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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아침에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이에 아침을 먹고 잠시 원동(院洞)의 이상룡(李尙龍) 집에 갔다.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에 주막으로 내려왔는데, 비가 개어서 그길로 길을 떠났다. 영귀정(咏歸亭)에 들러 외종 형수를 만났는데, 그 모습이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잠시 쉰 뒤에 출발하여 석곡(石谷)에 이르러 잠깐 쉬었다가 율목정(栗木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朝雨不止, 故仍朝飯, 暫往院洞 李尙龍氏家, 暫敍後, 下來酒幕。 雨勢開霽, 故仍爲發程, 入咏歸亭, 見外從嫂, 則景像不忍見。 暫憩後發程, 抵石谷暫憩, 抵栗木亭中火。 抵谷城邑內留宿。 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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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향교에 가서 교임(校任)4) 송상혁(宋象赫)을 만나 실기(實記) 한 권을 전한 뒤, 예조에 소장을 올리고 명첩(名帖)을 얻는 일에 대해 논의하니 답하기를, "소장을 먼저 본관(本官)에 올리고, 다음은 감영(監營)에 올리며, 다음은 예조(禮曹)에 올려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도유(道儒)의 이름을 얻은 뒤에 영문(營門)에 올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였더니, 훗날 영문에 올릴 때 명서장(名書狀)과 인교도서(印校圖書)를 얻어 교복(校僕, 향교의 종)에게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주인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일의 형세가 그러할 듯하므로 동행과 상의하여 이러한 뜻으로 문중에 보낼 서간과 가신(家信)을 써서 영주인 편에 부쳤다. 점심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朝飯後, 往鄕校見校任 宋象赫, 傳實記一卷, 論其呈曹得名帖事, 則答曰: "呈本官, 呈營門, 呈禮曹云云。" 故今得道儒名後, 呈營門何如, 則他日呈營時, 得名書狀印校圖書, 使校僕呈出爲可而不許, 故還來主人家, 思之則事勢似然, 故與同行相議, 以此意書送書簡於門中, 及家信於營主人便。 午飯後發程, 抵參禮留宿。 行三十里。 교임(校任) 조선 시대, 향교를 운영하고 교생들을 교육하는 향교의 직원을 이르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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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기 전에 남계(南溪) 정내성(丁乃成)이 와서 만났는데, 성에 들어온 뒤로 처음 보게 되니 매우 기뻤다. 이어 같이 아침을 먹고 나서 정내성(丁乃成), 명생(明生, 명두엽(明斗燁))과 전의(典衣) 방동(房洞) 정내성의 주인과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대묘동(大廟洞)의 공서(公瑞)가 머물고 있는 사관(舍館)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서와 예조 직방(直房)에 같이 가자고 약속하였는데, 공서가 사랑(舍廊)에 들어갔다가 끝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몹시 기다리다가 홀로 직방(直房)에 가서 《사원록》을 꺼내어 보고 이어 베껴 썼다. 또 정장(呈狀, 관청에 내는 소장))하는 일을 논하였더니, 들어가는 것이 없지 않으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으므로 나와서 오는 길에 정초지(正草紙)70)를 사가지고 왔다. 食前南溪 丁乃成來見, 入城後初見, 忻喜忻喜。 仍與朝飯, 與乃成及明生同典衣房洞 乃成主人暫話。 往大廟洞 公瑞舍館暫話, 與公瑞同往禮曹 直房之意相約, 而公瑞入舍廊, 終不出來。 苦待不已, 獨往直房, 出見《祠院錄》, 仍爲謄書。 又論呈狀事, 則不無所入, 預備爲好云, 故出來, 來路買正草而來。 정초지(正草紙) 과거 시험에 사용하던 시지(試紙), 즉 과지(科紙)를 말한다. 알성시ㆍ정시 등 친림시 시지로 사용되었는데, 도련지보다는 지질이 떨어지는 초주지(草注紙)를 사용하였다. 응시자들은 시험보기 이틀 전에 응시자로 등록하는 녹명(錄名)의 절차를 밟았는데, 미리 준비한 시지와 사조(四祖)의 신원을 기록한 녹명단자를 함께 제출하면 녹명을 담당한 관원은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녹명책에 이름을 올린 후 시지의 봉함부분에 확인 도장을 찍어 주면 이 시지를 들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정식 응시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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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아침을 먹은 뒤에 명생(明生)과 과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서소문(西小門) 밖 이희(李) 집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정초지(正草紙)에 타인(打印)하게 하였다. 이어 대묘동(大廟洞) 보성 접주인(接主人, 주접(住接)하던 집의 주인) 집으로 갔다. 오후 비가 내리는 바람에 반촌(泮村)에 들어가지 못하고 보성 접주인 집에서 그대로 머물렀다. 食後與明生入場次, 入去西小門外李家, 使主人正草打印。 仍往大廟洞 寶城接主人家。 午後雨所戱, 不得入泮村, 仍留寶城接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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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계유) 七日 癸酉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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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기사) 五日 己巳 맑음. 석양 무렵에 엄지순(嚴之淳)이 왔기에 일기를 내보이고 밤이 깊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陽。夕陽嚴之淳來。 出示日記。 夜深談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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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임신) 七日 壬申 맑다가 밤에 비가 조금 왔다. 오치면(梧峙面)100) 장동(章洞)에 사는 기성군(箕城君) 이긍(李兢)101)의 16세손인 계종(啓琮) -자가 명숙(明叔), 호가 삼산(三山)- 이 쌍석(雙石, 이희용)과 함께 와서 단란하게 얘기하다 갔다. 陽。 夜小雨。梧峙面章洞。 箕城君李兢十六孫。 啓琮。 字明叔。 號三山。 與雙石同來。 團圝而過。 오치면(梧峙面)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오치면으로서, 현재는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에 해당된다. 이긍(李兢, 1389∼1433) 본관은 함평(咸平). 1405년 식년시 병과로 급제하고, 1427년 중시(重試) 을과로 급제하여 대언에 뽑혔다. 한어(漢語)를 잘하여 승문원제조가 되어, 한어를 가르쳤다.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예조참의, 공조우참판(工曺右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1433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북경에 가던 도중 병을 얻어 첨수참(甛水站)에 이르러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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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계유) 八日 癸酉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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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갑술) 九日 甲戌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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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병인) 二日 丙寅 맑음. 오현(五絃)의 친산에 성묘를 했다. 陽。行五絃親山省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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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정묘) 三日 丁卯 흐림. 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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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무진) 四日 戊辰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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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계해) 二十九日 癸亥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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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임술) 二十八日 壬戌 맑음. 목동(木洞)의 봉여(鳳汝)댁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陽。訪木洞鳳汝宅。 以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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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2월 閏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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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1일(갑자) 初一日 甲子 흐리고 비가 내린 흔적만 있었다. 陰。 雨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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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朴思菴【淳字和叔】遺集 文成眞聖人信史揭石潭袞銊二三策千載作指南赫赫明宣際士林簇梗楠領袖竟歸誰最詡朴思菴我師儘弗欺爛藁昭訂叅大木有根秪菀鬱珠樹三福宿耀德門膺運挺肖男八歲咏鳳鳳敎師却自慙丱角肇發軔陞庠如囊探文章卽餘致奧理析牛蠶花潭曁恥 齋師友資薰涵踐履自篤實終看靑出藍遠抱兼善志鑄陶爲荷擔壯年遂大闡亨衢駕飛驔靑鍾僊酳醲蓮燭護微酣直哉恭昭謚不畏兇徒喑戚毗操太阿城社恣耽眈尺疏爭日月呌閤抱瓊函劾冀兼誅憲脫距迸奸婪世路廓淸明碧霄捲浮嵐雪枉仍革瘼大東治化覃中途哭蒼梧新契仰諒闇支補鳩羣材匠手大可愖網羅利密勿麟鳳齊毿毿掌藝宗韓李典禮攷夷耼退陶稱獨契牛栗且和湛正脉濂閩赜大手燕許撏宋人唐詩調皇華品題馣秉銓秤輕重調鼎濟濟酸甘專對觀上國淸名走卒擎箋門排正却市貨社貪水月與松筠宸褒播野談斥兇鑑識炯備胡規畵譚論喪復植墓啓沃水如淡韋布殼得鵠巷閭衣免 䳺洛蜀媒禍䦧墻務相戡耿結憂國忱調劑如醫痰丹心苦未孚簧言巧呢喃可惜張太師難制東窓柑寇老境躓跲未拔眼中錯跡履符宋璟志事違漢弇老圃葆晩節簞瓢處巖嵁樂園酒自春香社雲空曇進退隨時宜華珮更獘檻白雲蒼玉屛疎松拂䰐鬖撫桐歌古操僊鶴舞毿㲯雅襟混野罇冲詞托禪龕釣採娛餘生時事歸黙啽寂歛醫國手塵掩蔘朮籃于嗟哲人萎可奈亂用餤玄天示驚異雷火爗如燂筆絶邵雍齒家乏劉毅儋惻愴坡翁誄字句脛血含迢鍾賢山埋却玉容傪鵑窩何處在落月窺谺谽夐寂丹靑秋微茫鍾磬韽 條氷難更覩志士憂如惔荒涼俎豆室年年香火燷短碣尤翁銘該博若古郯靑氈更誰牝空堦石生藫宅相能裒稡珍重粧如䤴序述金相筆摭實去斧鏨文獻足爲徵風韻起愚憨咀嚼口不輟熏似旨醪酖聊寓執鞭想璚林御珍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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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學頌 【幷序引】 苫塊殘骸蟄處田屋竊伏聞我聖上孜孜好學日御三講之筵緝熙光明之德庶可以鼓舞 一世表準八方追念宿昔簪筆翶翔杳隔天上而欲吾君爲堯爲舜本乎根性政是寒後 枯木統得一脉春信亦自有欣欣向榮底意想玆賦聖學頌一篇以寓愛君之忱云臣盖聞虛謨彰後有家亮有邦之績惟時師師百僚羲繇贊進其德修其業之方終日乾乾君子辟雍行禮尙矣三老五更明堂出治本諸六經四術唯其上行而下效蹈詩禮於百家迺使暮誦而朝吟囿文明於一世遠事君邇事父何莫學夫行讓路仕讓朝無非敎者肆昔明王哲辟必先尙學崇文殷高宗時敏之功乃見天下之運掌周成王日就之效克致朝端之仔肩治亂之跡瞭如緯經是宜勸善懲惡帝王之學異乎匹庶非必摘句尋章然深宮狃于燕安而常情忽於晋業所與同人是宦官宮妾自可易逸而易荒苟非大過於世主時君曷以好問而好察夏氈之上非無一二抱經之臣燕蠖之中奈多尋常束閣之日惟我聖上睿姿天縱學業月將五百歲必興考其時則可矣隻兩日爲法倣於古而行諸泮庠之制彬彬絃誦之聲不絶瀛奎之選彧彧文學之流相望千載後將大有爲一毫間殆旡妄動文武之方策布在式克至今姚姒之心法相傳曰若稽古道不越乎文字朝夕師承德可齊於 穹隤春秋昇盛旣勤蒙養之程課仍賜晉接之聯翩漏鍾到分於丙宵我自樂寧爲疲也 汗簡遍閱於乙覽而時習不亦悅乎斐章之玉重磨幾傚禹陰之猶惜寶光之鑑復刮佇看湯日之又新禮樂之興有時百年今日詩書之敎是述三代遺風正爲基業昇平是以聲名洋溢學不厭知也允叶聰明作元后之休文有聲烝哉無謳歌曰吾君之譽衰癃之老聽而 扶杖咸願不死須臾期羽之士通於經章罔俾專美古昔伏念臣草菜賤質樗櫟散材暎花閣前奉璇題而廻翔叨陪天顔咫尺熙政堂上濡簪筆而記注承聆玉音琳琅一千里勞耿結之忱逖南土之困跡五六年阻起居之列望北斗而恒祈其無疾病歟何以能好學也 是亦堯舜耳幸於吾親見之東國其庶幾乎一變至道下民必有甚者四方動風病者欲 蘇喜而不寐生斯世復覩億兆之戴已詎無彛倫上本天値我君咸登三五之休辰自有名敎中樂地依日月末愧蔑爝螢之補光處江湖間樂與淵魚而涵化遂爲之頌曰生知爲聖志氣淸明通明曰聖粹然天成而古典章惟學是資往軌興廢非學奚知彼昏自聖暋不爲學唯聖謙光愈自磨琢百爲之暇孜孜弗怠置諸座右常目攸在萬古龜鑑在我方寸發號施令動皆爲憲日新又新維日不足晝召夜對玉漏銀燭朝絶丁目官恥墻面崇讓務儉俗用丕變風行草偃囿我烝民民識務本曰義曰仁仁義之發忠孝斯大世道漸隆何憂不泰凌轢漢唐駕軼殷周村塾州序爲魯爲鄒笙鏞八域頌聲洋洋終始惟一萬壽無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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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일찍 출발하여 성환(成歡)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즉시 출발하여 칠원(漆原)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수원(水原) 오산(烏山) 시장 근처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早發抵成歡朝飯, 卽發抵柒原中火。 抵原 烏山水市邊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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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 아침을 먹고 함께 머물렀던 윤 석사, 이 석사 등 여러 사람과 작별하였다. 이어 하서(夏瑞)와 길을 떠나 모람치에 이르러 묵었다.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는데 태인(泰人)의 김영택(金永澤)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머물렀다. ○仍朝飯, 與同留尹、李諸人作別。 仍與夏瑞發程, 抵모람峙留宿。 偶逢一人, 則泰人 金永澤也。 與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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