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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酉式同福郡內西面學堂里第十四統第三戶一戶主張聲容年五十四甲辰本興德儒業前居父學生 東植祖學生 珽奎曾祖學生 旭外祖學生丁文玉本昌原同居親屬妻柳氏齡三十九己未籍高興寄口男女無雇傭男女無現存男一口女一口借草家三間建陽元年十月 日郡守崔俊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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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보성증시(寶城增試)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고종1) 7월에 보성(寶城)에서 설행된 증광시(增廣試) 합격자의 방목과 동년 8월에 전주(全州)에서 설행된 동당시(東堂試) 합격자의 방목 1864년(고종1) 7월 29일에 보성(寶城)에서 설행된 증광시(增廣試) 합격자의 방목과 동년 8월20일에 전주(全州)에서 설행된 동당시(東堂試) 합격자의 방목이다. 보성에서 설행된 증광시의 상시관(上試官)은 오덕영(吳德泳)이다. 증광시는 비정기 과거시험으로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설행되는 시험으로, 초장(初場)·중장(中場)·종장(終場)으로 진행되었다. 시험 장소는 서울 거주자를 위한 한성시(漢城試), 성균관 유생들을 위한 관시(館試), 지방 거주자를 위한 향시(鄕試)로 구분되었고, 향시의 경우 도별로 관찰사가 도내의 군현 중에서 정하였는데 이 문서의 경우는 보성과 전주에서 설행된 것이다. 초장은 사서오경(四書五經) 의(疑)·의(義) 또는 논(論) 중에서 2편을 제술하고, 중장은 부(賦)·송(頌)·명(銘)·잠(箴)·기(記) 중 1편, 표(表)·전(箋) 중에 1편을 선택하여 모두 2편을 제술로 시험하고, 종장은 대책(對策) 1편을 제술로 시험하였는데, 보성 증광시의 경우는 초장은 부(賦)로, 종장은 의(義)로 시험하였고, 시(詩)와 의(疑)에서 합격한 사람도 따로 분류하여 적었으며, 합격자의 이름 아래에는 거주지를 적었다. 전주에서 설행한 동당시(東堂試)는 전라도관찰사 정헌조(鄭憲朝)가 주관하였다. 합격자의 명단 아래에 시험 문제가 적혀 있는데, 논제(論題)는 《주역》 〈계사전(繫辭傳)〉의 "백성들은 날마다 그것을 쓰지만 알지 못한다."에 대해 논술하는 것이고, 부(賦)는 〈순리전(循吏傳)〉의 "경술(經術)로 이도(吏道)를 꾸미다."이고, 표(表)는 한(漢)나라에서 현량방정(賢良方正)을 천거하여 등용하는 것에 대해, 책문(策問)은 사단(四端)가운데 사양지심(辭讓之心)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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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이기래(李基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基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935 경술년 2월에 이기래(李基來)가 칠송사(七松祠)에서 일곱 집안의 회의를 개최하므로 참석해주기를 당부하는 내용의 간찰 경술년 2월 18일에 이기래(李基來)가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오는 24일 오전에 칠송사(七松祠)에서 일곱 집안의 회의를 개최하고 채무 청산 및 봄 향사(享祀)에 대해 상의하고자 하니 바쁘더라도 참석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후산(後山)에게는 각각 편지를 쓰지 못하니 이 편지를 전해주고 당일에 함께 참석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칠송사는 전남 화순군 춘양면 칠송리에 있었는데, 칠송정은 영조 때에 일곱 성씨가 홍수 피해를 위해 제방을 쌓고 제방 위에 소나무 일곱 그루를 심어 기념했고, 그 아래에 칠송정을 세웠기 때문에 칠송마을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칠송사가 있어서 일신재(日新齋)정의림(鄭義林)만 향사하다가 이후 정의림의 문인인 치암(恥庵) 홍승환(洪承渙), 우곡(愚谷) 김윤형(金潤亨), 약포(藥圃) 민병춘(閔丙春), 경당(敬堂) 문제술(文濟述), 인산재(仁山齋) 배현기(裴玄基), 성재(誠齋) 임태주(任泰柱), 시헌(時軒) 홍찬희(洪纘憙), 양곡(良谷) 이승복(李承福)을 추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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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서원(高山書院) 통문피봉(通文皮封) 2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高山書院 三山壇儒會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903 고산서원에서 삼단산 유회소에 답하여 보낸 통문의 피봉. 고산서원(高山書院)에서 화순의 삼산단(三山壇) 유회소(儒會所)에 보낸 답통(答通)의 피봉(皮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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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이기래(李基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基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935 신해년에 이기래(李基來)가 칠송사(七松祠)의 채무 정리 관계 및 기타 사항을 합의하기 위한 모임 날짜를 알리며 참석을 요청하는 내용의 간찰 신해년 8월 5일에 이기래(李基來)가 보낸 간찰이다. 본 칠송사(七松祠)의 채무 정리 관계 및 기타 사항을 합의하기 위한 모임을 이번 발 19일 오전에 개최하기로 하였으므로 바쁘더라도 참석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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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향교(綾州鄕校)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綾州鄕校 裵學澈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능주향교(綾州鄕校)에서 배학철(裵學澈)에게 향교의 전교(典校)를 비롯한 4인의 인적사항을 적어 보낸 간찰 능주향교(綾州鄕校)에서 배학철(裵學澈)에게 보낸 간찰이다. 내용은 향교의 전교(典校)인 이병근(李炳根) 외 4인의 자(字)와 호(號), 생년간지, 본관, 그리고 누구의 후손이며 현재 거주하는 마을을 적은 명단이다. 피봉에 적힌 배학철의 주소는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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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민홍기(閔弘基)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閔弘基 裵玄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6년 5월 13일, 민홍기가 배현기에게 자신의 일정과 안부를 전하고 선고를 수집하는 상대를 응원하는 내용으로 보낸 안부 편지. 1896년 5월 13일, 민홍기(閔弘基)가 배현기(裵玄基, [1881~1954])에게 자신의 일정과 안부를 전하고 선고를 수집하는 상대를 응원하는 내용으로 보낸 안부 편지이다. 지난번에 헤어진 뒤에 자신이 다음날 관산(冠山)으로 갔고 이달 6일에 집에 도착했다고 전하며 형이 방문해주시었고 겸하여 주신 것을 보았다며 무슨 일이냐고 도리어 마음이 편치 않다고 전했다. 답장하는 것을 잊다가 장마더위에 인사한다며 요즘 효도중인 형님과 가족 모두 잘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한결같이 지낸다고 한 후 선고(先稿)를 수집하는 일에 대하여 언급했다. 마지막에 곁에서 지내고 있는 노종(魯宗)·동춘(東春)·준태(準泰) 형은 잘 있느냐며 각각 편지 쓰지 못하니 전해달라고 했다. 노란 종이에 붉은 괘선을 찍은 용지 1장을 이용하여 편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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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靣學堂里化民張允文右謹言所志事段民以山訟事去初一日良中呈訴是乎所 城主題音內秋以納侤冬猶不掘者曺哥所爲萬萬痛懲後督掘次捉來事云云敎是乎所以此嚴題到付渠家則出他謀避故緣由再呈矣又題音內知在此邑即爲捉來事下題敎是後同曺敬源雖還渠家而畧無畏 官遵令之■(意)心專有拒逆 官題之意如許無官無法之法民不可含默看過故前所志貼連緣由仰呈伏乞參商敎是後先治其無 官無法之罪而後應其前題訟理之道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十二月 日〈題辭〉不爲捉來而何爲煩訴耶今則歲已㒲矣待春眼同捉來事卄五 狀民[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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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장동식(張東栻)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東栻 同福縣監 官[着押] 4顆(6.5×6.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14 1850년 2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동식이 동복현감에게 영구히 위토로 만드는 자신의 2마지기 논을 친족들이 멋대로 팔지 못하도록 입지해 주고, 문전을 납부하는 일로 갇혀있는 병든 아버지를 석방시켜줄 것을 청원한 소지 1850년(철종 1) 2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동식(張東栻)이 동복현감에게 영구히 위토(位土)로 만드는 자신의 2마지기 논을 친족들이 멋대로 팔지 못하도록 입지(立旨)해 주고, 문전(門錢)을 납부하는 일로 갇혀있는 병든 아버지를 석방시켜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동식은 자신의 아버지가 문전을 마련해 납부하는 일로 여러 날 동안 갇혀 있어 매우 걱정스러워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돈을 마련하지 못하고, 약간 소유하고 있는 논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이 문전으로 기어코 위토를 사야 하므로 자신의 논 문서로 납부한 문전의 수효가 55냥인데 전에 족조(族祖)의 정장(呈狀) 중에는 72냥으로, 55냥보다 그 수가 늘어났다. 그 이유는 족조가 몇 년 동안 다른 지역에서 떠돌아 살았기 때문에 그 동안 종중(宗中)의 지출을 감지하지 못해서이다. 55냥과 72냥의 차액 17냥 중 12냥은 『보첩(譜牒)』을 수정하는 일에 들어갔고, 2냥은 화순(和順)에 있는 선산(先山)의 소송에 지출되었으며, 3냥은 선산의 송추(松楸)를 팔 때 송청(松廳)에서 속전(贖錢)으로 거두었다. 따라서 전후로 쓴 돈을 따져 보면 종사(宗事)와 공속(公贖)이니 실제 남은 돈은 55냥이므로 장동식의 2마지기 논을 시가(時價)로 계산해서 문서를 작성하여 이 논을 영구히 위토(位土)로 만들되 친족들이 멋대로 팔지 못하도록 입지해 주고, 병든 아버지를 석방시켜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2월 13일에 '원고(元告)를 데리고 오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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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面學堂居化民張東栻右謹言民之父以門錢備納事多日滞囚極爲㦖然故百般拮据錢未辦出只有如干畓土而願買無人兺除良况此門錢期於買位土乃已故以畓券書納是在果▣門錢之數爻實爲五十五兩而向於民之族祖狀中以七十二兩增衍厥數是乎矣族祖流寓於他境已經許多年故這間宗中用下專未覺察是如乎十二兩段入於譜牒修正之役二兩錢段和順地所在先山訟卞時用下三兩錢段先山松楸發賣時收贖於松廳是乎則究其前後所用如非宗事乃是公贖而實在之錢只是五十五兩故二斗畓從時直折價成文是如乎以此畓永作位土使宗中諸族無或擅賣之意論理立旨爲白遣民之病父特爲放釋事 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庚戌二月 日〈題辭〉元告率來向事十三[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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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장동식(張東植)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東植 同福縣監 綾州使[着押] 3顆(6.9×6.9)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14 1859년 4월에 전라도 동복현에 사는 장동식, 장세옥 등이 능주목사에게 앞의 등장과 등출한 호적단자를 점련하여 입지 해 줄 것과 점련한 호적단자에 관인을 찍어 영구히 빙고(憑考)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한 등장 1859년(철종 10) 4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에 사는 장동식(張東植), 장세옥(張世玉) 등이 능주목사(綾州牧使)에게 앞의 등장과 등출한 호적단자를 점련하여 입지(立旨) 해 줄 것과 점련한 호적단자에 관인(官印)을 찍어 영구히 빙고(憑考)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한 등장이다. 장동식 등이 엊그제 자신들의 선조 문적(文蹟)을 고적(考籍)하는 일로 올린 등장(等狀)에 '청원한 대로 고급(考給)하라'는 뎨김을 받아, 고열(考閱)하는 곳에서 수 백년 전의 신적(信蹟)을 얻어서 쌓인 편(篇)과 축(軸) 중에서 하나하나 베껴 옮겼다. 이에 자손들의 마음이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보는 것과 다름 없어 번거롭게 다시 하소연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앞의 등장에서 고한 바 같이 『내보(內譜)』는 금석문(金石文)이므로 세계(世系)의 선후와 직함의 유무에 관인이 찍인 문서가 아니라면 종중 사람들이 다투고 갈라지는 단서가 없지 않았다. 이에 장동식 등은 앞의 등장과 호적단자를 점련해서 다시 정소(呈訴)하여 '일의 전말을 참작하고 이치를 따져 입지하고, 점련한 호적단자에 인장을 찍어 내려 주어서 영구히 빙고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등장을 접수한 능주목사는 '다행히 만력(萬曆) 연간의 호적(戶籍)이 있어서 신적(信蹟)을 고출(考出)하였으니 너희들이 정성을 쏟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유감이 없는 일이 있겠는가? 청원한 대로 베껴 옮긴 문서에 관인을 찍어 내주어 보청(譜廳)에서 빙고(憑考)로 삼게 하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내보(內譜)는 작성자가 부계 직계조상을 밝힌 것으로, 체제는 선대로부터 자기의 부(父)에 이르는 일직선상의 조상과 그 각 조상의 배우자를 세대별로 기록하고 그들의 전기사항을 밝힌 가승(家乘)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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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閔子之孝穪於魯夫子之論董生之行著於韓文公之賛而曾未聞孝與行兼美之蹟而今此古阜郡士人鄭溵弼純孝篤行并美宲蹟稽古亘今無雙一人矣系出東萊弘文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而忠孝風聲名閥世德蔚于南土斯人也自在孩提天賦仁孝愛親敬長之節自悟自警稍至長成親老家貧晝以漁樵夜以織梱克奉口軆之養夏日扇枕冬夜燃突怡悅承順一以養志其親沉病累年百方藥餌一心調治甞糞察候暫不離側祝天祭山至誠禱命天年有限竟至殞絶也泣血殫誠子羔之孝也襄奉盡節季良之忱也三年廬苫行素食粥終始不懈年將七旬望朔省掃山磎成路自小少老大心存戒性志在定已行義修善祖述堯舜之道追慕程朱之學篤老操履知足安分遠謝公門不求名譽齊家庭訓子侄言必稱性善孝悌之道是以鄕剡之論道院之議不謀同辭如出一口則其在一省士林僉會之地不可含默玆以發通望須僉君子使此純孝篤行稟告于 棠軒春曺闡發其行擢用其人毋至泯沒之地幸甚右敬通于全州長舘丁丑正月日 [印]全州希顯堂道會所發文多士 李継浩 蘇敬述 金斗源 林彰洙 鄭濟黙 崔龍煥 高龍鎭 南濟 黃載淵 尹正鉉 朴始浩 權相奎 盧學秀 吳永泰 邊琦容 奇光衍 宋永豊 金文海 柳恒豐 林璟相 李章漢 金性淵 姜昌壽 許杓 洪秉一 趙炳鎬 白鳳洙 金永朝 曺世浩 任泰憲 金炳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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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전주수장관(全州首長館)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全州首長館 古阜儒林 1顆(墨印, 7.0×5.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77년 1월 전주수장관 선비 15인이 고부유림에 작은 고을의 충신과 한 고을의 선의인 정은필을 위해 순찰사에게 연명으로 상서할 생각이므로 한 목소리로 호응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 1877년(고종 14) 1월 전주수장관 선비 15인이 고부유림(古阜儒林)에 작은 고을의 충신(忠信)과 한 고을의 선의(善義)인 정은필(鄭溵弼)을 위해 순찰사에게 연명으로 상서할 생각이므로 한 목소리로 호응해 줄 것을 촉구한 통문이다.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은 동래 정씨로 예문관 대제학 겸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로 임금께 하사받은 호 풍천(楓川) 수홍(守弘)의 12대손, 병조판서 걸(傑)의 11대손, 생진사 효손(孝孫)의 10대손, 참봉 확(確)의 9대손,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의 8대손으로 명망과 절개가 있는 고가이다. 정은필은 겨우 열 살에 부모가 늙고 집이 가난하여 변변치 못한 음식도 올리지 못하자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베를 짜서 겨우 몇 고랑 되는 밭을 얻어 음식 바치는 도리를 극진히 하여 한결같이 어버이의 뜻을 받들어 즐겁게 하였다. 부모가 몇 년 동안 병을 앓자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매일 약수발을 드는 등 옛 효자의 실적에 부합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자 피눈물을 흘려 낯빛이 검게 변하였고 슬픔으로 몸을 상한 것이 예제보다 지나쳤다. 3년 동안 여묘살이 할 때 아침 저녁으로 애달프게 곡하며 삭전(朔奠)과 망제(望祭)를 성실히 지냈다. 나이 근 칠순인데도 매일 성묘하여 산골짜기에 길이 생겼으며, 선조와 부모 기일 3일 전부터 소식(素食)과 죽을 먹으며 모두 예제를 따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분수를 알고 도를 즐기면서 검소하고 절약하였으며, 말과 삿된 뜻을 굳게 단속하였다. 자연 속에 은둔하여 송죽의 절개에 취미를 부쳤으며, 처사의 지조는 군자의 기상이었다. 집안을 다스리고 자질들을 가르치는 방도와 종족을 돈독히 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여러 절도에 조금도 마땅함을 잃지 않아, 작은 고을의 충신(忠信)과 한 고을의 선의(善義)를 정은필에게서 다시 보았다. 이에 한 도의 공의가 일제히 일어, 순찰사에게 연명으로 아뢸 생각이므로 이 통문을 보내 여러 집사들에게 한 목소리로 호응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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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9년 유인김씨(孺人金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孺人金氏 1顆(9.3×8.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15 1889년 1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유인 김씨를 종부직 정부인으로 추증한 4품이상고신 1889년(고종 26) 1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유인 김씨를 종부직(從夫職)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한 4품이상고신이다. 남편 이희하와 함께 추증된 것으로, 연호의 좌방(左傍)에 '조봉대부 동몽관 겸 가선 호조참의○○의 조비를 법전에 따라 추증한다'라는 추증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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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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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7년 장연사(長淵祠) 고목(告目) 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長淵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장연사(長淵祠) 전설(典設)이 누군가에게 철향제관(腏享祭官)으로 천망(薦望)되었음을 알리는 고목 1927년 3월 4일에 장연사(長淵祠) 전설(典設)이 누군가에게 철향제관(腏享祭官)으로 천망(薦望)되었음을 알리는 고목이다. 올해 봄 문씨(文氏)의 다섯 선생을 배향하는 장연사가 준공되었기에 이번 달 22일에 거행하는 제사의 제관으로 천망하게 되었으므로 망첩(望帖)을 올린다는 내용이다. 문서의 좌측에 있는 화순군 송석면(松石面)은 수신자의 주소로 추정된다. 장연사에 배향된 다섯 선생은 남평문씨(南平文氏)인 문다성(文多省), 문공유(文公裕, 1088 – 1159), 문극겸(文克謙, 1122∼1189), 문유필(文惟弼, 1151∼1228), 문익점(文益漸, 1331∼1400)이다. 장연사는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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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8년 고광선(高光善) 간찰(簡札)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高光善 李柄聖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112 1918년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그의 조카가 공부하러 찾아왔는데 자신이 병중이라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는 내용의 간찰 1918년 2월 24일에 고광선(高光善)이 이병성(李柄聖)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보내준 서신은 아름드리 보옥과 한 자나 되는 거북을 얻은 것 같았다고 기쁨을 표현하였고, 식구들의 안부까지 편안한지 두루 묻고 몹시 그립다고 인사하였다. 상대방의 조카가 지금 묘령의 나이이고 앞으로 진취할 가망이 많을 텐데 자신이 병중이라 찾아온 뜻을 저버릴까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아마도 자신에게 공부하러 찾아온 수신인의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광선은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 또는 복헌(復軒)이며 본관은 장택(長澤)이다.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의 문인이고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출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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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曩書如得尺蔡拱璧 至今摩娑 自不覺弊丌頓富也 未審花煦棣體益衛 大覃均禧 旣溯且仰之至 令咸以此妙齡 多有所進就底望可愛 但恐以此病昏多負其所以來之意 奈何 眩昏忒甚剗蔓 不備追謝儀戊午二月卄四日 病生高光善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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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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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化民梁會洛朴準基尹相麟等 謹齋沐再拜上書于城主閤下 伏以古之國家將興 必用賢士 故堯有進善之旌 周有握髮之禮 而又至於漢唐 用以孝廉 賢良身言書判 而是爲四科也 自下不能薦 則自上不聞名聲 而當今之世 林下修道 忍飢讀書者 卽民等之師門鄭義林是也 世襲簪纓 學有淵源 而故觀察使諱麟晋十八世孫 弘文應敎諱熊十三世孫 戶判諱演十一世孫 縣監諱斆七世孫 蘆沙奇先生之高弟也 素有卓異之行 事親至孝 無不周至 及其親終哭泣哀毁 人莫不感泣 而三年居廬 身不釋纕 朝夕省墳 草不長於淚下膝跪 則此非秉彛之天乎 十歲就黃處事之門 敬受學業 趣向已正 十五負從于石塘鄭先生之門 四子六經性理等書 無不貫通 而十九石塘遂沒 乃就學于蘆沙奇先生之門 先生與之講論 大加稱歎曰 古詩有沙彌來扣病僧扉 眉眸通明可學機之語 今子然矣 乃授以天人性命之學儀 則禮義之文服事 數十年深得 師門丈尺 婆娑林衖 不以貪窮易操 所樂者 孔顔之道 所講者 程朱之書也 其氣像 則屹然若中流之砥柱 特然若大冬之孤松 其發揮 則粹然如潤玉之含輝 炯然如良金之自躍 而至若存養省察 海涵萬斛 未見底側 而推比仁義 春生秋肅 自然代序 揆以襟懷 光風霽月 逈然出塵 而遠近學者 踵門問難 酬答如洪鍾之應響 賢愚不齊 敎導如化工之無遺 則非徒南服之冠冕 名聲蔚然於畿湖嶺海之間者久矣 在先世安堂金先生 全齋任先生 相與講道 在今淵齋宋先生 勉庵崔先參判 仁山蘇持平 重庵金監役 相與講學 惟朝廷不聞名聲 鄕狀道報 及前等城主之報營頻仍 尙未蒙朝家拔第之典 其爲抑鬱已久於一鄕一道之士林 而在民等服事 十數年尤不勝悶鬱之情 故玆敢冒昧仰籲於孝理文治之下 伏願特採民等之師門 文學實行 薦報營門 俾達天聽之地 千萬伏祝 伏惟藻鑑戊子四月 日 化民 梁會洛 朴準基 尹相麟 閔寬鎬 梁理默 尹相祿 尹魯永 高光雲 裵學舜 吳昌鎬 金在奎 鄭尙仁 閔泳冑 洪祐三 梁時默 洪承煥 鄭桂昊 李箕休 金亨培 魏龍奎 曹錫柱 高濟錫 朴孝東 金弘基 朴容東 林東弼 朴準憲 邢學奎 文載善 梁相鯉 趙學浨 吳命鎬 朴準會 閔泳頎 朴鼎鉉 洪承源 朴準福 文麒煥 等(題辭)從當報營向事十一日使[着押][綾州牧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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綾州幼學朴道漢尹再衡金遇喆等 謹齋沐上書于巡相公閤下 伏以 孝爲百行之源 而萬代之所不泯 故天必感之 而有氷魚雪筍之驗 國必褒之 而有旌閭贈職之典 矧乎 一家雙孝 嫂叔並出 俱養其親者乎一門雙孝 卽本州士人裵以仁及其弟嫂氏是也 裵以仁卽前太師武烈公諱玄慶密直公諱廷芝及開 國元勳貞節公諱克廉之後 而孝行參奉允德之五世孫也 且以烈行旌閭金氏 卽其高祖母則其家孝烈 亦其箕裘也 以仁家甚貧寒 與其弟嫂文氏 俱養其親 躬自傭賃負米 以供甘旨 倘所謂體尙無全衣 而親極滋味者也 其父享年八十有四而逝 其母享年一百有五而逝 鄕隣咸稱以其子其婦之至孝 而以致其親之壽考也云耳 一日則其▣(母)病谻 醫云可用山蔘 而山蔘難得云 故以仁與其弟以潑 求採山蔘 遍行深山 數日竟無得處 號泣 歸路暫憩林下 忽見老蔘伏于岩阿 採歸煮服 因致其積病之皆瘳 而又得其肌膚之豊厚 此實天感之致 而宜與氷魚雪筍匹美也 其弟嫂文氏 係出南平 卽江城君三憂堂之後 性本慈孝 躬執採汲 以養舅姑 便身宜齒之物 極力求之 必以供之 是故 其姑年至百有五 而尙無{忄+恙}焉一日則其姑病深口焦 百味皆失 食飮頓廢之際 忽有野鶉 飛入竈下 文氏因煮而供之 以啓病中粥餌之念 亦豈非天感之致 而寔與崔山南家乳姑之婦齊孝者也 玆故文氏之誠孝皆出於隣里之觀感 而便成兒童之歌謠云耳 生等居在同鄕 瞻聆所及 不勝欽獎 前年冬 槪擧耳熟目擊者 而仰稟於本州 城主之下 則題內旣得萬萬嘉尙 而文?晩到 轉報過時 是可咄歎 其有極乎 玆敢齊聲 仰籲於巡宣孝理之下 伏願 勿以人廢言 而另 加採賢 俾得 登聞 使此一門雙孝無至湮沒 千萬顒祝之地 伏惟藻鑑▣午九月 日幼學 梁伯永 洪吉文 尹再衡 文思稷 閔喆邦 李志徽 鄭趾煥 梁樂三 宋桓黙 李文國 朴海鵬 金德敏 閔珏顯 安命禧 南鎬 文永伯 李應奎 梁相楫 具光烈 鄭德煥 李龍正 金德權 安橚 高鎭泰 李時必 奇夏三 梁柱永 朴相堯 金遇喆 文琪休 朴道漢一門兩孝 聞甚嘉尙是矣仰 啓已過事初四日[兼使] [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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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정의림(鄭義林)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義林 裵玄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912 1908년 12월 26일, 정의림이 배현기에게 상대의 청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학문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전한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08년 12월 26일, 정의림(鄭義林, 1845~1910)이 상대의 청을 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학문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전한 내용으로 배현기(裵玄基, 1881~1954)에게 보낸 편지이다. 세모에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다며 상대의 막내 조카 두 소년이 와서 근래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인사를 전했다. 상대 조카의 관례와 장가든 일을 축하하고 몇 달 사이에 어찌 두 가지 일(동기간의 마지막 결혼, 조카의 개혼)을 모두 치렀느냐며 인사했다. 자신의 몸 상태는 여전하며 손자 아이 내외가 두 가지 학질로 혹은 낫고 혹은 발병하여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며 걱정했다. 희(羲)는 경서를 어디까지 읽었느냐고 묻고 공부는 치지(致知)와 거경(居敬)에 달려 있다며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를 위해 어찌해야 할지 자사(子思)와 맹자(孟子) 등을 인용하며 배현기도 용기 있게 시험해 보기를 당부했다. 지난번에 자신에게 한번 청했던 것을 자신의 병으로 인해서 부응하지 못하였기에 이와 같이 말한다고 하였다. 새해에 서로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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