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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현(安秉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安秉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안병현(安秉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미곡(米穀)의 만주(滿洲) 수출건에 대해 총독부의 정책을 알려주는 내용의 간찰 모년 5월 24일에 서울에 거주하는 안병현(安秉鉉)이 전남 광주의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동안 답장이 지연되어 매우 미안하였다고 하고, 자신은 그사이 가슴 통증으로 연일 바깥출입을 못했다고 근황을 알렸다. 상대방의 조회(照會) 건으로 알아보았더니 미곡(米穀)을 만주(滿洲)로 수출하는 것은 근래 만주정부에서 미곡 수입을 통제할 필요가 있어서 정부에서 모조리 매점(買占)을 하기 때문에 별 이익이 없고, 미곡을 북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은 큰 이익이 있지만 조건을 구비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수출을 허가하고 있다고 하면서 구비 조건을 알려주었다. 조건은 첫째, 천진(天津)이나 북경(北京) 등지의 주재영사관이 증명해 준 해당 지역의 미곡상(米穀商)으로, 영사관 증명을 첨부하여 조선총독부에 지원서를 제출한 경우, 둘째 위의 증명이 있는 미곡상으로부터 몇 만 석(石)을 송부하여 달라는 주문을 받은 사람에게 조선총독부에서 허가할 가능성이 있고, 위의 조건을 충족했더라도 반드시 허가를 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상해(上海) 거류민단과 한구(漢口) 거류민단 측으로부터 이 증명을 첨부하여 총독부에 지원서를 제출한 것이 수백만석이지만 모두 불허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중국인이 원하는 대로 무제한 수출을 허가할 경우 조선 내부 식량문제가 큰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농상무성(農商務省)에서 수출금지방침을 수립하고 외무성(外務省)에서 최소범위의 조건을 만든 것이라는 자세한 설명도 추가하였다. 그리고 수신자 측에서 만일 생각이 있다면 천진이나 북경 두 곳에 영사관 증명을 가진 미곡상인과 연결하여 몇 만 석 주문을 상대방 명의로 받으면 본부(本府)와의 교섭은 자신이 해드리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능한 통로들을 알려주면서 이러한 정책들은 비밀스런 것이니 절대 비밀을 지켜달라는 말도 덧붙였고, 주선이 필요하면 회답하여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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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芝山面 日谷理盧軫永 殿(피봉_뒷면)鳳山精舍(簡紙)仰惟臘沍貴體上萬旺, 仰祝仰祝耳. 就鳳山精舍出義金額與土地及賭租未濟分整理事, 昨年以來數回通知, 而尙且遲緩, 似有反喪其本義. 故如是更告, 則雖某樣今歲內期於結末, 俾無整理上葛藤如何. 最急者今春買受畓土八斗落代債務約四百圓也整理件也. 當初信此未濟額, 而如右淂債矣. 如是遷延度了, 則此將奈何. 雖得未安左右回 示之地,千萬大望耳. 餘竢回 音, 不備書禮.甲戌臘月初一日, 鳳山精舍 李載春任漹宰劉秉龜李會春朴夏炯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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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 芝山面 日谷里盧軫永 殿(피봉_뒷면)光州鄕校[赤色正方印: 儒林隨鄕案修正所印](簡紙)春事將暮體上衛重, 遠溯且頌. 第以本鄕儒林隨行案修整事, 旣爲屢度會議于本校, 僉議循同,期於修整者, 而鄕論符及于貴座, 而未知尊意之如何. 故玆以仰瀆, 來四月七日往參于本校,印否間, 以完大事爲之, 仰冀仰冀.餘萬, 非面難究. 不備禮.乙亥三月二十七日, 奇琮燮,朴夏淸,柳永善,朴暹東,高光璉 二拜.[赤色正方印: 儒林隨鄕案修正所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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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狀上盧 生員 蘇海 座前鄭淳文 謹封(簡紙)鄭淳文金貳圓, 燭貳匣, 北魚壹隊.右伏蒙尊慈, 以淳文族兄雷淵公違世,特賜賻儀, 下誠不任哀感之至. 謹具狀上謝, 謹狀.甲戌八月初五日, 鄭淳文 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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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광주향교(光州鄕校)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光州鄕校 盧軫永 光州隨鄕國修之所印 2顆(3.8x3.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49_001 1935년 3월 27일에 광주향교의 기종섭 등 5명이 노진영에게 향교안의 수정을 위하여 의견을 표명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5년 3월 27일, 광주향교(光州鄕校)의 기종섭(奇琮燮) 등 5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향교안(鄕校案)의 수정(修整)을 위하여 의견을 표명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저무는 봄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본향(本鄕, 광주)의 유림(儒林) 수행안(隨行案)을 수정(修整)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이 일로 이미 여러 번 광주향교에서 회의를 했고, 여러분의 동의로 기어이 수정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향론(鄕論)을 귀하인 상대에게 알렸지만 그 의견을 알 수 없기에 이와 같이 한다며, 오는 4월 7일에 광주향교에 참석해주셔서 인정하든, 하지 않든 간에 뜻을 표현하여 대사(大事)를 완성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자는 기종섭(奇琮燮), 박하청(朴夏淸), 유영선(柳永善), 박섬동(朴暹東), 고광련(高光璉) 총5인이다. 발신자 중 유영선(柳永善, 1893~1961)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희경(禧卿), 호는 현곡(玄谷)이다. 아버지는 유기춘(柳基春)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병현(李秉賢)의 딸이다. 1904년에 스승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 들어가 20여 년을 수학하고, 선생의 사후 강학활동과 학문을 계승한 유학자이다. 1924년 고향에 돌아와 현곡정사(玄谷精舍)를 건립하고 후진 교육에 전념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시켰다. 학문적으로는 한말의 심성론(心性論)에 있어서 주리론(主理論)의 입장을 비판하고, 성(性)은 스승이요 심(心)은 제자라는 '성사심제(性師心弟)' 즉 성존심비설(性尊心卑說)을 제창한 전우의 핵심적 학설을 강조하여 철저히 계승 발전시켰다. 또 성리설과 학문론을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하여 『간재성리유선(艮齋性理類選)』을 편집하였다. 예학에도 합리적인 절충을 수행하여 『예의관보(禮疑管補)』와 『사례제요(四禮提要)』를 편찬하였으며, 예설은 광범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는 스승의 사후 고창에 용암사(龍巖祠)를 건립하고 전우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그 후 이 용암사에 배향되었다. 편저로는 『담화연원록(潭華淵源錄)』·『구산풍아(臼山風雅)』·『오륜시편(五倫詩編)』·『규범요감(閨範要鑑)』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현곡집(玄谷集)』 32권 16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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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向於○貴鎭便付候 想必○入覽矣 伊后月累虧節已變 更詢比來靜養體宇 連護萬重仰溸區區 不任頂禱 弟狀病衰日甚 作一老頭佗〖陀〗入定僧而有知舊來訪 則對棋局應變 精神倍淸 志氣快闊 便作少年人 此可謂益壯者哉 好呵好呵 聞鄭友作那中之行 故玆付數字探候不備禮戊陽初六 弟 憲昭 拜拜(皮封)謹上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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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庭杏岸柳 忽見春光 懷故人 尤不可忘而際玆滿幅情翰 俾開如結 旣慰且感 不欲釋手 矧謹審辰下體居晏重 尤何等欣祝之至 弟業欲往歸果已得由於舊伯丈而結之作伕 還之作納 皆係歉民生死所關也 若以此付之他手 而乃曰吾所不知 則亦非五載玉山爲官 近民之道 故尙此未發而安之 今晦來初 則可能勘歸矣老兄書中 若有棄我之意 而不肯與我言別 是亦情外也諒之如何 萬萬非書可盡 不備 上謝甲二旬二 病老漢 敢不名 拜拜(皮封)玉山仁叟兄 靜座 執事平湖 謹候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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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이헌구(李憲九)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李憲九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해년 3월 6일에 신부측인 이헌구가 신랑측에 보낸 혼서 기해년 3월 6일에 신부측인 이헌구(李憲九)가 신랑측에 보낸 혼서이다. 혼인이 약속되었으므로 연길을 보내니 의제(衣製)를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신부집에서 허혼편지나 전갈이 오면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납채문을 써서 보내고, 신부집에서는 사주단자를 받으면,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혼례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한다. 이것을 연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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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承仲春尊體動止候萬重慰仰區區無任之至就親事旣至牢諾星來日去健是天也涓吉依敎錄呈衣製回示如何謹備伏惟尊照 謹拜謝上狀己亥三月初六日月城李憲九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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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 이인호(李寅浩)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李寅浩 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신년 11월 21일에 신랑측인 이인호가 신부측 곽생원 댁에 보내는 혼서 임신년 11월 21일에 신랑측인 이인호가 신부측 곽생원 댁에 보내는 혼서이다. 혼인이 약속되었으니 집안의 큰 복이라며 인사를 하고, 신랑의 사주(四柱)를 별폭(別幅)에 적어 보낸다는 내용이다. 사주단자를 보내며 함께 보낸 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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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 春間慘制 尙忍何言 想惟慈愛隆深 何以堪抑 徒爲無益疾懷不若太上忘情 悲念之外 是用拱禱 意外握奉賢戚慰荷之餘 疇眼之事 依依然 使人興傷也 詢審比來伯氏丈患候 浹月彌留 驚慮萬萬 而久病久而又久 則自當有勿藥之效 以是仰祝 而大小諸眷 面面均安 實愜願聞 弟親節寧日恒少外 他瑣憂展眉無日 上焦下悶 何以仰喩 下托婚說 姑無意合處 齎志未列 殊歎殊歎 秋成後丕擬進行計耳 餘漏掛不備狀禮己未四月十一日 弟朴遠浩拜拜【피봉】〈前面〉玉山 服座 執事蓬谷謹慰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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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 阻拜勢也 哀耿則深酷寒稍解 不審靜體一例康旺 大小寶眷 亦得均祺否 區區伏溸 不任哀禱 罪少弟頑如木石 荐遭極變 而誠淺力單 末由伸雪 痛惋何喩 兩度緬禮纔已過行 俯仰寃號而已 惟幸慈節無損 而瑣瑣虞憂層疊不霽 憐悶憐悶 兩度惠䟽 轉轉承見 而無梯稽謝愴歎愴歎 何當有一會期耶 春和後 若賜一訪 則何感如之 預仰預仰 此友獲接於阻濶之餘 未能穩叙 遽此告歸 臨歧悵缺 還不如不奉時也 留拜不次䟽禮癸亥臘月初六日 罪少弟朴遠浩稽顙【피봉】〈前面〉玉溪 靜座 執事 入納蓬谷謹候䟽 稽顙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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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矣夫牢閡至此 聞蟬而思 聽鴈而起 已仲秋矣 友朋之思鬱於中 而際玆間 皓雅袖兄書而來 獲承披讀 况若合席對淸儀 從審靜養體事 增護萬重 各節俱穩 仰溸且慰 實副頂禱弟慈候每多愆損 日事刀圭焦悶焦悶 課農勸桑 畚鍤之餘 憂慮亦種種間發 年果所得只有鬂無餘黑 奈何奈何 來初惠訪之敎 何如是有此快所聞耶 掃榻預爲等待耳 年事果有大有 而綿花累年逢歉難摘着綿矣餘都留不備謝禮丁卯八月念七 弟朴遠浩拜上【피봉】玉山 靜座 回納蓬谷候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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曩者枉駕陋巷 誠是意外時適不在 不得奉迎瞻悵何及 邇來心常怏怏 每擬馳書仰射 塵雜相累 尙未暇焉 匪意卽承琅函 慰則極矣 愧悚還增 難以爲懷 未知春夏之交 田園之趣 必倍他辰 而况是春堂益福 賢允善學 人間幸福 孰過於此 欽欽頌頌仙莊相距稍邇 則屢有不問看竹之弊 而有意莫遂 徒增瞻慕而已 後日若有入闉之機 則勿吝歷訪 伏望伏望庸此仰誦 敬冀文祺五月三十日 錫裕 弟拜謝【피봉】〈前面〉光州郡芝山面日谷里▣〔盧〕軫永氏回啓〈後面〉緘 光州邑西町二三一 吳錫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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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阻之餘 惠札來墜旣慰且喜 第審秋凉棣中動止 連護萬衛 何等仰慰勞祝 弟省事觕安私幸 而仲弟以風頭數月苦痛 右耳下項際大有成腫 今欲針破 擧家危惶景色 已無可言允玉率養之慶 獻賀無已 第今年旱災 到處通患 而所謂農形僅免歉凶是悶是悶 奉叙之期 未知在於何間 臨楮徒切悵耿 餘便忙 暫此不備謝禮壬子八月十一日 弟朴遠浩拜謝詐兒近得無恙 而尙未復常充健悶悶【피봉】〈前面〉玉溪李生員宅 回納蓬谷謝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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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우영(金雨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雨英 盧軫永 雨英(타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0850_001 1935년 3월 27일, 김우영이 노진영에게 사촌을 부탁하면서 보낸 서간. 1935년 3월 27일, 김우영(金雨英)이 노진영(盧軫永)에게 사촌을 부탁하면서 보낸 서간이다. 앞머리에는 자신의 겨를 없는 생활을 전하고, 어른을 모시고 사는 상대와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주요내용은 이번에 편지를 들고 찾아가는 사람이 자신의 종씨(從氏)라고 소개하고, 천대전(千代田) 생명보험 상호회사(生命保險相互會社) 대리점(代理店)을 설치하고자 한다는 것, 당신의 군(郡)에 살고 있는데 당신이 알선해 주지 않는다면 도저히 이룰 수가 없으니 성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청한다는 부탁의 내용이다. 발신자 김우영(1886~1958)은 일제강점기 관료로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복천동(福泉洞) 출신이다. 1919년 교토[京都]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경성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19년 10월부터 1921년까지 항일운동과 관련해 변호인으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던 중, 1920년 신여성 나혜석(羅蕙錫)과 재혼하였다. 1921년 양재하(梁在河)와 함께 조선인 최초로 부영사로 임명되면서 중국 안동(安東: 현 중국 랴오닝성 단둥)주재 일본영사관에서 고위관료로 근무하게 되었다. 이후 1921년 10월 15일 변호사 등록을 취소하고 1927년부터 1929년까지 일본 정부의 배려로 미국 및 유럽의 각지를 여행하고 돌아왔으나, 1930년 부인 나혜석이 최린(崔麟)과 불륜사이로 밝혀져 이혼을 하였다. 1932년부터 1940년까지 전라남도 도이사관(道理事官)으로 재직하면서 전라남도 농촌진흥위원회 위원‧농촌진흥과장‧수산과장을 겸임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1936년 훈6등 서보장(瑞寶章)과 1940년 훈5등 서보장을 받았다. 또한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로 1940년 훈6등 단광욱일장(單光旭日章)도 받았다. 이후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충청남도 참여관(參與官)으로 재직하면서 충청남도 농촌진흥위원회 위원‧충남어업조합연합회 이사장‧충청남도 방공(防共)위원회 위원 등을 겸임하였다. 재직 중 고등관 3등에서 고등관 2등으로, 정5위에서 종4위에 서위되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1943년 충청남도 참여관에서 퇴직함과 동시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中樞院參議)에 임명되어 1944년까지 활동하였다. 또 1943년 임시특별지원병경성익찬회(臨時特別支援兵京城翼贊會) 지구별 위원회 회의에 동대문위원회 대표로 참석하여 전쟁에 나가는 학도병에 대한 행사와 지원을 위한 대책 등을 논의하였다. 1944년 5월에는 일본에 있는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일본에 조선의 상황을 전하기 위해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의 명사 파견원이 되어 훗카이도[北海道]를 시찰하였다. 광복 후 1949년 1월 부산 부용동에서 중앙반민조사위원회(中央反民調査委員會) 김용희(金容熙) 조사관에게 체포되어 반민피의자로 특위(特委)에 구금되었으나 병으로 1949년 2월 12일 보석되었으며, 1958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편지를 쓰던 당시에는 전라남도 도이사관(道理事官)으로 재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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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啓盛炎尊體萬安 伏溸伏溸 就白本月拾日은 生의 家親生辰也 而略設小酌 故玆敢仰邀ᄒᆞ오니 當日午後四時迄 內村鄙邱로 掃萬光臨之地 千萬仰望ᄒᆞ나이다 餘謹不備上六月九日 生崔相培拜上殿【피봉】〈前面〉日谷里盧軫永氏〈後面〉陽山里崔相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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便聞 雖種種面晤 不能以時積衷之懷 以筆難旣 恪詢栗烈春府吾丈經體候衛道不甚損攝 曁兄體侍衛康穩 令抱善課 盡宵拱祝 實非紙上空言 情弟塊坐窮廬只喉莫及之歎外何煩浼 第所託倘不置忘而心定否 口而言書而託 似涉沒廉 左右之顧 冒廉之託 舍兄伊誰 勿以苦念 致之以施不費之惠 是所仰冀 適有便 多少留謹不備禮辛臘旬六日 鶴弟 拜手回示企仰【피봉】日谷盧兄軫永 侍座入納巨津謹候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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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汝離膝之後 消息無憑 心甚茹㭗際 此得見手滋 慰沃此懷 書后日富 其間客况 幸而無恙乎 遠慮不尠 父無事度了 婦阿與孫婦 並無大何曾燮男妹亦善 健幸萬萬凡服藥必先正其心 而且無勞精力調理可也 一劑藥似爲夥多 而日數亦遠 恐有變味之慮 則三分之一分捐送似好似好爾 族兄元五氏 近得安候否 忙未修幅 以此言及焉 餘擾甚不能一一卽父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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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兄世國氏室內夫人河東鄭氏以老患累日呻吟不幸於今月十七日午時棄世專人訃告辛巳十月十七日護喪 奇世豊 上【피봉】〈前面〉答 日谷里盧軫永氏〈後面〉孝?里訃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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