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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置簿) 2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호남(湖南)의 시기결(始起結) 217993결(結)과 기타 잡비(雜費) 등에 관해 적은 치부(置簿). 호남(湖南)의 시기결(始起結) 217993결(結)과 기타 잡비(雜費) 등에 관해 적은 치부(置簿). 호남의 기결전(起結田)과 잡비(雜費) 내역 및 그 환산 전문액(錢文額) 등을 기록한 내용 *원문: 湖南始起結二十一萬七千九百九十三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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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七年九月 日長水縣故學生李奎鉉學行及其子洛丞孝行實蹟査報成冊故學生李奎鉉學行實蹟系出 璿源完原君?之十一世孫而其中祖正郞繼宋以宣廟朝特旨出后於俛仰先生宋參賛純長子海寬盖宋氏墓隧與家庄在於潭陽府故以外裔來寓而奉祀後孫遂居焉至於曾祖徽贈掌樂院正祖陽燮贈戶曺參議父在元贈戶曺參判而參判以英廟朝丙戌生奎鉉于潭陽豆谷靣上德里私第奎鉉生而頴異年甫八歲開口詠物吐辭驚人稍長事親以誠敬長以禮動静云爲有若老成人旣冠容儀俊偉辯論淸確素負重望爲先生長者所推詡遂無意於擧業讀書以心經近思錄性理大全爲入德之階梯講究蘊奧發揮性理中年分徃候於性潭宋先生門講磨道義多所獎詡可見其氣質用小學問功大處也其孝友著於家中行義稱於省內遠近學者望風坌集近古南服公實爲士林之冠冕甞自扁其所居曰秋圃盖囙其地名也自此來學者稱以秋圃丈席云臯鶴難掩以其學行才局再次入於道伯之剡薦雖未見用於世其有功於斯文吁其暢矣天不假壽以純廟朝壬申考終于家享年四十有七長老有速奪之誄後學有山摧之歎學力之得人深者有如是夫自是厥後道通相踏儒狀且麟道內儒生吳龍圭等累度抱狀齊籲 宲舎者已經數十載尙未蒙 貤贈之典是齊故學生李洛丞孝行實蹟正廟朝癸丑八月生于本府私第亦以聦慧之姿學襲家庭自在齠齔事親至孝長而家窶漁樵以供菽水盡歡其爲孝養只務悅志侍側之日人未見其一生愠言父母有疾憂遑踧踖藥餌之供饘粥之具靡所不至何必待敎導而能之盖其天性然也鄰里族親咸服其孝歲在壬申其父奎鉉奄患無何甞藥甞糞乃其末節刀圭無靈祈天而願代命也無奈則哀毁哭踊秉彛者聼之孰不感哭也水漿不入口者五日杖而後起至其葬也廬于墓下昕夕哀痛常與袒括無異三年如一日苟非誠孝之根天那能若是是時年才十九闋制之後遂絶意榮途無或以擧子爲業以早孤爲生平之痛事其母宋氏一如其父躬執爨炊身兼耕讀遂搬寓于昌平之杏亭遵母訓也粤在丙申其母病谻此老成時也百端誠供倍於前日乃於屬纊之日拚擗慟隕絶而復甦者數矣喪而稱其情葬而盡其節又廬于墓側哭泣不絶於口衰經不離於身毁瘠骨立哀慕踰禮當膝之處草根枯死前喪後喪一無餘憾終制之後托跡山水遂搆一茅廬扁之曰埜隱胷次爽然一邱一壑捿息自如甞庭植雙梧門栽一柳以寓霽月光風之味遠近士友之記序撰誦者案頹而軸溢足可知草野遺逸之義也寒親窮交其於四禮有闕則極力出救鄰里咸樂而愛戴之此亦非誠孝中流出來者耶以哲廟朝癸丑亦考終于家没世之後道狀儒通亦前後相疊而尙未蒙㫌褒之典是齊[長水縣監之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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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七年九月 日長水縣故學生李奎鉉學行及其子洛丞孝行實蹟査報成冊故學生李奎鉉學行實蹟系出 璿源完原君?之十一世孫而其中祖正郞繼宋以宣廟朝特旨出后於俛仰先生宋參賛純長子海寬盖宋氏墓隧與家庄在於潭陽府故以外裔來寓而奉祀後孫遂居焉至於曾祖徽贈掌樂院正祖陽燮贈戶曺參議父在元贈戶曺參判而參判以英廟朝丙戌生奎鉉于潭陽豆谷靣上德里私第奎鉉生而頴異年甫八歲開口詠物吐辭驚人稍長事親以誠敬長以禮動静云爲有若老成人旣冠容儀俊偉辯論淸確素負重望爲先生長者所推詡遂無意於擧業讀書以心經近思錄性理大全爲入德之階梯講究蘊奧發揮性理中年分徃候於性潭宋先生門講磨道義多所獎詡可見其氣質用小學問功大處也其孝友著於家中行義稱於省內遠近學者望風坌集近古南服公實爲士林之冠冕甞自扁其所居曰秋圃盖囙其地名也自此來學者稱以秋圃丈席云臯鶴難掩以其學行才局再次入於道伯之剡薦雖未見用於世其有功於斯文吁其暢矣天不假壽以純廟朝壬申考終于家享年四十有七長老有速奪之誄後學有山摧之歎學力之得人深者有如是夫自是厥後道通相踏儒狀且麟道內儒生吳龍圭等累度抱狀齊籲 宲舎者已經數十載尙未蒙 貤贈之典是齊故學生李洛丞孝行實蹟正廟朝癸丑八月生于本府私第亦以聦慧之姿學襲家庭自在齠齔事親至孝長而家窶漁樵以供菽水盡歡其爲孝養只務悅志侍側之日人未見其一生愠言父母有疾憂遑踧踖藥餌之供饘粥之具靡所不至何必待敎導而能之盖其天性然也鄰里族親咸服其孝歲在壬申其父奎鉉奄患無何甞藥甞糞乃其末節刀圭無靈祈天而願代命也無奈則哀毁哭踊秉彛者聼之孰不感哭也水漿不入口者五日杖而後起至其葬也廬于墓下昕夕哀痛常與袒括無異三年如一日苟非誠孝之根天那能若是是時年才十九闋制之後遂絶意榮途無或以擧子爲業以早孤爲生平之痛事其母宋氏一如其父躬執爨炊身兼耕讀遂搬寓于昌平之杏亭遵母訓也粤在丙申其母病谻此老成時也百端誠供倍於前日乃於屬纊之日拚擗慟隕絶而復甦者數矣喪而稱其情葬而盡其節又廬于墓側哭泣不絶於口衰經不離於身毁瘠骨立哀慕踰禮當膝之處草根枯死前喪後喪一無餘憾終制之後托跡山水遂搆一茅廬扁之曰埜隱胷次爽然一邱一壑捿息自如甞庭植雙梧門栽一柳以寓霽月光風之味遠近士友之記序撰誦者案頹而軸溢足可知草野遺逸之義也寒親窮交其於四禮有闕則極力出救鄰里咸樂而愛戴之此亦非誠孝中流出來者耶以哲廟朝癸丑亦考終于家没世之後道狀儒通亦前後相疂而尙未蒙㫌褒之典是齊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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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최민정(崔旻正)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寶城郡守 崔旻正 行郡守<押> 寶城郡守之印(6.5x6.5), 周挾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972 1852년에 보성군(寶城郡)에서 최민정(崔旻正, 4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주소: 龍門面 第 里松山村第 統第 戶 *가족사항: 奉母 蔡氏(66세), 弟 時正(42세), 嫂 光山金氏, 弟 壽正(39세), 嫂 尙州周氏(35세), 子 鍚衡(26세), 子 鍚嵂(23세), 婦 光山金氏(23세) *소유노비: 奴婢 4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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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노(奴) 예화(禮化)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順天府使 禮化 2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167 황전면 산영리에 사는 종 예화가 1832년 12월 7일과 12월 19일에 빌린 콩과 쌀을 관과 행소 향장에게 납부하고 발급받은 영수증 황전면(黃田面 현 전라남도 순천시 북동부에 있는 면) 산영리(山嶺里)에 사는 종 예화(禮化)가 1832년(순조 32) 12월 7일과 12월 19일에 빌린 콩과 쌀을 관과 행소 향장(行所鄕長)에게 납부하고 발급받은 영수증이다. 종 예화가 납부한 곡물은 1832년 12월 7일에 콩 9말 5홉과 12월 19일에 쌀 1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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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노(奴) 예화(禮化)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順天府使 禮化 2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167 황전면 산영리에 사는 종 예화가 1837년 11월 3일부터 12월 23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세전을 관과 행소 향장에게 납부하고 발급받은 영수증 황전면(黃田面 현 전라남도 순천시 북동부에 있는 면) 산영리(山嶺里)에 사는 종 예화(禮化)가 1837년(헌종 3) 11월 3일부터 12월 23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세전(稅錢)을 관과 행소 향장(行所鄕長)에게 납부하고 발급받은 영수증이다. 종 예화가 납부한 세전은 1832년 11월 3일에 50냥, 11월 13일에 40냥, 11월 23일에 40냥, 12월 4일에 30냥, 12월 23일에 2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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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세계(世系) 고문서-치부기록류-보첩류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태조 이성계의 선계를 기록하고 마지막에 정종, 태종, 세조, 선조태왕의 자손에서 시작되는 이면긍파, 이상황파, 이지연파, 이서구파의 시작까지 개괄해 놓은 전주이씨 세계의 일부. 태조 이성계의 선계를 기록하고 마지막에 정종(定宗), 태종(太宗), 세조(世祖), 선조태왕(宣祖太王)의 자손에서 시작되는 이면긍파(李勉兢派), 이상황파(李相璜派), 이지연파(李止淵派), 이서구파(李書九派)의 시작까지 개괄해 놓은 전주이씨 세계의 일부이다. 도조(度祖)를 시작으로 흥(興)-천계(天桂).원계(元桂)의 자손 등을 기록하고 원계의 아버지인 환조(桓祖) 및 환조대왕의 3남1녀(그 중 제1남이 태조 이성계)를 개괄하였다. 이어 선원보략(璿源譜略) 범례(凡例) 중 1항목을 기록했다. 내용은 구보(舊譜) 자손록 중에서 이름을 바꾼 사람은 주로 달았다는 것, 초명(初名)만 있고 성장하기 전에 죽은 자에는 요몰(夭沒)이라고 주를 달았다는 것, 그런데 이 요몰이 너무 자주 나와서 번거롭기에 종실(宗室)에 부쳐진 자 이외에는 쓰지 않았고, 초명만 있고 죽은 자는 삭제해 버렸다는 항목이다. 마지막으로 태조의 아들인 정종의 15남 8녀 중 제10남인 덕천군(德泉君)에서 시작된 이면긍파(大貞洞), 태종의 12남 17녀 중 제2남 효령대군(孝寧大君)에서 시작한 이상황파(水橋), 세종대왕 18남4녀 중에 제5남 광평대군(光平大君)에서 시작된 이지연파(安洞坊), 선조태왕 14남11녀 중 제12남 인흥군(仁興君, 瑛)에서 시작한 이서구파(永平)를 기록하고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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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順天) 소안면(蘇安面)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단자(單子) 고문서-치부기록류-보첩류 李在求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조선말, 선원대동보에 입록하기 위해 작성한 순천 소안면 효령대군파 족보 단자. 조선말, 선원대동보(璿源大同譜)의 입록(入錄)을 위해 작성한 순천(順天) 소안면(蘇安面)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 족보 단자(單子)이다. 유학(幼學) 이재영(李在永)과 그의 부(李得亨), 조(李章吾), 증조(李光俊), 외조(楊龍甲, 본관 南原)를 기록하고 처 박씨(朴氏, 본관 密陽)의 4조인 부(朴思根), 조(朴迎春), 증조(朴龍一), 외조(학생 金基烈, 본관 慶州)를 기록했다. 아들 유학(幼學) 기석(基碩)까지 적혀 있다. 종이의 재질로 보아 조선말기로 생각되지만 정확한 작성시기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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寶城儒生全永五右謹陳情由事段 夫伐松 國之大禁 而不論賣買 欲奪人先壠 無難伐松者 法外也 理外也 生之祖父山 在於順天雙巖面老嫗峙 而入葬時 前後山麓買得於前山主沈洛彬是遣 所謂裵塚 雖在其中 渠非山主 故初無一言半辭矣 于今四十餘年 守護禁養 松木鬱蒼 不知其數千萬株是乎乙加尼 千萬意外 山下居裵漢祚裵鼎權爲名漢家甚富饒 人皆豪悖 行惡其長技也 健訟其長技也 滿山松楸 爲渠眼中之釘 敢生勒奪山麓之計 自稱以渠之先山在其中 率其族黨四五十名 各持斧斤 結縛生之山直 四十餘年長養邱木 一時斫伐 山自赭立 斫松之罪 已在法典 當依律勘處 而生之憤寃痛泣之心 雖以一山之松枝數 其罪豈能雪恥乎 且其松木價 則一千餘兩也 不勝至寃 前後文記帖連 仰籲於明政之下爲去乎 洞燭敎是後 裵漢祚裵鼎權 發關捉囚 照律嚴處是遣 松木價一千餘兩 卽刻捧給 使此他官孤踪 保守先壠 無至呼寃之地千萬伏祝爲只爲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癸未九月 日前題已成斷案犯斫知如己物兩裵漢惡習極矣 捉査嚴囚 依訴準推事山在官 初五日申時[印][巡使] [署押][爻周](背面)裵全訴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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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전영오(全永五)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全永五 順天府使 順天府使<押> □…□(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118 1883년 9월에 전영오가 순천도호부사에게 올린 산송 소지. 1883년(고종 20) 9월에 보성군(寶城郡)에 사는 전영오(全永五)가 순천도호부(順天都護府) 관아에 올린 산송 소지이다. 전영오는 같은 해 9월에 순천(順天) 쌍암면(雙巖面) 노구치(老嫗峙)에 있는 선산의 소나무를 산 아래에 사는 배한조(裵漢祚)와 배정권(裵鼎權)이 베어갔다고 전라감영에 고발하였다. 당시 "잡아다가 조사하고 엄히 가두어 호소한 바에 따라 받아낼 것"이라는 뎨김(題音)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소지는 이 처결 사항을 산소가 있는 지방관인 순천부에 접수하고 그대로 이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순천도호부 관아는 14일에 "감영의 처분에 따라 조사하고 거둬들이기 위해 잡아다 대령하라."라는 처분을 면주인(面主人)이 이행하도록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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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일 최연석(崔演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演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230 즉일(卽日)에 최연석(崔演錫)이 누군가에게 산지의 방매에 대해 시가에 따라서 방매하면 갈등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간찰 즉일(卽日)에 최연석(崔演錫)이 보낸 간찰이다. 자신의 재종(再從)이 장산(葬山)을 방매(放賣)하는 일로 언급했었기 때문에 서신을 올리는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시가에 따라서 방매한다면 일시적인 갈등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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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伏拜上際伏白 生之再從以葬山放賣事言及云云 故玆書上勿疑從時價放賣 則以免一時之葛藤之地 千萬企望千萬企望耳卽日 崔演錫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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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년 안성(安峸) 등 초사(招辭) 고문서-증빙류-초사 安峸 寶城郡守 官<押, 着名> □…□ 6顆(6.6x6.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035 1672년 7월에 안전이 사촌동생 안규에게 노비를 매입하고 보성군 관아에서 발급받은 입안에 점련되어 있던 증인 2명의 진술서 1672년 7월 12일에 安{山+奎}가 노비를 安峑에게 매도 사실에 대해 證人 安峸과 證保 安㟳이 寶城郡 관아에 출두하여 진술한 招辭이다. 진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의 안규는 요긴히 쓰려는 이유로 조상에게 전래 받은 白川 지역의 奴 彦隱이 양인 신분의 처와 낳은 다섯째 소생인 奴 季達(나이 18, 을미년생) 1명을 뒷날의 소생까지 아울러 알맞게 값을 받고 同姓 사촌형인 奉事 安峑에게 팔았습니다. 그때 證參한 것이 확실합니다."라고 하였다. 작성 일자는 '同日'이라고 적혀 있다. 관인이 여섯 군데 찍혀 있는데, 답인된 상태로 보아 원래 다른 문서와 점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관련 문서인 증인의 招辭 및 賣買明文, 입안 신청 所志, 보성군이 발급한 立案 등이 점련되어 있었을 것을 보인다. 따라서 관련 문서인 奴主 안규의 초사에 적힌 일자와 같은 일자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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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伏惟至寒尊體動止候萬重仰慰區區就親事旣承 柱單實恊願附涓吉仰呈 章製回 示如何餘謹宣伏惟尊察 謹拜上狀乙丑十一月初九日安東權泰淳再拜(皮封)謹再拜上狀鄭生員 下執事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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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婚書)恭承尊翰歲臘良深伏惟仲春尊體震艮連護萬重仰慰區區之摯第侄阿親事旣承穀差從占福原耳衣製尺度依 敎錄呈謹宣伏惟尊亮 謝上狀丙寅二月十五日密城朴璘坤再拜(皮封)謹拜謝上狀郭生員 下執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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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星單子)乙巳五月初八日戌時原丙寅二月十一日密城朴[着名](皮封)四星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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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南道 康津郡故郡內面 樂山里 洞 第四統 第三戶戶籍表第 號, 註明戶主: 朴載彬, 年: 七十, 本: 密陽, 職業: 儒業, 前居地: 久居, 移居月日: 乙未三月父:生父: 千益祖: 雄俊曾祖: 師正外祖: 金龍郁同居親屬 :妻 金氏率子 章鉉婦 金氏率孫 潤瑗婦 金氏次孫 潤統次孫 潤成次孫 潤玉女息 一寄口: 男 口 女 口雇傭: 男1口 女 口現存人口: 男七口 女四口, 共合: 十一口家宅 : 己有 瓦 間 草 三間, 借有 瓦 間 草五間, 共合: 八間光武二年二月 日 郡守 申性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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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谷城儒生千鎰貫鎰權鎰杓等謹齋沐百拜上書于領議政大監閤下伏以生之先祖▣(花)山君諱萬里卽 皇明萬曆時名將也頃當壬辰日寇跳梁八域靑邱幾▣…▣浪羯塵而我先祖花山君奮義赴戰戰則必捷國家中興之勳亦一其力矣惟我 ▣▣(列聖)朝惜其忠義彰其功烈 特封花山君是如無論宗支賤孽勿▣▣(侵雜)役事 傳敎完文如彼▣…▣姓者所居列邑果無侵責之弊矣挽近人▣…▣雜役凢他徵索無日不甚去益罔涯夫如是則 列聖朝 傳敎之意果安在㦲不勝▣▣▣傳敎完文與前後文蹟帖連仰籲于 本官城主則 題▣受 敎與完文昭然依訴頉給俾無侵漁向事敎是是乎乃此乃一時之許題也切非百年之昭蹟也故▣(千)里褁足玆敢帖達于神明理燮首揆之閤下伏乞 特下嚴關于本道本邑一以奉 傳敎之優旨二以奠勳裔之殘居千萬伏祝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領議政大監閤下 處分辛卯十月 日〈題辭〉依完文頉給毋使呼寃宜當向事十六日本道監營本官[官印]堂上[署押]〈背面〉庚戌十一月十三日辰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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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6년 천일관(千鎰冠)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冠 城主 □…□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79 1896년 9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천일권·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 등 8인이 수령에게 수해로 인해 무너진 선조 화산군 묘소를 정비하는 데에 입지를 발급하여 도와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6년(건양 1) 9월에 남원군 시산방(時山坊)에 사는 천일관·천일권(千鎰權)·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 등 8인(人)이 남원군수(南源郡守)에게 수해(水害)로 인해 무너진 선조 화산군(花山君) 묘소를 정비하는 데에 입지(立旨)를 발급하여 도와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과 정언 천광록 등의 선조인 천만리(千萬里, 1543~?)는 명나라 만력(萬曆) 때의 명장(名將)으로 임진왜란 때에 조병영량사(調兵領糧使)로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원병(援兵)으로 와서 전국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에 선조(宣祖)가 화산군으로 봉하고 남원군 금안방(金岸坊) 환봉 자좌(環峯子坐)에 장사(葬事)한 뒤 수백 년 동안 수호하였는데 올해 장마 때에 묘소 백호등(白虎嶝)의 섬돌 위아래가 모두 무너져내렸다. 이에 다시 무덤 흙을 쌓아 올리고 떼를 입히기 위해 각 도 각 읍 여러 종중(宗中)에 유사(有司)를 정하고 자금을 모아 완공하려고 하므로 특별히 입지를 내려 만년토록 묘소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군수의 대리심(代理審) 양한섭(梁翰涉)은 9월 14일에 '정소(呈訴)한 대로 완문을 발급해 주라'는 처분을 내렸다. 입지는 입안이 간소화된 형태로 관에서 민인의 청원 사실을 확인해 주는 문서이다. 개인이 소지를 올려 입지를 요청하면 관에서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제출한 소지에 제사(題辭) 형태로 입지 사실을 기록하고 서압함으로써 공증의 효력을 갖게 된다. 입지는 독립문서가 아니라 소지에 부기된 형태로 그 형식이 간단하므로 입안이 지속적인 공증 효력을 갖는 데 비하여 일회적인 효력을 갖는다는 한계가 있다. 천광록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양(潁陽), 자는 화선(華善), 호는 만은(晩隱)이며, 부친은 오봉(梧鳳) 천창억(千昌億)이다. 경상북도 구미(龜尾) 출생으로 1892년(고종 29) 알성시(謁聖試)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1894년(고종 31)에 일본을 배척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하였다. 1897년(광무 1) 옥책관(玉冊官)에 임명되었으며, 1902년에는 경상북도 고운사(孤雲寺)에 연수전(延壽殿)을 짓는 공사를 맡았다. 그는 선양을 위하여 1898년에 문중과 협력하여 화산군의 묘역을 정비하고 신도비를 세우고, 1901년에는 천만리의 시호(諡號) 추증(追贈)을 위한 상소를 올려 1910년(융희 4)에 충장(忠壯)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리고 1903년(광무 7) 영양천씨(潁陽千氏) 대동보(大同譜) 편찬을 위해 거금을 희사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에 통분하여 임금에게 상소를 올린 후 고운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여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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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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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정축년 김일종(金日宗)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金日宗 標主 金日宗<着名>, 證筆 金淳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축년 3월 21일에 김일종이 공채를 갚을 길이 없어 저수평 밭 1두락을 2냥 5전에 팔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발급한 수표 정축년 3월 21일에 김일종(金日宗)이 공채(公債)를 갚을 길이 없어 저수평(抵水坪) 밭 1두락(斗落)을 2냥 5전에 팔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발급한 수표이다. 김일종이 공채를 갚기 위해 저수평에 있는 밭 1마지기를 값으로 2냥 5전을 받고 이 문서 수급자에게 팔았다. 문서의 끝부분에는 '이후에 서로 문제가 생기면 이 문서로 증빙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문서 발급자인 김일종과 이 매매의 증인(證人)이자 문서 작성자인 김순오(金淳伍)의 이름과 착명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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