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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嶺 亂石叢林不見垠人間天上香難分層層擧足都無地黯黯凝眸但有雲澗注銀河生迅響壁懸瑤草動微芬聊知下界煙塵客應杷郵丞羽化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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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臺峰 履巉涉險興猶濃翠壁煙霞上短笻殘日鶴城仍下界靑天雉岳又南峯一盃嘯傲嗟何晩七尺低昂始可容不待郵亭丹火熟超然蛻殼伴喬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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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院庵 方外煙霞話宿緣平臨絶頂又林泉香名今古相傳地大眼東南不盡天雉啄餘音鍾半夜龍顚往跡石千年安知駕鶴僑邊客活佛飛仙兩得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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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海洋【自上海洋五里】 石路纔平更軟沙近江村店兩三家蒼蒼尙帶郊人色圃有香蔬巷有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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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斜里【自下海洋五里】 嶺路遲遲九曲斜馬頭炎氣鬱如霞征袍尙帶淸晶色漠漠江天眼欲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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糕淵【自九斜里八里】 嶺下緣江一路平店家相近見新甍怪他驛市紛忙界穩聽書生誦讀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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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邱驛【自糕淵二里】 江頭阧截露平邱孔路排鋪一小郵但看千條楊柳樹春光依舊掩長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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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일찍 일어나 동향(同鄕)의 여러 친구들과 작별하였다. 올 때 동행했던 이들은 모두 내려갔지만 나는 예조에 소장 올리는 일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하였으니 마음이 실로 난감하였다. 오늘이 비록 삼일제(三日製)이나 돈 문제가 판가름 나지 않아서 과장에 출입하는 것이 한탄스럽다. 급히 재동(齋洞)18)으로 갔더니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이미 과장에 들어갔다. 이에 급히 묘동으로 갔으나 공서(公瑞)도 과장에 들어가 상의할 수 없으니 답답하고 걱정스러웠다.삼청동(三淸洞)19)의 이 판서(李判書, 이헌기(李憲綺)) 집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흥양(興陽) 장보(章甫,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서원 건립하는 일의 전후 사적(事蹟)을 보고 싶다고 청하니 한번 보여 드리겠다 하고서 이에 책자를 드렸다.한참 뒤에 어디에서 온 음식을 나에게 나눠 먹자기에, 감히 먹을 수 없다고 하였더니 퇴상(退床)을 보내온 것이라 하여 배불리 먹었다. 음식은 모두 여행하면서는 보지 못한 것들이었으므로 매우 감사하였다. 한참 있다가 대감이 취하였으므로 나와서 다시 재동으로 가니 과장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공서(公瑞)와 함께 이 석사(李碩士)를 뵙고 상의하였더니 내일 다시 오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재동(齋洞)으로 돌아왔다.여해(汝海)와 예조에 소장을 올려 받은 제사(題辭)20)를 즉시 예조 장방(長房)21)에 들어가서 재록(載錄)하려 했으나, 서리(書吏) 배광옥(裵光玉)이 밖에 나가 부재중이어서 재록하지 못하고 도로 주인집으로 와서 머물렀다. 早起與同鄕諸益作別, 來時同行, 皆爲下去, 而余則以呈禮曹之事, 不得同行, 心懷實爲難堪。 今日雖三日製, 而以錢事之不得辦, 出入場中, 可歎。 急往齋洞, 則欲見之人, 已爲入場, 故急往廟洞, 則公瑞亦爲入場, 不得相議, 悶悶。 往三淸洞 李判書家, 暫話後, 請其興陽 章甫, 以建院事前後事蹟欲見, 則答以一覽爲言, 故仍納冊子。 移時有自何來飮食, 使余分食, 而以不敢之意言及, 則饋以退床故飽食。 飮食皆以在行時, 不見之物也, 多感多感。 移時大監醉睡, 故仍爲出來, 更往齋洞, 入場之人皆出來。 與公瑞請李碩士相議, 明日更來爲言, 故還來齋洞。 與汝海呈禮曹得題, 卽爲入去禮曹 長房載錄, 則書吏 裵光玉出外不在, 故不得載錄, 還來主人家留。 재동(齋洞) 서울시 종로구 재동으로, 명칭은 계유정난에서 유래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때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자, 이곳을 재로 덮어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은 잿골로 불렸고, 잿골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 재동이다. 삼청동(三淸洞)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마을로, 도교의 뿌리로 도교 신인 태청(太淸)・상청(上淸)・옥청(玉淸)의 삼청성신( 三淸星辰)을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제사(題辭) 조선 시대에 백성이 올린 소장(訴狀), 청원서(請願書), 진정서(陳情書)의 좌편 하단 여백에 관에서 써 주는 판결문 또는 처결문을 말한다. 주로 관찰사나 순찰사에게 올린 의송(議送)에 내리는 판결문을 말하며, 수령에게 올린 민원서에 쓴 처분(處分)은 '제김[題音]'이라고 한다. 장방(長房) 서리(胥吏)들이 집무하거나 거처하는 방, 또는 서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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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興德羲祿書【方住酒泉】 花笑柳眠春意方闌東望聞雲懷人政切卽承橘圅恭審和晷令起居候神護晏重允叶拱禱酒泉江山令人思想不覺十分爽豁以何淸福喫得無限趣味耶只自流涎而已向者題鳳微我有咎而何如是厚誚耶仰呵仰呵酒泉吏未及走告否記下長在路上髀肉欲消今纔閒歇而奈之何兩兼氄務遞相侵苦堆案朱墨少無招睡之暇良覺苦海浮生出亦難處亦難也卽騎馬依所敎印送一帖紙卽爲出付該驛以爲趁期入用之地如何如何姑不備謝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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晩秋憩雲龍村舍【丙辰】 煖日殊非昨夜霜輕衫妥怗野人床靑驢有氣生芻塢紫蟹多情濁酒觴塵事支離頭欲皓物華惆帳眼爲黃世間鳧鶴終難較不妨禾麻話短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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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進士肯謨書【方住丹邱】 日前賁然尙覺席上生香鳥嗁空檐春意寂寂際玆懷人政勤卽拜惠翰矧審邇間侍候連衛萬重實符願言衙候種種承安耶記下向者路憊尙此未蘇而本兼冗擾雜鎈困人殆無春蘇時融融意想自悶自憐敎意當拔例另施矣諒之也庭試榜眼何如是神速得見耶一遍謄寫後當卽還呈耳那更奉穩以踐看星之約否方解榻以竢姑留閣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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乘舟參禮前川 急湍驚瀨畏於瞿塘千里歸來最危津也豈意江南之路雨愈麤而水愈險乎洪濤激盪坐層溟渡口關心一小舲柔櫓未能橫截去篙人曳纜下東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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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五木川【自參禮三十里云自金剛店至此皆屬全州地】 昨夜憩參禮之客于宿於一舍之地非徒前川可畏往往急水阻搪去馬行到棗院蒼峰小僕夫幾至葬魚腹之境令人不覺毛骨俱疎野靄山霏似捲簾天光漏泄月窺簷空床臥聽千溝澮忽念秋江老子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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秣馬泰仁邑店【自五木川六十里云】 昔之如砥一路所到處無非水國光陰又何雨雨不歇江南之天欲困我一鈍翁而然耶萬木南山白鳥飛秋塘菡萏正芳菲披香亭外無心客煙雨長堤寂寂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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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抵井邑新店【自泰仁邑四十里云】 苦哉雨也夜色濛濛之中前行數僕夫誤陷泥澤如于干行裝未免沈淪千里携來之物不能無一悵然也十里黃昏野水西僕夫無路悵棲棲螢光短炬尋何去畢竟如蝸小屋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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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宿簧山 凹凸長郊路疲驢趁暮鴉款迎如得友團聚似還家獨酒兼供菜深燈自落花半宵情話穩耕織有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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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普坪【昌平】訪朴斯文東龜 稼圃東郊里關窓坐讀書側聽仍剝啄知是故人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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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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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아침 먹기 전에 자윤(子允)과 계성사(啓聖祠)35)로 가서 김팔주(金八柱)를 만나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별하고, 경모궁(景慕宮)36)으로 내려와 수문장(守門將) 장인원(張仁源)이 출번(出番, 당직 근무를 마치고 나옴)했는지를 물으니 아침 일찍 출번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곧바로 파천동(波川洞) 그의 집으로 갔는데, 밥을 먹고 출타한 터라 만나지 못해 몹시 아쉬웠다. 이 사람은 홍원(洪原)37) 사람이다. 무침교(無沈橋)38)의 진사 송현재(宋顯載) 집에 찾아갔는데, 마침 출타하여 만나지 못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회동의 송 장성을 만나 전주 북문의 송민수 서간에 답장을 받고자 한다고 말하니, 공교롭게 몸이 아파서 답장을 쓰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대로 작별하였다. 송지순의 집으로 내려와 작별한 뒤에 낙동(洛洞)의 구백(舊伯) 이광문 집으로 와, 잠시 만나고 나서 작별하였다. 용동으로 오니 자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개간소(開刊所)의 여러 사람과 작별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아침을 먹은 뒤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는 길에 확교(確橋)39)의 송 판서 집에 들렀으나, 송 판서가 출타하여 작별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아들 송지학(宋持學)과 작별하고 나와 주인집으로 왔다. 차동(車洞)40)으로 가서 민 석사와 작별하고 오니 공서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에 정동의 석사 이혜길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날이 저무는 바람에 출발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그러므로 저녁을 먹고 난 뒤 정동에 와서 묵으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갔다. 저녁을 먹은 후 정동으로 갔다. 밤에 비가 내렸다. ○朝前, 與子允往啓聖祠, 見金八柱, 移時談話。 仍爲作別, 下來景慕宮, 問張守門將仁源出番與否, 則早朝出番云。 故直向波川洞其家, 則食後出他, 故仍爲不見, 悵悵。 此人卽洪原人也。 尋往無沈橋宋進士顯載家, 則適出他不見, 來路入晦洞見宋長城, 以完北宋民洙書簡受答爲言, 則適以身病不爲修答云。 仍爲作別。 下來宋持淳家, 作別後, 來洛洞舊伯李光文家, 暫見後, 仍爲作別。 而來龍洞, 則子允來待矣。 與開刊所諸人作別, 來主人家。 朝飯後, 往貞洞暫話。 來入確橋宋判書家, 判書適出他, 不得作別。 只與其子持學作別, 出來主人家。 往車洞與閔碩士, 作別而來, 則公瑞來待矣。 午後貞洞李碩士惠吉來訪談話, 以日暮之致, 不得發程, 仍留。 故夕飯後, 來留貞洞之意, 懇托而去。 夕食後, 往貞洞。 夜雨。 계성사(啓聖祠) 서울시 문묘(文廟) 안에 공자(孔子) 등 다섯 성현의 아버지를 모신 사당이다. 경모궁(景慕宮)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그의 비(妃) 헌경왕후(獻敬王后)의 사당이다. '경모전(景慕殿)'이라고도 했다 홍원(洪原) 함경남도(咸鏡南道)의 남부해안 중앙에 위치하는 군이다. 무침교(無沈橋) 서울시 중구 예관동과 충무로5가 부근에 있던 다리이다. 청계천의 지류인 묵사동천(墨寺洞川)에 있던 다리로 '물에 잠기지 않는 다리'라는 의미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와 <수선총도> 및 <슈션전도>에는 이 다리 이름이 '상무침교'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무침교와 상무침교를 혼용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명 '무침다리' 혹은 무침교를 줄여서 '침교'라고도 불렀다. 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 차동(車洞) 중구 의주로1가ㆍ순화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수렛골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추모동'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에 비석을 세우고 그를 추모했던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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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初十日 ○아침 전에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용동으로 가서 종일 수정 문적을 보고 왔다. ○朝前, 往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龍洞, 終日見修整文蹟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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