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보성증시(寶城增試)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고종1) 7월에 보성(寶城)에서 설행된 증광시(增廣試) 합격자의 방목과 동년 8월에 전주(全州)에서 설행된 동당시(東堂試) 합격자의 방목 1864년(고종1) 7월 29일에 보성(寶城)에서 설행된 증광시(增廣試) 합격자의 방목과 동년 8월20일에 전주(全州)에서 설행된 동당시(東堂試) 합격자의 방목이다. 보성에서 설행된 증광시의 상시관(上試官)은 오덕영(吳德泳)이다. 증광시는 비정기 과거시험으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설행되는 시험으로, 초장(初場)·중장(中場)·종장(終場)으로 진행되었다. 시험 장소는 서울 거주자를 위한 한성시(漢城試), 성균관 유생들을 위한 관시(館試), 지방 거주자를 위한 향시(鄕試)로 구분되었고, 향시의 경우 도별로 관찰사가 도내의 군현 중에서 정하였는데 이 문서의 경우는 보성과 전주에서 설행된 것이다. 초장은 사서오경(四書五經) 의(疑)·의(義) 또는 논(論) 중에서 2편을 제술하고, 중장은 부(賦)·송(頌)·명(銘)·잠(箴)·기(記) 중 1편, 표(表)·전(箋) 중에 1편을 선택하여 모두 2편을 제술로 시험하고, 종장은 대책(對策) 1편을 제술로 시험하였는데, 보성 증광시의 경우는 초장은 부(賦)로, 종장은 의(義)로 시험하였고, 시(詩)와 의(疑)에서 합격한 사람도 따로 분류하여 적었으며, 합격자의 이름 아래에는 거주지를 적었다. 전주에서 설행한 동당시(東堂試)는 전라도관찰사 정헌조(鄭憲朝)가 주관하였다. 합격자의 명단 아래에 시험 문제가 적혀 있는데, 논제(論題)는 《주역》 〈계사전(繫辭傳)〉의 "백성들은 날마다 그것을 쓰지만 알지 못한다."에 대해 논술하는 것이고, 부(賦)는 〈순리전(循吏傳)〉의 "경술(經術)로 이도(吏道)를 꾸미다."이고, 표(表)는 한(漢)나라에서 현량방정(賢良方正)을 천거하여 등용하는 것에 대해, 책문(策問)은 사단(四端)가운데 사양지심(辭讓之心)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