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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28년 장윤문(張允文)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允文 同福縣監 官[着押]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07 1828년 1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윤문이 동복현감에게 봄이 되었으니 자신의 선산에 조경원이 투장한 묘를 파 내게 할 것을 청원한 소지 1828년(순조 28) 1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윤문(張允文)이 동복현감에게 봄이 되었으니 자신의 선산에 조경원(曺敬源)이 투장(偸葬)한 묘를 파 가게 할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윤문이 소지를 올린 이유는 지난 1826년 11월에 자신이 산송(山訟)으로 내북면(內北面) 웅곡(熊谷)에 살고 있는 조경원과 송사(訟事)하였는데 현령의 판결문에 '똑같이 양반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장 씨 양반이 3대 대대로 묘를 쓴 땅에 느닷없이 장사를 지냈으니 매우 교활하고 악랄하다. 게다가 금양(禁養)을 뺏고자 하니 엄하게 형문하여 징계해야 하지만 삼령오신(三令五申)의 도리에 있어 우선 앞으로의 상황을 보고 봄이 화창한 때를 기다려 속히 파서 옮기도록 하라'는 수령의 공정한 처분이 내려졌다. 이 때문에 감히 다시 번거롭게 소송하지 못하고 우선 해가 바뀌기를 기다렸는데 지금 봄이 시작되었으므로 앞 1826년의 소지를 점련하여 청원한 것이다. 장윤문은 이 소송에서 '조경원을 법정으로 잡아와서 그가 투장한 묘를 기한을 정해 파 옮겨 자신이 다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청원하였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1월 26일에 '봄이 화창해진 뒤에 투총(偸塚)을 파 갈 것이니 다시는 번거롭게 소송하지 말 것'이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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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敎旨李玹凢贈嘉善大夫工曺參判兼義禁府事者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五衛將光緖十八年六月 日考 依法典追贈[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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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登靑雲去予望靑山歸雲山相別已閱三歲 黃河不斷 白首相思 卽此淸和政履珍重 而德惟善政之在養民 則黎民之懷可想 而山人之懷方切 謹次勿染亭 韻奉呈琴軒歸夢幾登皋 三經莣時待我陶 搢笏瑤墀聲價大 佩魚金海暮譫齋 通兒爲復業燒栗 翟氏應須菊泛醪 來歲吾將者及告 西疇有事莫辭勞 山翁欲借匣裏琹 三倚靑藜玉胤尋 此是平生一片心 歲洋舊曲傳書音戊申巳月八日損友 寶巖山人 金萬亨 拜(皮封_앞면)寶巖山友 金生 詩書盆城 記室 傳納謹封(皮封_뒷면)全州 全州 籬谷宋 礪山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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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賀僉體大安耳 來汝之敎 旣感且銘 固宜奉事於濟濟之列 而是日卽亡子婦之練祥也 巧値相違何緣之薄也 不安則甚耳 餘企黙諒焉乙未三月一日服生文鍾植拜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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願以蓬 茫寒凝 猥蒙 感諾 感荷良深 謹未審 季冬令體貞吉 區區拱祝 僕 姑保昔樣已耳 第約婚吉日涓呈 倘無所碍耶 餘在續后 不備 惟下照己酉臘月八日裴錫祉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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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拜言 支離全春離索捱過 而今見夏令有日自願景此春亦夏亦寂莫懷緖誰與一破 此時有便 眞千萬望外 矧淂承惠疏珍重者乎 旣驚且感 名喩實難 謹審侍省棣體候連衛萬旺 覃上均慶 實聽哀溯 無任下忱 罪弟 頑縷尙延 而惟幸慈闈姑寧耳 鄙先集 實賴遠近士友血心相扶之力至此無礙利成 其爲幸也 何可盡耳 但事竣后 自外在靡 不有種種逆耳之言 而此則足可爲一笑破者 鉅事後類多如是 今古何殊也今則分緬已盡食可甘寢可夢 龍城去月已送人納一帙 而嶺信則有不佳者爲彼人小拘不淂一帙分編云耳 自聞此報 竦然若肝膽俱墜此豈他人事耶 已經歷此境中 念慮之所無礙者天也 冊價先來 此實吾兩間薄風送之者 安瘀心乎 要之者嗜其利乎 堂初分帙之時 固無或有在傍未安難言處 故預不斷言而至此者兄非弟心也 貸用戔 豈有不要之理耶 間倘可一次見願望之者深矣 餘荒迷不次 伏惟哀照 壬子四月十二日 罪弟 鄭憲圭 拜謝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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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재(任承宰)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任承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승재(任承宰)가 누군가에게 그간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을 표하면서 안부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이번 달 21일에 임승재(任承宰)가 보낸 간찰이다. 근래 상대방의 안부는 어떠한지 묻고 자신이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을 표했다. 마침 인편이 있어서 서신 한 장을 써서 올리지만 높은 안목을 갖춘 상대방이 보면 웃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직접 뵙고 올리겠다고 하였다. 특별한 내용은 없는 안부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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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日體候節若何 弟則一未進慰萬萬未安者耳 適有漢明便只是一張書呈 高眼看之 則難免其見笑矣 勿掛他眼焉 若何 萬端愁懷 非甚難免耳餘從次面叙 不備候禮今月念一日 任承宰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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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박정근(朴禎根)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朴禎根 全羅都觀察使 都使<押> □…□ 3顆(9.5×9.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162 1888년 2월에 박정근 등 29명이 전라감영에 올린 상서 1888년 2월에 박정근 등 29명이 전라감영에 올린 상서이다. 능주 송석면(松石面)에 사는 정의림(鄭義林)은 판서공(判書公) 정연(鄭演)의 11세손이다. 이들은 정의묵의 효행과 학행을 조정에 알리고 그가 관직에 등용되기를 여러 번 청원하였다. 이들이 능주목에 청원한 것이 셀 수 없이 많고 능주목에서 전라감영에 정의묵에 대한 사안을 보고한 것이 다섯 번, 전라감영에서 조정에 보고한 것이 두 번이 넘지만 아직까지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감영에 상서를 올린 것이다. 박정근 등의 상서에 대하여 전라감영에서는 학행이 이처럼 탁월하니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냐마는 국왕에게 보고하는 것은 더욱 신중해야 하므로 갑자기 가볍게 의논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상서(上書)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상서 외에도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상서의 경우 기두어에 '上書'라는 문구가 기재된다는 특징이 있다. 관에서는 이러한 소지류 문서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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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卯式吾道面吾道谷第一統第二戶 幼學朴相浩 年四十丙子 本密陽父 學生 龍伍祖 學生 文瑞曾祖 學生 聖輝外祖 學生 吳鳳觀 本寶城妻金氏 齡三十八 本金海父 學生 達秋祖 學生 喆宗曾祖 學生 麗章外祖 學生 韓興福 本淸州賤口婢古談 年六十二甲寅牧使[着押][周挾 字改印][綾州牧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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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鳳山精舍敬通竊伏惟棟樑一摧 南國大震安放之痛 孰有而孰無 至於門生親戚知舊從遊一節之痛 尤深一節也 然而一生一死 自生民以來 所未免也是以聖賢已歿 而吾輩生於數千載之下 奉之以師者 其貫道之文 載在方冊 目以視之 口以誦之 心以體之 日用動靜之間 行之則人也 捨之則禽獸也 嗚呼惜哉 弦窩先生雖歿 而遺文藏在篋笥 未知幾百年藏在篋笥爲蠧魚之食而乃已耶 或可付諸剞劂 光明于世耶 敢陳一言 蚓雖無爪牙之利筋骨之强 上食埃土 下飮黃泉 用心一也 吾輩心一 則何事不成跬步 而不休跛蹩 千里累土 而不輟邱山 崇成千里崇山都在腔子裏 則千萬諒燭 左記日子 左記場所 特爲枉臨 一以哭几筵失聲之哭 一以論斯文大議論 幸甚 玆敢敬告左記會所 鳳山精舍會日 二月二十九日 雨天翌日乙亥二月十五日 鳳山精舍發起人 李啓琮 李載春 盧鍾龍 鄭友源 李廷相 尹宗林 池應鉉 高光洙 金順模 劉秉龜 李啓翼 尹璟赫 奇東奭 高光瓚 吳東洙 金勝坤 朴魯宣 柳時浚 吳秉南 金在鍾 任漹宰 奇老善 李光秀 宋光世 羅鍾宇 朴日圭 李琫淵 金容涉 柳炳斗 宋鎔輝 梁孝黙 柳春淵 金容燻 崔潤魯[피봉]〈前面〉和順郡道林面草坊梁斯文會甲座下〈後面〉光州郡西倉面鳳山精舍弦窩高先生遺稿刊所通文右敬通事 斯文不幸 惟我弦窩高先生奄棄 後學吾黨之痛 孰有加於此哉 嗚呼 先生雖歿 遺文藏在巾笥 其欲不朽而將壽於來世 則豈非今日吾輩之責歟 是以去念九日之會 僉議循同 畧有措畫 雖然斯文大事 不敢輕擧 故玆奉定規錄于下方 仰質于高明 伏願益加努力 共濟大事 幸甚定規一. 刊役以三月一日始設事一. 遺稿校正 以四月一日爲始 有文各位 以本稿來準 俾無後悔 而非先生手筆 斷不入蒐輯事一. 刊費巨大義扶一款 必須大用心力 然後可以竣是役 則聲氣相應 志契相助 不限於從遊門生及有文之家 各自出義擔任事一. 義扶金必自躬臨刊所 而若勢有所不能 則卽付郵便 以鳳山精舍內司貨名義 而若受領證 則以刊所之章與司貨實印爲憑信事一. 該郡事一任於郡有司與總務 以防淆雜之弊 則雖本刊所巡郡有司 不與郡有司及總務幷行 則切勿信用事一. 刊費出義優助者 遺稿一帙進呈事乙亥三月二日 鳳山精舍儒會所發文[印]都有司金東洙副有司李光秀 吳東洙 尹喜祥 李啓翼校正 李鍾宅 高冕柱 奇東奭 高光烈 鄭琦 吳弼善 金箕錫 梁會甲 奇老善司書 梁鎰黙 李琫淵 鄭燾洪 奇淙燮 羅炳觀 林炳一 金珍鉉 金在鍾 林禎圭 朴炯緖 高在華 李炳宰司書 高在弘 朴魯烈 柳永稷 崔洙華 柳秉魯 鄭坊珪 李相皓 任明宰 許國馨監董 朴魯宣 李起俊 高光永 河東秀 曺光鎬 金永燦 白亨敦 崔仁煥 張安燮 朴璋柱 金永燮 宋在鶴 洪起唐 劉箕鍾 李敎台 金容環 李元雨監董 金炳瓘 李應相 丁秉燮 高光益 張永采 金正安 李炳夏 李銓亮 張興燦 金容涉 鄭在夏 宋良鎭 曺喜南 蔡允錫幹事 高在鶴 鄭允植 宋世根 宋泰謙 金天洙 劉秉周 金容實監印 鄭大鉉 尹璟赫 朴載元 尹宗林 安鍾基監印 朴日圭 宋鎔輝 林鍾炫 吳永烈 吳根浩 李贊鎬 尹一炳 李震休 梁夏黙 高光維 宋光世 鄭喆煥 鄭尙龜掌財 高濟萬 盧軫永 高濟鏞 李會春 金鍾律 金容鶴司貨 高在廷直日 劉秉龜 高光淑 金商順直月 金鍾㦳 吳壽根 高光冕書寫 金漢洙 柳達根 李駿範 劉貞熙 李春行 宋基鳳 金棕坤 李洪秀 金漢奎 文正基 吳炳敎 趙相紀 朴濟喆 金龍準 李伯休 安炯淳 吳平基 洪宇義 鄭海均 裴錦澤 奇男度 李允行 金容圭內務 奇觀燮 羅鍾宇 高光瓚內務 高永文外務 高光秀 池應鉉 尹永淇 朴升柱 丁鳳泰 高益柱 崔潤魯 成夏鼎會計 金勝坤 朴夏炯 吳炳鎰 梁時瑽總務 柳炳斗 任漹宰 吳秉南 梁孝黙 李灃來 李載春都監 李啓琮 朴魯禎 高光洙 李廷相 李喜凡 高維相 朴夏玉右敬通于斯文 座下郡有司吳然澤郡總務朴俊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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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70년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1顆(10.2×8.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 3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아무개를 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임명한 4품 이상 고신 1870년(고종 7) 3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아무개를 중추부사(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에 임명한 4품 이상 고신이다. 문서의 결락으로 수급자는 확인할 수 없으며, 발급 연호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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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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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乙卯春全州道科申蘭休 扶安 賦壯 任澈模 錦山李敬秀 光州 林象鉉 金堤張瓚植 龍安 吳泰善 昌平廉在善 寶城 李萬球 長水盧禹錫 長興 金孝懋 光陽李丙秀 光州 已上二十九人賦二十鄭仁文 高敞 表九人一入濟朴基洪 寶城 州河{水+奭} 同福金志旭 長興 上試觀察使徐憲淳鄭鍾甲 高敞鄭在弼 咸平金永楫 泰仁宋永祚 任實魏泰權 長興李宗模 靈光趙龍鉉 金堤崔錫翰 古阜權鍾泰 泰仁金文海 潭陽吳翼善 昌平 表壯成秉黙 龍潭張義錫 全州李應奎 南原任澈模 錦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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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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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경오년 광주식(光州式) 방목(榜目) 고문서-치부기록류-방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오년에 광주(光州)에서 설행된 식년시(式年試)의 합격자 방목 경오년에 광주(光州)에서 설행된 식년시(式年試)의 합격자 방목이다. 상시관은 윤자덕(尹滋德)이다. 초장(初場) 합격자는 1등 3인, 2등 7인, 3등 35인이고, 종장(終場) 합격자는 45인이다. 합격자의 이름을 나열하여 적고 그 아래에 거주지를 적었다. 식년시는 자(子)·묘(卯)·오(午)·유(酉)가 드는 해를 식년으로 하여 과거 시험을 설행하여 식년시라고 한다.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되고 대비과(大比科)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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茂長莊子山面民人等狀右議送事伏以救弊生弊甚違事軆以民虐民大傷風化故玆敢呼籲于 旬宣之下一一洞燭焉卽惟本縣之訓屯事已悉▣前呈是白在果訓屯則在於星洞元松莊子山面等地云而昨春良星洞人鄭洛源等數三人已與京監營吏爭頡這間所費逼側於該面是乎所旣曰屯在面故再三徵費已爲四五百金先被其孽民不支保是去乙噫彼人心壑慾無厭稱託營費虗張數爻欲售僥倖事甚無據故歲前良不得已呈議送至伏承嚴 題旣爲公決尤當懲縮是去乙不意今者彼等三人以本縣訓屯自京妥帖云云而又以京費欺罔 官家稱以得題當此窮春不顧民勢之惶惶威脅殘民歲前革罷之營費混同京費每結頭以十兩錢式分排于本面以至二千五百餘金是遣彼黨數十罔夜督捧急於公納民失魂魄家家號哭襁負相連或有轉移他官者又有避身他面者方將秧坂在卽統面內無一人設農之意將至空墟乃已故日前赴愬于官庭是白乎則噫彼鄭民咐囑左右壅蔽聦明終至白退哀此殘民將何冤情乎以若京費言之三人之四五朔浮費多不過爲五六百金者也而初云六千中云四千末云三千金云爾則可知其挾襍也已徃革罷之營費混同京費私自濫排至於本面二千五百金則可知其無法也究其所習罪固難逭生等不避猥越玆敢齊籲于 甘棠風下之下卽垂洞燭別關該邑使此無告轉壑之民庶有再生之望無任齊祝之至行下向敎是事巡相閤下 處分都巡使[署押]戊子三月 日金潤澤 康基斗 金汶榮 鄭淵益 金德秀 李建奎 李鍾蘭 李章和 吳永三 金處仲 朴明汝〔國〕 朴寬黙 林日新 李仲瑞 兪致榮 成夏京 辛宜黙 康原瑞 金周澤 鄭大源 等〈題辭〉鄭也捉致嚴繩杜弊向事隻在官十七日[官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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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김윤택(金潤澤) 등 등장초본(等狀草本)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金潤澤 茂長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8년 3월에 전라도 무장현 장자산면에 사는 김윤택·강기두 등 주민 20인이 무장현감에게 5, 6백냥에 불과한 경비전을 이미 순조롭게 끝난 영비와 뒤섞어 장자산면에 2,500냥을 함부로 분배한 것을 엄히 처분하여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혁파해 줄 것을 청원하기 위해 작성한 등장의 초본 1888년(고종 25) 3월에 전라도 무장현(茂長縣) 장자산면(莊子山面)에 사는 김윤택·강기두(康基斗) 등 주민 20인이 무장현감에게 5, 6백냥에 불과한 경비전(京費錢)을 이미 순조롭게 끝난 영비(營費)와 뒤섞어 장자산면에 2,500냥을 함부로 분배한 것을 엄히 처분하여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혁파해 줄 것을 청원하기 위해 작성한 등장의 초본이다. 장자산면은 경내 한 귀퉁이 영광의 경계에 처해 있어서 그동안 고질적인 폐단이 다른 면과는 달랐는데 흉년 때문에 민심이 늘 위태로워 유랑민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불행이 더해져 훈련원 둔전 일로 성동면(星洞面)과 원송면(元松面)이 매우 낭자하여 옆에 있는 장자산면에 두세 차례 징수한 금액이 족히 4, 5백냥이나 되었다. 주민들은 앞서 재앙을 입어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정낙원의 탐욕이 끝이 없어 영비를 핑계로 비용의 수효를 거짓으로 부풀린 탓에 어쩔 수 없이 지난 해에 의송하여 이미 공정한 판결이 났다. 그런데 뜻밖에 지금 또 경비전으로 관가를 기망하여 제사(題辭)를 받았다고 핑계 대는데 이런 춘궁기에 국세와 공전(公錢)을 마련해 낼 길이 없는 지경인데도 주민들의 위태로운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곤궁한 주민을 위협하여 장자산면에 매 결당 10냥씩을 분배하여 2,500여 냥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정낙원 도당 수십명이 장자산면의 무뢰배들과 동조하여 되어 밤낮없이 독촉하여 거둬들이는 통에 공납(公納)에 급급한 주민들이 넋을 잃고 집집마다 울부짖으며 다른 관으로 이전하거나 다른 면으로 피신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제 곧 모내기철인데 통면 안에 한 사람도 농사지을 뜻이 없으니 통렬히 뜯어 고치지 않으면 장차 텅 빈 땅이 되고야 말 것이다. 이때문에 김윤택 등이 무장현감에게 세세하게 통촉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경비전으로 말하자면 훈련원 둔전의 일에서 나온 것으로, 이미 둔전이 면에 있다고 하였으니약간의 비용은 차마 강하게 물리칠 수 없겠지만 3인이 네 다섯 달 소요되므로 경비전은 많아야 5, 6백냥에 불과한데도 처음에는 6천냥이라고 했다가 중간에는 4천냥이라고 하더니 마지막에는 3천냥이라고 하니 그 협잡(挾雜)을 알 수 있다. 이미 순조롭게 끝난 영비를 경비전과 뒤섞어 멋대로 침탈하였으니 그 무엄함을 알 수 있다. 백성으로서 백성을 학대하고 나라의 전결을 우롱하여 사사로이 함부로 배정하였다. 이에 장자산면 주민들은 무장현감에게 이 사건을 살펴서 별도로 엄히 처분하여 뒷날의 폐단을 영원히 혁파하여, 거의 다 죽어 가는 자신들이 소생할 가망이 있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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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寅昌平式 上試金世鎬賦 義李志容 寶城 李長秀 玉果詩 朴命耈 順天朴義彬 寶城 崔禹昌 南原尹奎莘 綾州 李亨坤 寶城朴齊翊 淳昌 文甲鉉 長興李誠鉉 長興 李珉祚 玉果金玽流 順天 宋源 興陽尹台{玉+憲} 南原 趙東英 淳昌柳觀基 長水 許湜 順天朴膺鍾 長水 李得龍 康津張性庸 全州 鄭基亮 長城孔爀淳 光陽 李奎伯 潭陽張臨秀 昌平 宋聲玉 昌平方泳奎 同福 曺錫龍 同福曺錫佑 光州 韓命臣 淳昌金鳴遠 南原 羅道興 羅州黃鍾儀 順天 楊大伯 樂安金鍾喆 任實 曺秉圭 昌平金秉凞 龍潭 安{玉+奕} 寶城曺錫禧 康津 羅一煥 光州權鳳壽 任實 金鎭奕 南原尹濟庸 淳昌 金泓 龍潭廉在洵 寶城 朴在浩 興陽金榮壽 鎭安 黃沇泰 光陽朴永模 寶城 金健仲 昌平李沇基 求禮 盧東鉉 淳昌秋永桂 潭陽 蔡圭憲 玉果金在鳳 光州 申德一 潭陽徐正佑 光陽 廉在卨 寶城權冑憲 南原 朴昌基 昌平高時恩 興陽 徐學洙 綾州李元孝 南原 鄭爀基 順天李炳孝 康津 崔命勳 礪山趙昌錫 順天 黃欽黙 南原林東圭 寶城 崔時英 和順許錫奎 寶城 金漢圭 順天曺秉奕 寶城 宋峻萬 同福李秉曄 茂朱 王道爀 求禮金聲圭 龍潭 徐漢鐫 光陽趙甲浩 昌平 梁泰永 羅州朴源喆 光州 金時馥 同福晉斗燁 玉果 金圭瑞 南原柳禧宗 谷城 曺錫琪 康津朴世休 鎭安 任在鎭 長興李最善 潭陽 孫弼益 南平金廷弼 綾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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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靣學堂里居化民張允文右謹言㦖欝情由事段民以先山禁養內山訟事幸蒙 城主矜恤之澤特爲得課之後刻期掘移之意今月初呈訴是乎則城主題音內春和後事當掘去勿復煩訴事下題是白乎所民雖切於㦖迫之情 官令之下今此更訴極爲惶悚無所逃罪然第伏念歲序則律烈之月已歸擧趾之日漸近是知春和不遠所訟之山此時不掘則於民於彼非但農時漸急科期又近觀光之際設農之時更以山訟事呼寃於法庭恐不爲兩便之道故玆敢緣由仰訴伏乞嚴明執■(法)〔公〕之下洞燭民之情狀是白良上項所訟山即刻掘移俾此 治下之民得蒙兩全之澤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正月 日〈題辭〉旣有納侤則雖移四五十步事當移葬而尙無移去之意此誠極可駭待氷觧卽爲移塚來報之意分付彼隻宜當事卄八 狀民[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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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장찬(張欑)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張欑 行縣監[着押] *周挾無改印, 1顆(墨印, 19.0×5.7)*1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22 1795년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사는 호주 장찬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795년(정조 19)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사는 호주(戶主) 장찬(張欑)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아버지 대신 새로 호주가 된 장찬의 직역은 유학이고, 나이는 32세 갑신생(甲申生)이며, 본관은 흥덕(興德)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유학 한신(漢臣) 76세 경자생, 할아버지 동지중추부사 효지(孝智), 증조 학생 치언(致彦), 외조(外祖) 학생 김진채(金振採)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장찬의 아내 이씨(李氏)는 나이 27세 기축생이고 본적은 전주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필달(苾達), 할아버지 학생 갑훈(甲勳), 증조 성균생원(成均生員) 상회(相檜), 외조 학생 이택후(李宅垕) 본관은 공주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은 예선(禮先)이고 나이 45세 신미생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돌이(乭伊), 어머니는 수영개(水永介)이다. 문서에 '호적단자(戶籍單子)'와 작성년인 '을묘식(乙卯式)'이 적혀 있고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동복현감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고, 임자년 호구와 대조를 마쳤다는 내용 등이 기재되어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장찬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准乙卯式戶籍單子內西靣學堂里第三十九統第二戶幼學張漢臣代子幼學欑年三十二甲申本興德父幼學 漢臣年七十六庚子祖同知中樞府事 孝智曾祖學生 致彦外祖學生金振採本光山妻李氏年二十七己丑籍全州父學生 苾達祖學生 甲勳曾祖成均生員 相檜外祖學生李宅垕本公州賤口秩婢禮先年四十五辛未父乭伊母水永介壬子戶口相準印 [周挾無改印][官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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