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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밥을 먹은 뒤 송화(宋燁) 군찬(君贊), 송낙의(宋樂義) 내직(乃直)과 나와 광암(廣岩) 객점에서 하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있으니 하서가 과연 왔길래 술을 사서 함께 마시고 군찬과 내직 두 송씨와 작별하였다. 하서와 동행하여 첩치(箑峙)를 넘어 굴암(屈岩) 아래 객점에 이르러 작별하였다. 도마교(逃馬橋)81) 주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방동(芳洞)82)의 송렴(宋濂)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 마을에 들어온 것은 송상오(宋象五), 송재환(宋在煥) 두 사람의 유고에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30리를 갔다. ○食後, 與宋燁君贊、宋樂義乃直出來, 廣岩店待夏瑞來矣。 移時夏瑞果來, 沽酒相飮, 與君贊乃直兩宋作別。 與夏瑞同行, 越箑峙, 抵屈岩下店作別。 抵逃馬橋邊午飯。 抵芳洞宋濂家留宿。 入此洞者, 吊宋象五、宋在煥兩人之故也。 行三十里。 도마교(逃馬橋) 임실군 임실읍에서 내려온 시내에 놓인 나무다리로, 말이 건너다녔다 하여 도마교(道馬橋)라고 했다. 원문 '逃'는 저본의 오류로 보이나 확실치 않다. 방동(芳洞)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방수리 방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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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인이 극구 만류하여 그대로 머물렀다. 낮에 김노가 다리 통증으로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니 몹시 걱정되었다. 거처 앞에는 시내가, 뒤에는 소나무가 있어 아주 고즈넉하였다. 절구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개울물 소리는 밤새도록 울리고(澗有通宵響)둥글고 깊다라니 진종일 그늘 드네(圓深盡日陰)거처하는 곳이 시내 저자 주변이건만(攸居城市邊)혹 속인이 찾아오는 건 싫어하네(倘嫌俗人尋) ○以主人之堅挽, 仍留。 午間, 金奴以脚病痛臥, 悶悶。 所居前溪後松甚幽寂。 吟一絶曰: "澗有通宵響, 圓深盡日陰。 攸居城市邊, 倘嫌俗人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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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밥을 먹은 뒤 길을 떠날 무렵, 마침 암자 아래를 지나는 상선(商船)이 있어서 어디로 가는지 물으니 공주로 간다고 하였다. 뱃사공을 불러 급히 배에 올랐다. 배를 띄운 지 몇 리 못 가서, 바람과 일기가 순조롭지 못해 도로 배에서 내려 육지에 올랐다. 선덕(先德) 객점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거리 객점을 지나 발치(發峙)100)를 넘어 이인(里仁)101) 객점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우금치(于今峙)102)를 넘어 공주 화산교(花山橋)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食後, 離發之際, 適有商船之過菴下, 故問其所向, 則往于公州云也。 招津夫急登船。 浮江數里, 以風日之不順, 還下船登陸。 抵先德店午飯。 歷三巨里店, 越發峙, 抵里仁店。 暫憩後, 越于今峙, 抵公州花山橋店留宿。 行七十里。 발치(發峙) 충청북도 충주시의 직동과 살미면 재오개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옛날 삼남대로로 통하는 대로의 첫 고개였다고 한다. 이인(里仁)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이다. 우금치(于今峙) 우금치(牛禁峙)를 말한다. 공주 분지의 남쪽 끝에 낮은 안부를 이루어 형성된 고개로 높이가 약 100m이며, 부여에서 공주 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있다.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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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동틀 무렵 길에 올랐다. 강을 건너 이문동(里門洞)17)에 이르러 이 석사와 작별하고 주인댁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주인댁 내행차(內行次, 부인의 행차)가 아직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렀다. 平明登程。 渡江至里門洞, 與李碩士相別, 至主人宅朝飯。 主人宅內行次, 尙不下去, 故因留焉。 이문동(里門洞)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에 이문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우리말로 '이문골', '이문안'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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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밥을 먹은 뒤 류 서방, 안(安) 서방과 동행하여 주로치(周魯峙)를 넘었다. 벌교에 이르니 율지가 과연 일찍 와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요기하고 나서 출발하였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율지는 곧바로 마륜으로 들어가고 나는 안 서방, 류 서방 두 친구와 함께 용전(龍田)으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저녁을 먹은 뒤 증손자가 가교(柯橋) 댁으로 올라왔다. 내가 내려온다는 기별을 듣고 오늘 나온 것이다. ○食後, 與柳書房、安書房作伴, 越周魯峙。 抵筏橋, 則聿之果如早來, 尙今企待矣。 療飢後, 登程。 日已暮矣。 聿之直入馬輪, 余則與安、柳兩友, 入龍田留。 夕食後, 曾兒自柯橋宅上來。 聞6)吾下來之奇, 今日出來矣。 聞 저본은 '問'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상 '聞'으로 보고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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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나는 밥을 먹기 전에 사교로 내려가 먼저 문옥(文玉)을 만나고, 가교 댁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구룡정(九龍亭)에 들러 잠시 경수(敬叟) 씨를 만났다. 탄포(炭浦)135) 객점을 나오니 율지가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박상현을 만나 동행하여 과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문등(門登)에 이르러 율지와 박상현은 곧바로 간촌(看村)으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집안의 사당에 공경히 배알하였다. 안으로 들어가 손자를 보니 그 기쁨이 한량없었다. 그러나 산모가 유종(乳腫, 젖멍울)이 점점 더해지는 듯하니 이 또한 걱정되는 부분이다. ○余則食前下去四橋先見文玉, 下來柯橋宅, 朝飯發程。 入九龍亭, 暫見敬叟氏。 出炭浦店, 則聿之早來待矣。 又逢朴祥顯與之同行, 抵過驛午飯。 抵門登, 聿之與朴祥顯直向看村, 余則還家, 祗謁家廟。 入內見孫兒, 其喜不可量。 而産母似有乳腫之漸, 此亦悶慮處也。 탄포(炭浦)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탄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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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새벽에 출발하여 지지현(遲遲峴)110)에 이르자 막 해가 떠올랐다. 김노가 중병이 나서 일행과 짐을 나눠서 졌다. 간신히 사근평(肆覲坪)111)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김노가 주막에서 스스로 짐을 약간 졌다. 세동(細洞)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과천읍에 이르러 비를 만나 한참을 머물렀다. 비가 갠 뒤에 남태령 객점으로 올라갔다. 김노가 뒤따라와서 몹시 기뻤다. 이에 점심을 먹고 강을 건너는데 비가 다시 시작되었다. 모래사장 반도 못 가 비가 퍼붓듯이 쏟아져 옷자락이 흠뻑 젖었다. 간신히 식점거리(食店巨里)에 이르러 비를 피하였다. 비가 갠 뒤에 청파(靑坡)112)의 영대(永大) 집에 이르렀다. 의관과 짐 안의 물건들이 모조리 젖어 말할 수 없이 부아가 났다. 80리를 갔다. ○曉發, 抵遲遲峴始開東矣。 以金奴之大病, 分卜於同行。 艱抵肆覲坪店留。 金奴於酒幕自負略干卜。 抵細洞朝飯。 抵果川邑逢雨, 移時留連。 開霽後上南泰嶺店。 金奴追後來到, 可喜可喜。 仍爲午飯, 而越江, 雨更作。 沙場未半, 雨下如注, 衣裾盡濕。 艱抵食店巨里避雨。 開霽後, 抵靑坡永大家。 衣冠與卜中諸物盡濕, 憤不可言。 行八十里。 지지현(遲遲峴) '지지대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지지현(遲遲峴)이라고 표기하는 곳이지만 본래는 '사근현(沙斤峴)' , '미륵현(彌勒峴)' 등으로 불렸다. 사근평(肆覲坪) 경기도 안양시이다. 청파(靑坡)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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雒行述懷【四月二十八日辛酉曉發莘磯朝飯淸溪洞舊李文一家午飯飛鵝店夕宿榜鼓橋店】 四年家食太疎慵轉覺華毛減舊容魚魯欲分嗟易老狼燕何在杏難封吟邊白酒三椽屋夢裏靑綾五夜鍾百鳥東風如有識喚人春睡理枯筇【右自光州向長城】自笑南坡脚不慵靑袍獵獵帶春容長途赤漢恒何健樂歲黃壚此可封曉月離家歌一闋午陰携友酒三鍾逍遙異境情緣否坐點溪山憩短笻【右念九朝點巖午軍令橋夕聯珠院】榜鼓橋頭睡起慵朝凉雙屐劇從容木城籠翠村如失蘆嶺刪靑石不封雨劫回凹溪百斛春光飜覆畝千鍾無情一宿寥寥店白酒烏魚挽客笻【右五初吉朝大橋午院坪夕豆粥街】盍朝聲裏起余慵歸却春眠整理容紫錦桐花猶有信靑錢荷葉又開封林間孤屋遙疑石嶺下寒泉或聽鍾斷隴泥沙迷澁路無端悵念舊行笻【右初二朝有成街午筒井夕芝巖峴】狂吟低仰午征慵偪窄詩囊苦未容百濟遺墟無戰伐三韓古野有疆封入煙萬落繁華錯王迹千年淑氣鍾可笑堂堂金馬客榴花五月曳孤笻【右初三朝楮橋午新橋夕魯城邑外】淋漓朝雨更添慵如斗孤棲剩得容礙眼花山蒼霧罨關心草浦赤泥封使君府北聆晨角彌勒庵前近午鍾默數西湖多少堠今宵何處可停笻【右初四朝敬天午錦江夕石坪】賣眼迢迢放步慵風流不減昔時容粧梳鷄峀雲千髻裁割態津錦一封往跡迷茫北門棹前游怊悵古庵鍾疲驢短鬣俱安在草草相隨數尺笻【右初五朝廣亭午金蹄驛夕富土里】靑天上嶺少無慵快洗身家老大容五十年餘猶曰壯三千里外可求封緣貧不賣恒留劒待槌方鳴自有鍾宿氣顚狂重午節據床招酒坐支笻【右初六朝時廩所午可川夕振威外】往往蓬顚太慢慵長途習熟笑能容溫王城跡峰雲逗麻督兵塵野草封秧水遠村浮似艇松風古寺遞爲鍾禿頭游賞猶無已多少黃泥又染笻【右初七朝梧山午水原北外夕蘆山】午天詩步十分慵到得名區更改容梧野寒雲懷舜狩華堤老柳見堯封寥寥杏店春如磬澹澹荷塘水自鍾夢裏情塵終未袪苦酸千里獨扶笻【右初八朝果川午水淸街夕道積洞】曉色驚寒破一慵麥風吹浪點秋容千磨危石蒼何瘦百練纖沙素未封詩老不衰餘氣鼓美人難忘舊情鍾支離十日棲棲跡妥帖今宵可放笻【去夜宿南大門外道積洞朴哥食店浹旬登途欲忘勞苦信口走草樂鍾酒鍾雜鎈通韻行役之餘未暇繩削只俟後從來者分析改正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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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李雅獻夏咏筆三十二韻【李而徵獻夏示余以筆詩三十二韻卽其祖故承旨明淵與金尙書相休布衣時戱爲聯句者而▣徵追步其韻凡四疊要余和之韻旣硬而且嫌剽竊辭以不能屢回强索終不能辭乃爲二疊以索其請兼呈申侍郞韋史錫▣金令公晩齋世均黃學士怡山鍾顯丁巳冬十月日也】 尖奴賤亦貴古來人莫間尼絶獲何尤班投涉太嫚氏族中山出庭戶三江環彊記該今昔專任備夙晏頭肖將軍起氣奪丈夫覵稱子鮑結交封仰禹錫宦坐免牛馬裾動兼鶴鳧骭端友白面託名公黑頭辨縳髻脣投膠傳皮枉受轘麝煤新契敦猩鞋舊劫幻獨立儼如雙峙婉似丱和刀狎吏掾代銊誅凶纂得意偏宜藤托身或處薍健槊喩能善削峰見是贋恒不離房闥遠可通梯棧聖蒼混沌坡禿素盲聾謾坡帖羊幾換張簇龍可豢鮮衣畵容吮臨鏡粧娥肦佳譽鼠鬚吟窮相鷄距訕玉笋繃初裹金蓉房未綻江夢增藻思杜法防蠹患騷屋短耒在硯田荒草鏟白戰寸鐵無墨墨輕甲擐隨時行且藏適用急而縵史橐附若蠅書巢借如鷃示朝狐秉直題院馬記諫亂草錯鬪蛇斜行序飛雁楷脚摭柿葉詩腹披藜莧羲之木八分白也花一瓣休粮虞氣疲餙華蔡步慢拔毛擧世利濡首平生慣更添玉蟾蜍幽趣山上澗代繩拮太上刻衡禹無間贊揚惟乃休尊寵寧或嫚湯沐膠州割表封管城環族周支分聃相齊名並晏訛亥三豕校昧丁一豹覵脫穎嗤趙价免冠謝蔡宦墨廚役蒼頭書圃種玄骭喜揖長鬚拂善斷隻手辦肇跡中山獵往事東郭轘詩架峰巒尖史垣波濤幻硏是硎其鍔閣乃弁於丱艸檄驚兎脫裁函冥鴻纂粧髻削芙蓉衣毳此菼薍磔肉蘇吟工畵餠米搨贗顔筋勁秋韝韋髮老雲棧抹窓畵鴉戱打屛點蠅謾摹鶴能奪胎屠豨卽悅豢貽彤賦妹孌繪素描倩盼習性固喜銳計壽奈招訕長杠黑雨驟大椽朱華綻學陣軍可歸代耕貧不患李篆和璧鏤籕文岐石鏟抽舌袞銊炳衛身甲冑擐落紙紅燁爛蘸水雲糺縵賤貴分鷄鶩小大鎈鵬鷃露頂張何顚正心柳能諫食墨靈似龜刷字活如鴈藻繢贊黼黻卉譜評鬱莧易床滴朱點法筵櫬香瓣往塵書得失庶績攷勤慢武人時亦請石友曰相慣逢時作黑頭靑鞋驀山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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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추웠다. 김 동지를 위해 만시(挽詩)를 대신 지었다.한 가닥 영서처럼 마음이 밝게 통하니8)(靈犀一點暗通明)젊어서부터 맺은 교유의 정 형제와 같네(自少交情若弟兄)이품의 높은 직함 자헌대부에 오르고(二品崇啣資憲秩)칠순의 큰 복에 자손들도 빼어나네(七旬胡福子孫英)지팡이9) 짚고 느린 걸음으로 찾아뵈니(鳩笻緩步曾相訪)백발의 늙은이 온화하게 맞아주었네(鶴髮雍容底處迎)조만간 머나먼 저승길을 따라가리니(早晩長隨泉下路)만가 부르며 북망산 가는 길 먼저 전송하네(輀歌先送北邙塋)저녁에 우연히 독감에 걸려 밤새도록 크게 앓았다. 寒。 爲金同知代述挽詩曰: "靈犀一點暗通明, 自少交情若弟兄。 二品崇啣資憲秩, 七旬胡福子孫英。 鳩笻緩步曾相訪, 鶴髮雍容底處迎。 早晩長隨泉下路, 輀歌先送北邙塋。" 夕間偶得毒感, 達夜大痛。 영묘한 무소 뿔 영서(靈犀)는 영험한 무소의 뿔을 말하는데, 흔히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특히 무소의 뿔 가운데 백색의 무늬가 양쪽 끝으로 통해 있는 것은 그 감응이 아주 빠르다고 한다. 중국 만당 시기의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의 〈무제(無題)〉에 "몸에는 쌍으로 나는 채봉의 두 날개가 없고, 마음에는 서로 통하는 한 가닥 영서가 있네.[身無彩鳳雙飛翼, 心有靈犀一點通.]"라고 하였다. 지팡이 원문의 '구공(鳩笻)'은 손잡이 부분을 비둘기 모양으로 조각한 지팡이로 예전에 임금이 나이 많은 신하에게 비둘기처럼 소화를 잘 시키라는 의미에서 내려 주었는데 구장(鳩杖)이라고도 한다.《後漢書 志5 禮儀中》 《呂氏春秋 仲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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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예조에 가서 안일득(安一得)을 만나 상언(上言)5)하는 일을 상의하였다. 오는 길에 대묘동(大廟洞)에 들어가서, 삼정(森亭)의 접(接)6)과 임 상사(林上舍)에 대해 물었다. 현재 이문동(里門洞)에 머물고 있다는 기별에 다시 이문동(里門洞)으로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 往禮曹見安一得, 相議上言事。 來路入大廟洞, 問森亭接及林上舍, 方留里門洞之奇, 轉入里門洞, 暫話而來。 상언(上言) 주로 집안 일로 백성이 임금에 진정(陳情)하는 글을 올리는 것, 또는 그 글을 말한다. 상언의 내용을 보면, 주로 자손이 조상을 위해서거나 또는 사림(士林)이 선열(先烈)을 위해서 올리기도 하고, 충절(忠節)ㆍ효행(孝行)ㆍ정렬(貞烈)에 대한 정표(旌表)ㆍ증직(贈職)이나 신원(伸冤) 등을 위해 올리기도 하는 것으로, 일정한 서식(書式)이 있다. 접(接) '접'은 글방 학생들이나 과거에 응하는 유생들이 모여 이룬 동아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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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밥을 먹은 후에 민 상사(閔上舍)와 여러 동접(同接)들과 함께 성균관에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이소(二所)7)의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니 시험장은 협소한데 사자(士子)들이 너무 많아 세 곳으로 통설하기에 이르렀다. 노숙하며 밤을 새웠다. 食後與閔上舍及諸同接, 入成均館。 中火後, 因入二所場中, 則場中狹少, 士子甚多, 至以三所通設矣。 夜間經宿露處。 이소(二所) 문과 초시와 회시 때의 시험장의 하나로, 시험장을 각각 둘로 나누어 제1시험장은 일소(一所), 제2시험장은 이소(二所)라고 불렀다. 일소는 예조에, 이소는 성균관에 설치하였다. 《無名子集 文稿 册14 記丙戌別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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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일찍 출발하여 실음소(失音所)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직산(稷山, 천안 옛 지명) 삼거리에 이르러 길에서 장달소(張達紹)를 만났다. 그가 집에서 온 편지를 전했는데, 집안에 별 탈 없는 것이 다행스럽고, 집을 떠난 지 30일 만에 소식을 듣게 되니 몹시 기뻤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별하여 천안읍(天安邑) 어귀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김제역촌(金堤驛村)48)의 주막에 이르러 회덕(懷德)의 노차(路次)49)를 묻고, 이어 소로(小路)로 길을 잡아 고동령(高東嶺)을 넘어 전의(全義)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早發至失音所朝飯。 抵稷山三巨理, 路上逢張達紹。 乃給家信, 而家中別無故幸喜, 離家三十日, 始見消息忻喜。 暫話作別, 抵天安邑前中火。 到金堤驛村酒幕, 問懷德路次, 仍爲小路作行, 越高東嶺, 抵全義邑內留宿。 行九十里。 김제역촌(金堤驛村) 충청남도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 역말마을이다. 노차(路次) 길 가는 중 잠시 쉬기 위해 길가에 마련하는 임시 거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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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아침을 먹기 전에 박 진사(朴進士)가 반궁(泮宮)에서 찾아왔는데, 몹시 아팠던 곡절을 자세히 말해주었으니 그 위태로움이 심하였다. 다만 각각의 병으로 인사를 살피지 못하여 생사를 모르고 있다가 지금 얼굴을 마주하니 기쁘고 다행스러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朝前朴進士, 自泮宮來見, 而備說其大痛之由, 危凜甚矣。 但各病不省, 不知存沒矣, 今而相面, 喜幸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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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이종형님, 후장(厚長)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종각(鍾閣) 행랑(行廊)에 가서 술을 마시고 요기를 하였다. 나는 주동(注洞)으로 가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오는 길에 창동(倉洞)의 박 감사(朴監司) 집에 들러 그때 들어온 기별을 물어보고 왔다. 이종형님의 참방(參榜)11)은 축하할 만하였다. 與姨兄主及厚長諸人, 同往鍾閣行廊後, 飮酒療飢。 余則往注洞, 移時談話, 來路入倉洞 朴監司家, 問其時入來之奇而來。 姨兄主參榜, 可賀。 참방(參榜) 과거의 합격자 명단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과거 합격자의 명단을 적어 게시하는 것을 방목(榜目) 또는 방(榜)이라 하고 여기에 참여되는 것을 참방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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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주동(注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종현(鍾峴) 갑산(甲山)의 집에 들렀으나 주인은 보지 못하고, 이 도사(李都事)가 그의 집안 하인[家僮]을 거느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장흥동(長興洞)으로 들어가 이 충주(李忠州)를 만나고 왔다. 往注洞暫話。 來路入鍾峴 甲山家, 不見主人, 因見李都事率其家僮。 入長興洞見李忠州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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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창동(倉洞)에 가서 박 감사(朴監司)를 만나고, 이어 독송정(獨松亭)에 가서 문중 어른의 상(喪)을 조문하였다. 다시 주동(注洞)으로 돌아갔다가 마침 군회(君會)와 주인을 만나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이날 화옥(華玉)이 떠났다. 往倉洞見朴監司, 因往獨松亭, 弔門長之喪。 轉往注洞, 適逢君會與主人, 終日談話而來。 是日華玉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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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직산(稷山) 삼거리에서 아침을 먹고, 여산(礪山)의 삼치(三峙)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전주 삼례(參禮)의 대천(大川)에 이르러 묵었다. 110리를 갔다. 早發抵稷山三巨里朝飯, 抵礪山之三峙中火。 抵全州 參禮 大川留宿。 行百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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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일찍 출발하였다. 노자(路資)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부내(府內) 영주인(營主人) 집에 들러 변통할 요량으로 주인집에 들어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라서 곧바로 길을 나섰다. 신외(新隈)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 임실(任實)의 방동(方洞) 송연규(宋延奎) 집에 가서 묵었다. 80리를 갔다. 주인은 돈학공(遯壑公)50)의 자손이다. 早發。 以路資之不足, 入府內營主人家, 辨通意專, 入主人家, 則主人不在, 故卽爲發程抵新隈中火, 卽到任實 房洞 宋延奎家留宿。 行八十里。 主人則遯壑公子孫也。 돈학공(遯壑公) 송경원(宋慶元, 1419∼1510)으로,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돈학이다. 김종직·남효온 등과 교유하였다. 1455년 음보로 전라도사에 임명되었다. 1457년(세조3) 단종이 영월에 유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종형 송간(宋侃)과 함께 영월로 달려가 문밖에서 복명하고 돌아왔다. 단종이 사사되자 송간과 함께 계룡산으로 들어가 2년간 복상하였다. 그 뒤 출세를 단념하고 임실 백이산(伯夷山)에 은거하고,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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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계미) 十五日 癸未 흐리고 큰 비가 내려 계곡물이 불어났다. 陰大雨。 溪水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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