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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儒生朴禎根吳繼洙尹滋郁等 謹齋沐上書于巡相閤下 伏以賢者爲國之大用 而薦賢爲政之先務也 昔者河南守英公薦落陽人賈誼豫章守陳蕃薦彭城人徐稚 紫陽綱目大書特書 以示天下後世進賢之意至矣本道綾州士人鄭義林 古判書永思堂公諱演十一世孫也 受業於蘆沙奇先生之門 又執贄從遊於石塘鄭先生 全齋任先生 勉菴崔先生門之人也 素以簪纓 舊族斯文名家其學問文章實今日南服儒林之領袖也 早廢擧業 固守林樊 不以貪窮動其心 惟以存養 守其志 所讀者 程朱之書 所樂者 孔顔之道 而其學本於格致 其德本於誠敬 其道本於倫理 四子六經 如誦已言三百三千 無不淹貫 以至發於事親事長 接人接物之際 粹然一出於正 而不咈於規矩繩墨之中 鄕閭服其化 生徒遵其敎 蔚然爲一時矜式者久矣 若使引以進之於公朝爲一時之器用 則今人後人之傳 以爲美談美事者 豈但如古人而已哉 鄕儒之聞於本官者累 本官之薦於巡營者五 巡營之薦於朝廷者二矣 尙未蒙拔第之典 其爲一省 士林之抑鬱何如哉 恭惟巡相閤下 淵源古家 以厚德重望 稔聞於士林間者久矣 何幸 莅于本道 周年百政修擧 而又急於搜賢訪逸于巖阿 故敢採一道大同之議 齊聲仰籲 當此式年之歲首 鄭義林之文學行義 薦進朝堂 俾蒙褒揚之典 千萬伏祝 伏惟藻鑑戊子二月 日 光州幼學 朴禎根 幼學 奇東萬 羅州進士 金房鎭 幼學 吳繼洙 南原進士 李元洪 全州進士 蘇輝植 順天幼學 趙羽浩 樂安幼學 金在模 寶城進士 尹權浩 幼學 安鍾默 長興進士 李禧錫 幼學 魏啓? 南平幼學 尹贊鎭 和順進士 柳鳳浩 幼學 曹秉萬 同福幼學 閔膺鎬 幼學 宋兢勉 昌平幼學 鄭{氵+奭} 幼學 高光元 玉果幼學 鄭鳳鉉 茂長幼學 鄭河源 長城進士 金興煥 幼學 奇宰 潭陽幼學 李承學 興陽幼學 申益求 唐津幼學 安昌洙 綾州幼學 梁在淵 幼學安澈煥 幼學尹滋郁 等(題辭)文學實行 若此卓越 孰不欽感於此啓體愼重 遽難輕議向事初五日都巡使[着押][全羅道觀察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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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장동식(張東植) 단자(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東植 同福縣監 官[着押] 1顆(5.7×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 2월에 동복현에 사는 장동식이 동복현감에게 자신은 용렬하여 향교의 직임을 감당하지 못할 듯하므로 체직시켜 줄 것을 청원한 단자 1873년(고종 10) 2월에 동복현(同福縣)에 사는 장동식(張東植)이 동복현감에게 자신은 용렬하여 향교의 직임을 감당하지 못할 듯하므로 체직(遞職)시켜 줄 것을 청원한 단자이다. 이 단자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2월 24일에 '청원한 내용 대로 시행할 것'을 처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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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장윤문(張允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張允文 行縣監[着押] *周挾無改印, 1顆(墨印, 17.5×5.6)*1顆(6.8×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22 1828년 8월에 전라도 동복현에서 호주 장윤문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 1828년(순조 28) 8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에서 호주 장윤문(張允文)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장욱의 사망으로 호주가 된 장윤문의 거주지는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 제3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이고, 나이는 35세 갑인생(甲寅生)이며, 본관은 흥덕(興德)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욱(旭), 할아버지 학생 한신(漢臣), 증조 학생 효지(孝智), 외조(外祖) 학생 이필달(李苾達) 본관은 전주이다. 장윤문의 아내 류씨(柳氏)는 나이 37세 임자생이고 본적은 선산(善山)이다. 류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연수(演樹), 할아버지 성균생원 복삼(復三), 증조 학생 규홍(奎弘), 외조 학생 류성채(柳星采)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이외 가족으로 동생 유학 윤빈(允彬), 나이 31세 무오생이 있으며, 소유하고 있는 종으로 돌윤(突潤)이 있다. 문서에는 동복현감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25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을유호구상준인(乙酉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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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福內西面學堂里張起文張東植張▣…▣謹泣血原情于繡衣道閤下伏以疾之至痛必呼其慈母事▣…▣必訴於明司者人情之常而自 閤下奉 命南來執法嚴明聼理公▣無罪不戢無寃不伸而何幸 賁臨於本縣則可謂生等鳴寃之有日故玆敢不避猥越具申▣…▣是白齊生等之五代祖父母與曾祖父母山在於本邑內北面熊谷而定山宜守護者百有餘年四山禁養內無一杯他塚矣去癸亥年分上多村居宋榮國爲名漢偸葬其外祖▣於生之曾祖山二十步之地故自官即爲圖尺督掘矣其後丁亥年分熊谷居曺敬源偸葬其父於同宋榮國曾掘之地是如乎生之亡父累度呈官每承督掘之題敎而上項敬源素以頑㐫狡惡之人恃其挾富閥閱侮蔑殘民恬視官令一不同庭對卞則累度掘移之題敎便爲空言無施是乎旀且有一段奸巧事渠之同里有金哥爲姓者遭其親喪而同敬源指點生之五代祖山階下擲斧之地使之偸葬是遣生等責掘於金哥則憑藉於曺塚責掘於曺哥則憑藉於金塚曺金兩人互相延拖■(玆)〔自〕以爲得妙計是乎所旣掘之地斷案尙在則■(故)〔固〕當掘移之不暇而又况指嗾他人葬共爲蜃〖唇〗齒之勢者極涉無嚴無法而子孫之憤恨愈久而愈深是如乎玆以前呈文狀牒連仰籲於公明按法之下上項曺金兩人捉致 法庭嚴治其偸葬之罪是白遣所謂偸塚即刻掘移更無呼寃事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繡衣道 處分戊午三月 日〈題辭〉依法典公決以給事十六 山在官[馬牌]御史[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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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고산서원(高山書院)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高山書院 高山祠章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9년 고산서원(高山書院)에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향 대수가 넘어서 신주를 조천(祧遷)하는 사안에 대해 유회(儒會)를 갖고자 한다는 내용의 간찰 1939년 12월 20일에 고산서원(高山書院)에서 보낸 통문(通文)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제향이 4대(代)가 넘어서 신주를 조천(祧遷)해야 하므로 의견을 모아 사당을 세워 존봉하자는 의견이 지난 가을 제향 때 나왔지만 사안이 중대하므로 널리 의견을 모아야한다고 하였다. 오는 1월 17이 본가의 길제(吉祭) 날이므로 15일 전 을미일에 담대헌(澹對軒)에서 한차례 유회(儒會)를 가져서 공론을 모아 성대한 예식을 완성하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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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惟辰下尊體保重 嗚呼人事與世道相促蘆沙奇先生四世主鬯 已踰終祥 天何嗇仁壽於吾先生之後承 若是迅乎 揆諸常禮 先生祠板 當祧當遷 而竊伏惟念先生紹前繼後之崇德廣業 宜乎享百世之祀 而以時法不類 遽行祧遷 實有所未安者矣 繼念在昔先正諸賢 亦有未蒙朝家之特許 則裒收在下之淸議立廟而得伸尊奉之義 盖出於反經合道之微意也况今文與時異典禮寄在儒林 從儒林 庶不害於時義 秋丁釋菜 旣不無多士商確 而事係鄭重 不可不廣謀廣詢 庚辰正月十七日丁酉 本家吉祭也 前十五日乙未 一番儒會于澹對軒以待公議 而欲完縟禮 玆敢擧梗槩 仰諗尊聽 使不悖於情禮 而使先生之道益尊 則世道幸甚 斯文幸甚己卯十二月二十日高山書院金鍾學 柳相哲李鍾宅 金顯奎曺悳承 李宏奎金度中 朴興圭柳羲迪 李喜敬高禮鎭 吳用根梁會甲 李光秀奇雲度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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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樞府事兼五衛將者同治九年三月 日[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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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장기문(張起文) 등 원정(原情)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起文 暗行御史 御史[着押] 1顆(馬牌, 지름9.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07 1858년 3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기문과 장동식 등이 암행어사에게 투장한 조경원과 김 가의 죄를 엄격히 다스리고 투총을 즉각 파서 옮길 것을 청원한 원정 1858년(철종 9) 3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기문(張起文)과 장동식(張東植) 등이 암행어사에게 투장(偸葬)한 조경원(曺敬源)과 김 가의 죄를 엄격히 다스리고 투총(偸塚)을 즉각 파서 옮길 것을 청원한 원정이다. 장기문과 장동식 등이 원통함을 호소하는 사건의 전말은 '자신들의 5대 조부모와 증조부모의 산소가 동복현 내북면(內北面) 웅곡(熊谷)에 있어서 산지기를 정해 백 여년 동안 수호(守護)해 왔다. 그런데 1803년(순조 3) 즈음에 상다촌(上多村)에 사는 송영국(宋榮國)이 그의 외조▣를 자신들의 증조 산소 20보 되는 곳에 투장하였다. 하지만 관에서 바로 도척(圖尺)하여 독굴(督掘)하였는데 1827년(순조 27) 즈음에 웅곡에 사는 조경원이 그의 아비를 송영국이 투장했던 곳에 투장하였다. 이에 자신들의 아버지가 여러 차례 관에 청원하여 매번 독굴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조경원은 평소 완악하고 교활한 사람으로 부유한 벌열(閥閱)을 믿고서 힘없는 백성을 업신여기고 관령(官令)을 괄시하여 모두 법정에서 서로 변론하지 않아, 여러 차례 '파서 옮기라'는 판결은 시행되지 못하였다. 여기에 더해, 조경원과 한 마을에 사는 김 가가 어버이 상을 당하자 조경원이 자신들의 5대조 산소 섬돌 아래 아주 가까운 곳을 지정하여 김 가를 투장하게 하였다. 자신들이 김 가에게 이굴할 것을 요구하자 김 가는 조경원의 투총을 핑계 삼고, 조경원은 김 가의 투총을 핑계 삼아 서로 일을 끌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장기문과 장동식 등은 암행어사에게 이전에 올렸던 청원서를 점련하여 '이 두 사람을 법정으로 잡아들여 투장한 죄를 엄격히 다스리고, 투총은 즉각 파서 옮기도록 하여 다시는 자신들이 원통함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청원하였다. 이 원정을 접수한 암행어사는 3월 16일에 이들의 산소가 있는 동복현감에게 '법전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여 뎨김을 내려줄 것'을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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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山面民人等狀右謹齊籲寃情事伏以該面卽境內一隅處於靈界由來弊瘼異於他面而歉餘民情每庸岌岌荷擔相屬是白齊去益不幸加之以訓屯事星元兩面極其狼藉仍以逼側再三徵費洽爲四百金先被其孽不能支保是去乙噫彼人心壑慾無厭稱托營費虛張數爻欲售僥倖事甚無據故歲前良不得已呈議送旣爲公決尤當懲縮是去乙不意今者又以京費欺罔 官家稱以得題當此竆春 王稅公錢辦納無路之境不顧民勢之汲汲威脅殘民每結頭以十兩錢式分排以至二千五百餘金是遣彼儻數十符同于本面之無頼輩啗以厚賚互相唇齒罔夜督捧急於公納民失魂魄家家號哭襁負相連或有轉移他官者又有避身他面者方將秧坂在卽■(面)統面內無一人設農之意若不痛革則將至空墟乃已故民等不避猥越玆敢鳴突伏願 閤下細細洞燭焉以若京費言之出於屯事旣曰屯在面則畧干所費豈忍牢却乎當初遣諸不經事少年不知物情渠矣父母之遠具也子女之奇玩也這這等物興成二千餘金云爾則他人耳目固所難掩渠矣面內先自指閙而畏其氣燄小民不能出頭觀望他面之措處誠極可悶三人之四五朔京費多不過爲五六百金者也而虛張浮費初云六千中云四千末云三千餘金則可知其挾襍也已徃妥帖之營費混同京費肆然侵及可知其無嚴也以民虐民愚弄 國結私自濫排果是無法究其所習罪固難逭伏乞一視之下別般嚴處永革後弊使此殘喘濱死之民庶有還甦之望無任齊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三月 日金潤澤 康基斗 金汶榮 鄭濟益 金德秀 李建奎 李鍾蘭 李章和 吳永三 金處仲 朴明汝 朴寬黙 林日新 李仲瑞 兪致榮 成夏京 辛宜黙 康原瑞 金周澤 鄭大源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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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 김영기(金榮基)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榮基 靈光郡守 [着押] 1顆(6.8×6.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자년(1888?) 10월에 무장현에 살고 있는 김영기가 겸관에게 자신의 부모 산소에 늑장한 일 등에 대해 전례에 따라 해당 면임에게 전령을 내려 산하 부근의 네 마을에 각별히 신칙하게 하여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막아 줄 것을 청원한 소지 무자년(1888?) 10월에 무장현에 살고 있는 김영기가 겸관에게 자신의 부모 산소에 늑장(勒葬)한 일 등에 대해 전례에 따라 해당 면임에게 전령을 내려 산하 부근의 네 마을에 각별히 신칙하게 하여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막아 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김영기 부모의 산소 벌내(閥內)에 영광군 법성진(法聖鎭)에 거주하는 김부기(金富基)가 늑장한 일에 대해 즉각 파서 옮기라는 관의 판결을 받았다. 김영기 부모의 산소가 불행히도 법성포 경계에 접해 있는데 대체로 포진(浦鎭)은 양반이 없는 고을이라 습속이 어리석고 외람되어 위력만을 믿고서 늑장을 위주로 하고, 도당을 불러 모아 산소에 심어놓은 채벌이 금지된 나무를 멋대로 벌목하기도 하였다. 늑장한 뒤에 소송하여 독굴(督掘)하라는 것이 세 차례이고, 다짐을 바쳐서 자수(自首)한 것이 두 차례이니 모두 산하(山下) 부근 마을의 무뢰한이다. 김부기는 김영기 슬하에서 17년 동안 수업 받은 사람으로 이 흉년이 극심한 해에 요행을 바란 것이다. 이에 김영기는 겸관에게 '세세히 살펴서 전례에 따라 해당 면임에게 엄한 전령을 내려 산하 부근에 있는 네 마을의 백성들에게 각별히 신칙하게 하여 후록(後錄)에 따라 통지하여 이후에는 이처럼 무엄한 습속이 없도록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막아서, 이 쇠잔한 양반이 선영(先塋)을 보전할 수 있게 핼 줄 것'을 청원하였다. 후록한 해당 두민(頭民)은 서당촌·산하치·월계촌·화장동이다. 이 소지를 접수한 겸관은 10월 11일에 형리(刑吏)에게 '사령(使令)에게 특별히 신칙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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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58년 화순식(和順式)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 화순(和順)에서 설행된 식년시 방목(榜目) 1858년 화순(和順)에서 설행된 식년시 방목(榜目)이다. 상시관(上試官)은 목인회(睦仁會 1798~1870)의 생몰년으로 이 문서의 연대를 추정하였다. 초장(初場)과 종장(終場)으로 나뉘어 각각 합격자의 성명과 거주지를 기재하였다. 초장 합격자 가운데 기진연(奇晉衍 1826~?)이 포함되어 있다. 기진연의 자(字)는 덕소(德昭)이고, 본관은 행주(幸州), 거주지는 장성(長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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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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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右通告事伏以在昔盛峕敎化大行倫綱極備臣不失臣道子不失子道婦不失婦道少不凌長責善輔仁若盡其道則士林薦聞君上褒揚或旌其閭或贈其爵風聲所及天下歸仁悲風凄雨五十年呼寒啼飢奔走於穀絲之曲逕能盡其職者盖鮮矣本郡士人達城裵益洙妻林氏兆陽閥閱故家女稟賦貞淑端一幼能事父母以孝有行以父母事舅姑舅姑安其養如待大賔承君子君子宜其室夫有事于丘壠勞悴成疾不起時年二十二一子呱呱不以哀慽見於面送終如禮撫孤以恩家人常慮其經情日居月諸小祥祭誠床撤燈滅形影香然夫弟澤洙憂其不憂索之大急已懸身於後園樹梢摘軆救急斷續眼淸澤洙伏地泣曰令名百世烈則烈哀彼孑孑誰依誰托蕭瑟寒廚孰主張是相向痛哭惻隱之心感于中回心就穀立家聲於將來保白首於貞節事實合於昭代盛典之可獎可褒而時異法久泯滅無聞無所慍而天年終於丁酉冬月孝子秉周不忍掩其美而終黙扶杖帶衰泣訴其實秉彝所同不勝慨然玆敢發告伏惟 僉君子同聲賛揚樹風聲於奔蕩之際使期要無行愧其心而汗其顙則扶正倫綱世道幸甚天下幸甚聖誕二千五百十年三月 日[金溝鄕校]羅州鄕校儒林 僉尊座下金溝鄕校典校 林鍾鎬掌議 景寅根 同 宋 烘 同 金榮煥 同 安鍾千儒林 崔泳述 同 宋泳熙 同 鄭雲顥 同 金聲基 同 朴榮洙儒林 李鍾厚 同 鄭昌朝 同 林鍾大 同 李晙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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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금구향교(金溝鄕校) 통문(通文) 2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金溝鄕校 光州鄕校 金溝鄕校(4.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09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 전교 임종호·장의 경인근 등 유림 14인이 광주향교에 금구군에 사는 배병주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을 함께 찬양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 1959년 3월에 전라도 금구향교(金溝鄕校) 전교(典校) 임종호(林鍾鎬)·장의(掌議) 경인근(景寅根) 등 유림 14인이 광주향교(光州鄕校)에 금구군(金溝郡)에 사는 배병주(裵秉周)의 돌아가신 모친 조양 임씨(兆陽林氏)의 효행과 열녀의 실행(實行)을 함께 찬양(賛揚)해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린 통문이다. 옛날 성대한 시절에는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윤리와 기강이 갖추어져 신하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부인은 부인으로서의 도리를 잃지 않고, 젊은이는 어른을 능멸하지 않았으며, 선을 권하고 인(仁)을 도왔다. 만약 그 도를 극진히 한 자가 있으면 사림(士林)이 천거하고, 임금이 듣고 포양(褒揚) 할 때에 정려하기도 하고 관작을 내려주기도 하여 소문이 퍼지면 천하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고 싸늘한 비가 내려 50년 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먹고사는 데 분주하느라 직분을 제대로 수행한 자가 드물게 되었다. 금구군 선비 달성 배익수(裵益洙)의 부인 조양 임씨는 벌열고가(閥閱故家) 출신의 여자로 성품이 정숙하고 단아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효행으로 부모를 섬겼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를 친정부모 섬기듯 하였으며, 큰 손님 대우하듯 남편을 받들고, 남편은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선영(先塋) 일 때문에 피로가 쌓인 나머지 병이 들어 22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남겨진 어린 아들이 울어댔으나 그녀는 얼굴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세월이 흘러 소상을 정성껏 지내고 3년상을 마친 뒤, 배익수의 동생 택수(澤洙)가 매우 급하게 형수 임씨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뒤뜰 나뭇가지에 목을 맨 뒤였다. 이를 발견하고 급히 형수를 나무에서 내려 구한 뒤, 택수가 땅에 엎드려 울면서 "백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열녀라지만 불쌍한 저 혈혈단신 아들은 누구에게 의지하겠으며, 쓸쓸하고 가난한 집안 살림은 누가 맡아 처리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서로 바라보며 통곡하니 측은한 감정이 들어 마음을 돌리고 곡기를 먹기 시작하여 훗날 집안의 명성을 세우고 늙을 때까지 정절을 지켰다. 이는 포장(褒獎)할 만한 일이지만 시대가 달라져 이러한 실적이 사라져서 소문나지 못하였으나 그녀는 성냄 없이 1957년(정유) 겨울에 천수를 누리고 생을 마쳤다. 임씨의 효자 배병주(裵秉周)가 차마 어머니의 아름다운 실적을 침묵할 수 없어 상복을 입은 채 금구향교에 울며 호소하였다. 이에 떳떳한 본성은 같은지라 너무 개탄스러워 금구향교에서 광주향교로 통문을 보내 이 엉망이 된 세상에 아름다운 본보기를 행한 실적을 찬양하는 데 함께 동참하여 윤리강상을 부지해 줄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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單子 化民張東植惶恐仰達于城主閤下民質素癡獃學淺才踈而匪意向日猥沗校宮之任自顧劣陋似涉未堪玆以仰單 特爲許逓以私分千萬幸甚伏惟藻鑑癸酉二月 日〈題辭〉依施向事卄四日[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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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文爲通諭事樹之風聲表厥宅里自三代上已然况今我 東國人有出天之孝卓異之行州貢鄕升以爲闡揚者豈無士林之齊褒乎窃聞本道貴郡士人鄭殷弼系出東萊即吏曺判書大司憲 賜號楓川諱守弘後裔也自在幼時稟性純厚早襲家訓孝事恃怙晨昏之省志口之養靡不用極眞可謂罕世之篤孝也及其丁憂送終之節哭泣之哀一遵朱文公家禮終其三年大舜之孺慕曾子之至孝可謂匹美倂休矣仁聲所及便成仁里行路指其洞曰孝子洞居人指其門曰孝子門大抵原其賦性苟非根天之純孝豈如是至斯乎鄙等居在同省耳擩已熟不勝欽歎而敬服矣迨此 文憲公奇高峰文孝公盧玉溪文忠公朴思菴文節公柳眉巖文敬公李一齋五先生陞廡請䟽事伏閤僉會公議齊發玆以通告惟願 僉君子博采公議斯人實行實孝更爲稟官轉報 棠軒啓達 楓陛使此卓異之孝無至泯沒而特蒙褒賞之典幸甚右敬通于古阜鄕校乙酉七月 日 忠勳府湖南䟽廳發文 昌平進士朴仲熙 南原高宗柱 金堤李容煥 全州幼學朴義陽 羅州羅恒集 光州朴誠東 寶城宋鼎會 靈光金思敬 興德幼學白鳳洙 扶安金奉柱 泰仁李秉淳 金溝崔基星 長城金堯奭 益山金在聲 龍潭成載奎 長水梁孝源 高山幼學吳益善 任實朴齊一 古阜鄭海斗[湖南䟽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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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宗嗣明文 辛酉十月二十八日伏以繼絶存亡有國之重典立嗣定倫有家之大政先聖先王皆兢兢而不敢忽焉惟我繼高祖嗣孫大基氏 無育早世 宗嗣靡託 門論齊發 命炳基之第二子相善 立爲其後 俾奉享祀 於情於義 俱不敢辭 而見今宗社爲墟 未得告君成鈄 不得已遵尤菴先生遇人有變 令告廟立繼代述其文之遺規 以待天日之再明 嗚呼父子人之大倫也 移天事天 人道之至變也 以至變處大倫故致嚴致愼父命之然後 始得移大倫於他人 所以無父母者 不可以私自出後 有父命者 亦不可以私自罷繼者也 奧我國典 父母俱歿者勿聽 情理可矜則因一邊父母門長上言 許令立後云 我從兄雖夫妻俱亡無可受者 而謹從情理可矜之律文玆以成給明文日後若有異說則以此文記辨正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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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92년 이동우(李棟宇) 모(母) 유인소씨(孺人蘇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孺人蘇氏 1顆(10.7×10.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13 1892년 6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동우의 모친이자 이현범의 부인인 유인 소씨를 종부직 정부인으로 추증한 4품이상고신 1892년(고종 29) 6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동우의 모친이자 이현범의 부인인 유인 소씨를 종부직(從夫職)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한 4품이상고신이다. 정부인은 정·종2품관의 부인에게 내리는 작호(爵號)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으며, 연호의 좌우방(左右傍)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오위장의 모친을 법전에 의거하여 추증한다'라는 추증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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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蘇氏贈貞夫人者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五衛將光緖十八年六月 日妣 依法典 追贈[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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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於三山壇享日 追待 尊駕之枉臨 而未得面晤者 只恨相拒涯角之不相及也 徒添神馳夢想而已 且於今春 先生壇享日 與民議員選擧日子殆同 故更權于前期九日 初五日行祀雖緣事勢之固然 禮所未安 第恨春日將暮尊體起居 無至添損 仰溸憧憧 寅晡靡懈 就仁山蒿集與行狀 或可了証耶 以若高明之藻鑑 想無贊一之辭矣 此便裹送 則亦可玩嘗 而將圖剞劂之計耳 恕諒焉 餘在此去口詳 不備候禮戊戌三月卄二日 三山壇儒會文中煥 閔鴻基 梁鉉承 朴魯宗 朴同春 朴準台 曺錫鴻 等[피봉]〈前面〉和順郡道谷面大谷里三山壇儒會所座下〈後面〉木浦市大成洞三區一二三番鄭憲圭謝呈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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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別何時 遽然歲改矣 卽未詢新元棣體度連衛珍勝 遠溸區區不任之祝 第貴案冊子 不置忘域 因便專寄 敬受閱覽 塵心瞽目 滌穢立志 眞是大先生之精選也 然而遲晩留滯故更因鄕便而還歸 千萬考領 大望大望耳 日后合席叙懷 切企如渴耳 餘不備候丁酉元月初六日老拙孫善南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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