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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正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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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을축) 初一日 乙丑 흐리고 찬눈 내림. 세배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했다. 丁巳。正月。初一日。乙丑。陰雪寒。延接歲拜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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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병신) 二十日 丙申 맑음. 수성이씨(水城李氏)에게 시집간 딸의 조고(祖考)의 대상(大祥)을 위문하였다. 陽。慰問水城李氏女。 祭祖考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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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정유) 二十一日 丁酉 맑음. 하만(河晩)의 김낙주(金洛柱)댁으로 들어가 유숙했다. 陽。入河晩金洛柱宅。 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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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무술) 二十二日 戊戌 맑음. 집으로 돌아왔다. 陽。還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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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정사) 十三日 丁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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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무오) 十四日 戊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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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기미) 十五日 己未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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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경신) 十六日 庚申 맑음. 집에 돌아왔다. 陽。還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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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계축) 十日 癸丑 땅이 흔들렸다.〈아이들을 가르친 운자로 하늘을 읊다〉(因敎兒韻咏天)퇴연[유순]한 땅 위에 확연한 하늘이라.16)(隤然地上確然天)처음 쪼개어져서 갈라진 이후 몇 만 년이런가.(肇判以來幾萬年)그 도는 음양으로, 주야가 나누어지며,(其道陰陽分晝夜)문(文)에 이와 기 있어 저절로 이어지네.(有文理氣自固連)형상의 가장 위는 누가 주재하는가. (形於最上誰主宰)숫자는 반드시 기수이고 몸체는 지극히 원만하네.(數則必奇體至圓)만물을 낳음에 사사로움 없으니 아는 자 성인이라,(生物無私知者聖)문왕은 뒤이고 복희가 먼저이네.(文王居後伏羲先) 地動。〈因敎兒韻咏天〉隤然地上確然天.肇判以來幾萬年.其道陰陽分晝夜。有文理氣自固連.形於最上誰主宰.數則必奇體至圓.生物無私知者聖。文王居後伏羲先. 퇴연한 …… 하늘이라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도(天道)인 건(乾)은 확연하여 사람들에게 평이하게 보여 주고, 지도(地道)인 곤(坤)은 퇴연하여 사람들에게 간략하게 보여 준다.[夫乾確然示人易矣, 夫坤隤然示人簡矣.]"라는 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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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밤에 눈이 내렸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 원동(院洞)의 이상룡(李尙龍) 집에 들렀더니 주인 부자(父子)가 한사코 붙잡았지만,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머물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낙수(洛水)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미태정(米太亭)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夜雪。 仍朝飯發程, 入院洞 李尙龍氏家, 則主人父子堅挽, 而以行忙不得留發程。 抵洛水中火, 抵米太亭留宿。 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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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첫닭이 울자 상인과 동행하여 서령(西嶺)에 이르니 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벌교(筏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사촌(社村)에 들어가 요기하였다. 용전(龍田)의 무안(茂安) 댁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鷄初鳴, 與商賈同行抵西嶺, 則始開東矣。 抵筏橋朝飯, 入社村療飢。 抵龍田 茂安宅留宿。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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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근동(芹洞)에 가서 서봉(書封)에 내타인(內打印)4)하였다. 往芹洞, 書封內打印。 내타인(內打印) 시권을 제출할 때 예조좌랑(禮曹佐郞)이 타인관(打印官)이 되어 오시(午時)에 시권을 거두어서는 시폭(試幅)과 시폭의 연첩처(連貼處)에 예조의 인을 찍은 뒤 돌려준다. 이를 내타인(內打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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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가랑비가 내렸다. 아침 전에 이찬(而贊)과 비를 무릅쓰고 폐문동(閉門洞)의 오위장(五衛將)이 사는 곳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의복이 모두 젖어버렸으니 매우 속상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날씨가 개기를 기다렸다가 행장을 꾸려 동진(銅津) 어귀에 이르렀다. 광풍이 세차게 부는 바람에 모래가 날려 눈앞에 가득하였는데, 배를 타자 바람의 형세가 더욱 심하여 매우 위태로웠다. 간신히 강을 건너 승방(僧房) 주막45)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지지현(遲遲峴)46)을 넘어 화성(華城)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微雨。 朝前與而贊, 冒雨往居閉門洞五衛將所在處, 暫敍而來, 衣服盡濕, 可憤可憤。 食後待霽治發, 到銅津頭, 狂風大作, 飛沙滿目, 而爲乘船, 以風勢之極惡, 萬分危凜。 艱渡至僧房酒幕中火。 越遲遲峴, 抵華城留宿。 行七十里。 승방(僧房) 주막 승방평(僧房坪)에 있었던 객점을 말한다. 승방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승방뜰・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지지현(遲遲峴) 지지대(遲遲臺)고개로, 수원과 의왕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다. 《화성지》에 따르면 원래는 사근현이었는데 정조가 '미륵현' 그 후에 다시 '지지현(遲遲峴)'으로 고쳤다고 한다. 사근현(沙近峴)이라고 한 것은 고개 아래에 사근참이 있었기 때문이며 '지지(遲遲)'라고 한 것은 사도세자 능을 참배하고 돌아갈 때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이곳에서 한참 지체하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정조는 이곳에 장승과 표석을 세웠고, 1807년(순조7)에 지지대 서쪽에 지지대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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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갈 길이 바쁜 탓에 일찍 출발하여 두루 살피지 못하고, 다만 용두각(龍頭閣)만을 보았는데 그 구조가 기묘하였다. 다시 출발하여 하류천(下柳川)47)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오산(烏山)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사(素沙)에 도착하여 묵었다. 80리를 갔다. 早發以行忙之致, 不能周觀, 而但見龍頭閣, 則制甚奇妙。 移發至下柳川朝飯, 抵烏山中火。 到素沙留宿。 行八十里。 하류천(下柳川)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에 있는 아랫버드내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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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말치[斗峙]58)를 넘어, 야당(野塘)59)의 송연영(宋延英) 집에 들러 아침을 먹었다. 주인이 1냥을 노자로 주었다. 곧바로 출발하여 국평(菊坪)60)의 하서(夏瑞)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주막으로 와 일행과 잠시 얘기를 나누며, 이에 술을 사서 권하였다. 오수(鰲樹) 최복신(崔福臣) 집에 들러, 오수에게 김수재(金秀才)가 남긴 편지를 전하고 나왔다. 새 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포(周浦)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早發, 越斗峙, 入野塘宋延英家朝飯。 主人以一兩錢贐行矣。 卽發, 入菊坪夏瑞家暫話。 偕來酒幕, 與同行暫話, 仍以沽酒以勸。 而入鰲樹崔福臣家, 傳鰲樹留金秀才書簡出來。 新店午飯。 抵周浦店留宿。 行六十里。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길로 '말재'라고 하였다. 야당(野塘) 전라북도 임실군 남면 야당리이다. 국평(菊坪)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대명리 국평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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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율목정(栗木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입진(笠津)을 건너 율지(聿之)와 여옥(汝玉)은 조막(造幕)으로 들어가고, 나는 자윤과 천평(泉坪)으로 와서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早發, 抵栗木亭午飯。 越笠津, 聿之與汝玉入造幕, 余與子允來泉坪留宿。 行九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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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밥을 먹기 전에 나와 관정동으로 들어갔는데 박상현이 없었다. 창동에 있는 배생(裵生)의 객관에 들어가니 배생도 없었다. 다만 그 하인만 있어서, 며칠 전 나온 책자를 전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아침을 먹은 후 사헌과 신생(申生)이 내려갔다. 동향 사람은 먼저 각자 내려가는데 나와 율지는 같이 내려가지 못해 몹시 괴로웠다. 밥을 먹은 뒤 관정동으로 가니 박 상인이 또 없었다. 다만 주인 우 참봉만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 정동에서 묵으며 밤에 꿈을 꾸었는데, 집에 돌아가니 손자가 나왔는데, 한 살배기 아이만큼 커, 마음이 아주 흡족하였다.우 참봉에게 점을 치게 하니 오늘 과연 해산하여 득남할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꿈속 내용과 점괘가 같으니 우리 집안의 큰 행운 중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멀리 밖 사정을 상세히 알지 못해 몹시 걱정되고 답답하였다. 그길로 정동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소문(西小門)으로 나와 차동으로 들어갔는데 사상(士常)은 출타하였다. 아랫사랑에 들르니 주인의 사촌 감찰(監察) 민치원(閔致遠)이 마침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내일 찾아보기로 약속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前出來, 入冠井洞朴祥顯不在, 入來倉洞裵生所館, 則裵生又不在。 只有其下人, 故傳日前所來冊子出來主人家。 朝飯後, 士憲及申生下去。 同鄕之人先各下去, 而余與聿之不得同行, 悶悶。 食後, 往冠井洞, 則朴喪人又不在。 只在主人禹參奉暫話。 昨日留貞洞, 夜夢, 歸家孫兒出, 大如一歲兒, 心甚喜之矣。 作卦於禹參奉, 則今日果爲解産而得男云。 果如夢中與占理, 則吾家大幸, 孰大於此? 遠外事未能詳知, 悶㭗悶㭗。 仍往貞洞暫話。 出西小門入車洞, 士常出他。 入下舍廊, 則主人從氏閔監察致遠適來, 仍與相話, 其喜何言。 明日尋訪之意相約, 而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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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陵【幷志】 越志莊陵在府北五里天順丁丑十月二十四日酉時端廟昇遐于本府觀風軒戶長嚴興道葬于府北鉢山冬乙旨辛坐原宣廟庚辰改封竪石肅廟戊寅追封爲陵周回三十里令一員參奉一員守護軍九十名◌靈泉卽莊陵祭井在丁字閣南庭十許步水深數寸大旱澇不增減每當寒食祀享水輒大至越人傳爲異事正廟辛亥因筵臣上達錫名靈泉仍命該府使朴基正書石以標之直閣徐榮輔撰記◌配食壇在紅箭門外南邊數步正廟辛亥因特敎創設每寒食配享端廟忠臣三十二人又設三別壇隅圻爲位一軆享之朝士壇稍前享一百八十六人宦者軍牢壇在左享四十八人女人壇在右享六人又違蕆板屋三間於壇邊藏四壇位板◌拜鵑亭一名拱北亭在齋室東五十步許前有小池卽封陵初所創年久頹圯只有形址府使朴基正重建刻拜鵑巖三字于後巖◌景液池卽莊陵水口池也周一里中有六島壬子春自本府改築植木◌八賢祠肅廟辛亥創建于彰節祠墻內享生六臣金時習南孝溫李孟專元昊趙旅成聃壽及權節鄭保英廟辛酉以未賜額因朝令毁撤◌彰節祠在陵洞口外大道傍南三里許自邑北二里事實見上九疑山色白雲鄕不盡東風綠草長從古必稱堯舜國至今相繼夏殷王省巡百里趨方伯衛護千年跪寢郞猶有後天無限緖喞啾羣喙弔殘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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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本道儒生等上禮曺書 復以好生惡死人止常情也死之於人大且難矣而捐一命於危迫之時小遂初志於平常之際大出氣力於少壯之齒易踐素履於老耋之年難是以世或有婦人女子之 以烈爲名者而皆出於少壯之齒危迫之時則老耋之年平常之際從容下從能成其烈者豈多得乎今夫有人於斯抱卓犖之行懷芳郁之名而寂寞荒山之濱與草木同朽則殆將爲士林之所羞而抑亦爲熙朝之一欠故生等邇居同省瞻聆攸聳不容泯黙玆敢裏足而來踵門而告靈光故士人魯得佐妻金氏是其人也盖魯得佐咸豐人而故水使錦溪公認之後也家世中微雖不顯赫而以文學行義著於鄕里其妻金氏 卽故相公景光之後而稟性溫柔孝事父母及嫁魯門善修婦道事舅姑如事父母待婿族如待親黨敎子孫且慈且嚴使婢僕有恩有威一門雍睦遂成家範自少至老人 不見其疾言遽色初年不免飢寒而紡績種耘勤勤孜孜晩歲衣食有餘蒼顔白髮八十偕老人以地仙稱之其夫以老病累月呻囈調護諸節自有三子夫婦而金氏不以年老自居煮粥供藥躬自看檢一日二日愈往愈勤及其臯復之日哀痛號哭別無異人襲斂諸具無不親閱旣而入其房招諸子孫訣曰吾夫妻死生相隨吾所志也汝父旣歿吾何獨生汝曺之孝養非不至也衣食非不足也而吾不可享其樂貪其生以負素心但願吾子吾孫吾婦吾女世修和睦毋墜家業吾夫妻當瞑目於地下汝曺勉之勉之言訖而終毒藥已入口無可救矣喪出之日鄰里婦儒莫不揮泣曰此婦人逝矣 當此歲荒人之飢寒誰復救之人之患難誰復卹之云平日婦德從可驗矣鳴呼殉夫之烈從古何限而生而同室偕老老而從死同穴者幾人猗彼金氏自宴爾之初已決同死之志而終乃踐之何其毅哉始窘而勤力治家使夫子無凍餒之患稍饒而恤窮濟急使凡民有匍匐之譽夫病而親執藥餌以殫其誠夫喪而親閱歛具無憾其心旣決從夫而以俄頃奄奄之氣遺誡兒孫無非嘉言善行而從容不迫視死如歸誠古所謂從容就死死以成德者也苟非出天之眞性以一寒門女子安能判義理於造次間乎夫爲臣忠爲子孝爲婦烈固是人倫之常行而往古來今鮮能踐之者好生惡死之情常勝故也果能出人之常情而少壯之志行于老耄危迫之事決于平常則尤爲烈之大且難者而生等之不忍括囊相率抱牘者顧此秉彝之良心有不能自滅故也倘蒙衣被之恩以賁棹楔之典則不但爲死者之地亦足爲扶世彛植王綱之一大政伏願閤下俯循公議仰達天聰俾玆曠世之烈特荷曠世之渥幸甚幸甚無任屛營祈懇之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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