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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파루(破漏)8)를 칠 때에 길을 나서 삼례(參禮)에 이르니 동쪽이 비로소 밝아 왔다. 능측(陵側)9)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은진(恩津)10)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破漏時登程, 至參禮, 東方始明。 至陵側五十里秣馬。 至恩津留宿。 是日行百里。 파루(破漏) 오경 삼점(五更三點)에 종각의 종을 33번 치던 일을 말한다. 이 쇠북을 치고 나면 도성(都城) 안의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능측(陵側) 삼례와 여산의 중간지점인 것으로 보아 위에서 말한 능은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시대 무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으로 보인다. 이 능은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며, 백제 무왕(武王)과 선화비(善花妃)의 능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은진(恩津)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으로, 은진이라는 지명은 덕은(德恩)과 시진(市津)의 두 현이 합쳐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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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卄六日 새벽에 일어나 말에게 꼴을 먹였으나 말이 먹지 않아 일찍 출발하지 못하고, 아침을 먹은 뒤에 여정을 시작하여 원천(源川)1)에 이르렀다. 화옥(華玉)과 헤어질 때 나는 원천(源川)으로 향하고, 화옥(華玉)은 수종(水宗)으로 향하여 내일 오수(獒樹)에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천천히 걸어 주포(周浦)의 여막(旅幕)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는데 전혀 먹지 않으니 괴이하고 걱정스럽다. 즉시 길을 나서 10여 리를 가다가 우연히 매형 제언씨(濟彦氏)와 노우(盧友, 노씨 성의 벗)를 만나 도중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내려와 고룡서원(古龍書院)2)에 머물렀다. 曉起秣馬, 則鬣者不食, 故不得早發, 因爲朝飯後啓行, 至源川。 與華玉分路, 余向源川, 華玉向水宗, 約以明日會于獒樹。 緩行至周浦旅幕, 秣馬則全不食, 可怪可慮。 卽爲登程行十餘里, 偶逢妹兄濟彦氏及盧友, 暫話路次, 同爲下來, 留古龍書院。 원천(源川) 원문은 '□川'인데, 결락된 1자는 여정의 동선으로 보았을 때 다음 도착지인 '원천(源川)'으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고룡서원(古龍書院)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창주서원(滄洲書院)'을 말한다. 옥계(玉溪) 노진(盧禛, 1518~157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는데, 정유재란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사우(祠宇)만 보존되어오다가 1600(선조33)년에 '창주(滄洲)'라 사액되어 '창주서원'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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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卄七日 풍설(風雪)이 매우 심했다. 말이 먹으려 들지 않기에 걸어서 오수(獒樹)에 이르렀다. 화옥(華玉)이 오지 않았는데, 행인(行人)들의 말을 전해 들으니 전석치(磚石峙)에서 머물며 기다린다고 하여서 인편을 통해 기별을 부치고 그대로 오수(獒樹)에 머물렀다. 風雪極惡。 以馬之不食, 徒步至獒樹, 則華玉不來, 而傳聞行人之言, 則留待於磚石峙云, 故因便付奇, 因留獒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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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을 먹은 뒤에 아현(阿峴)에 가서 민 낭청(閔廊廳)을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다시 근동(芹洞)으로 와서 건(健)·순(順) 형제와 한동(翰洞)으로 가서 종일토록 글을 논하고 왔다. 食後往阿峴, 訪閔廊廳不遇。 還來芹洞, 與健、順兄弟往翰洞, 終日論文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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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비가 내렸다. 오후에 비가 그치자 어깨의 통증 때문에 한동(翰洞)에 가서 이 흥양(李興陽)에게 침을 맞고 왔다. 길을 따라 걸어둔 관등(觀燈)49)이 가히 장관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주인령(主人令)과 함께 동산(東山)에 올라가 관등을 구경하고, 또 남평(南平)과 노상(路上)으로 가서 관등을 보고 돌아왔는데 밤이 이미 깊었다. 이에 잠자리에 들었다. 雨。 午後雨歇, 往翰洞, 以肩臂之痛, 受針李興陽而來。 沿路觀燈, 可謂壯觀, 夕飯與主人令, 上東山觀燈, 又與南平往路上, 觀燈而歸, 夜已深矣。 因爲就睡。 관등(觀燈) 음력 4월 초 8일, 즉 석존(釋尊)의 탄일(誕日)을 기념하는 일로서 집집마다 등(燈)을 다는 등의 행사를 말하고, 법사(法事)는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공양(供養) 등의 행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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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어제부터 마음에 번민스러운 증세가 있어서 이른 아침에 팔선(八仙)을 김 주부(金主簿) 집에 보냈더니, 답하기를, "간병(看病)하기 위해 나갔다가 3일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라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왔으니 한탄스럽다. 우선 소생(蘇生)과 강생(姜生) 두 사람이 돌아가겠다고 고하였기 때문에 가서(家書)를 부쳐 보냈다. 自昨日中焦似有煩悶之症, 故早朝送八仙於金主簿家, 則答云 "看病次出去, 已三日 不來云," 故不得已空還, 可歎。 姑蘇、姜兩生告歸, 故付家書以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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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주동(注洞)에 가서 참판 조윤형(曺允亨)2)에게 재동서원(齋洞書院)3)의 편액을 받아 왔다. 往注洞, 受來齋洞院額於曺參判允亨。 조윤형(曺允亨) 1725~1799.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치행(穉行), 호는 송하옹(松下翁)이다. 그림과 글씨에 능하였는데, 풀·대나무 등의 묵화를 잘 그렸다. 글씨는 초서·예서를 잘 써서 일찍이 서사관(書寫官)을 역임하였으며, 위로는 대신들로부터 아래로 조례(皁隷)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그의 글을 얻으려 하였다. 재동서원(齋洞書院) 여산 송씨 충강공 송간(宋侃)을 주벽으로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 송순례(宋純禮), 송희립(宋希立), 송건(宋建)과 김시습(金時習) 등 15위를 향사하는 곳이다. 1785년(정조9) 최초 건립 당시 여산 송씨 송간(宋侃), 송대립(宋大立), 송심(宋諶)과 고흥 유씨 유탁(柳濯), 영광 정씨 정연희 등을 봉안하기 위해 두원면 운곡리에 운곡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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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27일 二十三日四日五日六日七日 그믐날까지 연일 혹 주동(注洞)으로 가고, 혹 청파(靑坡)에 가서 보책(譜冊)을 추심(推尋)하여 부쳐 보낼 계획을 세웠는데, 장황(粧䌙)4)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민스럽다. 至晦日連日, 或往注洞, 或往靑坡, 以爲推尋譜冊付送之計, 而粧䌙未易, 悶悶。 장황(粧䌙) 장황(裝潢)이라고도 하며, 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이나 화첩(畫帖), 족자 따위를 만드는 것, 혹은 만든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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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온종일 비가 쏟아졌다. 아침을 먹은 뒤 느즈막에 잠깐 비가 갰으므로 즉시 비를 무릅쓰고 길에 올랐다. 오리치(五里峙)에 이르자 비가 크게 내려 의복이 모두 젖고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였다. 부득이 무동정(茂東亭)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하였다. 화옥이 어제 지나갔다는 것을 물어서 알고는, 곧바로 비를 맞으며 출발하였다. 여암막(餘巖幕)에 이르니 여암막 기둥에, '화옥(華玉)은 어제 그 여암막에 머물고 있다가 고읍(古邑)에 있는 벗 박양언(朴良彦)의 집으로 출발하였다'라고 써서 걸어 두었는데, 날이 이미 저물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좌수(李座首)의 집에 들어가니 이생(李生)이 정성스레 대접해 주었다. 온돌(溫突)에 약간이라도 의복을 말릴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終日雨注。 朝飯後, 向晩乍霽, 故卽爲冒雨登程。 至五里峙雨大作, 衣服盡濕, 進退維谷。 不得已至茂東亭, 秣馬療飢。 問知華玉昨日過去, 因卽冒雨發行。 至餘巖幕, 則幕柱書揭華玉昨留其幕, 發向古邑 朴友 良彦家云, 而日已夕矣。 不得已入李座首家, 則李生款接。 溫突略燥衣服, 可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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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 고읍(古邑)의 마을 앞에 이르렀다. 양언(良彦)의 집에 노복을 보내어 화옥(華玉)이 머물며 기다리는지 살펴보게 했는데, 박우(朴友)가 오라고 하였으므로 고읍(古邑)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병동(屛洞)의 송지각(宋之珏)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돌아오는 길에 신기(新基)로 가서 약노(若魯) 씨의 궤연(几筵)에 조문하고 한참을 위로하다가 면교(面橋)로 방향을 바꾸어 나주 형님의 상(喪)에 조문하였다. 早朝登程, 至古邑村前。 送奴於良彦家, 探知華玉留待, 而朴友要之, 故入古邑朝飯。 至屛洞 宋之珏家, 中火秣馬。 來路往新基, 吊若魯氏几筵, 移時致慰, 轉向面橋, 吊羅州兄主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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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동틀 무렵에 출발하여 전주(全州) 부내(府內) 주인집에 이르니 관가의 내행(內行)이 행차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또 성주(城主)가 막 들어왔기 때문에 매우 시끌벅적하였다. 그래서 남문(南門) 밖 강진(康津) 집 여막(旅幕)으로 나가 잠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아침을 먹었다. 노고암(老古巖)까지 7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오후에 임실(任實)의 굴암(窟巖)까지 30리를 돌아가서 묵었다. 開東發行, 至全州府內主人家, 則官家內行次來留。 且城主方入來, 故極爲紛聒, 故出南門外康津家旅幕, 暫爲秣馬朝飯。 至老古巖七十里秣馬, 午後至任實 窟巖回三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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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벗들과 또 화류(花柳)의 봄 경치를 구경하려고 육각치(六角峙)에서 필운대(弼雲臺)43)를 소요하다가 절구 한 수를 읊었다.지난번 진경 찾아 이 산에 올랐을 때(向日尋眞上此山)향기로운 꽃 여린 가지 사이로 어우러졌는데(香葩交暎嫰枝間)지금 오니 꽃은 떨어지고 유람객도 얼마 없어(今來花落遊人少)때에 따라 골짜기도 잠시 한가롭기만 하여라(溪壑隨時亦暫閑)옥류동(玉流洞)44)으로 갔다가 필운대(弼雲臺)로 돌아와서 요기를 한 뒤에 석양 무렵 내려왔다. 이날 밤에 상당한 비가 내렸다. 봄이 된 뒤에 처음으로 내린 비라서 자못 보리를 파종하는 기쁨이 있었는데, 많이 내리지 않고 금세 갠 것이 흠이었다. 與諸友, 又作花柳之行, 自六角峙, 倘佯於弼雲臺, 吟一絶, "向日尋眞上此山, 香葩交暎嫰枝間。 今來花落遊人少, 溪壑隨時亦暫閑。" 因往玉流洞, 還來弼雲臺, 療飢後, 乘夕陽而來。 是夜頗雨, 盖入春後初雨也, 頗有長麥播種之喜, 而不多卽晴, 可欠。 필운대(弼雲臺) 경복궁 서쪽 인왕산의 필운동에 있던 명승지로,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고 뒤뜰에 있는 높은 암벽이다. 필운대 근처에 특히 살구나무가 많아서 예로부터 도성의 시인묵객들이 봄에 찾는 명소 중 하나였다고 한다. 옥류동(玉流洞) 종로구 옥인동・통인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글자 그대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도성지도>에는 인왕산 아래의 수원처로 표시되어 있었다. 옥동・옥골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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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공생(孔生) 두 사람이 찾아와서 만나고 석아(錫兒)의 편지를 전하고 갔다. 오후부터 눈이 오다가 비가 내렸다. 병세가 점점 위중해지는데 간병(看病)할 사람이 없으니, 비록 하루아침에 죽게 되더라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천노(千奴)는 애초에 내려 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스스로 편하고자 하는 말로 인하여 내려 보낸 것이었는데, 이처럼 뜻밖의 위급한 병이 생겼으니, 이를 장차 어찌한단 말인가. 孔生兩人來見, 傳兒書而去。 自午後雪作而雨下。 病勢漸重, 看病無人, 雖一朝奄然, 何以知之? 千奴初不欲下送矣。 因人自便之言下送, 而有此意外危病, 此將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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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닭이 울 때부터 눈이 내려 한 자가 넘게 쌓이더니, 아침을 먹을 때가 되어서야 눈이 그쳤다. 이에 아침을 먹은 다음 오수(獒樹)의 천변(川邊)에 이르러 우연히 도화(道化)의 김이록(金履祿)을 만나서 동행하였다. 사곡(蛇谷)에 이르렀는데 말을 먹이는 도구가 없으므로 증산(甑山)의 주막 사내를 찾아갔으나, 모두 다 아파 누워서는 계속 거절하였다. 결국 사망당점(事亡唐店)까지 70리를 가서 간신히 말에게 꼴을 먹이고 요기를 하였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채찍을 재촉하여 주포(周浦)까지 10리를 가서 묵었다. 自鷄鳴時雪下深尺雪, 朝飯時始霽, 故因爲朝飯, 至獒樹川邊, 偶逢道化 金生 履祿, 因與同行。 至蛇谷, 無秣馬之具, 前進甑山幕漢, 盡皆痛臥, 揮却不已, 故遂至事亡唐店七十里, 艱辛秣馬療飢。 日已夕矣, 催鞭至周浦十里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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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낙안(樂安) 백현(栢峴)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오는 길에 매곡(梅谷)에 들어가 창문(昌文) 종내(宗內)를 조문한 다음 어렵사리 광주(光州) 댁(宅)에 왔다. 곡강상사(曲江上舍)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간천 상사(艮川上舍)가 종일토록 오지 않으니 괴이한 일이다. 往樂安 栢峴中火。 來路入梅谷, 吊昌文宗內。 艱來光州宅, 曲江上舍已來待, 而艮川上舍, 終日不來, 可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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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卄日 길을 나서기로 마음을 정하였으나, 화옥(華玉)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머물며 기다렸다. 아침에 화옥이 남양에 와서 머물렀는데 말 때문에 낭패를 당하여서 오늘 출발하지 못했다. 곡강상사가 먼저 길을 떠나고 나는 다시 용전에 머물게 되니 답답할 노릇이다. 決意發程, 華玉不來之故留待矣。 朝間華玉來留南陽, 而見敗於馬故, 不得以今日發行。 曲江上舍, 先爲發程, 余則還留龍田, 悶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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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이른 아침에 상원(尙元)이 와서 말하기를, "고향 사람 중에 내려가는 인편이 있습니다."라고 하였으므로 집에 보낼 편지를 써서 전하여 부칠 계획이었다. 아침을 먹은 뒤에 반촌(泮村)으로 가서 박 상사(朴上舍)의 소식을 물었더니, 나갔다고 하기에 북사동(北寺洞)으로 방향을 돌렸다. 복숭아꽃이 온 산을 뒤덮어 참으로 그림속의 강산 같고 비단으로 산골짜기를 수놓은 듯하였다. 종일토록 오르내리면서 회포를 풀다가 왔다. 早朝尙元來言, "有鄕人下去便。" 故修家書傳付之計。 食後往泮村, 問朴上舍消息, 則出去爲言, 故轉向北寺洞。 桃花遍山, 眞畵中江山, 錦繡溪壑也。 終日上下, 暢懷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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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아침을 먹은 뒤에 박 상사(朴上舍)가 와서 만났다. 함께 한림(翰林) 이 흥양(李興陽)의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필운대(弼雲臺)에 대한 율시 한 수를 추가로 지었다.애써 백척의 필운대에 올라(强登臺百尺)종일토록 꽃그늘에 앉았네(終日坐花陰)붉은 꽃잎은 이슬을 머금어 영롱하고(含露丹鬚淨)진홍의 색채는 바람을 시기하여 더욱 짙네(妬風絳色深)사람들은 시냇가에 옹기종기 앉아있고(芳磎人簇簇)나무들은 화려한 거리에 빽빽하게 서 있네(綺陌樹林林)금년 봄날의 농사 만족스러우니(春事今年足)벗들과 함께 곳곳을 찾아다니네(携朋處處尋) 食後朴上舍來見, 因與同往翰林 李興陽家, 暫話而來, 追作弼雲臺一律, "强登臺百尺, 終日坐花陰。 含露丹鬚淨, 妬風絳色深。 芳磎人簇簇, 綺陌樹林林。 春事今年足, 携朋處處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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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卄三日 아침을 먹은 뒤에 화옥이 남양(南陽)에서 행장을 꾸려 왔으므로 오후에 길을 나섰다. 장도교(莊島橋) 근처에 이르러 성경(誠卿) 소식을 알아보려 하였으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채찍을 재촉하여 추동(楸洞)에 이르렀다. 종형(宗兄) 세언(世彦)은 이미 4일 전부터 머물러 기다리고 있었는데, 길 가는 중에 만나게 되어서 함께 묵었다. 덕능(德能)도 와서 머물렀다. 食後華玉自南陽治行而來, 故午後登程。 至莊島橋邊, 聞誠卿消息, 則漠無形影, 促鞭至楸洞。 宗兄世彦已於四日前留待, 路次而相逢, 故因與聯枕。 德能又來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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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차동(車洞)에 갔더니, 주인은 때마침 도승지(都承旨)가 되어 입직하여 경모궁(景慕宮) 거둥할 때에 배종하였으므로 다만 진사 욱여(旭汝)와 종일 이야기를 나누었다. 퇴근한 뒤에 잠시 주인을 만나고 곧바로 내려와서 청파(靑坡)에서 묵었다. 밤에 비가 왔다. 早食後往車洞, 則主人時爲都承旨入直, 陪景慕宮擧動, 故只與進士 旭汝, 終日談話。 申退後, 暫見主人, 卽爲下來, 靑坡留宿, 夜點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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