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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암27) 김 어른【평묵】에게 올림 上重菴金丈【平黙】 《아언(雅言)》은 일찍이 어떤 사우의 집에서 겨우 한두 편을 보는 데 그쳤다가 근래 저의 고향에서 인쇄한 것이 있어 삼가 다 읽어 보았습니다. 아, 도가 밝아지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훈고(訓誥)를 억지로 찾고 구이지학(口耳之學 천박한 학문)을 가져다 분변하기에 궁구한 것이 정밀하지 않아 의론이 더욱 번다하고 견해가 이미 치우쳐 논쟁이 더욱 많으니, 갈릴 대로 갈려 이렇게 극도에 이른 것입니다. 게다가 이단과 사설(邪說)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도교와 불교에 견줄 정도가 아니어서, 백성들을 금수로 만들려고 하는 자가 천하에 가득하여 놀랍고 기괴한 일이 갖가지로 나옵니다. 실로 대단한 심력(心力)과 대단한 안목(眼目)으로 지혜가 만물에 두루 미치고 도가 일세에 으뜸인 자가 아니면 어찌 전복될 위기를 만회하여 한 잔의 물로 수레에 가득한 땔나무의 불을 끄는 것과 같은 근심을 면하게 하겠습니까. 노선생의 이 글은 오늘날 한 번 다스려질 운수를 감당할 수 있으니, 선생께서 수습하고 편집한 힘이 아니면 어찌 이에 미칠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선비들이 왕도(王道)를 귀히 여기고 패도(覇道)를 천하게 여기며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칠 줄을 알아서 갑자기 혼란에 빠져드는 지경에 이르지 않은 것이 또 어느 것인들 그 은택이 아니겠습니까. 제 선생님의 「답문편(答問編)」은 도를 밝혀 세도를 지킨 공이 「아언」과 더불어 조목이 같고 맥락이 같으니, 또한 근세의 한 경전입니다. 의림(義林)은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벗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게다가 시상(時象)과 풍속이 하루하루 갈수록 퇴폐해지니, 보잘것없는 사람이 누구에게 달려가며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오직 이 두 책을 받들고 산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서 자정(自靖)하는 구경(究竟)의 계책으로 삼을 따름입니다. 인사드리고 가르침을 받을 길이 없어 북쪽을 바라보며 슬퍼합니다.혹자가 "주기설(主氣說)은 실로 성선(性善)에 해가 된다. 그러나 일체 주리(主理)가 가령 기(氣)와는 간여하는 바가 없다면 악이 귀속될 곳이 없어 성선설(性善說)에 도리어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기에, 대답하기를 "악은 이치상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다만 본연(本然)이 아닐 따름이다. 이미 본연이 아닌데 기에 그 허물을 돌리니, 이것이 성현이 바로 여기에 나아가 분개설(分開說)28)을 주장하여 성이 본래 선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위의 한 조목은 소생이 어떤 사람과 이처럼 문답한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러러 질정하고 싶은 것이 하나가 아니지만 삼가 조섭하지 못하는 가운데 번거롭게 해 드릴 듯하므로 여기에서 그치니,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雅言。曾於一士友家。僅見一二篇而止。近因鄙鄕有印來者。謹已卒篇矣。嗚呼。道之難明久矣。强探訓誥。取辨口耳。窮覈未精。而議論愈繁。見解旣偏。而辨爭愈多.分分裂裂。到此極矣。加以異端邪說。非楊墨老佛之比。而思以禽獸生靈者。瀰漫區宇。驚怪百出。苟非大心力大眼目。智周萬物。道冠一世者。安能挽廻幾覆之轍。而免於盃水車薪之憂哉。老先生此書。足以當今日一治之運。而非先生收拾編摩之力。何以及此。今日士類知有貴王賤伯。尊華攘夷而不至遽爾淪胥者。又孰非其賜哉。鄙師答問編。明道衛世之功。與雅言同條而共貫。亦近世之一經也。義林自師門逝後。朋知渙散。加以時象風色。日深一日。藐爾人斯。誰因誰極。惟有抱此二書。入山塞竇。以爲自靖究竟計耳。拜敎無階。北望馳悵。或曰。主氣之說。固害於性善。然一切主理。使氣無所干豫。則惡無歸屬處。而於性善之說。反有碍否。曰。惡固理勢之所不能無。但非本然耳。旣非本然。氣執其咎。此聖賢正就此處分開設。以明性之本善。右一條。小生與或人問答如此。未知何如。所欲仰質者。不一。而切恐欠攝之中。致有煩惱。故止此。悚仄悚仄。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1819~1891)으로,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치장(稚章), 호는 중암(重菴),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홍직필에게서도 수학하였다. 1880년(고종17) 선공감 감역(監役)에 제수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분개설(分開說) 각기 다르다는 입장에서 부분적으로 분석하여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전체를 한 덩어리로 보고 통틀어 이해하는 혼륜(渾淪)과 상대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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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장에게 올림 上勉菴崔丈 양생(梁生)이 돌아오는 편에 삼가 답장을 받고서 덕후(德候)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로 멀리 있는 이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소생은 궁벽한 시골에 칩거하고 있기에 안목은 열 길이 없고, 마음은 넓힐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세상사는 나날이 어지러워지고 쇠병은 날로 깊어지는 가운데 그대로 답습하며 세상일에 골몰하니, 소인이 됨을 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다만 경기와 호남 사이에 큰 덕망을 지니신 한두 분이 산림에서 도를 지키며 후학을 가르치시니, 비록 한번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 말석에 나아가지 못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실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암(重庵)과 성재(省齋) 두 어른의 근래 안부는 어떠하신지요? 의론이 같지 않은 것은 이보다 앞서 대략 그 설을 들었는데, 보내 주신 편지를 읽고서 비로소 참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또 자세한 것은 듣지 못했으니, 두 문하에서 변론한 것이 다만 '심(心)' 1자를 가지고 기(氣)와 이(理)로 구분하는 데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별도로 곡절이 있는 것입니까? 나머지 말을 한번 듣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어리석은 저는 일찍이 망녕되이 생각하기를 '심이라는 것은, 당체(當體)로 말하면 기의 허령한 곳이고, 실두(實頭)로 말하면 이의 오묘한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理)로 말한 것이 있으니, 정자(程子)가 "심(心)은 생도(生道)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기로 말한 것이 있으니, 주자(朱子)가 "심(心)은 음양과 같다."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와 기로 말한 것이 있으니, 장자(張子)가 "심은 성(性)과 지각을 합한 것이다."라고 한 것34)이 이것입니다. 하늘과 같아서 형체(形體)로 말할 수 있고 주재(主宰)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벽계(檗溪) 선생의 말이 이와 같을 뿐만이 아니라 정자와 주자 등 여러 선생의 말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지금 어찌 유독 그 기가 됨만 보고 그것이 이가 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기가 이의 자리를 차지하여 크게 잘못되었으니 어디를 간들 막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른바 물칙(物則)의 구분을 알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또한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심은 물(物)이 되고 인(仁)은 칙(則)이 되며 심은 칙이 되고 신(身)은 물이 되니, 어찌 법칙이 있는데 물이 없는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는 성옹(省翁)이 우연히 잘못 본 곳입니다. 아, 태극이 진면목을 잃고 이와 기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에 어두운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다행히 오직 벽계(檗溪), 노사(蘆沙) 두 선생이 참고하고 절충하며 주선하고 지휘하여 사문(斯文)의 명맥이 실추되지 않게 하였으니, 도가 행해진 지 몇 년 되지 않아 의론이 횡행하는 것이 문하의 고제자 사이에서 나올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중암(重庵)께서 세도를 근심하고 도를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남김없이 토론하여 계속하여 그만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식은 한계가 있고 개색(開塞)은 때가 있으니, 행함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곡진하게 강론하여야 천천히 그 효과를 볼 것입니다. 또 마땅히 자기에게서 돌이켜서 '내가 고한 것이 그 마음에 불성실함이 있는가? 그 말에 아뢰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 의리에 밝지 않은 것이 있는가?'라고 반문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 불가하다면 각자가 들은 바를 존중하여 더불어 분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대저 천하의 시비는 잗단 말로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시끄럽게 하면서 그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 마땅함을 잃을 뿐만이 아니라 또 지나치게 따르는 자가 장차 이로 인하여 사단을 일으킬 염려가 있게 될 테니, 이는 예부터 편당을 짓는 습속이 점점 격렬해져서 수습하지 못한 이유인 것입니다. 지난 역사에서 보면 분명하니, 어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평소 곧은 말과 곧은 행실이 당대에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였는데 지금 또 내부에서 서로 어긋나 갑자기 더욱 배척하니, 또 틈을 노리는 자가 스스로 손을 쓸 계책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더구나 도리 쪽에서 말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속이고 사물을 해치며 터무니없고 법으로 삼지 못하는 설에서 나왔으니, 더욱 어찌 곡직을 비교하고 시비를 따지겠습니까. 밝은 일월을 한 조각구름이 어찌 가리겠으며, 낮은 돌은 밟는 이도 낮아지는 법입니다. 계속해서 논쟁하여 해만 있고 보탬이 없기보다는 차라리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서 공격하지 않고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처음에 이러한 내용으로 중암께 받들어 고하고자 하였는데 교분은 얕은데 말은 심오하니, 사체로 볼 때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문장(文丈)께서는 부디 강론하는 나머지에 조용히 서로 고하되, 말을 조심하는 경계를 지키고 비방을 막는 훈계를 생각하십시오.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훌륭한 계책을 고이 간직하신다면 세월이 오래될수록 더욱 신묘해지고 광채가 날 것이니, 먼저 가신 스승님의 도를 세상에 크게 밝혀 사방의 학자가 의지하고 앙망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궁벽한 시골의 천박한 자취가 얼마나 하찮습니까마는, 지우를 받은 친밀함으로 지나친 염려가 이에 이르렀으니, 너무나 참람하고 망녕되어 죄송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살펴 주십시오. 梁生廻。伏承下覆。仍審德候崇適。寶副遠情。生跧伏窮荒。耳目無由開發。胸懷無由展拓。加以世故日深。衰病日侵。因仍汨沒。恐無以免於小人之歸。但畿湖之間。有一二長德。守道林樊。獎進後學。雖未能一操几杖。趨走於唯喏之末。而所以爲究竟之計。實在於此矣。重庵省齋兩丈近節何若。其議論不同。前此粗聞其說。及讀下書。始知信然。而又未得其詳。未知兩門所辨。只在心一字爲氣爲理之分耶。抑別有委折耶。恨未得一聽緖餘也。愚嘗妄謂。心者言其當體。則氣之靈處也。言其實頭。則理之妙處也。是以有以理言者。程子云。心生道是也。有以氣言者。朱子云。心猶陰陽是也。有以理氣言者。張子云。合性與知覺是也。如天一也。而有以形體言。有以主宰言者也。此非獨檗溪先生之言如此。程朱諸先生之言。皆如此。今何獨見其爲氣而不見其爲理耶。氣占理位。大頭已差。則安往而不窒礙耶。且其所謂不知物則之分者。亦恐未然。心爲物。仁爲則。心爲則。身爲物。豈有有則無物之理乎。此是省翁偶失照管處。噫。太極失眞面。理氣昧界至者。久矣幸惟檗溪蘆沙兩先生。參訂折衷。指陳開揮。使斯文命脈。不墜於地。豈知行之未幾年。議論橫決。出於及門高弟之間哉。以重庵憂世衛道之心。宜其極言謁論。縷縷而不已也。然識量有分。開塞有時。行有不合。當委曲講討。徐來其效。又當反之於己。以爲吾之所以吿之者。其心有不誠歟。其辭有不達歟。其義有不明歟。然且不可。則各尊所聞。與之無辨。可也。夫天下是非。頰舌有非可辨。而若譊譊不止。則不惟自失語默之宜。且使過從者。將有夤緣生事之慮。此自古偏黨之所以轉輾層激而莫可收殺者也。前鑑昭昭。豈不可畏。平日之危言危行。恐不無見忤於時。而今又內相矛盾。遽加排擯。又安知無窺伺者。自以得下手之計也。況非道理邊語。而出於誣人害物無據不經之說。尤何足較曲直計是非也。日月之明。寸雲何傷。維扁斯石。履之亦卑。與其爭辨不置而有害無益。曷若靜而鎭之。不攻自熄之爲愈也。初欲以此。奉告重翁。而交淺言深。未知事體之何如。伏願文丈。幸於講聚之餘。從容相告。守括囊之戒。念息謗之訓。珠玉寶蘊。蓍龜珍藏歲。久年深。益神益光。使先先生之道。大明於世。而勿孤四方學者倚仰之情。如何。窮鄕賤迹。何等蟣虱。而受知之密。過慮及此。僭妄踰越。俟罪竢罪。伏乞下賜諒燭。 장자(張子)가……것 《장자전서(張子全書)》 권2〈정몽(正蒙) 1〉 태화편(太和篇) 제1에 "태허를 말미암아 천(天)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기화를 말미암아 도(道)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으며, 태허와 기화를 합해서 성(性)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고, 성과 지각을 합해서 심(心)이라는 명칭이 있게 되었다.[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合虛與氣有性之名, 合性與知覺有心之名.]"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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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장에게 올림 上勉菴崔丈 박생(朴生)이 돌아오는 편에 삼가 보내 주신 답장을 받았습니다. 이윽고 절기가 바뀌어 추위의 위엄이 맹렬해지려는 때 삼가 일상의 기거는 충양(沖養)하시며 기체후는 더욱 만중하십니까. 중암(重庵)이 세상을 떠난 뒤에 홀로 쓸쓸히 지내는 마음은 더욱 형용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유 사문(柳斯文) 용계(龍溪)는 학문이 깊고 행실이 고아하며 거처가 매우 가까워 강습하는 즐거움은 오히려 의지할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멀리서 사모하는 마음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소생은 신세가 더욱 위축되고 궁박함이 더욱 심합니다. 동문수학한 벗 가운데 학식과 행실이 정후윤(鄭厚允) 애산(艾山)과 같은 자와는 또한 회합하지 못하니 외롭고 쓸쓸하며 따분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급급하게 만년을 수습할 계책이 매우 아니니, 어찌합니까. 성재(省齋) 어른의 심설(心說)은 다행히 보여 주신 은혜를 입어 삼가 대략적인 것을 알았습니다. 근세 이래로 변론한 것이 많으니,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35)를 주장하거나 본연(本然)과 기질(氣質)의 동이를 주장하거나 일본(日本)과 만수(萬殊)의 동이를 주장합니다. 대개 갑(甲) 쪽에서는 같은 것만 보고 다른 것은 보지 못하며, 을(乙) 쪽에서는 다른 것만 보고 같은 것을 보지 못하니, 이것이 다툼의 단서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심(心)' 자와 같은 것으로 말하면 선덕(先德)이 기(氣)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 하나가 아니고, 이(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 하나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어찌 유독 기가 되는 것만 보고 이가 되는 것을 보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렇게 간사한 무리들이 다투어 나와 오도(吾道)가 실낱같은 때 선비가 한 가지 선(善)이 있으면 바로 마땅히 돕고 인도하여 그 학업을 성취하게 해야 합니다. 더구나 한 마디 말이 어긋난 것은 실로 금이나 구슬의 작은 하자에 지나지 않는 데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오직 마땅히 조용히 강구하여 천천히 합치되도록 해야지 갑자기 내치고 문파를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근일에 과거(科擧)를 공부하는 선비 가운데 나아가 과거에서 합격할 길이 없으므로 물러나 자취를 학문에 의탁하는 자가 적지 않습니다. 구습에 젖어 혹 명예를 구하는 폐단이 없지 않으니, 이는 바로 근심스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군자가 남을 대하는 도량은 실로 찾아오는 것을 허여할 뿐 물러간 뒤의 일은 허여하지 않습니다. 저의 고향 유생으로 문하에 출입하는 자는 학업과 조예가 혹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천 리 멀리 가서 배우는 것은 정성이 가상하니, 부디 재주에 따라 가르쳐 주시어 각각 학업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 실로 구구한 이의 바람입니다. 朴生廻便。伏承下復。旣而時令改易。寒威將綮。伏未審燕處沖養。氣候增重。重庵逝後。離索之懷。想益難狀。聞柳斯文龍溪學邃行高。居且密邇。講聚之樂。尙有所聊。遠外馳想。不任下情。生身事益蹙。棲泊益深。同門知舊。學識行誼如鄭厚允艾山者。亦且不得相聚。踽踽涼涼。索然無味。甚非所以汲汲收桑之計也。奈何。省丈心說。幸蒙示及。謹悉梗槩矣。近世以來。辨論多端。或以人性物性之同異。或以本然氣質之同異。或以一本萬殊之同異。蓋印邊見其同而不見其異。乙邊見其異而不見其同。此所以惹起爭端也。至若心字。先德有以氣言者不一。有以理言者不一。今何獨見其爲氣而不見其爲理耶。然方此群邪競逐。吾道如綫之日。士有一善。卽當扶接導引。以就其業。況一言之差。固不過爲金玉之微瑖。惟宜從容講究。徐求其合。最不可遽加排擯。以立門庭也。近日功令之士。進無所售於科第。故退而托跡於學問者。不少。其舊習所狃。或不無干名要譽之獘。此正可憂者。然君子與人之量。固可與其進。而不可與其退也。鄙鄕儒生出入門墻者。其學業造詣。或有未及。而千里趨從。誠力可佳。須隨材授敎。各就其業。實區區之望也。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을 같은 것으로 볼지 다른 것으로 볼지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권상하(權尙夏) 문하의 이간(李柬)과 한원진(韓元震)이 벌인 논쟁이다.]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의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들은 주로 호서(湖西) 지방, 즉 충청도 일대에 거주하고,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이간(李柬)의 견해에 동조하는 학자들은 주로 낙하(洛下) 지방, 즉 서울 일대에서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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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초토사40)【종렬】에게 올림 上閔招討使【種烈】 삼가 아룁니다. 천하의 이치는 하나일 따름입니다. 성(性)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이고, 도(道)는 군신부자(君臣父子)이고, 인(人)은 요순공맹(堯舜孔孟)이고, 교(敎)는 시서예악(詩書禮樂)이니, 이 이치 외에는 더 이상 다른 이치는 없고, 이 도 외에는 더 이상 다른 도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이단이며 사교(邪敎)입니다. 선유(先儒)가 "육예(六藝)의 학문과 공자의 말씀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 버려서 세상에 함께 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에야 기강이 하나로 될 수 있고 법도가 밝아질 수 있다."41)라고 하였고, 또 "사람이 의리의 근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다면 백성들에게 해가 되어 백만의 시체가 쌓이고 흐르는 피가 천 리에 이어지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이 시비와 사정(邪正)을 판가름할 때 분변함이 매우 밝고 막는 것이 매우 엄격하여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는 자는 성인의 무리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으며, 또 옳지 않은 방도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는 죽여서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만고의 대방(大防)이며 역대의 지극한 경계입니다. 아, 근년에 이른바 동학(東學)이라는 것은 무슨 종교입니까. 예부터 이단이 많았지만 그 요사스럽고 허탄하며 비루하고 흉패한 것이 이처럼 심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근래 백성들 가운데 도적과 금수로 돌변한 자가 날마다 천이나 만으로 헤아릴 정도이지만 군신 상하가 인습에 젖어 편안하게 여기며 금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흉악한 계략이 낭자하여 화색(禍色)이 하늘을 찌른 이후에야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합니다. 앞서는 한마디 말로 금할 수 있었지만 뒤에는 수만 명을 동원하더라도 힘이 부족하며, 앞서는 한 사람을 처벌하면 징계할 수 있었지만 뒤에는 수만 명을 죽이더라도 재앙이 풀리지 않습니다. 가령 이 역적이 무기를 들고 윗사람을 범하는 일이 없고 다만 사교(邪敎)를 가지고 몰래 서로 전파하는 것이 전일과 같았으면 아마도 조정에서 필시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는 윗사람을 범하는 것이 죄가 됨만 알고 사교가 윗사람을 범하는 근본이 되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를 배양하면서 가지를 잘라내며, 물의 근원을 탁하게 하면서 지류를 맑게 하는 것이 어찌 이치이겠습니까. 오늘날의 거조가 반란을 구제하고 폭도를 주벌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일은 있습니다. 그러나 척사위정(斥邪衛正)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추향할 바를 알게 하는 것으로 말하면 오히려 강구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미 지난 진부한 자취를 뒤미처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전날의 잘못이 바로 오늘날의 경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위한 계책은 정학을 높이고 천리를 밝히며, 사설을 배척하고 인심을 바로잡아 백성들로 하여금 이것은 따를 만하고 저것은 피할 만하며, 이것은 지향할 만하고 저것은 배척할 만함을 환하게 알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잘못을 계속해서 되풀이하여 전혀 깨우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발각되는 대로 잡아서 무거운 형벌을 시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교화된 자는 다 변화된 것이 아니고 태도를 바꾼 자는 결코 마음을 바꾼 것이 아니니, 후일의 화가 다시 오늘처럼 드러나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합하(閤下)께서는 큰 의리에 밝고 큰 절개가 있어 성대하게 사방에서 추앙을 받으니, 사문(斯文)과 세도의 책임은 절로 사양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부디 집집마다 깨우쳐 주어 한 도(道)의 이목을 일신하고, 또 이 뜻으로 성상께 아뢰어 저지되지 또는 기각되지 않는다면 실로 종사와 생령들의 무궁한 복이 될 것입니다. 伏以天下之理一而已。性則仁義禮智。道則君臣父子。人則堯舜孔孟。敎則詩書禮樂。此理之外。更無他理。此道之外。更無他道。外於此則異端也。邪敎也先儒有言曰。諸不在六藝之科孔子之術者。皆絶其道。勿使倂進。然後統紀可一。法度可明。又曰。人於義理之原。毫釐有差。則其爲生民之害。至於積尸百萬。流血千里。是以聖人於是非邪正之除。辨之甚明。拒之甚嚴。至謂能言拒楊墨者。聖人之徒。又謂。執左道以惑衆者。殺無赦。此是萬古大防。歷代至戒也。嗚呼。近年所謂東學。是何敎也。自古異端。非不多矣。而其妖怪狂誕。鄙俚凶悖。未有若是之甚者也。目下赤子化爲盜賊禽獸者。日以千萬計。而上下因循。恬不爲禁。至於凶計狼藉。禍色滔天然後。乃始興兵討之。前以費一辭而可禁。後則擧數萬衆。而力猶不贍。前以笞一人而可懲。後則誅數萬人。而禍猶未解。若使此賊無弄兵犯上之事。而但以邪敎。潛相傅染如前日。則恐朝廷必無興師討伐之擧。是則徒知犯上之爲罪。而不知邪敎之爲犯上之本也。培其根而剪其枝濁其源而淸其流豈理也哉。今日之擧謂之捄亂誅暴則有之矣。至於斥邪衛正。使民知所趨向則尙未之講也。今非欲追咎已往之陳跡。正以前日之失。乃今日之戒。爲今之計。莫若崇正學。明天理。斥邪說。正人心。使群黎百姓。昭然知此之可趨。彼之可避。此之可向彼之可背。或有襲訛踵誤。漫不回悟者。則隨現隨捉。旋以重典。不然則目今梗化者。未盡歸化。革面者未必革心。安知後日之禍。不更發如今日乎。伏惟閤下明大義。秉大節。蔚然爲四方所宗仰。斯文世道之責。自有所不得辭焉。須家喩戶曉。以新一路之耳目。又以此意。奏達天聰。不至見寢。則實宗社生靈無疆之福。 민 초토사(閔招討使) 민종렬(閔種烈)이다.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있을 때 동학군에 대항하여 성을 굳게 지킨 공으로 1894년(고종31) 10월 28일에 호남 초토사(湖南招討使)에 임명된 사실이 있다.《高宗實錄 31年 10月 28日》《承政院日記 高宗 31年 10月 28日》 선유(先儒)가……있다 이 내용은 한 무제(漢武帝) 때 동중서가 올린 대책(對策)에 나오는 말이다.《漢書 董仲舒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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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 홍공【채문】에게 답함 答鳳南洪公【埰問】 지난번에 답장을 받고서 감격스러운 마음 그지없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 삼가 한가롭게 지내시며 여가가 많으신 가운데 기거가 태평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산은 태곳적처럼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창창하네.[山靜似太古 日長如少年]"라는 구절은 당자서(唐子西)43)의 시이고, "일 없이 한가하게 앉았으니 하루가 이틀 같도다. 이처럼 70년을 산다면 문득 140년이 되리.[無事此靜坐 一日是兩日 若活七十年 便是百四十]"라는 구절은 소장공(蘇長公)44)의 말입니다. 이는 노년에 궁벽하고 적막한 가운데 문을 닫고 잡념을 떨쳐버리는 데 있어서 가장 요긴한 계책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종종 체념(體念)하여 뜻에 맞는 것이 있는지요. 의림(義林)은 범절(凡節)에 대해서는 아뢸 만한 것이 없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힘쓰고자 하지 않음이 없지만 매양 우마(憂魔 근심)에 마음이 흔들려 끝내 공부를 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더 많고 한 치를 진보하였다가 한 자를 퇴보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자가 과연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스스로 돌아보건대 부끄럽고 슬픈 마음을 형언할 수 없었는데 답장을 받고는 매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영포(令抱 손자)가 어여쁘고 어린이의 예절이 있어 조석으로 문안드리는 예절을 펼 것이니, 이른바 "젊은이들은 할 일이 있다."45)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더욱 의로운 쪽으로 가르쳐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 주십시오. 向拜下復。感戢無已。歲色垂暮。伏惟燕養多暇。起居崇適山靜似太古。日長如少年。唐子西詩也。無事此靜坐。一日是兩日。若活七十年。便是百四十。蘇長公語也。此在老年窮寂杜門消遣之地。最爲親帖計。未知種種體念而與之有會否。義林凡節無足奉聞。案頭一着。非不欲黽勉。而每爲憂魔所撓奪。竟未免一曝而十寒。寸進而尺退。若是者。果安能有所成就也。自顧慙怛。無以自喩。而尊書乃反慰藉之若是耶。令抱婉戀幼儀。能執定省之節。所謂小子有造者此也。益盡義方之敎。以開其前程步趨也。 당자서(唐子西) 자서는 송나라 당경(唐庚, 1070~1120)의 자이다. 미주(眉州) 단릉(丹棱) 사람이다. 소장공(蘇長公) 장공은 송나라 소식(蘇軾)의 경칭이다. 소식은 소순(蘇洵)의 장자인 데다 그 문장이 백대(百代)의 으뜸이라고 할 만했기 때문에, 그를 일컬어 장공(長公)이라고 하고 그의 아우 소철(蘇轍)은 소공(少公)이라고 하였다. 젊은이들은……있다 《시경》 〈사제(思齊)〉에 "그러므로 성인(成人)들이 덕망을 지니고 젊은이들은 할 일이 있으니, 문왕께서 싫어함이 없이 명예로운 선비들을 길러 내셨도다.[肆成人有德 ,小子有造, 古之人無斁, 譽髦斯士.]"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앞으로 진보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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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여함49)【철환】에게 보냄 與安汝涵【澈煥】 지난번 수레가 돌아갈 적에 고생하지 않았습니까. 소식이 막혀 애가 탔습니다. 대저 우리 두 사람은 같은 세상 같은 고을에 살며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교분이 있었고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으니, 그 분의는 실로 남다릅니다. 더구나 나라에서 어진 이를 벗하는 의리로 볼 때 실로 달려가기에도 겨를이 없어야 하는데 그럭저럭 혼탁하게 사느라 한번 찾아가지 못한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지금 또 화고(禍故)를 겪은 남은 목숨은 외진 곳에서 칩거하고 있으니, 어찌 세간의 많은 일을 염려하겠습니까. 무너지고 찢어지는 마음은 죽음만 기다릴 따름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은혜로이 돌보아 주시어 위로하고 아껴주심이 두루 지극하였습니다. 아, 평소 알아주신 정이 참으로 무궁함을 알겠으나 천한 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슬프고 부끄러운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생각건대, 노형께서는 사문(斯文)의 구족(舊族)으로서 문학적 재능을 이른 나이에 발휘하여 양초(梁楚)50)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지 지금 여러 해 되었습니다. 선업(先業)을 실추하지 않기를 도모하고 숙망(宿望)이 적지 않은 것을 생각하여 조금씩 더 진보하여 끝내 크게 밝힌다면 교유하는 말석에서 영광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덕문(德門)에서 대대로 계승하는 것이 또한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頃者駕旋無撓。信息間阻。有庸耿耿。夫吾兩人。倂一世同一鄕。論交從父祖。見知自孩嬰。則其分固不在於入後矣。況居邦友仁之義。固當趨走之不暇。而因循淟涊。罔克一遂者。積有餘年矣。今又禍故餘喘。廢蟄窮荒。安有一念於世間多少事耶。崩霣摧裂。只竢溘然。謂外辱賜惠顧。慰愛周至。嗚呼。平素記知之情。儘覺無窮。而爲賤生者。堪可承當耶。悲愧亡量。惟老兄以斯文舊族。文學才華。早年發颺藉藉于梁楚之間者。今幾年矣。圖先業之不墜。念宿望之不細。加一簣進一步。而終至大闡。則不惟從遊之末。與有榮焉。德門之所以世世繼述者。不亦美矣乎。 안여함(安汝涵) 양재원(梁在源)으로 자는 자함(子涵)이다. 양초(梁楚) 《사기》〈계포열전(季布列傳)〉에 "조구(曹丘)가 와서 계포에게 읍하면서 말하기를 '초인(楚人)의 속담에 황금 100근을 얻는 것이 계포의 한 번 승낙을 얻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족하(足下)께서 어찌 양초 사이에서 이 명성을 얻었습니까?' 하였다."라고 한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안철환(安澈煥)의 고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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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3 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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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과경【석량】에게 답함 答魏果卿【碩良】 가을 하늘이 바야흐로 높아가니 그대를 그리는 마음이 참으로 간절하네. 뜻밖에 존부장께서 왕림해 주고 겸하여 그대의 편지를 받으니 너무나도 고맙네. 더구나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하며 학문도 매우 발전한다고 하니, 멀리서 그리는 마음에 매우 흡족하네. 나는 노쇠함과 병이 서로 도모하여 날로 퇴락하고 있으니, 매번 사우(士友)에게 보낼 편지를 쓸 때면 자랑할 것이 없어서 부끄럽네. 편지 끝에 몇 조목의 의문에 대해 물었는데, 이에서 옛날 배운 것을 다시 익혀 부지런히 멈추지 않고 연구하는 뜻을 볼 수 있으니, 이후로 깨닫지 못함을 어찌 걱정하겠는가. 부지런히 노력하게나. "군자는 덕을 생각한다."라는 말은 덕을 숭상하고 덕을 좋아함을 이르니, 그 마음에 보존하고 있는 것이 원래부터 있던 선115)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생각하고서 숭상한 것이 바로 덕이네. 만일 마음에 지닌 바가 아니라면 어찌 생각하겠는가. 이에 나는 말하노니, "나는 이에서 사람과 천지가 일체라는 뜻을 볼 수 있다."라고 하네. 《중용》에서 "만물을 발육시켜 그 높은 도의 경지가 하늘에까지 닿았도다."116)라는 것을 성인의 도라고 하였으며, "하늘이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네.117)"라는 것을 지극한 덕의 드러나지 않는 오묘함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서 사람과 천지가 일체라는 것을 알 수 있네. '머문다[住]'는 말과 '의지한다[倚]'는 같은 뜻이지만, 그러나 불가, 도가가 으뜸으로 삼는 것은 공적(空寂)이기 때문에 '머문다[住]'고 하고, 우리 유가가 주장하는 것은 중용이기 때문에 '의지한다[倚]'고 말하네.118) 정으로 해산물을 보내니, 고맙기 그지없네. 다만 그대 어른에게도 이바지할 음식도 분명히 많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멀리 있는 벗에게까지 보내는가. 마음이 매우 편치 않네. 秋色方高。懐人政勤。謂外尊院府委枉。兼承惠翰。慰感萬萬。矧審重省康寧。學履佳迪。尢叶遠情。義林衰與病謀。日就頽落。每作士友書。愧無以相聞也。紙末数條。可見溫理硏究。舋舋不已之意。率是以徃。何患無得。勉之勉之。懷德如尙德好德之謂。以其所存固有之善。故所思念而慕尙者德也。如非所存。何思念之爲。吾道之吾可見人與天地一體之意。中庸以發育萬物。峻極于天。爲聖人之道。以上天之載。無聲無臭。爲至德不顯之妙。此可見矣。住與倚。自是一義。然佛老所宗者。是空寂故言住。吾儒所主者。是中庸故言倚。海物出於情眖。感戢亡已。但篤老下供具之節。想必浩多。而何以遠及於朋友耶。旋切不安。 군자는……있던 선 《논어》 〈이인(里人)〉에서 공자는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君子懷德 小人懷土〕"라 하였는데, 주에서 주자는 "덕을 생각하는 것은 원래 있던 선을 보존함을 이른다.〔懷德 謂存其固有之善〕"라 하였다. 만물을……닿았도다 《중용(中庸)》 제27장에서 "위대하다, 성인의 도여. 물이 넘쳐흐르듯 끝없이 만물을 발육시켜 그 높은 도의 경지가 하늘에까지 닿았도다.〔大哉 聖人之道 洋洋乎發育萬物 峻極于天〕"이라 하였다. 하늘이……없네 《중용》 제33장에 보인다. 원래 《시경》 〈대아·문왕〉에 보이는 구절인데, 《중용》에서 인용하여 지극한 덕의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중용이기……말하네 《중용장구》 제11장에서 "군자는 중용을 따라 세상에 은둔하여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가능하다.〔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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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부【익주】에게 답함 答高經夫【翊柱】 세상에 대처하는 글을 보니 뜻이 매우 좋고 문사도 또한 아름답네. 옛날 사람이 사립문123)에서 한가히 소요한 것은 이런 뜻 아님이 없네. 공자는 말하기를 "은거하면서 자신의 뜻을 구한다."124)라고 하였고, 맹자는 "곤궁하면 홀로 자신의 몸을 선(善)하게 한다."125)라고 하였는데, 만약 뜻을 구하거나 홀로 선하게 하는 실지가 없다면 그 은거함은 은거함이 아니며 그 곤궁함은 곤궁함이 아니니, 저 산과 들판의 어리석은 노인도 또한 은거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곤궁하다고 할 수 있는가. 요컨대 스스로 수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으니,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네. 그 글을 처음에는 보내려고 하였는데, 우연히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다음 인편을 기다려야 하겠네. '의관을 바르게 하고, 보는 것을 정중하게 하며, 용모를 움직이며, 생각을 안정시키며, 외면을 정제하고 엄숙하게 하며, 엄격한 위의와 매우 조심함'은 지경(持敬) 공부에 대하여 말한 것이네.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과 그렇게 된 바를 궁구하고, 날마다 알지 못한 것을 알며 달마다 그 능한 것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치지(致知)에 대하여 말한 것이네. '바라는 것이 있으면서 하는 것은 이(利)요, 바라는 것이 없으면서 하는 것은 의(義)이다. 은미한 생각부터 드러난 일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깨달아 성찰하여 어김이 없다.'고 한 것은 실천에 대하여 말한 것이네. 處世文。志尙甚好。文辭亦佳。古之考槃衡門。未必非此意也。孔子曰。隱居而求其志。孟子曰。窮則獨善其身。苟無充志獨善之實。則其隱非隱。其窮非窮。彼山翁野叟蠢蠢之人。亦可謂之隱。亦可謂之窮乎。要在自修之如何而已。千萬勉旃其文初欲付去。偶尋未見。容竢後便。正衣冠。尊瞻視。動容貌。整思處。整齊嚴肅。儼威嚴恪。此持敬之說。窮其所當然與其所以然。日知其所未知。月無忘其所能。此致知之說。有所爲而爲者利也。無所爲而爲者義也。自念慮之微至事爲之著。體認省察。無所違越。此踐履之說。 사립문 형문(衡門)은 나무를 가로질러 만든 보잘것없는 문으로,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은자(隱者)의 거처를 뜻한다. 《시경》 〈형문(衡門)〉에 "형문의 아래에서 한가히 지낼 만하다.〔衡門之下 可以棲遲〕"라는 내용이 보인다. 은거하면서……구한다 《논어》 〈계씨(季氏)〉에 보이는 말이다. 곤궁하면……한다 《맹자》〈진심 상(盡心上)〉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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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2) 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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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숙【환현】에게 답함 答朴亨叔【恒鉉】 편지가 5월 한여름에 왔는데 답장은 8월 한가을에 보내니, 한 번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에 세월이 이처럼 빨리 흐르는가. 티끌 바다의 부평초 같은 인생이 이에 상심한다네. 삼가 생각해보니, 현재 자당(慈堂)께서는 강녕하시며 큰 형의 숙환은 차도가 있으신가. 효제를 행하면서 거처하는데 건강이 줄곧 좋은 지 멀리서 걱정하고 있으니, 항상 소식 듣기를 간절히 원하네. 나는 여름 동안 혈종(血腫)127)을 앓아 오랫동안 괴로워하였는데, 지금 겨우 괜찮아졌네. 대저 학문은 특별히 다른 종류의 일이 아니라 다만 평소 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와 어른을 섬기고 사물을 상대하면서 크건 작건 많건 적건 간에 의리를 따라서 이를 어기거나 잃지 않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일을 다 물리쳐버리고서 문자에 몰두한 뒤에야 학문이라 이를 수 있는가. 다만 전심하여 책을 읽지 않으면 의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행한 바가 간혹 사의(私意)에서 나오니, 그러므로 효제를 행한 남은 힘으로 학문을 해야 하는 것이네.128) 만약 이 마음을 굳게 지켜 외부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일에 대응함이 비록 번거로워도 남은 힘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학문 연구에 방해가 될 것을 걱정하지 말고 다만 뜻을 빼앗길까 걱정해야 한다.'129)라고 했는데, 어찌 이것을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부지런히 힘써야 하네.이 리(理)가 있은 뒤에 이 사물이 있으니,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은 것이 아닌가. 마음이 아니면 성(性)을 볼 수 없으니, 마음이 성과 정(情)을 거느리는 것이 아닌가. 전자는 원두(源頭)에 대해 말한 것이고, 후자는 당체(當體)에 대해 말한 것이네.도와 리(理)는 같은 것이고, 형(形)과 기는 같은 것이네.무릇 사물이 가지고 있는 형(形)은 참으로 기인데, 실제로는 리(理)가 한 것이네. 그러므로 한 개의 '형(形)'자에 나아가 도(道)라고 하고 기(器)라고 하니, 상(上)과 하(下)는 다만 그 경계를 말한 것이지 실로 상하가 있는 것은 아니네.리(理)의 묘용을 신(神)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신(精神)의 신(神)과는 같지 않네. 신(神) 안에 리(理)가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알 수는 없는데, 나의 소견으로는 아마도 타당하지 않은 것 같네.칠정(七情)은 사람의 정에 이 일곱 가지가 있는 것을 통틀어 말한 것이요, 사단(四端)은 칠정의 가운데에 나아가 다만 선(善)한 쪽만을 가리키니, 칠정이 사단에서 발해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 잘못되지 않으랴.예를 들어 "오성(五性)은 기(氣)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만수(萬殊)는 본연이 아니니, 그렇다면 태극은 사람이 억지로 주재(主宰)라고 이름 붙인 것이 아닌가."라고 하는 것은 세유(世儒)가 상투적으로 하는 말버릇이네. 書出於仲夏。書復於仲秋。一徃復之間。光陰若是其飜耶。塵海浮生。無非所以傷心處。謹惟玆辰庭闈康寧。伯氏宿愼。進退何居。孝弟之餘。起居凡百。一直勝裕。遠外懸懸。每切願聞。義林夏間患血腫。爲苦者久矣。今纔見可耳。夫學問非別様物事。只是日用之間。事親事長應事接物。大小多少。遵循義理。勿違勿失而已。何嘗以掃却事物而汨沒文字然後。可以謂學哉。但專然不讀。則無以知義理之所在。而所行或出於私意。故不可不以餘力及之。若能堅固此心。不與外面事倶徃。則應事雖繁。而不患無餘力矣。古人所謂不患妨功。惟患奪志者。豈非謂此耶。勉勉焉。有是理而後有是物。則非太極生兩儀乎。非心無以見性。則非心統性情乎。一則源頭說。一則當體說。道與理一事。形與氣一事。凡物之有是形。固氣也。而實理之所爲。故就一形字。言道言器。上下特言其界至。非實有上下。理之妙用謂之神。其與精神之神差別也。神内有理之說。不知其出於誰氏。而以愚所見。恐欠妥當。七情。統言人之情有是七者。四端。就七情之中而特言其善一邊。以七情爲四端中發出者。豈不誤哉。若曰五性因氣有。萬殊非本然。則太極其非人之強名底主宰乎。此世儒口氣也。 혈종(血腫) 장기나 조직 속에 출혈하여 한 곳에 혈액이 괸 상태. 효제를……것이네 《논어》 〈학이(學而)〉에서 "제자는 들어가서는 효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친히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 나서도 여력이 있을 경우에는 학문을 하라.[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라고 하였는데, 그 집주에서 "여력은 가일이란 말과 같다.[餘力, 猶言暇日.]"라고 하였다. 학문‥‥걱정해야 한다 정이천(程伊川)이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학문 연구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더라도, 오직 자신의 마음을 뺏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科擧之事 不患妨功 惟患奪志]"라고 하였다. 《性理大全 卷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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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균【태중】에게 답함 答丁德均【泰重】 여러 달을 타향의 서당에 묵으면서 생계 때문에 대단히 많은 괴로움을 겪었을 텐데,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서로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니 의지가 확고하고 추향이 구차하지 않음을 충분히 아는데, 만분의 일도 도움을 주지 못하니 부끄럽네. 이별한 뒤에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소식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을 더욱 풀 길이 없었네. 참으로 뜻밖에 한 통의 편지가 왔는데, 전달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도중에 옆으로 새지 않고130) 아무 탈 없이 우리 집으로 전달되었다네. 봉투를 열고 읽어보고서, 삼가 부모를 모시고 기거하면서 신령이 도와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나는 위안이 되어 마음이 놓이는데 실로 듣고 싶었던 바이네. 나는 서당을 그만 둔 뒤에 집으로 돌아와서 본래 병을 요양할 계획이었으니, 어찌 다시 이전처럼 서당에 거하며 학도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겠는가. 세상이 이처럼 험난하니 대단히 통탄스럽네. 그러나 이 어찌 우리 같이 쇠잔한 인생이 알 바이겠는가. 삶과 죽음, 재앙과 복은 한결같이 저 하늘에 맡겨두고 다만 내가 해야 할 것을 닦아 미진한 단서가 없게 해야 하니, 이것이 옛사람이 말한 '평이한 도리를 행하면서 천명을 기다린다.'131)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현이 남긴 가르침은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이 충분히 힘을 쓸 만한 곳이네. 다만 하단의 '무슨 책을 먼저 읽고 무슨 일을 먼저 해야 합니까'라고 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것 같네. 우리 벗의 명철함으로 과정과 절차, 수신하는 대강 등에 대해 먼저하고 뒤에 할 것의 순서를 알지 못함은 걱정할 것이 아니며, 다만 수립한 과정을 떠맡아서 용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뜻이 혹 조금이라도 물러날까 하는 것이네. 이것은 본령(本領)에 해당하니, 차선책을 마련해서는 안 되네. 이 뜻을 바라건대 우범(禹範)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만 리 앞길에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은데, 평범하지 않은 업적은 반드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니 힘쓰고 또 힘쓰시게나. 아득히 멀어 서로 만나기가 요원하니, 그리운 마음에 안타까울 뿐이네.대저 성(性)은 하나일 따름이네. 그러나 이른바 '하나[一]'라고 하는 것은 나뉨이 없다는 것을 이름이 아니네. 만약 이곳에 분명하게 본다면 이른바 개의 성, 소의 성, 사람의 성132)은 또한 처음부터 본연의 성이 아니네. 만약 본연의 성이 아니라면 개와 소의 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사람들이 그 같지 않은 것을 보고 으레 기질지성으로 귀결시키니, 이것이 근대 주기지설이 일어나게 된 까닭이네. 맹자가 고자와 변론할 때, 다만 사단만 들어서 성의 본래 선함을 밝혔지만 '악(惡)' 한 글자가 기인한 바에 대해서는 귀속시키지 않았으니, 이것이 정자가 '성을 논하고 기를 논하지 않았다.'133)는 말을 하게 된 것이네. 주자는 이르기를 "맹자가 은미하게 그 단서를 발하였으니, 대개 같지 않은 것[不同]은 참으로 이(理)가 나뉜 것인데, 같지 않은 곳에서 또한 그 기질을 볼 수 있다."고 하였으니, 깊이 생각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數朔旅齋。討喫無限辛苦。而所得果何事耶。相聚之久。足以見其志意之牢確。趨向之不苟。而愧無以資其萬一之益也。別後有月。聲息莫憑。悵菀之懐。尢不知所以爲遺也。一書眞料外也。未知傳之者何人。而不沈不浮。無恙入吾廬耶。披玩以還。謹審侍省起居。神相萬祉。區區慰豁。實叶願聞。義林破齋歸巢。本爲養病計。豈復有居齋授徒如前日乎。世險如此。極可痛歎。然此豈吾輩残生所可與知者耶。死生禍福。一付彼蒼而。只修其在我者。俾無未盡之端。是非古人所謂居易俟命者耶。聖賢遺訓。是爲下手處。果如來喩。但下段何書爲先。何事爲先之云。竊恐未然。以吾友之明。其於課程節度。修省梗槩。不患不知其先後之所在。而但擔當堅立。勇徃直前之意。或不能無少遜耳。此是本領田地。不可作第二義觀。此意幸與禹範共更量之如何。萬里前程。所望非細。而非常之功。必待非常之人。勉之勉之。相奉悠遠無階。瞻望馳悵而已。夫性一而已矣。然所謂一者。非無分之謂也。若於此處見透。則所謂犬之性牛之性人之性。亦始非本然之性也。若非本然。則犬牛之性。何處得來。人見其不同者。例歸之於氣質。此近世主氣之說所以作也。孟子與告子辨。特舉四端。以明性之本善。而於惡一字所從來。未有歸屬。此程子所以有論性不論氣之語也。朱子謂孟子微發其端云者。盖不同。固理之分也。而於不同處。亦可以見其氣質矣。深思之如何。 도중에……않고 진(晉) 나라 은선(殷羨)이 예장군(豫章郡)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즈음에 사람들이 100여 통의 편지를 주면서 경성에 전달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석두(石頭)까지 와서 모조리 물속에 던져 놓고는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고 떠오를 놈은 떠올라라. 내가 우편 배달부 노릇을 할 수는 없다.〔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能作致書郵〕"라고 하였다. 평이한……기다린다 앞의 〈답황정후(答黃正厚)〉에 보인다. 개의……성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서 고자와 맹자가 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으니 "고자는 '생을 성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에 맹자가 '그대가 생을 성이라고 하는 것은, 백을 백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가?'라고 물으니, 고자가 '그렇다.'라고 대답하였다. 맹자가 또 '백우의 백은 백설의 백과 같으며, 백설의 백은 백옥의 백과 같은가?'라고 물으니, 고자가 '그렇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맹자가 다시 '그렇다면 개의 성이 소의 성과 같으며, 소의 성이 사람의 성과 같은가?'라고 물었다.〔告子曰 生之謂性 孟子曰 生之謂性也 猶白之謂白與 曰 然 白羽之白也 猶白雪之白 白雪之白 猶白玉之白與 曰 然 然則犬之性猶牛之性 牛之性猶人之性與〕"라 하였다. 성을……않았다 고자와 맹자의 앞의 변론 이후 세 번째 장의 장하주에서 정자가 한 말이다. 즉 "성만 논하고 기를 논하지 않으면 갖추어지지 않고, 기만 논하고 성을 논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않다.[論性不論氣, 不備; 論氣不論性, 不明.]"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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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심숙에게 답함 答魏心叔 편지를 받들어 보매 참으로 지난해 왕림하였을 때와 같으니, 나의 고마운 마음은 오랫동안 답답했던 것을 풀어내는 것 같네. 더구나 부모를 모시면서 기거하는데 건강이 좋은 것도 알았음에랴. 편지 가득히 써놓은 내용을 보면, 마음 세움의 돈독함과 학문을 향한 부지런함을 볼 수 있으니, 이제부터 어찌 발전하지 않음을 걱정하겠는가. 비록 눈을 부비고 무릎을 맞대며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하지만, 멀리서 기대하는 마음은 더욱 커지네. 약을 쓰지도 않고 병이 낫는 약은 어찌 특별한 방법이 있겠는가. 보내준 편지에서 말한 '성실(誠實)' 두 글자가 바로 그 참된 처방이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노둔하고 저열한 하근(下根)104)으로 늙을수록 더욱 상태가 나빠져 가니, 아마도 이러한 의체(義諦)에 대해 헤아려서 답할 수 없는데, 그대의 근후한 뜻에 감동하여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혜량해 줄 수 있겠는가. 문목은 또한 조목에 따라 대답할 것이니 바라건대 자세히 살펴보고 그 시비를 다시 알려주기 바라네. 《대학》은 《예기》의 편 가운데 하나로 있어서 세상 선비들은 〈내측(內則)〉이나 〈곡례(曲禮)〉 등 여러 편 등과 함께 똑같이 보았네. 그러다가 비로소 《예기》에서 뽑아내서 한 책으로 드러낸 자는 바로 정자(程子)라네. 그러므로 〈서문〉에서 특별히 정자 형제에 대해 말하였고,105) 주자(周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네. '공자'라고 하지 않고 '공씨'라고 하였는데, 증자와 자사가 모두 공씨라는 말 안에 포함되니, 전(傳) 10장이 자사가 지은 것이 아닌가.'초학자의 입문'은 공부의 발단을 가리켜서 말하고, '대인(大人)의 학문'은 도리(道理)의 처음과 끝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네106). '물(物)'은 체이고 '사(事)'는 용이네.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은 남과 나에 대해서 말한 것이기에 물(物)이라고 이르고, 지지(知止)와 능득(能得)은 공부의 과정에 대해서 한 것이기에 사(事)라고 이르네. '종(終)'을 먼저 말하여야 문장이 순하네.107) 承書。正是去年承枉時。區區感沃。足令積菀釋然。矧審侍省之餘。起居百福。滿紙臚列。可見立心之篤。向學之勤。率是以往。何患不進。雖不能拭眼促膝.參聽緖餘。而遙遙期仰。於玆尢至。勿藥之藥。有何別方。來喻所謂誠寶二字。是其眞詮。如何如何。義林魯劣下根。老益荒廢。恐不足以上下於此等義諦。而感服勤意。有不能無言。倘諒恕耶。問目亦且逐條答去。幸爲視至。而回示其可否爲望。大學在禮記篇中。世儒與內則曲禮諸篇。一例等視。而始簡別而表出之者。程子也。則於序文特言兩程而不及周子者。此也。不曰孔子而曰孔氏。則會子子思皆在其中。傳十章。其非子思所述耶。初學之門。指功夫發端而言。大人之學。統道理終始而言。物體也事。用也。明德新民。是人我上說。故謂之物。知止能得。是功夫邊說。故謂之事。先言終。順文也 하근(下根) 불교의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한 사람을 가리킨다. 특별히……말하였고 주희(朱熹)의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서 "천운이 순환하여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기에 송(宋)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정치와 교화가 아름답고 밝았다. 이에 하남(河南) 정씨(程氏) 양부자가 나와서 맹자의 전함을 이어 진실로 이 책을 존신(尊信)하고 표장(表章)하셨다."라 하였다. 초학자의……것이네 초학지문(初學之門)이란 말은 《대학》 수장의 첫 구절 들어가기 전의 정자의 말에 보이니 "《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으로 초학자들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大學 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라 하였다. 대인지학(大人之學)이란 말은 수장 첫 구절의 주에서 "대학이란 대인의 학문이다.〔大學者 大人之學也〕"라는 말에 보인다. ​명덕과……순하네 문장이 순하다는 것은 "물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종시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則近道矣.〕"라는 《대학》 수장의 구절을 가리킨다. 명덕과 신민은 물(物)이라 하고 지지와 능득은 사(事)라고 한 것은 위 구절의 주에서 "덕을 밝히는 것은 근본이 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은 끝이 되며, 머무를 곳을 아는 것이 시작이고 머무를 곳을 얻는 것이 마지막이다.〔明德爲本 新民爲末 知止爲始 能得爲終〕"라는 구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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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형기】에게 답함 答金光淑【炯基】 뜻밖에 편지를 받아 봉투를 열어 살펴보고서, 슬픈 생각과 회한의 말이 편폭에 가득 흘러넘쳐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흐르게 만드네. 오호라! 조상의 뜻을 만분의 일이라도 계승하는 것은 글을 배우고 자신을 신칙하는 한 가지 일이 아닌가. 예서(禮書)를 읽는 여가에 이에 열심히 한다면 해야 할 일을 잘못했다고 이를 수 없을 것이네. 천박하고 비루한 나는 상유(桑楡)110)의 석양을 날리며 뉘엿뉘엿 산에서 떨어지는 해와 같은데, 노쇠하고 병든 모습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우니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죽은 귀신이 될 것이 분명하네. 불가의 시에 "이 몸 만약 이번 생애에 제도(濟度)하지 못한다면, 다시 장차 언제나 이 몸을 제도할까."라고 하였는데, 매번 이 시구를 외울 때면 끝없이 일어나는 회한을 견딜 수가 없네. 그렇다면 상중에 있는 그대의 엎어진 수레의 경계가 나에게 있지 않은가. 듣건대 '서당을 깨끗이 쓸고 휘장을 내려111) 틈틈이 어린 학동을 가르친다.'고 하니, 마음에 깊이 위안이 되네. 나는 그대가 상중112)에 있으면서 이따금 집안의 어려운 일을 겪는다고 들으니, 찾아가서 위로하고 싶지만 끝내 그러지 못하니 매우 부끄럽네. 料外惠疏。披玩以還。其悲霣之意。悔恨之語。滚滚盈幅。令人不覺釀涕涔涔。嗚呼。所以繼述其萬一之志者。非學問飭躬一件事乎。讀禮之暇。汲汲於此。不可謂非其任也。如淺陋者。桑榆殘景。苒苒如下山之日。而衰相病情。有難支吾。其爲無聞之鬼也。決矣釋氏詩曰。此身若不今生道。更將何時道此身。每誦及此語。而竊不自勝悠悠無窮之恨也。然則哀侍今日之車鑑。其不在於此乎。聞掃塾下帷。間課蒙率云。爲之慰仰不已。義林聞左右在憂苦中。而遭種種家故。思欲進慰未遂。愧負多矣 상유(桑楡) 해가 질 때 햇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꼭대기에 비치므로, 인생의 말년을 뜻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권3에 "해가 서산으로 떨어질 때 햇빛이 나무의 꼭대기에 비치는 것을 상유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휘장을 내려 한(漢)나라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경제(景帝) 때에 박사가 되어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학문에 열중하여 "휘장을 내리고 강송하며 3년간을 뜰을 엿보지 않았다.〔下帷講誦, 三年不窺園.〕" 하였다. 《漢書 卷56 董仲舒傳》 상중 '우고(憂苦)'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어머니가 죽었을 경우에 쓰는 말이다. 《沙溪全書 卷32 喪禮備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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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범【기홍】에게 답함 答張禹範【基洪】 어느덧 이별 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은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네. 뜻밖에 편지를 받게 되니 기쁜 마음은 마치 차가운 골짜기에 햇빛이 비치는 것 같네. 부모님의 병환은 일반적인 증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니, 나는 우러러 축원하네. 나는 여름에 과연 참담한 일을 당하였네. 평생 운명이 구름과 우레의 강과 산 속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데,134) 늙어 곧 죽을 때가 되어 오히려 더욱 심하게 되었네. 실낱 같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한밤중에 일어나 생각하면 땀이 나서 등을 적신다.'는 말에서 절실하게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와 같이 영특한 자질로 뉘우치고 반성함이 이와 같다면 어찌 발전하지 않을 이치가 있겠는가. 더구나 현재의 분란은 짐작하기 어려움이 날로 심해지니 이 어찌 우리들이 한가롭게 지내거나 게으름을 피울 때인가. 궁구하고 탐색하여 의리를 밝히고, 보존하고 함양하여 심지(心志)를 견고를 하여 앞날의 계책으로 삼는 것이 바로 지금 당장의 급한 일이네. 보내준 편지에서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는 것으로 자정(自靖)의 의리를 삼는다고 한 것은 또한 이런 의도인가. 나이가 젊고 힘이 굳세니 부지런히 힘쓰시게나. 오미(五味)는 오행의 맛이니, 목(木)의 맛은 시고 화(火)의 맛은 쓰며 금(金)의 맛은 맵고 수(水)의 맛은 짜고 가색(稼穡)의 맛은 다네. 무릇 사물은 막 형질을 갖추기 시작하면 소리와 색과 맛과 냄새가 갖춰지네. 소리와 냄새는 양이고, 색과 맛은 음이네. 그 소이연의 까닭에 대해서는 모두 일일이 연구하는 것이 옳네. 於焉一別。己隔半載。憧憧懷想。與日俱積。謂外承惠訊。私情欣豁。若寒谷見陽。堂上所愼。認是例證。涼生想必復常。區區仰祝。義夏間果見慘色矣。平生命道。坐在雲雷水山之中。至於老將死。猶復甚焉。残縷餘喘。無以爲況。奈何奈何。中夜與思。汗發沾背之云。可見警省之切。以若穎悟之姿。警省如此。安有不進之理。況時紛叵測。日甚一日。是豈吾儕宴閒偷惰之日乎。窮索而明其義理。存養而堅其心志。以爲前頭之計。此是目不急事。來喩杜門讀書爲自靖之義者。亦非此意耶。年冨力強。勉之勉之。五味卽五行之味。木之味酸。火之味苦。金之味辛。水之味醎。稼穡之味甘。凡物纔有形質。則聲色臭味具焉。聲與臭陽也。色與味陰也。若其所以然之故。則皆當一一究覈可也。 구름과……같은데 《주역》 〈둔괘〉의 운뢰둔(雲雷屯)과 〈건괘〉의 수산건(水山蹇)에서 온 말로 어렵고 힘든 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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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겸에게 답함. 答姜子謙 작심삼일(作心三日)은 참으로 모든 사람이 겪는 걱정거리라네. 그러나 이로 인해 마음을 다잡아 간단(間斷)이 없게 한다면 이것이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72)의 단방(單方)73)이니, 어찌 마치 나귀 등에 타고서 나귀를 찾는 것74)처럼 엉뚱하게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하는가. 젊은이들 가운데 자겸처럼 빼어나게 재주가 좋으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자는 또한 몇 사람 되지 않으니, 바라건대 모름지기 때늦지 않게 힘써 노력하여 집안의 무겁게 기대하는 마음과 작고한 큰 형이 이루지 못한 숙원을 풀어주기 바라네. 생가(生家)의 상에 만약 형제가 없다면 어찌 자신이 타인의 후사로 출계하였다고 해서 그 상의 상주가 되지 못하겠는가. 이것은 참으로 의심할 것이 없네. 다만 큰 형의 상제와 담제75)는 아버지의 장사 이전에는 지낼 수가 없으니, 장사를 치른 뒤에 날을 정하여 상제를 지내는데 담제는 행할 수 없다네. 아버지 장사를 치른 뒤에 형의 상제를 행할 때 상주될 사람이 없다면 자신이 또한 어찌 타인의 후사로 출계하였다고 해서 제사를 지내지 않겠는가. 같은 집에 살던 사람이 죽었을 때는 비록 신첩(臣妾)이라도 장사 지낸 뒤에 제사를 지내는데,76) 더구나 아버지 상임에랴. 대공복을 입는 자라도 타인의 상주가 되었을 때 반드시 두 번 제사를 지내는데, 더구나 형제의 제사임에랴. 다시 자세히 살펴보게나.질문 : 사람의 본성이 모두 착한 것은 천명지성(天命之性) 때문이며, 깨달음에 선후가 있는 것은 기질지성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인에게는 마땅히 '선각(先覺)'의 '각(覺)'자를 놓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답변 : 깨닫지 못한 것은 참으로 기질지성이라고 이를 수 있는데, 이미 깨달은 것을 또한 기질지성이라 이르겠는가. 성인이 선각자가 아니라면 천하에서 선각자는 누구인가.질문 : 원두(原頭)에서 보면 근본이 한 가지이며 조리(條理)에서 보면 만 가지로 다른 것입니까.답변 : 또한 모름지기 원두도 만 가지로 다른 것이 아님이 없음을 알아야 하며 조리도 한 가지 근본인 것을 알아야 하네.질문 : 동(動)은 정(靜)으로써 주(主)를 삼고 정은 동으로써 주를 삼으면 거의 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답변 : 정으로써 주를 삼는다고 이른다면 괜찮겠지만 동으로써 주를 삼는다고 이른다면 옳지 않네. 다만 동과 정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치가 없지는 않네.질문 : 책을 읽을 때 바깥 사물이 나를 가리면 다만 마땅히 맹렬하게 정력을 기울여 의리를 구하여야 합니다. 만약 가렸는지, 가리지 않았는지를 따져서 그 가림을 제거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가리면 가릴수록 제거하려고 노력하여도 더욱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답변 : 천리를 보존하면 인욕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네. 이는 불을 끄려고 때리는 것과 서로 비슷하니, 불을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거세지네. 다만 물을 끼얹으면 절로 꺼질 것이네.질문 : 총명과 예지는 음양으로써 말한다면 명(明)과 예(睿)는 양이고, 총(聰)과 지(知)는 음입니다. 정신으로써 말한다면 명과 예는 신(神)이고, 총과 지는 정(精)입니다.답변 : 아마도 그럴 것이네. 三日作心。固通患。然因此提掇。母令間斷。此是肘下單方。豈有枉尋別算。如騎驢覓驢也。少年輩流。其秀爽謹勅如子謙者。亦無幾人。望須及時勉力。以慰家庭責望之重。及先伯氏未就之願也。生庭之喪。若無兄弟。則身豈以出後於人而不主其喪乎。此固無疑.而但其伯兄之祥禫。則不可行於其父之葬前。葬後卜日行祥。而禫則不可行也。葬後行祥。而無主喪之人。則身又豈以出後而不爲之祭乎。同宮。則雖臣妾。葬而後祭。況父喪乎。大功者。主人之喪。必爲之再祭。況兄弟之祭乎。更詳之人性皆善。天命之性也。覺有先後氣質之性。然則言聖人。不當下先覺之覺字未覺者。固可謂氣質之性。而已覺者。亦可謂氣質之性耶。以聖人而非先覺。則天下先覺者誰歟。自其原頭而看。則一本。自其條理而看。則萬殊。又須知原頭非無萬殊。條理非無一本。動則以靜爲主。靜則以動爲主。庶幾無過不及。謂以靜爲主則可。謂以動爲主則不可。但動靜不能無交資之理。讀書。外物交蔽。則只當猛着精力。以究義理。若計其蔽不蔽。而要去其蔽爲心。則愈蔽愈不消。存天理則人欲自消。此與撲火相似。愈撲愈熾。但以水投之則自熄。聰明睿智。以陰陽言。則明睿陽也。聰知陰也.以精神言。明睿神也。聰智精也。恐然。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진(晉)나라의 갈홍(葛洪)이 겨드랑이에 끼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하게 만든 의서(醫書)의 이름이다. 단방(單方) 한 가지 약재만으로 조제되어 병을 고치는 약을 이른다. 나귀……찾는 것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밖에서 구하는 것을 비유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지공화상대승찬(志公和尙大乘贊)〉에서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진실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不解卽心卽佛 眞似騎驢覓驢〕"라고 하였다. 상제(祥祭)와 담제(禫祭) 상제는 죽은 지 두 해 만에 지내는 대상(大祥)을 말하고, 담제는 상복을 벗는 제사로, 대상을 지내고 한 달을 건너서 지낸다. 같은 집에……지내는데 《예기》 〈잡기 하(雜記下)〉에서 "한집에 살던 사람이 죽은 경우, 죽은 사람이 비록 신첩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장사를 치른 뒤에 제사를 지낸다.〔如同宮則 雖臣妾 葬而後祭〕"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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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준에게 답함 答鄭士遵 한 폭의 소중한 편지는 참으로 뜻밖이었네. 공청(空靑)과 수벽(水碧)94)이라도 어찌 그 귀함을 비유하겠는가. 편지를 펼쳐서 읊조리니, 괴롭고 답답한 마음이 활짝 열려 눈 녹듯 사라지니, 마치 한문95)에 날아올라 맑은 바람을 맞는 듯하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이 매우 좋다고 하니 더욱 머리를 조아려 축원하는 마음에 흡족하네. 편지 내용 가운데 '경전의 스승이 사람 스승만 못하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그렇다네. 그러나 옛 사람이 이르지 않았는가. "제자가 물은 곳을 가지고 지금 자신의 질문으로 삼아보며, 성인이 답한 곳을 가지고 지금 귀로 들은 것으로 삼는다.……"96)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어찌 경전 스승이 사람 스승만 못하겠는가. 더구나 정신과 마음으로 깨우치는 것은 직접 말로 고하여 가르치는 것보다 낫지 않음이 없으니, 어떻게 생각하는가. 一幅珍函。眞望外也。空靑水碧。何足以喩其貴也。披玩諷詠。足令苦鬱之懷。豁然消釋。如羾寒門而灈淸風也。仍審侍省節宣。凡百安宜。尢愜頂祝。示中經師不如人師之說。是固然矣。然古人不云乎。將弟子問處。便作今日已問。將聖人答處。便作今日耳聞云云。苟能如此。則經師何嘗不如人師乎。况神會心得。未必不勝於口誥而命之爲也。如何如何。 공청과 수벽 한약의 약재이다. 한문(寒門) 초사(楚辭) 〈원유(遠遊)〉에, "한문의 경계를 넘어 더 멀리 달린다.〔逴絶垠乎寒門〕"라는 구절이 있는데, 왕일(王逸)의 주(註)에, "한문은 북극의 문이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공중지(鞏仲至)가 시를 보내 준 데 답한 편지에, "이 더운 여름에 시원하기가 한문(寒門)에 날아올라 맑은 바람에 씻은 듯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인용한 말이다. 제자가……삼는다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류(致知類)〉에 "《논어》를 읽는 자가 다만 제자들이 질문한 것을 자신이 질문한 것으로 여기고, 성인이 대답한 것을 바로 오늘 귀로 듣는 것으로 여긴다면 자연히 터득함이 있을 것이니, 만약 《논어》와 《맹자》 가운데에서 깊이 구하고 완미하여 함양해 간다면 비상한 기질을 이루게 될 것이다.[讀論語者 但將弟子問處 便作己問 將聖人答處 便作今日耳聞 自然有得 若能於論孟中 深求玩味 將來涵養 成甚生氣質]"라는 정이(程頤)의 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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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순61) 자명 吳景純字銘 천지의 덕은지극히 정성스러워 쉼이 없네사람이 그 마음을 얻어이 사는 이치 바르네기품에 구속되고 외물에 가려사욕이 만 가지로 생기네왕도와 패도 한 길이고사람과 귀신 서로 관련 있네슬퍼하고 두려워하여몸을 돌이켜 반성하길 생각하네분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아동정에 경으로 해야 하네안팎의 빈주가 되어한 치를 얻고 한 자를 얻네여유롭게 쌓고 쌓아차례로 깎아내네털끝만큼이라도 남기지 않아야심덕이 이에 순수하네순수하여 또한 그치지 않은 것이문왕이 문왕 된 까닭이네62)오씨의 아들관례를 함에 특출나네순으로 자를 삼고덕으로 의를 제어하네오직 덕과 순은그 뜻이 매우 드러나네부지런히 힘쓰고 따라우리 문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네 天地之德。至誠無息。人得其心。之生也直。氣拘物蔽。私欲萬端。王覇一途。人鬼交關。惻硏瞿然。反身思省。懲忿窒慾。動靜以敬。賓主內外。得寸得尺。優遊積累。次第刊落。毫芒不留。心德乃純。純亦不已。文王爲文。吳氏之子。冠而騰異。純以表德。德以制義。維德維純。其意孔彰。勉勉循循。師我文王。 오경순(吳景純) 오재덕(吳在德, 1874~?)을 말한다. 자는 경순, 호는 제월(齊月),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순수하여……까닭이네 《중용장구》 제26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은 아, 깊고도 멀어 잠깐의 그침도 없다네.'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하늘이 되는 까닭을 말한 것이며, '아, 어찌 밝게 드러나지 않으랴. 문왕의 덕, 그 순수함이여.' 하였으니, 이는 문왕이 '문'이란 시호를 받은 이유가 순수하면서 잠시도 그치지 않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詩云維天之命, 於穆不已, 蓋曰天之所以爲天也; 於乎不顯? 文王之德之純, 蓋曰文王之所以爲文也, 純亦不已.]"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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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언【준동】에게 답함 答朴子彦【俊東】 이전에 돌아가는 인편이 있어서 바쁘게 답장을 써서 보냈는데, 뒤미처 생각해보니 마음이 편치 않네. 이후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객지에 머물면서 경서 공부하는 건강은 어떠한지 물어보지 못하였으니, 그리워하는 마음 그치지 않네. 나는 노쇠한 몸이 더욱 노쇠해지고 병든 몸에 또 다른 병이 생겨 정신과 기력이 텅 비듯 모두 빠져나가 남아 있는 것은 다만 허깨비 같은 껍질뿐이니, 무슨 말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문목 한 통에서 책을 읽고 이치를 연마함에 착실하여 멈추지 않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니 대단히 가상하네. 삼가 나의 어리석은 말로 조목에 따라 답변할 것이니, 그 오류가 분명히 많을 것이네. 바라건대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근래 우리 벗의 편지를 얻어 보니 문사(文辭)가 더욱 발전한 것을 알게 되었네. 이는 반드시 실제 공부가 계속 발전하여 문사에 드러난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니, 어찌 찬탄하지 않겠는가. 더욱 더 채찍질하기를 깊이 바라네.질문 : 《맹자》 〈노오노장(老吾老章)〉에서 "은혜를 미루어 나가면 사해(四海)를 보호할 수 있다"77)라 하였고 〈불인심장(不忍心章)〉에서 "참으로 능히 확충하면 사해를 보호할 수 있다."78)라 하였습니다. '미뤄 나간다[推]'와 '확충한다[充]'는 말은 서로 분별이 없는데, 구분하여 말한다면 혹 같지 않은 점이 있습니까.답변 : '미뤄 나간다[推]'는 것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간다는 의미이며, '확충한다[充]'는 것은 조금씩 쌓아서 큰 것을 이룬다는 의미이니, 그 실상은 같다네.질문 : 《맹자》 〈경공열장(景公說章)〉에서 "임금과 신하가 서로 즐거워하는 음악을 만들라고 하니, 치소(徵招)와 각소(角招)가 바로 이것이다."79)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치소와 각소만 말하고 궁소와 상소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임금과 신하가 서로 즐거워하는 음악이 됩니까.답변 : 임금이 한번 유람하고 한번 즐기는 것과 창고를 열어서 백성들의 부족함을 보충해주는 것이 모두 백성을 위한 일이 아닌가. 前者回便。忙關修答。追念未安。繼而有日。未詢旅居經履更何如。瞻溯無已。義林衰上添衰。病上添病。精神氣力。枵然澌脫。而所餘者一箇虛殼而已。夫何可喩之有。問目一紙。可見讀書硏理慥慥不已之意。可䙡可䙡。謹以瞽說。逐條供答。其紕繆必多矣。幸加詳焉如何。近來得吾友書。見其文辭益進。必其實地功夫。長長而見於文辭者如此。曷不贊歎。惟益加鞭策。是望是望。老吾老章。推恩。足以保四海。不忍心章。苟能充之.足以保四海。推與充相似無分辨。而分而言之。或有不同然耶。推是自近及遠之意。充是積小成大之意。其實一也。景公說章。君臣相說之樂。徵招角招是也。但言徵角而不及宮商。何以爲君臣相說之樂耶。一遊一豫。與興發補不足。皆非爲民爲事者耶。 은혜를……있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서 "우리 어른을 어른으로 섬겨서 남의 어른에게 미치며, 우리 어린이를 어린이로 사랑해서 남의 어린이에게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다. 《시경》에 '처에게 모범이 되어서 형제에 이르고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기에 놓을 뿐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면 족히 사해를 보호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지 못하면 처자식도 보호할 수 없는 것이다. 옛사람이 일반인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다른 것이 없으니, 그 하는 바를 잘 미루었을 뿐이다.[老吾老以及人之老 幼吾幼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 詩云刑于寡妻至于兄弟以御于家邦 言擧斯心 加諸彼而已 故推恩 足以保四海 不推恩無以保妻子 古之人所以大過人者 無他焉 善推其所爲而已矣]" 하였다. 참으로……있다 《맹자》 〈공손추상(公孫丑上)〉에 "무릇 나에게 있는 사단을 모두 넓혀서 채울 줄을 알면, 마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샘물이 터져 나오는 것과 같다. 만일 사단을 채운다면 사해를 보호할 수 있고 채우지 못한다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라고 하였다. 임금과……이것이다 《맹자》 〈양혜왕하(梁惠王下)〉에서 "경공이 기뻐하며 나라 안에 크게 경계령을 내리고 교외로 나가 머물면서, 이에 비로소 창고를 열어 백성들의 부족한 것을 보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악관인 태사(太師)를 불러 '나를 위하여 군신(君臣)이 서로 즐기는 음악을 지어 보라.' 하였는데, 지금의 치소(徵招)와 각소(角招)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가사에 '임금 욕심 저지한 게 그 무슨 잘못이랴.' 하였으니, 임금의 욕심을 저지한 것은 임금을 사랑한 것입니다.〔景公說, 大戒於國, 出舍於郊, 於是始興發, 補不足, 召大師曰爲我作君臣相說之樂, 蓋徵招角招是也. 其詩曰畜君何尤. 畜君者, 好君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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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립에게 답함 答安良立 편지를 받들고서 자당(慈堂)께서 강녕하고 형제간에 화락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안이 되고 마음이 놓임이 또한 어떻겠는가. 가정에게 공부를 배우고 집안일을 주관하는 여가에 날마다 어진 벗들과 학문을 강론하고 서로 권면한다고 하니, 자네의 올해 일은 실로 대단히 다행스럽네. 더욱 더 힘써 노력하여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는 병이 날로 쌓여 황천(黃泉)과의 거리가 얇은 깁을 격한 것 같으니, 하늘이 어찌 이끌어줄 일이 있겠는가. 선부군의 문집 안에 〈동구일록(同仇日錄)〉이 실려 있지 않으니, 과연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탄식이 일지 않을 수 없네. 경립(景立)이 그 글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지 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유실됨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네. 시험 삼아 한번 가서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만일 있다면 반드시 다소간 다듬을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니, 나에게 그 글을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서경》 〈홍범〉에서 "상제께서 진노하여 홍범구주를 내려주지 않으시니"라고 하였으며, 또한 "하늘이 우(禹)에게 홍범구주를 내려 주시니."84)라고 하였습니다. 이에서 '상제[帝]'는 주재함으로 말한 것이며 '하늘[天]'은 리(理)로서 말한 것이니, 앞은 반드시 제(帝)라고 말해야 하고 뒤는 반드시 천(天)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대개 '천(天)이 진노한다.'고 하면 말이 되지 않음은 아니지만 이미 '진노하였다'고 하였으니 더욱 주재하는 상제에 매우 가깝습니다.답변 : 홍섭(弘燮)의 의심이 이런 질문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학문이 발전하는 소식이네.질문 : 공(功)을 당대에 세우고 덕을 후손에 드리우는데, 반드시 공은 당대에 대해 말하고 덕은 후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대개 공은 덕의 효과요 덕은 공의 근본이니, 당대에 세우는 것은 공이 덕에 비해 큽니다. 공을 말할 정도이면 덕의 넓음을 알 수가 있으니, 만대에 전하는 것은 덕이 근본이 됩니다. 그 근본이 있으면 그 말단은 절로 실행될 수 있습니다. 《서경》 〈미자(微子)〉에서 "신과 사람을 공경하였다."라고 하였는데, 반드시 신을 먼저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대개 신은 어렵고 사람은 쉬우니, 그러므로 먼저 그 어려움을 말한 것입니까.답변 : 공과 덕, 신과 사람에 대한 변론은 옳다.질문 : 《중용》의 서문에서 "일(一)은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85)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의 본심(本心)은 전적으로 도심(道心)으로 볼 수 없을 듯하니, 인심(人心)이 합쳐져 있는 것도 또한 본심입니다. 그렇다면 '정(正)'자는 또한 "성명의 바름에서 근원하였다.[原於性命之正]"86)에서의 정(正)자와 같지 않습니다.답변 : 인심(人心)이 바르면 모두 도심이네.질문 : "중(中)은 천하의 올바른 도이고, 용(庸)은 천하의 정해진 이치이다.[中者, 天下之正道, 庸者, 天下之定理]"87)라고 하였는데, 정(正)과 정(定), 도(道)와 리(理)는 나눠서 상대하여 말한 것입니다。대개 중(中)은 어떤 상황에 따라 존재하기 때문에 "정도(正道)"라고 하였고, 용(庸)은 평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정리(定理)"라고 하였습니다.답변 : 이와 같이 본다면 옳은 것 같네. 또한 모름지기 정(正)자 위에 '치우치지 않는다.[不偏]'는 글자를 붙여야 하며, '정(定)'자 위에 '바꾸지 않는다.[不易]'는 글자를 붙여야 비로소 옳네. 이를 알지 않으면 안 되네.질문 : 홍섭은 《맹자》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 상단의 "낮밤[日夜]으로 자라는 바."와 하단의 "낮밤[日夜]으로 자라는 바."88)에서의 '일야(日夜)'는 저 '낮밤'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철원은 "일찍이 전배의 말을 보건대 앞의 '일야'는 '낮과 밤'으로 말한 것이며, 뒤의 '일야'는 '하루의 밤'으로서 말하니, 모름지기 이와 같이 말하여야 바야흐로 본문의 올바른 뜻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답변 : 하단 철원의 생각이 옳네.질문 : 《중용》에서 "군자의 도는 비(費)하되 은(隱)하다."89)라고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솔개와 물고기가 바로 이 도인데, 다만 "군자의 도"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다만 이 장의 장하주(章下註)에서 "도를 떠날 수 없다"90)는 한 단락을 보면, 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도는 본래 떠날 수 없는데, 능히 떠나지 않는 자는 군자입니다. 수장(首章)에서 성(性)과 도(道)와 교(敎)에 대해 말하면서 군자를 그 주된 대상자로 삼아서 "군자는 보이지 않는 바에도 경계하고 조심한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명백하지 않겠습니까.답변 : 27장에서 "위대하도다. 성인의 도여! 양양(洋洋)히 만물을 발육하였다."라는 말이 또한 이 뜻이네.질문 :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재계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서."91)라는 말은 귀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시킨다는 것이니,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 한 근본에서 나오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이 이 백성을 낳을 때 선지자로 하여금 후지자를 깨우치게 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답변 : 그렇다네. 承書以知萱幃康寧。棣床湛樂。區區慰豁。何又如之。趨庭幹蠱之餘。日與賢朋友講討切德。良立今年事實。爲萬幸。益加勉勉。母負此好際會如何。義林病與日積。去黃瓖如隔紗。天何可提之有。先集中同仇日錄之不載。果不無未備之歎。未知景立至今藏弆其文字。而不至遺失否也。試一往焉而問之如何。如有則必不無多少澄栽處。爲之示及如何。帝乃震怒。不畀洪範九疇。又曰。天乃錫禹洪範九疇。帝以主宰言。天以理言。上必言帝。下必言天。盖天乃震怒。非不成說。而旣曰震怒。尢襯貼於主宰之帝也。弘變疑得至此。正是進歩消息。功加于時。德垂後裔。必言功於時。言德於後裔者何。盖功者德之效。德者功之本。加于一時者。功爲大。言功則德之廣可知。傅于萬世者。德爲本。有其本則末可得以舉矣。肅㳟神人。必先言神何。盖神難而人昜。故先言其難耶。功德神人之辨。得之。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此本心。似不當專以道心看。人心之合有者。亦是本心也。然則正字。亦與原於性命之正字。不同人心正。則皆是道心也。中者。天下之正道。庸者。天下之定理。正與定。道與理。分言者。盖中隨時而在。故曰正道。庸平常也。故曰定理。如此看似得。又須知正字貼上不偏字。定字貼上不昜字。始得矣。此又不可不知。弘燮以爲牛山之木上段日夜之所息。下段日夜之所息。此日夜便是那日夜。澈源以爲曾見前輩說。上日夜。以日與夜言之。下日夜。以日之夜言之。須着如此說。方可以合乎本文正義。下段是。君子之道。費而隱。天地鳶魚。皆是道也。待曰君子之道。盖只觀此章章下。道不可離一段。可見矣。道本不可離。而能不難者。君子也。首章言性道敎。而以君子爲主而曰。君子戒慎乎其所不睹云。豈不明且白乎。二十七章大哉聖人之道。洋洋乎發育萬物。亦此意。使天下之人。齊明盛服。使是鬼神使之。如天之生物使之一本。天之生此民。使先知覺後知。一義也。然。 상제께서……주시니 《서경》 〈홍범〉 제3장에서 기자(箕子)가 한 말로 "내가 들으니, 옛날 곤이 홍수를 막아 오행을 어지럽게 진열하자 상제가 진노하여 홍범구주를 내려 주지 않으니 이륜이 무너지게 되었다. 곤이 귀양 가 죽고, 우 임금이 뒤이어 일어나자 하늘이 우 임금에게 홍범구주를 내려 주니, 이륜이 펴지게 되었다.[我聞 在昔鯀 堙洪水 汨陳其五行 帝乃震怒 不畀洪範九疇 彛倫攸斁 鯀則殛死 禹乃嗣興 天乃錫禹洪範九疇 彛倫攸敍]"라 하였다. 일(一)은……것이다 이는 주자가 지은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에 보이는 내용으로, 《서경》 〈대우모(大禹謨)〉의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精)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는 구절을 해석한 것인데, 본문은 아래와 같다. "사람은 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상지라도 인심이 없지 않고, 또한 이 성(性)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으므로 비록 하우라도 도심이 없지 않으니, 인심과 도심이 두 가지가 방촌(마음)의 사이에 뒤섞여 있어서 다스릴 바를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천리의 공변됨이 끝내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정(精)은 인심과 도심 두 가지의 사이를 살펴 뒤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일(一)은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에 종사하여 조금도 간단함이 없어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일신의 주장이 되게 하고 인심으로 하여금 매양 도심의 명령을 듣게 하면, 위태로운 것이 편안하게 되고 은미한 것이 드러나게 되어 동(動)ㆍ정(靜)과 말하고 행하는 것이 저절로 과(過)ㆍ불급(不及)의 잘못이 없게 될 것이다.[人莫不有是形, 故雖上智, 不能無人心, 亦莫不有是性, 故雖下愚, 不能無道心, 二者雜於方寸之間, 而不知所以治之, 則危者愈危, 微者愈微, 而天理之公, 卒無以勝夫人欲之私矣. 精則察夫二者之間而不雜也,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從事於斯, 無少間斷, 必使道心常爲一身之主, 而人心每聽命焉, 則危者安, 微者著, 而動靜云爲, 自無過不及之差矣.]" 성명의 바름에서 근원하였다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의 "심(心)의 허령지각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과 도심이 다른 점이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는 형기의 사(私)에서 생겨나고 하나는 성명의 정(正)에서 근원하여, 지각을 하는 것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心之虛靈知覺 一而已矣 而以爲有人心道心之異者 則以其或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而所以爲知覺者不同]"라는 말에서 나왔다. 중은……이치이다 《중용장구》 제하(題下) 주희(朱熹)의 주에 정이(程頤)의 말을 인용하여 "편벽되지 않음을 '중'이라 이르고 변치 않음을 '용'이라 이르니, '중'은 천하의 정도이고 '용'은 천하의 정해진 이치이다.[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 天下之正道; 庸者, 天下之定理.]"라고 하였다. 상단의……자라는 바 《맹자》〈고자 상(告子上)〉에 보이는 말이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다웠는데, 대국(大國)의 교외(郊外)이기 때문에 도끼와 자귀로 매일 나무를 베어 가니,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밤낮으로 자라나는 바와 우로(雨露)가 적셔 주는 바에 싹이 나오는 것이 없지 않건마는, 소와 양이 또 따라서 방목되므로 이 때문에 저와 같이 탁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탁탁한 것만을 보고는 일찍이 훌륭한 재목이 있은 적이 없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비록 사람에게 보존된 것인들 어찌 인의의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그 양심을 잃어버린 것이 또한 도끼와 자귀가 나무를 아침마다 베어 가는 것과 같으니,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밤에 자라나는 바와 아침의 맑은 기운에 그 좋아함과 미워함이 사람과 서로 가까운 게 얼마 안 되는데, 낮에 하는 소행이 그 양심에 질곡을 채워 버리나니, 반복하여 질곡을 채워 버리면 그 밤에 맑았던 기운이 보존될 수 없고, 밤에 맑았던 기운이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와의 차이가 멀지 않게 된다.〔牛山之木 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 伐之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 牛羊 又從而牧之 是以 若彼濯濯也 人見其濯濯也 以爲未嘗有材焉 此豈山之性也哉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라 하였다. 군자의……은하다 《중용》 제12장에 보이는 말이다. 장하주에서……없다 주자는 장하주에서 "이 장은 자사가 한 말로 수장(首章)의 도를 떠날 수 없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라 하였다. 천하……차려입고서 《중용장구》 제16장에 "귀신의 덕이 성대하다.……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하고 옷을 잘 차려 입고서 제사를 받들게 하고, 뚜렷하게 그 위에 있는 듯하고 그 좌우에 있는 듯하다.〔鬼神之爲德 其盛矣……使天下之人齊明盛服 以承祭祀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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