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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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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4년 이기선(李箕先) 영수증(領收證) 1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三年 領受人 李箕先 大正三年 李箕先 전북 부안군 [印] 1.0*1.0 4개(적색, 원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4년 3월 20일 이기선(李箕先)이 작성하여 준 영수증(領收證) 1 1914년 3월 20일, 이기선(李箕先)이 30원을 받고 써 준 영수증(領收證)이다. 이 돈은 이기선이 전북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남수동(南水洞)에 있는 논 9두락을 팔고 그 대가로 받은 것인데, 배면(背面)에 적혀 있는 내용이 그에 관한 기록이 아닌가 한다. 배면을 보면 "이숙칠씨영수증(李宿七氏領受證)"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이숙칠씨가 바로 위 논을 사들인 사람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 30원은 전체 매도 금액이 아니었다. 전체는 76원이었는데, 우선 30원만을 받은 것이다. 전체 금액이 76원이었다는 사실은 "1914년 이기선(李箕先) 영수증(領收證) 1"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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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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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9년 박준룡(朴凖龍)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緖十五年己丑二月晦日 朴凖龍 光緖十五年己丑二月晦日 朴凖龍 전북 부안군 喪不着 1개,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9년(고종 26) 2월 그믐날에 박준룡(朴凖龍)이 부안군(扶安郡) 입화면(立化面) 동령치(東嶺峙) 아래의 만화동(萬化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89년(고종 26) 2월 그믐날에 박준룡(朴凖龍)이 부안군(扶安郡) 입화면(立化面) 동령치(東嶺峙) 아래의 만화동(萬化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만화동 전평(前坪)에 있는 이자답(而字畓) 4두락지, 부수(負數)로는 9부 2속 7야미되는 곳을 120냥에 팔았다. 거래시 매입자에게 구문기와 신문기를 함께 건네주었으며, 차후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논 주인 박준룡은 거래 당시 상중(喪中)이어서 서명하지 않았으며, 증인 이백현(李伯賢)이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논이 있었던 만화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보안군 신복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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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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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8년 김성언(金成彦) 표(票)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戊申 票主 金成彦 戊申 金成彦 전북 부안군 [着名]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8년(순종 2) 12월 17에 김성언(金成彦)이 작성하여 준 약속문서 1908년(순종 2) 12월 17에 김성언(金成彦)이 작성하여 준 표(票)이다. 표란 어떤 약속할 사안이 있을 때,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미에서 작성하는 형태의 문서를 말한다. 김성언이 이 표를 작성하게 된 이유는 상동면(上東面) 중리(中里) 뒤편에 있는 콩밭 1두(斗) 5승(升)을 전당(典當)하고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전당문서였던 것이다. 김성언이 빌린 돈은 8냥이었다. 그리 많지 않은 돈이었는데, 김성언은 이 돈을 빌리면서 매월 5분의 이자를 부담하기로 하고, 오는 10월까지 이자와 본전을 모두 갚기로 약속하면서 본 표를 써 준 것이다. 한편 문서 마지막을 보면 "구문기일장 유치인(舊文記一張 留置印)"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김성언이 이전에 작성한 문서 한 장을 보관 중이라는 의미이다. 보관자는 물론 본 표를 받은 사람, 그러니까 김성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고, 구문기는 이전에 작성한 약속문서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김성언은 이전에도 본 표 보관자로부터 돈을 빌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에 빌린 8냥에 대하여 이전에 어떤 약속을 하고 그 내용을 담은 표를 작성해 주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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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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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11년 임도숙(任道淑) 방매(放賣)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경제-매매/교역-계약서 明治四十四年辛亥正月十六日 任道淑 明治四十四年辛亥正月十六日 任道淑 전북 부안군 指章 1개, [印] 2개 7.0*7.0 3개(적색, 정방형)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1년에 임도숙(任道淑)이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 1911년에 임도숙(任道淑)이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만경군(萬頃郡) 남일면(南一面) 묘라리(竗羅里) 후평(後坪)에 있는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土地賣買契約書)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가서 작성된 명문이어서 작성연대도 명치(明治) 연호가 사용되었다. 거래가 된 밭은 장자전(場字田) 3두락지와 식자전(食字田) 1두락지이며, 결부(結負)로는 모두 3부 5속이 되는 곳이었다. 거래가격은 95냥이었다. 세조(稅租)는 매년 모태(牟太) 1석으로 작정하였다고 고지하였다. 거래시 구문(旧文) 1장과 신문(新文) 1장을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다. 만일 차후에 이 밭을 두고 논란이 생기면 이 문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문서의 끝에는 밭이 위치한 사표(四標)의 위치가 적혀 있다. 보증인으로 강흥숙(姜興淑)이 거래에 참여하여 인장을 찍었으며, 이장(里長) 임공렬(任公烈)이 거래에 입회하여 인장을 찍고 있는 것도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 새로 나타난 거래풍속의 하나였다. 밭이 있는 만경군 남일면 묘라리는 오늘날의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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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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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

향음주례홀기(鄕飮酒禮笏記) 鄕飮酒禮笏記 鄕飮酒禮笏記 고서-경부-예류 종교/풍속-관혼상제-홀기 고서 원문 鄕飮酒禮笏記 성책 부안 하서 고부이씨가 부안 하서 고부이씨가 향음주례의 의미와 실행 절차를 정리한 자료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의미와 실행 절차를 정리한 자료이다. 필사본이며, 1잭 단권이다. 서문은 향음주례홀기고증서(鄕飮酒禮笏記考證序)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이 서문을 쓴 사람은 신안(新安) 이준(李埈)이었다. 하지만 이준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적으면 신안은 대개 본관을 의미하는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신안이씨(新安李氏)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신안은 본관이 아닌 다른 의미로 쓰인 것이라고 판단되는데, 아직은 그 정확한 의미를 모르겠다. 한편 신안 이준이라는 글씨 앞에 본 향음주례고증을 순계장(醇溪丈)에게 올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의 순계장은 조선후기의 문신 순계(醇溪) 이정리(李正履)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이준은 바로 이정리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 내용을 참고하면, 본 향음주례고증은 이준이 쓴 것일 가능성이 많는데, 다만 본서가 이준의 친필인지의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한편 서문 첫 부분에는 소장인(所藏印)이 두 방 찍혀 있는데, 하나는 정의재장(精毅齋藏)이고 하나는 극재지인(克齋之印)이다 정의재는 부안출신의 학자 이기로(李驥魯) 선생의 호(號)요, 극재(克齋)는 이기로 선생의 아들인 이시택(李時澤)의 호이다.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던 서책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본 향음주례홀기는 크게 두 편으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각종 도판을 수록한 부분이다. 이를 보면 실당전도(室堂全圖), 예구도(禮具圖), 설석진기구찬지도(設席陳器具饌之圖), 주인영빈도(主人迎賓圖), 주인헌빈도(主人獻賓圖), 빈초주인도(賓酢主人圖), 주인수빈도(主人酬賓圖), 주인헌개도(主人獻槪圖), 개초주인도(介酢主人圖), 주인헌중빈도(主人獻衆賓圖), 일인거지도(一人擧觶圖), 주인헌준도(主人獻遵圖), 준치주인도(遵酢主人圖), 주인헌공도(主人獻工圖), 낙빈도(樂賓圖), 이치종빈개기도(二觶從賓介起圖) 등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향음주례홀기고증(鄕飮酒禮笏記攷證) 편인데, 여기서는 보빈개(謀賓介), 계빈개(戒賓介), 설석(設席), 진기(陳器), 구찬(具饌), 영빈(迎賓), 헌빈(獻賓) 등의 절차와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본 향음주례홀기는, 아직까지 책으로 간행된 적이 없는 듯하다. 한편 책의 맨 마지막 쪽에는 영자(永字)를 쓰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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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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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贈堤內諸益 二三諸益在堤內 草澤人中匪俗態 思入杞園歎往哲 詩模韓律笑時輩 任情燕樂安無雙 隨意講磨會不再 此夕遨遊寧可泯 歸來書幌事宜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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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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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과문(對策集) 對策集 對策集 고서-집부-총집류 정치/행정-과거-시권 고서 원문 對策集 성책 미상 전북대학교 한국학자료센터 이장후(李章垕), 이존수(李存秀), 임제원(林濟遠), 이가환(李家煥), 서영보(徐榮輔), 박제가(朴齊家), 김희조(金熙朝), 유득공(柳得恭), 이덕무(李德懋), 조상진(趙尙鎭), 김희주(金熙周), 권대관(權大觀), 강이천(姜彝天), 심옥현(沈玉賢), 김달순(金達淳)(2건), 김희순(金羲淳) 등 16인의 대책(對策)을 모아 놓은 성책. 조선 후기의 소과 혹은 문과 그리고 소과 혹은 문과와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이 작성한 시권(試券)을 옮겨 적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소과나 문과 혹은 소과나 문과와 연관된 시험에 응시했던 자들의 답안지를 옮겨 적은 예가 많았는데, 이런 자료들을 편의상 복본시권(複本試券)이라고 부르고 있다. 복본 시권을 제작하는 이유는 당연히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과나 소과를 준비하는 자들이, 본인보다 앞서 문과나 소과에 도전했던 자들이 남긴 글들을 보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이 뛰어난 사람들의 글이나 혹은 소과나 문과에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주로 보고 싶어 하였는데, 복본 시권 중에는 서사가(書寫家)들이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본 시권은 대·소과를 준비하는 자가 직접 옮겨 적은 일들이 많았다. 복본 시권의 제목은 매우 다양하였다. 책문의 경우는 동책(東策), 동책정수(東策精粹), 대책(對策), 책문(策文) 등으로 적었고, 표(表)나 부(賦)나 시(詩) 등은 여문(儷文) 東表(東表), 동부(東賦), 려문(驪文), 과려(科儷), 려문(儷門), 려식(儷式), 려휘(儷彙), 병려화조(騈儷華藻), 표격(表格), 표규(表規), 표식(表式), 과문규식(科文規式), 표추(表椎), 과문(科文), 백중(百中) 벽옹(辟雍)등 매우 다양하였다. 위의 제목 중에서 식(式)이 붙은 것은 글을 짓는 형식적인 내용, 다시 말해서 표나 부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그 방식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소개하는 복본 시권에는 제목이 적혀 있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아니면 원래는 있었는지 전래되는 과정에서 탈락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내용은 앞서 언급한 대로, 책문(策問)과 함께 그 책문에 대한 대책(對策)이 실려 있다. 책문의 작성자를 보면 이장후(李章垕), 이존수(李存秀), 임제원(林濟遠), 이가환(李家煥), 서영보(徐榮輔), 박제가(朴齊家), 김희조(金熙朝), 유득공(柳得恭), 이덕무(李德懋), 조상진(趙尙鎭), 김희주(金熙周), 권대관(權大觀), 강이천(姜彝天), 심옥현(沈玉賢), 김달순(金達淳)(2건), 김희순(金羲淳) 등 16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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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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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무술년(戊戌年) 신사현(辛士賢) 표(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戊戌 埋標主 辛士賢 戊戌 辛士賢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무술년(戊戌年) 12월 15일에 신사현(辛士賢)이 작성하여 준 약속문서 무술년(戊戌年) 12월 15일에 신사현(辛士賢)이 작성하여 준 약속문서이다. 일도면(一道面) 봉황리(鳳凰里) 후록(后麓)에 있는 행취산(行翠山)의 일부분을 50냥을 받고 매도하기로 하였으며, 앞으로 다른 말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본 거래의 증인(證人)은 김치도(金致道)였다. 한편 위 행취산에는 신사현의 종중 선산(先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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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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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7년 허순홍(許順烘) 차용증서(借用證書) 고문서-증빙류-차용증 경제-회계/금융-차용증 昭和貳年 旧 拾壹月拾日 許順烘 宋仕彦 昭和貳年 旧 拾壹月拾日 許順烘 전북 정읍시 [印] 3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927년에 허순홍(許順烘)이 조(租) 29석 4두 8승을 빌리면서 송사언(宋仕彦)에게 작성해 준 차용증서(借用證書). 1927년 11월 10일에 부안군(扶安郡) 백산면(白山面) 대죽리(大竹里)에 사는 허순홍(許順烘)이 송사언(宋仕彦)에게서 조(租) 29석 4두 8승을 빌리면서 작성해 준 차용증서(借用證書)이다. 증서에는 조를 대금(代金) 1,527냥 2전으로 명기하였다. 그런데 이 문서의 작성일자는 소화(昭和) 2년 구(旧) 10월 10일로 적혀 있는데, 인도기한(引渡期限)은 소화(昭和) 2년 10월 말까지로 되어 있어서 문서에 착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정컨대 소화 3년, 즉 1928년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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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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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01년 김덕수(金德水)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경제-회계/금융-수표 辛丑三月十二日 金德水 辛丑三月十二日 金德水 전북 정읍시 [着名] 1개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정읍 영원 여산송씨가 1901년 3월 12일에 김덕수(金德水)가 29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수표(手標). 1901년 3월 12일에 김덕수(金德水)가 29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채권자에게 작성해 준 수표(手標)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이 돈을 빌린다고 하였다. 오는 10월 그믐날까지 본전과 이자를 함께 갚기로 약속하였으며, 만일 기한이 지나도 갚지 않는다면 이 수표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채권자의 이름은 이 문서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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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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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정선(貞善)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貞善 貞善 전북 부안군 30.1* 개(, /////23.5)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신년(辛年) 12월 20일에 정선이 보낸 간찰 신년(辛年) 12월 20일에 정선이 보낸 간찰이다. 신년이란 간지에 신(辛)이 들어가는 해를 말한다. 피봉이 없는 관계로 수신인은 알 수가 없다. 한편 정선은 스스로를 삼종형(三從兄)으로 적고 있는데, 삼종은 팔촌이 되는 형제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아버지 육촌 형제의 자녀들이 나와 팔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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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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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지명>東道仙隱洞</지명>化民<인명>李奎井</인명>右謹言憤痛情由書曰物各有主諺云越江乘船此眞謂尹民之非理好訟者也盖民之曾祖母山在於<지명>仙隱洞</지명>後麓而前後左右皆門內之衆塚而禁養以來者幾至數百年是乎所去年夏民之亡兄之塚葬于曾祖母山六七步至近之處則此是民之地禁養內也不意噫彼尹民稱以渠之先山主龍云囂鬧 官庭此豈非非理好訟越江乘船者乎且尹民當禁之地則民白晝用山之日尹民之山直漢終日來觀而何不通奇於山主旀以民言之良置知其尹塚之爲嫌則不顧法理而過葬乎今此尹民之擧訟知不過恃其多族藉其權力侮民孤弱有此駭擧遐土民習豈不痛嘆哉玆敢仰籲洞燭敎是後 特下嚴明處分俾此尹民昧法好訟之輩更勿起鬧之弊千萬祈懇之地行下 敎是事城主 處分<연도>甲戌</연도>三月 日官[署押](題辭)圖形後當處決向事十六日狀告<인명>金光厚</인명>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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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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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69년 최석만(崔錫萬)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同治八年己巳十一月二十五日 幼學崔錫萬 同治八年己巳十一月二十五日 幼學崔錫萬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69년(고종 6) 11월 25일에 유학(幼學) 최석만(崔錫萬)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조개동(肇開洞) 마을 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69년(고종 6) 11월 25일에 유학(幼學) 최석만(崔錫萬)이 부안현(扶安縣) 상동면(上東面) 조개동(肇開洞) 마을 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이 논을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경작해 왔으나 다른 전답을 사기 위하여 팔게 되었다고 매매 사유를 밝히고 있다. 매매 대상이 된 논은 상동면 조개동 마을 앞의 관자답(官字畓) 9두락지로, 부수로는 24부 6속이 되는 곳이며, 매매가격은 150냥이었다. 구문기는 다른 전답의 문서에 함께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주면서 뒷날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증빙하라고 하였다. 방매자 최석만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으며, 증인은 거래에 참여하지 않았다. 상동면은 오늘날의 부안군 동진면 일대에 해당하지만, 조개동이 어느 곳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서의 하단에는 같은 날 최석만에 의해 작성된 수기(手記)가 실려 있는데, 구문기가 다른 전답에 실려 있어서 매입자에게 주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을 신문기에 부기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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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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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8년 조백운(趙白雲)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戊戌九月二十七日 趙白雲 戊戌九月二十七日 趙白雲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98년 9월 27일에 조백운(趙白雲)이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에 있는 모시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98년 9월 27일에 조백운(趙白雲)이 부안군(扶安郡) 연동(蓮洞) 전평(前坪)에 있는 만자저전(滿字苧田) 3두락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부수(負數)로 4부가 되는 이 모시밭을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세를 받으며 살았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기 위하여 이 밭을 팔았다. 거래가격은 220냥이었다. 거래시 구문기 3장을 함께 건네주었으며, 차후에 문제가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증인으로 양득수(梁得壽)가 거래에 참여하여 방매자 조백운과 함께 서명하였다. 모시밭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문서에는 작성연대가 "戊戌"로만 나오지만, 같은 모시밭이 거래되었던 이 문기의 구문기와 신문기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무술년을 1898년으로 추정하였다. 해당 문서들은 "1862년 조육손(趙六孫)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과 "1904년 염석수(廉錫洙)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이에 따르면, 연동의 이 모시밭은 1862년에는 50냥에 거래되었다가, 1898년에는 220냥으로, 1904년에는 270냥으로 각각 거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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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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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14년 이기선(李箕先) 영수증(領收證) 2 고문서-증빙류-영수증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三年 李箕先 大正三年 李箕先 전북 부안군 [印]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14년 3월 4일 이기선(李箕先)이 작성하여 준 영수증(領收證) 2 1914년 음력 3월 4일, 이기선(李箕先)이 46원을 받고 써 준 영수증(領收證)이다. 이 돈은 이기선이 전북 부안군(扶安郡) 하서면(下西面) 남수동(南水洞)에 있는 논 9두락을 팔고 그 대가로 받은 것인데, 이 논을 사들인 사람은 이숙칠(李宿七)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내용은 문서 "1914년 이기선(李箕先) 영수증(領收證) 1"의 내용을 통하여 알 수가 있다. 한편 위 논의 전체 매도 가격은 76원이었다. 그리고 그 중 30원은 10여 일 3월 24일에 받았고, 이번에 나머지 46원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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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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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지명>東道仙隱洞</지명>化民<인명>李奎煥</인명>右謹言情由事段人心之無據豈有甚於<지명>上東益上里</지명><인명>金致西</인명>父子乎民以致西子<인명>元叔</인명>處捧錢事屢爲呈訴至有公決之 處分且<인명>元叔</인명>去月初內 庭對質之時又當 嚴勘以晦內備報之意旣爲納侤則斷無違越不報之理而<인명>元叔</인명>之兇習漸長初無一分錢報給趂晦內又爲逃躱其父則因以其子之避身爲幸恬然無動靜苟如是也則世安有用債捧錢之道乎以若<인명>致西</인명>富饒之勢延拖爲主已是惡習頑拒 官令尤極無嚴私難推捧緣由玆更仰訴洞燭敎是後同<인명>金致西</인명>卽爲捉上嚴治其子所用錢一一計邊凖數推給毋至見失呼冤之地千萬祈恳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연도>乙亥</연도>七月 日官[署押](題辭)當此不報尤極無嚴嚴治推給次捉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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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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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688년 김선룡(金先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康熙二十七年戊辰二月十六日 故崔承腋妻陳召史 金先龍 康熙二十七年戊辰二月十六日 故崔承腋妻陳召史 전북 부안군 [着名] 3개, [右掌]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688년(숙종 14) 2월 16일에 고(故) 최승액(崔承腋)의 처(妻) 진소사(陳召史)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경작해 왔던 부안현(扶安縣)의 논을 김선룡(金先龍)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688년(숙종 14) 2월 16일에 고(故) 최승액(崔承腋)의 처(妻) 진소사(陳召史)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경작해 왔던 부안현(扶安縣) 지비리(之飛里)의 온자답(溫字畓)의 논을 가난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하자 김선룡(金先龍)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온자답은 부수(負數)로 24부 4속이 되는 곳인데, 진소사는 백미 255두(斗)를 받고 논을 팔았다. 거래시 본문기를 매입자에게 넘겨주었으며, 만일 차후에 자손들 중에 이 논을 두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官)에 알려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답주인 진소사는 오른손바닥을 그려 서명을 대신하였으며, 증인(證人)으로는 출신(出身) 여선길(呂仙吉)이, 증보(證保)로는 겸사복(兼司僕) 정사굉(鄭士宏)이, 필집(筆執)으로는 출신(出身) 김문필(金文弼)이 거래에 참여하여 함께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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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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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정서(李正瑞)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年丙午九月十一日 幼學 李正瑞 光武十年丙午九月十一日 幼學 李正瑞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6년 9월 11일에 이정서(李正瑞)가 부안군(扶安郡) 좌산내면(左山內面) 연동(蓮洞)에 있는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6년 9월 11일에 이정서(李正瑞)가 부안군(扶安郡) 좌산내면(左山內面) 연동(蓮洞)에 있는 만자답(滿字畓) 6두락지와 화곡(禾穀)을 모두 780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신문기와 구문기 등 모두 7장을 매입자에게 건네 주었으며, 차후 이 논에 대하여 분란이 생기면 이 문기를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이정기는 이 논을 자신이 매득하여 여러 해 동안 세를 받아왔으나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밝히고 있다. 증인으로 유학 김문거(金文巨)가 방매자 이정서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에 서명하였다. 논이 있었던 연동리는 오늘날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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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坂賣買契約書右契約事ᄂᆞᆫ切有累緊用處ᄒᆞ야自己買得柴場伏在上東面益上里後山坂拾同落庫叱價折錢文壹佰五拾兩을依數捧上是遣右人前에以新文一張으로永永放賣ᄒᆞ거온日後에 若有異說이면以此文記憑考事柴炞亦入於此中焉<연도>大正元年</연도>陰八月八日<지명>扶安郡上東面益上里</지명>二統七戶賣渡人 <관직명>叅奉</관직명> <인명>金珪相</인명>[印]<지명>扶安郡上東面益上里</지명>二統二戶保證人 <인명>扈用辰</인명>[印]<지명>扶安郡上東面益上里</지명><관직명>里長</관직명><인명>沈漢根</인명>[印]山坂四標東 <인명>金元兼</인명>柴場 西 李 山南 <인명>金玉汝</인명>柴場 北 孫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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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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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性理喩說 性理喩說心者人之北辰 心體本如太虛或景星或慶雲或烈風雷雨而太虛自若人之心豈能無喜怒憂懼 本心如日月利欲食之 此心卓然能爲耳目之君不能先立乎大者則退然方聽命於耳目所謂心爲形役者也當以己心爲嚴師 人心之灵欲心然之則火耳然乎聲目然乎色口然乎味四支然乎安此皆內熱之所致也于以沃以泗源之冰淸以程門之雪 心屬火緣他是箇光明發動底物所以具得許多道理 朱子曰凡學須先明得一箇心然後方可學譬如燒火必先吹發了火然後加新則火明矣若先加薪而後吹火則火滅矣今人不求諸六經而貪時文是也 朱子曰意誠心正自相貫如一竿竹雖只是一竿然基間又有許多節也 心如穀種所以生處是性生許多枝葉處是情朱子曰四端着在心上才有些子私意便剗斷了那根便無生意如木根着在土上方會生其色也睟然都從那根上發出來衆人則合下生時便爲氣稟物欲一重隔了這箇根便未着土殘忍底心便沒了仁之根頑鈍底心便沒了義之根念狠底心便沒了禮之根黑暗底心便沒了智之根今人只要去氣質物欲之隔敎四者之根着土而已如堯舜性之便是根已着土了湯武反之便是元來未曾着土而今方移得來着土了朱子曰義之在心如利刀然物來觸之便成兩片若可否都不能剖判便是此心頑鈍無義了 心統性情如統兵之統涵養此性心統性也節制此情心統情也性如在營之軍情如臨陣之軍皆將實統之 耕堯田者有水慮耕湯田者有旱憂耕心田者旡憂旡慮日日豊年 心譬水也性水之理也性所以立乎水之靜情所以行乎水之動欲則水之流而至於濫也才者水之氣力所以能流者然其流有急有緩則是才之不同性如日月氣濁者如雲霧 性如心之田地 天命之謂性 天便是分付命令朱子曰天命如朝廷指揮差除人去做官性如官職官便有職事 知天命謂知其里之所自來譬之於水人皆知其爲水聖人則知其發源處 朱子曰理與氣合便能知覺如燭火因得脂膏有許多光燄 朱子曰無此氣則道理無安頓處如水中月須是有此水方映得那天上月若無此水終無此月理甚分明如一條平坦底道路 輔氏曰知性而盡心如家主盡識一家所有之物然後隨取隨分有隨用隨足方盡得家主之職知性而知天如家主旣識得家中之物則自然知此物是何從而求也 山以生物爲性 眞氏曰性之不能離乎氣猶水之不能離乎土性雖不離乎氣而氣汨之則不能不惡水雖不離乎土而土汩之則不能不自濁 南軒曰性如一泓之水本淸流在沙石上去其淸自若流在濁泥中去這淸底也濁了不可以濁底爲不是水也 臨川吳氏曰天下之淸莫如水先儒以水之淸喩性之善人無有不善之性則世無有不淸之水也出於岩石之地者瑩然澹然全其本然之淸出於泥塵之地者自其初出混於其滓則流不能不濁地則然也人之性原於天而附於人局於氣質之中氣質之明粹者如岩石之水昏駁者如泥塵之水也水之濁於泥塵者流雖濁而有淸之之道學者在乎用力以淸之也 朱子曰性比之水本皆淸也以不凈器盛則臭以汗穢器盛則濁但旣臭濁猝難得便淸故雖愚必明雖柔必强也煞用氣力然後能至 臨川吳氏曰理之在人心猶水之在水中晝夜生生而不竭是之謂有原心理之發見猶原泉之初出毋滑壞毌閼絶將混混乎其常而常淸 朱子曰有是理方有這物事如草木有箇種子方生出草木 朱子曰陽動陰靜非太極動靜只是理有動靜如人跨馬馬所以載人人所以乘馬馬之一出一入人與之一出一入盖一動一靜而太極之妙未嘗不在也 朱子曰如牽牛鼻絡馬首是天里合當如此若絡牛首牽馬鼻定是不得 朱子曰鳶有鳶之性魚有魚之性其飛其躍天氣自完便是天理流行發見之妙 存諸中之謂孚孚宇從瓜從子取鳥抱卵之義言人心之所存者宲有是物也 太極本體圓如一大塊水銀恁地圓散而萬萬小塊箇箇皆圓合小塊復爲一大塊依舊又恁地圓 有此氣方能承當得此理如光必有鏡然後有光必有水然後有光光便是性鏡水是氣質若無鏡与水則光亦散矣 朱子曰理如寶珠氣如水有是理而後有是氣有是氣則必有是理但氣稟淸者爲聖賢如珠落在淸水中濁者爲愚暗如珠落在濁水中 理在氣中如一箇明珠在水裏理在淸低氣中如珠在那底水裡面透底都明理在濁底氣中如珠在濁底水裡面外面更不見光明處 問性之成體猶金之爲器歟程子曰氣比之金可也不可以比性 朱子曰人性本明如宝珠沉溷水中明不可見去了溷水則宝珠依舊自明朱子曰如這衆人只是一箇道理有張三有李四李四不可爲張三張三不可爲李四 朱子曰若自家見得道理分別是非千度万態都無遯形如天下分裂之時東邊稱王西邊称帝似若不復可一若有箇眞主出來一齊卽皆退廳不朝者來朝不服者歸順不貢者入貢天下混一如今道理箇箇說一樣各家自守以爲是只是未淂見這公共道里是非 涑水曰道如山也愈升而愈高如路也愈行而愈遠自非聖人有能窮其高遠裁 程子曰泰山爲高矣然泰山頂上己不屬泰山此喩道體無窮而事業雖大終有限量 吳氏曰學者於道立志當極乎遠大而功用必循夫近小者遠大者究其源也近小有其漸也漸者自流遡源而不遽以探源爲務也道之有源如水之有源人之學道如禹之治水必自下流始兗州之功爲多而冀州次之河之外名川三百支川三千旡所不理若畎若澮田間水道亦濬之以距于川不遺近小也 索物于夜室者莫良於火索道干當世者莫良乎經 朱子曰某思量這道理如過危木橋子才失脚便跌落下去 朱子曰今之設義理者如說龍而又無角說蛇而又無足 朱子曰今時秀才直是會說廉說義及到做來只是不廉不義此則能言鸚鵡也天下以言爲學上以言語爲治或者見能言之鸚鵡乃指爲鳳凰惟恐其不在靈囿間不亦異乎 朱子曰陸子靜楊敬仲論說道理恰似閩中販私鹽者下面是私鹽上面須得數片鯗魚遮盖方過得關津不被人捉了盖謂其本是禪學却以吾儒說話遮掩 伊川曰買櫝還珠之獘人人皆有是經所以載道也誦其言辭解其訓詁而不及道乃無用之糟粕而楊誠齋曰身與道一也一而二者不察之過也匹夫有璧而藏於家久而偶忘之困而假丏於隣自以爲至貧也人亦不知其富也忽憶其璧出而鬻之一朝而獲千金千金非自外至也匹夫之所自有也有千金而困而貧旣貧而富則察與不察也當其不察璧亦不亡及其察璧固在也道也者吾身之璧也學者有璧而不察不察而亡者也 未見道理時恰似數重物色包褁材裏今日去了一重見淂一重明日又去了一重又見淂一重去盡皮方見肉去盡肉方見骨去盡骨方見髓使麁心大氣不得也 延平先生曰道之可以治心猶食之充飢依之禦寒身有飢寒之患者遑遑焉爲衣食之謀至於心之不治有沒世不知慮者豈愛心不若口體哉然飢而思食不過乎以叔粟之甘寒而求衣不過乎綈布之溫道之所可貴者亦不過君臣父子夫婦長幼明友之間以仁義忠信而已而必求誣詭譎怪可以駭人耳目者而學之是猶飢寒切身者不知菽粟綈布之爲美而必期乎珍異侈靡之奉焉求之難得享之難安必亡而已 朱子曰某自十五六時問人說這道理知道如此好但今日方識得如前日見人說塩醎今飮食之方知是醎說糖甜今日食之方知是甜 朱子曰語小人曰不違道則曰不違道然卒違道語君字曰不違道則曰不違道終不肯違道譬如牲牢之味君子曾嘗之說與君子君子須憎愛說與小人小人非不知道好只是旡憎愛心未宲只是未知味守死善道人非不知終不肯爲者只是知之淺行之未篤朱子曰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如人兄第異形而皆出於父母 仁統四端如人家有四箇兄第 潛室陳氏曰仁爲善之長猶家之嫡長子包貫諸子仁者安於義理而厚重不遷有似於山故樂山 朱子曰於仁上須見淂盡全體正猶觀山橫看成嶺直看成峯若自家見他不盡初謂只是一嶺及少時又見一峯出來便是未曾盡見全山到底無定據也 孝悌是行仁之本仁便是本了如水之流必過第一池然後見第二池第三池未有不先過第一池而能及第二第三者仁便是水之源而孝弟便是第一池義禮智亦如是也 公所以爲仁仁如水泉私如沙石能壅却泉公乃所以決去沙石者也沙石去而水泉出私去而仁復矣 仁如水愛如水之潤恕如水之流 智者達於事理而周流旡滯有似於水故樂水 仁與心何異伊川曰心如穀種生之性便是仁陽氣發處乃情也 吳氏曰人之有仁如木之有本幹枝所由生也人有仁萬善所由生也人而賊其仁猶木之戕其本也木無本則枝瘁而幹枯人不仁則其心死矣 問仁統五常以樹爲喩樹之根固有生氣然貫徹首尾豈可謂幹与枝花与葉無生氣也朱子曰然 朱子曰仁是根愛是苗不可便喚苗做根然這箇苗正是從那根上來也程子曰觀雞雛此可觀仁朱子曰凡物皆可觀此偶見鷄雛而言楊道夫曰先生嘗謂初与嫩底便是朱子曰當是時飮?自如未有爭鬪侵陵之患者只此便是仁 朱子曰一日之閒早間天氣淸明便是仁午間極熱時便是禮晩下漸凉是義到夜半全是收歛無些形迹時是智 信如四時春而得風風不信則花萼不茂發生之德廢夏而得炎炎不信則卉木不長長養之德廢秋而得雨雨不信則百穀不宲收成之德廢冬而得寒寒不信則水土不堅安靜之德廢 朱子曰性如人身仁是左乎禮是右手義是左脚智是右脚一釼兩段者改過之勇 仁如手之執足之履目之視耳之聽不{亻+改}外來者也爲仁由己而由人乎哉所謂克己復禮爲仁者正如以刀切物那刀子乃我本自有之物何用更借別人底只認我一己爲刀子而克之則私欲去而天理見矣 樵者曰吾嘗負薪擧百斤而無傷吾身加十斤則傷百斤力分之內者也十斤力分之外者也今而後知量力而動者智 忠如瓶中之水恕如瓶中{水+雁}在盞中之水 夫子忠恕譬如水也夫子源而下者也中庸所謂忠恕沂流而上者也 一是忠貫是恕譬如一泓之水聖人自然流出灌漑百物其他人須是推出來灌漑 朱子曰忠是本根恕是枝葉非是別有枝葉乃是本根中養出枝葉卽是本根一貫如一株樹開一樹花生一樹子裡面便自然有一箇生意朱子曰理會一貫貫如散錢一如索子曾子盡數許多散錢只旡一索子夫子便把這索子貫之 曾子悟一貫之理如農人種稙之功其力已盡惟待時雨之至卽勃然奮發而收成 朱子曰仁義是頭禮智是尾 誠是萬善骨子 問曾子見得一貫後學如何便曉得曰後人只是想象說正如矮人看首戱見前靣人笑他也笑他雖眼不曾見相必是好笑便隨他笑 朱子曰中庸是一事譬如山与嶺只是一物方其山卽謂是之山行着嶺路則謂之嶺非一物也旣曰中又曰誠此古詩所謂橫看成嶺直成峯也 中庸一書枝枝相對葉葉相當語孟庸學是熟飯他經是打禾爲飯 四書小學近思錄學者之飮食裘葛 中庸致曲与易中納約自牖是因人之明而遵之致曲是因己之明而拒之 朱子曰明德譬如鏡本是箇明底物緣爲塵昏故不不能照須是磨去塵垢然後鏡復明 明德是一箇光明底物事如一把火將去照物則無不燭便是明德若漸隐徵便暗了吹得這火着便是明其明德 朱子曰仁在孝弟之中如自建陽去方行到信州 朱子曰克己如雷在天上則威嚴果決以去其惡而爲善苟非禮而履則猶雷非時而震 說文曰勿字似旗脚此旗一麾則三軍盡退工夫只在勿字上纔見非禮心便禁止之 克己別無巧法如孤軍猝遇强敵只是盡力舍死而向前而已 朱子曰致知敬克己三事以一家言之敬是守門戶之人克己則是拒盗致知是去宲自家與外変底事 程氏云執事湏是敬又不可矝持太過胡秀随曰敬是治病之藥矝持是病之傍訂藥力旣到病勢旣退旁訂亦矣朱子曰此两句不相炤應若以敬喩藥則矝持是過劑反生他病之訂朱子曰涵養此心須用敬譬之養赤子方血氣未壯實之時且須其起居飮食養之於屋室之中而謹顧守之則有向成之期才方乳保却每日暴露於風日之中豈不害其生耶 二程敎學者所以只說一箇敬字正是欲無智愚賢不肖皆得力耳此一服樂人人皆可服服之便有效只是自家不肯服耳 平日慎起居節飮食養得如此了固是旡病但一日意外病作豈可不服藥敬只是養底工夫克己是去病楊氏曰講之不熟見之不明未有不以利爲善者 朱子曰程子嘗言不獨財利之利凡有利心便不可如作一事須尋自家穩便處皆利心也 或問雞嗚而起若未接物時如何爲善程子曰只主於敬便是爲善 朱子以手畵扇中間云這一邊是善這一邊是利認得善利底界限 敬是箇扶策人底物事敬者萬事本根 養氣可以爲養心之助程子曰敬則只是敬敬字上更添不得如令端坐附火又豈更授敬於水以助 合目是敬開眼見物是義 恭似低頭敬似擡頭 居敬窮理如人之兩足左足行則右足止右足行則左足止敬如治田灌漑之功克己則是去其惡草 朱子觀程子謝尹氏諭有曰嚴威儼恪曰是常惺惺法曰其心收歛不容一物足以知其用力之方矣或問言敬皆異之如何曰如此室四方皆入得若一方入至則三方入處皆在其中矣聖人之敎如雨露之於万物 自古聖賢皆以心地爲本 聖人看得地步濶伊川曰聖人之言其遠如天其近如地 五峯曰聖人之應事也如水流於地中未有可止而不止可行而不行者也 張蓉曰聖賢者良田也仁義忠信穀種也經書者錙基也物欲者稂莠螟蟊也存養省察者灌漑之力也美大聖神者秋成之候也必擇夫良田毋舍己之田耘人之田也必愼布其穀種毋慕荑稗之易熟也必利其錙基毋徒恃其時之至也必勇決以去其稂莠螟蟊時加灌漑之力毋怠惰自安不昏作勞也必優游以竢秋成之候毋揠而助之長也由是則苗而秀秀而宲穰穰滿家用之不窮矣由是薦于郊廟黍稷惟馨也布于蒼生天下可無飢也天下之遠固有人迹所不及者然能力行而不已則亦無所不至也學之源流甚遠固非一日可至苟能自進不已則積一日之力以至于千萬日超乎遠大之域矣今之學者憚其遠而難至也是以中道而廢矣少而好學如日出之陽壯而好學如日中之光老而好學如秉燭之明孰与昧行 朱子曰爲學如今雨下雨旣下到處混潤其氣易得蒸㭗纔略晴被日頭略照又蒸得而來前日亢旱四面枯乾縱有些小滋潤不得人於義理見得後又涵養義理也得見如雨蒸㭗得成若不有涵養工夫設或理會得些小道理也滋潤不得私欲紀來又間斷如亢旱不得雨伊川曰今學者如登山麓方其迤邐莫不濶步及到峻處便逡巡須要剛決果敢以進之 土積成山學積成人 朱子曰今人讀書未多義理未至融會處便去看史書考古文治亂理會制度典章譬如作陂塘以漑田須陂塘中水已滿然後決之則可以流注滋殖田中禾稼若是陂塘中水方有一勺之多遽決之則非從旡益於田而一勺之水亦復旡有矣讀書旣多義理融會胸中尺度一一己分明而不看史書考治亂理會制度典章則是猶陂塘之水己滿而不決以漑田若義理未有融會處而汲汲焉以看史爲先務是猶決陂塘一勺之水以漑田也其涸也可立而待也朱子訓門人爲學不可麁淺因人以橘子譬云皮裡有肉肉內有子子內有仁眼前事皆可說只有一箇熟處如梨柹生時酸澁喫不得到熟後自是一般甘美相去大遠只在熟与不熟 不學而求智猶願魚而不結綱希驥之馬亦驥之乘希顔之士亦顔之徒 問學者流於釋氏何也程子曰知之旣至孰得而移之知玉之爲宝則人不能以石亂之矣 如一塊物外面是銀裡面是銖便是自欺也 硬着脊梁骨 朱子曰適因澡浴得一說大抵揩背須從頭徐徐用力則手省垢可去若於此處揩又於處揩用力雜然則勞而旡功學問亦如此若一番理會不了又作一番理会則終不濟事 顔子工夫如左脚行得一步了右脚方行得一步右脚旣行得一步左脚又行得一步此頭得力那頭又長那頭旣得力此頭又長所以欲罷不能朱子曰讀書要看聖人敎人做工夫処是如何用藥治病湏看這病是如何發合用何方治之方中使制薬材何者幾而何者幾分如何炮如何灸如何製如何切如何煎如何喫只如此而已 又曰讀書將以求道今人不去理會道理提案上薬束起曰如合藥便要治病終不成合在此看如此於病何補 又曰工夫不可間斷某苦臂痛常以手擦之或時不擦旡緣見效卽此便是做工夫之法正叔謂文蔚曰擦臂之喩最有味朱子腰疼甚曰人之爲學如某腰疼痛楚在身自無頃刻之或忘若工夫未到只見得度數文爲之末豈能識是古人禮意如將一椀乾硬底飯耒喫有甚滋咪 讀書如一食物滋味盡在裡面若只舐噬其外而不得其味旡益也 讀書自然道理淶洽如飮食従容咀嚼其味必長大嚼大咽終不知味也 朱子曰兵法一言甚佳因其勢而制導之也人謂齊人弱田單因其弱以取勝孫子今日三萬竈明日二萬竈又如韓信特地送許多人安於死地乃始得勝學者若有絲毫氣在必復進力矣朱子曰常先難而後易不然難將至矣如樂毅用兵始常具難謹畏不敢忽故雖大國堅城無不破者及至自驕擔大而恃兵強因攻二城亦不下程子曰真知与常知異一田父曾被虎傷有人說虎傷人衆莫不驚獨田父色變異於衆真知須如田父乃是人知不善而猶爲之是亦末嘗真知朱子曰知至至之如徃長安未到長安却先知道長安在那裡從後行去這便是道德之事 又曰爲學之道如這裡有百千條路都茅塞在裡須自去揀一條大底行 若識得些路頭須是莫斷了如雞卵雞抱卵看來抱得有甚煖氣常常恁地抱得成若抱纔住便冷了 才猶言材料曲可以爲輪直可以爲樑棟若是毁鑿壊了豈關才事 貴賤長短皆有定數若木生於山取之或貴而爲棟梁或賤而爲測料 誠齋曰好遊者以爲九州之內四海之外其山川人物非復其鄕里所有之山川人物也竭其家以爲粮博觀天下二三年而貧也倦也悔而歸則其鄕里之山川人物卽九州四海之山川人物也噫安得遊而悔者与之共學耶松木德之中正也五德具焉好生似仁後淍似義條理似禮其枝一生汙下似智其脂化爲茯苓琥珀似信孟子若做孔子事儘做得只是未能如聖人黾山言孔子似知州孟子似通判權州此喻甚好通判權州也做得只是不久長 尹和靖守得謹見得不甚透如俗語他只是抱得一箇不哭底孩兒朱子曰氣自流通不息一爲私意所遮隔則便去不得且以麤言之如項羽一箇意氣如此纔被漢王數其十罪便沮屈去不得了易爲文字之祖義理之宗 乾坤离坎爲三十六卦之祖兌震巽艮爲二十八卦之祖乾七子 兊六子 離五子 震四子 巽三子 坎二子 艮一子 坤全陰故旡子乾坤合而生六子三男皆陽也三女皆陰也 陰爲陽之母陽爲陰之父 母孕長男而爲復父生長女而爲姤 以動靜言則陽客而陰主以人分之則男女也唬是陽吸是陰喚做一氣看他日月男女牝牡方見旡一物旡陰陽至微之物有箇背面 朱子曰春夏是行進去秋冬是退後去如人呵氣呵出時便熱呵入時便冷 木是水之子金是火之子陰陽是母朱公掞見明道謂人曰光庭在春風中坐了一箇月 堯舜亭午日殷周夕陽時秦漢黃昏後程朱秉燭隨 孟子曰有爲者譬若掘井掘井九軔而不及泉猶爲棄井也 孟子曰君子之所以敎者如時雨化是草木之生播種封植人力己至而未能自化所少者雨露之滋耳及此時而雨之則其化速矣敎人之妙亦猶是也 朱子曰時雨化者不先不後適當其時而已孟子曰君子引而不發躍如也中道而立能者從之是則道有定體敎有成法卑不可抗高不可貶語不能顯黙不能藏 中庸曰自誠明謂之性自明誠謂之敎朱子曰此性字是性之也此敎字是學知也 唯天下至誠爲能盡其性或問盡性卽孟子盡心否朱子曰盡心是就知上說盡性是就行上說能盡得真實本然之全體是盡性能盡得虛灵之覺之妙用是盡心盡心盡性之盡不是做工夫之謂盖言上面工夫己至至此方盡得耳致曲曲能有誠朱子曰曲不是全體只是一偏之善就一偏之善能一一推之以致乎其極則能貫通乎全體矣誠者物之終始北溪陳氏曰盖有是理而後有是物以造化言之天地間万物生成自古及今旡一物不宲皆是宲理所爲大而觀之自太始至旡窮莫下皆然就一物觀之亦然以一株花論之春氣流注到則花生春氣盡則花亦盡凡物之終始皆是一箇宲理如此 不誠無物是就人心論凡人做事自首徹尾純是一箇真實心方有此事朱子曰始言一理指天命謂性 末復合爲一理指上天之載始合而開其開也有漸末開而合其合也亦有漸 中散爲萬事便是中庸所說許多事如智仁勇許多爲學底道理与爲天下國家有九經及祭祀鬼神許多事中間無些子罅隙句句是實第三十三章子思因前章極致之言(極致卽上章知天地之化育) 反求其本(本卽君子之道淡而不厭簡而文溫而理如此立心) 又贊其妙(妙卽不顕之妙始言聲色次言如毛末言上天乃盡形容其不顕篤恭之妙)二十七章尊德性而道問學註解云析理則不使有毫釐之差處事則不使有過不及之謬(此不使二字最有味凡欲析理則不使如此凡欲処事則不使如此)東陽許氏曰程子謂不偏之謂中(固兼擧動静) 朱子謂不偏不倚則(專指未發)鬼神之露光景是昭明其氣蒸上感觸人者是焄蒿使人精神凛然竦然漢書所謂神君至其風颯然之意是悽愴 死便是屈感召得来便是伸執義公派譜序惟我汒洲之李枉於勝國名公碩卿系若貫珠尙矣而至若國朝尢其著顕者執義文安判書諸公之文章勳業學齋石湖諸公之孝友文學副正僉正諸公之偉忠大節比全譜之所共帲幪耳世代久遠各祖中祖理勢之自然而泒譜之禮興焉第欲大同而南北分裂逺莫致焉親疏有間議難合矣乃以執義公一家居近而議合同編序列公是太宗舊臣曆事三朝出治雄府入居憲府次將大用而爲 莊光之際矣退遯于湖之扶安 光廟累徴不起盖其所執之義可與殺身成仁之諸賢未嘗不同矣豈以生死殊途而觀哉功存宗社蔭庇後昆孫曾以下或登仕籍或升國庠或尊尙擧業得參小闡或出入儒門得聞性命爵祿雖少遜世以文行相傳足爲滕薛之大夫亦豈非執義公之澤閱百世而不斬者耶然則所重在於積德累仁不在於功利之末也古人所謂惟善是宝卽此之意也則惟願參譜諸眷入孝出恭勉修學業或嬰時禍則不渝其守或值艱險則彌勵其操毋或見利忘義得罪名敎忝我先祖則執義公之澤更閱百世而不斬矣勿以生卒之記昭穆之載謂吾事巳了而忍之哉譜將入刊衆請記事敢布平日所藏者以告子今與後生者庚寅三月日後孫鍾坤謹序窃觀各氏先系莫不田祖先忠孝文學積德累仁而成万世之基礎爲其後孫者莫不蜚先蔭而居淸班庇先德而行于世而不知更起精神勉修德業思欲爲人家中祖是可歎也今不必求之於遠而於我族見之亦不必求之於外而於我身驗之惟吾沠族閥閱雖不倫於某某大家然國朝五百年猶有三大科大小閳一忠四孝昭載公簿世傳文學遺文散稿各藏巾衍從事儒業鞰玉待價遯世不㦖其於承先裕後綽綽有餘則惟願譜中諸族入則竭力奉親出則盡忠事君勉修德業上以継先業下以啓後模則先祖必謂有肖孫矣吾輩今則爲人之孫不遠而爲人之祖矣思其爲祖之道而孜孜於倫理之學則肖孫之責賢祖之任可以一擧而兩得矣後孫時澤謹序辯論秘密票決議政適法憲章追條聯盟調印贊否我邦暴壓己過解放遂至痛傷激甚亞洲半島鷄林君國特權時代候犯殘破梅柳爭榮松菊晚景帝王展綿炭酸混促燒灰肥料荷蘭莱草根苗花葉紅綠粉末袋箱充滿桃梨栗桑耕種收藏稻麥豆太糧米毛翼畜殺取材枚個貴利魚龍遊泳骨角皮肉乳卵莫負孔敎祖宗氣只存在子孫身上祭祀時只這氣便自然又伸自家極其誠敬肅然如在其上是甚物那得不是伸朞之喪達乎大夫諸侯絶大夫降天子諸侯絶大夫降然諸侯大夫尊同則亦不絶不降姊妹姪在諸侯者亦不絶不降此皆貴貴之義葬用死者之爵祭用生者之祿問子孫之精神卽祖考之精神故祖考之精神依於己若門庭户竈之屬吾身朝夕之所出處則鬼神亦必依己而存朱子曰一家之主則一家之鬼神屬焉諸侯守一國則一國之鬼神屬焉天子有天下則天下鬼神屬焉看來爲天子者這一箇神明是多少大如何有些子差忒得若縱欲無度天上許多星辰地下許多山川如何不變恠理氣元不相離似是一物而其所以異者理無形也氣有形也理無爲也氣有爲也無形無爲而爲有形有爲之主者理也有形有爲而爲無形無爲之器者氣也 理無形而氣有形故理通而氣局理無爲而氣有爲故氣發而理乘也 理通者何謂也理者無本末也無先後也無本末無先後故未應不是先已應不是後 (自註程子說)是故乘氣流行參差不齊而其本然之妙無乎不在氣之偏則理亦偏而所偏非理也氣也氣之全則理亦全而所全非理也氣也而至於淸濁粹駁糟粕煨燼糞壤汙秽之中理無所不在各爲其性而其本然之妙則不害其自若也此之謂理之通也氣局者何謂也氣已涉形迹故本末也有先後也氣之本則湛一淸虛而已曷嘗有糟粕煨燼糞壤汙穢之氣哉惟其升降飛揚未嘗止息故參差不若而萬變生焉於是氣之流行也有不失其本然有失其本然者旣失其本然則氣之本然者已無所在 偏者偏氣也非全氣也淸者淸氣也非濁氣也槽粕煨燼槽粨煨燼之氣也非湛一淸虛之氣也非若理之於萬物本然之妙無乎不在也此所謂氣之局也 氣發而理乘者何謂也陰靜陽動機自爾也非有使之者也陽之動則理乘於動非理動也陰之靜則理乘於靜非理靜也故朱子曰太極者本然之妙也動靜者所乘之機也陰靜陽動其機自爾而其所以陰靜陽動者理也故周子曰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夫所謂動而生陽靜而生陰者原其未然而言也動靜所乘之機者見其已然而言也動靜無端陰陽無始則理氣之流行皆已然而已安有未然之時乎 是故天地之化吾心之發無非氣發而理乘之也所謂氣發理乘者非氣先於理也氣有爲而理無爲則其言不得不爾也夫理上不可加一字不可加一毫修爲之力理本善也何可修爲乎聖賢千言萬言只使人檢束其氣使復其氣之本然而已 氣之本然者浩然之氣也浩然之氣充塞天地則本善之理無所揜蔽此孟子養氣之論所以有功於聖門也若非氣發理乘一途而理亦別有作用則不可謂理無爲也孔子何以曰人能弘道非道弘人乎如是看破則氣發理乘一途明白坦然而或原或生人信馬足馬順人意之說亦得旁通而各極其趣試細玩詳思勿以其人之淺淺而輒輊其言也 性情本無理氣互發之理凡性發爲情只是氣發而理乘等之言非某杜撰得出乃先儒之意也特未詳言之而某但敷衍其旨耳建天地而不悖俟後聖而不惑者決然無疑何處見得先儒之意乎朱子不云乎氣質之性只是此性此性者本然之性也堕在氣質之中故隨氣質而自爲一性(此性字氣質之性)程子曰性卽氣氣卽性生之謂也以此觀之氣質之性本然之性决非二性特就氣質上單指其理曰本然之性合理氣而命之曰氣質之性耳 性旣一則情豈二源乎除是有二性然後方有二情耳若如退溪之說則本然之性在東氣質之性在西自東而出者謂之道心自西而出者謂之人心此豈理耶若曰性一則又將以爲自性出者謂之道心無性而自出者謂之人心此亦理耶言不順則事不成此處切望反覆商量 心一也而謂之道謂之人者性命形氣之別也 情一也而或曰四或曰七者專言理兼言氣之不同也是故人心道心不能相兼而相爲終始焉四端不能兼七情而七情則兼四端性則心中之理也心則盛貯性之器也人心道心皆發於性而爲氣所掩者爲人心不爲氣所掩者爲道心 夫理者氣之主宰也氣者理之所乘也非理則氣無所根柢非氣則理無所依著旣非二物又非一物非一物故一而二非二物故二而一也非一物者何謂也理氣雖相離不得而妙合之中理自理氣自氣不相挾雜故非一物也非二物者何謂也雖曰理自理氣自氣而混淪無間無先後無離合不見其爲二物故非二物也夫理一而己矣 理形而上者也氣形而下者也二者不能相離其發用一也不可謂互有發用也 且以人乘馬喩之則人則性也馬則氣質也馬之性或馴良或不順者氣禀凊濁粹駁之殊也出門之時或有馬從人意而出者或有人信(信字不知而任之也)馬足而出者馬從人意而出者屬之人乃道心也人信馬足而出者屬之馬乃人心也门前之路事物當行之路也人乘馬而未出门之時人信馬足馬從人意俱無端倪此則人心道心本無相對之苗脉也 已上數條栗谷喩牛溪書 下同感理氣之妙本無離合逐作短律一首書呈於此相合則無所不合矣元氣何端始無形在有形窮源知本合 (理氣本合也非有始合之時欲以理氣二之者皆非知道者也)沿沠見群精(理氣源一而分 爲二五之精) 水逐方圓器空隨小大甁(理之乘氣流行參差不齋者如此空甁之說出於釋氏而其喩親切故用之)二歧君莫感黙驗性爲情(性者理氣之合也盖理在氣中然後爲性若不在形質之中則當謂之理不當謂之性也但就形質中單指其理而言之則本然之性也本然之性不可雜以氣也子思孟子言其本然之性程子張子言其氣質之性其宲一性而所主而言者不同今不知其所主之意遂以爲二性則可謂知理乎性旣一而乃以爲情有理發氣發之殊則可謂知性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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