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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무진) 七日 戊辰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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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기사) 八日 己巳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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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임오) 二十二日 壬午 맑음. 덕진동 생부 묘에 성묘를 갔다. 옥전으로 가다가 남계당(南溪堂) 조카를 방문했는데 만나지 못했다. 오서방(吳書房) 집에서 점심을 먹고 석양 무렵에 옥전에 도착했다. 陽。德振洞生父墓省行。向玉田。 過訪南溪堂姪而不遇。午飯於吳書房家。 夕陽到玉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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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서 만노문(萬弩門, 철옹성의 정문인 남문)을 나와 수종(水宗)까지 40리를 가서 여막(旅幕)에서 점심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오후에 길을 떠났다. 소착(蘇鑿)이 반쯤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강물을 거슬러 내려가 청천강(淸川江)을 건너고, 안주(安州) 읍내에서 머물렀다. 이날 70리를 갔다. 未明登程, 出萬弩門, 至水宗四十里旅幕, 中火秣馬。 午後發程, 以蘇鑿之半氷, 挾流而下, 渡淸川江, 留安州邑內。 是日行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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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기】 14일(정미) 【同人記】 十四日 丁未 맑음.36) 장성의 사돈집에 도착했다. 陽。到長城査家。 원문에 2월 14일이 두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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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임인) 九日 壬寅 흐리고 비. ≪중용≫의 〈귀신장(鬼神章)〉을 보았는데, 정자(程子)의 설을 유양(游楊)34)이 얻었다고 하는 설은 옳지 않다. 노담(老聃, 노자)의 '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을 장수라고 한다.[死而不亡曰壽]'35)라는 설은 더욱 불가하다. 陰雨。看 ≪中庸≫鬼神章。 程子之說爲得游楊之說。 不可。老聃死而不亡曰壽之說。 尤不可。 유양(游楊) 유씨와 양씨.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의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유작(游酢, 1053~1123)과 양시(楊時, 1053~1135)를 아울러 부른 말이다. 유작의 자는 정부(定夫), 호는 광평(廣平), 시호는 문숙(文肅)이며 건양(建陽) 사람이다. 양시의 자는 중립(中立), 호는 구산(龜山), 시호는 문정(文靖)이며 검남(劍南) 사람이다. 그의 학문은 나종언(羅從彦)과 이동(李侗) 등을 거쳐 주자에게로 이어져 이학(理學)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죽어도 …… 장수라고 한다 ≪노자≫ 제33장에 나온 것으로, 원래는 '死而不亡者壽'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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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을묘) 二十五日 乙卯 맑음. 황충(蝗虫)162)을 잡았다. 陽。捕蝗。 황충(蝗虫) 메뚜기. 몸길이가 약 5센티미터인 황충과의 곤충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 널리 서식한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집단으로 이동하며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다. 메뚜기 떼가 지나간 곳에는 초목이나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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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갑술) 十四日 甲戌 맑음. 이한직(李漢稙)과 국기용(鞠基瑢)이 내방하였기에 함께 정자 위에 올라서 담론하였는데 마치지 못하고 돌아왔었다. 달 뜨는 밤에 답례하기 위해 이한직의 처소에 가서 국기용과 노인(魯認)163)의 ≪금계일기(錦溪日記)≫를 열람하였는데, 그 책에 "중원 사람들과 함께 일본에서 오는데, 파도가 맹렬하게 솟구쳤다. 중원 사람들이 그걸 보고 서로 말하기를 '중원의 경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 까닭을 물어보니, '큰 고래는 햇볕을 따라 올라와 물이 낮은 곳에서 논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陽。李漢稙・鞠基瑢來訪。 共上亭上談論。 未了而歸。月夕。 以回謝次。 到李漢稙寓舍。 基瑢覽魯錦溪日記。 有曰。 "與中原人。 自日本而來。 波濤洶聳。中原人見而相謂曰。 '中原界漸近'。問其故。 '長鯨承陽而上。 水淺之處遊也'云"。 노인(魯認, 1566~1624) 자는 공식(公識), 호는 금계(錦溪), 본관은 함풍(咸豐)으로, 나주 출신의 무관이다.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서 3년간 억류되었으나, 중국의 차관(差官) 임진혁(林震虩)의 배편으로 명나라로 탈출하였으며, 무이서원(武夷書院)에서 정주학(程朱學)을 강론하다가 1599년 귀국하였다. 저술로 일본에 억류되어 있을 때 지은 〈피부동고록(被俘同苦錄)〉・〈거왜수록(居倭隨錄)〉・〈왜국지도(倭國地圖)〉가 있고, 유집으로 ≪금계집(錦溪集)≫ 6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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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신묘) 初二日 辛卯 맑음. 문암리(門岩里)로 생부(生父)의 제사169)를 지내러 갔다. 陽。作門岩里生庭親祭之行。 생부의 제사 생부 김진현(金珍鉉)은 1896년 8월 3일에 졸하였다. 묘는 담양군 금성면 덕진동 안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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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기해) 十二日 己亥 맑음. 광주(光州) 장자동(長子洞)35)의 이희용(李熙容)36) -자(字)가 국서(國瑞)이며, 본관이 전의(全義)이다.- 이 와서 함께 묵으며 두 밤을 보냈다. 陽。光州長子洞李熙容國瑞全義人來。 同宿再經宵。 장자동(長子洞)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을 말한다. 장자동의 유래는 세종조의 명신 필문 이선제(李先齊)의 다섯 아들인 시원(始元)・조원(調元)・한원(翰元)・찬원(贊元)・형원(亨元)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을 '오원(五元)'이라 불렀는데, 오원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자, '학덕이 높은 장자가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들이 살았던 곳을 '장자동(長子洞)'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이희용(李熙容, 1853~1931) 자는 국서(國瑞), 호는 쌍석(雙石),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광주 흑석동에서 출생했다. 1874년 약관에 노사(蘆沙)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노사선생 사후에는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모셨다. 문집으로 ≪쌍석유고(雙石遺稿)≫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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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병오) 十九日 丙午 맑음. 시정(時政, 당시 정책)에 공동묘지를 정했는데,37) 근래에 민심이 소란한 것은 매장하는 일 때문이다. 나도 생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가 옥과에 있는데, 봉축(封築, 무덤을 만들 때 흙을 쌓아 올림)을 잘 하지 못하였고, 사초(莎草)38)를 경영한 지가 여러 해였다. 그러나 가도(家道, 집안 살림)가 넉넉지 못하여 뜻은 있어도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제 묘지의 일에 기한을 넘길 수 없어서 이웃인 유희적(柳羲迪)에게 간청하자 25민(緡)의 돈을 주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와 (묘지의 일을) 완성할 것을 도모했다. 陽。時政定共同墓地。 近日民心騷動。 以葬埋爲事。余亦生庭先妣山所。 在玉果。 封築不謹。 經營莎草者數年。 而家道不贍。 有意未就。今此墓事有限不得。 而懇隣人柳羲迪。 惠以二十伍緡文。 故還巢圖成。 시정 …… 정했는데 일제는 1912년에 묘지규칙을 제정하고 묘지를 공동묘지에 한정하였는데, 반발·시위 등으로 1919년에 거의 포기되었다. 사초(莎草) 무덤에 떼[잔디]를 입히고 다듬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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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정묘) 十六日 丁卯 맑음. 아름다운 산천을 찾아다니다 순창읍(淳昌邑)에 이르렀다. 다음날 아침 구항(龜項)16)으로 향했으나, 비가 와서 강창원(姜昌遠) 도유(道猷) 댁에서 머물렀다. 노사(蘆沙, 기정진)의 〈외필(猥筆)〉17)을 보았다. 陽。訪佳山麗水。 至淳昌邑。翌朝向龜項。 滯雨於姜昌遠道猷宅。看蘆沙〈猥筆〉。 구항(龜項) 현재 전북 순창군 팔덕면 구항마을을 가리킨다. 구항마을은 맨 처음 진주 강씨가 마을 터를 잡았으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거북이 목터라 하여 '구항'이라 칭했다 한다. 외필(猥筆) 기정진(奇正鎭)이 81세(1878)에 이기론(理氣論)에 대하여 지은 글로서, 당시 지식인들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수작(秀作)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정진(1798~1879)은 1798년 6월 3일에 전북 순창군 복흥면 구수동(九水洞)에서 기재우(奇在祐)와 안동권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字)는 대중(大中)이요, 호(號)는 노사(蘆沙)이며, 본관(本貫)은 행주(幸州)이다. 성리학에 대한 독자적인 궁리와 사색을 통하여 이일분수(理一分殊) 이론에 의한 독창적인 이(理)의 철학을 수립하였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손자인 우만(宇萬)과 김녹휴(金錄休)・조성가(趙性家)・정재규(鄭載圭)・이희석(李僖錫)・이최선(李最善)・기삼연(奇參衍) 등의 제자에게 전수되었으며, 많은 학자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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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무신) 十六日 戊申 흐리고 비. 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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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기유) 十七日 己酉 맑다가 밤에 비가 왔다. 陽夜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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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기해) 八日 己亥 흐리다가 저녁에 비 옴. 陰夕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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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경자) 九日 庚子 흐리고 비. 우레소리가 크게 진동하였다. 陰雨。雷聲大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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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신축) 十日 辛丑 흐리고 비가 옴. 雨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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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임인) 十一日 壬寅 개임. 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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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무자) 二十七日 戊子 맑음. 천기가 맑았다. 산중에 은둔하여 책력이 없으니, 밤에 다만 북두(北斗)를 보고 시절의 바뀜을 증험한다. 陽。天朗氣淸。遯跡山中無曆日。 夜只看北斗驗時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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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기축) 二十八日 己丑 맑음.〈안자전수위인지도(顔子傳授爲仁之圖)〉107)約 博禮 文服 擇膺 乎勿 中失 庸復 克禮 己知非非非非不之禮禮禮禮善未勿勿勿勿未嘗動言聽視嘗復 不行 知事之復克 日之復克 功之復克舍 用 三 犯實有多能則 則 月 而若若問問藏 行 不 不虛無寡不違 較 能仁不改其樂如忽忽 鑽仰欲有在在 彌彌罷所後前 堅高不立 能爲邦遠樂服乘行放侫韶周殷夏鄭人舞冕輅時聲 陽。〈顔子傳授爲仁之圖〉約 博禮 文服 擇膺 乎勿 中失 庸復 克禮 己知非非非非不之禮禮禮禮善未勿勿勿勿未嘗動言聽視嘗復 不行 知事之復克 日之復克 功之復克舍 用 三 犯實有多能則 則 月 而若若問問藏 行 不 不虛無寡不違 較 能仁不改其樂如忽忽 鑽仰欲有在在 彌彌罷所後前 堅高不立 能爲邦遠樂服乘行放侫韶周殷夏鄭人舞冕輅時聲 안자전수위인지도〈顔子傳授爲仁之圖〉 박세채가 1693년 후학을 면려하기 위해 지은 〈顔子傳授爲仁圖〉는 ≪남계집(南溪集)≫에 실려 있는데, 원문과 몇 글자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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