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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듣자니, 치회(穉會)가 포천(抱川)의 묘소에 간다고 하므로 이른 아침에 내열(乃悅)과 함께 주동(注洞)에 갔다. 한낮이 되어서야 작별하고, 또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왔다. 아침을 먹은 뒤에 차동(車洞)에 가서 유숙하였는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데다가 침구(寢具)를 미처 가져오지 못하여 몹시 추워 편안히 잠들 수가 없었다. 새벽에 도령(都令)이 입궐한 뒤에야 비로소 잠이 들었다. 聞穉會作抱川墓行云, 故早朝與乃悅同往注洞。 至日中作別, 且有多般酬酢而來。 朝飯後, 往車洞留宿, 日氣猝寒, 且寢具未及持來, 寒冷不得穩寢。 曉頭都令之詣闕後, 始着一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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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동틀 녘 표진(表津)을 건너 천평(泉坪)에 이르렀다. 아침을 먹은 뒤에 상중(喪中)인 차규진(車奎眞)이 그 선조를 운암사우(雲巖祠宇)에 제향(祭享)하는 일 때문에 마침 그 서원에 왔다가 곧바로 찾아와서 만났다. 나와 화옥(華玉)에게 그 서원에 가자고 하더니 술과 안주를 내왔다. 오후에 우산(牛山)에 화옥을 보냈는데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이날 오후에 눈이 내렸다. 平明越表津到泉坪。 朝飯後, 車哀 奎眞以其先祖雲巖祠宇祭享事, 適來其院, 卽爲來見。 要去余與華玉於其院, 進酒肴。 午後送華玉於牛山, 不無悵然之懷矣。 是日午後雨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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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매일 아침저녁으로 간청하였다. 이는 다만 좌우의 여러 벗들이 곁에서 잘 말해 준데다가 장석(丈席)께서 먼데서 올라온 노력과 비용11)을 특별히 헤아려 지극히 잘 대우해 주었기 때문에 3~4일 머무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셨다. 오후에 예폐(禮幣)12)를 드렸다. 장석(丈席)께서 병으로 예를 행하기 어려운데도 이처럼 예폐를 받아주신 것은 모두 두터운 대우에서 나온 것이다. 목사공(牧使公)의 《정충록(精忠錄)》에 대한 일도 또한 예폐를 드렸으니 매우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連日朝夕懇請。 非但左右諸益從傍善告, 且丈席特恕遠方之勞費, 極爲善待, 故留底三四日受爽諾, 午後納幣。 丈席病不能行禮, 而受此禮幣, 此莫非待之厚。 牧使公《精忠錄》事, 亦爲納幣, 感幸感幸。 노력과 비용 원문의 '노비(勞費)'는 육체적인 노동과 금전적인 비용을 말한다. 예폐((禮幣) 고마움과 공경하는 뜻에서 보내는 물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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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새벽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 유치(㹨峙)에 이르러 요기하였다. 석곡(石谷) 박가(朴哥)의 집에 도착하였으나 흥양(興陽) 아객(衙客)의 행상(行喪)이 먼저 도착하여 함께 머무를 수 없었으므로 다른 여막으로 옮겼다. 흥양(興陽)의 마부들이 모두 와서 만났는데, 천노(千奴)와 오노(五奴)가 이미 출발하여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한창 속으로 답답해하고 있던 즈음에 오노가 서울에서 뒤따라 도착하였으니 매우 기쁘고 다행스럽다. 한천(寒泉) 형님과 나주(羅州) 형님이 상(喪)을 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듣고 애통해하던 중에 집안의 안부를 대략 들었는데, 저들이 출발할 때에 가속(家屬, 처·첩을 말함)이 한창 병을 앓고 있어 아직 완쾌되지 않았다고 하니, 여전히 걱정스럽다. 曉飯作行。 至谷城邑內秣馬, 至㹨峙療飢。 到石谷 朴哥家, 則興陽 衙客行喪先到, 不得同留, 故移入他幕。 興陽 馬夫輩皆來見, 聞知千奴 五奴已爲發行上去, 故方爲訝菀之際, 五奴自京跟到, 喜幸喜幸。 始聞寒泉兄主羅州兄主喪奇, 痛悼中略聞家間安否。 渠輩發行時, 家屬方痛, 未出場云, 猶爲悶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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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야당(野黨)의 송계천(宋啓天) 집에 이르렀다. 마침 신안의 석사 한용(韓溶)과 다른 두 사람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사동(蛇洞)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소로(小路)로 들어가 큰 고개 하나를 넘어 어렵사리 도산(道山)의 족질인 필흥(弼興) 집을 찾아가서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抵野塘 宋啓天家, 適逢新安 韓碩士 溶與他二人暫敍。 仍朝飯發程。 抵蛇洞中火。 入小路, 越一大嶺, 艱尋訪道山族姪弼興家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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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주인의 아들 순근(順根)도 동행하였으므로 우리 종에게 짐을 맡기고 그대로 길을 떠나 낙수(洛水)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나는 귀정(歸亭)에 들어가 잠시 외종수(外從嫂)를 만나고 나서 곧바로 길을 떠나 저물녘에 석곡(石谷)에 이르러 묵었다. 主人之子順根, 亦爲同行, 故付卜於吾之奴者, 仍爲發程, 抵洛水中火。 余則入歸亭, 暫見外從嫂, 卽爲發程, 暮抵石谷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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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初八日 ○비가 와서 종일 주인집에 머물렀다. 올 때에 천평(泉坪)에 들어가 상삼(象三)과 서로 약속하였는데, 낮에 상삼이 들어왔다. 저녁을 먹은 뒤에 선화당(宣化堂)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 고을 사원(祠院)의 사적(事蹟)을 감영(監營)에 보고하는 일에 대해 물었더니, "특별히 다른 뜻은 없고 각 사원의 사적(事蹟)을 보고자 한 것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밤이 깊은 뒤에 나와서 상삼과 함께 머물렀다. ○雨終日留主人家。 來時入泉坪, 與象三相約矣, 午間象三入來。 夕飯後, 入宣化堂談話, 而問其各邑祠院事蹟報營事, 則答曰: "別無他意, 欲觀各院事蹟云耳。" 夜深後出來, 與象三同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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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선화당(宣化堂)에 들어갔다. 상삼에게 일을 부탁하여 그 산송(山訟)에 관한 일을 건의하여 보냈는데, 마침내 제결(題決, 판결처분)을 얻어 오후에 나왔다. 하서가 김제(金堤)6)에서 돌아와 이에 함께 머물렀다. ○食後入宣化堂, 稱念象三, 以其山訟事立議送, 果如得題, 午後出來。 夏瑞自金堤還來, 仍與同留。 저본의 '題'는 '堤'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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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안개가 사방에 잔뜩 끼었기 때문에 삿갓을 쓰고 일찍 출발하여 율목정(栗木亭)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길을 떠나 몇 리 남짓 되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살고 있는 곳을 물어보니 흥양(興陽) 포두(浦頭)의 세동(細洞)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 성(姓)을 물었더니 명가(明哥)라고 하였는데, 명두혁(明斗爀)과 사촌 관계인 사람이었다. 이름이 두엽(斗燁)이라는 사람, 대구(大邱)의 서인준(徐仁俊) 두 사람과 그대로 동행하여 남원(南原)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以烟霧四塞之致, 冒笠早發, 抵栗木亭朝飯。 發程數里餘逢一人, 問所居則興陽浦頭細洞云, 故問其姓則明哥云, 而與明斗爀四寸之人也。 名斗燁及大邱 徐仁俊兩人, 仍爲同行, 抵南原邑內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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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추웠다. 병세가 점점 위중해졌다. 보는 사람들은 변고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이것이 참으로 운명이라 한들 어찌하겠는가. 다만 천노(千奴)를 보내 버린 한 가지 일만이 마음속에 원통하게 맺혀 있다. 사람이 죽은 뒤에는 만사가 모두 재가 되겠지만, 다만 우둔한 자식 하나가 생계를 꾸려 가지 못하게 될까 이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송동(宋洞)의 종인(宗人)과 향객(鄕客)이 두서너 번 찾아와서 보고 갔다. 寒。 病勢漸重, 觀者意其逢變, 吾亦末由, 此眞命也, 奈何? 但送奴一事, 寃結心頭。 人生身後, 則萬事皆灰, 而但愚魯一子, 使不得料生, 是所恨也。 宋洞宗人及鄕客數三來見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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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로 갔으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오는 길에 합동(蛤洞)의 윤 장령(尹掌令) 집에 들렀으나 병 때문에 만나지 못하였다. 또 근동(芹洞)에 들어가 중순(仲順)을 보고 왔다. 食後往靑坡, 不聞消息, 故來路入蛤洞 尹掌令家, 以病故不得相見。 又入芹洞見仲順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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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행장을 꾸려 서울로 출발하였다. 대개 지난해에 연시(延諡)한 뒤로 처음 길을 나선 것인데, 시호(諡號)를 내려 줄 때의 예관(禮官)에게 사례(謝禮)를 할 생각이다. 과역(過驛)에 이르니 봉동(鳳洞)의 송 도감(宋都監)과 지정(池亭)의 신생(申生)이 요로(要路)에서 전송하였다. 이어서 말에게 꼴을 먹이고 탄포(炭浦)에 이르렀다. 남원(南原)의 생아(甥兒)가 도중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병동(屛洞)에 와서 묵었다. 治發京行, 盖爲年前延諡後初行也, 爲謝宣諡時禮官之意也。 至過驛, 鳳洞 宋都監、池亭 申生, 要路餞行。 因爲秣馬, 至炭浦。 南原甥兒留待路中, 故暫話後, 來宿屛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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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初三日 오후에 연아(年兒, 아들 석년)와 조카 호(豪)를 돌려보내고 종인(宗人)인 지각(之珏)과 동행하여 낙안(樂安)에 이르렀다. 상중(喪中)에 있는 낙승(樂承) 박씨 집에서 묵었다. 午後還送年兒及豪姪, 與宗人之珏同行, 至樂安。 樂承 朴哀家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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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일찍 밥을 먹은 뒤에 서면로(西面路)에 이르러 이 좌수(李座首) 형제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동정(茂童亭)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순천(順天) 천평(泉坪)에 와서 머물렀다. 早食後, 至西面路, 逢李座首兄弟暫話。 至茂童亭中火, 來留順天 泉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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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경유(景猷)와 함께 동부(東部)에 갔다가 경모궁(景慕宮)으로 가서 화옥(華玉)을 만났다. 말을 사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소식이 없으므로 해질 무렵에 도로 나왔다. 與景猷同往東部, 因向景慕宮見華玉。 待其買馬, 而終無消息, 日暮時, 還爲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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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새벽에 출발하여 개태령(開泰嶺)을 넘고 선창(船倉)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이곳은 바로 신도(新都)의 하구(下口)인데, 돌아올 때에 구경하려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지나갔던 곳이다. 진치(盡峙)와 산정령(散亭嶺)을 넘어 공주(公州)의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오촌(鰲村)에 도착하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80리를 갔다.지난 28~29일 이틀 동안 내리던 비는 오촌에 이르니 곧 눈이 되었으므로 지나는 길의 질퍽거리는 상황을 말로 다할 수가 없다. 간신히 이곳에 도착하니 다리 통증이 심했다. 봄에 여기 왔을 때에 용담(龍潭) 정재팔(丁載八)을 만났었는데, 이번 여행길에서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정 석사(丁碩士), 옥천(沃川)의 석사 금석로(琴錫老), 임천(林川)의 석사 정현석(鄭玄錫)과 함께 용운(龍雲)의 집에 머물렀다.저녁을 먹은 뒤에 들어가 장석(丈席)을 알현하니 기후(氣候)는 일단 편안해 보였으나 숙환(宿患)의 여러 증세가 여전히 낫지를 않으니 걱정스럽다. 장석이 나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처럼 변고가 발생하는 해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번에 다시 얼굴을 본 것이 기쁘고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그대가 부탁한 글은 몸의 병 때문에 아직도 짓지 못하였으니 도리어 편치가 않네."라고 하셨다. 曉發越開泰嶺, 抵船倉朝飯, 此地卽新都下口也。 來時欲玩之意, 只爲望見而過。 越盡峙 散亭嶺, 抵公州 油城市邊中火, 抵鰲村, 日已暮矣。 行八十里。 去廿八九兩日雨, 到此見之, 則乃是雪也, 行路之泥濘不可言。 艱到此處, 脚痛大發。 春間來此時, 逢龍潭 丁載八矣。 今行相面可幸。 與丁碩士、沃川 琴碩士 錫老、林川 鄭碩士 玄錫, 同留龍雲家。 夕飯後入謁丈席, 氣候姑爲安寧, 而宿患諸症, 尙亦未瘳悶悶。 見我而言曰: "如此變年, 慮無所不到, 今此更面, 雖爲喜幸, 君之所托文字, 以身病尙不得製置, 還爲不安云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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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初九日 싸늘하였다. 북기막(北機幕)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원터(院垈)에 이르러 묵었다. 남쪽 지방 관행(官行)의 행차에 상일(喪日)을 네다섯 번이나 만났으니, 금년의 운기(運氣)가 참혹함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陰冷。 至北機幕, 中火秣馬。 至院垈留宿。 盖南中官行之行, 喪日逢四五, 今年運氣之慘毒, 從此可知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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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공주(公州)의 신막(新幕)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정천(定川)에서 묵었다. 해가 남아있는 동안 이성(尼城)에 갈 수는 있지만 전주의 마부 때문에 이곳 신막에 머물려는 것이다. 至公州 新幕中火 留宿於定川。 日力則可往尼城, 而全州 馬夫故, 欲留於此幕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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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일찍 출발하여 동산동(東山洞)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직산(稷山, 충남 천안지역 옛 지명) 읍내를 지나 개치(皆峙)7)를 넘어 두거리(豆巨里) 시장 근처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령(鎭嶺) 읍내를 지나 유성(油城) 시장 근처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공주(公州) 땅이다. 早發至東山洞朝飯, 歷稷山邑內越皆峙, 至豆巨里市邊中火。 歷鎭岺邑內, 抵油城市邊留宿。 行八十里。 公州地也。 개치(皆峙)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원덕리 개치골과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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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새벽에 출발하여 능측(陵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여산(礪山)에 이르러 시조(始祖) 산소(山所)에 들어가 성묘한 뒤에 내려왔다. 산지기 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산지기 김복손(金福孫)이 술을 사 와서 올렸다. 이어 점심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 소로(小路)로 들어가 기용(機舂)을 지났다. 호동(狐洞) 주점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연산(連山)6) 땅이다. 曉發至陵側朝飯。 至礪山入始祖山, 所省拜後下來。 山直家仍爲中火, 山直者金福孫 沽酒以進。 仍爲午飯後發程, 入小路歷機舂, 抵狐洞酒店留宿。 行七十里。 連山地也。 연산(連山)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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