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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府 大正町盧軫永 氏【石工所前】(피봉_뒷면)珍島郡 鳥島面 昌柳里鄭基福方朴泰慶ヨリ.(簡紙)謹未審新年孝中體候萬安, 而幼兒들도 充實乎.仰賀之至. 弟 客中無故耳.就前年度光州을ᄯᅥ 故鄕으로 移去ᄒᆞᆫ 時 自心的舊意上으로 小作參斗落만는 動情的 動情ᄒᆞ샨쥴 밋어던바 今月인 壬午年을 當ᄒᆞ와亦是未忘不已ᄒᆞ오이다. 未忘者余, 則多小을不拘印望, 回示若何. 餘不備白.壬午旧一月十七日, 弟 朴泰慶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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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惟至冱靖體候淸康 仁庇勻吉溸仰且祝 生旅依已耳 就令期在何 怱專告作偲藥價與向貸條 遠得?惠 則無異?賜 諒施若何 餘不備禮甲子十一月卄二日 金公植生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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蟄唫窮野 每歎離合有數 而適此惠緘 翻然乎孤寂之中 慰恤備摯 良覺復蘇之望 仍謹審春煦慈候棣體 益膺湛重 允友穩侍 從氏宅都節勻安 仰慰區區悲愫 朞服弟 當新胖割 尤難按住 而自聞新人之賢淑 祗願少須臾無死 思見克家之望 而際有一會之敎 認合無遐之厚眷 將盍從速依副耶 孫兒質騃敎乏無一可道 而有此溢美之示 無乃新好中溺愛者耶兄旣在白水之刑 則第後之優賜周章 預用顒企耳 餘擾不備狀禮癸酉元月少晦 朞服弟金應坤拜謝【피봉】玉溪僉侍案入納平湖謹候狀 省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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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 逆理之慽 雖以古人之賢 尙未免喪其明 况吾兄無他抱玉 而慈愛偏隆於弄瓦 則於其慘折之地寸寸猿腸 豈下於西河之淚而已哉 雖然贏博之禮 聖人猶與之 則焉用慘慘慽慽 自損其天和耶 望須千萬節哀 無徒爲無益之悲也 弟自近年來 閱了無限喪變 心頑情固 都付諸一忘字 亦果爲一道而衰鑠之致 安知不祟此耶 以是推兄自不覺悲憐而已 卽問冬寒侍節晏重 區區慰仰 實愜勞祝 弟劣狀依遣耳 季氏兄獲奉於阻餘庶慰寂寥 而旋入作別 悵懷何旣伯氏老兄平安可慰 而忙未各候 恨意仰達如何 餘不備狀禮丁未十二月十四日 弟金{土+畟}拜狀【피봉】玉溪服座入納坪城候狀 省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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誠薄投轄 遽爾旋旆 悵缺無已 伏未審宵回棣床氣體候 以時萬重 大小家節宣均慶否 伏溸區區無任下誠之至 査下生猶候粗寧侍狀姑依 渾集無恙外 何煩達 玉允妹兄 極爲賢秀 寒楣之幸 孰大於是 娓娓不已而今且旋歸 悵薪悵薪 再邀以念後爲計 以此下諒如何 餘不備伏惟尊察乙未十二月初六日 査下生 金千洙再拜【피봉】謹再拜候書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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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省式言 時望西雲 心往懷噩已而 料外○令咸之來 得拜○惠䟽 感荷良深謹未審漢回侍奠餘棣履起㞐 連衛支將 玉允充健耶 哀慰不任勞祝 弟印昔 而諸穉疹憂 已爲出場 而江湖漁釣之樂 草屨放浪之跡 好則好矣 而古人不讓吾步矣 ○哀兄所示無奈太高耶 好呵好呵耳 水魚有前托故近間亦送人爲計矣 忽地辦得 故略略付送 可歎可歎耳 近間幸賜賁臨 已〖而〗攄乍阻之懷 如何 預企預企耳餘萬 姑不備䟽禮己酉八月卄六日 情弟 自近 謝䟽(皮封)答䟽上 省式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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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郡 本村面 日谷里盧軫永 氏 侍座下(피봉_뒷면)全南 木浦府▣▣▣盧大蓮 家內 盧文永(簡紙)拜晤於焉日數矣. 伏詢春府叔主氣力萬安, 而曁兄侍體候連得康寧, 一門大小一安, 幼孫善茁, 伏溸且祝.族弟客程寢食, 賴此族丈大蓮氏之厚護, 無異於在家也. 且趙氏婚談事, 萬萬緊囑於大蓮, 則數次躬往詳探其機, 快不去意, 姑爲企待云耳. 日後爲不爲間事實詳達矣. 以此諒之伏望耳. 餘謹不備候上.戊辰四月十一日, 族弟 文永 再拜.今月十八日婚定日, 想必乖戾矣.(夾紙)稱托說一, 以新郞準齡高隆之意稱托云.一, 趙處士無男一女, 家事無托之說稱托云.一, 大都港口女子, 當此于歸之境, 則無留於僻鄕窮村之意稱托云.一, 以宮合不通之說稱托云.以上諸般稱托姑舍, 而大蓮族丈之說, 姑爲企待云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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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里盧軫永氏宅(피봉_뒷면)東台里朴泰慶 呈(簡紙)謹未審日間侍中體候康健, 而家內均安, 仰溸之區區. 生 姑依前樣耳. 就悚於吾所關条에 對하야 五日內其於히 進謁ᄒᆞ기로ᄒᆞ여던이 事不如意ᄒᆞ와 未爲實行ᄒᆞ오이 罪悶不勝矣. 然而三週日間이면 其於히 納上ᄒᆞ것신이 如此히 容恕ᄒᆞ시요. 餘不備白.戊辰旧三月八日, 生 朴泰慶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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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鍾龍 鳳山精舍(흑색, 4.5×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1년 10월 11일에 봉산정사의 박노선 등 6인이 노종룡에게 봉산정사의 강회 문제로 보낸 서간. 1931년에 10월 11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박노선(朴魯宣) 등 6인이 노종룡(盧鍾龍, 1856~1940)에게 봉산정사(鳳山精舍)의 강회 문제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초겨울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봉산정사의 강회가 폐해진지 몇 년이 되어 매우 적적하교 쓸쓸하여 다시 강회를 열고자 전에 기일을 정하여 알려드렸다는 것, 결국 여러분들이 소식이 잠잠하여 일이 그르쳐 지고 여러분들이 조금도 오시지 않은 한탄이 있다며 다시 자신들의 견해로 결의(結議)하였지만, 상대의 뜻을 알 수 없다며 부디 양해해 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봉산정사(鳳山精舍)는 을사조약(1905년) 이후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이 기거하며 책을 읽고 글을 썼던 엄이재 옆에 지은 학당이다. 고광선은 고정헌(高廷憲)의 후손이며 고박주(高璞柱)의 아들로 광주 남구 압촌동 복촌(復村) 출신이다. 1864년에 부모를 12세에 일찍 여의고 덕암 나도규와 노사 기정진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894년 동학란이 일어나자 세태를 걱정하고 기정진과 서로 협력하여 거동을 바르게 하여 주변 고을이 난리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안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를 학덕과 인품을 원근의 학도가 책을 들고 막힌 곳을 물으러 운집하므로 고광선은 부득이 찾아온 사람을 물리치지 못하고 이에 응하니, 그 가르침을 입은 자가 매우 많았다. 학도들이 모여들자 1919년 엄이재 옆에 봉산정사를 지어 그곳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고광선이 1934년 12월 25일 아침에 봉산정사에서 죽자 그의 문인들은 고광선의 유풍을 추모하여 봉산정사에서 제향을 하다가 1964년 향교 유림들의 논의로 봉산사(鳳山祠)로 이름을 고치고 그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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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박윤상(朴胤相)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胤相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279 1932년 11월 1일, 제 박윤상이 노진영에게 도조의 연기 문제를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2년 11월 1일에 제(弟) 박윤상(朴胤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도조(賭租)의 연기 문제를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학사(鶴社)에서 뵌 것은 실로 쉽지 않은 만남이었다며 곧 이별하게 되어 슬펐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요즈음 당상(堂上)의 기력이 어떠하신지, 모시고 있는 당신과 여러 가족들이 모두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궁벽한 마을에 칩거하며 나무꾼과 목동의 일을 하며 지낸지가 오십 평생 동안 한 일로써 '자기(自棄)' 2자를 얻었을 뿐이라며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겸언하였다. 최근에는 점점 주변머리가 없어지는 것이 바다를 항해하던 중 방향키를 잃고 여러 차례 배가 뒤집혀 빠질 뻔한 형세였다고 말하고 지금은 풍랑이 잠깐 조용해 진 것인지 다행히 상어 뱃속에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표현했다.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하면 아직까지 기한이 없다며 통탄했다. 또 최근 감기로 연일 고생중이고 음식을 등한히 하고, 바람을 맞는 것을 조금도 꺼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갈수록 헐떡거리는 증세가 심해져서 이불을 껴안고 누워 아파한다는 것, 곡기는 밤낮으로 거의 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심히 말라서 호흡의 기운이 통하기 어려워 거의 죽을 뻔한 지가 여러 차례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아직 관례를 치른 아들 하나라고 한탄했다. 상대의 논에 도조(賭租)를 기한내로 납부하지 못한 일을 말하며 임시로 쓸 곳이 있고, 자신의 집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며 조금 낫기를 기다려서 마땅히 직접 당신의 집에 찾아가 좌우간에 조치를 취하겠다며 용서해 줄 것을 청했다. 당신 아버님의 평소 애호해 주신 덕택으로 살면서 조금도 보답하고 있지 못하다며 인정(人情)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충 마음을 써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해서라며 갚게 될 날을 기다려 달라고 청하였다. 발신자 박윤상은 장성군(長城郡) 남면(南面) 삼태리(三台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삼태리에는 진원(珍原) 박윤상의 처소였던 망운정(望雲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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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박천흠(朴天欽)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天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03 계사년에 박천흠(朴天欽)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안부를 묻고 며느리의 신행 날짜를 받았는데 그에 대해 의향을 말해달라는 내용의 간찰 계사년 7월 27일에 박천흠(朴天欽)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아이가 돌아오는 편에 서신을 받지는 못했지만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몹시 염려가 되었고, 이후 며칠이 지났는데 지금은 어떠냐고 안부를 물으면서 모쪼록 잘 조섭하기를 바란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아우 부자(父子)가 염병 증세로 거의 죽다 살아났고, 지난달 24일에는 넷째 매부(妹夫)인 상주(尙州)의 정서방(鄭書房)의 상변(喪變)을 당했는데 동기간의 비통한 심정은 차치하고라도 연로한 부모님의 기력이 손상되어 몹시 초조하고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의 종씨(從氏) 상(喪)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라 놀랐다고 하였다. 집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 것은 다행인데 전혀 공부한 바 없이 허랑하게 여름 석 달을 보냈다고 한탄하고, 며느리의 신행을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10월 18일이 좋다고 하는데, 혹 구애되는 면이 있으면 다음 달 초에 평성(坪城)의 인편이 있다고 하니 그때 의향을 말씀해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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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 정치헌(鄭致憲)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致憲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자년 3월 23일에 정치헌이 사돈 이 생원에게 지금 사위를 맞이할 계획이므로 이때 사돈도 함께 와주실 것을 권유하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무자년 3월 23일에 정치헌이 사돈 이 생원에게 지금 사위를 맞이할 계획이므로 이때 사돈도 함께 와주실 것을 권유하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상대방의 편지는 받아 보았으나 직접 뵙지 못하여 새로 사돈의 우호를 맺은 입장에서 그립고 서글픈 심정 형언하기 어렵다는 내용, 늦봄에 사돈 형제분들과 부모님 모시고 사는 사위의 생활이 평안한 지 안부를 묻는 내용, 자신은 갯버들 같은 약한 체질로 가을도 되기 전에 먼저 쇠약해져 한탄스럽지만 딸이 사돈의 보호 아래 무사히 편안하게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는 내용, 지금 사돈 사촌의 생신을 맞아 서로 응해 와서 경사스러울 텐데 자신은 마침 병이 들어 참석하지 못해 한스럽다는 내용, 사위를 지금 막 맞이해 올 계획이므로 사돈도 함께 자신의 집에 와주시기를 권하는 내용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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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이재영(李在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在永 族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진년 2월 2일에 이재영이 옥산의 이 생원으로 추정되는 친족에게 보내 준 떡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독감을 앓고 있는 자신과 구열을 앓고 있는 손자의 안부 등을 전한 간찰 경진년 2월 2일에 이재영이 옥산의 이 생원으로 추정되는 친족에게 보내 준 떡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독감을 앓고 있는 자신과 구열(口熱)을 앓고 있는 손자의 안부 등을 전한 간찰이다. 요사이 병을 앓아 폐인이 되어 세상에 대한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는 내용,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상대방이 보낸 하인이 입을 향기롭게 하는 떡이 든 보따리 하나를 전해주었는데 자신을 버리지 않고 챙겨 준 상대방의 정의에 깊이 감동했다는 내용, 상대방과 그의 식구들의 근래 안부가 모두 평온한지 묻고 간절히 위로된다는 내용, 친족인 자신은 새해 전후로 걸린 독감이 오랫동안 낫지 않고 있는데 근래 또 심해져서 밥맛도 없고 잠도 자지 못하고 있어서 스스로 매우 가련하다는 내용, 아비 잃은 손자는 입에 열이 나는 증세를 여러 날 앓고 있어서 매우 걱정스러우니 어찌 하늘이 이처럼 자신을 괴롭히느냐는 내용, 근래 혹시 한번 방문할 기약은 없는지 묻고, 자신은 낮에는 베개 베고 누웠다가 밤이 되면 외로운 등불과 짝하며 무료함을 보내고 있으니 이런 때에 상대방에 대한 그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 나머지 사연은 서원의 하인이 서서 재촉하므로 이만 줄인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말린 고기 작은 조각을 부친다는 내용을 추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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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肆年 月 日和順縣考甲午成籍戶口帳內東面住第十水冷川里第二綂第一戶幼學金相祐改名在宇年三十七戊午本光山父學生 啓鉉祖學生 日海曾祖學生 錫三外祖學生李萬榮本全州奉母李氏齡七十五庚辰妻金氏齡三十七戊午籍慶州父幼學 光浹祖學生 鼎元曾祖學生 重鎰外祖學生李命奎本光山弟相彩改名在榮年二十四辛未婢惡春年三十三壬戌 辛卯戶口相凖印 [周挾無改印][官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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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柒年 月 日和順縣考丁酉成籍戶口帳內東面住第十水冷川里第二綂第一戶幼學金在宇年四十戊午本光山父學生 啓鉉祖學生 日海曾祖學生 錫三外祖學生李萬榮本全州奉母李氏齡七十八庚辰妻金氏齡四十戊午籍慶州父幼學 光浹祖學生 鼎元曾祖學生重鎰外祖學生李命奎本光山弟 在榮年二十七辛未嫂朴氏齡二十七辛未籍密陽子 龍鐸年十九己卯婢惡春年三十六壬戌 甲午戶口相凖印 [周挾無改印][官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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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최종득(崔宗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40 谷城縣監 崔宗得 谷城縣監<着押> 行縣監印.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40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40년(헌종 6)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종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2통 5호이다. 호주 과부(寡婦) 박씨를 대신하여 아들 최종득이 호주가 되었다. 최종득의 올해 나이는 44세 정사생(丁巳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최종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덕연(德延), 할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증조(曾祖) 학생 귀선(龜善), 외조(外祖) 학생 박광욱(朴光旭)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최종득의 아내 정씨(鄭氏)는 나이 44세 정사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대익(大益), 할아버지 학생 치성(致成), 증조 학생 인국(仁國), 외조 학생 권재필(權在弼)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외 가족으로 어머니 박씨는 나이 67세 계사생(癸巳生)이고 본적은 밀양이며, 소유하고 있는 종 상원(尙元)이 있다. 이 문서에 '단자(單子)'라고 적혀 있고 호구단자의 기재 형식인 열서(列書)로 되어 있으나 곡성 현감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 및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와 1837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정유식상준인(丁酉式相凖印)'이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최종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경자식상준인(庚子式相凖印)'의 경자년은 이 단자를 제출한 1840년이므로 1837년인 정유년의 오자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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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무성서원(武城書院)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武城書院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6년 2월 10일, 무성서원의 김인기 등 11인이 무성서원 주최로 박우서 부친 71세 생신에 축하시를 받아 간행하려 하니 시를 투고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36년 2월 10일, 무성서원(武城書院)의 김인기(金麟基) 등 11인이 무성서원 주최로 박우서(朴佑緖)의 부친 기산옹(企山翁)의 71세 생신을 맞아 축하시를 받아 간행하려 하니 시를 투고해 줄 것을 요청한 내용으로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서간이다. 공함(公函)으로 기록된 본 편지 1장과 시를 적은 두 개의 별지, 이를 모두 담은 피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북 정읍군 신(新) 태인면(泰仁面) 신덕리(新德里)에 사는 박(朴) 군 우서(佑緖)의 아버지인 기산옹(企山翁)의 71세 생신(음력 2월 28일)을 맞아 기산옹의 청덕(淸德)과 아조(雅操), 아드님의 승순이열(承順怡悅)을 옳게 여긴다며 사람들로 하여금 부럽게 한다고 했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날이므로 그 기쁨과 축하를 표현하는 시문(詩文)을 받아 소장하고자 한다며 시를 보내줄 것을 청했다. 자세한 투고 방법을 좌기(左記)하였는데 투고장소는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무성서원 내에 있는 김인기(金麟基)이며 시문의 제목은 '망팔우로운(望八優老韻)'이다. 압운(押韻)은 년(年), 전(傳), 선(仙), 천(天), 현(賢) 자를 이용하여 5언 혹은 7언으로 절구, 율시, 작문등을 마음대로 짓도록 했다. 시문을 짓는 사유(事由)는 내외분이 해로하고, 늙어서도 강건하며, 많은 자손이 있고, 주경야독을 업으로 삼았고, 천석(泉石)에 재미를 붙였다는 것이다. 감사를 전하는 방법은 책을 간행한 뒤에 보내드릴 생각이라고 적었다. 본 글의 발기인은 김인기(金麟基)를 시작으로 총 11명의 이름을 적었으며, 원운(原韻)으로 지은 7언율시 1수를 적었다. 이상으로 설명한 본편지는 철필로 등서한 인쇄의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본 편지 이외에도 별지 2장이 편지봉투에 동봉되어 있었는데 별지(別紙) 1장에는 그 운에 따라 지은 7언율시 2수가 적혀 있다. 이것은 지으면서 수정한 부분이 많은데 또 다른 별지 한 장에는 이를 정리하여 기록한 7언율시 2수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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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奉別後月改 春又將暮 悵鬱之極 以吾之懸懸於○兄 知兄之懸懸於吾也 謹未審春暮兄候連衛萬重 閤節平穩 諸致亦循常耶否 並慰溸區區 實勞願聞弟昔狀滾汨 室憂每每告警 見甚悶悶 餘何足奉道 月內遊觀之行 前期去矣 兄亦默會耶 以吾平生憂愁踈拙之人 妄生偸閑於山水紅綠之間者 自知非分之望 然其或捕風瀉憂 只在展眉之思而已 不足爲大方之笑也 以明日將向七星留宿爲計 而與元彥兄同行亦爲好兄亦明日 期於七星元彥兄家 則翌日轉向於栗里爲好耳 然向聞兄有竹長之行云 其間還旆否雖或有餘憊明日則强作筋力 預爲賁然勿爲孤望 ■■(如何)〔千萬〕千萬耳 餘萬匪久面叙不備書例甲子三月初九日 姻弟 自近 拜(皮封)玉山 李生員 同〖東〗上宅 傳納茅坪謹候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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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札)頃別迨今耿耿 謹未審 日來兄候衛護晏重 僉節勻穩耶否 仰慰溸區區 實勞願聞 弟昨狀依遣 而孀婦病症 雖多般藥治 而數日來 雜症添劇 此何情景 心神不安 無以容喩也 所去租二十斗 借人牛仰呈 考領如何餘萬都留 不備禮甲子四月十四日 姻弟 自近 拜(皮封)謹拜候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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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자근(自近)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自近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85 을축년 정월 28에 모평에 거주하는 인제 자근이 옥산의 이 생원에게 달성 시험은 자신의 직분을 다한 뒤에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도리이고, 운수로 말하면 우도나 좌도나 다를 것이 없으니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내용 및 출발 날짜는 다음달 2일로 정했으며, 그때 지나는 길에 상대방을 방문할 계획이니 행장을 꾸려서 기다리고 있다가 동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을축년 정월 28에 모평(茅坪)에 거주하는 인제(姻弟) 자근이 옥산(玉山)의 이 생원(李生員)에게 달성 시험은 자신의 직분을 다한 뒤에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도리이고, 운수로 말하면 우도(右道)나 좌도(左道)나 다를 것이 없으니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내용 및 출발 날짜는 다음달 2일로 정했으며, 그때 지나는 길에 상대방을 방문할 계획이니 행장을 꾸려서 기다리고 있다가 동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비록 혹 편지 쓰는 일은 있었다고 해도 2년 동안 만날 길이 없었으니 그리운 회포를 더욱 헤어리기 어렵다는 내용, 요즈음 상대방과 가족들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간절히 위로되고 그립다는 내용, 자신은 중병(重病)의 남은 증세가 그 뿌리를 제거하기 전에는 날마다 쇠약한 모습이니 스스로 가련한들 어쩌겠느냐는 내용, 지난번에 상대방이 말한 내용 중 굳게 약속한 일에 대해 자신이 그 사이에 어찌 감히 다른 생각을 하겠느냐고 반문한 뒤, 한결같이 상대방의 지휘가 어떻든 믿는 것은 평소 서로 믿는 도리이니 어찌 허술한 지경에 의심할 수 있겠느냐며 단단히 결정하여 자신의 간절한 바람에 부응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 달성의 시험에서 혹시라도 떨어지더라도 자신의 직분을 다한 뒤에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니 시관(試官)이 제대로 인재를 뽑는 데에 달려있을 뿐, 하필 우도가 더 나을 것 같다고 염려하는지, 가령 우도가 나을 것 같다고 해도 병든 몸으로는 길이 조금 멀어도 움직이기 어려우니 운수(運數)로 말하자면 우도든 좌도든 차이가 없으니 어찌 꼭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으로 가겠느냐는 내용, 출발하는 날짜는 다음달 2일로 정했는데 그때 지나는 길에 상대방을 방문할 계획이니 상대방도 미리 행장을 꾸리고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가면 좋겠다는 내용, 그 중 약속한 물건은 과거시험 전 날짜가 임박했으니 서로 만난 뒤에 잘 헤아려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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