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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밤에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아서 늦게야 비를 맞으며 길을 떠났다. 우연히 세마(貰馬)를 얻어 노구암(老狗巖)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아침을 먹었다. 굴암(窟巖)에 이르러 화옥(華玉)을 막중(幕中)에 기다리게 하고 읍내로 들어갔다. 곧바로 주관(主官)을 만나고 나서 화옥을 오게 하여 함께 머물렀다. 夜雨不止, 晩後冒雨登程。 偶得貰馬, 至老狗巖, 秣馬朝飯。 至窟巖, 留華玉於幕中, 往邑內, 卽見主官, 因要華玉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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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서둘러 밥을 먹고 길에 올랐다. 야당(野塘)에 이르러 우연히 김득성(金得成)의 아우를 만나 비로소 흥양(興陽)의 소식을 들었다. 그 말을 타고 오수(獒樹)에 이르러 곧장 증산(甑山)에 와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비가 계속 쏟아지니 한참을 머물며 쉰 뒤에 비를 맞으며 길을 떠났다. 원산(圓山) 방 서방(房書房) 집에 이르러 묵었다. 의복이 비에 다 젖었다. 促飯登程。 至野塘, 偶逢金得成之弟, 始聞興陽消息。 大槩騎其馬, 至獒樹, 直來甑山, 秣馬療飢。 雨作連注, 移時留歇後, 冒雨作行, 至圓山 房書房家留宿。 衣服眞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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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일찍 출발하여 신탄(新灘)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오촌(鰲村)8)에 도착하였다. 40리를 갔다.행랑에서 잠시 쉬면서 통자(通刺, 면회를 청하던 일)한 다음, 곧바로 들어가 장석(丈席)을 뵙고 올라온 연유를 말씀드렸다. 행랑으로 물러나와 용담(龍潭) 정재팔(丁載八)·황간(黃澗) 신협진(愼協眞)과 함께 묵었다. 早發至新灘市邊中火, 得達鰲村。 行四十里。小憩廊底通刺, 卽爲入謁丈席, 仍敍上來之由。 退來廊底, 與龍潭 丁載八、黃澗 愼協眞同留宿。 오촌(鰲村)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마을 앞에 있는 바위가 자라 모양이라 하여 자라울이라 부르다가 일제 강점기에 오촌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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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장석(丈席)께서 비록 허락하지 않았지만 친히 행록(行錄)을 상고하여 자세하게 논평하였는데, 편차(篇次)가 뒤죽박죽이고 지운 글자가 꽤 있어서 긴요하지 않은 뜻이 있는 듯하였다. 이에 교정(校正)을 청했더니 《돈학집(遯壑集)》9)을 내보이시며, "이것은 바로 충강공(忠剛公, 송간(宋侃))의 왕복 서간인데, 비록 몇 편에 불과하나 오히려 행록 한 권보다 낫네."라고 말씀하셨다. 대략 산정(刪正)10)은 하였으나 아직 허락을 받지 못하였으니 걱정스럽다. 丈席雖爲不許, 親考行錄, 仔細評論, 以篇次之渾雜, 文字之頗鎖, 似有不緊之意。 故請以校正, 則出示《遯壑集》曰: "此是忠剛公往復書, 則雖數篇猶勝於行錄一卷云云。" 而略爲正刪, 然尙未蒙許, 悶悶。 둔학집(遯壑集) 조선 전기의 문신 송경원(宋慶元, 1419~1510)의 시문집으로 상·하 2권 1책이다. 1826년(순조26)에 초간본이 나왔고, 1921년에 중간본이 나왔다. 중간본의 책머리에 1920년에 쓴 김영한의 중간서문과 1826년에 쓴 송치규의 〈돈학실적서(遯壑實蹟序)〉가 있고, 책 끝에 윤태일의 발문과 송증헌의 중간발문이 있다. 상편에 시·서·논·기 등과 하편에 전·가장·행장·묘지 등이 실려 있다. 산정(刪正) 글의 쓸데없는 자구를 없애고 다듬어서 글을 잘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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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사환이 끝내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으니 걱정스럽다. 아침을 먹은 뒤에 만복(萬卜)이란 자를 얻어 짐을 지게하고 길을 떠났다. 사촌(社村)에 이르러 오위장(五衛將)을 조문한 뒤에 이 석사(李碩士)와 길을 떠나 벌교(筏橋)에서 점심을 먹었다. 서령(西嶺)을 넘어 기동(基洞)의 좌수(座首) 이형립(李亨立)의 집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使喚終未完定, 可悶矣。 食後得萬卜者, 負卜發程。 抵社村吊五衛將後, 與李碩士發程, 抵筏橋中火。 越西嶺, 抵基洞 李座首 亨立家留宿。 行三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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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이 석사(李碩士)와 남문 밖의 주점(酒店)에 가서 관아의 한 사람을 기다렸다. 끝내 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영문(營門) 밖에 가서 마두 영리(馬頭營吏)를 불러 면회를 요청하도록 분부하였더니, "매우 어렵습니다."라고 답하였다. 두서너 번 부탁의 말을 하였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인집으로 돌아왔다.저녁을 먹은 뒤에 임실(任實)의 하서(夏瑞)가 들어왔다. 올라올 때 서로 약속하였는데, 기일에 맞추어 도착하였으니 다행이었다. 그대로 함께 머물렀다. ○食後與李碩士, 往南門外酒店, 待衙家一人矣。 終不來故, 余則往營門外, 招馬頭 營吏, 以通刺之意分付, 則答曰: "極難"云。 數三言托, 而終無聽從, 故不得已還來主人家。 夕飯後, 任實 夏瑞入來, 上來時相約矣, 及期來到, 可幸。 仍與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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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하서가 노복과 말을 거느리고 김제(金堤)5)에 갔다. 오후에 비 때문에 막혀서 영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주인집에 머물렀다. ○夏瑞仍率奴馬往金堤。 午後爲雨所阻, 不得入去營門, 仍留主人家。 김제(金堤) 저본의 '食堤'은 문맥상 지명으로, '金堤'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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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八月 봄에 상경하였을 때 재동(齋洞)의 육충사(六忠祠)를 예조에 재록(載錄)하는 일로 예조에 소장을 올렸으나 육충사(六忠祠)가 아직도 사액(賜額)되지 않은 것이 은전(恩典)의 흠이었다.《사원록(祠院錄)》에 삼가 마땅히 써서 들여야 하니 이전에 받은 제사(題辭)를 재록(載錄)하기위해 장방(長房)59)으로 들어갔는데, 서리 배광옥(裵光玉)이 말하기를, "《사원록》 중 전라도권이 규장각(奎章閣)에 들어있으니 지금 바로 재록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올 시기를 묻자 "조만간에는 기약할 수 없다"라고 하므로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왔었다.이번 가을 문중에서 또 나더러 가서 만나라고 했기 때문에 8월 그믐날에 길을 나섰다. 가아(家兒, 아들)를 데리고 천노(千奴)에게 짐을 지게 하여 과역(過驛) 시장 근처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노송정(老松亭)에 이르자, 천노(千奴)가 다리 병이 난 탓에 도로 들여보내고 우연히 사교(四橋)의 상덕(尙德)을 얻어 짐을 지게 했다. 탄포(炭浦)에 이르자 비가 내려 가아(家兒)는 마륜(馬輪)으로 가고, 나는 곧 비를 무릅쓰고 사교(四橋)의 가교(柯橋) 댁에 이르러 묵었다. 春間上京時, 以齋洞 六忠祠 春曹載錄事, 呈于禮曹, 六忠祠之尙未宣額欠典也。 《祠院錄》, 謹當書入, 向事之題, 載錄次入長房, 則書吏 裵光玉曰: "《祠院錄》 全羅道卷, 入奎章閣, 則今方載錄, 無可奈何"云, 故問于出來之, "早晩無期"云, 故不得親見而來矣。 今秋門中, 又以余往見, 故八月晦日發程, 而率家兒, 使千奴負, 至過驛市邊療飢。 抵老松亭, 千奴以脚病之致, 還爲入送, 偶得四橋 尙德負卜, 至炭浦雨作, 家兒往馬輪, 余卽冒雨, 抵四橋 柯橋宅留宿。 장방(長房) 조선시대 각 관청에서 서리가 쓰던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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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새벽에 출발하여 순자강(淳子江)54)을 건너고 관정(關亭)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남원에 있는 증산(甑山) 주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침 흥양목(興陽牧)의 관하인(官下人, 관가의 하인)을 만났는데, 내려가는 길이 너무 바빠 서신을 쓸 수 없어서 구두로 집에 소식을 전했다. 저녁에 임실(任實) 야당(野塘)의 송계천(宋啓天) 집에 간 것은 종인(宗人)과 동행하고 싶어서였는데, 함께 갈 수 없다고 하니 한탄스럽다. 그대로 묵었다. 동행했던 방업(房業)은 곧장 야당(野塘) 주점으로 향했다. 80리를 갔다. 曉發越淳子江, 抵關亭朝飯。 抵南原 甑山酒店中火, 適逢興陽牧官下人, 下去偏忙未修書, 只傳口信於家中。 暮抵任實 野塘 宋啓天家者, 欲與宗人同行矣。 不得同行云, 可歎。 仍爲留宿。 同行房業, 則直向野塘酒店。 行八十里。 순자강(淳子江) 전남 곡성에 있는 섬진강의 상류로, 섬진강 중에서 대강면 방동리 앞에서부터 곡성군 장성리 뒤 제방까지 즉, 요천수가 흐르는 물과 합류된 지점까지를 순자강이라 한다. 대부분 순자강(鶉子江), 순강(鶉江)이라고 표기하는데, 저자는 '蓴子江', '淳子江'으로 기록하였으니, 순자강(鶉子江)의 오기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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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오원(獒院)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말편자를 박았다. 우연히 망동(望洞)의 흥수(興水)를 만나 집안의 소식을 상세히 물은 뒤에 오수(獒樹)에서 머물렀다. 至獒院, 秣馬揷鉄。 偶逢望洞 興水, 詳問家中消息後, 至獒樹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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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꼭두새벽에 출발하여 둔덕(屯德) 권 부자(權富者) 집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사곡(蛇谷)에 이르자 비가 내렸다.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주포(周浦)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비가 그치자 채찍을 재촉하여 괴치(怪峙)에 이르렀다.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비가 다시 내리니 길을 재촉하여 불우치(不憂峙)에 이르러 묵었다. 曉頭發行, 至屯德 權富者家朝飯。 至蛇谷雨已作, 不得已冒雨, 至周浦中火。 雨止促鞭, 至怪峙。 日已夕而雨更作, 促行至不憂峙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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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석곡(石谷)에 이르러 이종형님과 헤어지고, 나는 귀정(歸亭)에 들어가 시를 읊고 아침을 먹었다. 이종형님은 궁각(弓角)으로 갔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했다. 무동정(茂東亭)에서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낙승(樂乘)의 상중(喪中)인 박씨 집에 이르니 날은 이미 저물고 주인 내외는 모두 없었다. 그대로 그 집에 머물렀다. 至石谷, 與姨兄主分路, 余則入咏歸亭朝飯。 姨兄主往弓角, 因不相逢。 至茂東亭中火。 至樂乘 朴哀家, 日已昏暮, 而主人外內皆空, 因留其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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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새벽부터 아침까지 내리는 비 때문에 일찍 출발하지 못하였다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추동(楸洞) 주점 어귀에서 올라가는 한 행인을 만났는데, 어디로 가는지 물었더니, "전주(全州)로 갑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에 동행하여 무동정(舞童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낙수(洛水)에 이르러 묵었다. 동행한 사람은 장흥(長興) 벽사(碧沙)에 살고, 성명(姓名)은 김방업(金房業)인데, 용모가 단아하고 말은 신중하였으니 여행 중 고초를 겪는 상황에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50리를 갔다. 自曉至朝, 爲雨所戱, 不得早發, 仍朝飯發程。 至楸洞酒店前, 逢一行人上去者, 問向何處, 則答曰: "向全州"云, 故仍爲同行, 抵舞童亭中火。 暮抵洛水留宿。 同行之人, 在於長興 碧沙, 而姓名金房業也。 容貌端雅, 言語愼重, 足慰行中苦楚之狀矣。 行五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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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부터 눈비가 오더니 정오까지 그치지 않았다. 달리 우구(雨具)가 없으니 묘정(墓庭)의 제례를 행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오후에 부득이 산지기 집을 청소하였다. 저물녘 예를 행할 때에 나에게 축(祝)을 하라고 하여서 외람되이 그 예를 담당하였는데, 이는 실로 어찌할 수 없는 임시방편에서 나온 것이지만 오히려 행해지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온종일 비가 내리고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自曉雨雪, 至午不止。 別無雨具, 墓庭祀禮, 極爲難行, 故午後不得已灑掃山直家。 至暮時, 仍爲行禮時, 以余爲祝, 故冒當其禮, 而寔出於不得之權道, 猶愈於不行耶。 終日其雨, 達夜不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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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에 가서 상원(尙源)을 만나 내일 출발하여 그의 집에서 유숙할 것이라는 생각을 자세히 전달하고 왔다. 저녁 무렵에 반촌(泮村)에서 사람을 보내 내일 직접 오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다시 머물렀는데, 내간(內間)에서 술과 안주를 성대하게 준비하여 전송해 주었다. 경욱(景旭) 또한 사적으로 술과 안주를 마련해 주었으므로 밤새도록 먹고 마셨다. 早飯後, 往靑坡見尙源, 備傳明日發行, 留宿渠家之意而來。 夕間自泮中送人, 明日直來爲言故更留, 而自內間盛備酒肴以餞。 景旭亦私備酒肴, 達夜飮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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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주인 집 노새를 타고 청파(靑坡)로 오니 화옥(華玉)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즉시 길에 올라 승방(僧房)에 도착하여 요기하고 말에게 꼴을 먹인 뒤에 노새와 화옥을 돌려보내고 도보로 군포천(軍布川)에 이르러 묵었다. 早飯後, 騎主家騾子來靑坡, 則華玉已來待, 故卽爲登程, 到僧房, 療飢秣馬後, 還送騾子與華玉, 徒步至軍布川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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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二十四日 일찍 출발하여 묘치(峙)5)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주포(周浦)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남원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至峙朝飯, 抵周浦幕中火。 抵南原邑內留宿。 行七十里。 묘치(猫峙) 전라남도 곡성군 삼기면과 곡성읍 경계에 있는 고개로 '괘재(고양이재)'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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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선자지(扇子紙) 2속(束), 죽청지(竹淸紙) 2속, 황필(黃筆) 1단(單), 장지(壯紙) 1속을 샀다. 길을 나서 오수(獒樹)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야당(野塘)에 이르러 묵었다. 50리를 갔다. 임실(任實) 땅이다. 朝飯後, 貿扇子紙二束, 竹淸紙二束, 黃筆一單, 壯紙一束。 發程至獒樹中火, 抵野塘留宿。 行五十里。 任實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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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아침 전에 비가 바로 그쳤다. 아침을 먹은 뒤에 홍주(洪州)의 종인(宗人)인 해주(海柱), 하주(廈柱)와 산소에 올라가 성묘한 뒤에 산지기 집으로 내려와 음복하는 자리에 참석하고, 전주(全州)의 고용인을 내려 보냈다. 제종들과 산지기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노복의 발병이 어떠한지 알 수가 없어서 마음이 매우 답답하였다. 저녁때에 김노(金奴)가 발을 싸매고 들어왔기에 다급히 발병에 대해 물으니 조금 차도가 있어 부르튼 발로 올라왔다고 하였다. 매우 염려스럽던 중에 종과 주인이 만났으니, 그 사이의 기쁨을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朝前雨乃止。 食後與洪州宗人海柱 厦柱, 上山所省拜後, 下來山直家, 參飮福班, 而下送全州雇人。 與諸宗留山直家, 未知奴者之足疾如何, 故心甚悶悶矣。 夕時金奴裹足入來, 故急問足疾, 則小有差勢, 繭足上來云。 深慮之中, 奴主相面, 其間忻喜, 不可容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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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대곡(大谷) 형님, 동재(洞哉)와 함께 남계(南溪) 정내성(丁乃成)을 찾아갔으나 내성은 서재(書齋)에 갔기에 잠시 정사문(丁思文) 씨를 만나 보았다. 서재(書齋)에 이르러 신 승지(愼承旨)의 서간(書簡)을 내성에게 전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물녘에 재동(齋洞)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은 뒤에 호치(虎峙)에 가서 대옥(大玉) 부모의 병환을 묻고, 그대로 머물렀다. 食後與大谷兄主及洞哉, 訪南溪 丁乃成, 則乃成去書齋, 故暫見丁思文氏。 抵書齋, 傳愼承旨書簡於乃成, 移時敍話, 乘暮入齋洞。 夕飯後往虎峙, 問大玉親患, 仍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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