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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製短歌 主乙完乎白平心聞際天乙及昆魂是去賜矣中三烏賜敎職麻又欲望彌阿里及彼可二功臣良久乃直隱跡烏隱現乎賜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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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壯節公行狀後 重峯趙憲桐藪何年戰楚軍東門一死漢王奔分明紀信存劉氏錯比鄂公玄武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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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1) 院之有誌誌其蹟世寢遠蹟寄于耳目者微焉曷徵乎徵於文此誌之所以不可闕德陽院祀我始祖壯節公院在谷城以公舊貫于谷城院之創修有年有人院之守護有田有民基址則有圖享薦則有儀總收而爲誌一披卷而瞭然其將揭之千萬世而徵信焉嗚呼我始祖佐命興運殉身代主開一代之太平立萬古之綱常鍾鼎紀勳竹素揚名何其盛也後之君子永守勿替惟在於文武忠孝有若農服先疇工用舊規則院誌之設不但止於典守禮器修明儀節而已遂爲之序甲子孟秋上澣後孫錫愚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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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韻志感錄奉李明府案下兼視諸宗人【明齋名斗陽亦公外?也】 東淮申翊聖佐運開麗社移封世卜綿文魁詳籍紀武德煥銘鐫偉表王公似孤忠紀侯聯千年還廟宇一氣貫人天遠有孱孫在纔從異域還典刑瞻鐵像基業億鴻田磅礴山河北蒼茫海日懸顙泚追祖烈獨立故城顚【此詩雖無與於谷萬其中文魁詳籍紀一句想持本院古蹟而云也故存此以徵本院之嘗有古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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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德陽書院講堂 縣監李潤明恭惟壯節公卽我外名祖堂倚靑山阿門臨綠水滸衿儀遵漢唐苾享倣鄒魯助力伊誰先位庄庶復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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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의 집에 가서 아침에 앉아 우연히 읊다 往叔正家 坐朝偶吟 아침 해가 성 동쪽에서 떠서그대의 창을 붉게 비추네진실된 마음 그야말로 이와 같으니나라에 바칠 넉넉한 충심있네 朝日出城東照君窓牖紅赤心正如此報國有餘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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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산의 창고에서 짓다 갑오년(1594, 선조27) 가을 永興山倉作 甲午秋 단풍잎 떨어지자 가을 강물 차갑고덩굴 깊어 밤 오솔길 어둡네산골은 우물에 앉은 듯 좁고밝은 달은 동서를 나누었네 楓落秋江冷藤深夜逕微峽中如坐井明月隔東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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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시 集句 밝은 달이 옥부용 같은 산 위로 떠오르니 -농포-반은 창공에 걸려 있고 반은 소나무에 걸려 있구나 -창주237)-서글퍼하는 역로의 사람 기둥에 기대어 -농포-남쪽으로 고향 바라보니 눈물이 절로 나네 -창주- 氷輪輾出玉芙蓉【農圃】半掛靑空半掛松【滄洲】惆悵驛路人倚柱【農圃】故園南望涕無從【滄洲】 창주(滄洲) 이성길(李成吉, 1562~1621)로,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덕재(德哉), 호는 창주이다. 1594년에 병조 좌랑에서 면직되자, 정문부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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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영에 이르러 짓다 到行營作 기억하노니, 지나날 원융의 막하에 머물렀는데장군은 일이 없어 봄놀이를 하였네그 당시 노래하고 춤추던 곳에 다시 이르니북방 산 지는 해에 두 눈에 눈물 흐르노라 憶昨元戎幕下留將軍無事事春遊重到當時歌舞處朔山西日淚雙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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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에 지 참봉 달원186)과 입으로 읊다 雪夜 與池參奉達源 口號 객지의 밤은 본디 잠들지 못하니밝은 눈과 달 어이할꼬고향 돌아가는 꿈 꾸고 싶건만밤새도록 끝내 꾸지 못했네 客夜元無寐如何雪月明欲作還家夢終霄竟不成 지달원(池達源) 1566~1638. 함경북도 경성(鏡城) 사람으로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사진(士進)이다. 임진왜란 때 정문부(鄭文孚)를 따라 활약했으며, 이때의 공으로 참봉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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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도 孤山圖 소리로 눈 속 학인줄 알겠고향기로 달 아래 매화 알겠네187)그렇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리니어찌 시에 들어올 수 있으랴 叫認雪中鶴香知月下梅不然看不見那得入詩來 소리로……알겠네 송나라 은사 임포(林逋)의 고사를 읊은 것이다. 임포는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초막을 짓고 주변에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독신으로 은거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서호처사(西湖處士) 혹은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일컬었다. 《宋史 林逋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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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에 이르다 2수 到慶源【二首】 이곳에 세 번 병마절도사 따라 왔었는데지금 오니 도리어 고향 생각 나네내일 아침 어찌 차마 남쪽으로 돌아갈까여전히 세류영238)에 피리소리 들리네밝은 달은 사람 따라 만 리 길을 가니한 조각 달은 두 고향 다 비추겠지239)고향에선 다만 오늘 밤 달빛만 보일 테니복파영240)에도 나누어 비추는지 어찌 알랴 此地三從閫帥行今來却有故鄕情明朝何忍南歸路依舊鳴笳細柳營明月隨人萬里行氷輪一片兩鄕情故國但看今夜色豈知分照伏波營 세류영(細柳營) 세류영은 한나라의 장군 주아부(周亞夫)의 군영으로, 한 문제(漢文帝)가 시찰을 왔을 때에도 군사들이 장군의 명령만 따르면서 황제를 제지한 고사로 유명한데, 이후 군기가 엄한 진영을 뜻하게 되었다. 《史記 絳侯周勃世家》 한……비추겠지 정문부가 현재 있는 경원과 고향에 모두 달이 비출 것이라는 의미이다. 제1수에서 경원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복파영(伏波營) 원정 간 사람이 머물러 있는 군영을 상징한다. 당나라 심여균(沈如筠)은 〈규원(閨怨)〉 시에 "외로운 달그림자를 따라, 복파영에 그 빛을 비춰줬으면.[願隨孤月影, 流照伏波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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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언배율 五言排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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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주다 贈友人 매화와 국화는 진짜 도연명73)이요 梅菊眞元氣거문고와 책은 가짜 두보74)라네 琴書僞拾遺삼대 이래의 인물 초대하여 相邀三代下함께 오호75)의 물가에 앉았네 共坐五湖湄검법을 말하던 백원76) 죽어 說劍白猿死병법을 논하던 황석77)이 슬퍼하네 談兵黃石悲누가 은둔한 이내 신세 가련히 여길까 誰憐身在遯기구한 운수를 만나 절로 애석하구나 自惜數逢奇변화의 눈물78) 어찌 뿌리리 卞淚何堪洒제나라 피리79) 불지 않으리 齊竽不肯吹푸른 산에 병든 학이 살고 靑山棲病鶴푸른 풀에 풍리80)가 누워 있네 綠草臥風驪일천 척 소나무 우뚝한데 落落松千尺계수나무 한 가지 쓸쓸하네 蕭蕭桂一枝성스럽고 밝은 시대 유유자적하며 優游聖明代태평가를 부르고 읊네 歌咏太平辭어찌 바람 앞 사초81)이겠는가 豈是風前麝골짜기 속 지초 향 희미하네 依俙谷裡芝초가집에 밤 깊은데 茅齋夜深處이끼 낀 언덕에 달빛 잠겼네 苔塢月沈時양춘곡82)을 연주하려다 欲奏陽春曲도리어 맹호연83)의 가사를 읊었네 還題孟浩詞길이 먼 곳으로 떠난84) 자가 아니라면 能非長往者어찌 고요히 생각하지 않으리 寧不靜言思 梅菊眞元氣, 琴書僞拾遺.相邀三代下, 共坐五湖湄.說劍白猿死, 談兵黃石悲.誰憐身在遯, 自惜數逢奇.卞淚何堪洒, 齊竽不肯吹.靑山棲病鶴, 綠草臥風驪.落落松千尺, 蕭蕭桂一枝.優游聖明代, 歌咏太平辭.豈是風前麝, 依俙谷裡芝.茅齋夜深處, 苔塢月沈時.欲奏陽春曲, 還題孟浩詞.能非長往者, 寧不靜言思. 도연명 원문의 '원기(元氣)' 아래에 "아마도 '亮' 자의 오류인 듯하다.〔恐亮字之誤〕"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문맥에 맞게 '氣'를 '亮'으로 바꿔 번역하였다. 원량(元亮)은 도연명(陶淵明)의 자이다. 두보 원문의 '습유(杜拾遺)'는 당 현종(唐玄宗) 때 우습유(右拾遺)를 지낸 두보(杜甫)를 가리킨다. 오호 옛날 월나라 지역의 호수이다. 백원 춘추 시대 월인(越人) 처녀가 월왕(越王)에게 검술을 가르치려고 길을 가던 도중에 '흰 원숭이〔白猿〕'가 변신한 원공(袁公)이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요청을 받고는 검술 시합을 하였는데, 원공이 그녀를 상대하다가 나무 위로 날아올라 다시 흰 원숭이로 몸을 바꿔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吳越春秋 卷9 句踐陰謀外傳》. 여기에서 유래하여 후대에 검술의 명인을 백원공(白猿公) 혹은 백원옹(白猿翁)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황석 진(秦)나라 말기의 은사(隱士)로 황석공(黃石公)을 말한다. 장량(張良)에게 치국(治國)의 대도(大道)와 병법(兵法)을 전수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소서(素書)》라 하며, 《삼략(三略)》 또한 그가 전한 책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다만 두 책의 내용이 서로 비슷한바, 태공의 《삼략(三略)》을 황석공이 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변화의 눈물 재능을 지니고도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 화씨(和氏) 즉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직경이 한 자나 되는 박옥을 얻어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보고 돌이라 하여 두 발이 잘리고 말았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형산 아래서 박옥을 안고 사흘 밤낮을 울어 피눈물이 흘렀다. 문왕이 이 사실을 듣고 사람을 보내 "천하에 발이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만이 유독 이렇게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미치광이라 하니, 이 때문에 제가 슬피 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박옥을 다듬게 하니, 직경이 한 자나 되고 티 한 점 없는 큰 옥이 나왔다 한다. 《韓非子 和氏》 제나라 피리 자격도 없는 사람이 허명(虛名)만 지니고서 자리에 끼어 있는 것을 말한다. 제 선왕(齊宣王)이 피리 연주를 좋아하여 항상 300인을 모아 합주(合奏)하게 하자, 남곽 처사(南郭處士)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 국록을 타 먹곤 하였는데,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한 뒤에 한 사람씩 연주하게 하자 본색이 드러날까 겁낸 나머지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韓非子 內儲說上》 풍리 풍리는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주역》 팔괘(八卦)의 근원이 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왔다는 용마(龍馬)이다. 사초 사향초(麝香草)의 준말로 자술향(紫述香)의 별칭인데, 현인 군자의 아름다운 덕을 비유한다. 양춘곡 송옥(宋玉)의 〈대초왕문(對楚王文)〉이란 글에 보이는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로, 지음(知音)의 노래를 뜻한다. 어떤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처음에 〈하리파인(下里巴人)〉이란 노래를 부르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다음으로 〈양아해로(陽阿薤露)〉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다음으로 〈양춘백설가〉를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십 명으로 줄었던바 곡조가 더욱 높을수록 그에 화답하는 사람이 더욱 적었다 한다. 《文選 卷45》 맹호연 당나라의 시인으로, 양양(襄陽) 사람이기 때문에 맹양양(孟襄陽)이라고도 불린다. 고향 부근의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다 마흔에 진사과(進士科)에 응시했으나 실패한 뒤 평생 처사(處士)로 지냈다. 전원(田園)의 산수 경치와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의 심정을 묘사한 작품이 많다. 《新唐書 卷203 孟浩然列傳》 길이 먼 곳으로 떠난 원문의 '장왕(長往)'은 멀리 가서 영원토록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은사(隱士)들의 은거를 의미한다. 공치규(孔稚珪)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장왕했던 유인을 탄식한다.[或歎幽人長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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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고시 七言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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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회를 우연히 읊다 感懷偶吟 검각85)이 평지 되고 劍閣平地평지가 검각 되며 平地劍閣곤옥86)이 연석87) 되고 崑玉燕石연석이 곤옥 되네 燕石崑玉맑은 바다에 가을바람이 일어나고 淸海起秋風미친 파도가 은빛 물결88)을 몰아치네 狂濤駕銀屋이백이 고래를 탄 듯89) 李白忽騎鯨원통한 기운 푸른 하늘에 드리우네 寃氛薄蒼霄이락90)과 곡구91)에 살았던 늙은이여 居伊洛谷口翁길이 생각하여도 밤처럼 아득히 멀구나 長相思夜迢迢아득히 멀어 볼 수 없는데 迢迢不可見귀밑머리 세어 절로 쓸쓸하네 鬂雪自蕭蕭차라리 잠들어 깨고 싶지 않거늘92) 尙寐欲無訛걱정하다가 날이 새어버렸네 耿耿逮明發사람들 모두 나에게 취하길 권하지만 人皆勸我醉푸른 산 석양에 취하지 않았네 未醉靑山夕즐겁지 않다 하여 어찌 길이 근심하리오 不樂何爲長鬱悒흰 갈매기와 누런 학은 본래 무심하다네 白鷗黃鶴本無心외로운 산 정자 위 밝은 달이 남았으니 孤山亭上餘明月오솔길 가득한 한매 찾는 것이 어떠하리 一逕寒梅盍往尋 劍閣平地, 平地劍閣.崑玉燕石, 燕石崑玉.淸海起秋風, 狂濤駕銀屋.李白忽騎鯨, 寃氛薄蒼霄.居伊洛谷口翁, 長相思夜迢迢.迢迢不可見, 鬂雪自蕭蕭.尙寐欲無訛, 耿耿逮明發.人皆勸我醉, 未醉靑山夕.不樂何爲長鬱悒, 白鷗黃鶴本無心.孤山亭上餘明月, 一逕寒梅盍往尋. 검각 낙양에서 촉(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관문으로, 천 리가 잔도(棧道)로 이어지는 지극히 험한 길로 알려져 있다. 이백의 〈촉도난(蜀道難)〉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곤옥 곤륜산(崑崙山)에서 나오는 아주 좋은 옥을 가리킨다. 연석 연산(燕山)에서 생산되는 영석(嬰石)으로 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옥이 아닌 돌이다. 송(宋)나라의 어리석은 자가 이 돌을 얻고는 큰 보물이라 여겨 애지중지하다가 웃음거리가 된 고사가 있는데, 이후 어리석은 자 혹은 허식(虛飾)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太平御覽 卷51 地部16》 은빛 물결 원문의 '은옥(銀屋)'은 높은 파도를 형용한 말이다. 이백(李白)의 〈사마장군가(司馬將軍歌)〉에 "강중의 하얀 파도는 은빛 지붕 같은데, 몸은 하괴에 임하여 장막 안에 앉았도다.〔江中白浪如銀屋 身居玉帳臨河魁〕"라고 하였다. 《李太白集 卷3》 이백이 고래를 탄 듯 두보(杜甫)의 "고래를 타고 가는 이백〔李白騎鯨魚〕"이라는 시구가 있다. 《唐才子傳 李白》 당(唐)나라 마존(馬存)의 〈연사정(燕思亭)〉이란 시에 "이백이 고래 타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니, 강남 땅 풍월이 한가한 지 여러 해라.〔李白騎鯨飛上天 江南風月閑多年〕"라는 구절이 있다. 이락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지칭하는데,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이 부근에 살았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강학하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을 가리킨다. 곡구 한대(漢代)의 은사(隱士) 정박(鄭樸)이 은거하던 곳이다. 정박의 자는 자진(子眞)인데, 그는 처음부터 조정의 부름을 사절하고 곡구에 은거하여 일생을 마쳤다. 《漢書 卷72 王吉傳》 차라리 …… 않거늘 《시경》 〈왕풍(王風) 토원(兎爰)〉에 "온갖 근심 모여드니, 차라리 잠이 들어 깨어나지 말았으면.〔逢此百罹, 尙寐無吪.〕"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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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장편 七言長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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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수가 공을 이루면 일만 해골이 썩나니124) 【만력 1579년 진사 합격.】 一將功成萬骨枯 【萬曆己卯進士入格】 나는 삼대125)가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我思三代不能回역사서126)를 보다가 장탄식을 하였네 目擊靑史興長吁주나라 진나라 이후 수천 년 동안 周秦以後數千載어지러운 전쟁이 어느 때든 없었겠는가 紛紛戰爭何時無예로부터 명장들은 제마다 공을 세웠으나 古來名將各立功어찌하여 일만 해골을 썩게 하였나 幾敎萬骨翻成枯적개심으로 처음에는 성 밖에서 명을 받고 敵愾初承閫外命칼을 뽑고 단에 오르면 마음이 거칠어졌네 扙劍登壇心膽麤만 리의 요망한 기운 재빨리 쓸어버리고 萬里妖氛擬迅掃하늘의 기둥을 내가 지탱하리라 여겼네 自謂天柱吾當扶웅대함과 지략을 다투는 기각의 형세127)로 爭雄鬪智勢猗角양 보루를 비바람처럼 몰아쳐 삼군이 외치네 兩壘風雨三軍呼우레 같고 번개 같으며 호령조차 엄하지만 雷騰電過號令嚴칼 끝에 뿌린 피는 모두 무고한 자의 것 劍頭洒血皆無辜그런 뒤에 장군은 큰 공훈을 세우고 然後將軍樹大勳각자의 이름이 운대도128)에 들어가네 姓名各入雲臺圖공을 탐하려고 옥문관129)을 다투어 나아가 貪功爭出玉門關어느새 수고롭게 이오130)에 이르렀네 勞勞不覺窮伊吾청해성131)에 백골이 높이 쌓여 靑海城頭白骨高반초132)의 명성에 흉노가 놀랐네 班超聲價驚匈奴삼변133)의 백발 이 비장134)은 三邊白首李飛將한때의 공업이 오랑캐를 감당하였네 一時功業堪葫蘆장평에서 사십만 군사를 한 구덩이 몰살했으니135) 長平一坑四十萬백기는 진정한 장부 되기 어렵네 白起難爲眞丈夫강동의 붉은 수염 손권 말할 것 없으니 莫道江東孫紫髥하물며 업하의 누런 수염 조조를 꼽으랴136) 況數鄴下曹黃鬚공명이 새겨진 이정137)이 어찌 귀할까 銘功彛鼎何足貴백 번의 전쟁 겪고 몸은 썩어가리138) 百戰之餘身亦枯세상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장수 없으니 不戰而勝世無將가련하구나! 어리석은 우리 백성 어육139)이 되었네 可憐魚肉吾民愚지금도 전장에 비바람 부는 저녁이면 至今沙場風雨夕흐느끼는 귀신 통곡 소리 하늘까지 닿네 啾啾鬼哭于雲衢다소간의 공을 이룬 장수들에게 말하노니 爲語多少成功將이 말을 들으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聽此寧不悲來乎원컨대 우리 임금께서 간우를 쥐고 춤추시면 願言吾王舞干羽유묘가 귀순하듯140) 대궐141)로 달려오기를 一格有苗彤墀趨장군과 사졸에게 기이한 공을 요구하지 말고 休令將士責奇功동포들의 몸을 온전하게 하기를 要使同胞全其軀 我思三代不能回, 目擊靑史興長吁.周秦以後數千載, 紛紛戰爭何時無.古來名將各立功, 幾敎萬骨翻成枯.敵愾初承閫外命, 扙劍登壇心膽麤.萬里妖氛擬迅掃, 自謂天柱吾當扶.爭雄鬪智勢猗角, 兩壘風雨三軍呼.雷騰電過號令嚴, 劍頭洒血皆無辜.然後將軍樹大勳, 姓名各入雲臺圖.貪功爭出玉門關, 勞勞不覺窮伊吾.靑海城頭白骨高, 班超聲價驚匈奴.三邊白首李飛將, 一時功業堪葫蘆.長平一坑四十萬, 白起難爲眞丈夫.莫道江東孫紫髥, 況數鄴下曹黃鬚.銘功彛鼎何足貴, 百戰之餘身亦枯.不戰而勝世無將, 可憐魚肉吾民愚.至今沙場風雨夕, 啾啾鬼哭于雲衢.爲語多少成功將, 聽此寧不悲來乎.願言吾王舞干羽, 一格有苗彤墀趨.休令將士責奇功, 要使同胞全其軀. 한 장수가 …… 썩나니 당나라 조송(曹松)의 〈기해세(己亥歲)〉 시에 "그대여 봉작의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 한 장수가 공 이루면 만 해골이 썩나니.〔憑君莫話封侯事, 一將功成萬骨枯.〕"라고 하였다. 이는 전쟁을 벌여 한 장수가 큰 공훈을 세우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병졸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뜻으로, 싸우다 죽은 병졸들의 뼈가 묻히지도 못한 채 전쟁터에서 말라 뒹군다는 것이다. 삼대 하(夏)ㆍ은(殷)ㆍ주(周)나라를 말한다. 이 시대를 이상적인 태평성대로 여겼다. 역사서 원문의 '청사(靑史)'는 역사상의 기록으로, 종이가 없을 때 푸른 대껍질에 사실(史實)을 기록하던 데서 유래한다. 기각의 형세 원문은 '의각(猗角)'인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근거하여 '기각(掎角)'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기각은 의각(犄角)이라고도 쓴다. 사슴을 잡을 때에 뒤에서는 다리를 잡고 앞에서는 뿔을 잡는 것으로, 인신(引伸)하여 군사를 양편으로 나누어 적을 협공하거나 앞뒤에서 견제하는 형세를 이른다.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14년 조에 "비유하면 사슴을 잡을 적에 진나라 사람들은 뿔을 잡고 여러 융족들은 다리를 잡는 것과 같다.[譬如捕鹿 晉人角之 諸戎掎之]"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운대도 운대는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등우(鄧禹) 등 전대(前代)의 명장 28인의 초상화를 그려서 걸어 놓고 추모한 공신각(功臣閣)의 이름으로 그에 대한 그림을 운대도라 한다. 옥문관 중국과 서역(西域)의 경계에 있는 관문이다. 서역에서 옥석(玉石)을 실어 들일 때 이 관문을 지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오 이오로(伊吾盧)로, 신강성(新疆省) 합밀(哈密) 근처에 있으니, 주로 변방 지역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장궁(臧宮)과 마무(馬武)가 서역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공격하기를 청하면서 "칼을 울리고 손뼉을 치며 이오의 북쪽에서 뜻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後漢書 卷48 臧宮列傳》 청해성 유담(柳談)의 〈양주곡(涼州曲)〉에 "청해성 하늘에는 달이 있으나 황사가 쌓인 곳엔 봄이 없구나.〔靑海城頭空有月 黄沙磧裏本無春〕"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청해성은 감주(甘州) 장액하(張掖河)에서 남쪽 청해(靑海)까지 이른다."라고 하였다. 《唐音 卷10》 반초 후한(後漢) 때의 무장으로,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50여 나라를 한(漢)나라에 복종시켰고 중국과 서역(西域) 간의 경제와 문화 교류를 촉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삼변 한나라 때의 흉노, 조선(朝鮮), 남월(南越)을 말하는데, 흔히 변경 지역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 비장 한나라 때의 장수 이광(李廣)을 말한다.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이광이 우북평에 있을 때 흉노가 그것을 듣고, '한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며 수년 동안 그를 피하여 감히 우북평에 들어가지 못했다.[廣居右北平,匈奴聞之,號曰漢之飛將軍,避之數歲,不敢入右北平.]"라고 되어 있다. 장평에서 …… 몰살했으니 장평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 군사 40만이 진나라 장수 백기(白起)에게 몰살당한 곳이다. 진나라 백기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에서는 처음에 명장 염파(廉頗)가 장수로 나와 진나라를 상대로 승리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진나라의 반간계(反間計)에 속은 조왕(趙王)이 염파를 쫓아내고 싸움에 서투른 조괄(趙括)을 장수로 삼음에 따라, 백기가 이를 이용하여 조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조나라의 투항한 40만 군사를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하물며 … 꼽으랴 《왕유집(王維集)》 〈노장행(老將行)〉 "업하의 황수아를 꼽을 것 있겠는가.〔肯數鄴下黃鬚兒〕"에서 따온 말이다. 업하는 조조가 도읍한 업(鄴) 지역을 가리킨다. 이정 종묘(宗廟) 제사에 쓰는 제기(祭器)로 이(彝)는 술항아리이고 정(鼎)은 솥이다. 옛날에는 큰 공을 세우면 그 일을 제기에 새겨 오래도록 전하게 하였다. 썩어가리 원문의 '고(枯)' 아래에 "거듭 '고(枯)'의 오류가 의심스럽다. 혹은 '통(痛)'이 될 수 있다.〔疊枯誤疑. 或爲痛字.〕"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어육 물고기와 육고기를 통칭한 말인데, 사람들을 잔인하게 짓밟아 해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 《후한서(後漢書)》 〈중장통전(仲長統傳)〉에 "백성들을 어육으로 만들어 그 욕심을 채웠다.[魚肉百姓, 以盈其欲.]"라는 구절이 보인다. 간우를 …… 귀순하듯 간우는 방패를 쥐고 추는 간무(干舞)와 새 깃을 쥐고 추는 우무(羽舞)를 함께 칭하는 말로, 성군의 덕화(德化)를 비유한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순 임금이 문덕을 크게 펴면서, 방패와 새 깃을 들고 두 섬돌 사이에서 춤을 추니, 그로부터 70일 만에 유묘족이 귀순하였다.〔帝乃誕敷文德 舞干羽于兩階 七旬有苗格〕"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대궐 원문의 '동지(彤墀)'는 붉게 꾸민 천자의 뜰로, 전하여 조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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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삼 년의 피리 소리 속에 관산의 달142) 三年笛裡關山月 옥관의 바람 쌀쌀하니 기러기 울음 구슬프고 玉關風凄雁聲酸수척한 말은 밤에 장성의 굴에서 물을 마시네 瘦馬夜飮長城窟서리 맞은 백초143)가 날리고 갑옷은 차가운데 霜翻白草鐵衣寒일천 리 밖에서 삼 년의 세월을 보냈네 一千里外三年卒처량한 피리 소리에 달은 또한 어떠하였는가 凄凉笛裡月又何이 한 밤 출정나간 사람은 머리가 다 세었네 一夜白盡征人髮마음 아프게 하는 빛 창자 끊어질 듯한 소리 傷心之色斷腸聲서풍에 분부하지만 한이 그치지 않네 分付西風恨未歇임금의 수레 닿는 곳마다 〈식미〉를 읊조리고 龍輿何處賦式微계문144)은 피비린내 옛 대궐마저 혼란하였네 薊門腥塵迷舊闕멀리 고향을 가리키니 눈가에 눈물이 나오고 家山遙指淚眼邊일만 리 변방의 구름 꿈처럼 아득하네 萬里關雲夢怳惚남쪽 동산 풀은 푸른데 서산에 눈이 내리고 南園綠草西山雪푸른 바다 아득한데 물고기는 소식145)이 없네 碧海茫茫魚信沒서릿달 비추는 곳곳마다 옷 다듬이질 하지만 擣衣幾處杵霜月규방의 여인들 꿈에 백골을 보네 半是香閨夢白骨누런 모래 쌓인 속에 화살이 눈앞에 가득한데 黃沙磧裡箭滿眼머리 세게 한 세월 치달려 돌격하듯 따라 붙네 鬂上光陰付馳突천산에 일찍 활 걸었다는146) 소식 아직 못 들었으니 天山未聞早掛弓언제나 오랑캐147)를 평정하고 개선가 부를까 凱歌何時定胡羯아득히 먼 곳에서 삼 년 동안 눈물 뿌렸지만 天涯洒盡三載淚피리 소리에 달 비칠 때 가장 마음이 아팠네 最是傷心笛裡月소리마다 슬픔이 뒤섞여 농수148)에 목이 메고 聲聲悲雜隴水咽변방의 구름 구슬프니 넋이 끊어지네 塞雲凄迷魂斷絶바람 맞으며 고향 돌아가고픈 시문 읊고 나니 臨風咏罷思歸篇외로운 새 지나가는 곳에 변방의 산 우뚝하네 獨鳥去邊陰山兀 玉關風凄雁聲酸, 瘦馬夜飮長城窟.霜翻白草鐵衣寒, 一千里外三年卒.凄凉笛裡月又何, 一夜白盡征人髮.傷心之色斷腸聲, 分付西風恨未歇.龍輿何處賦式微, 薊門腥塵迷舊闕.家山遙指淚眼邊, 萬里關雲夢怳惚.南園綠草西山雪, 碧海茫茫魚信沒.擣衣幾處杵霜月, 半是香閨夢白骨.黃沙磧裡箭滿眼, 鬂上光陰付馳突.天山未聞早掛弓, 凱歌何時定胡羯.天涯洒盡三載淚, 最是傷心笛裡月.聲聲悲雜隴水咽, 塞雲凄迷魂斷絶.臨風咏罷思歸篇, 獨鳥去邊陰山兀. 삼 년의 …… 달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세병마행(洗兵馬行)〉이란 시에 "삼 년 동안 강적(羌笛) 소리에 관산의 달 보았고, 만국의 군대 앞에 초목이 바람에 흔들리네.[三年笛裏關山月, 萬國兵前草木風.]"라는 구절이 보인다. '관산의 달[關山月]'은 한나라 때 악부(樂府)의 곡명이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악부시이다. 문인들이 이 제목의 악부시를 지어 병사가 오랫동안 수자리를 나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여 가족과 떨어져 있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였다. 백초 목초(牧草)의 일종으로, 건조할 때 흰색이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주로 황사(黃沙)와 함께 변경 지역의 황량한 풍경을 말할 때 쓰인다. 계문 북경의 덕승문(德勝門) 밖의 지역으로, 요동과 함께 우리나라로 통하는 관문이다. 물고기는 소식 소식을 전해 주는 편지를 뜻한다. 고악부(古樂府)에 "손님이 먼 지방으로부터 와서 나에게 한 쌍의 잉어를 주었네. 아이를 불러 잉어를 삶게 하니, 뱃속에 한 자의 흰 비단 편지 있었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童烹鯉魚, 中有尺素書.]"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前集 卷3 樂府上》 천산에 …… 걸었다는 오랑캐를 평정한다는 뜻이다. 두보의 〈개부 가서한에게 드리는 시〔投贈哥舒開府翰〕〉에 "청해엔 화살을 전함이 없고, 천산엔 일찍 활을 걸어 놓았네.〔靑海無傳箭 天山早掛弓.〕"라고 하였다. 오랑캐 흉노의 별종인 오호(五胡) 중 갈족(羯族)을 일컫는 말인데, 보통 북쪽 오랑캐란 말로 쓰인다. 호락(胡狢)ㆍ호로(胡虜)ㆍ호맥(胡貊)ㆍ호학(胡貉)이라고도 한다. 농수 섬서성의 농현(隴縣) 서북쪽에 있는 농산(隴山)에서 발원하는 강인데, 이 지역은 중국 서쪽 변경의 요해처이므로 흔히 변경 지방에 있는 강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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