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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저교(楮橋)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능측(陵側)에서 묵었다. 至楮橋中火, 留宿於陵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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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경신) 1800年(庚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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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三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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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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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남태령(南泰嶺)66)을 넘었다. 승방점(僧房店)67)에 이르러 떡을 사서 요기한 다음, 강을 건너 수청거리점(水淸巨里店)에 이르렀다. 아침을 먹은 뒤에 청파(靑坡)의 길가에 이르러 동행과 서로 헤어지고, 나는 박영대(朴永大)의 집에 들어갔다. 이어 주인과 요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서소문(西小門) 밖 이희(李)의 집에 갔으나 주인은 부재중이었다. 그런데 어떤 모르는 조관(朝官) 한 사람이 내게 묻기를, "흥양에 사십니까?"라고 하므로 내가 답하기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하자 이어 말하기를,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바로 회덕(懷德)68)에 사는 장소(長小) 송명규(宋明圭)인데, 주인과 친사돈 관계인 사람이었다. 가지고 온 민어(民魚)를 노비에게 들여보내니 안채에서 말을 전하였는데 전일의 정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예조의 서리 안인성(安寅成)을 만나기 위해 예조에 갔더니 예조의 직방(直房)69)으로 들어갔다고 하므로 그길로 직방(直房)으로 갔다. 나는 문 밖에 서서 주인에게 통지하게 했더니 곧바로 나왔다. 선 채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나서, 먼저 재록(載錄)했는지의 여부를 묻자 곧바로 재록하였다고 하였다. 술집에 함께 나가자고 청하자 옷을 입고 나왔는데, 곧바로 나오면서 《사원록(祠院錄)》을 가지고 나왔다. 직접 보니 과연 재록되어 있어 매우 다행스러웠다. 대개 이번 여행길은 전적으로 이 일을 보기 위하여 왔기 때문에, 이 일이 이처럼 재록(載錄)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그길로 함께 술집으로 나와 술을 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액(賜額)을 청한 일에 대해 언급하였더니, 이 일은 큰일이라서 수령이 쉽사리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유생의 상소가 있더라도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기약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또 첩미(帖尾)에 대한 일도 언급하니, 그가 관계된 바가 아니어서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관장하는 사람과 상의해 보겠다고 하기에 내일 다시 오기로 약속을 하고 나왔다. 광교(廣橋) 경주인(京主人) 집에 들어가 잠시 쉬다가 저물녘에 주인집으로 나왔다. 曉發越南泰嶺, 抵僧房店, 買餠療飢, 仍爲越江, 抵水淸巨里店。 朝飯後, 抵靑坡路邊, 與同行相分, 余入朴永大家。 仍爲主人療飢, 暫憩後, 往西小門外李家, 則主人不在, 而有不知朝官一人, 而問余曰: "在興陽?"云, 故答曰: "何以知之?" 仍曰: "有知之道"云, 故仍與敍話, 則乃懷德居宋長小 明圭, 而與主人親査人也。 持來民魚, 使奴婢入送, 則內間傳語出來, 不忘前日之意。 爲見禮吏 安寅成 往 禮曹, 則入去禮曹 直房云, 故仍往直房。 余則立門外, 使主人通奇, 則卽爲出來。 立談數語, 先問載錄與否, 則卽爲載錄云, 請與出去酒家, 則着衣出來矣。 卽爲出來, 而《祠院錄》持來, 親見則果爲載錄, 幸幸。 盖此行專以爲見此事而來矣, 此事若此載錄, 可幸可幸。 仍與出來酒家, 買酒相飮敍話, 仍說請額事, 則此事大事也, 倅難易成, 雖有儒疏, 畢成難期云矣。 又論帖尾事, 則渠非所關, 不可詳知, 與所掌之人相議云云, 故以明日更來爲約而出。 入廣橋 京主人家暫憩, 乘暮出來主人家。 남태령(南泰嶺)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서 과천시 과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승방점(僧房店) 승방평(僧房坪)에 있었던 객점을 말한다. 승방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승방뚤・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회덕(懷德) 대전광역시 대덕구 회덕지역의 옛 지명이다. 직방(直房) 조방(朝房)이라고도 하는데, 조정의 신하들이 조회(朝會) 때를 기다리느라고 모여 있던 방이다. 대궐문 밖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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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二十七日 새벽에 출발하여 황화정(皇華亭)에 이르자, 새벽빛이 이제 막 밝아왔다. 전라도의 첫 경계에 들어섰으므로 각각 시 한편을 지었는데, 공서가 먼저 읊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이제야 전라도 경내로 들어오니(始入全羅境)때마침 새벽빛이 막 밝아오누나(時當曉色新)우리 전라도 길이라 하니(道吾之道也)정신이 한층 더 상쾌해졌네(快活更精神)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경내로 들어서니 내 마음 한결 기쁘고(入境吾心喜)먼동이 트니 날이 점차 새로워지네(開東日漸新)오늘 아침 두 가지의 아름다움 함께하니(今朝兼二美)이제야 정신이 상쾌해지는구나(方覺爽精神)최진욱(崔震煜)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이른 새벽 우리 경내로 들어오니(凌晨入我境)고향의 맛 차츰차츰 생겨나 새롭네(鄕味漸生新)하늘이 어리석은 생각 한이 될 줄 알아(天知恨迷意)아침 햇살 비춰 정신을 맑게 하네(初日照精神)이어 대추(大棗)와 떡을 사 먹고, 최진욱과 작별하였다. 소로(小路)에 들어가 여산(礪山)의 심천(深川)에 이르러 일가인 송함보(宋涵甫)와 아침을 먹고, 이어 〈제각중건통문(祭閣重建通文)〉을 전하였다. 새벽에 출발하여 여산읍(礪山邑)에 이르러 호산춘(壺山春)79)을 사서 마시고 신점(新店)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70리를 갔다. 曉發至皇華亭, 曙色初明, 全羅初境, 故各作一聯, 公瑞先吟曰: "始入全羅境, 時當曉色新。 道吾之道也, 快活更精神。" 余次曰: "入境吾心喜, 開東日漸新。 今朝兼二美, 方覺爽精神。" 崔震煜次曰: "凌晨入我境, 節味漸生新。 天知恨迷意, 初日照精神。" 仍買棗餠相食, 與崔作別。 入小路至礪山 深川, 與宋涵甫同宗朝飯, 仍傳致《祭閣重建通文》。 曉發抵礪山邑, 買飮壺山春, 至新店中火, 至參禮留宿。 行七十里。 호산춘(壺山春) 찹쌀과 멥쌀로 세 번 빚은 술이다. 전라북도 여산(礪山)의 특주로서 여산의 별호가 호산(壺山)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술의 특징은 밑술을 두 번 담그고 다시 덧술을 하여 세 번을 담그는 데 있다. 조선 중엽 이후의 《산림경제》·《주방문(酒方文)》 등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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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二十九日 아침을 먹기 전에 출발하려고 하니 송민수(宋民洙)가 돈 1전 5푼으로 아침밥을 사먹으라고 주었다. 노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다시 동(銅) 1관(貫)을 빌려 쓰기를 청하니, 송약수(宋若洙)가 한 젊은 종인(宗人)을 불러와 돈 2전을 가지고 오라 하면서 한 자리의 술값이나 하라며 도움을 주었다. 아침에 전성철(全聖哲)의 집에 이르러 아침을 먹은 뒤에, 유석하(柳錫夏)와 영윤(永允)을 데리고 함께 서문(西門) 안의 송덕진(宋德瑨) 집에 갔다. 그 사람은 바로 여산송씨(礪山宋氏)로 부내(府內)에 살고 있을 때 나주(羅州) 주인이 되었는데, 영저(營底)에서도 권세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예방 영리(禮房營吏)80)인 정읍(井邑) 이동환(李東煥)과 주객(主客) 사이의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몇 자 써주기를 청하자, 송덕진이 그의 가동(家僮, 어린 사내 종)을 불러 우리 두 사람을 영청(營廳)에 데리고 가서 예리(禮吏)에게 편지를 전하니 아전이 찾아내었다. 지난번 상경했을 때에 육충사(六忠祠) 열록(列錄)을 기록해 두었다가 《사원록(祠院錄)》에 재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의 기록은 아직도 선화당(宣化堂)에 있고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예리가, "안에서 나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착실히 기록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록을 직접 보지 못하고 돌아오니 마음이 매우 답답하였다.장흥(長興) 벽사(碧沙)의 역리(驛吏) 김방업(金邦業)은 재작년 오촌(鰲村)으로 가는 길에 마침 낙안 도중에서 만나 그대로 길동무하며 간 영저(營底)의 사람이다. 나와 정이 있어 육충사(六忠祠) 재록하는 일을 편지로 부탁하였는데, 그 조용한 때를 이용해서 예리(禮吏)에게 부탁해 줄 것을 신신당부하여 말했다. 돌아올 때 또 송덕진(宋德瑨)을 만나 다시 편지로 부탁하고는 그대로 출발하여 남문 밖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정자동(亭子洞)에 이르러 묵었다. 25리를 갔다. 食前欲爲離發, 則民洙以一戔五分錢, 買食朝飯之意給之。 路貰不足, 故更請一貫銅貸用, 若洙招來一少宗人, 二戔錢持來云, 而惠以一時之酒債矣。 朝到聖哲家朝飯後, 與携錫夏、永允, 偕往西門內宋德瑨家。 其人卽礪山之宋, 而居在府內時, 爲羅州主人, 而營底之有權者也。 其人與禮房營吏 井邑 李東煥, 主客相親之間, 故請以數字書, 則其人呼其家僮, 陪我二人往于營廳, 傳書于禮吏, 吏搜出。 頃者上京時, 書托六忠祠列錄, 欲載《祠院錄》矣。 右錄尙在宣化堂, 姑未出來, 故其吏言, "內待後出來之日, 着實載錄。"云, 故未得親見載錄而歸, 心甚㭗㭗。 與長興 碧沙驛吏金邦業, 卽再昨年鰲村之行, 適逢樂安路中, 仍爲作伴於營底之人也。 與我有情故, 書托六忠祠載錄事, 而乘其從容時, 言屬禮吏之意, 申申言之。 來時又見宋德瑨, 更爲書托, 而仍以發行, 抵南門外中火, 抵亭子洞留宿。 行二十五里。 예방 영리(禮房營吏) 예방은 조선 시대 지방관서에서 예전(禮典) 관계의 실무를 맡아보던 부서 또는 그 일에 종사하던 향리를 말하고, 영리(營吏)는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말단 관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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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宿山陽驛舍【銀溪屬郵自竹坡嶺二十里】 黃葉寒天兩三里落何其瘦生瑞雲行色又山陽一樣蕭條孰短長却念曩時沿海驛此諸玆土尙豪强白飯黃鷄勞遠行村盤瓦器野人情山郵一宿前緣否臥聽樵歌月下聲風露穿囱夜氣淸松燈膏火半迷明三更不寐支高枕搗練聲中遠客情【兩三殘村搗衣聲終夜不絶可怪】〇十一日戊午霜寒而晴〇朝發山陽驛四十里狼川邑【縣監尹性善蔭】十五里原川驛【銀溪屬郵〇銀溪本驛在金化】中火二十五里仁嵐驛【自仁嵐驛以後皆屬丹邱】宿所【春川支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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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洞路中【自山陽十里】 行過幾回荒峽忽看淸溪抱流平郊漸豁禾稻離離有秋色而村里物色何其一樣冷落但溪路邊石壁阧截松林抽直似或有幽人亭臺是可以稍慰詩眼瑟颯霜華曉色寒背巖紅葉半凋殘山行十里天開野流水聲中帶喜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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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蓮庵 古松新柳掩疎籬山下平郊路十岐丹碧小庵何寂寂空留一兩老師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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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方街路中【自退洞五里】 山開川迴野禾狼藉狼川之名或取於斯歟往往路上兩兩健丁赤條條相與打稻爲窮民可以一賀千山抱一郊碧水相周匝禾積立層層勝看須彌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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憩馬神林【自嶺上十里】 二月春猶早疎楊不掩樓臘歸仍細雪客到又殘郵磵籟氷初解山容瘴未收豊供辦何處荒屋苦淹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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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杻峙【自神林十里】 投鞭借笻力裊裊上危巓箕脚如無地擡頭只有天置郵關一路車轍石千年笑爾城隍鬼飄然欲化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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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可利坡嶺【自丹邱二十五里】 靑袍老客訪名區慣眼千峰出馬頭雨雪無情逢此日泉林有氣異前秋一年東國多奇會二月南關又遠游石路不辭行役苦詩魂浮上子規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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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松峙復用前韻【自杻峙二十里】 杻嶺支離度崔嵬復一巓谷留盤古雪石立女媧天白馬重來地丹楓已去年輿人忽來候喜作半空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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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巨廩垈復用前韻 寂寂迷津訪寺門風吹嫩柳露溪村留連三日烟霞屐行過千年木石園啼鳥聲邊仍邃壑落花香夷又靈源聊知指路靑山客應笑騶徒左右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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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元耘谷墓 宿草荒碑八尺長前朝國子姓名香誰知千古烟霞境一片邱陵有首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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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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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龍淵【自九成臺三里】 壯哉奇哉俄者舞鳳飛鳳乃霸上棘門之兒戱也萬仞削壁蒼蒼黯黯中有一道白虹炫爛直掛銀淙玉沫從空亂落下有圓沼匯泓無底卽九龍所蟄云盈科而流爲千回萬折之澄潭門路可爲一里而滑巖欹側匍匐而進戰兢難持差跌一足則閻羅國判在頃刻欹巖稍平處有尤庵先生筆怒瀑中瀉使人眩轉八字九龍淵門外南有影子池【石上寬平處匯成小池不增不減照見九龍瀑之影恍惚尤奇故稱爲影子池今原判爲高城守時肇錫名鐫刻云】淵之上流乃八潭也列在萬仞壁上層層可觀云而憚於攀援未能往見可悵盖自神溪穿金剛門非不險矣而尙可以履涉自金剛門抵玉流洞往往有石磴斷截處便以棧道牽補危險難狀度玉流洞入九龍淵愈往愈險百丈斬絶之壁依一線層棧惴惴焉如集于木者不知爲幾周回劍閣之鳥道太行之羊腸未足以喩其險也雖然路愈險而景愈奇從古韻人之探奇忘險剔開危徑良有以也八潭之路加險於九龍淵云而奇景則想未必更加於九龍瀑也歟◌椒泉翁詩曰仄棧危梯瞥過輕晴虹忽見半空橫非惟石滑難移足却怕龍驚不敢聲珠沫散飛疑雨灑晶波直瀉激雷鳴先生筆蹟留巖面揮動雄豪勢可爭晴虹一道爛銀光掛壁鮫綃萬幅長白練四時何不息玉袍應裏九龍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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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隍堂【在掠庫與百川橋間】 關東之俗多尙叢隍所過峽中往往排置或以瓦屋或以石屋或以板屋或以屈皮屋或以薪屋茅屋麻屋不一其規過掠庫未到百川橋又有一城隍祠云是高城古太守盧春於擊舟巖邊迎楡樹上五十三佛奉之山寺今所謂楡岾寺是也盧春後捨身爲佛將向楡岾其妻亦從忽於路中逢雨謂其夫曰雨意如此以室中所曬木緜未及收斂可惜盧春笑顧曰嗟乎君猶有塵念未可以從我游諸天只在此間爲城隍神足矣便不顧而去其妻仍留此地爲叢祠神掠庫民歲歲崇奉如儀若不能祭祀豊潔則狗嶺運米之路每有虎火前犯之患楡岾寺僧徒亦備齋供燒香虔禱歲以爲常云望夫山色翠眉低寂寞荒祠落葉迷雨裏木緜能忘否西風蕙帶正凄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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