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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을유) 二十五日 乙酉 -전몽작악(旃蒙作噩)-. 【旃蒙作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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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정묘) 1927년(丁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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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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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무자) 二十七日 戊子 -저옹곤돈(著雍困敦)-. 맑음. 위문차 사창리(社倉里)에서부터 당촌(堂村)에 이르렀는데, 금장(錦丈)이 자기 선조 제봉(霽峰)6)의 시를 읊었다. 집에 돌아와 기록해 둔다.세상사 참으로 같아 늙으면 인적 끊기니,(閱世眞同老斷輪)서호의 달빛 아래 홀로 낚싯줄 드리우네.(西湖烟月獨垂綸)옹의 말에 수양은 다른 기술 없다하니,(翁言修養無他術)한밤중에도 신묘한 기운 여전히 보존한다네.(中夜尙存一氣神) 【著雍困敦】。陽。慰問次。 自社倉里至于堂村。 錦丈誦自家先祖霽峰詩。還巢記之。閱世眞同老斷輪。西湖烟月獨垂綸.翁言修養無他術。中夜尙存一氣神. 제봉(霽峰)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의병장인 고경명(高敬命)을 가리킨다.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霽峰), 본관은 장흥(長興),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광주 압보촌(鴨保村) 출생으로 부친은 대사간 고맹영(高孟英)이다.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능하였다. 고경명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光州)의 의병 6천여 명을 이끌고 금산(錦山)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금산의 성곡서원(星谷書院)과 종용사(從容祠), 순창의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제봉집》과 각처에 보낸 격문을 모은 《정기록(正氣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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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기축) 二十八日 己丑 -도유적분약(屠維赤奮若)-. 맑음. 【屠維赤奮若】。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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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정해) 二十六日 丁亥 -강어대연헌(疆圍大淵獻)-. 매우 추움. 【疆圍大淵獻】。極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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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계미) 二十三日 癸未 -소양협흡(昭陽協洽)-. 맑음. 【昭陽協洽】。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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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갑신) 二十四日 甲申 -알봉군탄(閼逢涒灘)-. 흐리고 비. 【閼逢涒灘】。陰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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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임오) 二十二日 壬午 -현익돈장(玄黓敦牂)-. 맑음. 【玄黓敦牂】。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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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아침을 먹은 뒤 출발하였다. 돈탁 나룻가에 이르러 학윤을 기다렸으나 해가 이미 정오가 되도록 여태 오지 않아 몹시 괴로웠다. 날이 늦은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쫓아오라는 뜻을 가게 기둥에 써 붙여 두고 출발하였다. 수신치(水信峙) 아래 이르러 부르는 사람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만나 보니 바로 학윤이었다. 그길로 동행하여 고개를 넘어 성부(成部) 장터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노자가 다 떨어져 길가 시골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일행이 마다하였다. 저물녘 국진(掬津) 객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朝飯後, 發程。 抵敦托津頭, 留待學允, 而日已午矣, 尙今不來, 苦哉苦哉。 以日晩之致, 不得已以追及之意, 書付假家柱離發。 抵水信峙下, 有人呼之, 故留待見之, 則乃學允矣。 仍與同行, 越嶺抵成部場墟療飢。 以路資之乏盡, 欲入路邊村家, 而同行不肯。 暮抵掬津店留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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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기묘) 二十一日 己卯 -도유단알(屠維單閼)-. 맑음. 태조대왕(太祖大王)이 포은선생(圃隱先生)을 쳐서 죽인 일에 대해 조정에서 시비를 분별하라고 하자, 신이 애오라지 답하였다.60)주나라에서는 백이의 청절을 포용해,(聖周容得伯夷淸)해치지 않고 수양산에서 굶어죽게 하였지.(餓死首陽不死兵)그러나 그날 선죽교에서는,61)(善竹橋過當日事)정 선생을 모신 이 아무도 없었네.(無人扶去鄭先生) 【屠維單閼】。陽。太祖大王加兵圃隱先生。 辨是非於廷。 臣聊以答之。聖周容得伯夷淸。餓死首陽不死兵.善竹橋過當日事。無人扶去鄭先生. 태조대왕(太祖大王)이 …… 답하였다 연안 이씨 가승보에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이 지은 시로 나온다. 세조 2년에 전라도관찰사로 있던 이석형(李石亨)이 익산을 순시하던 중 사육신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착잡한 심경을 중국 고사를 빌어 〈이녀죽(二女竹)과 대부송(大夫松))〉이라는 시 한 수를 지었는데, 이 시 때문에 이석형은 고변을 당하여 세조 앞에 끌려와서 국문을 받게 되었다. 세조는 "경은 정몽주가 고려에서는 어떤 사람이고 우리 조선에서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석형은 왕이 하문한 것을 시로써 올리겠다 하고 이 시로 답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날 선죽교에서는 1916년 3월 27일 일기에는 '善竹橋過當日事'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는 '善竹橋當日事'로 '過'자가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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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경진) 二十二日 庚辰 -상장집서(上章執徐)-. 맑음. 【上章執徐】。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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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初五日 ○아침 전에 성우(成友)가 먼저 출발하였다. 나와 두 송씨와 함께 출발하여 능측(陵側)29) 객점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여산(礪山) 제각(祭閣)에 이르렀으나, 일행이 오지 않아 몹시 의아하고 답답했다. ○朝前, 成友先發。 余與兩宋發程, 抵陵側療飢。 抵礪山祭閣, 同行不來, 甚爲訝㭗。 능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익산 쌍릉으로 보인다. 마한(馬韓)의 무강왕 및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고,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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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오전에 일행이 와서 함께 산소에 올라가 성묘하고 제각으로 내려왔다. 오후에 노원(魯源)이 서울의 일가 종륜(鍾崙)과 함께 왔다. 본읍(本邑)에 사는 일가인 낙(洛)과 필(泌)도 왔다. 이 외에 별도로 와서 참석한 사람이 없어 아주 놀라웠다. 밤사이 무열 씨가 글을 짓고 오서 객이 글씨를 썼다. ○午前同行入來, 與之上山所省拜, 下來祭閣。 午後魯源與京中宗人鍾崙入來。 本邑宗人洛與泌亦來。 此外別無來參之人, 可駭可駭。 夜間武說氏製狀, 烏栖客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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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계사) 初三日 癸巳 -소양대황락(昭陽大荒落)-. 흐림. 폭풍이 불고 지붕이 날렸다. 밤에 눈이 내렸다. 【昭陽大荒落】。 陰。 暴風發屋。 夜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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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七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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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입추. 추천(秋川)의 사적을 기록한다.공의 이름은 준철(俊哲)이고, 자(字)는 치도(穉道)이며, 호(號)는 추천(秋川)으로, 하남(河南) 부자 이천(伊川)과 승국충신 건천(巾川, 程廣)의 후예이다. 연원이 있는 대성(大姓)으로, 사문의 망족(望族, 명망이 높은 집안)이다. 7세조 필영(必永)이 광주(光州) 덕산(德山)으로부터 비로소 담양(潭陽) 목면(木面) 대추리(大秋里)15)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6세조는 만주(萬周)이고, 5세조는 이복(履福)이며, 고조는 경수(景洙)인데, 타고난 재질이 영특하여 열두세 살 때 능히 시서(詩書)에 통달하였고, 부모 섬김을 지극히 효성스럽게 하였으며 상을 당해서는 여묘살이를 했다. 증조부 취옹(醉翁) 상권(尙權)은 천성이 효순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섬겼고, 온 고을이 추중(推重)하였다. 할아버지는 달승(達承)이고, 아버지는 한평(漢平)인데, 덕행을 쌓고 은거하니 가풍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머니는 추성(秋城) 국씨(鞠氏)이니, 또한 두문동(杜門洞) 72현 중의 한 사람인 사간(司諫) 유(襦)의 후손 윤관(允觀)의 딸로, 부녀의 덕과 행실이 높아서 능히 태교할 줄을 알았으며, 숭정후 4 기축년(1829) 7월 9일에 공을 담양부(潭陽府) 지침리(祗砧里)16)의 집에서 낳았다.공은 타고난 자태가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영명 활달하고 노성하게 엄숙하여 바라본 사람은 저절로 공경심이 일어났다. 성품이 바르고 청명하며 간정하고 고결하여 악인(惡人)과는 함께 서 있지 않은 것이 마치 몸이 더러워질 듯이 했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는 늙을수록 더욱 독실해졌으며, 과거공부를 일삼지 않고 온전하게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썼다. 이단(異端)을 멀리하고 바른 학문을 곧추세웠으며, 한결같이 천질(天秩)의 예(禮)로써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경전을 안고 홀로 서 있는 것이 마치 세찬 물결 속에 있는 지주(砥柱)와 같았고 벽처럼 우뚝 선 기상이었다.정축년(1877)에 아버지의 상(喪)을 당했고, 정해년(1887)에 어머니 상을 당했는데, 상례와 장례에서 예를 다했고, 한결같이 주자가례를 따르며 건천(巾川)의 뜻을 이었다. 삭망(朔望)으로 성묘를 하고, 춘추(春秋)로 옛집을 방문하여 취옹(醉翁)의 일을 서술하였는데, 효성이 지극한 것은 천성이 그래서인가, 가훈이 그래서인가? 현회(顯晦, 유명해지는 것과 은폐되는 것)에 개의치 않으며, 알아주지 않아도 성낸 기색이 없으니 군자인가, 군자로다. 항아리가 자주 비어도 걱정하지 않고, 자식을 기르지 못했어도 유감이 없으니, 명(命)을 알아서인가? 명을 아는 것이다. 배우자는 밀양 박씨 세은(世殷)의 딸로 또한 아름다운 덕(德)이 있어 아내의 도리를 지킬 수 있었다. 후사가 없이 죽어서 아우 준혁(俊赫)의 아들을 자식으로 삼았다.만년에 평장동(平章洞) 친산(親山) 아래의 역촌(驛村)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친묘(親墓)를 우러러 보니, 그 성효(誠孝)는 세상에서 필적할 사람이 드물다. 갑진년(1904) 정월 초일일에 남산(南山)의 본제(本第, 본가)에서 죽으니, 향년 76세였다.평생 동안 지은 시문(詩文)과 수문록(隨聞錄) 등을 기록한 것은 대개 공의 여사(餘事)인데, 영포(令抱, 남의 손자를 존칭하는 말) 경호(璟灝)가 모아가지고 와서 나에게 한마디의 말을 청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평소 친하게 지낸 정이 있는지라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듣고 본 것을 간략히 기록하여 아름다운 자취를 이어가길 권면한다.〈망제(亡弟) 희중(希中)을 제사하는 글〉유세차(維歲次) 무오년 7월 병술삭 25일 경술에, 형이 망제 희중의 영령에게 고하노라.아! 슬프도다.(嗚呼哀哉)너는 나보다 뒤에 태어났는데,(爾後我生)어찌 나보다 먼저 갔느냐.(胡先我逝)목숨은 비록 정해져 있다지만,(命雖有定)어찌 아우가 먼저 죽는단 말인가.(豈如弟厲)한평생이 가난하여,(一生艱難)살아갈 계책도 없었고,(生活無計)세상의 도는 쇠미해져,(世衰道微)또 가세까지 잃었구나.(又爲失勢)죽음에 이르도록 변하지 않은 것은,(至死不變)바름을 얻은 조예였는데,(得正造詣)하루아침에 영결(永訣)하고,(一朝永訣)저승과 이승이 서로 막히게 되었네.(幽明相滯)보고 싶은 맘 비록 간절하지만,(欲見雖切)한 번이라도 볼 길 전혀 없네.(無路一睇)아, 슬프도다.(嗚呼痛哉)지금 사람 중에는,(凡今之人)형제만한 이 없으니,(莫如兄弟)외모(外侮)를 누가 막아주고,(外侮誰禦)곤경을 만나면 누가 구제해줄까.(遇險誰濟)내 마음이 비통하여,(我心悲傷)속절없이 상체(常棣)17)시만 읊조리네.(空詠常棣)세월이 빠르게 흘러,(日月流邁)어느덧 상제에 이르니,(奄及常制)비창함을 이길 수 없어(不勝悲愴)상제(上帝)에게 호소하려 하네.(欲訴上帝)척령(할미새)이 언덕에 있고,(脊令在原)기러기떼 물가에 있는데,(鴻鴈居汭)나 홀로 쓸쓸히(我獨踽踽)어디에서 박(匏)처럼 매여 살까.18)(居何匏繫)마음이 목석이 아니니,(心非木石)어찌 처창하지 않겠는가.(寧不愴悽)통곡하며 길게 부르짖고서,(痛哭長呼)눈물 흘리며 제에 임하니,(涕淚臨祭)옛적에 화목함을 생각하네.(念昔旣翕)담락하는 형제를,(湛樂弟兄)지금은 볼 수 없으니,(至今不見)애통하고 평안치 않도다.(哀慟不平)도로에서 짐 짊어질 때,(擔負道路)나의 짐을 네가 함께했었지.(我任爾幷)함께 먹고 마심이 화락하였고,(飮食衎衎)마른 밥에 나물국 먹어도,(糗飯藜羹)가족이 함께 살며,(同居家門)내 이랑을 네가 갈았지.(我畝爾耕)병란을 함께 피하고,(共避兵亂)위험도 함께 행한 것을,(危險共行)절절이 생각하니,(節節思之)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如聞容聲)너의 아들 철수는,(爾子哲洙)점점 자라서 충영(充盈)해지고,(漸漸充盈)나씨댁에 시집간 딸과 유서방도,(羅女柳婿)같이 와서 맞이하는구나.(亦爲來迎)이에 변변찮은 제물을 갖추어,(玆具菲薄)질명(質明, 날이 샐 무렵)에 바치고,(以陳質明)영혼에 바라노니,(靈祈祈)내려와서 정성을 흠향하시라.(庶幾享誠)소를 치면서 소치는 것 잊고서,(牧牛忘牧牛)시냇가 논두렁에서 한가함을 틈타 잠든다.(澗畔借閒眠)또 인간사를 멀리하니,(且遠人間事)물소리만 꿈속을 감돈다.(水聲繞夢魂) 立秋。記秋川事蹟。公諱俊哲。 字穉道。 號秋川。 河南夫子伊川之后。 勝國忠臣巾川之裔也。以淵源之大姓。 斯文之望族。七世祖諱必永。 自光州德山。 始居潭陽木面大秋里。六世祖諱萬周。 五世祖諱履福。 高祖諱景洙。 天才英特。 十二三歲能通詩書。 事親至孝。 因喪居廬。曾祖醉翁諱尙權。 天性純孝。 事親至誠。 一鄕推重。祖諱達承。 考諱漢平。 有陰德潛光。 而家風有素。妣秋城鞠氏。 亦杜門洞七十二賢中司諫襦之后。 允觀之女。 幽閑靜貞。 能知胎敎。 而崇禎四回己丑七月九日。 生公于府中祗砧里。第天姿粹美。 英達夙成儼然。 人望自然生敬。雅性淸明。 簡貞高潔。 不與惡人立若將浼焉。其於事親。 老而彌篤。 不事擧子業。 全務爲己學。遠異端扶正學。 一以天秩之禮爲己任。抱經獨立。 如頹波之砥柱。 壁立之氣像也。丁丑丁外艱。 丁亥丁內艱。 喪葬盡禮。 一遵朱子家禮。 繼巾川之志。朔望省楸。 春秋訪舊。 述醉翁之事。 純孝至誠。 天性以然歟。家訓以然歟。不以顯晦介意。 不爲不知慍色。 君子乎。 君子也。瓠婁空而不憂。 子不育而無憾。 知命歟知命也。配密陽朴氏世殷之女。 亦有淑德。 能執婦道。卒以無嗣。 以弟俊赫之子爲子。晩居平章洞親山下驛村。 朝夕瞻望親墓。 其誠孝世罕與儔。甲辰正月初一日。 歸終于南山本第。 享年七十六也。平生所著詩律文。 與所記隨聞錄等篇。 蓋公之餘事。 而令抱璟灝蒐取。 以來請余一辭。余竊想。 平昔親厚之誼。 不敢辭。 略記聞見。 以勉趾美。〈祭亡弟希中文〉維歲次。 戊午七月丙戌朔。 二十五日庚戌。 兄告于亡弟希中之靈。嗚呼哀哉.爾後我生。胡先我逝.命雖有定。豈如弟厲.一生艱難。生活無計。世衰道微。又爲失勢.至死不變。得正造詣。一朝永訣。幽明相滯.欲見雖切。無路一睇.嗚呼痛哉.凡今之人。莫如兄弟。外侮誰禦。遇險誰濟.我心悲傷。空詠常棣.日月流邁。奄及常制。不勝悲愴。欲訴上帝.脊令在原。鴻鴈居汭。我獨踽踽。居何匏繫.心非木石。寧不愴悽.痛哭長呼。涕淚臨祭。念昔旣翕.湛樂弟兄。至今不見。哀慟不平.擔負道路。我任爾幷.飮食衎衎。糗飯藜羹。同居家門。我畝爾耕.共避兵亂。危險共行。節節思之。如聞容聲.爾子哲洙。漸漸充盈。羅女柳婿。亦爲來迎.玆具菲薄。以陳質明。靈祈祈。庶幾享誠.牧牛忘牧牛。澗畔借閒眠.且遠人間事。水聲繞夢魂. 대추리(大秋里) 담양군 구암면 대추리로, 현재 담양군 봉산면 대추리에 해당된다. 지침리(祗砧里) 담양면 지침리로, 현재 담양군 담양읍 지침리이다. 상체(常棣) 형제의 우애를 읊은 시로 《시경》 〈소아(小雅)〉에 들어있다. 박처럼 매여 살까 '포계(匏繫)'는 무용지물을 뜻한다. 《논어》 〈양화(陽貨)〉에 "공자가 이르기를 '내 어찌 뒤웅박이겠느냐. 어찌 매달려 있기만 하고 먹지 못할쏘냐.[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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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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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晦 9월[剝月]19) 그믐에, 취하여 〈지선주(止善酒)〉를 지었다.아아, 이학(異學)이 봉기하여 우리 부자(夫子, 공자)의 도(道)를 알지 못하고 천하를 바꾸고자 하니, 이 때문에 근심이 적지 않다. 근심을 해소하는 계책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이니, 조금만 마셔도 문득 취하여 낯빛이 풀리고 귀가 뜨거워지며 장(腸)이 풀려 배고픔을 면하게 된다. 때로 붓을 뽑아 선왕의 도를 조술(祖述)한다. 요(堯)는 '윤집궐중(允執厥中)'20)이라 하였고, 순(舜)은 '유정유일(惟精惟一)'을 더하였다. 우(禹)는 도를 탕(湯)에게 전하였고, 탕은 이 도를 문왕ㆍ무왕ㆍ주공에게 전했으며, 주공은 이 도를 우리 부자(夫子, 공자)에게 전했다.21) 부자는 '우리 도는 일이관지(一以貫之)'22)라고 말하였고, 문인인 안자는 '학이지지(學而知之)'23) 하였으며, 증자는 조술(祖述)하여 전하였고, 부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는 그 도가 실전될 것을 근심하여 《중용》을 지었다.이단(異端)의 도는 나날이 새롭고 성대해졌지만, (우리 도는) 그 전함이 민멸(泯滅)되어, 곧 우리 도가 붙어 있는 것은 언어와 문자의 사이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도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성(亞聖)인 맹부자[맹자]의 공이다. 송나라 하남(河南)의 두 부자[이정(二程)]께서 나오게 되자 선왕의 도가 찬란하게 다시 세상을 밝혔다. 남송에 이르러 천년에 한번 맑아지는 황하(黃河)가 다시 맑아지게 된 것인가? 신안 부자(新安夫子, 주자)가 다시 일어나 위로 일천 성인의 도를 조술하자 사문이 크게 밝아지고 이륜(彛倫)이 펼쳐졌다. 이후로 제현이 계속 이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망령된 저들은 사도(斯道)의 중함을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향방을 알지 못하니, 지금에 뜻이 있는 자가 어찌 근심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술을) 마시며 스스로 지켜, 술을 '지선주(止善酒, 지극한 선에 머물게 하는 술)'로 삼는다.옛날에 예락(醴酪)24)이 있어 의적(儀狄)25)이 술을 만들었는데, 숭백(崇伯)의 아들이 싫어한 것은 부모를 돌아보고 봉양하고자 해서 그런 것이다.26) 주시(周詩, 시경)에 이미 이르기를, '이미 술에 흠뻑 취하였고, 이미 덕에 배가 불렀도다[旣醉以酒, 旣飽以德]'27)라고 하였으니, 후세에도 금할 수 없었고, 제사에 술이 없으면 성대하지 않고, 즐거운 잔치에 술이 없으면 풍성하지 않은 것은 그 뜻이 그러해서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晉)의 처사 정절(靖節, 도연명)은 갈건(葛巾)으로 술을 걸렀고28), 선정(先正)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는 술을 그칠 때 쓰기를 그쳤으니, 후생 말학이 어찌 (술을) 마셔 근심을 잊지 않을 수 있겠는가? 醉而題〈止善酒〉。古有醴酪。 儀狄作酒。 崇伯子惡旨。 以其顧養而然也。《周詩》旣曰。 '旣醉以酒。 旣飽以德' 則後世禁之不得。 而祭祀非酒不殷。 宴樂非酒非盛。 以其旨之然也。故晉處士之貞節。 漉用葛巾。 金河西之先正。 止以寫止。 後生末學。 豈不飮而忘憂也哉。嗚呼。 異學蜂起。 不知吾夫子之道。 欲以易天下。 以是之憂不少。解憂之計。 常常引飮。 飮少輒醉。 則怡顔熱耳。 解腸免飢。於時抽筆。 而祖述先王之道。堯曰 '允執厥中'。 舜加之以'惟精惟一'。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ㆍ武ㆍ周公。 周公以是傳之吾夫子。夫子曰 '吾道一以貫之'。 門人顔子。 學而知之。 曾子述以傳之。 夫子之孫子思子。 憂失其傳。 而作《中庸》矣。異端之道。 日新月盛。 其傳泯焉。 卽吾道之寄。 不越乎言語文字之間。 而傳其道者。 亞聖孟夫子之功也。至於有宋河南兩夫子出。 而先王之道。 粲然復明於世。至於南宋。 千一淸之。 河復淸歟? 新安夫子復起。 上述千聖之道。 斯文大闡。 彛倫惟敍。此後諸賢。 繼繼承承。至于今日。 妄彼人生。 不知斯道之爲重。 而倀倀然不知向方。 當今之時。 有志者。 寧不憂也? 故飮而自衛。 以酒爲止善酒。 박월(剝月) 박월(剝月)은 《주역》의 64괘(卦) 중 박괘(剝卦)에 해당하는 달로 음력 9월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윤집궐중(允執厥中) '진실로 그 중도를 잡아야 한다.'라는 의미로,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일관되게 하여 진실로 그 중도(中道)를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는데, 그 주(註)에 "요임금이 순에게 고할 때 다만 '진실로 그 중도를 잡아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순임금이 우에게 명하였으니, 또한 그 까닭을 미루어 자세히 말한 것이다.[堯之告舜, 但曰 '允執其中', 今舜命禹, 又推其所以而詳言之.]"라고 하였다. 우(禹)는 …… 전했다 한유의 〈원도(原道)〉에 "요는 이 도를 순에게 전하고, 순은 이 도를 우에게 전하고, 우는 이 도를 탕에게 전하고, 탕은 이 도를 문왕ㆍ무왕ㆍ주공에게 전하고, 그들은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가에게 전했는데, 맹가가 죽은 뒤에는 전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之孟軻, 軻之死, 不得其傳焉.]"라는 유가(儒家)의 이른바 도통설(道統說)이 나온다. 우리 …… 일이관지(一以貫之) 모든 이치가 하나의 이치로 관통된다는 뜻이다. 공자가 증자(曾子)에게 "우리 도는 하나로써 모든 것을 꿴다.[吾道一以貫之]" 한 데서 온 말이다.(《논어》 〈이인(里仁)〉) 학이지지(學而知之) 배워서 이치를 아는 현인(賢人)의 공부를 뜻한다.(《논어》 〈계씨(季氏)〉) 예락(醴酪) 예(醴)는 하룻밤 만에 담근 감주(甘酒), 즉 발효가 덜 되고 멈춘 초보적인 단계의 술을 말하며, 락(酪)은 초(醋)를 가리킨다. 의적(儀狄) 의적(儀狄)은 우(禹) 임금 때에 술을 잘 빚었던 사람이다. 하우씨(夏禹氏) 이전까지는 감주(甘酒)만 있고 술은 없었는데 우 임금 때에 이르러 의적이 술을 만들어서 우 임금에게 바치자, 우 임금이 마셔 보고 이르기를 "후세(後世)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마침내 의적을 멀리했다고 한다.(《전국책》) 숭백의 아들 …… 것이다 숭(崇)은 나라 이름이며, 백(伯)은 작위(爵位)이다. 우 임금의 아버지인 곤(鯤)을 숭(崇)에 봉한 까닭에 《국어(國語)》에서 그를 숭백(崇伯)이라 하였다. 그 아들이란 우 임금을 말한다. 《전국책》 〈위책〉에 우임금이 술을 질타한 내용이 있고, 《맹자》 〈이루 하〉에 우임금이 맛좋은 술을 싫어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또한 '부모를 돌아보고 봉양하고자 해서 그런 것'은 《맹자》 〈이루 하〉의 '불고부모지양(不顧父母之養)'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미 술에 …… 불렀도다 《시경》 〈대아(大雅)·기취(旣醉)〉에 "이미 술에 흠뻑 취하였고 이미 덕에 배가 불렀도다. 군자께선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시기를.[旣醉以酒, 旣飽以德。君子萬年, 介爾景福]"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의 처사 …… 술을 걸렀고 도연명은 음악을 알지 못하면서 소금(素琴) 한 장(張)을 가지고 있는데 줄이 없었다. 매양 술과 쾌적한 일이 있으면 어루만져 희롱하여 그 뜻을 붙였고, 여름에 북창 아래 누워 있다가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 하였다.(《진서(晉書)》 〈도잠전(陶潛傳)〉) 이백(李白)이 이를 인용해 지은 〈장난삼아 정율양에게 주다[戱贈鄭溧陽]〉라는 시에서 "소금은 본래 줄이 없고, 술 거를 땐 갈건을 썼다네. 맑은 바람 부는 북창 아래 누워, 스스로 태고 적 사람이라 하였네.[素琴本無絃, 漉酒用葛巾. 淸風北窓下, 自謂羲皇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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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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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1일(임진) 初一日 壬辰 -현익집서(玄黓執徐)- 날씨 갬. 혹자가 도(道)를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물었다. (내가) 답하여 말하길, "선유(先儒)가 말씀하기를, '가르치는 것 또한 많은 방법이 있다'고 하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가르침은 등급을 뛰어넘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순서를 따라 점차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을 바탕으로 해서 이끌어주고 곁에서 격려하며 점차 연마하고 성취하도록 하고, 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을 확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玄黓執徐】。晴。或問敎道。答曰。 "先儒曰。 '敎亦多術。' 竊想。 敎不可躐等。 卽循序漸進。 而因其固有而導之。 誘掖激勵。 漸摩成就。 擴充其仁義禮智之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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