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문(夫子墻) 夫子墻 夫子墻 고서-집부-총집류 정치/행정-과거-시권 고서 원문 夫子墻 성책 미상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윤재의(尹在義), 김치성(金致聖), 이병순(李秉淳), 이종원(李鍾遠), 황인험(黃仁驗) 등이 작성한 부(賦)를 옮겨 적은 복본(複本) 시권(試券) 조선후기의 소과 혹은 소과에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이 작성한 시권(試券)을 옮겨 적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소과나 문과 혹은 소과나 문과와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의 답안지를 옮겨 적은 예가 많았는데, 이런 자료들을 편의 상 복본시권(複本試券)이라고 부르고 있다. 복복 시권을 제작하는 이유는 당연히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과나 소과를 준비하는 자들이, 본인보다 앞서 문과나 소과에 도전했던 자들이 남긴 글들을 보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이 뛰어난 사람들의 글이나 혹은 소과나 문과에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주로 보고 싶어 하였는데, 복본 시권 중에는 서사가(書寫家)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본 시권은 대소과를 준비하는 자가 직접 옮겨 적은 일들이 많았다. 복본 시권의 제목은 매우 다양하였다. 책문의 경우는 동책(東策), 동책정수(東策精粹), 대책(對策), 책문(策文) 등으로 적었고, 표(表)나 부(賦)나 시(詩) 등은 여문(儷文) 東表(東表), 동부(東賦), 려문(驪文), 과려(科儷), 려문(儷門), 려식(儷式), 려휘(儷彙), 병려화조(騈儷華藻), 표격(表格), 표규(表規), 표식(表式), 과문규식(科文規式), 표추(表椎), 과문(科文), 백중(百中) 벽옹(辟雍)등 매우 다양하였다. 위의 제목 중에서 식(式)이 붙은 것은 글을 짓는 형식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표나 부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그 방식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지금 소개하는 복본 시권에는 제목이 적혀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는 있었는지 전래되는 과정에서 탈락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용은 6자체의 부(賦)가 수록되어 있는데, 시권의 주인공은 대부분 18세기에서 19세기에 생존한 인물들로 추정된다. 각각의 글에는 시험장에서 제시된 부제(賦題)와 함께 그 부를 지은 사람, 그 부가 언제 어떤 시험장에서 출제되었는지, 그러니까 그 부를 언제 지었는지, 그 부를 제출하여 몇 등의 성적을 받았는지 등에 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데, 모든 글마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답안 작성자와 성적만 적은 경우도 많다. 그런가하면 그 부가 작성된 시험장의 시험관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록도 들어 있다. 그런데 본 복본시권에 나오는 시제(試題)들은, 소과방목이나 혹은 여타 조선시대 소과와 관련한 자료집에서는 거의 확인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소과의 초시나 복시에서 출제된 시제들이 아니라 승보시(陞補試)나 외방의 초시(初試)에서 출제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본 복본 시권에 나오는 시제들을 정리한다면 조선후기의 소과에 출제된 시제들의 성향이나 특징을 파악하는 데 그리고 그 출제되는 시제들이 시대적으로 어떤 특징을 보였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부자장이라고 이름 붙인 본 시권의 분량은 표지를 제외하고 82장 164면이다. 하나의 면에 한 사람의 시권이 전사되어 있으므로, 수록된 전체 시권 수는 164개가 된다. 시권 작성자를 보면 윤재의(尹在義), 김치성(金致聖), 이병순(李秉淳), 이종원(李鍾遠), 황인험(黃仁驗)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