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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신종희(申宗熙) 표(標) 고문서-증빙류-수표 申宗熙 標主 申宗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술년 7월 13일에 신종희가 소유 논 문기를 담보로 7냥을 월리로 사용하고 10월 말일까지 갚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발급한 수표 병술년 7월 13일에 신종희가 소유 논 문기를 담보로 7냥을 월리(月利)로 사용하고 10월 말일까지 갚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발급한 수표(手標)이다. 신종희는 흉년으로 살길이 없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전천평(前泉坪)에 있는 2말 5되지기 넓이의 논문서를 담보로 잡아 7냥을 달변[月利, 원금에 대하여 매월 붙이는 이자]을 조건으로 빌려 쓰고 10월 말까지 갚되, 만약 갚지 못하면 위 담보 논을 영구히 바치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이 수표를 작성해주었다. 문서의 끝에는 이 수표의 발급날짜와 함께 발급자인 표주(票主) 신종희의 이름과 착명(着名)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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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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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남양홍씨(南陽洪氏) 세계(世系) 고문서-치부기록류-보첩류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남양홍씨와 양천허씨의 세계 남양홍씨의 시조인 홍열(洪悅)부터 16대 일동(逸童)까지 간략한 세계(世系)를 적었고,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시조 선문(宣文)부터 19대 허적(許積)까지의 세계를 적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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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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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南陽洪氏世系始祖諱悅 佐麗太祖位至三重大匡太師匡翼效節獻襄定難弘濟奮庸亮采保又經濟功臣 或云殷悅■人金交夫人父沙粲元甫公南沙粲礼千二代諱東周 太中大夫太府卿三代諱毅 銀靑光祿大夫尙書右僕射配漢南郡夫人父書史房元要祖大匡貞儒四代諱灝 追封銀靑光祿大夫尙書右僕射 衛尉寺卿太子詹事配唐城郡夫人父少監洪涉五代諱德升 中散大夫軍器監配大寧郡夫人父中大夫司天監崔得興初諱德㕣六代諱灌 推誠報國功臣檢校太保守太尉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判禮部事上柱國忠平公配松陰郡夫人父太子太師金崔命七代諱至柔 金紫光祿大夫參知政事兵部尙書配桂陽郡夫人父門下平章事自避顯陵御諱爲珦字八代諱元中 軍器都監判事配陰平郡夫人父金紫光祿大夫知門下省事守司空尙書左僕射朴育和九代諱斯胤 銀靑光祿大夫尙書左僕射樞密院副使工部尙書配江陵郡夫人父宣德郎閣門袛候嗣王嗣宗十代諱縉 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禮部尙書翰林學士承旨初配金紫光祿大夫金叔和女■■後配昌原郡夫人父內侍監門衛錄事參軍事崔貺女十一代諱奎 初諱文系推誠陳力安社功臣又奮策拯難扶危安社壁上三韓三重大匡都僉議中贊上護軍判典理司事南陽府院君致仕匡定公配三韓國夫人父金紫光祿大夫參知政事金鍊十二代諱戎 宣授武德將軍全羅道領邊萬戶高麗大匡三司左使上護軍南陽府院君莊簡公配通義郡夫人父奉翊大夫知密直司事軍簿判書世子元覆羅裕十三代諱澍 三重大匡三司左使南陽郡配上黨君夫人父宣力佐理同德贊化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都僉議左政丞上黨府院君思肅公韓渥十四代諱徵 初諱師祖純誠翊戴輔理功臣匡靖大夫判密直司事上護軍唐城郡配曲城郡夫人父宣授賢德大夫將作院事高麗功臣曲城府院君忠敬公廉悌臣十五代諱尙直 嘉善大夫鏡城兵馬節制使判鏡城郡事登文武十六代諱逸童 嘉善大夫同知中樞事再登科女淑儀 成廟朝淑儀妣盧氏景泰丁丑七月二十五日生幼有德行年十四選入宮辛丑春封淑媛陞淑容昭容又陞淑儀正德庚午九月十三日卒春秋五十四葬于楊州南綠楊驛里之原陽川許氏世系 初我刀干等光武壬寅三月禊飮望見龜旨峯有非常氣自天而降就視之金榼中有金卵遂化爲人因姓金氏卽駕洛國首露王也夫人阿踰陁國王之女其父母夢承上帝之敎浮海以送來爲王妃因生數子或冒母姓遂爲許氏始祖諱宣文 孔岩村主二代諱玄 尙衣奉御三代諱元 內史舍人四代諱正 太子太傅五代諱載 太保六代諱純 工部尙書七代諱利涉 直史館八代諱京 禮賓少卿九代諱遂 禮部尙書十代諱珙 僉議中贊諡文敬公十一代諱冠 版圖佐郎十二代諱伯 都僉議贊成事諡文正公十三代諱絅 密直司知申事十四代諱錦 典理判書十五代諱愭 判奉常奇事十六代諱屝 襄陽府使十七代諱薰 陜川郡守十八代諱珉 慈山郡守十九代諱積 典艦司別提贈贊成 配羅氏父長興庫副使處住■大丘女完原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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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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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계사년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順天府使 3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황전면 산영리에서 계사년(1833?) 2월 8일과 2월 14일에 동세미를 관과 행소 향장에게 납부하고 발급받은 영수증 황전면(黃田面 현 전라남도 순천시 북동부에 있는 면) 산영리(山嶺里)에서 계사년(1833?) 2월 8일과 2월 14일에 동세미(洞稅米)를 관과 행소 향장(行所鄕長)에게 납부하고 발급받은 영수증이다. 납부한 동세미는 계사년 2월 8일에 2섬, 2월 14일에 1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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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奴) 예화(禮化)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金書員 禮化 書員 金<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167 정○년 2월 9일에 서원 김이 황전면 산영리에 사는 종 예화에게 24냥을 받고 발급해준 영수증 정○년 2월 9일에 서원(書員) 김(金)이 황전면 산영리에 사는 종 예화(禮化)에게 24냥을 받고 발급해준 영수증이다. 문서 끝에 이 자문을 발급해준 서원 김의 수결(手決)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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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최덕련(崔德連)의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崔德連 谷城縣監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86 1813년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의 준호구 1813년(순조 13)에 곡성현 석곡면에 사는 호주 최덕련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것이다. 거주지 주소는 곡성현(谷城縣) 석곡면(石谷面) 운와리(雲臥里) 2통 1호이다. 호주 최동룡(崔東龍)이 죽어 그를 대신해 아들 최덕련이 호주가 되었다. 최덕련의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25세 기유생(己酉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동룡(東龍), 할아버지 학생 귀선(龜善), 증조(曾祖) 증가선대부 공조참판 오위도총부 도총관(贈嘉善大夫工曹叅判五衛都摠府副摠管) 성남(聲南), 외조(外祖) 학생 황경하(黃慶河)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최덕련의 아내 박씨(朴氏)는 나이 26세 무신생(戊申生)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그녀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욱(光旭), 할아버지 학생 경(璟), 증조 학생 무춘(茂春), 외조 학생 장시엽(張時燁)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소유 노비는 여종 상원(尙元)이고 나이는 24세 경술생(庚戌生)이다. 이 문서는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등이 찍혀있지는 않으나 문서 하단에 '경오식상준인(庚午式相凖印)'이 기재되어 있어 경오년인 1810년에 작성한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 최덕련에게 다시 돌려준 준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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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최성규(崔成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崔成奎 風憲 趙 風憲 趙 [着名] [着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인년 9월 사동 오리에 거주하는 유학 전주 최성규의 준호구 경인년 9월 사동(巳洞) 오리(五里)에 거주하던 유학(幼學) 최성규(崔成奎)의 78세(갑술생) 당시 준호구이다. 그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지낸 최학(崔㶅)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참판겸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낸 득인(得仁), 증조(曾祖)는 증병조참의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인 처렴(處濂)이다. 외조(外祖)는 학생(學生) 임광록(林光祿)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처(妻) 김씨(金氏)는 나이 78로 호주와 같은 나이이며 본적은 김해(金海)이다. 처부(妻父)는 학생 지민(志珉), 처조(妻祖)는 통훈대부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을 지낸 김후(金后)이며, 처증조는 학생 치옥(致玉), 처의 외조는 학생 황천추(黃千秋)로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거느리던 식솔로는 아들 유학(幼學) 광훈(光爋, 41세), 그의 아내인 나주 임씨(林氏, 46세), 조카 유학 광룡(光龍, 30세), 조카의 아내 진주 하씨(河氏, 26세)이다. 거느리던 노비로는 노1구와 죽은 여종 1구를 기록했다. 관의 서압과 문서를 기록한 사람으로 보이는 풍헌(風憲) 조(趙)의 착명(着名)이 있다. 관에서 통계를 낸 기록으로 붉은 글자로 14통(統) 4호(戶)가 적혀 있다. 합철되었던 흔적이 구멍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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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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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巳洞五里戶籍單子幼學崔成奎年七十八甲戌本全州父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 㶅祖贈戶曹參判兼五衛都摠府副摠管 得仁曾祖贈兵曹參議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 處濂外祖學生林光祿本羅州妻金氏年七十八甲戌籍金海父學生 志珉祖通訓大夫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 后曾祖學生 致玉外祖學生黃千秋本長水率子幼學 光爋年四十一辛亥婦林氏年四十六丙午籍羅州率侄幼學 光煜年四十壬子婦趙氏年四十一辛亥籍咸安侄幼學 光龍年三十壬戌婦河氏年二十六病人籍晉州賤口奴春元婢分蟾故戊子相準印庚寅九月 日風憲趙朱字 : 十四統四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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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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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648년 이구(李坵) 별급문기(別給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李坵 安峑 李坵<着名>, 李之茂<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48년 12월 7일에 장인 이구가 사위 안전에게 노비와 전답을 별급하면서 작성한 별급문기 1648년 12월 7일에 장인 이구(李坵)가 사위 안전(安峑)에게 노비와 전답을 별도로 지급하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 이구가 나이 70이 되어 평소에 즐거운 일이 없었는데 사위 안전이 진사시에 입격[得參蓮榜]하여 뭇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집안에 큰 즐거움을 주었으니 이에 대한 보답으로 노비와 전답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지급된 노비로 노 축금(丑金)의 3소생 노 견룡(見龍)과 비 향개(香介)의 2소생 비 예생(禮生)이 있고, 전답으로 나주와 이천에 있는 논 6두락과 산탁동(山托洞)에 있는 논 7두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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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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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43년 배성득(裵聖得)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裵聖得 順天府使 府使<押> □…□(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118 1843년 6월에 배성득 등이 순천도호부사에게 올린 소지 1843년(헌종 9) 6월에 배성득(裵聖得)과 배종▣(裵鍾▣)이 순천도호부 관아에 올린 소지이다. 쌍암면(雙巖面)의 배씨 집안이 보성에 사는 전씨 집안과 산송을 1870~90년대에 벌인 문서를 참고하면 전씨 집안이 이 지역의 산지를 매입하여 선산으로 삼은 시기는 1840년대이다. 그리고 착관을 '行使'로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순천군이 되기 이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소지는 작성연대를 계묘년으로 썼으나 1843년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성득 등은 소지 본문에서 올해 5월에 자기 선산의 벌내(伐內)로 지맥을 압박하는 지점에 보성(寶城) 율음면(栗音面)에 사는 전복동(全福同)이 투장(偸葬)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투장묘를 파내기 위해 그들 잡아보내도록 보성군에 문서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순천도호부 관아에서는 초7일에 처분을 내려 "이문(移文)을 작성해 줄 것"이라고 형리에게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문서 뒷면에 18일에 내린 처분이 있는데, "원고와 피고[兩隻]의 향소(鄕所)는 현장을 조사하여 도형(圖形)을 그려서 보고하라."라고 면임(面任)에게 지시하고 있다. 18일에 내린 뒷면의 처분은 7일에 내린 처분대로 보성군에 관문을 보내어 전씨 집안 사람들이 순천도호부 관아에 와서 대질한 후 내린 처결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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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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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54년 6남매 화회문기(和會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4년 4월 22일에 6남매가 모여 전답과 노비를 나누면서 작성한 화회문기 1754년 4월 22일에 5남 1녀가 모여 전답과 노비를 나누면서 작성한 문서이다. 조선시대 재산을 분배하려는 목적으로 작성한 문서를 '분재기(分財記)'로 통칭하는데, 분재기는 재산 분배의 시기와 방법에 따라 화회문기(和會文記), 분급문기(分給文記), 별급문기(別給文記) 등 여러 유형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본 문서의 경우 서두에 화회라는 문구가 적혀있으므로 화회문기로 분류하였다. 대개 화회문기는 부모가 사망한 뒤 형제들이 모여 재산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작성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문서의 경우 부모가 생존한 상태에서 재산을 분배하였다. 재산 분배의 이유는 부모가 나이가 여든에 가까워진데다가 앓고 있는 병이 심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5남 1녀와 손자 우문(右文)이 각자의 몫[衿]에 맞는 재산을 받았다. 문서의 앞부분 일부가 결락되어 장남의 몫을 기재한 부분은 온전하지 않으나 당대 종법질서에 따라 가장 많은 몫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一女의 몫이 가장 적다는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가문 노비들에게도 분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奴 太應金(畓 ▣斗落), 婢 隱丹(畓 4斗落), 婢 每良(畓 2斗落), 婢 鋤雲(畓 2斗落)과 같다. 이처럼 상속의 대상이 되는 노비에게까지도 별도의 재산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화회 참여자의 명단이나 거주 지역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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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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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時山坊化民千鎰冠千鎰權正言千光祿宣傳千鎰杓千亨基千鳳根千致道千鶴秀等齋沐上書于城主閤下細細垂察焉民之先祖花山君諱萬里也 皇明萬曆壬辰與李提督兼行先鋒運粮使援兵八域樹勳炳如月星惟我宣廟朝嘉其忠烈特封花山君而葬于治下金岸坊環峯子坐之原數百年守護矣不意今年雨水之際墓所白虎嶝階上階下盡爲川汰只盖墳上一柸土而已爲其子孫豈不寒心㦲數萬丈山上改莎封築必無財力則求失先祖■(之)墓貌之境故不得不各道各邑諸宗中定有司鳩財設役以完大事之意伏達于神明孝理之下 洞燭敎是後 特下立旨公文使民之先祖以安軆魄萬年幽宅之地千萬齊祝齊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丙申九月 日〈題辭〉依訴完文成給向事十四日告梁翰涉[官印]行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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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山坊化民千鎰冠正言千光錄宣傳千鎰杓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民之先祖花山君墳墓崩頹鳩財修葺旣在洞燭中是白在果今方改莎之日財少役多如不衆力必難完築 惠以孔邇 施以不遐 嚴辭傳令于附近坊金岸機池使之赴役俾無後艱千萬齊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丁酉二月 日〈題辭〉依訴施行事面任二十二日[官印]2種行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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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계유년 서영수(徐永修) 의송(議送)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徐永修 <着名> □…□ 3顆(적색, 정방형, 8.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74 계유년 3월에 곡성현 북면에 사는 서영수가 이미 판결 난 자신의 산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처분해줄 것을 청원한 의송 계유년 3월에 곡성현(谷城縣) 북면(北面)에 사는 서영수가 이미 판결 난 자신의 산지(山地)를 빼앗기지 않도록 처분해줄 것을 청원한 의송이다. 문서의 일부가 훼손되어 어디에 정소(呈訴)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제사의 시행자가 본관(本官)이라는 점과 서압(署押)을 볼 때 감영(監營)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는 서영수가 임신년 6월과 11월 등 여러 차례 도순찰사와 암행어사 및 겸관 등에게 청원한 뒤에 재차 청원한 것이다. 임자년부터 나뭇갓[柴場]의 순산(巡山)을 정하여 땔나무를 파는 등 서영수가 북면에 큰 공이 있었는데 작년 겨울에 간악한 향리 정인국(鄭仁國) 무리가 무고(誣告)하여 나뭇갓과 면 안에 사놓은 전답을 모두 빼앗아 민고(民庫)에 속공(屬公) 시키고, 나뭇갓의 유사(有司) 중 한 사람인 서영수를 요민(饒民)이라고 하여 빙정조(氷丁租) 60섬과 진상에 쓰는 장빙전(藏氷錢) 120냥 및 속전(贖錢) 60냥을 까닭 없이 책납(責納)하게 하였다. 또한 5년 전인 지난 기사년에 서영수가 아버지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30냥을 면에 지불하고 명문을 작성하여 순산 안에 있는 산지를 매입한 후 금양(禁養)하였는데 그들이 이 산지를 또 법외로 광점(廣占)하고 값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하면서 빼앗아 고마청(雇馬廳)에 속공시켰다. 이에 서영수는 이유 없이 징수한 많은 전곡(錢穀)과 산지를 돌려받기 위해 순찰사와 암행어사 등에게 청원하여 결국 완문(完文)을 발급받고 빼앗긴 용호육곡(龍虎六谷)의 산지도 내어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고을 사람들이 호랑이처럼 두려워하는 조삽(趙鈒) 등이 서영수의 산지를 고마청에 속공하고자 계획하였다. 이에 서용수는 앞뒤로 올렸던 소지와 의송 완문 등 9장을 점련(帖連)하여 이미 판결이 내려진 자신의 산지를 멋대로 침탈하지 못하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의송에 대해 순찰사는 3월 4일에 곡성 현감에게 '본읍(本邑)에서 사실을 조사하여 의견을 첨부해 보고하여 처리하라'는 처분을 내리고, 제사(題辭) 위에 관인(官印)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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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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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26년 박덕봉(朴德夆)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河赫 朴德奉 河赫<押>, 梁仲伊<着名>, 李東瓚<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6년 11월 24일에 유학 하혁이 박덕봉에게 목산면 도고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6년(순조 26) 11월 24일에 유학 하혁이 박덕봉에게 목산면 도고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하혁은 쓸 곳이 있어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농사짓고 살던 논을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박덕봉에게 팔았다. 논의 위치는 담양 목산면(木山面) 도고리(都庫里) 좌평(左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자자(玆字)이다. 논의 면적은 6마지기이고 짐수[卜數]는 34짐 3뭇으로, 논값으로 33냥을 받았다. 명문 본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자제들 사이에 이 매매에 대해 서로 다투거나 쓸데없는 말을 하면 이 명문으로 관(官)에 고하여 옳고 그름을 바로잡는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답주(畓主) 하혁, 이 매매의 증인(證人) 양중이(梁仲伊), 이 명문을 작성한 필집(筆執) 유학 이동찬(李東瓉)이 각각 착명(着名)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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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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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1년 이풍식(李灃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昌平縣監 李灃植 行縣令<押> □…□(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856 1891년에 창평현에 사는 호주 이풍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91년(고종 28)에 창평현에 사는 호주 이풍식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환부(鰥夫) 이풍식의 거주지는 창평현(昌平縣)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행정리(杏亭里) 오가작통 순번은 제1통 3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61세 경인생(庚寅生)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풍식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통덕랑(通德郞) 낙승(洛承), 할아버지 학생 규현(奎鉉), 증조(曾祖)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 재원(在元), 외조(外祖) 학생 김상선(金商璇)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가족으로는 아들 유학 응태(應泰) 나이 35세 병진생(丙辰生)이 있으며, 소유하고 있는 여종은 복금(卜今)이고 나이 48세 임인생(壬寅生)이다. 문서에 '호적단자(戶籍單子)'와 작성년인 '신묘식(辛卯式)'이 적혀 있고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창평현령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이풍식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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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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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井谷面內玉泉村居朴桂聖右謹陳所志情由事段矣亡父生時去辛卯年分本邑井谷面內玉泉村後寺基峙下姜哥世來先塋山地處矣祖母入葬而姜哥子孫弼良弼龍山直田牧字皮牟二斗落只及前後養山草木幷以價錢五十七兩五戔買得成文記後未過三年癸巳年分姜貴三姜萬三等又到曰同姜哥子孫是如爲遣尤加禁斷故以私力不可相爭又以價錢二十兩買得成文記後矣父丁未年分身死故祖母墓下亡父入葬之後一無雜談矣千萬意外本邑垈如居廉宗鳳爲名人戊申年分忽來稱托曰姜哥外孫是如爲遣索徵賂物故矣爲其先山又以價錢三兩五戔買賣成文後永無雜談之人矣去年十二月日本邑能墨里居金哥爲名漢二人來曰稱爲姜哥外孫云爲遣矣先山掘移次劫徵非常此不過矣先山欲奪之計也大抵金哥等實爲姜哥外孫則金哥所居處姜哥先山相距不過十里之許而其間姜哥先山盡爲芊陳而將爲馬場者至近二十餘年而其間一無伐草而又一無省墓是如可至今自稱姜哥外孫之說其可成說乎金哥實爲外孫是良置同山主之孫旣已賣食又有放賣文記昭昭明白是去乙金哥等忽生非理之慾無端他人山地臆奪次橫侵非常世豈有如此無雙之人乎不勝冤痛乙仍于山主處奉文記幷敢將仰訴爲白去乎伏 乞明政之下緣由一一洞燭敎是後上項金哥等忽生非理之慾他人山地無端臆奪次橫侵之罪另加嚴治而日後孤弱殘民處勿爲更侵之意特爲嚴題行下爲白只爲使道主 處分辛酉正月日〈題辭〉買得山地又是繼葬卽金哥(背面)輩之稱以外先墳墓欲爲冒禁極爲痛駭故金哥置之落訟以此憑考事十九日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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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標右爲標段 山嶺邨後養山 已賣於右前 而價文畢捧之日 收覓古文記 則已爲遣失 故不得已成手標以給爲去乎 以此憑考事標主 幼學 趙潤相[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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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5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3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5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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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 日谷里盧珍永氏 殿(피봉_뒷면)長 鶴林里李文亮(簡紙)積阻之懷, 又經年, 其所茹悵, 難以勝矣. 謹未審春寒甚酷,侍中體候連爲萬旺, 閤內亦得均吉, 幷仰溸區區, 至祝至祝. 兄近以寒感與齒痛,屢日不振作, 是果年迫半世之致耶. 自悶又可呵呵耳. 就悚, 新寓此地之無寸土之農, 何以爲料. 生實難且難矣.思之又思, 如是冒廉更告, 惟願 賢弟特出無前之規, 那畓五斗落另圖移給, 使此孤寓之兄, 以爲安業之地, 千萬鴻祝耳. 第待身完之日, 卽欲拜討, 而且朴兄口悉. 姑此, 都留不備上.戊辰元月二十七日, 兄李文亮 拜上(夾紙)玉席壹立忘畧送呈, 無以畧, 情領, 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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