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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종일 비가 내려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답답하였다. 저녁을 먹을 때에 길손 한 명이 들어와서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바로 연산(連山)에 사는 이 석사(李碩士)인데 순찰사의 일가라고 하였으며, 그의 이름은 이종수(李宗洙)였다. 건넌방에 보은(報恩) 손님이 며칠을 머물러 있었는데, 밥을 먹은 뒤에 마침 우리가 머무는 곳에 왔다. 그래서 그 성명을 물어 보니 윤제대(尹濟大)라는 이름의 사람이었으며, 그의 나이를 물으니 나와 갑생(甲生)이었다. 그가 온 연유를 물었더니, 역천(櫟泉) 선생의 서원을 건립하는 일과 각 고을 향교(鄕校)와 서원(書院)의 규례대로 돈을 수합하는 일을 순상(巡相)에게 청탁하려고3) 이 주막에 와서 머물러 있다고 하였다.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묵었다. ○終日雨不得出外, 悶悶。 夕食時, 有一客入來, 故與之相話, 則乃連山居李碩士, 而與巡相一家云, 其名則宗洙矣。 越房有報恩客留連, 而食後適來吾留處, 故問其姓名, 則尹濟大爲名人, 問其年, 則與吾甲生。 問其來由, 則以櫟泉先生建院事, 各邑校院例付錢收合事, 稱念於巡相之意, 來留此幕云。 與之談話, 仍爲同宿。 청탁하려는 원문의 '칭념(稱念)'은 관원이 외방에 나아갈 적에 고관들이 사적으로 은근히 부탁하는 것을 말한다. 《성종실록(成宗實錄)》 9년 4월 8일 조에 "수령이 부임할 적에 그 지방 출신의 공경대부들이 그를 알든 모르든 간에 모두 술과 고기를 가지고 와서 전별하며 자기 노비들을 잘 봐 달라고 청하는 것이 상하 간에 풍속을 이루었는데, 이를 일러 칭념이라고 하였다.[凡守令之赴任也, 公卿大夫, 知與不知, 皆持酒肉而餞之, 請其奴婢完護, 上下成俗, 名之曰稱念.]"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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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고을 앞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흥양의 지자(持者, 문서를 전하는 사람) 신우당(申于堂)이라는 녀석을 만나, 그편에 아들 편지를 받았다. 집을 떠난 후 처음으로 받은 편지였다. 집안에 별다른 우환이 없다고 하니 매우 다행이었다. 경기와 충청, 두 도는 가뭄이 극심해 보리농사를 흉작으로 치부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 데다 14일 내린 비는 겨우 쟁기질이나 할 정도의 비에 불과하여 모내기할 길이 만무하다고 하였다. 남쪽의 소식은 그간에 몇 차례 비가 내려 보리농사와 모내기는 윗지방보다는 그나마 넉넉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소사(素沙)46)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직산(稷山) 삼거리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早朝發程, 抵振威邑前酒店朝飯。 逢興陽持者申亍堂上京之漢, 其便得見家兒書。 離家後初見書也。 家中別無憂故云, 幸幸。 京畿、忠淸兩道, 則旱乾太甚, 麥凶辦之已久。 而雖十四日雨, 不過犁雨, 萬無移秧之道云。 南中消息, 則間有數次雨, 麥事與移種, 稍贍於上道云, 可幸可幸。 抵素沙療飢。 抵稷山三巨里留宿。 行八十里。 소사(素沙)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이다. 삼남대로는 소사동 북쪽에서 당산을 넘어 소사원을 지나 소사교를 건넌 뒤 소사벌을 지나 곧장 남쪽으로 내려갔다. 소사원은 삼남대로 경기도 구간의 마지막 원으로 충청도에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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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두치(斗峙)20)를 넘어 신거(信居)에 이르자 비로소 대로(大路)가 나왔다. 봉상(封上)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전주(全州) 부내(府內)로 들어가 곧장 서문 밖 여점(旅店)으로 갔으나, 삼정(森亭) 일행을 그림자도 찾을 수 없으니 이상하였다. 남문 밖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 만났다. 곧바로 김 동지(金同知)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항선(缸鐥)을 찾아 가지고 왔다. 早食後, 踰斗峙, 至信居, 卽始得大路。 至封上秣馬, 入全州府內, 直往西門外旅店, 則森亭一行, 寂無影響, 可怪。 行至南門外, 始與相逢。 卽往金同知家, 暫話後, 推尋缸鐥而來。 두치(斗峙)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대곡리로 넘어가는 재 이름이다. 말치 또는 마치(馬峙)로 불리우기도 하며 옛 국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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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화옥과 함께 장성(長城) 김직휴(金直休) 여관(旅館)에 갔으나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남원(南原) 박 석사(朴碩士)만 만나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동부(東部)로 들어가서 민 남평(閔南平)을 만나려 했으나 입직하였다. 한참 뒤에 또 옛 동부(東部)에 들어가 안 만호(安萬戶)를 찾아갔는데, 또한 입직하여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與華玉同往長城 金直休旅館, 則出他不逢, 只見南原 朴碩士。 來路入東部, 見閔南平入直。 移時又入舊東部, 尋訪安萬戶, 則亦入直, 未逢而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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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이른 아침에 화옥(華玉)이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그 숙모의 부음을 전하였다. 일찍부터 염려하던 일이었지만, 갑자기 이 기별을 듣게 되어 너무 놀랍고 슬펐다. 날마다 남쪽의 소식을 들으니 감기가 매우 심각하다고 하는데, 노복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아서 그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 早朝華玉送人寄書, 傳其叔母之訃。 是所夙慮, 而忽聞此奇, 極爲驚悼。 日聞南中消息, 感氣極惡云, 奴者尙不來到, 其爲悶慮, 不可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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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반촌(泮村)에 들어가 화옥(華玉)을 위로하였다. 아침을 먹고 나와 옛 동부(東部) 안 만호(安萬戶)의 집에 들렀으나, 안 만호가 또 입직하였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다. 이에 주동(注洞)에 들렀더니, 치회(穉會)가 그 손자와 제수씨를 잃었으므로 위로하고 왔다. 曉頭入泮中, 致慰華玉。 朝飯後出來, 歷入舊東部 安萬戶家, 則安也又爲入直, 故不得相面。 仍入注洞, 則穉會喪其孫及弟嫂, 故致慰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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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이종형과 길을 나섰는데, 나는 먼저 가서 정천(定川)에서 송양조(宋讓祚) 일행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산(連山) 사슬치점(沙瑟峙店)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잠시 포정동(匏井洞)의 이 서방(李書房) 집에 들어가 장선(長善)마을14) 이름과 노차(路次)를 물었다. 서둘러 가서 연산(連山) 읍내와 거사리(居士里)15), 인천(仁川)16)을 지나 장선(長善)의 사헌(士憲) 집에 이르니 날은 저물어 저녁이 되었다. 주객(主客)이 서로 만나니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與姨從兄作行, 余則先行, 至定川, 逢宋讓祚一行暫話。 至連山 沙瑟峙店秣馬, 暫入匏井洞 李書房家, 問長善村名及路次。 促行過連山邑內、居士里、仁川, 至長善 士憲家, 日已夕矣。 主客相逢, 喜不可言。 장선(長善)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장선리이다. 장선(長善) 마을은 산등성이가 길게 뻗어있어 긴산→장산(長山)→장선(長善)으로 변했다고도 하고, 산등성이가 마치 긴 뱀과 같다고 해 장사(長蛇)→장산→장선(長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지형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긴 산등성이에서 나온 말이다. 거사리(居士里)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거사리이다. 인천(仁川)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이다. 옛 이름은 '인내'라 하며 현재도 인내 뚝, 인내 장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조선지지자료》(연산)에 '인내[仁川]'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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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吉 아침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 말치를 넘어 평당(平塘)의 종인(宗人)인 송계천(宋啓天)의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여기에 들어오게 된 것은 이곳의 종인(宗人)인 필동(弼東)씨 형제가 서울에서 내려와 오촌(鰲村)으로 들어왔다고 하므로 장석(丈席)의 소식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아직 내려오지 않았기에 오후에 곧바로 출발하여 사동점(蛇洞店)에 이르러 묵었다. 60리를 갔다. 밤중에 방구들이 얼음장 같아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몹시 화가 났다. 새벽에 절구 한 수를 읊었다.먼동이 트자 닭이 막 울어대고(曉色鷄初唱)찬 새벽 시내물 소리 요란하네(寒聲澗有鳴)객창의 방구들 얼음장 같아 잠 못 이루니(旅窓睡未穩)손가락 꼽으며 앞길을 헤아려 보네(屈指計前程)공서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조룡산 내려가는 길에(鳥龍山下路)새벽부터 눈 내리고 거센 바람 이는데(晨發雪風鳴)동종과 길동무하며 함께 오니(同宗同作伴)기나긴 여정의 지루함도 잊었어라(忘却步長程) 仍朝飯後發程, 越斗峙, 至坪塘宗人啓天家中火, 而入此之意, 此處宗人弼東氏兄弟, 自京下來, 入于鰲村云, 故欲探其丈席之消息矣。 尙未下來, 故午後卽發, 至蛇洞店留宿。 行六十里。 夜間以突冷之致, 不得秪寢, 可憤可憤。 曉間吟成一絶曰: "曉色鷄初唱, 寒聲澗有鳴。 旅窓睡之穩, 屈指計前程。" 公瑞次曰: "鳥龍山下路, 晨發雪風鳴。 同宗同作伴, 忘却步長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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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덕평(德平)35)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모로원(慕露院)36)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판치(板峙)37) 아래 소월(小越)에 이르러 묵었다. 110리를 갔다. 曉發抵德平朝飯, 抵慕露院午飯。 抵板峙下小越留宿。 行百十里。 덕평(德平) 충청도 청주목(淸州牧)과 전의현(全義縣)의 경계에 있었던 마을 이름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燕歧郡) 전의면(全義面) 소정리(小井里)와 운당리(雲堂里) 지역에 해당한다. 모로원(慕露院)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상용리 양달 마을에 있었던 역원(驛院)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공주에서 북쪽으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하며, 원래 명칭은 '모로원(毛老院)이다. 판치(板峙)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면리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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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새벽에 출발하여 노성(魯城)38)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황화정(皇華亭)39)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치등(峙登) 주막 어귀에 이르러 나는 성묘하기 위해 시조의 묘소에 들어갔다. 동행은 먼저 능측(陵側)으로 가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성묘한 뒤 성묘록(省墓錄)에 이름을 쓰고 급히 능측으로 갔다. 동행이 오지 않아서 몹시 기다리던 중에 날이 저어서야 강(姜)과 송(宋) 두 벗이 왔다. 다른 동행은 마병(馬病)으로 오지 못해서, 두 벗과 묵었다. 100리를 갔다. 曉發抵魯城邑內朝飯。 抵皇華亭午飯。 至峙登酒幕前, 余則省墓次, 入始祖墓所, 同行則先行約以陵側, 故省墓後, 書名《省墓錄》, 急往陵側, 則同行不來, 故苦待中, 暮時姜、宋兩友來。 他同行則以馬病不來, 只與兩友留宿。 行百里。 노성(魯城)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지명 유래는 이산현의 지형이 공자가 탄생한 중국 노나라 이구산(尼丘山)의 지형과 비슷하다 하여 '노'(魯)자를 따고 이산(尼山)의 성을 상징하는 '성'자를 따서 노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황화정(皇華亭) 지금의 충남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 땅이 아니라 전라도 여산읍(익산의 옛 지명) 소속이었는데, 임금으로부터 전라도관찰사로 제수받으면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지역인 여산 황화정에서 신·구 임무교대식인 교귀식(交龜式)을 치르고 전주 조경묘에 숙배(肅拜)하는 것이 순서였다. 때로는 활터로도 이용했으며 현재는 비석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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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길을 나서 과역(過驛)에 이르렀다. 잠시 쉬고 나서 구룡정(九龍亭)에 들어가니 남양(南陽)의 종친들이 마침 많이 모여 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에 사교(四橋) 댁에 이르러 묵었다. ○九月二十五日。 發程抵過驛, 暫憩後, 入九龍亭, 則南陽諸宗, 適多會暫話, 暮抵四橋宅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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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길을 나서 천평(泉坪)1)에 이르러 묵었다. ○發程抵泉坪留宿。 천평(泉坪)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천평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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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길을 나서 용계점(龍溪店)에서 점심을 먹었다. 곡성(谷城) 교촌(校村) 오익(吳熤)의 집에 이르러 묵었는데, 오익은 바로 천평(泉坪) 고창진(高昌鎭)의 사돈집이다. 고창진의 아들이 현재 처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 보려고 왔다. 이날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아서 몹시 괴로웠다. ○發程抵龍溪店中火。 抵谷城 校村 吳熤家留宿, 吳熤卽泉坪 高昌鎭査家也。 昌鎭之子, 方在其妻家, 故欲見而來矣。 是日風日極不佳, 苦哉苦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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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 전에 박영규(朴營奎)가 내려가므로 집에 편지를 써서 부쳤다. 밥을 먹기 전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회동으로 가서 송 장성을 만나, 그 삼촌 송익정(宋翼廷) 씨를 위문하고, 또 그 독자(獨子)의 상을 조문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잠시 얘기를 하고 왔다. ○朝前, 朴營奎下去, 故修付家書。 食前, 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晦洞見宋長城, 慰其三寸翼廷氏, 又吊其獨子喪。 下來持淳家,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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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이른 아침 일행과 동구안 약방으로 가서 구경하였는데, 소전(小殿, 세자(世子))이 경우궁(慶祐宮)28)의 하향 대제(夏享大祭)에 거동한 것이었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주인(京主人)29) 집에 들러 주인을 만나서 흥양(興陽, 고흥)에 대해 상세히 듣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쉬었다가 용동으로 갔다. 저물녘에 돌아오니 정동의 이 석사가 찾아왔다고 하였다. ○早朝, 與同行往洞口內藥房觀光, 而小殿以慶祐宮夏享大祭擧動也。 觀光後, 來路入京主人家, 見主人, 詳聞興陽, 而還主人家。 少憩後, 往龍洞。 乘暮還, 則貞洞李碩士來訪云矣。 경우궁(慶祐宮)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있는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1770~1822)의 사당이다. 1824년에 창건하였다. 경주인(京主人) 경저리(京邸吏)이다. 벼슬아치나 서민으로 서울에 머물러 지방 관청의 사무를 연락하고 대행하던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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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書碑閣【幷誌】 臣按鶴城邑乘曰御書碑閣乃仁烈王后誕生舊址在衙東數十步西平府院君韓浚謙宣廟癸巳爲牧使倭賊退後設衙於官吏崔斷龍家翌年七月初一日誕生王妃殿厥後王妃殿下敎問以所生之地今爲何人所居悵然有養不及之敎浚謙記其事留揭客館遺址初無封標英廟戊寅禮曺判書洪象漢於莊陵奉審之行歸奏故事監司沈鏞狀聞基址右議政李[土+厚]奉審以來上令道臣竪碑䢖閣仍親寫碑前後面以下又親製記文命西平外孫翰林洪秀輔書進刻揭工訖面賜廐馬於道臣地方官秀輔亦陞六◌碑前面書曰仁烈王后誕生之地後面書曰西平府院君記旣稱聖后之敎邑誌亦爲詳悉鳴呼我聖后誕生之處豈可泯於後乎盥手親書令道臣竪石海西有聖祖誕降碑於海州關東有聖后誕降碑於原州豈偶然哉戊寅陽至月敬寫◌親製記曰原州仁烈王后誕生舊基小識噫先祖遺址敬而守之者子孫之道也王后誕生之地其或私第其或公館何標識之有而若不然表而記之不泯於後於義當然列聖誌狀中王妃誕降之地稱寓所者二稱村舍者一而村舍卽新豊國舅田廬與私第無異寓舍一則端懿王后誕生之所今無可問之人一則原州仁烈王后誕生之處宣廟癸巳西平國舅爲本牧而當壬辰兵燹之餘處於村舍翌年甲午檜山府夫人誕生聖后本事國舅記文中詳備而邑誌中亦載焉所謂村舍卽官吏崔斷龍家而其外孫女聞於其母而指點其基前民安九雄聞於古老而亦爲指示所謂銀杏樹旣得其根以今番右相奉審者聞之兩人指點亦不過三四間範圍之內而其爲府東則無疑噫頃於辛亥百年之後拜聖后之梓宮于今望七之年得聖后誕降之地於鶴城其豈偶然愴慕一倍况我聖后以祿不及養之意下敎于國舅省墓時使之尋訪舊址昔年聖后之意若此而爲其孫知而不標使數三草舍屑越其間則可謂孝乎鳴呼二去庚午我聖考特命竪碑於海州聖祖誕降之地今幾七十載吁嗟不肖又爲竪石於原州聖后誕降之處追憶昔年此心難抑前後面盥手親書仍令道臣依豊壤制樣從簡竪碑建閣於兩人指點處以伸追慕之意歲皇明崇禎紀元後三戊寅陽至之月拜手謹識朝奉大夫行藝文館待敎兼春秋館記事官臣洪秀輔奉敎謹書◌臣過鶴城仰瞻碑閣之翼翼伏讀宸章之爛爛不覺感歎賦五言古風二十韻雉山何磅礡毓氣靈且秀樹德西平家膺運降聖后淑女與君子龍潛正相姤桓桓撥亂日密謨多保佑正位垂坤裳承乾贊化囿澣衣昭儉德而不被文繡祿養恨不逮永慕藹如幼宗祊流景祚篤生寧王又春秋大義理日月明宇宙胎敎知有自母道仰成就漠漠鶴城東遺址近湫陋指點塗莘屋州人傳不謬往蹟百年後神孫棲感舊璀璨降雲章上應奎璧宿畵閣何巍岌穹碑更雕鏤照暎祥日麗衛護瑞雲逗地靈儼相守可朋東岡壽幾多古哲辟坐饗萬來富于嗟封表擧前史曾未覯孝哉我英廟追遠聖德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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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이른 새벽에 출발하였지만, 비 온 뒤라 길이 질척거려 가는 길이 몹시 힘겨웠다. 사근천(肆覲川)4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지지현(遲遲峴)44)을 넘어 화성 북문 밖에 이르러 술을 사서 마셨다. 북문으로 들어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동장대(東將臺), 소라각(小羅閣), 창용문(蒼龍門)을 구경하였다. 큰길에서 남문 밖으로 나와 요기를 하였다. 오매(烏梅)45) 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80리를 갔다. ○曉頭發程, 而雨餘路泥, 行路甚艱。 抵肆覲川朝飯。 越遲遲峴, 抵華城北門外, 沽酒以飮。 入北門, 尋玩訪花隨柳亭、東將臺、小羅閣、蒼龍門。 自大道出南門外療飢。 抵烏梅留宿。 行八十里。 사근천(肆覲川) 경기도 안양시이다. 지지현(遲遲峴) '지지대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길목이다. 지지현(遲遲峴)이라고 표기하는 곳이지만 본래는 '사근현(沙斤峴)' , '미륵현(彌勒峴)' 등으로 불렸다. 오매(烏梅) 경기도 수원시 오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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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아침 전, 공서가 내려가는 김에 김노와 고부의 김 생원을 데리고 출발하였다. 밥을 먹은 뒤 10냥을 가지고 개간소로 가서 냈다. 오후에 나와서 창동의 배진환(裵珍煥)이 머무는 곳에 들렀더니, 배진환은 출타하였다. 남문으로 나와 차동(車洞)115)으로 가니 주인이 출타하였다. 이에 아랫사랑으로 가서 주인 민치명(閔致明)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도로 창동으로 왔는데 배진환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로 남문으로 나와 율지와 함께 주인집으로 왔다. ○朝前, 公瑞下去次, 率金奴與古阜金生員發程。 食後, 持十兩錢往刊所納錢。 午後出來, 歷訪倉洞裵珍煥所住處, 則裵也出他。 出南門, 往車洞, 則主人出他。 仍往下舍廊, 與主人閔致明暫話, 還來倉洞, 則裵也不來。 還出南門, 與聿之出來主人家。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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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여독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주인집에 머물렀다. 오후에 대로변으로 나가 요기를 하고, 그길로 관정동(冠井洞)으로 향하였다. 중도에 박상현(朴祥顯)과 공서(公瑞)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헤어져 돌아왔다. ○以路憊不能運動, 留主人家。 午後出去大路邊療飢。 仍向冠井洞矣。 中路逢朴祥顯及公瑞, 談話後, 相分還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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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덕평(德坪)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차령(車嶺)을 넘어 광정(廣亭) 송상철(宋相喆)의 집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객점으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일신역(日新驛)78)에 이르러 묵었다. 90리를 갔다. 曉發抵德坪朝飯。 越車嶺, 入廣亭 宋相喆家暫話, 而來于店中火。 抵日新驛留宿。 行九十里。 일신역(日新驛)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에 위치한 중앙선의 철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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