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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呈鼓山任先生【憲晦】 寒水心期照。春風氣象間。淵源追栗老。事業接梅山。道秉昏衢燭。望高朝野班。小子彌瞻仰。宮墻奈莫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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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許厚卿【永栽 癸酉】 直眺可莽蒼。而動輒涯角。悵也。英儀英姿。未嘗暫忘於寤寐枕筆之間者。爲其志氣之或不頹墮歟。問學之或不疏歇歟。持心治己之或不脫略規矩嘗試新好歟。念念不舍。殆無所不到。忽得長錢別幅。縱橫滾滾。憂世道而知剝復之常。立課程而知思索之貴。綽乎有近裏勇往之味。此心始釋然以喜。天生英才。其意非偶然。困於心衡於慮。行拂亂其所爲。亦未心非玉成汝者。而苟或被。它乾沒。逡巡等待。鄕人與歸。則豈天生之本意哉。此當深思而加念也。俯詢諸條。近來所罕見。豈不可喜。但所諭似出於一時備例應文之爲。非由於憤悱若索之餘。無乃才敏爲祟耶。朱子曰敏底人用鈍底工夫。此言亦當深味也。有問不容無對。略貢以去。更就此反履之。大學首節三在字云云。章句三當字。是三在字之解也。經指示其所當在之地。章句是勉人之意。物格。先儒謂理到極處云云。格物物格。譬如行路而路盡。讀冊而冊盡。冊與路。雖待人讀之行之。而自物言之。不害爲冊自盡路自盡也。蓋理固已極至。而吾之心爲氣蔽。吾之知有卷未透。則心與理自不相干。是故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以求至乎其極。則天下之理。各有以詣其極而無遺餘。是謂物理之極處。無不到者也。且理雖無情意運用。而其隨遇發見。亦自有至神之妙。心之感而理無不應。此所謂其用之微妙。實不外乎一人之心者也。胡雲峰言性發爲情。心發爲意云云。胡氏說似有心性各發之嫌。故或有非之。然此蓋就其中。指其意象之相類者。而分配爲說。夫性有仁義禮智。而情之愛惡讓知。皆有苗脈之不可亂。故以情爲性發。心有主宰運用之妙。而意是計較商度者。故以意爲心發。然其實則情乃已發之心。而意之商度。亦性之理之分別裁制底。初非心性之發元有兩岐也。孝弟慈。始言於齊治章云云。孝弟慈。雖是修身之實事。而行之之地。乃在人已對立處。故於此始言之。如絜矩之矩。實自修身以上得之。而行此矩。則至治國平天下而始廣。故特標出於治平章。尹氏所謂其心收斂不容一物云云。其心收斂。不容一物。當做工夫看。而不容一物。是收斂得至密處。盤銘之釋云云。苟日新三字。意旣足矣。而又重言日日新又日新。何其煩也。且其義有何難知。而章句之釋。不憚煩而詳說之也。此固已審。而又於或問。張皇引伊尹武王之說。直不過磨驢之踏耳。是何故也。嗚呼。此聖賢喫緊爲人之苦心。苟讀此而不能奮發而興起。只作一場話說而止。則惡得免聖賢之罪人也。此正吾輩共勉處。心雖主乎一身。而其體之虛靈。足以管乎天下之理云云。此段以心與理相須之義而言。蓋自心而言。則心自有體用。自理而言。則理自有體用。而其理貫通。故吻然無間而交互相須者。自是其妙如此。然則理之用乃心之體。心之體乃理之用。蘆翁曰心無體。以物爲體。物之所以爲體者。以其妙用之具於心也。孟子所謂萬物皆備於我。正謂此也。心有人心道心。性有本然氣質。情有四端七情云云。此條恰似試場策題。不足置對。但心之根於性命者。謂之道心。生於形氣者。謂之人心。性之本來已然者。謂之本然性。受變於形氣者。謂之氣質性。情之粹然直遂者。謂之四端。有善有惡者。謂之七情。各就其地頭而看則可知。七情分配於四端及陰陽五行云云。七情與四端。貌狀自別。是以朱子謂七情不可分配四端。又以分配者。謂麤說謂難分。今必欲分配者。未知其得。朱子嘗曰七情自於四端。橫貫過了。橫非不好底。如經之有緯。不能相無者也。天地之化。如春夏秋冬之四時。其經氣也。如風雲雨露雷電霜雪之屬。其緯氣也。夫天人一理也。四七皆性發。而性之乘經氣而發者爲四端。乘緯氣而發者爲七情。則何可以分配哉。若欲分配於五行。則喜有宣暢意。怒有爆烈意。火之象也。哀有渙散意。懼有寒凜意。水之象也。愛有發生意。木之象也。惡有斬代意。金之象也。欲有黏濁意。土之象也。以陰陽言。則喜怒愛陽也。哀懼惡陰也。欲兼陰陽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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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尹在楠【己卯】 奉記可感足下之不我忘也。足下淳雅謹敏。已卜之眉睫。而莊嶽數年。不被他乾沒。回頭向冷淡寂寞之濱。則志勇尤可尙也。但此事畢生爲期乃可。乍往乍來。作撤無常。決無有成之理。念我在年時。亦自橫走中始回來。一心刻苦十許年。粗定頭緖。而虛聲攸曁。旋被蒙求。笭簏塡室。不免舍已耘人。白首悠悠。竟歸無聞。此非足下之前車耶。十年猶如此。況可時日責效耶。須於心裏。辦畵一規矩。無一息間。無一息忙。期之以畢生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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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州米原店夢拜先君 千里旅遊數月連。故鄕消息杳雲邊。中宵夢拜先君面。覺後不禁淚潸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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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화성(華城)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이침(泥砧)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 옛 지명)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曉發抵華城朝飯, 抵泥砧中火, 抵振威留宿。 行八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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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二十二日 ○여독(旅毒) 때문에 일찍 출발하지 못했다. 오후에 차동(車洞) 민 석사(閔碩士)에게 갔으나 날이 밝을 무렵 마침 고향으로 떠나서 그 아들만 잠시 만나 보았다. 아래 사랑 주인(舍廊主人)인 치항(致恒)이 마침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갔다. 정동(貞洞)의 석사 이희(李) 집에 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찾아온 율지와 확교(確橋)14)에 들어가 진사 유영도(柳榮度)의 집에 방문하였더니, 어서각동(御書閣洞)으로 이사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 달부(達夫)씨의 서간(書簡)을 전달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以路憊不得早發。 午後往車洞 閔碩士, 被明適作鄕行, 只有其子暫見。 往下舍廊主人致恒果在, 暫話後。 入西小門。 往貞洞 李碩士 家, 主人不在故不見, 而來訪與聿之入確橋, 訪柳進士 榮度家, 則移居于御書閣洞云, 故尋往其家, 傳達夫氏書簡, 還來主人家。 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를 학다리골이라 하였는데, 성리학자 퇴계 이황이 살았던 곳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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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아침을 먹은 뒤에 동행과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가 확교(確橋)에 갔다. 나는 송 판서(宋判書)의 집에 들러 판서(判書) 부자(父子)를 만나고 종각 쪽으로 돌아오니 동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대묘동(大廟洞)으로 가서 보성(寶城)의 종인(宗人) 귀환(龜煥)을 방문하였으나 마침 부재중이어서 통지하고, 지난해에 머물렀던 파정동(波井洞)의 기보(基甫) 집에 오니 주인은 일단 무고하였다. 한참 있으니 귀환이 마침 나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라온 연유를 이야기하였다. 그 먼저 서울에 도착하여 일의 기미를 살펴보았는데, 서울의 여론이 혹은 가하고 혹은 불가하다는 논의가 있으니 끝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길로 술집으로 나와 술을 사 마시다가 나는 남동(南洞)에 가서 잠시 마전(麻田) 김민계(金民桂)를 만나고 주인집으로 왔다. ○食後與同行入西小門往礭橋。 余則入宋判書家, 見判書父子, 還來于鍾閣邊, 則同行留待矣。 仍往大廟洞, 訪寶城宗人龜煥, 適不在故通奇, 而來于前年所住波井洞 基甫家, 主人姑無故矣。 移時龜煥果爲出來, 與之相話, 仍說上來之由, 則渠則先到京中, 探知事機, 則京中物議, 或可或不可之論, 未知末稍之如何云。 仍爲出來酒家, 沽酒相飲, 余則往南洞, 暫見金麻田 民桂, 而來主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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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아들이 김노(金奴)를 데리고 나왔다. 재동(齋洞)72) 귀산(龜山)73)의 제족들에게 모이라고 통지하여, 개인 문중의 제수는 대략 형편에 맞게 정하고, 8냥 7전으로 여장을 꾸리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김노를 율지에게 보냈다. 내일 추동(楸洞)에서 만날 생각으로 그대로 유숙하였다. ○家兒率金奴出來。 通奇于齋洞ㆍ龜山諸族來會, 私門中祭駄, 略略的定, 以八兩七戔錢 治行爲言。 故送金奴於聿之。 以明日相會于楸洞之意, 而仍留。 재동(齋洞)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 있는 재동서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여산 송씨 파족을 말한다. 재동파는 고흥 대서의 귀산파, 두원의 금성파, 동강의 대강파가 있다. 귀산(龜山)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귀산 마을이다. 여산 송씨 재동 귀산파의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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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中無聊。敬次河西先生古詩十韻。呈難窩 我是不平者。無人說寸心。悲歌從窮道。氣岸逐飛禽。宇宙獨彷徨。斜日下前林。大地三萬里。浩歌又狂吟。 獨撫荊卿劍。空抱伯牙琴。世人渾是夢。有誰會此音。允矣難窩子。才高意淵深。靜裏樂吾道。無愧屋漏沈。砭我狷狂客。勿使俗塵侵。此心若放過。歧路多嶇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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憶家弟允行【裕善】 千里西行數月留。那時利涉漢江舟。大都人物多情秀。到處江山足壯遊。憐我看雲眠日下。想君在道陟岡頭。願言遄返趨庭侍。爲解高堂父母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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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山齋趙領府【秉世】處義感吟二首 烈士殉君無古今。公歸泉壤好相尋。石頭城下同袁粲。止水亭前慕古心。正氣不隨寃氣散。家讐倂與國讐深。光揚節惠自天降。幾個男兒痛哭臨。國事蒼黃忍說今。二憂忠節復公尋。萬人幾人能辨義。一死當死不渝心。五疏披誠神可質。百身難贖恨尤深。泉臺此去應無愧。日夕趨陪列聖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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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金鳳于【永岐】哀桂庭閔尙書【泳煥】韻二首 忠義如公創見今。歲寒特秀柏千尋。醜虜知應驚破膽。廷僚孰不愧生心。壯氣昭回星斗極。愁懷慘淡海雲深。當時一死光千古。頭上分明白日臨。扶綱植紀古猶今。一死堂堂義路尋。凜凜氷霜凝碧血。明明天日照丹心。聲名長興華山重。寃恨同添漢水深。賣國欺君狗鼠輩。如何不愧上蒼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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章山齋小會 八月淸遊四老同。寒花晩葉碧山中。堪憐短髮星星白。爲惜斜陽冉冉紅。前哲貽謨瞻梓樹。故人有約抱絲桐。瓊篇如得空靑寶。浪讀千回便愈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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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일찍 출발하여 상삼례(上參禮)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여산(礪山) 읍내에 이르러 신동(新洞)의 백교귀(伯交歸)를 만나 그대로 점심을 먹었다. 작천(鵲川)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早發抵上參禮朝飯, 抵礪山邑內, 見新洞 伯交歸, 仍爲中火。 抵鵲川留宿。 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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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敬彬【興淵】共吟 歲暮孤村雪滿林。靑燈共對白頭吟。十年離合人全老。一席談論夜轉深。許過知心開草逕。不勞乘興訪山陰。江南春信梅先動。索笑簷端冷不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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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十五日 ○아침을 먹은 뒤에 북문 밖의 송약수(宋若洙) 집에 갔으나,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고 왔다. 영문(營門)으로 가서 순상(巡相)을 보고자 하였는데, 마두(馬頭)가 통자(通刺)하지 못해서 만나지 못하고 주인의 집으로 돌아오니, 간촌(看村) 박상현(朴祥炫)과 옹포(甕浦) 송격(宋格)이 도착하였다. 오후에 출발하여 삼례 천변주막에 이르러 묵었다. 30리를 갔다. -밥값으로 두 냥을 냈다.- ○食後往北門外宋若洙家, 則適出他不見而來, 往營門欲見巡相矣。 以馬頭不得通刺, 不見而還來主人家, 則看村 朴祥炫及甕浦 宋格來到。 午後而發, 抵參禮川邊酒幕留宿。 行三十里【飯錢二兩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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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떠나 과천(果川)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남태령(南泰嶺)을 넘고 강을 건너 이문동(里門洞)에 이르렀다. 화옥(華玉), 장계회(張啓晦)와 헤어지고 장 황주(張黃州)의 집에 들렀다. 장형백(張亨伯)의 소식을 물었더니 장단(長湍)으로 나갔다고 하여서 곧장 차동(車洞) 주인댁으로 왔는데, 별 탈 없이 이미 혼례를 치른 뒤였다. 未明登程, 至果川朝飯。 促鞭踰南泰嶺, 渡江至里門洞。 與華玉及啓晦分路, 入張黃州家, 問張亨伯消息, 則出去長湍云, 故直來車洞主人宅, 姑無故已行昏禮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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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十二日 몹시 춥다. 동틀 무렵 길을 떠나 구현(駒峴)까지 40리를 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사치스럽고 화려한 여점을 내 평생 처음 보았다. 여막(旅幕)과 장랑(長廊)52)은 기와집이 아닌 것이 없고, 그 규모를 보면 경성(京城)의 좋은 집 모양과 다름이 없었다. 말에게 꼴을 먹인 다음 출발하여 구현을 넘으니, 이곳은 바로 황해와 평안 두 도의 경계이다. 중화(中和)에 이르니 참으로 웅장한 고을이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재송원(栽松院)53)에 이르러 대동강 동쪽 언덕의 장림(長林)을 보니 수십 리가량 되었다. 기자(箕子) 때에 심어 놓은 수목이라고 하는데 울창하게 숲을 이루었고, 길은 숫돌처럼 판판하였다. 서둘러 대동강을 건너 여점(旅店)에서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極寒。 平明登程, 至駒峴四十里朝飯, 旅店之侈麗, 平生初見。 旅幕及長廊, 無非瓦家, 見其制度, 則無異京城好家舍模樣。 秣馬後, 離發踰駒峴, 則此是黃海·平安兩道之界也。 至中和, 則儘雄府也。 催鞭至栽松院, 見大同江東崖長林, 可數十里。 稱云箕子時所植樹木, 而鬱鬱成林, 其道如砥矣。 急渡大同江, 留旅店。 是日行百里。 장랑(長廊) 대궐 문이나 집 대문의 안쪽 좌우에 죽 붙어서 벌여있는 행랑으로, 군사들이 입직하거나 하인들이 거처하였으며, 물건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재송원(栽松院) 평양부 남쪽 11리 떨어진 곳에 있던 역원(驛院)인데, 원 주위에 소나무가 몇십 그루가 심어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1권 평안도 평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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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어제 초저녁부터 눈이 내려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동틀 무렵에 출발하여 냉정발소(冷井撥所)에 이르러 요기를 한 다음, 숙천(肅川) 읍내까지 15리를 가서 아침을 먹었다. 이날 눈과 비가 오락가락하였다. 게다가 길 위는 눈을 쓴 곳도 있으나 쓸지 않아 눈이 수북한 곳도 있어 말굽이 마음대로 나아가지 못하니 한탄스럽다. 간신히 운암발소(雲巖撥所)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75리를 갔다. 自昨日初昏雨雪, 達夜不止。 平明時發程, 至冷井撥所療飢, 至肅川邑內四十五里朝飯。 是日或雪或雨。 且路上或掃, 或不掃雪滿, 馬蹄不得任意前進, 可歎。 艱辛到雲巖撥所留宿。 是日行七十五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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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卄八日 밤에 눈이 내렸다. 날이 밝기 전에 사도(蛇渡) 사람을 전석치(磚石峙)에 보내고, 나는 머물러 기다리고 있으려니 답답하였지만 말에게 꼴을 먹이고 쉴 수 있게 한 것만은 위로가 되었다. 아침을 먹을 때에 화옥(華玉)이 비로소 도착하였기 때문에 즉시 길을 나섰다. 임실(任實)의 굴암(窟巖)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노구암(老狗巖)에 이르러 유숙(留宿)하였다. 夜雪。 未明送蛇渡人磚石峙, 余則留待悶悶, 但秣馬歇息, 是可慰也。 朝飯時, 華玉始到, 故卽爲登程。 至任實 窟巖中火, 到老狗巖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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