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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一橋店【公州境自燕岐邑二十里】 野中店屋與市肆相接十餘家夾道而頗繁華與錦營不甚相遠而漸有江南風味也歟密雲疎雨市壚頭近水蒼蒼夜色浮初到錦州猶可慰無情濁酒乍淹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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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日新驛【自一橋二十里】 三年之客南歸幾日始踏舊行之路馬首山川亦足以慰永懷也千山慣眼露蒼蒼野水西頭馹路長名以日新何所取數家猶帶舊荒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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憩針谷店【谷城】 兩山中圻一江橫亂石崩沙照眼明白里遠游騷氣在十年重到感懷生斷連牛鞅靑樵色漏落魚梁白浪聲忽念漢東冠盖路月谿頭尾似今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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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宿獐巖店 山下稜尖石路懸江風搖落二更天松明孤火如蝸屋解得征鞍寄一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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往穎尾亭訪申尙書錫愚【七月初三日】 數里城東隙地優亭樓六月坐疑秋不閒寧識園林好有定方看市俗浮芳草欲眠深巷寂綠楊相掩小塘幽也應凉簟遲遲枕臥念前塵夢裏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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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潺水驛【求禮】 呑山吐野大江脣漁釣耕樵足四鄰可惜東湖好風水如何付與馬前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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憩竹岸白生家【復用前韻】 行行且憩動詩脣竹下黃茅百室鄰可笑膏梁年少子不知山水放狂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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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賦補闕【六月十八日夜獨吟一絶而不載可怪】 餞別春三又夏三幾年怊悵憶江南無端但索長安米兩鬢霜華對鏡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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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石下拈淸律沈霞村亦至【六月二十六日】 客榻懸如泛泛橈更看南斗近西杓一年鏡裏鬚何雪萬事樽前面可潮潔操常思芳杜采希音自惜老桐焦美人弱水三千里那得黿鼉渡有橋泉滑峰尖孰使然有邊天地坐無邊蒼茫往跡浮雲鶴頃刻寒聲古木蟬水閣桃花如昨日雨窓梧葉又今年一盃痛歸諸般念靜看茶廚斷續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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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下婢夫林永根回甲供一卓戱用前韻【六月念七日】 托身喬木坐天然盡日摴蒱老此邊健子擔肩應似犢瘦妻粧鬢復如蟬平生有酒尋常債快活無愁六十年小竈刀聲何霍霍淸晨撲鼻聞香烟閑忙適性兩然然自在車塵馬跡邊老去昻莊頭不鶴醒來彈束殼如蟬妻能調瑟消長夜子又傳觴送暮年寒廚白飯猶云樂何處膏香別有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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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서반(西泮) 김재광(金再光)의 집에 들어갔다. 오후에 다시 예조에 갔다가 신시(申時, 오후 3시~5시까지) 무렵에 과장(科場)으로 들어가 밤을 새웠다. 入西泮 金再光家, 午後復來禮曹, 申時量入場中達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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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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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꼭두새벽에 밥을 먹고 궐문 밖에 갔다. 박씨 척족(戚族)도 모두 와서 모였는데 오늘은 바로 삼일제(三日製)17)가 있는 날이다. 동이 틀 무렵 돈화문(敦化門, 창덕궁 정문)으로 들어가 진선문(進善門)18)에서 숙장문(肅章門)19) 앞까지 장막을 설치하고 좌정(坐定)하였다. 잠시 뒤에 인정전(仁政殿)20)으로 들어오라는 명이 있었기에 인정문(仁政門)21)으로 들어갔다. 동편의 인정전 월랑(仁政殿月廊)22)에 앉아 '근원이 있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밤낮으로 흘러서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23)라는 부제(賦題)24)로 부(賦)를 지어 올렸다. 대개 경과(慶科)25)를 치르는 날이라서, 팔도의 과유(科儒)들이 모두 전정(殿庭)에 모였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曉頭食飯, 往闕門外。 朴戚亦皆來會, 而是日乃三日製也。 平明入敦化門, 自進善門, 至肅章前, 設幕坐定。 有頃有入仁政殿之命, 故入仁政門。 坐東邊月廊製進, '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進, 放乎四海'賦, 而盖當慶科之日, 八道科儒, 咸集殿庭, 其數夥多, 不可言矣。 삼일제(三日製) 유생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하여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제술 시험으로, 절일제(節日製)의 하나이다.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 관각(館閣)의 여러 당상관이 성균관에 모여 거재생(居齋生)과 지방 유생에게 제술(製述)만으로 시험을 보인다. 진선문(進善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錦川橋)를 건너면 나오는 중문(中門)이고 창덕궁 창건 무렵에 세워졌으며 1908년 인정전 개수공사 때 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숙장문(肅章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을 통과하여 금천교(錦川橋)와 진선문(進善門)을 지나면 진선문 맞은편에 나오는 중문(中門)이다. 숙장문은 성종 6년(1475)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을 성종이 낙점하여 사용된 이름으로,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공사를 통해 재건되었다. 인정전(仁政殿)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조정의 각종 의식이나 외국 사신의 접견을 하던 곳이다. 인정문(仁政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에 이르는 정문으로, 국왕 즉위식이 거행된다. 인정문은 태종 5년 창덕궁의 창건 때 다른 전각들과 함께 지어졌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인정전 월랑(仁政殿月廊) 월랑(月廊)은 궁궐이나 사찰과 같이 규모 있는 건물에서 앞이나 좌우에 줄지어 만든 건물을 지칭한다. 비슷한 의미의 말로는 행랑, 행각, 상방이 있다. 기둥과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는 복도 모양의 형식을 갖춘 것도 있고, 건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종묘의 월랑은 익실의 끝에서 직각 방향으로 연접한 건물을 말한다. 근원이……이른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나오는 구절로, "근원 있는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 밤낮으로 흘러서 구덩이를 채우고 난 뒤에 나아가 사해에 이른다. 학문에 근본이 있는 자가 이와 같은지라 이 때문에 취한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하였다. 이는 사람이 실제 행실이 있으면 그만두지 않고 점차 진보하여 지극한 경지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일성록》 정조 18년 갑인(1794) 2월 21일(기묘)에 "인정전에 나아가 삼일제를 행하였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부제(賦題) 과거를 보일 때 과문(科文)의 부(賦)를 지으라고 내는 글제목이다. 경과(慶科)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로 보이는 과거이다. 이는 특별히 대궐 뜰에서 보이므로 정시(庭試)라 하며 문무과(文武科)에 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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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차동에 머물렀다. 동향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므로 약간의 글을 써서 집에 소식을 부쳐 보냈다. 아침을 먹은 뒤에 근동(芹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留車洞。 同鄕諸人皆下去, 故付送家信若干字。 食後往芹洞,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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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일찍 황해 감사가 머물고 있는 곳에 갔으나 어수선하여 얼굴을 보지 못하고 왔다. 이날은 황해 감사가 떠났다. 早往海伯所住處, 撓不能相面而來。 是日海伯出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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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十八日 비가 내렸다. 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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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十九日 행장을 꾸려 천노(千奴)를 고향으로 돌려보냈는데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다. 治送千奴還鄕, 而情懷頗不安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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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흥양이 와서 천노가 올라온다고 기별해 주었는데, 여산(礪山)에서 뒤처졌다고 하였다. 고대하던 끝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興陽來言千奴上來之奇, 而礪山落後云, 苦待之餘, 稍可寬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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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주동(注洞)에 가서 정오(正午)에 돌아오니 천노가 왔다. 집안 소식을 상세히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책값이 태반이나 오지 않았으니 이를 장차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往注洞向午出來, 千奴來矣。 詳聞家信可幸, 而但冊價錢太半不來, 此將奈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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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정시(庭試)를 보는 날이다. 꼭두새벽에 동접(同接)들과 과장에 들어가려고 관문(關門) 밖에 갔더니, 날이 밝기 전이라서 연달아 매달아 놓은 등(燈)이 하나의 큰 장관이었다. 이어 성균관 아래 집춘문(集春門)71)으로 가서 간신히 문에 들어서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과거보는 유생들이 모인 것은 봄에 열린 과거에 견주어 못하지 않았다.진시(辰時)가 되어 출제(出題)되었다. 표제(表題)는, '주(周) 나라 신하들이 하례하였는데, 우(虞)와 예(芮)가 송사하러 왔다가 국경에 들어오는 날에 밭갈이를 하는 자가 밭을 양보하고 길 가는 자가 길을 양보하자 물러나 다투던 밭을 한전(閑田)으로 삼았다는 것을 두고 의작(擬作)하라[擬周群臣賀虞芮來訟入境之日耕者讓畔行者讓路退以所爭之田爲閒田]'72)였다. 그런데 우리 동접들뿐만 아니라 과장 안의 거의 절반이 백지를 내고 나왔다. 우리도 백지를 내고 저물녘에 나왔다. 오는 길에 차동 우 참봉(禹參奉)의 집에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인집으로 나왔다. 乃庭試日也。 曉頭與同接入場次, 往關門外, 則日未明, 而接接懸燈, 一大壯觀也。 仍往成均館下集春門, 艱辛入門, 始開東矣。 科儒之會, 比春科不下矣。 辰時良出題, 而乃表題題則'擬周群臣賀虞芮來訟入境之日耕者讓畔行者讓路退以所爭之田爲閒田' 而非但吾接也, 場中居半, 曳白而出, 吾亦曳白, 乘暮出來。 來路入車洞 禹參奉家暫話, 出來主人家。 집춘문(集春門) 창경궁 동북쪽 담장에 있는 궁문으로, 문묘가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있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 문은 후원의 동문으로, 태학(太學) 서쪽 반교(泮橋)와 제일 가까워 역대 임금들이 태학으로 나갈 때에는 이 문을 경유하였다고 한다. 주(周) 나라……의작하라 주 문왕(周文王)이 서백(西伯)이 되어 덕을 쌓자 사방에서 귀의하였는데, 그때 우(虞)와 예(芮) 두 나라에서 서로 국경의 전답을 다투어 오래도록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에 판결을 받고자 주 문왕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가는 도중에 주나라 백성들이 밭두둑을 서로 양보하고 행인들이 어른에게 길을 양보하는 광경을 보고 크게 감화되어 그 길로 돌아와 다투던 전답을 묵히고 평화스럽게 지냈다는 고사를 가리킨다. 《詩經 大雅 緜》 《史略 卷1 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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