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往高敞與內從宋永新【有昔】 見松相和 枝枝樸地摠兒松 孤節亭亭獨秀冬 花草莫誇方自樂 雪中還笑片時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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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族弟【濟祿】 年皆七耋兩衰翁 {焂/心}忽存亡一夢中 宗會莫論先世誼 鄕閭誰起上仁風 同師同業情懷別 曰兄曰弟炁味通 子克孝思孫雋異 家聲不墜儘無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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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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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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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章【十七】 一.1) 僉知 扶寧 金膺相諄謹如君古所稀 生平與物不相違 惟天無負仁人地 南極星躔夜夜輝自少交情老益深 山樓筇屐喜相臨 蘭亭已矣今千古 年年契事更誰尋花深遯谷月明蘘 存者相逢逝者何 一幅哀詞空和淚 靑山無限夕陽多二. 箕城 李澈允猗歟今世古之人 七十年來任率眞 樂地春風閒意思 晴天明月澹精神 詩書事業傳三代 孝友家聲動四隣 壽考康寧能了債 飄然去作玉京賓亂曰 仁者必壽 化而登仙 謨以貽後 慶不忝先 歸路何處 瀛州山前 挽輀不得 涕泗漣漣三. 錦城 朴明壽我甲壬辰君丙申 今朝先作九原人 家傳子孝無遺憾 室有妻賢不患貧 草露存亡眞夢境 松齋酬唱已荒塵 適因俗忌違臨壙 感淚餘生如隔晨君向瀛州去 不忘舊貫鄕 蓬萊觴詠月 猶在斗升岡四. 礪良 宋潤德共生晟代幸無憂 講習襟期道所由 契合斷金同趣向 交深潭水活源流 每稱稽北三春勝 必倣雎陽五老遊 世事遽然醒醉夢 悵望南昊淚難收五. 全州 崔震錫月梧風柳卜幽居 中有主翁斗大廬 望八光陰一曰也 三昆弟兩難於蓮 峯仙約前宵夢乾 社桑緣哭是日書 吾輩勝遊無復續 春天寂寂暮雲虛生老文明世 歸兮又太平 哭兄無哭我 獨立對荒城六. 詩山 許塤遐享人間八耋年 緣公心德福維全 參同舊契難修楔 山水淸琴惜斷絃 簞巷生涯賓主樂 詩書事業子孫賢 丹旌寄送涓涓淚 明月瀛州去作仙月汀鷗上下 雲巖鶴徘徊 問爾看何事 主人去不回七. 再從弟 八祿自吾高禰小心翁 積善餘庥逮我公 七耋二齡仁可驗 三孤四抱慶無窮 倫情不啻同堂際 摯誼幾多一室中 衰境深深踽踽思 蕭歌數闋倍忡忡八. 扶寧 金仁黙七十三年之事蹟 衣冠淳博古風流 賞花不忍年年恨 翫月堪憐夜夜愁 極藥西陽遐世界 靑山綠水別春秋 日盃酹酒泣相屬 落日爲君更逼遛九. 完山 李文圭往往蓬岑鍾淑氣 平生景仰我公 賢丌上陳篇惟白 髮家中遺訓是靑氈 月落空樑無影跡 魂昇南極化星躔 從知不有幽明撼 子孝孫仁福善天一閉泉臺後 千年不復晨 斗升山下路 薤歌夕陽辰十. 箕城 李澈豊瀛州仙子下蓬萊 占取幽貞絶俗埃 孝友家聲能述舊 詩書庭訓俾覺來 每從先考琴棋樂 多得餘生杖屨陪 齒德人間優了債 飄然復向玉京臺永言歌碩軸 風月更誰邊 積善家餘慶 箕裘繼繼賢十一. 完山 李升甲蓬岑淑氣鍾公身 享福平生壽且仁 是匪塵閒無是匪 淸貧巷裡樂淸貧 家聲已敎賢三子 鄕約却忘老大人 數曲輀歌山下路 緘辭一 幅淚沾巾十二. 族姪 東植自我髫齡陪杖屨 學而未一炙薰時 視之茹子提撕訓 情況至親雍穆遺 去益那堪孤露感 今難復接儉醇儀 泉臺若遇吾先考 庶慰在前不盡思醇儀泉臺 若遇吾先 考庶慰在 前不盡思嗟我諸宗族 公惟出等倫 貧而好讀日 壽且康寧辰 世仰明經士 門多立雪人 八旬無恙老 六逸許心親 蓮榜緣奇數 藍田種寶珍 忍辭花樹會 去作玉京賓 其奈考終命 知夫了債身 情深言也{氵+齒} 思切夢耶眞 謨翼猶貽燕 孫賢各抱麟 荒詞意未盡 竚立淚盈巾十三. 平康 蔡弘一晩契於吾感忘年 夢中消息一驚傳 七十二齡偕錦瑟 兩三肖胤繼靑氈 扶風淸望稱元老 瀛海宿緣伴列仙 大夜乾坤無復曉 紼謳數曲落花前落花三月 雨積日故 霏霏流作 人間淚盡 沾弔客衣十四. 平康 蔡弘鑒忘形世誼密 荐深爲我知 福田裁寶樹 友瑟和瑤絲 七旬二稀世 三達一讓誰 扶風高士老 瀛月與僊期 江南鯨駕御 天上虬車馳 詩酒今日淚 衣冠數郡儀 澗碧山紅路 紼歌唱哀些十五. 扶寧 金日奎公生歲丙申 詩禮謹修身 率性剛而義 達尊壽且仁 聲餘琴瑟席 香滿茁蘭香 淚滴哀章濕 夕陽更欲新十六. 詩山 許錫龍蓬岳崢嶸氣像尊 愧將微跡托高門 巴翁贈簡承淸韻 隴士受知感至恩 寶樹播芬傳世業 紫荊聯萼護春園 從今一訣無依庇 孤露餘生淚有痕十七. 全州 崔錫五芳隣父老漸云{土+日} 公且今歸倍覺唏 逼側居同論世契 提撕恩重間亟幃 康寧八耋壽仁地 純淑三男趨養闈 一關蕭章無盡思 斗岑之下暮雲霏 '一'이라는 표기는 원문에는 없다. 李澈允에 대한 만사 또는 그 뒤에 나오는 朴明壽의 만사에 각각 '二' 또는 '三'이가 표기된 것으로 보아 원래는 一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어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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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회계/금융-치부책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미상시기에 작성된 추수 내역 및 사용 내역. 미상 시기에 작성된 추수 내역 및 사용내역이다. 합계로는 52섬 8말 5되가 모였으며 이를 사용하고 남은 벼는 23섬이 있었다. 금액으로 환산하고 남은 내역은 116냥 7전 5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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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회계/금융-치부책 癸卯十一月日 癸卯十一月日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癸卯) 11월에 작성된 추수내역과 사용내역이 적힌 추타조(秋打租)이다. 1903년(癸卯) 11월 기준으로 작성한 11월의 추타조이다. 석주평(石柱坪)에서 1석10승을 거뒀으며 쌓인 금액은 85냥 5전 8푼이며 쌀은 25냥 5전 1푼으로, 총 합계는 110냥 5전 8푼이다. 여기에 계원 호산(虎山) 11명, 풍안(豊安) 28명, 두원(豆原) 15명, 고소(姑蘇) 5명, 호서(虎西) 3명에게 거둬들인 합은 18냥 6전이며 이 모든 수확의 합계는 129냥 1전 8푼이다. 이후 제수대로 5냥, 3명의 유사의뢰비로 9전, 대 종중분으로 12냥, 시제 노자돈으로 2냥, 제수용 고기값으로 5냥, 남초(南草;담배)값으로 2냥 1전, 백지값으로 1전 5푼, 죽미(粥米) 7되와 주미(酒米)로 7되, 금액으로 3냥 5전, 감자 7되를 구입한 3냥, 땔나무 구입으로 52냥을 사용하였고 15냥 7전 5푼을 채워서 사용했다고 적었다. 호산은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 일대를, 풍안은 고흥군 풍양면 안동리를, 두원은 고흥군 두원면을, 고소는 고흥군 고흥읍 고소리를, 호서는 고흥군 고흥읍 호동리 호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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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회계/금융-치부책 甲辰十一月 甲辰十一月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甲辰) 11월에 작성한 문중의 수봉기(收捧記)이다. 1904년(甲辰) 11월에 작성한 문중의 수봉기로 이름 부분이 많이 훼손되어있다. 인원은 11명으로, 문서상에서 드러나서 확인이 되는 사람은 류영유(□{柳}永維), 류중윤(□{柳}重倫), 류기준(柳奇浚), □□문(□□文), 류재준(柳再浚), 류영백(柳永伯), 류영기(柳永祺), 류영식(柳永式)이며 이들이 빌려간 내역은 93냥 5전 3푼이며, 받은 내역은 37냥 2전 6푼이다. 빌려주고 받은 내역을 모두 합한 금액은 128냥 8전 2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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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회계/금융-치부책 乙巳十一月日 乙巳十一月日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乙巳)11월에 작성된 추수내역과 사용내역이 적힌 추타조(秋打租)이다 1905년(乙巳) 11월 기준 작성한 추타조이다. 구성원은 류장호(柳璋浩), 류다복(柳多福), 류재준(柳才浚), 류기준(柳奇浚), 류중윤(柳重倫), 류중문(柳重文), 류재준(柳再浚), 류영백(柳永伯), 류영식(柳永式), 류귀준(柳龜浚)등 10명으로 이들이 낸 내역은 85냥 1전 3푼과 쌀값 25냥 5전 4푼으로 합계는 110냥 6전 7푼이다. 이후 지출로 제수대(祭需代)로 7냥 5전, 생선 대구 구입으로 2냥 2전, 소곡(蔬谷)에 사는 신동댁(新洞宅) 장례시 보낸 금액이 1냥, 남초(南草;담배)값으로 1냥 2전, 닭 한 마리 값으로 1냥 5전, 주죽미(酒粥米) 값으로 2냥 4전, 누룩(曲子)값으로 1냥, 시제 참석비로 1냥 4전, 백지 값으로 4푼, 장작값으로 1냥 5전을 사용했다. 이후 남은 내역은 91냥 9전 4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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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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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기(秋收記) 고문서-치부기록류-추수기 경제-회계/금융-치부책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미상시기에 작성된 추수 내역 및 사용 내역. 미상시기에 작성된 사용내역이다. 다른 내역과 다르게 지출내역만 적혀있다. 총 116냥 7전 1부를 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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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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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경자년(庚子年) 전주(全州) 이득용(李得容)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庚子四月 日 李得容 城主 庚子四月 日 李得容 전북 부안군 [署押]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경자년(庚子年) 4월에 전주(全州)에 거주하는 이득용(李得容)이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 경자년(庚子年) 4월에 전주(全州)에 거주하는 이득용(李得容)이 선산의 친묘답(親墓畓)을 몰래 거래한 자들을 처벌해달라면서 부안현감(扶安縣監)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문서의 전후면이 제사(題辭)로 가득하여 판독할 수 없는 글자들이 있지만, 그 대략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득용의 7촌 조카 이원복(李遠福)이 평소 투전꾼으로 소행이 좋지 않았는데, 부안현(扶安縣) 우산내면(右山內面) 고사포(古楂浦)에 사는 김기방(金基邦)과 작당하여 왕세(王稅)를 납부한다는 명목으로 관가(官家)에서 입지(立旨)를 받아내어 지난 3월에 이득용의 친묘답(親墓畓)을 김기방에게 투매(偸賣)하였다. 물론 이 두 사람은 가명성문(假名成文), 즉 다른 사람의 명의로 명문을 작성하였다. 멀리 전주에 살면서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이득용은 부안현감에게 소지를 올려 김기방을 잡아다가 처벌하고, 이원복을 투매한 죄목으로 다스려달라고 탄원하였다. 수령은 이에 대하여 양자를 대변(對卞)하기 위하여 이들을 잡아오라는 제사(題辭)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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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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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土地賣買契約書一. 土地表示난左記와如홈一. 賣買代金拾円也一. 賣渡人은前記賣買代金을準領고土地所有權을買受人으계轉渡홈一. 保証人은右契約이確實事實늘保証으로左에署名捺印홈<연도>大正二年</연도>八月一日[檢証濟]<지명>扶安郡上西面露積里</지명>三統九戶賣渡人 <인명>林洞介</인명>[着名][一字消抹]<지명>扶安郡東道面仙隱洞</지명>二統五戶買受人 <인명>李承鎬</인명>[着名]仝郡<지명>上西面露積里</지명>四統二戶保証人 <인명>宋子善</인명>[着名]左記面名 里洞名 字番号 地目 面積 結數 價格<지명>上西面 露積里</지명> 賊三二八二 田 一斗五升 二負五升 拾円餘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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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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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84년 김명철(金明轍)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경제-회계/금융-수기 甲申四月初五日 金明轍 甲申四月初五日 金明轍 전북 부안군 [着名] 1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84년 4월에 김명철(金明轍)이 부안(扶安)에 있는 저전(苧田)을 팔면서 작성한 수기(手記). 1884년 4월에 김명철(金明轍)이 부안(扶安)에 있는 저전(苧田)을 팔면서 작성한 수기(手記)이다. 김명철은 급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천자(天字) 모시밭(苧田) 2마지기를 전당 잡히고 6냥을 빌렸다. 수기의 내용은 매시(每市) 2푼(分)의 이자를 지급한다고 하였으며, 4월 그믐 안에 본전과 이자를 모두 갚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문서가 소장된 부안의 선은동 전주이씨가에는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작성되었던 명문 5백여 점이 전하고 있어서 이 가문이 당시에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축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명문 뿐만 아니라 산송(山訟) 관련 소지(所志)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 가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문서 31건이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의 고문서DB로 구축되어 있어서 작성연대가 간지로만 적혀 있는 명문과 소지의 정확한 작성연대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호적문서는 1801년부터 1888년까지 부안 동도면 선은동에서 계속 작성되었는데, 여기에 기재된 호주들의 이름은 이양호(李養灝), 이양락(李養洛), 이양순(李養淳), 이양식(李養湜), 이익용(李翼容), 이겸용(李謙容), 이규함(李圭咸), 이규정(李奎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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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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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40년 김기하(金基夏)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道光二十年庚子三月十八日 幼學金基夏 幼學 道光二十年庚子三月十八日 幼學金基夏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840년(헌종 6) 3월 18일에 유학(幼學) 김기하(金基夏)가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840년(헌종 6) 3월 18일에 유학(幼學) 김기하(金基夏)가 자신이 매득하여 경작해 왔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그는 긴히 돈을 쓸 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 논을 팔게 되었다고 거래사유를 적고 있다. 거래가 된 토지는 부안현(扶安縣) 우산내면(右山內面) 자미동(滋味洞) 전평(前坪)의 논 3두락지로, 부수(負數)로는 9부 1골이 되는 곳이다. 거래가격은 50냥이었다. 거래시 구문기와 신문기 2장을 매입자에게 넘겨 주었다. 뒤에 이 논에 대하여 말썽이 생기면 이 문기를 가지고 증빙하라고 하였다. 증인(證人) 겸 필집(筆執)으로 임희복(任希福)이 답주(畓主) 김기하와 함께 거래에 참여하여 서명하였다. 위의 자미동은 오늘날의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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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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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지명>東道面仙隱洞</지명>罪民<인명>李奎煥<인명>右謹言極寃切憤情由大抵錢之爲物自古及今或有債用之事或有貸取之道而至於上東翼上里居<인명>金致西</인명>爲名人其奸譎凶惡之習世上無觀五六年前上項致西錢參拾兩以債例得去而尙此延拖無報給之意故屢呈數三等舊 城主前題音者▣▣叱除良渠之手標二張昭然又況家勢千有餘金之者乎當初該錢用之者致西之子元叔也而其父致西托於其子元叔推於其父眞所謂有是父有是子然則該錢從何處推捧乎罪民今在草土公私債間艱章之狀萬不成說不勝憤寃玆敢前呈所志與手標帖連呼龥洞燭 敎是後特加嚴明矜恤之澤同金民父子問捉致法庭準繩督捧無至見失呼冤之地千萬祈恳之至行下 向敎是事城主 處分<연도>戊寅<연도> 十一月 日官[署押](題辭)用人之債年久不報致此屢訴極爲無俚仔査推給次<인명>金致瑞</인명>捉待向事十二日 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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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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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東道面仙隱洞</지명>後麓<인명>李時白</인명>堂叔母塚<인명>李時白</인명>再從嫂塚<인명>李時白</인명>五寸叔塚十月初六日入葬李曰白晝葬崔曰偸葬<인명>李時白</인명>祖父塚十月初九日入葬李曰白晝葬崔曰偸葬<인명>李時白</인명>曾祖母塚<인명>李時白</인명>堂叔母塚<인명>崔昌奎</인명>六代祖父母合塚<인명>崔昌奎</인명>七代祖父母合塚自<인명>崔昌奎</인명>七代祖父母塚上距<인명>李時白</인명>新占處步數爲七十五步坐立俱見自<인명>李時白</인명>新占處上距其曾祖母塚步數爲二十步半步起訟<인명>李時白</인명>喪不着應訟<인명>崔昌奎</인명>[着名](題辭)卽爲告去入葬爲旀若更有作梗者以捉來嚴刑向事十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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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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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縣內九英里</지명><인명>辛元凱</인명>右謹陳情由事段籠簞攫則肥已沒誼雖是南土偸習今於東道仙隱洞<인명>李聚五</인명>初見也矣身搬移次所存畓土十三石三斗落折價七千兩擬賣于<인명>聚五</인명>處而其中三千兩則未及推來四千兩則先爲推來將欲買家移畓於他地是如可事不如意今旣還爲蹲接是乎乃矣身素無他業惟農是靠而旣已盡賣其畓今無寸土耕作之道二十餘口生命將何料活由是焉還給先推錢四千兩請其畓土還退之方備盡這間情勢則不良<인명>聚五</인명>本三四十年冒利之輩忽生無廉之慾還逐其錢勒退其畓豈有如許無據之習乎私難爭詰緣由仰訴同<인명>李聚五</인명>捉致嚴禁畓土卽令還退使矣身以爲安接設農事 處分行下爲只爲行下向 敎是事官司主處分<연도>戊戌</연도>三月 日官[署押](題辭)詳査公決次李班率待事卄八日狀[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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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이성실(李成實) 방매(放賣)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光武十二年丁未九月二十一日 李成實 光武十二年丁未九月二十一日 李成實 전북 부안군 [着名] 2개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부안 동도 전주이씨가 1907년 9월 21일에 이성실(李成實)이 선은동(仙隱洞) 전평(前坪)에 있는 콩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907년 9월 21일에 이성실(李成實)이 선은동(仙隱洞) 전평(前坪)에 있는 콩밭 천자전(天字田) 5두락지, 부수로는 8부 6속이 되는 곳을 65냥에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이다. 선은동은 이 문기의 소장처인 부안의 전주이씨가가 살았던 동도면(東道面)에 있는 곳으로, 오늘날의 부안읍 선은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구문기는 이사하면서 분실하였기 때문에 신문기 1장만을 매입자에게 넘겨주었다. 만일 뒷날 이 논에 대하여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바로 잡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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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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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연도>咸豐三年癸丑</연도>三月十二日<인명>姜周煥</인명>前明文右明文事<인명>李永壽</인명>以其弟之船人塩価事與 王稅拒納事卽當滯囚而<인명>李時容</인명>自 官捉治推給行分付至嚴而家庄田地乙放賣題下故依 官分付<지명>仙隱洞</지명>前坪玄字田五斗落所耕八卜八束庫乙幷禾穀価折文肆拾伍兩依數捧上是遣<인명>李永壽</인명>手記與官題幷以右人前永永放賣爲乎矣只以新文一丈成給日後若有紛紜之弊則持此文記告 官卞正事田主 <인명>李永壽</인명> 滯囚捧標放賣族人<인명>李時容</인명>[着名]證面任 <인명>金碩元</인명>[着名]筆洞任 <인명>趙宗奎</인명> 喪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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