번이나문됴할告諭ᄒᆞ노니速速킈傳ᄒᆞ여後悔업게ᄒᆞ라進士驚ᄒᆞ야본직書案의一封書ᄀᆞ잇거ᄂᆞᆯ卽時開坼ᄒᆞ여본직其書의ᄒᆞ엿시되辛丑年運數不吉ᄒᆞ여人數가連日하의네九十月間의怙病大發ᄒᆞ여人命多死ᄒᆞ니卽時年年事年傳ᄒᆞᄅᆞ此書信ᄒᆞ면病이消滅ᄒᆞ고信티아니ᄒᆞ면一身을保全치못ᄒᆞ이ᄅᆞ符作{月+或}{月+惑}{月+或}{月+戒}四字을朱砂써서불의사라冷水의타마시면病이消滅ᄒᆞ난故로此書을傳ᄒᆞ면一身을保全ᄒᆞ고十張을傳ᄒᆞ면一家을保全ᄒᆞ고百張을傳ᄒᆞ면一洞이太平ᄒᆞ리라藥은細辛朱砂川芎石硫黃栢紫石雄黃烏藥을各一戔重을몸의진니면病이侵犯치아니ᄒᆞᆯ라別方文은㴢㕵黃大人이구복정라指䨖{雨/音}{雨/消}四字의後예나무사람들의일너曰今年예五穀大登ᄒᆞ나人有有災殃이라善人隱能免ᄒᆞ고惡人은免치못ᄒᆞ리라今年八九月間의別病이잇서死者無殺ᄒᆞ고湥夜의呼人之名則對答디말고每月初九日十三日三十日의惡氣衝天ᄒᆞ여烟火分明ᄒᆞᆯ거시니門外의나디마라此書人間알게ᄒᆞ여能書者以書傳之ᄒᆞ고不能書者以言傳之ᄒᆞ라不傳ᄒᆞ면萬受災殃ᄒᆞ리라仍病者ᄂᆞᆫ麻木{木+北}三字을槐黃紙의朱砂로써서몸의진니면病을免ᄒᆞ리라藥은防風貫中薄荷石雄黃麻黃皂角을一戔重을먹으면卽差ᄒᆞ리라見則不忘 草野之人聞則銘心 聽而誦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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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기묘년 첩보(牒報) 고문서-첩관통보류-첩보 □…□ 2顆 (적색, 정방형, 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묘년에 어느 고을의 수령이 관찰사의 감결 내용에 따라 면검(面檢)과 리검(里檢)의 성명과 오가작통(五家作統)의 소명성책(小名成冊)을 작성하여 보고하는 내용의 첩보 기묘년 8월 25일에 작성된 첩보의 일부분이다. 점련된 문서의 일부로 보이고, 어느 고을의 수령인지는 알 수 없으나, 관찰사가 감결(甘結)을 통해 내린 지시를 수행하고 나서 그 내용을 관찰사에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관찰사가 감결을 통해 지시한 내용은, 백성들에게 도둑들의 피해가 막심하므로 이를 뿌리 뽑기 위한 방책으로 면(面)에는 면검(面檢)을, 리(里)에는 리검(里檢)을 두며, 오가작통(五家作統)에는 통수(統首)를 두어서 이웃에서 아침저녁으로 경비를 하여 좀도둑을 정탐하고 살핀다면 강도가 나타나는 대로 힘을 합쳐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도를 붙잡으면 리에서는 면에 보고하고, 면에서는 해당 관(官)에 보고하며 진(鎭)을 거쳐 감영(監營)에까지 보고하게 되면 도적들을 깨끗이 소탕할 수 있을 것이므로, 리검과 면검의 성명 및 오가작통의 소명성책(小名成冊)을 먼저 보고하라는 내용이다. 이 지시를 거행한 수령이 지시대로 작성하여 관찰사에게 올려 보내면서 이 문서가 작성되었다. 오가작통법은 민호(民戶) 다섯 집을 한 통(統)으로 편성하는 호적법으로, 범죄자의 색출과 세금의 징수, 부역의 동원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하여 시행한 제도이고, 통 내의 한 사람을 골라 '통수'로 삼아서 통 내의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소명성책은 성명을 기록해서 책으로 만든 것인데, 어느 사안에 따른 인적사항과 세부 조목 등을 분류하여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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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월산사(月山祠) 제관(祭官)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月山祠 盧鍾龍 月山祠印(3.0×3.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1년 3월 5일에 월산사에서 석채례의 헌관으로 노종룡을 의망하였다는 사실을 전한 망기. 1931년 3월 5일에 월산사(月山祠)에서 같은 달 15일에 이제현(李齊賢) 영정각(影幀閣)에서 지낼 석채례(釋菜禮)의 헌관(獻官)으로 노종룡(盧鍾龍)을 의망하고, 이 사실을 광주군(光州郡) 본촌면(本村面) 일곡(日谷)에 사는 노종룡 본인에게 통보한 망기(望記)이다. 월산사(月山祠)는 담양군 월산면 월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1678년(숙종 4)에 처음 세워졌으나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22년에 중건하였다. 문서의 작성연도는 신미년으로만 표기되어 있으나, 1931년(신미년)에 충북 진천에서 이제현 초상 복제본을 배향한 바 있다. 따라서 본 문서의 작성연도인 신미년은 1931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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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노진영(盧軫永)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道會所 盧軫永 武陽書院 2顆(흑색, 직방형, 7.3×5.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도회소에서 노진영을 무성서원의 추향제 전사관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의 망기. 1935년 8월에 도회소(道會所)에서 노진영(盧軫永)을 무성서원(武城書院) 추향제(秋享祭) 전사관(典祀官)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의 망기(望記)이다. 입재(入齋) 일자는 8월 10일 상오 12시이다. 무성서원 인장 2건이 답인되어 있다. 노진영의 본관은 광주(光州), 소해(蘇海) 노종룡(盧鍾龍, 1856~1940)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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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장대영(張大榮) 등 고목(告目)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茂城書院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1월에 무성서원 서재 장대영 등 5인이 이 생원에게 무성서원의 집강에 추천되었으므로 삭분향에 와줄 것을 알리는 고목 1929년 11월 15일에 무성서원 서재(茂城書院西齋) 장대영(張大榮) 등 5인이 이 생원(李生員)에게 무성서원의 집강(執綱)에 추천되었으므로 삭분향(朔焚香)에 와줄 것을 알리는 고목이다. 무성서원의 원장(院長)과 원이(院貳)는 경재상(京宰相)이 맡고 집강·장의(掌議)·색장(色掌)·유사(有司)는 도내(道內) 지조 있고 신중한 선비에게 맡기는 것이 전래하는 규례이다. 이번 도회(道會) 때에 사림의 공의(公議)에 따라 이 생원을 집강으로 천망하여 망첩(望帖)을 올리니 이번 초하루 분향례(焚香禮)에 와서 배알하고 봉심(奉審)할 것을 아뢰는 내용이다. 무성서원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서원이다. 고려시대에 최치원(崔致遠, 857~?)의 생사당(生祠堂)으로 태산사(泰山祠)를 건립하였는데 1483년(성종 14)에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1549년(명종 4)에 신잠(申潛, 1491~1554)의 생사당을 짓고 향사하다가 1615년(광해군 7)에 태산서원으로 창립, 1696년(숙종 22)에 무성서원으로 사액 받았다. 1630년(인조 8)에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송세림(宋世琳, 1479∼?), 정언충(鄭彦忠, 1706∼1771), 김약묵(金若默, 1500∼1558)을, 1675년(숙종 1)에 김관(金灌, 1575~1635)을 추가 배향하였다. 이 서원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1968년 12월 사적 제166호에 지정되고, 2011년 7월에 정읍무성서원(井邑武城書院)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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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무성서원유회소(武城書院儒會所)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茂城書院儒會所 李太沃 茂城書院(흑색, 직방형, 7×4.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유회소에서 유학 이태옥을 본원의 도내색장 후보로 추천한 문서 1924년 11월에 무성서원유회소에서 강진군 작천면(鵲川面) 내기리(內基里)에 사는 유학 이태옥(李太沃)을 무성서원의 도내색장(道內色掌) 후보로 추천한 문서이다. 문서의 발급날짜 위에 '유회소인(儒會所印)' 묵인(墨印)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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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최봉구(崔奉九) 고목(告目)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崔奉九 李太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9월에 행정사 고지기 최봉구가 생원 이태옥에게 이달 22일 가을 향사에 전작으로 추천되었음을 알리는 고목 1923년 9월에 행정사(杏亭祠) 고지기 최봉구(崔奉九)가 생원 이태옥(李太沃)에게 이달 22일 가을 향사(享祀)에 전작(奠爵)으로 추천되었음을 알리는 고목이다. 강진군 작천면 신기(新基)에 사는 생원 이태옥에게 문안 인사와 함께 9월 22일에 있을 행정사 가을 정향(丁享)에 전작으로 추천되었다는 것을 아뢰는 내용이다. 가을 정향은 음력 8월 정(丁)자일에 제향하는 것으로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한 달에는 상정(上丁)·중정(中丁)·하정(下丁)이 있다. 전작은 헌관(獻官)이 올리는 술잔을 받아서 신위 앞에 드리는 일을 말한다. 행정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군자리에 있는 양산김씨(梁山金氏)의 사우이다. 유항재(有恒齋) 김양(金亮, ?~1569), 절효(節孝) 김호광(金好光, 1600~1624), 행정(杏亭) 김신광(金伸光, 1608~1666)을 향사하는 곳이다. 1820년(순조 20)에 통문을 발의하여 유항재의 강도지(講道地)였던 행정동(杏亭洞)에 사우를 세워 향사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설단(設壇)에 향사하다가 1960년에 향중유림(鄕中儒林)이 신실(神室)과 강당(講堂) 등을 중건하고 2008년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신축하였다. 1994년 성균관 답통(答通)에 따라 도유향사(道儒享祀)로 승격되고 2004년에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군자서원(君子書院)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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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41년(영조1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41년(영조17) 강진현에서 신유년(1741)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38세이고 직역은 수군(水軍)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양인(良人)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구전(九全)으로 모두 양인이다. 외조부는 업무(業武)로 본관이 김해인 김선안(金善安)이다. 처 김소사(金召史)는 38세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소사(召史)는 주로 양인 신분의 여성에 붙여 일종의 직역처럼 신분을 드러내는 용어로 쓰인다. 한자어는 아니며 한글 고문서 등을 참고해보면 당시인들이 '조이, 조리, 죠이, 됴이' 등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김소사의 아버지는 김애연(金愛延),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83세이고, 아들 금생(今生)은 8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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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3년(정조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3년(정조7) 강진현에서 계묘년(1783)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34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34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秋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계철(張啓哲)은 10세인데, 장대운의 호구 문서에 처음 등장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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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장대운(張大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雲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4년(영조5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雲)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74년(영조50) 강진현에서 갑오년(1774)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24세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다. 처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으로 보아 혼인하지 않고 분가한 것으로 보인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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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장재풍(張載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載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3년(순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載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3년(순조13) 강진현에서 계유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32세로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행현감의 압 아랫부분 여백이 도할(刀割)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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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장지성(張指誠)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指誠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순조19) 장지성(張指誠)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819년(순조19)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指誠)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원래의 호주였던 장득철(張得哲)이 사망하여 동성(同姓) 사촌인 장지성이 대신 호주가 되었으며, 현재 나이는 31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다. 아버지는 한량(閑良)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아내가 없는 홀아비로서 다섯 살인 딸 아지(阿只)만 기재되어 있고 처(妻)에 대한 정보는 없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因),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은 없이 하단에 '서(書)'라고 쓰여 있어 확인 후 다른 대장(大帳)에 올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문서는 기묘식년의 호적대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실제 작성은 반년 전인 무인년(1818)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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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0년(정조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0년(정조4) 강진현에서 경자년(1780)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31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31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金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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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7년(정조1)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77년(정조1) 강진현에서 갑오년(1777)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3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74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妻)인 김해김씨(金海金氏)는 현재 30세이다. 이어서 김해김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정무선(鄭武善)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무선은 다른 장대윤의 호구문서에는 정무현(鄭武賢)으로 기재되어 있어 오자(誤字)로 추정된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현재 13세인데, 장대윤의 호구 문서에 처음 등장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는데 흐릿하여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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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득철(張得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得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득철(張得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득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47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언(張大彦)은 현재 69세로 동거하고 있으며, 조부는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최경천(崔敬天)으로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장득철의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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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계철(張啓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철(張啓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철은 현재 37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된 장대운(張大運)으로 61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1세이다. 장계철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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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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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계묘년 장인오(張仁五)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張仁五 張文守 □…□ 4顆 (적색, 원형, 1.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묘년 장인오(張仁五)가 장문수(張文守)에게 105냥을 받고, 받은 사실을 명시한 수표 계묘년 12월 초6일에 장인오(張仁五)가 장문수(張文守)에게 받을 150냥 가운데 105냥을 우선 받고 그 사실을 명시한 영수증 성격의 수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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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장득철(張得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得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득철(張得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득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득철은 현재 57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언(張大彦)은 76세로 사망하였으며, 조부는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최경천(崔敬天)으로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데리고 사는 식구는 15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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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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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신축년 장만순(張蔓純)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張蔓純 黃雲仲 □…□ 2顆 (적색, 원형, 2.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만순(張蔓純)이 황운중(黃雲仲)에게 발급한 자문 신축년 장만순(張蔓純)이 황운중(黃雲仲)에게 160냥을 전해 받은 것을 확인해주는 영수증 성격의 척문이다. 피봉에 있는 황운중의 주소는 신지면(薪智面) 대평리(大平里)이다. 이 돈은 신축년에 족보 발간을 위해 족보 책값을 수금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문서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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