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광주향교(光州鄕校)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光州鄕校 盧軫永 光州隨鄕國修之所印 2顆(3.8x3.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301 1935년 3월 27일에 광주향교의 기종섭 등 5명이 노진영에게 향교안의 수정을 위하여 의견을 표명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35년 3월 27일, 광주향교(光州鄕校)의 기종섭(奇琮燮) 등 5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향교안(鄕校案)의 수정(修整)을 위하여 의견을 표명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저무는 봄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본향(本鄕, 광주)의 유림(儒林) 수행안(隨行案)을 수정(修整)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이 일로 이미 여러 번 광주향교에서 회의를 했고, 여러분의 동의로 기어이 수정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향론(鄕論)을 귀하인 상대에게 알렸지만 그 의견을 알 수 없기에 이와 같이 한다며, 오는 4월 7일에 광주향교에 참석해주셔서 인정하든, 하지 않든 간에 뜻을 표현하여 대사(大事)를 완성할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자는 기종섭(奇琮燮), 박하청(朴夏淸), 유영선(柳永善), 박섬동(朴暹東), 고광련(高光璉) 총5인이다. 발신자 중 유영선(柳永善, 1893~1961)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희경(禧卿), 호는 현곡(玄谷)이다. 아버지는 유기춘(柳基春)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 이병현(李秉賢)의 딸이다. 1904년에 스승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 들어가 20여 년을 수학하고, 선생의 사후 강학활동과 학문을 계승한 유학자이다. 1924년 고향에 돌아와 현곡정사(玄谷精舍)를 건립하고 후진 교육에 전념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시켰다. 학문적으로는 한말의 심성론(心性論)에 있어서 주리론(主理論)의 입장을 비판하고, 성(性)은 스승이요 심(心)은 제자라는 '성사심제(性師心弟)' 즉 성존심비설(性尊心卑說)을 제창한 전우의 핵심적 학설을 강조하여 철저히 계승 발전시켰다. 또 성리설과 학문론을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하여 『간재성리유선(艮齋性理類選)』을 편집하였다. 예학에도 합리적인 절충을 수행하여 『예의관보(禮疑管補)』와 『사례제요(四禮提要)』를 편찬하였으며, 예설은 광범한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는 스승의 사후 고창에 용암사(龍巖祠)를 건립하고 전우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그 후 이 용암사에 배향되었다. 편저로는 『담화연원록(潭華淵源錄)』·『구산풍아(臼山風雅)』·『오륜시편(五倫詩編)』·『규범요감(閨範要鑑)』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현곡집(玄谷集)』 32권 16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