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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정묘) 十五日 丁卯 갬. 또 영대시를 지었다.영대가 만약 물욕에 가려지 않았다면,(靈臺若不蔽於物)움직일 때 곧고 고요할 때 텅 비어 저절로 관통하네.(動直靜虛自貫通)하늘의 밝은 명을 여기에서 볼 수 있으니,(天之明命於斯見)만화의 경륜도 이 가운데에서 묘하다네.(萬化經綸妙此中)만사가 밝게 드러난 것 이보다 더함이 없으니,(萬事著明無過此)뭇 사람들 보지 못해도 나 홀로 안 다네.(衆人不見獨吾知)고요할 때 보존하고 움직일 때 살피는 것이 성의 이치이니,(靜存動察誠之理)신령한 거북103)을 보배로 여기듯 경으로서 잡아야하네.(若寶靈龜敬以持)삼강오륜의 가르침은 연원이 깊으니,(三綱五敎淵源大)천고의 경전도 여기에서 유래했네.(千古經傳以是來)천지가 제 자리에서 만물을 화육하니,(天地位焉萬物育)이 속에서 중화의 때를 보아야 하네.(要看這裏中和時) 晴。又題靈臺詩。靈臺若不蔽於物。動直靜虛自貫通.天之明命於斯見。萬化經綸妙此中.萬事著明無過此。衆人不見獨吾知.靜存動察誠之理。若寶靈龜敬以持.三綱五敎淵源大。千古經傳以是來.天地位焉萬物育。要看這裏中和時. 신령한 거북 점치는 데 쓰는 큰 거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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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계유) 二十一日 癸酉 갬.〈삼가 지재의 원운에 차운하다〉(謹次止齋元韻)그칠 곳을 아는 것은 지극히 어려우니,(知其所止至難臨)의용은 정숙하고 옷깃 또한 단정해야 한다네.(當肅儀容且整襟)힘써서 성공해야 극을 쓸 수 있고,(力及成功能用極)이치가 주역에 통달해야 깊어진다네.(理通大易可鉤深)기질의 성을 누르고 천성을 따르며,(忍乎質性循天性)인심을 살펴서 도심을 확충해가네.(察得人心擴道心)지재라 편액하고 학문의 목적으로 삼아,(肆以扁齋爲學的)후학을 열어주고 풍교를 세우니 산림이 진동하네.(開來風敎動山林)집에 돌아왔다. 晴。〈謹次止齋元韻〉知其所止至難臨。當肅儀容且整襟.力及成功能用極。理通大易可鉤深.忍乎質性循天性。察得人心擴道心.肆以扁齋爲學的。開來風敎動山林.歸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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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갑신) 二十一日 甲申 흐리고 비. 김태규(金泰奎)와 함께 심의(深衣)23)와 참최복(斬衰服)을 재단하였다.심의(深衣)는 백세포(白細布)로 만드는데, 포의 너비는 1척 8촌이다.신척(身尺)으로 하는 것은 같으며,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손바닥 중심에 굽혀서 닿게 하여 그 가운데 마디를 취하며, 양쪽 가로 무늬를 머리로 해서 잰다.옷의 길이는 1척 8촌 3푼으로 하는데, 앞뒤가 모두 2폭이다.몌(袂, 소맷자락)의 길이는 1척 8촌 3푼이고, 거(袪, 소맷부리)는 곧 소매 끝에 1촌 반을 별도로 붙이는데, 거는 각각 2폭이다.치마의 길이는 3척 6촌 6푼으로 좁은 곳은 6촌이고 넓은 곳은 1척 2촌인 것이 12폭이다.옷깃은 4척인데 중간을 구부리면 2척이며, 넓이는 8촌이고 접으면 4촌이 된다. 옷깃 좌우 어깨 위에 각각 4촌을 재단해 넣는데, 너비는 1척 2촌이다. 진동이다.속임(續衽)24)은 1척 4촌 3푼을 넉넉하게 서로 바라보게 하여 두 조각으로 나누고 내외 옷깃으로 삼는다.단은 3촌으로, 중간을 구부리면 안팎이 모두 1촌 반이다.옷깃 단은 4촌으로, 중간을 구부리면 안팎이 2촌이다. 陰雨。 與金泰奎。 栽度深衣與斬衰服。深衣以白細布爲之。 布廣一尺八寸。同身尺。 令其左手中指。 屈着掌心。 取其中節。 兩橫紋頭爲度。衣長一尺八寸三分。 前後皆二幅。袂長一尺八寸三分。 袪卽袂口一寸半別付。 袂各二幅。裳長三尺六寸六分。 狹頭六寸。 闊頭一尺二寸者。 十二幅。曲袷四尺。 中屈則二尺。 廣八寸。 疊之則四寸。襟左右肩上。 栽入各四寸。 裕一尺二寸。진동。續衽一尺四寸三分。 有餘相望。 割之爲二片。 爲內外衽。緣三寸。 中屈則表裏皆寸半。襟緣四寸。 中屈則表裏二寸。 심의(深衣)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입던 옷으로 머리의 복건과 함께 착용하였다. 흰 비단으로 소매를 넓게 하여 옷깃, 소매 끝, 옷단에 검정색 선을 둘렀다. 허리에는 띠를 두르고 오색의 띠를 늘어뜨렸다. 이 옷은 중국 고대에서부터 있었던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 송나라로부터 주자학과 더불어 전해졌다. ≪예기≫ 39 〈심의(深衣)〉에 그 제도가 나와 있다. 속임(續衽) 옷깃을 잇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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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初七日 ○아침 전에 비를 무릅쓰고 출발하여 노고암(老姑岩)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신안서원(新安書院)15)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찬바람이 크게 불었다. 종일 비를 맞고 추위에 부대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간신히 전주 감영 서문 밖 주인 전종백(全宗伯)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이날은 무사도시(武士都試)16)가 있는 날로, 무사가 많이 모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몹시 짜증이 났다. ○朝前, 冒雨發程, 抵老姑岩朝飯。 抵新院中火。 午後寒風大吹。 終日冒雨觸寒, 其苦難耐。 艱到完營西門外主人全宗伯家留宿。 是日卽武士都試日也, 武士多會, 夜不秪枕, 可憤可憤。 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이다. 선조 21년(1588)에 주희와 한호겸(韓好謙)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무사도시(武士都試) 조선 시대 무사(武士)를 선발하기 위한 특별 시험으로, 중앙에서는 병조와 훈련원의 당상관이 군사와 동ㆍ서반의 종3품 당하관 또는 한량(閑良)을, 지방에서는 각 도의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중앙의 예에 의하되, 그 도의 수령(守令)ㆍ우후(虞候)ㆍ만호(萬戶) 및 그들의 자제를 제외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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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十三日 ○새벽에 출발하여 진창길을 가니 몹시 견디기 어려웠다. 병점(餠店)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화성(華城) 북문 밖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세동(細洞)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화성에 도착하였을 때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며칠 동안 고생 고생하여 이 성에 이르니(間關多日到此城)누대와 성첩이 서울보다 멋지구나(樓觀雉堞勝於京)선왕의 뜻을 깊이 걱정하고 염려하여(憂深慮遠先朝意)당시 하루도 안 되어 완공함을 송축하네(頌祝當時不日成) ○曉發, 泥路行, 極爲難堪。 抵餠店朝飯。 抵華城北門外午飯。 抵細洞留宿。 到華城時吟一絶曰: "間關多日到此城, 樓觀雉堞勝於京。 憂深慮遠先朝意, 頌祝當時不日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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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十四日 ○새벽에 일어나 과천(果川) 읍내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강을 건너 청파(靑坡,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의 영대(永大) 집에 이르니 영대는 입번(入番)42)하였다. 그길로 나와 청파 도로변 주막에서 유숙하였다. 심형이 오한으로 몸을 떨며 크게 아팠다. 몹시 걱정되었다. ○曉發, 抵果川邑內朝飯。 越江抵靑坡永大家, 則永大入番, 仍出靑坡路邊酒幕留宿。 心泂寒戰大病。 悶悶。 입번(入番) 관리가 관청에 들어가 숙직하거나 근무하는 일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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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三十日 한밤중에 말에게 꼴을 먹였다. 닭이 울자 출발하여 30리 냉정발소(冷井撥所)에 이르니 먼동이 텄다. 순안(順安) 읍내까지 6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갈현(葛峴)에 이르러 홍상룡(洪尙龍)과 서로 작별하였는데, 말이 지금 절뚝거리고 있으니 가탄스럽다. 평양(平壤) 영주인(營主人)25) 집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은 110리를 갔다. 오늘 동지사(冬至使)의 행차가 평양영(平壤營) 안에 들어와 매우 소란스러웠다. 中夜秣馬。 鷄鳴發行, 行三十里冷井撥所, 東方始明。 至順安邑內六十里, 朝飯秣馬。 至葛峴, 與洪尙龍相別, 而鬣者現有蹇病, 可歎。 至平壤 營主人家留宿。 是日行一百十里, 而冬至使行次, 今日入平壤營中, 甚擾矣。 영주인(營主人) 감영(監營)에 딸린 이속(吏屬)으로, 각 고을 관청의 사무를 연락하던 사람을 말한다. 영저리(營邸吏)라 이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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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병진) 二十三日 丙辰 맑음. 생모의 담제(禫祭)42)를 지내기 위해 문암리(門岩里)43)에 도착했다. 陽。生母禫祭次。 到門岩里。 담제(禫祭) 초상(初喪)으로부터 27개월 만에, 곧 대상(大祥)을 치른 그 다음 다음 달 하순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 부(父)가 생존한 모상(母喪)이나 처상(妻喪)의 경우에는 초상후 15개월 만에 지낸다. 김영찬의 생모 여양진씨는 1909년 12월 14일에 졸하였다. 문암리(門岩里) 담양군 고면 문암리로, 현재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문암 마을이다. 김영찬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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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정사) 二十四日 丁巳 맑고 바람. 죽사(竹史) 조기섭(趙驥爕)씨와 함께 서로 동반하여 가다가 부곡(釜谷)44) 앞에 이르러 헤어졌다. 평신기(坪新基)45) 사돈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후 과동(果洞)으로 향했다. 陽而風。與竹史趙驥爕氏。 相與作伴。 到釜谷前別離。入坪新基査家。 午飯後。 向果洞。 부곡(釜谷) 담양군 고면 부곡으로, 현재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가마골(부곡)을 말한다. 1760년경에 옥천조씨 문중의 황씨 할머니가 광덕리(지금의 문암리)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넘어와 살았다. 평신기(坪新基) 현재 전남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평신기 마을을 말한다. 1650년경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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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경인) 初一日 庚寅 맑음. 낡은 책을 뒤적거려보다가 우옹(尤翁, 송시열)의 직자결(直字訣)이 보여서 기록한다.〈우옹의 직자결〉직(直, 곧은 도리)으로서 마음을 보존하면 다만 하늘을 우러르나 땅을 굽어보나 부끄럼이 없을 뿐만이 아니다. 이 마음이 명쾌하여 그 의리에 있어서 공사(公私)나 사정(邪正)에 대해서 구분이 분명해지니, 자신을 수행하고 일을 하는 데에 반드시 유익함이 있다.또 '직'이라고 하는 것은 옳다는 뜻이다. 부직(不直)한 일은 마침내 불시(不是)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명백하게 직(直)을 볼 수 있다면 어찌 불시(不是)한 것이 있겠는가? 성현이 말한 '혹 권(權)168)을 따라야 할 곳이 있다'고 할 때의 그 '권'은 시(是)가 아님이 없다. 사리의 마땅함을 얻었다면 곧 직이 된다.만물이 생성될 때에 혹 지절(枝節)이 있으나, 이 이(理)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니, 또 이(理)의 직(直)이다. 무릇 사물의 직(直), 생물의 직(直)은 우리의 보배가 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형세가 부득이해서 권(權)을 쫓아 의(誼)에 합당한 것과, 지말(枝末)을 대신해서 근본[本]에 연계시키는 것도 있으니, 이 또한 사(事)의 직(直)이다. 이 직(直)은 마땅히 통관해서 보는 것이 옳지, 일단의 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직(直)자에는 마음을 보존하는 공부에 긴요함이 있다. 187자이다. 陽。飜閱塵篇。 見尤翁直字訣。 記之。尤翁直字訣。以直存心。 則非但俯仰無怍。 此心明快。 而其於義理。 公私邪正。 界限分明。 必有益於行己立事矣。且曰直者。 是之意也。其見不直事。 終歸於不是。如能明白見直。 則烏有不是者乎? 聖賢之所謂'或有從權處'。 而其權也。 非不是焉。事理之得當。 是直也。萬物之生成也。 或有枝節。 而此理之所不可無。 則亦理之直也。凡物之直。 凡生之直。 莫不爲吾人所寶。 而勢不得已。 從權而合誼者。 代支而連本者。 是亦事之直也。此直者。 當通觀可也。 不可以一端之直觀也。又曰直字。 於存心之功有要也。一百八十七字。 권(權) 권도(權道)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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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정미) 十五日 丁未 흐리고 비. 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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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임신) 十五日 壬申 맑음. 한밤중에 비가 내림. 유희적(柳羲迪)과 함께 치관(緇冠)41)을 의논하여 완성했다. 陽。夜半雨。與羲迪。 論緇冠以成。 치관(緇冠) 선비들이 평상시에 쓰는 검은 베로 만든 관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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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계유) 十六 癸酉 흐리고 비. 요즈음 가뭄이 심해 보리싹이 다 타들어 갔는데, 지금부터 비가 흡족히 오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뻐한다.〈송선비가 희우시를 찾기에 답함(答宋大雅索喜雨詩)〉우리나라 운명이 새롭지 않아서(吾邦命不新)태반이 혼(魂)이 나간 사람들이네(太半失魂人)구천(九天)까지 원기(寃氣) 서리고(九天徹寃氣)팔도(八道) 사람들 가슴속엔 티끌만 가득(八域滿懷塵)동해(東海)에 빠져 죽을 수 없으니42)(未得蹈東海)누가 솔토에 편안함을 그르다하랴(孰非率土寧)가뭄에는 단비밖에 도무지 계책 없으니(旱雨都無計)기뻐하는데 어찌 때를 가리겠나(喜何從及辰) 陰雨。近日旱甚。 麥苗盡焦。自今雨洽。 人心喜悅。答宋大雅索喜雨詩吾邦命不新。太半失魂人。九天徹寃氣。八域滿懷塵。未得蹈東海。孰非率土寧。旱雨都無計。喜何從及辰。 동해에 …… 없으니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 노중련(魯仲連)이 말하기를, "저 진(秦)나라가 방자하게 황제를 자칭하고 죄악으로 천하에 정사를 한다면, 나는 동해에 빠져 죽을 뿐이요, 내가 차마 그 백성은 될 수가 없다.[彼卽肆然而爲帝, 過而爲政於天下, 則連有蹈東海而死耳, 吾不忍爲之民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史記≫ 권83 〈노중련열전(魯仲連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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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을해) 二十五日 乙亥 맑음. 옥과(玉果) 목동(木洞)에 사는 정해필(鄭海弼)이 와서 말하길, "지금에 이르러 향교의 교궁(校宮)과 교토(校土)를 모두 일본에게 빼앗기겠다고 생각하여 그 일로 서울에 갔는데, 태극종교(太極宗敎)97)가 경성 서부 적선방(積善坊) 월궁동(月宮洞)98)에 있다는 것을 듣고, 가서 보니 주장자(主張者)는 여영조(呂永祚)99)였다. 통문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통문일자는 곧 공자 탄강 2461년 경술년(1910)이었다. 이어서 교사로 오도록 권하면서, 제유(諸儒)의 이름도 받아오기를 권하였다. 또한 공자교(孔子敎)라고 부르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陽。玉果木洞鄭海弼來云。 "窃想至今。 鄕校校宮與校土。 皆見奪於日本。 事上京。 聞有太極宗敎在京城西部積善坊月宮洞。 往觀之。 主張者呂永祚。出示通文。 通文日字。 乃孔子誕降二千四百六十一年。 庚戌也。因爲勸敎師來。 勸諸儒納名。 亦云孔子敎。" 태극종교(太極宗敎) 1909년 을사오적 암살 계획 등에 참여했던 여영조와 윤충하, 권상익 등이 유교 문화 수호 및 국권 회복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태극교종교회' 혹은 '태극교종'이다. 월궁동(月宮洞) 서울특별시 종로구 적선동에 있던 마을이다. 여영조(呂永祚, 1862~?)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일재(一齋)이다. 일제의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에 맞서 1895년 12월 통문을 돌리고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 1904년 허위·여중룡 등이 조직한 충의사(忠義社)에 가담하여 배일 언론 투쟁을 적극 전개하였다. 1909년 여영조는 윤충하·권상익 등과 기존의 개동교(開東敎)를 태극교로 확대 개편하였다.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여영조는 독립의군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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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병오) 十四日 丙午 흐림. 비 올 기미로 구름 끝이 검었다. 陰。雨意雲端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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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계미) 二十三日 癸未 맑음. 성묘를 하러 화면(火面) 가지봉에 있는 생모의 묘에 갔다. 이어서 하청(下靑)의 김세규(金世奎)댁으로 내려와 〈회헌신도비명(晦軒神道碑銘)〉을 보았다.〈문성공 회헌선생 신도비명(文成公晦軒先生神道碑銘)〉우리나라는 옛날 기자(箕子)가 홍범(洪範)116)을 다스려서 이륜(彛倫)을 펼치고 중하의 문명을 써서 오랑캐를 변화시켰는데, 뒤에는 깨달은 자가 드물어서 이교(異敎)의 함정에 빠진 것이 천여 년이었다. 고려 말에 성인의 도를 높일 줄을 알아서 국(國)에는 상(庠)117)과 향(鄕)에는 서(序)118)가 설치되니 문풍이 울흥해져서 여러 현인이 배출됨에 변화되어 중국처럼 되었다.또 육백여 년이 지남에, 내가 일찍이 그 사이에 반드시 호걸지사가 일어나 변하기 어려운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김학수(金鶴洙)・정은조(鄭誾朝)119)・이만규(李晩奎) 등 여러 신사가 그 옛 동료인 윤헌섭(尹憲燮)을 보내 ≪회헌실기(晦軒實記)≫ 한 책을 안고 수륙길 70리를 달려와 궐리(闕里)의 고택에 있는 나를 방문하게 하여 회헌의 〈신도비문〉을 써주길 요구했는데, 나를 성인의 후예라고 여겼던 것이다. ≪회헌실기≫를 살피고 여러 번 반복해 읽어보고는 곧 황홀하게 천여 년을 능히 변화시킬 수 있는 자는 실로 우리 회헌(晦軒) 안자(安子)이시다는 것을 깨달았다.안자는 고려 사람인데, 중국에 들어가 주자서를 보고 성문(聖門)의 적전이 됨을 알았다. 일찍이 말하길, "중니[공자]를 배우고자 한다면 먼저 회암[주희]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하고, 마침내 공자의 영정과 주자의 진영을 모사해 와서 집 뒤의 정사에 안치하고 조석으로 참배하였다. 이어서 집을 바쳐서 국학으로 삼게 하고, 전토와 노비를 바치고 창고를 갖추었으며 부릴 사람을 제공하였다. 다시 사람을 강남(江南, 난징)에 보내서 공자와 70제자의 화상, 그리고 예를 강(講)할 악기(樂器)와 육경(六經)120) 및 제자(諸子)・사서(史書) 등을 받들어 오게 함으로써 동방이 이로부터 문물이 성하게 되고 예속이 아름답게 되어 기자를 봉한 옛 땅에 부끄럼이 없게 되었다.여러 왕은 은덕에 보답하고 여러 선비는 우러러 받들어서 위로는 성무(聖廡, 문묘)에 제향하고, 아래로는 서원에서 향사한다. 동방 이학의 비조라고 칭하니 거의 과분한 칭찬이 아니다. 안자의 휘는 향(珦)이고, 시호는 문성(文成)이며, 회헌(晦軒)은 그의 호이다. 장지는 조선국 장단부(長湍府)의 대덕산 자좌(子坐)의 언덕에 있다.명에 이르길,동방의 나라에 안자가 있으니(東國有安氏子)세상에서는 회헌선생이라 부르네(世稱晦軒先生)공부자를 근본으로 삼고 회암을 배워서(宗夫子學晦菴)유도를 흥기시키고 밝혔네(興儒化道以明)큰 덕은 더욱 높아져서(大德兮彌崇)천년이 지나도록 체골은 편안하네(閱千歲體骨寧)선비들도 사모하고 나도 또한 사모하니(多士慕我亦慕)그 실상을 주워서 명으로 삼는다(摭其實以爲銘)공자탄강 2468년 정사년(1917) 윤 2월에 66대손 연성공(衍聖公)을 세습한 공영이(孔令貽)가 삼가 지음. 陽。省行於火面佳枝峯生母墓。因下下靑金世奎宅。 見〈晦軒神道碑銘〉。文成公晦軒先生神道碑銘。東國故箕子。 治衍洪範。 以敍彛倫。 用夏變夷。 而後覺者鮮焉。 致䧟異敎。 凡千有餘年。高麗之季。 知尊聖道。 國庠鄕序。 文風蔚興。 群賢輩出。 變而華之。又六百有餘年。 余嘗謂其間必有豪傑之士作。 故卒能變其難變也。日有金鶴洙・鄭誾朝・李晩奎諸紳士。 送其舊僚尹憲燮。 抱 ≪晦軒實記≫一部。 走水陸七十里。 訪余於闕里古宅。 徵〈晦軒之神道碑文〉。 以余爲聖嗣也。按實記而三復之。 乃恍然。 於能變千有餘年者。 實爲我晦軒安子也。安子高麗人也。 入中國。 見朱子書。 知爲聖門嫡傳。嘗曰。 "欲學仲尼。 先學晦菴"。 遂模聖幀及朱子眞。 安於宅後精舍。 朝夕瞻謁。 仍獻宅爲國學。 納土田臧獲。 備廩供役。復遣人于江南。 奉先聖及七十子之像。 倂講禮樂器六經子史。 以東於是乎文物之盛。 禮俗之美。 無愧爲箕封故域。列王崇報。 諸儒尊奉。 上以躋聖廡。 下以享書院。 稱東方理學之祖。 殆非溢美也。安子諱珦。 諡文成。 晦軒其號也。葬在朝鮮國長湍府大德山子坐原。銘曰。 東國有安氏子。 世稱晦軒先生。宗夫子學晦菴。 興儒化道以明。大德兮彌崇。 閱千歲體骨寧。多士慕我亦慕。 摭其實以爲銘。孔子誕降二千四百六十八年。 丁巳閏二月日。 六十六代孫。 世襲衍聖公。 孔令貽。 敬題。 홍범(洪範)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으로, 홍범은 천하를 다스리기 위한 아홉 가지의 원리이다. 기자(箕子)가 주 무왕(周武王)에게 가르쳐 준 것으로 곧 오행(五行)・오사(五事)・팔정(八政)・오기(五紀)・황극(皇極)・삼덕(三德)・계의(稽疑)・서징(庶徵)・오복(五福)을 말한다. 상(庠) 고대의 지방 교육기관을 말한다. 삼대(三代)에서는 그 명칭이 달랐다. 즉 하(夏)나라에서는 교(校), 은(殷)나라에서는 서(序), 주(周)나라에서는 상(庠)이라고 불렀으며, 학(學)이란 표현은 세 나라가 공통적으로 사용하였다. 서(序) 고대의 지방 교육기관을 말한다. 삼대(三代)에서는 그 명칭이 달랐다. 즉 하(夏)나라에서는 교(校), 은(殷)나라에서는 서(序), 주(周)나라에서는 상(庠)이라고 불렀으며, 학(學)이란 표현은 세 나라가 공통적으로 사용하였다. 정은조(鄭誾朝, 1856~1926) 자는 노언(魯言), 호는 연재(淵齋),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1880년(고종17) 증광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과 사간원에서 여러 관직을 거친 뒤 1887년 서장관이 되어 청(淸)나라에 다녀왔다. 육경(六經) 춘추 시대(春秋時代)의 여섯 가지 경서. ≪역경(易經)≫, ≪서경(書經)≫, ≪시경(詩經)≫, ≪춘추(春秋)≫, ≪악기(樂記)≫, ≪예기(禮記)≫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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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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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갑술) 十二日 甲戌 흐림. ≪학포양선생문집(學圃梁先生文集)≫56)의 〈우부(愚賦)〉를 보고 기록한다.하늘이 성품을 사람에게 주심이여(皇賦則而畀人)어찌 성인에게는 후하고 우인에게는 박하게 했으랴(胡聖豊而愚嗇)기품의 청탁으로 인연하여(緣氣稟之淸濁)혼명(昏明)의 구별이 있는 것이라(有昏明之區別)밝은이는 진실로 상지(上智)가 되니(明固造乎上智)이 혼우(昏愚)함을 홀로 슬퍼하는구나(竊獨悲此昏愚)조수의 발톱과 어금니도 없으면서(無鳥獸之爪牙)성현과 같은 두로(頭顱)57)를 지녔구나(同□□之頭顱)당우를 짓고 편히 살면서(構堂宇而安居)곡식을 먹고58) 비단옷을 입는구나59)(知食粟而衣帛)엄연한 구규(九竅)60)를 갖춘 형체를 지녀(儼九竅以成形)하늘과 땅 사이에 명을 받고 서있구나(命兩間而中立)그 타고난 덕이 같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非厥德之不若)총명한 본 바탕을 잃는구나(喪聰明之良質)시청과 언동으로부터(自視聽與言動)행기와 접물에 이르기까지(曁行己與接物)옳지 아니한 부류를 따라서 쫓으니(非義類焉是從)인기(人紀)61)가 없어져도 걱정하지 않는구나(蔑人紀而不恤)임금으로는 하나라 걸과 상나라 수요(君之夏桀商受)신하로는 비렴과 악래62)가 그랬다(臣之飛廉惡來)재앙이 있는데도 어리석음이 너무 심하여(愚已甚於禍稔)집과 나라가 망해도 슬퍼하지 않았다(家國敗而莫哀)아! 사람의 성품은 본래 착하여(嗟人性之本善)이물(異物)처럼 치우치고 막히지 않는 것이다(異物類之偏塞)- 아마 한 구절이 빠진 것 같다. -혹시라도 사사로움 극복하고 반성을 한다면(儻克己而反求)어리석어도 고명으로 나아가는 법(愚可進乎高明)시(柴)63)는 어리석었어도 능히 효도를 하였고(柴由愚而克孝)삼(參)64)은 노둔하였어도 덕을 이루었다(參由魯而德成)저 영무자의 지우(智愚)와(彼智愚之寗武)안자의 예우(睿愚)65)여(與睿愚之顔子)참으로 우(愚)의 특출한 분으로서(信其愚之卓立)고산을 우러르나66) 기대하기 어렵구나(仰高山而難企)슬프다 나의 기질이 못났음이여(悵余質之淟涊)학문이 누추하고 행실도 삐뚤어졌다(學凡陋而行乖)군자에게 버림받아67)(爲君子之所棄)소인의 무리될까 두렵도다(恐小人之同儕)그러나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별하라68)는 교훈을(然學問思辨之訓)가만히 자사의 글에서 복응하였다(竊服膺乎思書)마땅히 백배의 공부를 하며 쉬지 않아(當百功而不措)성(誠)을 간직하여 처음대로 회복하리라(庶存誠而復初)어찌 자포자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여(詎同暴棄之愚)벌레와 물고기처럼 될 수가 있겠는가69)(甘若蟲而若魚)이처럼 마음이 굳지 못할까 염려하여(慮玆心之不固)잠(箴)을 지어 나를 깨우치노라(因作箴而警余)잠에 이른다(箴曰)마음은 본시 비어있는 것(心兮本虛)들어가고 나가고 방향이 없구나(出入無鄕)어쩌다가 형체에 부려지면(一爲形役)방자하고 미치고 하는구나(乃肆乃狂)공자는 이를 잡아 간직하라70) 하셨고(孔稱操存)맹자는 이를 해치면 성을 잃는다71)고 하셨다(孟稱梏亡)경(敬)하여 이를 지키고(敬而守之)성(誠)으로서 독실히 공부하라(誠以篤功)그런 뒤에야 우(愚)를 깨고서(然後破愚)부딪히는 곳마다 훤히 트이리라(觸處皆通)-선생의 휘는 팽손(彭孫)으로, 기묘 명인이다. 정암선생(靜菴先生, 조광조)을 염빈(斂殯, 입관하여 안치하는 것)하였다. 시호는 혜강으로, 부지런히 베풀고 사사로움이 없는 것[施勤無私]을 '혜(惠)'라 하고, 연원이 두루 통하는 것을 '강(康)'이라 한다.- 陰。看 ≪學圃梁先生文集≫ 〈愚賦〉。 記之。皇賦則而畀人。 胡聖豊而愚嗇。 緣氣稟之淸濁。 有昏明之區別。 明固造乎上智。 竊獨悲此昏愚。 無鳥獸之爪牙。 同□□之頭顱。 構堂宇而安居。 知食粟而衣帛。 儼九竅以成形。 命兩間而中立。 非厥德之不若。 喪聰明之良質。 自視聽與言動。 曁行己與接物。 非義類焉是從。 蔑人紀而不恤。 君之夏桀商受。 臣之飛廉惡來。 愚已甚於禍稔。 家國敗而莫哀。 嗟人性之本善。 異物類之偏塞。 【恐脫一句】。 儻克己而反求。 愚可進乎高明。 柴由愚而克孝。 參由魯而德成。 彼智愚之寗武。 與睿愚之顔子。 信其愚之卓立。 仰高山而難企。 悵余質之淟涊。 學凡陋而行乖。 爲君子之所棄。 恐小人之同儕。 然學問思辨之訓。 竊服膺乎思書。 當百功而不措。 庶存誠而復初。 詎同暴棄之愚。 甘若蟲而若魚。 慮玆心之不固。 因作箴而警余。 箴曰。 心兮本虛。 出入無鄕。 一爲形役。 乃肆乃狂。 孔稱操存。 孟稱梏亡。 敬而守之。 誠以篤功。 然後破愚。 觸處皆通。【先生諱彭孫。 己卯名人。斂殯靜菴先生。諡惠康。 施勤無私曰惠。 淵源流通曰康。】 학포양선생문집(學圃梁先生文集)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문집인 ≪학포집(學圃集)≫을 말한다. 양팽손의 자는 대춘(大春)이고, 호는 학포(學圃), 본관은 제주(濟州)로, 능성(綾城)에서 태어났다. 1510년(중종 5)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생원시에 합격하고, 1516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며, 또 현량과(賢良科)에 발탁되었다. 1519년 10월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김정 등을 위해 소두(疏頭)로서 항소하였다. 이 일로 인해 삭직되어 고향인 능주로 돌아와, 중조산(中條山) 아래 쌍봉리(雙鳳里)에 작은 집을 지어 '학포당(學圃堂)'이라 이름하고 독서로 소일하였다. 1630년(인조 8) 김장생(金長生) 등의 청으로 능주 죽수서원(竹樹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818년(순조 18) 순천의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추향되었다. 저서로는 ≪학포유집≫ 2책이 전한다. 시호는 혜강(惠康)이다. 두로(頭顱) 백발의 쇠한 머리를 말한다. 곡식을 먹고(食粟) 식속(食粟)은 별로 하는 일 없이 곡식만 축내는 인간이라는 뜻인데, 조교(曹交)가 맹자에게 "나도 문왕(文王)처럼 키가 큰데 어째서 문왕이 못 되고 곡식만 먹습니까?"라고 물은 데서 나온 말이다.(≪맹자≫ 〈고자 하(告子下)〉) 곡식을 …… 입는구나 원문에는 '知食粟衣帛'이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知食粟而衣帛'라고 되어 있다. 구규(九竅) 눈・코・입 등 인체(人體)의 모든 구멍으로 된 부분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인기(人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비렴과 악래 비렴(飛廉)・악래(惡來)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간신(奸臣)이다. 시(柴) 공자의 제자 고시(高柴)를 말한다. 자는 자고(子皐)이며, 어버이 상에 삼 년 동안 울고 웃지 않았다.(≪예기≫ 〈단궁 상(檀弓上)〉) 삼(參)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을 말한다. 자는 자여(子輿)이고 학문을 함에 성실하고 돈독하게 하여 마침내 공자의 학문을 전수했는데, ≪논어≫ 선진(先進)에 "증삼은 노둔하다.[參也魯]"고 한 말이 있다. 영무자의 …… 예우(睿愚) 유종원(柳宗元)의 〈우계시서(愚溪詩序)〉에 의하면 "공자가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했으니, 그는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체했던 사람이요, 또 공자가 안자(顔子)를 일러 '내가 안회와 종일토록 말을 했으되, 어기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 같다.' 했으니, 안자는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은 체했던 사람이라,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도가 있는 세상을 만나서 도리에 어긋나고 일에 거슬렸다. 그러므로 모든 어리석은 이 중에 나만큼 어리석은 이는 없는 것이다.[甯武子邦無道則愚, 智而爲愚者也. 顔子終日不違如愚, 睿而爲愚者也. 皆不得爲眞愚. 今余遭有道, 而違於理, 悖於事. 故凡爲愚者莫我若也.]"라고 하였다.(≪유하동집(柳河東集)≫) 고산을 우러르나 ≪시경(詩經)≫ 〈소아(小雅)·차할(車舝)〉의 "높은 뫼를 우러르며 큰길을 따라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군자에게 버림받아 원문에는 '爲君子所棄'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爲君子之所棄'라고 되어 있다. 배우고 …… 분별하라[學問思辨] ≪중용장구≫의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벌레와 …… 있겠는가 원문에는 '甘若蟲若魚'라고 되어 있으나 학포집에는 '甘若蟲而若魚'라고 되어 있다. 이를 잡아 간직하라[操存] 조즉존(操則存)의 준말로, 마음을 다스려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孔子)께서 이르기를 '잡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하셨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이를 …… 잃는다[梏亡] 물욕의 구속을 받아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말로,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인의의 마음이 없겠는가. …… 낮과 밤에 자라나는 것과 새벽녘의 기운이 그 호오가 남들과 서로 가까운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낮에 하는 소행이 이것을 제어하여 사라지게 한다.[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라고 하였다. 새벽녘 사물과 접하지 않아 기운이 청명할 때에 발현되는 미약한 양심(良心)이 낮에 행하는 불선한 행위에 의해 없어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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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을해) 十三日 乙亥 맑음.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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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정묘) 六日 丁卯 맑음. 〈성학도(聖學圖)〉를 보았다.사계(沙溪)101)가 일찍이 한밤중에 그[송시열]를 불러 가로되, "너는 심성정의(心性情意) 등의 글자를 아느냐?"라고 했다. (송시열이)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다만 주설(註說)에서 몽롱하게 보고 지나쳤으니, 어찌 분명하게 알겠습니까?"라고 했다.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심(心)은 그릇과 같고, 성(性)은 그릇 속에 있는 물과 같다. 정(情)은 물을 쏟아내는 것과 같다. 이 물을 저장하고 때때로 쏟아내는 것이 기(器)이다. 이 성을 함양하고 이 정을 발하는 것이 심(心)이니, 이것이 심과 정의 구별이다. 이 정이 이미 발한 뒤에 경영하고 기획하는 것은 의(意)이다. 한 가지 일을 지향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지(志)이다. 사와 지는 서로 가깝지만, 다만 지는 크고 사는 작다. 염려(念慮)는 사에 속하는 것이지만, 려(慮)에는 근심하고 헤아린다는 뜻이 있다."라고 했다.또 말씀하시기를, "정(情)이란 부지불식간에 불쑥 나타나는 것이요, 자기에게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나타난 것을 경영하고 꾀하는 것이 의(意)이다. 여기에 이른 연후에야 비로소 자신에게서 말미암기 때문에 ≪대학≫에서는 성정(誠情)이라 하지 않고 성의(誠意)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陽。看〈聖學圖〉。沙溪。 嘗於夜裏呼之曰。 "爾知心性情意等字乎?" 對曰。 "尤庵只於註說。 朦朧看過。 豈得分明識破乎?" 曰。 "心如器。 性如器中之水。情如水之瀉出者。貯此水而有時瀉出者器也。涵此性而發此情者心也。 此心情之別也。此情旣發之後。 經營謀劃者意也。指向一事而欲之者志也。思與志相近。 但志則大。 而思則小也。念慮則思之屬。 而慮有虞度之意矣。" 又曰。 "情是不知不覺闖然發出。 不由自家者也。 以此發出者。 經營謀劃者。 意也。至此然後。 始由自家。 故 ≪大學≫不曰誠情。 而曰誠意也。"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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