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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가랑비가 내렸다. 정오 무렵에 길가에 나가 요기한 다음, 나는 차동(車洞)에 들어갔다. 잠시 쉬고 나서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가 관정동(館井洞)의 우 참봉(禹參奉) 집에 갔더니 참봉이 시골에서 막 들어왔다고 하므로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대(永大)의 집이 좁은 탓에 이곳으로 옮겨와 머물겠다고 말하였더니 참봉 또한 그리하라 답해 주었다. 유달부(柳達夫)와 정 진사(丁進士)의 서간을 전하고 영대(永大)의 집으로 나왔다. ○微雨。 午間出去路邊療飢, 余則入車洞。 暫憩後, 入西小門, 往館井洞 禹參奉家, 則參奉自鄕俄纔入來云, 故與暫話, 以永大家陜隘之致, 移留此處之意言及, 則參奉亦以答之矣。 傳柳達夫 丁進士書答, 而出來永大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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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사미정(四美亭)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광천(廣川)74)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귀정(歸亭)에 들러 잠시 외종 형수를 보고, 대초정(大抄亭)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早發, 抵四美亭朝飯。 抵廣川療飢。 入歸亭暫見外從嫂, 抵大抄亭留宿。 行七十里。 광천(廣川)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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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밥을 먹은 뒤 송상오를 조문하고 출발하였다. 만마동(萬馬洞)을 지나면서 다음과 같이 절구 한 구절을 읊었다.만마동 산골에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萬馬關山落木秋)기암괴석은 길가에 우뚝우뚝 솟아있네(奇岩怪石路頭頭)무성한 신록은 단풍 든 계절만 못하니(繁陰不若丹楓節)누가 나보다 먼저 이 누정을 읊었을까(先我何人詠此樓)정자동(亭子洞)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부내(府內)의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저녁참에 북문 밖으로 가서 송약수(宋若洙) 씨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그 아우 송민수(宋民洙) 씨 집에 들렀다. 그와 함께 주인집으로 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갔다. ○食後, 吊宋象五而發。 過萬馬洞, 吟一絶曰: "萬馬關山落木秋, 奇岩怪石路頭頭。 繁陰不若丹楓節, 先我何人詠此樓。" 抵亭子洞午飯。 抵府內全聖哲家留宿。 行六十里。 夕間, 往北門外, 見宋若洙氏暫話。 來路入其弟民洙氏家。 與之偕來主人家, 暫話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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歇惺樓【自金剛門距表訓寺二里自表訓寺西距五里】 歇惺者正陽寺門樓名也夕陽登樓東望一萬二千峯如弄掌珠歷歷可數有一老衲擧手而指曰玉色最奇麗者衆香城也有穴如孤星者穴望峯也如兩人對坐者法起峯也最上峯是毗盧峯也如遮日者遮日峰也如牛頭者牛頭峯也如馬面者馬面峰也如鷹者石鷹峯也如獅者獅子峯也日出峯月出峯望君臺迦葉峯須彌峯凌波峯釋迦峯地藏峯粧鏡峯觀音峯白馬峯靑鶴臺十王峯使者峯丞相峯將軍峯判官峯童子峯云云餘不能盡記樓之梁楣四壁渾是貴人姓名盖自洛山神興以後各寺門樓無不揭板題名而此樓最多殆無空虛處又多昔賢題咏表訓之凌波樓長安之神仙樓亦多題名此乃游人勝事也◌湖陰詩曰萬二千峯領略歸蕭蕭黃葉打征衣正陽寒雨燒香夜蘧瑗方知四十非◌淸陰詩曰淋漓蒼雨夜迷明臥聽山中萬瀑聲洗出玉峯眞面目却留詩眼看新晴◌退漁詩曰夕陽斜露白雲歸恍惚羣仙舞羽衣萬二千峯都在面向來登涉始知非◌又曰淸翁節揭日星明湖老詩鏗金石聲宜壓古人楓嶽作滿山陰雨一樓晴◌西坡詩曰簇立羣峰萬二千誰敎輸納一樓前層層浩劫長留雪箇箇遙空不墮蓮雲氣暯朝工淡抹月輪今古自孤懸廬山眞面山中見合把玆游詑謫仙◌椒泉翁詩曰金剛九月倦游人來坐歇惺興又新返照衆香增恍惚晴秋皆骨倍精神芙蓉朶朶浮波面菩薩叢叢現法身從使龍眼移畵幅形容不得七分眞【樓上木板題名富欣所刻】碧檻東頭返照紅高僧指點玉叢叢十日周流欣更覩此身還在此山中【揭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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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簾洞【自金蛇窟東北行二十里】 自地藏庵東入黃流潭抱玉鏡臺過金蛇窟履巉巖溯澗瀑東北行將近十里有一小堞築石礫爲址行幾里又有小臺址或云新羅王子巽國來住又行五里許有般若高磴石壁欹斜落葉依迷下臨萬仞坑塹攀危棧履疊磴抱壁行過胸喘膚汗心戰戰足縮縮超過幾層絶頂到六七里許始有水簾洞正似珠官貝闕之間水晶一簾側掛千尺奇哉其上十餘里許又有百塔云而臟神告貪且無同志竟失一游可悵【或言百塔徒勞脚力別無可觀云】〇椒泉翁詩曰山行凡幾日艱險卽他無斫木架深壑攀膝上曲隅澗石蹲如虎輿僧捷似鼯探眞猶不已還覺更癡愚危哉般若磴攀緣進魚貫一步仍十憩胸喘兼膚汗仄崖千丈坑俯瞰發長歎千金輕一毛頃刻軀命判咄咄蓬萊僊困我一聞漢頹景冉將盡山腰纔到半何時上危頂此身無羽翰百尺竿頭步努力搤雙腕忽入最佳境白石光璀璨水晶千尺簾側掛龍宮畔雲毋應捲窓月妃欲虛館玉樓十二珠層層映凌亂萬山紆鬱裏一派爽然看蝦鬚初演漾虹腰更燁爛正是鮫人綃練出萬疋叚天孫快銀河濯錦波渙散欹臥千仞壁四時懸不斷造翁太戱劇隨處形色換九淵與萬瀑未必獨爲冠迺知古來人乘險傳相玩此行信不虛今日又奇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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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次椒泉翁贈別徐尙書韻 自五臺以後凌波臺百井峯萬物草九龍淵隱仙臺白雲臺普德窟須彌塔水簾洞靈源庵諸般危險處椒泉翁以輕屐短笻如踏平地老尙書恰滿六旬之年何其壯哉到奇絶處輒又以詩韻寫景往往多得意筆行至長安寺尙有餘戀忽逢徐尙書更留一宵淸譚雅韻娓娓不僊風流文物頓覺照耀一座〇椒泉翁詩曰野宿長安寺故人忽有書曾無留約會何幸款情紓蔗境君將漸茹懷我尙餘艱危前嚮路珍重坐僧輿〇徐尙書詩曰凈界逢心契淸譚勝讀書塵區期不束璇夜氣相紓耽景歡尤洽輸懷樂有餘晨輝惟恐發爲是各分輿〇椒泉翁夜宿長安寺明朝出山詩曰古寺如新設施功問孰歟客從流水到僧與白雪居行邁將催駕烟霞尙濕裾終宵悵不寐殆若夢蘧蘧長安夢外寺相對老尙書凈界浮埃逈晴空煖景舒削巖蒼漸薄鳴葉絳猶餘定識明朝路關情憶筍輿〇初八日乙卯晴〇朝發長安寺二十里長北倉中火【以上准陽支應】五十里通口宿所【金城支應〇縣今金炳學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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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도토치(道吐峙) 아래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실음소(失音所)107)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칠원(柒原)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100리를 갔다. ○曉發, 抵道吐峙下店朝飯。 抵失音所午飯。 抵柒原留宿。 行百里。 실음소(失音所)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수헐리이다. 성환에서 국도와 갈라졌던 옛길이 국도와 다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마을로 한자 이름은 수헐리인데,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수헐원(愁歇院)'으로 되어 있고, 속칭 '실음소(悉音所)'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곳은 동쪽으로 5리 가면 직산 고을이 나타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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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規樓【幷誌三首】 在寧越賓館側古稱梅竹樓樓之北又揭梅竹扁額端廟臨御時咏子規因以錫名云◌端廟御製月白夜蜀魄啾【一作月欲低蜀魄啼】含愁情【一作相思憶】倚樓頭爾啼悲我聞苦【一作爾聲苦我心哀】無爾聲無我愁寄語世上【一作爲報天下】苦勞【一作惱】人愼莫登春三月子規樓【子規下或有啼明月三字】◌一自寃禽出帝官孤身隻影碧山中假眠夜夜眠無假窮恨年年恨不窮聲斷曉岑殘月白血流春谷落花紅天聾尙未聞哀訴何奈愁人耳獨聰【嘉義大夫江原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原州牧使臣尹師國奉敎謹書辛亥三月日刊揭】何處無子規此地獨起樓傷心千古蹟宸藻空淹留未忍高聲讀遶壁只搔頭於乎前王巡遊地不道龍樓與鳳樓多事後人强借子規名大書特書楣上留只今東風寒食節冠蓋愀然立馬頭詞臣好古者生平擬登子規樓如今行遂願行人信宿柰城留可奈管城子不能出奇語悵然還似龜縮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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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박 상인(喪人, 상중에 있는 사람)이 맡은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는 바람에 일행과 뒤처져 율지, 여옥(汝玉), 자윤과 동행하였다. 아침 먹기 전에 비가 내렸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 비가 조금 갤 기미가 있어 그냥 짐을 꾸려 출발하였다. 청파(靑坡,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영대(永大) 집에 이르러 잠시 쉬고 나서 출발하였다. 강가에 이르니 비가 다시 내렸다. 비를 무릅쓰고 강을 건넜다. 승방(僧房)41) 객점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남태령(南泰嶺)42)을 넘어 과천(果川) 고을 앞 주막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30리를 갔다. ○朴喪人以所營事未決之致, 仍爲落後, 與聿之、汝玉、子允作伴。 朝前雨。 朝飯後, 稍有開霽之望, 仍治發。 抵靑坡永大家, 暫憩後, 仍爲發程。 抵江頭, 則雨更作。 冒雨越江。 抵僧房店暫憩。 越南泰嶺, 抵果川邑前酒店留宿。 行三十里。 승방(僧房) 승방평(僧房坪)으로 보인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승방뚤ㆍ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남태령(南泰嶺) 서울에서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가던 길로, 삼남대로의 첫 번째 큰고개이다. 이 고개의 원래 이름은 호현(狐峴)인데 정조가 사도세자 묘를 참배하러 가는 도중에 이 고개 이름을 물었을 때 '여우고개'라는 이름을 요망스럽다 여겨 거명하지 못했는데 과천 아전이 "남태령"이라고 대답하였다. 이후 '남태령'으로 개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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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였다. 공주 감영에 들어가 산성의 남문으로 들어가서 북문으로 나왔다. 곧바로 나루를 건너기 위해서였다. 모로원(慕露院)10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광정(廣亭)104)에 이르러 나는 송상철(宋相哲) 집에 들어갔으나, 길보(吉甫)가 마침 집에 없어서 곧바로 나와 주막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령(車嶺)105)에 못 미쳐서 중도에 길보를 만났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그길로 헤어졌다. 차령을 넘어 덕평(德坪)106)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曉發。 歷公州監營, 入山城南門出北門。 卽爲越津。 抵慕露院朝飯。 抵廣亭, 余則入宋相哲家, 吉甫適不在, 卽爲出來, 酒幕午飯。 未及車嶺, 逢吉甫於中路。 移時談話, 仍爲分袂。 越車嶺, 抵德坪留宿行。 六十里。 모로원(慕露院)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오인리 양달 마을에 있었다. 원래 명칭은 '모로원(毛老院)이다. 광정(廣亭)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이다. 차령(車嶺)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仁豊里)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院德里)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덕평(德坪)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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翌日雨後又拈淸律得五篇永同沈【霞村】宜煥亦會 炎雲四月忽驚寒急雨昏昏不辨山膏麥潤苗應未已跳珠碎玉太無端浮生樂事斜陽外造物工夫昨夜間從此可占秋有熟主人盃酒快登盤一倍淸晶白板扉水聲高動市聲稀樓空詩境浮玄始巷僻身家坐翠微林抄雨痕鴉漠漠藥欄春意鷰依依漏鳴烟歇茶香夕禿首方知五十非近水依山舊色樓十年妥恬在皇州垂垂巷柳風無力歷歷墻花雨不愁梅子頓添金兩頰竹孫應長玉千頭逍遙楚客終何業多負往歌接輿流小山幽暗小星明雨迹迢迢路太淸塵緖百千無客緖漏聲三四答人聲當樽輸膽江南語挑燭掀髥石下情時月徜能成此會吾人未必號浮生畵月摹畵未了心平明捲箔墨廚臨床㜎慣業茶經讀庭鳥知時麥熟吟山意太玄留怪石雨痕儱翠在脩林輪贏萬事何須較不妨書中話古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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昭寧園端午享官紀行【五月初三日發程】 西雲如夢境漠漠更征鞍樹老花猶少巖危鳥自安二年山北客五月道中官蕭散林風動披襟强作歡【右過慕華峴自敦義門五里】風流弘濟院起我少年心夾道黃茅店連堤綠柳林寂寥南國士疏鬯北山陰自頻今非昔悽然一短吟【右過弘濟院自慕華峴二里】野色生驢背軟靑雜硬黃占秋方熟麥隨水或分秧始覺居停久翻驚代謝忙登高能賦否觸物感懷長【右過鹿樊峴自弘濟院三里】野闊通眉睫詩緖更繽紛路或佳人店山多貴客墳古岩凄似雨新草嫩於雲王事還如束春醪未敢醺【右過磚石峴自鹿樊峴五里】三叉沙上路荒店白笆門西驛雲千里南風酒一罇長藤扶老石遠樹補孤村令節知相近秋千在綠原【右過舊擺撥自磚石峴五里】蒼蒼西走路舊院借新名小峴平於砥遙林擁若城百年生面客一日賞心行隨處瀏聣久溪山似有情【右過新院自舊擺撥十里】小山如斗郡春樹掩貧寒客店雙行整郵塗五丈寬狂生衰且甚騎士遇何難北价誠多惠衙樓拭目看【右過高陽邑自新院十里〇燕勅春過時郡衙一新故尾句語戱及之】石嶺何磽确疲驢去莫留碧蹄猶係戀白髮更添愁伐木空聞斧燔茅或理疇西園餘幾里問路住溪頭【右驀升瓢嶺自高陽邑十三里〇邑西數里有碧蹄館過此而入園路路狹且險故顩聯云】永陵杳何處遺恨白雲濱林暗眠溪鳥苔深老石橉杉松終可慰萱草近相親一瓣淸香在鵑花歲歲春【右綏吉園過境自升瓢嶺七里〇靖嬪李氏園所在昭寧園之東岡◦永陵卽眞宗大王陵靖嬪卽眞宗所生母】福地留仙枕蒼然未了峰靈源占活澗寶蔭證喬松協夢神籌定騰謠淑氣濃百年堂宇在孺慕仰仰英宗【右賦昭寧園毓祥宮崔氏園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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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40리를 가서 영변(寧邊)에 이르렀다. 철옹성(鉄甕城)63) 만노문(萬弩門)64)으로 들어가 곧바로 관문에 이르러 통자(通刺, 명함을 내놓고 면회를 청함)하고, 곧바로 대아(大衙)에 들어갔다. 그 성지(城池)를 보니, 참으로 천참(天塹, 천연의 요충지)의 관사(官舍)이며 웅장한 고을이었다. 早發行四十里, 抵寧邊。 入鉄瓮城萬弩門, 直至官門通刺, 卽入大衙。 觀其城池, 儘天塹官舍, 眞雄府也。 철옹성(鐵甕城) 고구려 때 처음 쌓은 본성·약산성과 조선 시대 때 쌓은 신성·북성 등 4개의 부분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구려 때 처음 쌓은 이래 조선 시대까지 서북 방위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다. 네 방향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항아리 입구와 같이 생긴 까닭에 철옹성(鐵甕城)이란 이름이 붙었다. 만노문(萬弩門) 영변 철옹성의 정문인 남문으로, 완월문, 고연주성문, 은주루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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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아침 전에 관아에서 사람과 말을 보내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동대(東臺)72)에 올라 좌우를 두루 살펴보았다. 대개 장대(將臺)73)와 다름이 없었는데, 그 석벽이 우뚝 솟아 대를 깎아 만든 것 같으니 그 빼어난 경치를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다만 천지가 온통 눈밭이고 날씨마저 추워서 오래 앉아 끝까지 구경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웠다. 마침내 천주사로 내려갔다가 그길로 돌아왔다. 朝前自衙中送人馬。 食後登東臺, 周觀左右, 盖與將臺無異, 而其石壁斗起, 奄成削臺, 其勝槩不可盡言, 而但雪滿乾坤, 日氣又寒, 不得久坐終遊, 可歎。 遂下天柱寺, 因爲下來。 동대(東臺) 영변의 약산(藥山)에 있다. 약산은 철옹성의 진산(鎭山)으로 주위의 다른 산에 비하여 가장 험준하며 경관이 뛰어난 승지(勝地)이다. 약산 제일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기암괴석이 층층이 쌓여 있는 가운데 5m가량 높은 곳에 주위가 20여m 정도의 반석이 마치 대(臺)와 같이 되어 약산동대(藥山東臺)라 이름한다.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이다. 장대(將臺) 산성이나 성곽 등의 동쪽에 만들어 놓은 대(臺)를 말한다. 산성에는 대체로 동서남북의 네 군데에 장대(將臺)가 있고, 장수들은 각 장대에서 자기 휘하의 군사들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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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출발하여 용계(龍溪)75)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남원 자생(者省)76)의 원산(圓山) 필흥(弼興) 집에 들어가 유숙하였다. 70리를 갔다. ○早發, 抵龍溪朝飯, 抵谷城邑內療飢。 入南原者省圓山弼興家留宿。 行七十里。 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근처이다. 자생(者省)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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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삼례(參禮)128)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 전주부(全州府) 서쪽의 전성철(全聖哲) 집에 이르렀다. ○曉發, 抵礪山邑內朝飯。 抵參禮午飯。 暮抵府西全聖哲家。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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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신안서원(新安書院)130)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슬치(瑟峙)131)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를 하였다. 두치(斗峙)132)를 넘어 평당(坪塘)에 들러 잠시 필동(弼東) 일가붙이를 보고 저물녘에 국평의 하서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90리를 갔다. ○曉發, 抵新院朝飯。 抵瑟峙賣餠療飢。 越斗峙, 入坪塘, 暫見弼東宗人。 暮抵菊坪夏瑞家留宿。 行九十里。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이다. 선조 21년(1588)에 주희와 한호겸(韓好謙)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슬치(瑟峙)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과 완주군 상관면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과 오수를 잇는 고개로 '말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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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밥을 먹은 뒤 일행과 용동(龍洞)19)의 이 참봉 집으로 가서 《명현록(名賢錄)》 개간(開刊) 일을 보고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龍洞李參奉家, 見《名賢錄》開刊事而還。 용동(龍洞) 서울 노원구 하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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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밥을 먹은 뒤, 일행과 대묘동(大廟洞)20)으로 가서 공서(公瑞)을 불러 종묘 문밖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원록(祠院錄)》을 다시 부탁할 생각으로 그길로 예조의 당직 부서로 가니 아전 배광옥(裵光玉)은 마침 출타하였고, 아전 안인성(安寅成)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른 아전과 상의해보니, 배광옥이 없어 《사원록(祠院錄)》의 소재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食後, 與同行往大廟洞, 要公瑞暫話於宗廟門外。 以《祠院錄》更付之意, 仍往禮曹直府, 則裵吏光玉適出他, 安吏寅成昨年身故云。 故與他吏相議, 則裵吏不在, 不知《祠院錄》之在, 故還來主人家。 대묘동(大廟洞) 서울 종로구 훈정동ㆍ묘동ㆍ봉익동ㆍ종로3가ㆍ종로4가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대묘인 종묘가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대묫골ㆍ대뭇골ㆍ대묘동ㆍ묘동'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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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밥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북문 밖으로 가 잠시 송약수 씨를 만났는데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주었다. 그길로 출발하여 장대(將臺) 앞에 이르자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남문 밖에 사는 류하석(柳夏錫) 영윤(令倫)이었다. 내가 이미 부내에 들어섰으니 찾아가지 못할 것도 없는데, 갈 길이 바쁜 관계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왔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 무척 기뻤다. 그길로 동행하여 삼례(參禮)83)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물녘에 능측(陵側)84) 객점에 이르러 함께 유숙하였다. 50리를 갔다. ○食後發程。 往北門外, 暫見若洙氏, 則付京簡矣。 仍發, 抵將臺前, 則有呼我之人 。 故顧見, 則乃南門外居柳夏錫令倫也。 余旣入府, 則非不爲尋訪, 而以行忙之致, 未果而來矣。 忽於此地意外相面, 其喜可掬。 仍與同行, 抵參禮午飯。 暮抵陵側店, 同留宿。 行五十里。 삼례(參禮)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이다.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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