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김의두(金宜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州牧使 金宜斗 牧使<押> 羅州牧使之印(7.1x7.1), 周俠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789 1882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의두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82년(고종 19)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의두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김의두의 거주지는 나주목(羅州牧) 하의도(荷衣島, 현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 속한 섬) 어은촌(於恩村) 오가작통 순번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한량(閑良)이고 올해 나이는 53세 경인생(庚寅生)이며,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의두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한량 성인(聖仁), 할아버지 한량 필봉(弼奉), 증조(曾祖) 한량 상건(尙巾), 외조(外祖) 한량 박득대(朴得大)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의두의 아내 정씨(丁氏)는 나이 43세 경자생(庚子生)이고 본관은 나주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맹득(孟得), 할아버지 한량 상문(尙文), 증조(曾祖) 한량 봉업(奉業), 외조 한량 문덕화(文德化)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진규(振奎)가 있으며, 나이 18세 을축생(乙丑生)이다. 호적개정은 자·오·묘·유자(子·午·卯·酉子) 식년(式年)으로, 이 준호구의 토대가 된 임오년은 광서 8년이므로 문서에 표기된 '광서칠년(光緖七年)'은 '광서팔년(光緖八年)'의 오자로 추정된다. 형 김달오가 호주인 준호구에는 김의두의 생년이 모두 '경인생(庚寅生)'이 아닌 '정해생(丁亥生)'으로, 할아버지는 '필봉(弼奉)'이 아닌 '필봉(弼逢)'으로, 아들 정규(正奎)는 진규로 표기되어 있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및 주협자개인(周俠字改印)이 찍혀있으며, 1879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기묘호구상준(己卯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