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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밥을 먹은 뒤 일행과 용동(龍洞)19)의 이 참봉 집으로 가서 《명현록(名賢錄)》 개간(開刊) 일을 보고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龍洞李參奉家, 見《名賢錄》開刊事而還。 용동(龍洞) 서울 노원구 하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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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吳載華。【在英】 去臘惠書。如得天外奇音。感慰何可勝喩。第積病在躬。尙未修謝。雖以吾宗之善恕。難免厚責。歲改春又晚。謹審體度萬護。庭下鴻福。仰溯不任。駿善冉冉下山之日也。何足遠道。所示瓊韻。情當奉和。而神思昏塞。無暇及此。今始強病拙構。半雜呻吟。不可以傳遠。亦不可以全闕。謹此仰呈。一覽付丙是仰。本是同根。各在三千里外。公爲七十一歲人。我爲八十歲人。此生此世。會合無期。臨楮不勝忡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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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憩掠庫【自五柳村十里】 想是高城外倉而蕭條如此穀簿能無鼠雀之耗也否如斗倉村屋半茅半木皮狂風太狼藉不妨低簷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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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瀑洞【自摩訶衍十里自眞珠潭爲五里自普德里窟亦可爲五里】 百花潭與先天潭合流爲八潭至此而與須彌洞七潭相會仍謂之萬瀑洞石上有楊蓬萊【士彦】筆蓬萊楓嶽元化洞天八字其下有三山局【三山李尙書初以蔭爲通川守長在此中畵棊局與客逍遙爲樂云】傍有一大巖立而虛中刻潭谷二字盖自五臺以後周流至金剛內外有可賞處雖一片石貴人名姓無不鐫刻而至於此極矣所謂山中多宰相石面半朝廷此之謂也千巖競秀萬瀑爭流儘覺孫興公之天台山金石一賦偸竊此地韻格洞之西有石峯尖削矗天名曰靑鶴臺◌椒泉翁詩曰捨輿借錫杖步步傍溪來始自八潭曲終成萬瀑開獅蹲危擎石鶴去獨留臺洞闢元和氣羣巒護列排◌又曰白石粼粼瑩若晶仙翁遺蹟在棊枰洞陰常有蛟龍蟄境僻無聞鳥雀聲自昔名山稱第一伊今宿債了平生百川萬壑奔流水輻湊喧豗日夜鳴喧豗萬折港西東界破羣峰眼欲空鍾磬亂敲兜率塔貝珠層掛水晶官包含始識名山大排鋪終看造物工演漾百花潭上韻十分飜覺動豪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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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밥을 먹은 뒤 하서와 야당(野塘)으로 와서 송필동(宋弼東) 씨를 만났다. 이에 점심을 먹고 동행하여 계동(桂洞)80)의 송화(宋燁)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뒤 그 마을 종인(宗人, 먼 일가)인 상향(象亨), 상풍(象豊), 상정(象貞), 상의(象義), 상태(象台)가 다 같이 찾아왔다. ○食後, 與夏瑞偕來野塘, 見宋弼東氏。 仍爲午飯, 而同行來桂洞宋燁家。 夕食後, 其村宗人象亨、象豊、象貞、象義、象台, 皆來見。 계동(桂洞) 전라북도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 계동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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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주인이 극구 만류하여 그대로 머물렀다. 낮에 김노가 다리 통증으로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니 몹시 걱정되었다. 거처 앞에는 시내가, 뒤에는 소나무가 있어 아주 고즈넉하였다. 절구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개울물 소리는 밤새도록 울리고(澗有通宵響)둥글고 깊다라니 진종일 그늘 드네(圓深盡日陰)거처하는 곳이 시내 저자 주변이건만(攸居城市邊)혹 속인이 찾아오는 건 싫어하네(倘嫌俗人尋) ○以主人之堅挽, 仍留。 午間, 金奴以脚病痛臥, 悶悶。 所居前溪後松甚幽寂。 吟一絶曰: "澗有通宵響, 圓深盡日陰。 攸居城市邊, 倘嫌俗人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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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征賦【幷小序】 上之三年冬十一月哉生明己酉余以南至差員奉陪箋文自原州將向京師逖違之餘獲近象魏稍可慰永懷之心而代人之勞非其職也雪風如刀石路如戟役役驅馳已極關念而二子驥熊遠自南鄕來省阿熊方患癘苦吟旅舍相分尤不可堪愀然作西征一賦其詞曰烏鼠之冬律調金鍾丹邱老丞趍走爲恭承刺使命手擎錦封義重往役路指西雍何北風之瑟颯兮釀雪意而方濃來鶴橋之疊氷兮挾雉嶽之層峰黏泥錯以凍石涉畏途兮重復重寂寥兮澗邊梅慘憺兮嶺上松嘉我膂力之方剛兮未敢言夫衰慵冠不整兮短髮薄寒雪兮衝衝羌慘慘而畏咎去靡歇兮橫復縱兒吟病而遠相分兮實余憂之忡忡繄未能乎言私兮蘊如結於心胸嗟不均而獨賢兮受㶊揮如奴傭懼下位之不獲兮迺俛首而聽從客有解嘲者曰丞乎丞乎何彼穠矣儀容皂隷如貙白騧如龍道路之辟除郡縣之支供前唱後和附若蚷蛩奔走承奉夕飱朝饔揚揚織路軒駟郁穠得無爲泰乎顧其位則附庸也君其實乎鈍人一草萊之微蹤昔偃息乎莘上兮曰老圃與老農托盤谷之松桂兮挹鏡湖之芙蓉恒矻矻以處窮兮混臧獲之磨舂無棄物於化囿兮幸聖明之遭逢文莫贊於黼黻兮才未補於笙鏞行有馬而食有肉兮卸弊屩與枯筇况天門之咫尺踵羣仙而朝宗翼招搖以上征兮聽星珮之瑽瑢緣何厚於出入兮瑣則靑而階彤天庶幾乎玉汝只可俟乎陶鎔丞乃啞然一笑兮泛觥船而倒毫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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雉嶽辭【幷小序癸丑】 癸丑春正月元朝之翌日丁未余以享官登雉嶽祠峽路碻确凍雪遍山衝寒而進經宿而返王事也未敢言勞而此行又替人之勞終不無獨賢之歎馬上信口述行其辭曰客胡爲乎山之幽松鬱翠兮枝相樛老督郵兮益壯肇發軔於丹邱今夕兮何夕月之元旁死魄越翼日日吉兮辰良駕白駒之駜駜問僕夫以前路路梗澀兮山崔嵬初疑龍門之賞雪兮更似灞橋之尋梅梅消息兮寂(寥但有雪而堆堆迫黃昏兮衝寒阿導前而僕夫催王事兮靡敢懈恐或被於訶譴何谷風之剪剪射靑袍兮如箭嗟砯崖之滑削兮穿一逕而如線寥寥吠兮一犬見兩三兮村舍遵舊例於候人兮率輿徒而未迓繽舍勞而就逸兮夢非眞而非假魂煢煢與神交兮欻桂旗而上下靈偃蹇兮在坐謇申申其詒予覯斯世之躁競兮爾多讀乎古書恒自稱曰達觀兮胡若是其愀如盈虛消食陰陽之理屈伸往來鬼神攸使吉凶榮辱惟人所召羌福善而禍淫兮憬天鑑之炯照懿達人之知命兮審厥居而安安尼無援兮下位展不卑兮小官况聖明之在上臨朝歎於才難苟有才則可庸兮關不隔於天外殫吾誠兮供職祗可俟乎嘉會精瓊爢兮作餱挹桂漿兮爲醑華釆夜兮若英若有人兮容與神洋洋而旣醉兮詔錫爾以純嘏主聖世泰兮賢不遺野鴻漸九逵兮有進無退豊餼饗以萬鍾兮介眉壽而耆艾爛枝葉之峻茂兮溢芳名於明時忽寤寐以有得兮受神賚而爲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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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아침 일행과 동구안 약방으로 가서 구경하였는데, 소전(小殿, 세자(世子))이 경우궁(慶祐宮)28)의 하향 대제(夏享大祭)에 거동한 것이었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주인(京主人)29) 집에 들러 주인을 만나서 흥양(興陽, 고흥)에 대해 상세히 듣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쉬었다가 용동으로 갔다. 저물녘에 돌아오니 정동의 이 석사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早朝, 與同行往洞口內藥房觀光, 而小殿以慶祐宮夏享大祭擧動也。 觀光後, 來路入京主人家, 見主人, 詳聞興陽, 而還主人家。 少憩後, 往龍洞。 乘暮還, 則貞洞李碩士來訪云矣。 경우궁(慶祐宮)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있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1770~1822)의 사당이다. 1824년에 창건하였다. 경주인(京主人) 경저리(京邸吏)이다. 벼슬아치나 서민으로 서울에 머물러 지방 관청의 사무를 연락하고 대행하던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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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침에 나와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애초 일찌감치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궂은 날씨 탓에 그대로 아침을 먹었다. 종일 비가 그치지 않았다. 오랜 가뭄 끝에 이렇게 단비가 내리니 매우 기쁘고 다행이다. ○朝出, 來主人家。 初以早發爲定矣, 以雨戱之致, 仍朝飯。 終日雨不止。 久旱之餘, 得此好雨, 忻幸忻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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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새벽에 출발하여 진위(振威)108)읍 뒤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대황교(大皇橋)109)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화성(華城)에 미치기 전에 김노가 병이 났다. 간신히 북문 밖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曉發, 抵振威邑後朝飯。 抵大皇橋午飯。 未及華城, 金奴發病。 艱抵北門外留宿。 行七十里。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시이다. 대황교(大皇橋)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동에 있는 삼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하던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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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이른 새벽에 출발하였지만, 비 온 뒤라 길이 질척거려 가는 길이 몹시 힘겨웠다. 사근천(肆覲川)4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지지현(遲遲峴)44)을 넘어 화성 북문 밖에 이르러 술을 사서 마셨다. 북문으로 들어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동장대(東將臺), 소라각(小羅閣), 창용문(蒼龍門)을 구경하였다. 큰길에서 남문 밖으로 나와 요기를 하였다. 오매(烏梅)45) 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曉頭發程, 而雨餘路泥, 行路甚艱。 抵肆覲川朝飯。 越遲遲峴, 抵華城北門外, 沽酒以飮。 入北門, 尋玩訪花隨柳亭、東將臺、小羅閣、蒼龍門。 自大道出南門外療飢。 抵烏梅留宿。 行八十里。 사근천(肆覲川) 경기도 안양시이다. 지지현(遲遲峴) '지지대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지지현(遲遲峴)이라고 표기하는 곳이지만 본래는 '사근현(沙斤峴)' , '미륵현(彌勒峴)' 등으로 불렸다. 오매(烏梅) 경기도 수원시 오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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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고을 앞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흥양의 지자(持者, 문서를 전하는 사람) 신우당(申于堂)이라는 녀석을 만나, 그편에 아들 편지를 받았다.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받은 편지였다. 집안에 별다른 우환이 없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경기와 충청, 두 도는 가뭄이 극심해 보리농사를 흉작으로 치부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 데다 14일 내린 비는 겨우 쟁기질이나 할 정도의 비에 불과하여 모내기할 길이 만무하다고 하였다. 남쪽의 소식은 그간에 몇 차례 비가 내려 보리농사와 모내기는 윗지방보다는 그나마 넉넉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소사(素沙)46)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직산(稷山) 삼거리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早朝發程, 抵振威邑前酒店朝飯。 逢興陽持者申亍堂上京之漢, 其便得見家兒書。 離家後初見書也。 家中別無憂故云, 幸幸。 京畿、忠淸兩道, 則旱乾太甚, 麥凶辦之已久。 而雖十四日雨, 不過犁雨, 萬無移秧之道云。 南中消息, 則間有數次雨, 麥事與移種, 稍贍於上道云, 可幸可幸。 抵素沙療飢。 抵稷山三巨里留宿。 行八十里。 소사(素沙)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이다. 삼남대로는 소사동 북쪽에서 당산을 넘어 소사원을 지나 소사교를 건넌 뒤 소사벌을 지나 곧장 남쪽으로 내려갔다. 소사원은 삼남대로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원으로 충청도에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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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견여(肩輿)를 타고 안심사(安心寺)75)에 올랐다. 안심사는 보현사(普賢寺)보다 오래전에 지어진 절이다. 그 터는 비록 석봉에 있으나 사면의 토맥(土脈)이 매우 편안하였다. 절 뒤에는 무수한 부도와 석비(石碑)가 있는데, 대개 이 절을 창건한 이래로 명사(名師)들이 있으면 반드시 절에 부도(浮屠)를 세웠기 때문이다. 마침내 상원암(上院庵)76)으로 올라갔다. 나머지는 향산일기(香山日記)에 들어 있다. 早食後, 肩輿上安心寺。 比是普賢寺, 舊創之寺, 而其基址雖在石峯之中, 而四面土脈, 極爲安穩矣。 寺後立無數浮屠, 無數石碑, 盖此寺創始後有名師, 則必建浮屠於此寺故也。 遂上上院, 餘在香山日記中。 안심사(安心寺) 향나무와 사철나무[萬年枝, 冬靑]가 많은 묘향산에 처음으로 세워진 사찰이다. 사명은 "중국 선종사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가 2조 혜가대사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라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특히 고려 말기에 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대사의 사리가 봉안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원암(上院庵) 향산 제1경이자 최고의 암자이다. 상원암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유작이다. 상원암 본전 툇마루에서 묘향산의 인호대 등을 조망하는 것을 으뜸으로 꼽는다. 본전 상량문에 의하면, 고려 말에 창건된 상원암은 1580년에 중창한 것을 1794년에 다시 중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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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주동(鑄洞) 각처에 갔다가 예조(禮曹)의 직방(直房)16)으로 가서 안리(安吏)를 만났다. 다시 경모궁(景慕宮)으로 가서 박 상사(朴上舍)와 고향 사람을 만나고 왔다. 往鑄洞各處, 因向禮曹直房 見安吏。 轉向景慕宮, 見朴上舍及鄕人而來。 직방(直房) 조방(朝房)이라고도 하는데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朝會) 때를 기다리느라고 모여 있던 방이다. 대궐문 밖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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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아침을 먹기 전에 박 상사(朴上舍) 형제와 소년(少年) 둘이 와서 보고는, "돌아가신 상사(上舍) 형님의 효행(孝行)으로 인해 호백(湖伯,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가 도착하였다."라고 하기에 함께 가서 안리(安吏)와 예판(禮判)을 만나고 왔다. 저녁에 형백(馨伯)이 □덕(□德)에서 비로소 들어와 만나고 갔다. 食前, 朴上舍兄弟及兩少年來見, 因云"故上舍兄主, 以孝行, 湖伯狀啓來到。"云, 故同往見安吏及禮判而來。 夕間馨伯, 自□德始爲入來, 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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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三十六日 동틀 무렵에 출발하여 어렵사리 앞강을 건너 천안읍점(天安邑店)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아침을 먹었다. 금전(金田)에 이르니 잠깐 비가 내렸다가 이내 그쳤다. 원터[院基]에 이르러 다시 말에게 꼴을 먹였다. 가랑비가 그치지 않는데다가, 동풍까지 세게 불어 걸을 수가 없으므로 인주원(仁周院)에 머물렀다. 이날 밤에 비가 내렸는데 쟁기질하기에 알맞을 정도로53) 흡족하게 내렸다. 平明發行, 艱渡前江, 至天安邑店, 秣馬朝飯。 至金田, 乍雨乍歇至院基, 更爲秣馬。 細雨不止, 且東風大作, 不得行步, 故留仁周院。 是夜雨作, 洽滿一犁。 쟁기질에 알맞을 정도로 원문의 '일려(一犁)'는 논밭을 갈기에 알맞도록 내린 봄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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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빗줄기가 그치지 않아 일찍 출발하지 못하다가 해가 뜰 때 비로소 길을 나섰다. 금강(錦江)을 건너 효포(孝浦)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였다. 채찍을 재촉하여 사교(沙橋)에 이르러 묵었다. 以雨勢不止, 不得早發, 日出時始登程。 渡錦江, 至孝浦秣馬。 促鞭至沙橋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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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문적의 수정(修正) 때문에 주인집에 남아있었다. 오후에 정동(貞洞)21)에 갔는데 이 석사가 없었다. 다만 그의 아우 이훈(李壎)하고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석사 이혜길(李惠吉)이 혼자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혜길이 집으로 가자고 청하기에 그와 함께 가서 그대로 유숙하였다. ○以文蹟之修正留主人家。 午後往貞洞, 李碩士不在。 只與其弟壎, 暫話而來, 則李碩士惠吉專訪來待矣。 夕飯後, 惠吉請往其家, 故與之偕往, 仍留。 정동(貞洞)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이 현재 정동 4번지에 있던 데서 '정릉동'이라 하였던 것을 줄여 정동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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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밥은 안채에서 음식을 내와서 몹시 고마웠다. 오후에 일행과 영추문(迎秋門)22) 안으로 가서 궐문 밖을 지나, 그길로 유동(油洞)23)으로 갔다. 도중에 일행을 남겨두고, 나는 조문하기 위해 아전 안인성의 집을 찾아갔는데 아전 안인성의 아들이 출타하였으므로 만나지 못하였다. 일행이 머무는 곳으로 돌아와서, 함께 종각 근처로 왔다. 마침 공서을 만나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朝飯自內間出饋, 感荷感荷。 午後與同行往秋門內, 過闕門外, 仍向油洞。 留同行於中路, 余則吊問次, 尋安吏寅成家, 則安吏之子出他, 故不見。 而還同行所留處, 與之偕來鍾閣邊。 適逢公瑞, 與之暫話而來。 영추문(迎秋門) 경복궁의 서문(西門)이며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유동(油洞)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1가에 있던 마을로, 기름을 파는 기름전이 있었으므로 기름전골이라 하고,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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