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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二十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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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눈발이 날렸다. 이날은 바로 춘상갑(春上甲, 입춘 뒤의 첫 번째 갑자일)이다. 有飛雪點下, 是日卽春上甲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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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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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二十八日 간촌의 박생(朴生) 두 사람이 돌아갈 것을 고하였기 때문에 구전으로 병이 차도가 있다는 기별을 가지고 갔다. 이 흥양(李興陽)은 연일 노복에게 서신을 보내 안부를 물었다. 관교지(官敎紙)3)를 창동(倉洞)의 박 승지(朴承旨) 집에 보냈는데, 나는 병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들것에 실려 가려고 했다. 박 영(朴令)이 두세 번 전갈(傳喝)하여 "병이 이미 이와 같으니 비록 오지 않더라도 어찌 일의 체모에 손상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으므로 고지(誥紙)만 보냈다. 저녁 무렵에 써서 보냈으니 기쁘고 다행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이조 낭관은 전적으로 원 좌랑(元佐郞)을 의지하였는데, 원 좌랑이 공적인 일 때문에 사직원을 내어4) 반드시 체차되었을 것이라 하니, 이를 장차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조 낭관 4인 중에 한 사람은 이미 회헌(晦軒) 조 상서(趙尙書)가 선시(宣諡)하는 행렬에 갔으며, 한 사람은 사직서를 냈고, 한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으며, 그 나머지 한 사람은 윤기(尹愭)5)라고 하였는데 소식을 서로 물어볼 곳도 없으니 어찌하겠는가. 이날은 세수하고 머리도 빗었지만 종일토록 정신이 매우 편치 않아 답답하였다. 看 朴兩人告歸, 故口傳病差之奇而去。 李興陽連日送奴書問。 送官敎紙於倉洞 朴承旨家, 而以余病之莫可運動, 故初欲擔去矣。 朴令再三傳喝, "病旣如此, 則雖不來, 豈有損於事體乎?"云, 故只送誥紙矣, 夕間書送, 喜幸不可言。 吏郞則專恃元佐郞矣, 元也以公故呈旬, 必遞爲意云, 此將奈何? 吏郞四人中, 其一已去於晦軒 趙尙書宣諡之行, 一則呈旬, 一則未入, 其餘一人, 卽尹愭云, 而無聲息相問處, 奈何? 是日洗手梳髮矣, 終日神氣甚不安, 悶悶。 관교지(官敎紙) 임금의 교지나 중앙 관서의 공문서용 한지인데, 주로 관아에서 사령(辭令)이 사용한 종이이다. 사직원을 내어 원문의 '정순(呈旬)'은 낭관(郞官)이 사임하려 할 때 10일에 한 번씩 세 번을 계속하여 소속 상관(上官)에게 사직서(辭職書)를 올리는 것을 이른다. 윤기(尹愭) 1741~1826.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부(敬夫), 호는 무명자(無名子)이다. 1773년(영조4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20여 년 간 학문을 연구하였다. 1792년(정조16)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를 초사(初仕)로 종부시주부, 예조·병조·이조의 낭관으로 있다가 남포현감·황산찰방을 역임하였다. 이후 중앙에 와서 《정조실록》의 편찬관을 역임하였다. 벼슬이 호조참의에까지 이르렀다. 저서로 《무명자집(無名子集)》 20권 20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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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二十三日 온종일 팔선의 집에서 머물렀다. 終日留八仙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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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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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二十六日 일찍 주동(注洞)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데, 비가 크게 내리더니 천둥소리가 괴이하였다. 밤에 큰비가 내렸다. 早往注洞, 暫話促行而來, 雨卽大作, 天動可怪, 夜大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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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十六日 사근천(沙斤川)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진흙탕에 길을 나서 시흥(始興) 읍내에서 묵었다. 至沙斤川中火。 汚路作行, 宿始興邑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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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十七日 주인이 마필을 사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므로 새벽에 매매를 하였다. 노량(露梁)까지 걸어서 육사묘(六死墓)2)를 배알하였는데, 단지 성(成)·박(朴)·이(李)·유(兪) 네 선생의 표갈(表碣)만 있고, 하(河)·류(柳) 두 선생의 묘에 표석(表石)이 없어3) 자세히 알 수 없으니, 한탄스럽다. 다만 묘의 모습이 무너져서 겨우 몇 줌의 배토(杯土)만이 무덤을 덮고 있는데, 사초를 개수하고 영축(營築)할 사람이 없었다. 삼가 생각건대, 육신(六臣)의 절의는 만고토록 세울 강상(綱常)이라 할 만한데도 수호할 사람이 없어 장차 매몰되어 징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길 가는 사람들의 탄식과 지사(志士)들의 눈물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나루터에 이르러 앞다투어 강을 건널 때 멀리 언덕 위를 바라보니 팔아 버린 말이 나루에 와서 서 있었는데, 이는 필시 물리려는 계책인 것이다. 선공(船工)을 재촉하여 급히 강을 건넜다. 우연히 사두(沙頭)에서 고마(雇馬)를 얻어 짐을 싣고 말을 타고서 채찍을 재촉하여 청파(靑坡) 송상원(宋尙源)의 집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끌고 찾아와서 곤란한 말을 하고 도로 물렸다. 아침을 먹은 뒤에 차동(車洞)의 팔선(八仙) 집에서 머물러 있다가 동행하여 들어가 영감(令監)을 만났는데, 온 집안이 무탈하였다. 曉頭主者有願買馬匹之意, 故因爲買賣。 徒步至露梁, 拜謁六臣墓, 只有成、朴、李、兪四先生表碣, 河、柳兩先生之墓無表石, 不得詳知, 可歎。 但墓貌崩頹, 僅有數杯土封域, 而無人改莎營築。 竊念六臣之節, 可謂綱常萬古, 而守護無人, 將至於埋沒無徵之境, 行路之咨嗟, 志士之隕涕, 曷可勝言? 至津頭, 爭先渡江之際, 遙見岸上, 所賣之馬, 來立津頭, 必是欲退之計也。 催促船工, 急急渡江。 偶於沙頭得雇馬, 駄而騎之, 催鞭至靑坡 宋尙源家矣。 不移時持馬來訪, 困說還退矣。 朝飯後, 至車洞 八仙家住着, 同行入見令監, 擧家姑無恙矣。 육사묘(六死墓) 1456년(세조2) 단종 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을 하다가 순절한 사육신묘(死六臣墓)로,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다. 사육신은 '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박팽년·유응부' 등 여섯 명의 충신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함께 거사를 계획했던 김질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한 뒤 죽음을 당했지만, 숙종 대에 이르러 복권되었다. 하(河)·류(柳)……없어 하위지(河緯地)와 유성원(柳誠源)을 말한다. 사육신묘는 원래 박팽년(朴彭年)·유응부(兪應孚)·이개(李塏)·성삼문(成三問)의 묘만 있었고, 하위지(河緯地)와 유성원(柳誠源)의 묘는 없었는데, 서울시에서 1977~1978년까지 사육신 묘역의 정화 공사를 할 때, 하위지와 유성원의 가묘(假墓)를 추봉(追封)하여 사육신의 묘를 모두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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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二十五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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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初六日 ○밤에 내리던 비가 늦게야 맑아졌다. 오후에 시장 근처에 갔다가 왔는데, 문중(門中) 사람들이 비가 오는 탓에 오지 않아서 답답하였다. ○夜雨晩晴。 午後往市邊而來, 門中以雨戱之致, 不來悶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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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四月 무자년(1828, 순조28) 4월 일, 명현록(名賢錄)을 개간하는 일 때문에 가서 보라고 문중(門中)에서 나에게 위임했다. 戊子四月日, 以名賢錄開刊事, 往見之意, 門中屬余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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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初四日 ○출발하여 유천혜(柳千惠)의 집에서 묵었다. ○發行宿柳千惠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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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初一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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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元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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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二十日 아주 늦게 길을 떠나 여성령(呂星嶺)을 넘어 창고에서 묵었다. 이날 60리를 갔다. 最晩發程, 踰呂星嶺, 宿於倉。 是日行六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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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계축) 1793年(癸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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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初二日 연일 몹시 추웠다. 오늘은 주동에 가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連日極寒。 是日往鑄洞, 暫話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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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十一日 비가 내렸다. 아침 전에 한동(翰洞)에 가서 한참 동안 글을 논하고 왔다. 雨。 朝前往翰洞, 移時論文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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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十二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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