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5746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7일 初七日 장석에게 하직하고 밥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섰다. 형강(荊江)을 건너 월은사(月隱寺) 아래를 지나 문의(文義) 읍내에 이르러 잠시 군사 훈련하는 것을 본 뒤 점심을 먹었다. 병암(屛岩) 주점을 지나 저물녘에 어금 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辭丈席, 食後發程。 渡荊江, 歷月隱寺下, 抵文義邑內, 暫見鍊兵, 仍爲中火。 歷屛岩酒店, 暮抵어금酒幕留宿。 行七十里。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0일 初十日 동틀 무렵 함께 고생한 사람들과 작별하고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신탄(新灘) 시장 근처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밤에 내린 눈으로 몹시 추워 고민스러운데,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 채 못 가서 눈보라가 세차게 몰아쳤다. 간신히 유성(油城)에 도착하여 떡을 사 요기하고 눈을 맞으며 길을 나섰다. 눈발이 날려 눈앞을 막고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실로 견디기 어려웠다. 산정령(散亭嶺) 진치(盡峙)를 넘고 선창(船倉)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이 주막은 신도(新都)에 가까운 곳이다. 이번 길에는 신도(新都)에 들어가 두루 구경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산과 들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자세히 구경할 수 없었다. 이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또한 멀리 바라만 보고 지나가니 매우 안타까웠다. 개태령(開泰嶺)을 넘어 간신히 연산(連山)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平明與同苦諸人作別, 治行發程。 抵新灘市邊朝飯。 夜雪極寒悶悶, 未及油城市邊, 風雪大作。 艱到油城, 買餠療飢, 冒雪登程。 飛雪滿目, 寒氣逼骨, 實爲難堪。 越散亭嶺 盡峙, 抵船倉酒幕中火, 此幕卽新都近地也。 大擬今行入新都周玩矣, 雪滿山野, 不能詳玩, 故不得入見, 亦爲望見而過, 大是欠事欠事。 越開泰嶺, 艱抵連山邑內留宿。 行八十里。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계미년 3월 정시 때 동행록 癸未 三月 庭試時 同行錄 송석필 윤계눌 송 도정두옥 송 현 박종수신상록 신일모 정두화송석년 송 필 강하천정두민 신천록 송 린 宋錫弼 尹啓訥 宋 濤丁斗玉 宋 玹 朴宗壽申相錄 申一模 丁斗華宋錫年 宋 珌 姜河天丁斗玟 申天祿 宋 璘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제사(題辭) 題辭 춘조(春曹, 예조의 별칭)에 기록되었는지의 여부는 본원에 경중이 되기에 부족하지만 선비들의 바람이 이미 이와 같으니 삼가 등록하여 예전의 일을 기록하다. 19일 春曹之載錄與否, 雖不足爲輕重於本院, 而士望旣如此, 謹當載錄向事。 十九日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7일 初七日 오늘 아침밥도 주인댁에서 준비해 주었다. 장석이 말씀하시기를, "이 고을의 수령이 자녀 상(喪)을 당하였으니 가서 만나보고 위로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그 기별은 듣지 못하였지만 마땅히 들어가 뵙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밥을 먹은 뒤에 읍내로 들어갔으나, 혼금(閽禁)59)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저녁을 먹고 사랑에 들어갔더니 문자를 내보이시면서 내게 읽어 보라고 하셨다. 이에 한차례 읽고 나자 장석의 아들 지(枝)와 흠성(欽成)에게도 읽어 보게 하셨다. 또한 한차례 읽으니 그대로 내주어서 행랑채로 가지고 왔다. 60여 일 끝에 글을 받들고 나왔으니 그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이날 전주(全州)의 최수일(崔洙一)도 요청한 글을 개정(改正)하기 위하여 도착하였다. 朝飯亦自主人宅備給。 丈席曰: "本倅遭其子女喪, 未可往見而致慰耶?" 余對曰: "此奇則未聞, 而當入見矣。" 食後入去邑內矣, 以閽禁之致, 不得見而爲出來。 夕飯入去舍廊, 則以文字出示, 而使余讀之爲敎, 故一次讀下, 則又使其子枝·欽成讀之, 亦以一次讀下, 則仍爲出給, 故持來廊底。 六旬之餘, 奉出文字, 其喜何可言? 是日全州 崔洙一, 亦以請文改正次來到。 혼금(閽禁) 관청에서 잡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6일 初六日 추울 때는 감당할 수 없이 춥고 사지(四肢)는 마비되기 때문에 즉시 팔선(八仙)의 집으로 나가 불을 지피고 온돌을 따뜻하게 했지만 구토와 설사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식후에 다시 사랑(舍廊)에 들어가 문을 닫고 누웠지만 추위를 버틸 수 없어 또다시 팔선의 집으로 가야 했다. 寒不可當, 四體麻木, 故卽出八仙家, 爇火溫突, 而吐瀉不止, 故食後復入舍廊, 閉門而臥, 寒不敢支, 當復出八仙家。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7일 初七日 전날부터 정기산(正氣散)을 연이어 쓰고 소합환(蘇合丸)을 함께 썼으나 끝내 뚜렷한 효험이 없으니 초조하고 근심스러운 마음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달인 약[煎藥]을 계속 쓰고 있으나 식음을 전폐(專廢)하고 있으니 비록 보약을 쓴들 병이 곧바로 차도를 보이지 않고, 먹어도 원기를 도울 수 없다. 그런데도 소용되는 돈이 하루에 7, 8전(戔)이니 이를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영동(永洞)의 이신효(李信孝)와 배생(裵生)이 와서 보고 간 후 집안 소식을 대강 들었다. 그런데 여아(女兒)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입으로는 전해 들었지만 편지에는 없으니 의심스럽고 괴이하였다. 섣달 17일 밤에 꿈이 흉하더니, 그 병이 마침 발병한 것이 그때에 생긴 것이라면 다행이다. 自前日連用正氣散兼用蘇合丸, 終無顯效, 焦悶不可言。 連用煎藥, 而又食飮專廢, 故雖用補製, 病不卽差, 食不補中, 而所用一日七八戔, 此將奈何。 永洞 李信孝及裵生來見而去, 略聞家信, 而女兒病奇, 口傳有之, 而書則無之, 可疑可怪。 臘月十七日夜夢凶矣。 其病適發, 其時生則幸也。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9일 十九日 새벽녘에 군휘(君徽)와 작별하고, 노구암(老狗巖)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오수(獒樹)에 이르러 또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전석치(磚石峙)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10리를 갔다. 曉頭與君徽作別, 至老狗巖, 朝飯秣馬。 至獒樹又秣馬, 至磚石峙留宿。 是日行百十里。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8일 初八日 차동(車洞)의 내행차(內行次, 부인의 행차)가 해영(海營, 황해도 감영)으로 출발하였는데, 궐문 밖 지척에서 머물고 있으면서 경욱(景旭), 현숙(顯叔)과 작별을 하지 못하였으니, 그 병의 위중함을 알 수 있다. 車洞內行次 發向海營, 而留在門外咫尺之地, 不得與景旭、顯叔作別, 其病之重, 可知矣。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7일 十七日 귀남(龜南) 김생(金生)이 발병 때문에 계속 고마(雇馬)20)를 타고 왔는데, 지금은 동행할 수 없다고 하니 가엾고 걱정스럽다. 팔선(八仙)과 헤어지고 곧바로 금산(錦山)으로 향하였다. 몇 달 동안 그의 집에서 손님으로 있었던 데다가 또 정성을 다해 병을 치료해 준 사람인데, 중도에서 서로 헤어지게 되니 섭섭한 심사를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김생(金生)은 마을 앞에서 뒤처졌다. 그 또한 노자가 적다고 하니 몹시 가련하였다.이성(尼城)에 이르러 요기하고 초고(草稿)에 도착하였다. 권 서방(權書房)이 수삼 일 동안 길을 재촉하여 갔으나 끝내 이·공의 일행을 만나지 못하고, 사교(沙橋)에서 이춘영(李春英)을 만나서 데리고 왔다. 그러므로 시기를 어긴 잘못이라 책망하고는 함께 데리고 왔다. 은진(恩津)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점심을 먹었다. 능촌(陵村)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90리를 갔다. 龜南 金生, 以足病連騎雇馬矣, 今則不得同行云, 可矜可悶。 與八仙分路, 直向錦山。 累月作客於渠家, 又是盡誠救病之漢, 中路分張, 情事悵缺, 不可言。 金生於村前落後, 渠又行資之小云, 極可矜憐。 至尼城療飢, 行到草稿, 則權書房者, 數三日促行, 終不及李、孔之行, 逢李春英於沙橋, 因爲領來, 故責以違期之失, 因與率來。 至恩津, 秣馬中火。 至陵村留宿。 是日行九十里。 고마(雇馬) 조선조에 지방 관아에서 백성으로부터 고용하여 쓰는 말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일 初二日 새벽에 동구(洞口)에 가서 안일득(安一得)을 만나 거둥을 뒤로 미루게 된 기별을 상세히 듣고, 오는 길에 신문(新門) 안의 송 진사(宋進士) 집에 들어가 서로 작별하였다. 오는 길에 대차동(大車洞) 김 참봉의 집에 들어가서 참봉 김윤추(金允樞)를 만나고 왔다. 曉頭往洞口內見安一得, 詳聞停退擧動之奇。 來路入新門內宋進士家, 相與作別, 而來路入大車洞 金奉參家, 見金參奉 允樞而來。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0일 二十日 길을 나서 과역(過驛) 시장 근처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남양(南陽)에 이르러 이찬(而贊), 강동(江洞) 윤익(允益)과 내일 함께 출발하기로 약속하였다. 저물녘에 재동(齋洞)에 이르러 묵었다. 發程至過驛市邊療飢。 抵南陽, 與而贊及江洞 允益, 明日發程爲約, 暮抵齋洞留宿。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3일 二十三日 일찍 출발하여 무동정(舞童亭)3)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영귀정(詠歸亭)4)에 이르러 주점(酒店)에서 동행을 기다리다가 잠시 영귀정에 들어가 외종수(外從嫂, 외삼촌의 며느리)를 만나 요기하였다. 용계(龍溪)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곡성 땅이다. 早發至舞童亭朝飯。 至詠歸亭, 留同行於酒店, 暫入歸亭, 見外從嫂, 仍爲療飢。 抵龍溪留宿。 行七十里, 谷城地也。 무동정(舞童亭)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덕산리 소재 죽산 마을로, 지금은 주암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죽산 마을은 풍수지리상 정자 밑에서 아이가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하여 개촌 당시 무동정(舞童亭)이라 불리었는데, 서울 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영귀정(詠歸亭) 순천시 주암면 마전리 영귀마을 마천 양수장 자리에 있었던 영귀당(詠歸堂)으로, 삼탄(三灘) 조태망(趙泰望, 1678~?)의 별장이다. 말년에 화순에서 활동했던 양거안(梁居安, 1652~1731) 등이 남긴 차운시[次趙泰望詠歸亭韻]가 있다. 정자는 이후 사라졌다가 구한말에 중건되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5일 二十五日 새벽에 출발하여 야당 주점에 이르러 방업(房業)과 동행하였다. 말치(末峙)를 넘고 두곡(杜谷)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애치(艾峙)에 이르러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전주(全州) 부내(府內)에 이르렀다. 방업(房業)을 따라 벽사(碧沙)의 주인인 장영손(張永孫) 집에 머물렀는데, 영손은 영문(營門)의 도사령(都使令)이었다. 80리를 갔다. 曉發至野塘酒店, 與同行房業。 越末峙, 抵杜谷朝飯。 抵艾峙中火, 暮抵全州府內。 因房業留碧沙主人張永孫家, 永孫卽營門都使令人也。 行八十里。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7일 二十七日 아침 전에 다시 비장소(裨將所)로 갔으나 찰방이 선화당(宣化堂)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다. 김노(金奴)는 발을 치료하기 위해 그대로 주인집에 머물렀다. 김방업(金房業)과 이별할 때 방업이 말하기를, "제가 도모한 일이 만약 성사된다면 오래 머무를 것이고 성사되지 않는다면 내일 내려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아침 전에 사람을 사서 짐을 지우고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서지만, 객지에서 종과 주인이 서로 헤어지게 되어 심난한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이에 출발하여 용산교(龍山橋)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통천등(通泉登)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여산(礪山)의 산지기 집에 도착하였다. 이날 종과 주인이 서로 떨어져서 이곳에 이른 것은 내일 시조(始祖) 산소(山所)에서 있을 동지향사(冬至享祀)에 참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종(諸宗)들과 산지기의 집에서 머물렀다. 朝前更往裨將所, 則察訪入去宣化堂, 故不見。 金奴則治療次, 仍留主人家。 與金房業相別之際, 房業曰: "吾之所營事, 若成則久留, 不成則明日下去云矣。" 食前雇人負卜, 不得已發程, 客中奴主相分, 憒亂心懷, 難可堪抑。 仍發抵龍山橋朝飯, 抵通泉登中火。 暮抵礪山山直家。 是日奴主相離, 得達此處者, 欲參明日冬至享祀於始祖山所故也。 與諸宗留山直家。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6일 二十六日 새벽에 바로 행상(行喪)48)하여 그대로 호행(護行)하였는데, 장지에 이르니 이조동(吏曹洞) 뒤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서남(西南)으로 끝없이 확 트여 있어 보통 사람의 안목과 식견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사시(巳時)에 하관(下棺)하고 그길로 유둔(油芚) 시장 근처로 가니, 내가 내려왔다는 기별을 듣고 노소(老少)의 문원(門員)들이 모두 와서 모여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서울에서 썼던 돈 100여 냥을 각파(各派)에 나누어 기록하였다.오후에 역소(役所)로 돌아와 제사를 지낸 뒤에 즉시 반혼(返魂)49)49) 반혼(返魂) : 장례 후에 신주를 모시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오는 의례를 말한다. 이를 '반우(返虞)', '흉제(凶祭)'라고도 한다.하고 곧바로 초우(初虞)50)를 지냈다. 지정(池亭)에서 머물렀다. 曉卽行喪, 仍爲護行, 而及至葬所, 則吏曹洞後最高峯, 西南滉瀁無涯, 以凡眼姑未可知也。 巳時下棺, 仍行油屯市邊, 則老少門員, 聞余下來之奇皆來會, 相與敍話後, 分錄京中所用百餘兩錢於各派。 午後還來役所, 行祭後, 仍卽返魂, 卽行初虞, 留池亭。 행상(行喪) 시신을 상여에 실어서 산소로 나르는 일을 말한다. 초우(初虞) 산소(山所)에서 장례(葬禮)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혼령(魂靈)을 위안(慰安)하기 위해 장사 당일을 넘기지 않는다.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일 初吉 아침 전에 길을 나서 치등(峙登) 주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은진(恩津) 삼거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다음, 길을 나서 몇 리를 채 못 가서 앞에 큰 내를 만났다. 내를 건널 때에 김노(金奴)가 발을 헛디뎌 등에 짊어졌던 짐이 반이나 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가까스로 천변으로 나와 손으로 젖은 옷을 짜서 볕에 말리고 행낭(行囊)에 있던 남은 바지로 갈아입었으니, 그간의 실상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간신히 연산(連山) 중개태(中開泰)에 이르러서 묵었다. 50리를 갔다. 朝前發程, 抵峙登酒幕朝飯。 抵恩津三巨里中火, 仍爲發行, 未數里前當大川。 越川之時, 金奴失足, 背上負卜爲水半流。 艱出川邊, 笮手燎衣, 而換着行橐之留袴, 其間實狀, 不可盡詳。 艱抵連山 中開泰留宿。 行五十里。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25일 二十五日 일찍 출발하여 미태정(米太亭)에서 아침을 먹고, 벌교(筏橋)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백정자(柏亭子) 어귀에 이르러 동행과 헤어지고, 나는 사촌(社村)에 들어가 잠시 쉰 뒤에 사교(四橋)의 가교(柯橋) 댁에 들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재동(齋洞) 동면(東面)의 형님 장사지낸 일이 내일이라고 하므로 미옥(美玉)과 그길로 마륜(馬輪)에 갔다. 동편의 성윤(聖允) 집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재동 종가에 들어가 가묘에 배알하고, 궤연(几筵)에 절하고 곡한 뒤에 말할 수 없이 피곤하여 잠깐 눈을 붙였다. 早發至米太亭朝飯, 抵筏橋午飯。 抵柏亭子前, 與同行分路, 余則入社村, 暫憩後, 入四橋 柯橋宅。 敍話後, 言齋洞 東面兄主葬事明日云, 故與美玉, 仍往馬輪。 入東邊聖允家夕飯。 入齋洞宗家, 祗謁家廟, 拜哭几筵後, 困憊難狀, 暫爲接目。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1일 初一日 무안(茂安) 형님, 문대(文大)씨와 유둔(油芚) 시장 근처에 갔더니, 문중의 노소(老少) 몇몇 사람이 와서 모였는데, 사환(使喚, 잔심부름꾼)을 얻을 수가 없어 매우 걱정스러웠다. 마침 양리(楊里)의 석사 이계영(李啓榮)과 이순영(李淳榮) 종형제를 만났는데,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달리 동행이 없어 적막하던 중에 이처럼 동향(同鄕)의 친지를 만났으니 다행이었다. 내일 동행하기로 약속한 뒤에 사교(四橋)로 돌아와서 머물렀다. 與茂安兄主及文大氏, 往油屯市邊, 則門中老少略干來會, 而使喚不得, 可悶可悶。 適逢楊里 李碩士、啓榮、淳榮從兄弟, 作京行之人, 別無同行寂寞之中, 得此同鄕親知之人, 可幸, 而以明日同行之意相約後, 還來四橋留。

상세정보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사부

3일 初三日 ○아침에 북문 밖에 가서 송약수(宋若洙) 씨를 만난 다음, 그의 아우인 송민수(宋民洙) 네 작은집을 찾아 갔는데 외출하였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결국 가랑비 때문에 막혀서 그대로 머물렀다. ○朝前往北門外, 見宋若洙氏, 尋其弟民洙小家, 則出外故不見, 而還來主人家。 是日終爲微雨所阻仍留。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