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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薊州 薊門煙樹一望遙翠色浮天靜不搖何處旗亭吹玉笛漁陽槁畔路迢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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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崆峒山 馬首東來大道遙崆峒山色倚蒼霄廣成祠畔秋風至天外飛仙若可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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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운한 시를 부기하다 김현래 附次韻 金玄來 바람 앞에서 많은 밤알 떨어지니서리 아래서 밤송이 갈라졌네완전히 가난하진 않다고 스스로 믿노니팔 굽혀 베고 애오라지 누워 자네 累顆落風前深房坼霜下自信不全貧曲肱聊偃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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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에 그늘이 짙다 柳亭濃陰 높은 정자에 꽃과 버들 그늘 드리우고푸른 산에 저녁 안개 갰구나부르는 소리에 낮잠을 깨니위에는 유창한 꾀꼬리 소리 유창하네 花柳蔭高亭晩烟晴抹綠喚回午夢醒上有鶯聲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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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두암 김응남41)을 애도하다 挽左相金斗巖應南 종묘사직이 존망하는 날이 宗社存亡日신민에게는 생사의 때네 臣民生死時나라의 동량이 갑자기 꺾였으니42) 棟樑忽自折조정을 마침내 누가 지탱할까 大廈竟誰支해역은 비가 막 개었으나 海域雨初霽강성에는 바람이 다시 불네 江城風更吹산인들이 끝없이 통곡하는 것은 山人無限哭비단 사사로운 정 때문만은 아닐세 不獨爲吾私 宗社存亡日, 臣民生死時.棟樑忽自折, 大廈竟誰支.海域雨初霽, 江城風更吹.山人無限哭, 不獨爲吾私. 두암 김응남 1546~1598.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중숙(重叔), 호는 두암,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1568년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1583년 제주 목사(濟州牧使)로 좌천되었지만, 선정을 베풀어 기민(飢民)을 구휼하고 2년 뒤 우승지(右承旨)를 제수받았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했으며, 1594년 우의정, 1595년에 좌의정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안무사(按撫使)로 영남에 내려갔다가 풍기(豐基)에서 병을 얻어 서울에 돌아온 뒤 관직을 사퇴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나라의 …… 꺾였으니 좌의정 김응남이 죽은 것을 표현 것이다. 위개가 죽고 나서 사곤(謝鯤)이 그를 위해 통곡했는데, 어떤 사람이 통곡하는 이유를 묻자 사곤이 "기둥과 대들보가 꺾였으니, 나도 모르게 애통할 뿐이네.〔棟梁折矣, 不覺哀耳.〕"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36 衛玠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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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사문간찰초) 附錄(師門簡札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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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지1)에게 보낸 편지 【무인년(1578)이다. 곤재 선생2)】 與羅大之書 【戊寅 困齋先生】 봄이 저물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만물은 번창하고 있구나.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그대는 만복을 누리며 학문을 잘하며 지내고 계시는가? 나는 궁벽한 산속에 엎드린 듯 지내고 있어 소원하고 용렬함이 마치 어제처럼 게을리 지내다가 수시로 한두 학도들과 더불어 옛 경서를 강독하고 토론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느 날 다시 풍모와 위의를 갖추어 대면하고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상세히 이야기 나눌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 끝이 없다네.근래 손수 쓴 편지를 받아 보니 우리 그대가 뜻은 성현의 공부에 돈독히 하고 오로지 공부하는 것을 덕에 나아가 수양하며 마음을 가라앉혀 경전을 완미하고 일상생활에 실상을 두어야 하는 것으로 성명(性命)의 온전함을 구한다고 하니, 이른바 옛 사람들이 말한 '자기 자신을 위한 학문'으로, 공경과 감탄을 이길 수가 없겠으며 위로와 기쁨이 지극하네. 이른바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 있다.'라고 말한 것은 학문을 하는 방법을 깊이 터득한 것이니 정말 훌륭하고 매우 훌륭한 것이네. 다만 자세히 묻고 밝게 변별하는 것을 벗들과 강론하고 닦지 않는다면 터득할 수가 없네. 때때로 도가 있는 분에게 나아가 질정하는 것 또한 불가한 것은 아니니 경전을 먼저하고 주를 뒤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앞선 스승들이 이미 밝혀 놓은 것으로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대저 그대의 자질은 강직하고 밝으며 보는 바가 날로 발전하니 두렵고 위로가 됨이 모두 지극하구나.나는 보잘 것 없는 사내로서 마음속에 보존하고 있는 것과 몸으로 행하는 것이 남들에게 구하여 듣고 계획된 삿된 마음 아닌 것이 없었네. 곰곰이 생각하면 일찍이 볼 낯이 없도록 부끄럽지 않은 적이 없었고 조금도 보통 사람과 비슷한 마음이 없었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을 우러르고 머리를 숙여 그를 공경하는 모습을 띠었는데 더군다나 자네처럼 고상하고 밝고 두려워할만한 이에게 감히 스스로를 크고 망령되이 높다고 하여 후생이 예의를 지켜 대우하는 것을 기대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예의는 노력해야 하고 말은 공손해야 한다는 것이니, 바라건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게나. 나머지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적기 어려워 다만 이렇게 적는다. 春令迫暮, 物華暢繁. 伏惟侍候萬福, 學履有相. 鄙人跧伏窮山, 疏庸如昨, 而時與一二學徒講討古經, 以度遣日月爾, 不知何日, 更對風儀, 細論心懷, 鬱陶斯極. 近再奉手示, 仰認尊侍, 志篤聖賢, 功專進修, 沈玩經籍, 着實日用, 以求必得, 夫性命之全, 是乃所謂古人爲己之學, 不勝敬歎, 慰悅之至. 所謂關戶端坐云云, 深得爲學之方, 甚善甚善. 但其審問明辨, 非朋友講磨, 不得. 時就有道正焉, 亦未爲不可, 先經後註, 先師之訓已明, 更何疑焉. 大抵賢侍之資稟剛明, 所見日進, 畏慰俱極. 介淸賤丈夫也, 心中所存, 身上所行, 無非求聞計獲之私. 潛思默慮, 未嘗不歉然愧怍, 少無類人之心. 是以稍見賢於己者, 不覺其抑心下首而敬貌之, 況如賢侍之高明可畏, 其敢自大而妄尊, 以待後生之禮待之乎. 此所以禮欲勤辭欲恭也, 幸勿怪焉, 餘懷難盡, 只此. 나대지 나덕준(羅德峻, 1553~1604)을 말한다. 자가 대지(大之)이고, 호는 금암(錦巖)이다. 곤재 선생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을 말한다. 자는 의백(義伯)이고, 호는 곤재(困齋)이며, 나주(羅州) 출신이다. 저서로 《우득록(愚得錄)》이 있다. 일찍이 나덕준의 스승이 되어 그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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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집》에 실린 시에 차운하다 9수 次皇華集韻【九首】 나물 먹는 사람과 좋은 맛 논할 수 있겠으며속된 말이 어찌 순정한 노래와 어울릴 수 있으랴잉어가 용문에 뛰어오른 것332) 참으로 다행이니이 몸이 어찌 한 형주를 알기만 할 뿐이랴333)사람 맞이하려 산은 맑은 이내 보내고벗 부르려 꾀꼬리 깊은 골짝 소리 전하네한없이 펼쳐진 풍광에 시안을 고뇌하니돌아오는 길에 벗과 담소한들 어떠리보검의 하늘 치솟는 기운에 이미 놀랐으니정금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334) 다시 듣겠네큰 화로에 백 번 단련한 것335) 아니면분명 양주와 형주서 나온 진품336)이겠지동한의 풍속 태평성대 흔적이니성군의 은혜와 영광 시골 마을서 보네신부는 시부모 봉양하고 아이 돌보며권농하는 청백리가 누추한 집 찾아오네떨어지는 꽃 향긋한 풀 비 온 뒤 흔적이니울긋불긋 원근의 마을에 번갈아 비추네지금 태평성대의 기상 있는 줄 바야흐로 알겠으니옛 관문엔 주점과 시인 누각 즐비하여라하늘 저편에 아지랑이 한 줄기 피어오르니여기에도 또한 신선 마을 있는 듯하여라청허한 모습 인간 세상 아니니연하는 어디에 있나 골짜기 찾아가노라천상의 신선이 옥 누대에서 내려와서는청구의 이끼 낀 돌길을 두루 밟고 오네바람 타고 끝내 머물지 않을 줄 알겠으니뽕밭이 바다 되기 전에 혹여 돌아오려나신선 수레에 바람 불어 높은 누대 걸터앉으니정처 없는 발길 비단 이끼 낀 곳에 머무리라남겨둔 향기 기억하여 나중에 갈 곳으로 삼아그대 이별하고 홀로 돌아온 심사 달대려 하노라몇 곳의 이름난 누각과 몇 곳의 대에서밝은 달밤 시 읊조리며 푸른 이끼 밟았나삼한의 삼천리 승경을시낭 하나에 넣어 왔네 藜腸可與論滋味俚語安能和正聲鯉躍龍門眞自幸此身奚啻識韓荊迎人山送晴嵐色唺友鶯傳幽谷聲無限風光惱詩眼不妨歸路滯班荊已驚寶劍干霄氣更許精金擲地聲不是洪爐經百鍊定應珍品出楊荊東韓民物太平痕聖帝恩光見野村新婦餉姑翁哺幼勸耕廉吏過柴門落花芳草雨餘痕紅綠交輝遠近村方信太平今有象酒樓詩閣古關門天外浮嵐一抹痕此中疑亦有仙村虛無不是人間世何處煙霞訪洞門天仙降自玉樓臺踏遍靑丘石路苔颷駕定知終莫住桑田未海倘歸來風吹仙馭跨層臺散迹須留在錦苔記取遺芳爲後地別君要慰獨歸來幾處名樓幾處臺朗吟明月步蒼苔三韓形勝三千里輸入奚囊一底來 잉어가……것 벼슬길에 오르거나 출세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정문부가 중국 사신의 시에 수창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뿐이랴 한 형주(韓荊州)는 당대(唐代)에 명망이 높았던 형주 자사(荊州刺史) 한조종(韓朝宗)으로, 중국 사신을 한조종에 비견한 것이다. 이백(李白)이 자기를 천거해 달라는 뜻으로 한조종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듣건대, 천하의 담론하는 선비들이 서로 모여 말하기를 '태어나서 만호후에 봉해지기는 굳이 원치 않고 다만 한 형주를 한 번 알기를 바랄 뿐이다.[生不用封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2 與韓荊州書》 정금(精金)이……소리 훌륭한 글을 말한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이 시문을 잘했는데, 〈천태산부(天台山賦)〉를 지어 범영기(范榮期)에게 보이면서 "경(卿)은 이것을 땅에 던져 보라. 응당 금석(金石) 소리가 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晉書 孫綽傳》 백……단련하지 수 없이 단련한 훌륭한 시문을 비유한 것이다. 양주……진품 자질이 뛰어난 인재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훌륭한 시문을 의미한다. 중국의 형주(荊州)와 양주(楊州)에서 질 좋은 금이 생산된 데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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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菜儀 每歲二月八月中丁釋菜前一旬獻官及執事官望報本官差定【右期日】前四日齋任儒生入齋前三日執事官八齋前二日三獻官入齋不弔喪問疾作樂決罰罪人縱酒茹葷及與穢惡惟釋菜事得行其餘悉禁【右齊戒】前三日滌祭器鋤去廟庭雜草修理東西齋灑掃講堂各陳鋪陳具供賓饌需前二日掃除廟之內外塗褙窓戶始食于堂前一日獻官諸執事皆沐浴再滌祭器齋任一員典祀官一員受祭物於本官獻官諸執事各服其服出大門外西向南上?祭物奉香于講堂別龕牽牲于講堂中庭獻官諸執事閱饌物視牲充腯詣講堂書祝文詣廚視滌漑訖各遠齋所執事者陳幣篚於神位之左祝板於神位之右置於坫次設祭器掌饌者實之左四籩爲二行以右爲上【第一行鉶鹽在前魚鯆次之第二行黃栗在前鹿脯次之】右四豆爲二行以左爲上【第一行菁葅在前鹿醢次之第二行芹葅在前魚醢次之】俎二一在籩前【實以羔腥】一在豆前【實以豕腥】簠一簋一在籩豆間簠在左【實以稻】簋在右【實以黍】設象尊二於戶外之左北向西上【西實玄酒東資淸酒】燭臺二於神位前香卓一於堂中香爐香盒置于卓上【爐西盒東】又設洗二於東階之東【盥洗在東爵洗在西】罍在洗東加勺篚在洗西南肆實以巾執罍篚者位於其後設門外位在東西向北上【祝以下位稍却】階間拜位在兩階間北向西上飮福位在東序西向執禮位於前楹間祝位於中庭稍北學生位於庭中北向西上謁者贊者贊引位於西階之西通唱贊唱位於兩階下執事官位於東階之東洗西開瘞坎於廟北設望瘞位於瘞坎之南【右陳設】初獻官升自東階【凡行事執事官陞降皆自東階】點視陳設訖退就次直日分番守直于廟四更一點明燎干廟庭及門外燃燭獻官以下各服其服俱就門外位行傳香禮八就階間拜位再拜初獻官詣神位前三上香行奠幣禮初獻亞獻終獻飮福望瘞如儀撤饌闔戶以降乃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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宴飮儀 每歲四月十月院儒宴飮【期日預告于搢紳官及耆老靑衿】會日夙興直講掌色直月儒生往于書院具巾服先以長少之序拜揖于東齋如常儀【掌議以下會于他齋俟直講八東濟改服然後就東齋行禮】灑掃廟之內外設香爐香盒參會者至俟於外次亦以長少之序拜揖如常儀【凡會集幼少當先至不可後於尊長】旣集皆具巾服以齒爲序立於門外東向北上【縉紳官參會則搢紳官爲上賓】直講以下出門西向南上【直講與上賓正相向立】直講揖上賓八門諸人隨之至神門直講以下入自東門上賓以下入自西門直講以下立於東庭重行北面西上【直講獨爲一行掌色直月爲一行掌議與色直爲尊長則別爲一行】上賓以下立於西庭重行北面東上【尊者異爵者爲一行長者爲一行敵者爲一行少者爲一行幼者爲一行】立定皆再拜直講升自東階上香降與在位者皆再拜【若有告文則上時可讀】還就講堂之庭分東西相向立賓主皆北上直講三揖請升上賓三讓直講先升賓從之旣升行禮見之儀訖直講揖就座【有親戚妨於位次者亦坐東壁直月之南北上西向間具位不屬】坐定直月抗聲讀節目及白鹿洞學規訖別設卓子於兩楹間置大杯於其上主人【直講】降席立於卓東西向上賓亦降席立於卓西東向主人取盃親洗上賓辭主人置杯卓子上執事者進酒注主人親執酒注斟酒于杯以注授執事者遂執杯以獻上賓上賓受之復置卓子上主人西向拜上賓東向拜興取酒東向跪祭遂飮以杯受執事者遂拜主人答拜【若少者以下爲上賓則飮畢拜時主人跪受如常儀若主人是少者以下則上賓飮後主人乃拜上賓跪而半拜】上賓酢主人如前儀訖主人乃獻衆賓衆賓無酢【若衆賓中有齒爵可尊者則獻酒如上賓之儀但賓不酢若衆賓獻以下則獻酒待不拜只於飮後相拜】旣畢就座進饌【九十者六豆八十者五豆七十者四豆六十老三豆五十以下二豆主人視上賓實以脯醢】始以俗禮行酒且進點心飯訖少休于他處【主人起立在位者皆起立一時作揖以次退于各齋復會時皆就位一時作揖而坐】復會堂上或論行己之要或議院中之事或質經書疑義講論從容至夕乃散【凡行事時以習禮者爲贊禮昌笏】右取法於文慮書院鄕約儀而略有折衷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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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菜笏 謁者贊者贊引入自東門先就階間拜位皆再拜各就位謁者引首獻官以下俱就門外位行傅香禮謁者引首獻官詣神門之右跪受香傳香謁者引獻官復位贊引引祝及諸執事八就階間拜位再拜詣盥洗位盥手帨手各就位謁者贊者贊引引獻官八就階間拜位獻官皆再拜謁者進初獻官之左白有司謹具請行事行初獻禮謁者引初獻官詣盥洗位北向立盥手帨手引詣神位前跪三上香執幣獻幣俯伏興引詣尊所西向立執尊者擧羃酌山罍淸酒引詣神位前跪奉爵奠爵俯伏興小退跪祝東向跪讀祝俯伏興引降復位行亞獻禮贊者引亞獻官詣盥洗位北向立盥手帨手引識尊所西向立執尊者擧羃酌山罍淸酒引詣神位前跪奉爵奠爵俯伏興引降復位行終獻禮贊引引終獻官詣盥洗位北向立盥手帨手引詣尊所西向立執尊者擧羃酌山罍淸酒引詣神位前跪奉爵奠爵俯伏興引降復位獻官皆再拜祝進輟籩豆獻官皆再拜謁者引初獻詣飮福位執尊者以爵酌罍福酒祝進減神位前俎肉東向跪飮福受胙飮啐酌俯伏興詣望瘞位祝取祝板幣及黍稷飯置于坎置土半坎復位謁者進初獻官之左白禮畢獻官以次出祝及諸執事皆再拜以次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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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庫田畓 乙未量案田畓壹百拾陸斗伍升落只內牛谷面衣字畓參斗落只白文以給唐字畓貳斗落只白文以給邇字畓參斗落只白文以給服字畓參斗落只白文以給曳山面地宇田壹斗落只放賣在田畓壹百肆斗伍升落只會草坪字畓貳斗落只推尋洑內坪乃字畓參斗落只追尋梧枝面潛字畓貳斗落只申侯錫疇買都合田畓壹百拾壹斗伍升落只內田畓參拾陸斗落只書院基址奴婢沙乃條除實在畓柒拾伍斗伍升落只年年收禾補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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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하여 강여관과 덕휘 두 현인에게 주다 【덕휘는 강 첨정이고 봉람은 자43)이다.】 醉贈姜汝寬德輝二賢 【德輝 姜僉正 鳳覽 表德也】 적막한 초가집 저녁에 廖落草堂暮운한장44)을 슬피 읊조리네 悲吟雲漢章흰 부채45) 지닌 아름다운 객이 있어 白扇有佳客푸른 눈46)이 차가운 연못 비추네 靑眼照寒塘동이를 여니 봄기운이 술에서 일고 開瓮春生酒병법을 말하니 칼이 시퍼렇게 날서네 談兵劍欲霜어느새 떠나니 어찌할가 如何去忽忽강수와 위수47)가 꿈에서도 아득하네 江渭夢蒼茫 廖落草堂暮, 悲吟雲漢章.白扇有佳客, 靑眼照寒塘.開瓮春生酒, 談兵劍欲霜.如何去忽忽, 江渭夢蒼茫. 자 원문의 '표덕(表德)'은 자(字)를 이른다. 《안씨가훈(顔氏家訓)》에, "옛날에는 이름으로써 몸을 바르게 하고, 자로써 덕을 표출하였다.〔古者, 名以徳命, 字以表徳.〕"라고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후대에는 자나 별호(別號)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운한장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여왕(厲王)의 난정(亂政)을 거울삼아 잘 다스리려는 뜻을 품고 재변(災變)을 당해서 두렵게 여겨, 몸가짐을 조심하고 행실을 닦아서 재변을 사라지게 하려고 하였다는 시(詩)로서,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지습(蕩之什) 운한장(雲漢章)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부채 원문의 '선(扇)' 아래에 "아마도 구(駒) 자의 오류인 듯하다.〔恐駒字之誤〕"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푸른 눈 원문의 '청안(靑眼)'은 반갑게 맞는다는 뜻이다. 《진서(晉書)》 권49 〈완적전열(阮籍列傳)〉에 "완적이 상주가 되었을 때 혜희(嵇喜)가 예절을 갖추어 조문하니 완적이 흘기는 눈[白眼]으로 대하고, 혜강(嵇康)이 술과 거문고를 갖고 찾아오니 완적이 기뻐하여 반가운 눈[靑眼]으로 맞이했다."라고 하였다. 강수와 위수 원문의 '강위(江渭)'는 대개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의 "위수 북쪽엔 봄 하늘에 우뚝 선 나무, 강 동쪽엔 날 저문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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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상계축도 塞上契軸圖 장사들이 죽음에서 살아나 壯士生於死누선36)에서 날카로운 무기 안고 있네 樓舡擁兌戈앞다투어 진나라 조적37)이 되어 爭爲晉祖逖함께 위나라 산하38)에 웅거하네 共據魏山河칼을 차니 고래39)가 울고 倚劍鯨鯢泣잔을 돌리니 초목도 평화롭네 飛觴草木和용면40)처럼 훌륭한 일을 전하니 龍眠傳勝事호방한 기상이 푸른 물결에 가득하네 豪氣滿滄波 壯士生於死, 樓舡擁兌戈.爭爲晉祖逖, 共據魏山河.倚劍鯨鯢泣, 飛觴草木和.龍眠傳勝事, 豪氣滿滄波. 누선 누각이 있어 사람이 들어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배로, 흔히 전선(戰船)을 말한다. 조적 266~321. 자는 사치(士稚)이다. 여러 관직을 역임한 뒤 혼란한 사회를 피해 남쪽으로 피난 갔다. 예주 자사(豫州刺史)가 되어 북벌을 주장하였으며 몇 년 만에 황하 이남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당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서 중원을 회복하겠다고 맹세한 일화가 전해진다. 위나라의 산하 위나라는 산천이 험하고 견고하여 적의 침략을 받기 어려웠다. 전국 시대 때 위나라 무후가 배를 타고 서하(西河)로 내려가다가 말하기를 "장하다, 산천(山川)이 험하고 견고하구나. 적국이 침범하기 어려우니 이것은 위국(魏國)의 보배로다."라고 하였다. 《史記 卷65 吳起列傳》 고래 원문의 '경예(鯨鯢)'는 각각 거대한 고래의 수컷과 암컷을 가리키는데,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악인(惡人)의 괴수를 비유한다. 《춘추좌씨전》 선공 12년조에 "옛날에 명왕(明王)이 불경한 자들을 정벌하여 그 경예를 잡아다가 죽여서 무덤처럼 쌓아 두어 크게 치욕을 주었다." 하였다. 용면 송(宋)나라 때의 유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호이다. 이공린이 벼슬을 그만두고 용면산(龍眠山)에 들어가 지내며 자호를 용면거사(龍眠居士)라 하였다. 여기서는 훌륭한 화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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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로 건너고 배로 건너는 그림 橋行舟行圖 두 사람은 다리 건너고 두 사람은 배를 타니육로가 뱃길보다 편안하다고 하지 말라한 발짝 조금만 어긋나도 모두 위험한 곳이니인간 세상 어디인들 안전한 곳 있으리오 二子乘橋二子船陸行休較水行便纔差一足都危地何處人間有萬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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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갑신년(1584)】 又 【甲申】 절하고 답하네. 봄이 저물어 막바지에 이르니 날씨가 화창하구나. 멀리서 생각건대 그대는 관아에서 부모님을 살펴 모시면서 봉양까지 겸비하여 마음으로 이해하며 성정으로 딱 들어맞아 어긋남이 있지 않을 터이니 인간세상의 무슨 즐거움이 이와 같겠는가! 나는 소원하고 용렬함이 어제와 같아 무어라 말할 것이 없네. 근심스러운 일은 쇠약함이 날로 더해 가고 학업에 뜻을 둔 것이 날로 게으르며 마음을 접촉함이 욕심을 따르는 것인데 스스로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한 채 쌓인 기질은 끝내 세속을 벗어날 기약 없이 영리의 향락에 이르렀네. 그렇다면 마음이 비록 바라고 사모한다 한들 천명은 힘쓸 수가 없는 노릇이니 어찌 하면 좋겠는가. 어버이를 모시는 도리는 오직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뜻을 따르는 데 있네. 나는 진실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에 사람들의 비방과 배척을 스스로 마땅히 감수해야 할 터이니 감히 교묘하게 피하여 바깥의 이익을 도모하려 하겠는가. 다만 마음속으로 더욱 깊이 반성한다면 보탬이 적지 않을 것이네. 곁에 어버이를 모시고 작은 집을 지었다는 소식을 보여주니 그대가 사랑으로 보호하고 인도하였던 깊은 마음에 위로가 되어 경복하고 또 경복하네.서울로 가는 일은 내 동생이 막았는데 보내준 편지의 말 또한 이와 같으니 삼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변산(邊山)의 행차는 유정언(柳定彦)과 이미 약속한 것이니 사람 일의 좋고 나쁨 또한 기필할 수가 없다네. 인생이 억울하여도 이미 어찌할 수 없으니 바라는 것은 친구 가운데 오직 우리 두 분이 타고난 민첩한 자질로 부모님을 봉양하고 뜻을 정하여 학업에 전일하며 외물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 뿐이네.바라건대 더욱 더 옛사람의 자기를 위하는 학문에 뜻을 두어 우선 거처하는 곳에서 공손하며 일을 집행할 때는 공경히 하고 남을 대할 할 때 충심으로 하는 일에 착수하여 박약으로 나아가고 게으름과 공경 그리고 의리와 욕망의 이기고 지는 것을 깊이 살피며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이에 뜻을 오로지 하며 말세의 의로움과 이로움을 함께 행하고 두 길과 왕도와 패도를 함께 쓰는 무리가 되지 않으며 늘 만 길 높은 곳에서 우뚝 서서 홀로 천 년 전의 성현들을 벗 삼아 이름이 널리 알려 지기를 마음에 비교하며 헤아리지 않는다면 매우 다행하고도 다행한 일일 것이네. 외로운 처지에 있는 나 또한 이러한 계책으로 힘썼으나 타고난 자질이 우둔하고 어리석어 조금도 변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하고 애석하네. 介淸拜覆, 春令迫暮, 風日和淑, 緬惟思吾賢省侍衙庭, 奉養備具, 會心適情, 無有拂違, 人間何樂, 可以如之. 鄙人疏頑如昨, 他無可言者. 所可憂者, 衰邁日臻, 志業目倦. 觸情從欲, 自知而不克, 氣質之累, 終無脫洒之期, 而至榮利之享, 則心雖企慕, 而命不可力, 奈如之何. 事親之道, 唯在樂心順志, 而介淸實不能焉, 人之謗斥, 自當甘受, 敢欲巧避, 以圖外利乎. 伹內省愈深, 爲益不少. 親側作小家之示, 深慰高明愛護噵引之厚意也, 敬服敬服. 京行, 家弟止之, 而來敎亦如之, 敢不敬從. 邊山之行, 與柳定彦已約, 人事好乖, 亦不可必也. 此生之枉了, 已矣無奈何, 所望者, 朋友之中, 唯吾兩賢稟賦通敏, 奉養贍足, 志定業專, 不爲外誘所搖爾. 願深加留意於古人爲已之學, 先以居處恭執事敬與人忠, 爲實下手, 而博約以進, 深察敬怠義欲之勝負, 專意於視聽言動之際, 不爲末俗義利雙行王覇幷用之流, 常伸乎落落萬仞之上, 尙友乎孑孑千載之前, 不以聞達較量心慮, 幸甚幸甚, 孤蹤亦以此策勉, 賦質頑愚, 不能少變, 可惜可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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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읽고 읊다 4수 詠史【四首】 초나라 땅 푸른 산 중에 구의산 있거늘회왕은 무슨 일로 장의를 믿어버렸나344)상오 육백 리를 끝내 떼어 받지 못했으니상수는 덧없이 흐르고 슬픔 끝이 없구나초나라에 세 집만 있어도 진나라는 망한다 하니남공의 그 예언 꼭 온당하지는 않도다345)한번 무관에 들어가자 백성 희망 끊기니잔약한 후손은 무슨 일로 또 회왕 되었는가346)-이상은 초 회왕(楚懷王)을 읊은 것이다.-조서 받들어 회군하니 사람들 의심하였는데송나라 멸망 실로 천명인 줄 절로 알았네347)가령 황제가 금패를 내려주지 않았더라면별이 떨어져서야348) 위수의 깃발 돌렸으리악무목의 순수한 충심 초목도 아니묘 앞의 송백 모두 남쪽 향해 가지 뻗네고종의 능에는 나무하여 남은 나무 없고부질없이 슬픈 바람 북쪽에서 불어오네-이상은 악무목(岳武穆 악비(岳飛))을 읊은 것이다.- 楚地靑山有九疑懷王何事信張儀商於六百終難割湘水空流不盡悲楚雖三戶亦秦亡未必南公說得當一入武關民望絶孱孫何事又懷王奉詔班師人或疑自知亡宋實天爲假令不下金牌字星落應回渭水旗武穆精忠草木知墓前松栢盡南枝高宗陵上樵無樹空有悲風自北吹 초나라……믿어버렸나 구의산(九疑山)은 중국 호북성(湖北省)에 있는 산 이름으로, 아홉 개의 봉우리가 비슷하게 생겨 구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구의(九疑)'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의심스럽거나 모호한 상황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전국 시대에 진(秦)나라 재상 장의(張儀)가 초나라와 제나라의 우호 관계를 끊기 위해, 초 회왕(楚懷王)에게 상오(商於)의 땅 600리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다가 나중에 6리로 번복하여 초 회왕을 속인 고사가 있다. 《史記 張儀列傳》 초나라에……않도다 전국 시대에 초 회왕이 진(秦)나라에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자 초나라 사람들이 진나라를 원망하였다. 초나라 음양가 남공(南公)이 "초 나라는 세 집만 있어도 진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楚雖三戶 亡秦必楚也]"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일종의 도참설(圖讖說)로 뒤에 초의 항우가 삼호진(三戶津)을 건너와서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史記 項羽本紀》 한번……되었는가 초 회왕이 무관의 회합에 나갔다가 진 소왕(秦昭王)의 간계에 빠져서 진나라에 억류되어 병으로 죽었다. 훗날 회왕의 후손인 웅심(熊心)이 항우에 의해 초 회왕으로 옹립되었다가 살해당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의제(義帝)이다. 《史記 項羽本紀, 楚世家》 조서를……알았네 송나라 충신 악비(岳飛)가 금나라와의 전투에서 대승하여 영토를 거의 회복할 단계까지 갔는데, 진회(秦檜)가 고종(高宗)에게 "악비의 외로운 군대를 오래 머물러 둘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회군하도록 하기를 청하였다. 진회의 말을 들은 고종이 금패를 내려 회군을 명하자, 결국 악비는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宋史 岳飛列傳》 별이 떨어져서야 훌륭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악비의 죽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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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집》 중 송도시에 차운하다 10수 次皇華集松都韻【十首】 성제께서 동쪽에서 소호의 봄 맞이하니온갖 신령 분주하게 맑은 풍모 좇아가네변방 소국이라 오악에 달려갈 길 없으나그래도 중국의 제일 가는 사람은 뵌다오고려는 일찍이 예덕 싫어하는 하늘 만나오백년 왕업이 바람 앞 연기처럼 흩어졌어라교만과 음란이 나라의 공업 다 무너뜨렸으니고생 끝에 건국했던 때를 그 누가 생각하랴천마산 우뚝 솟은 형세도 믿기 어렵고험한 진나라의 백이관337)도 관계 없네황제 성명하심에 번국이 의지하니한 집안이 이불과 베개 삼는 것은 곧 산하로다효녀의 명성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우니구천에서 백골이 진토 되었다 누가 믿으랴세간에 보잘것없는 남자 많이 있으니기질 치우친 것은 여인이라 말하지 말라-이상은 효녀문(孝女門)을 읊은 것이다.-송악산에 비바람 몰아치고 황혼 가까워지니온갖 요괴들 앞다퉈 저마다 떠들어대네동쪽 바다에 아침 오자 붉은 해 솟으니도성으로 옮겨가 태평 시대의 흔적 되리풍악산 뭇 봉우리 높은 하늘을 찌르니상서로운 빛과 기운 종횡으로 뻗치네요승과 요염한 여인 힘 강하지 않았으니이틀거리의 새로운 수도로 옮겨졌어라338)겹겹의 산봉우리 다투듯 우뚝 솟았으니신선은 어느 해에 빠른 수레 멈추려나골짜기엔 지금 솔바람 소리 울리니밤 깊자 옛날 생황 퉁소 소리 들리는 듯기린포 입은 신선들 삼청에서 내려오니339)몸에는 옥황상제의 향안사340) 직함 지녔네누추한 골짝 찾아주신 영광 어이 감당하랴도리어 시와 술로 회포를 드러내 보이네왕업 기운 전혀 옛날처럼 무성하지 않으나아직도 불사 옆 산벼랑에 감돌고 있누나나라의 흥망은 부처 힘에 기댈 수 없으니당시에 부처 모시느라 국력만 낭비하였지신선이 탄 뗏목341) 바다 어귀에 당도하니왕손의 향긋한 풀인 궁궁이만 보이네342)돌아올 때 봄이 다 지난 줄도 몰랐으니자극성343) 그 어디가 황제 사는 경도인가 聖帝東迎少昊春百靈奔走逐淸塵偏邦無路趨方岳猶覩中朝第一人麗祚曾當厭穢天半千王跡散風煙驕淫剩墜金甌業辛苦誰思定鼎年天磨難恃勢峨峨秦險非關百二多皇帝聖明藩國賴一家衾枕卽山河孝女名聲聽益新九原誰信骨成塵世間不肖多男子偏塞休言是婦人松山風雨近黃昏百怪千妖競自喧桑海朝來紅日出漢京移作太平痕楓岳羣峰入太淸祥光休氣作縱橫妖僧艶色無多力輸向新京二日程重巒疊嶂競岧嶢仙子何年住電軺洞府只今松籟響夜深如聽舊笙蕭麟袍仙侶下三淸身帶天皇案史名陋谷何堪借容色却於詩酒著風情王氣全非舊鬱佳尙留紺殿傍山崖興亡無賴浮屠力浪費當時俸佛齋仙子星槎到海區王孫芳草見蘼蕪歸時不覺春歸盡紫極何邊是帝都 백이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천연 요새를 말한다. 옛날 진(秦)나라 땅이 험고하여 "2만 인으로 제후의 백만 군대를 막을 수 있다.[秦得百二焉.]"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高祖本紀》 요승과……옮겨졌어라 조선이 건국되어 수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진 것을 말한다.요승과 요염한 여인은 신돈과 그 비첩(婢妾) 반야(般若)를 가리킨다. 기린포(麒麟袍)……내려오니 중국 사신이 온 것을 신선이 내려온 것에 비유한 것이다. 기린포는 기린의 무늬를 수놓은 좋은 관복으로, 여기서는 중국 사신의 옷차림을 비유한다. 삼청(三淸)은 도교에서는 삼청경(三淸境)의 준말로, 삼존(三尊)이 거하는 최고의 선경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중국을 비유한다. 향안사(香案史) 궁중에서 제왕을 가까이 모시는 관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황제의 조서를 받들고 온 사신을 두고 한 말이다. 신선이 탄 뗏목 사신을 비유하는 말이다. 왕손의……보이네 떠나간 중국 사신이 그립다는 뜻이다. 한나라 회남소산왕(淮南小山王) 유안(劉安)의 〈초은사(招隱士)〉에 "왕손이 떠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봄풀은 자라서 무성하도다.[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왕손초(王孫草)라는 명칭이 생겼다. 왕손초는 곧 미무(靡蕪)로 우리말로는 '궁궁이'라고 한다. 자극성(紫極城) 제왕이 거처하는 궁전을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명나라 황제가 있는 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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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會笏 設書案一於北壁下案上置當講之冊白鹿洞規等【柱箇亦置于案左】設搢紳講長位於東壁下西向次設直講位於其南不屬坐又設齋任位於其南亦不屬坐設諸生位於西壁下東向使齋直遽告于各房曰升講各房儒生一齊至庭下講長直講及直月與諸齋任各以位次立東階下諸生以齒立西階下揖讓而升講長直講及直月與齋任在東壁【西向北上】諸生在西璧下【東向北上不盡則南壁北向西上】相揖升席坐使齋直持紙筆詣各位前受到記展置于直月座前講執事一人詣書案抗聲讀洞規訖興復位第一直月詣書案讀講書第一章【背臨講依規】訖興復位【執事就講名下輒書起止】第二直月以下以次講讀如上例齋任以次繼讀而末讀者讀訖以栍筒視數向直月告第幾興復位直月依栍數呼西壁當講人曰第幾當講人詣讀訖抽栍復位如上例講訖迭相論難將罷東西壁一齊相揖以次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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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修廳文蹟 行狀【附象村重修記大邱忠烈碑銘】神道碑銘墨本二【一前面一後面】搢紳案【辛丑爲始】耆老案【壬戌爲始】靑衿案【壬戌爲始】齋任薦望案焚香笏講會笏宴飮笏審院錄【一不知何時粧成而首錄韓西平中間錄申汾涯申平川其時則崇禎後壬子癸丑年也一崇禎再乙卯順夭營將申公光德序一崇禎三癸未左水虞候申公遇文序一崇禎四戊寅樂安郡守申公腀序一崇禎四己未求禮縣監申公泰益粧送】鄕案院籍【藏於東齋壁龕】講需錢拮据冊【逐年修正】下記冊【逐年修正】院誌【古阜申義巡癸亥編集甲子開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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