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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지난 편지에 인편이 없어 답장을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풍영정(風詠亭)109)에서의 만남 역시 갑자기 취소되어 회포를 풀지도 못하였습니다. 편지에 있는 차문(箚問)의 뜻을 그 뒤에 생각해보니 슬픔과 서운한 마음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마는, 어버이를 모시며 경서를 공부하는 정황은 연이어 편안하신지요? 그리운 마음이 깊어집니다. 의림(義林)은 옛날부터 좋지 못한 재주뿐인데, 어찌 번거롭게 이끌어주시는지요. 《신안기행록(新安紀行錄)》 근래 비로소 읽어보니 완연히 몸이 방장산(方丈山)과 백운산(白雲山)에 있으면서 문장과 술 사이를 노닌 듯하였습니다. 말의 배치와 취사 선택, 그리고 묘사가 어찌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내 벗의 문사(文詞)에 대한 공력이 근년에 더욱 발전하였으니 또한 기뻐할 만합니다. 바라건대 더욱 힘을 쓰고 더욱 정밀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잇몸이 드러나게 웃지 않으며 활개를 치면서 걷지 않되【矧翔】110)은 【부모의 병이 나으면】 예전처럼 회복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걱정으로 인하여 일상적인 것을 변경시키고 병이 회복하면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을 특별히 말한 것일 뿐이니 다른 것은 족히 변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병이 들어도 감히 효를 잊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어떻게 병이 나았다고 갑자기 그 효를 잊어버려서 마음대로 방탕하게 술을 마시는 데 이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잇몸이 드러나게 웃어 모습이 변하는 것을 꾸짖은 것이지 본래 마음대로 방탕하게 술을 마시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거처하던 모습을 생각하고, 그 담소하던 모습을 생각한다.……"111)라고 하였는데 비록 일찍이 부모를 여의어 봉양하지 못한 사람은 그 슬픔과 그리움이 분명 다른 사람보다 곱절일 것입니다. 어찌 그 모습과 웃고 말씀하시던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해서 살아계실 때의 모습과 방불(髣髴)함이 없겠습니까? 시조(始祖)와 초조(初祖)의 제사는 체제(禘祭)와 협제(祫祭)로 하니 어찌 일찍이 그 음성과 용모를 볼 수 있었겠습니까? 다시 상세히 살펴야 합니다. 向書無便稽謝。而詠亭之遇。亦坐忽撓未敍。書中箚問之意。追後思之。不勝悵缺。未審侍中經履。連衛錦安。懸溯罙至。義林昔時伎倆而已。有何煩提。新安紀行錄。近始讀之。完然身在方丈白雲文酒遊歷之間也。其措辭去就。何其模寫至此也。吾友文詞之工。近年進進。亦可喜也。願益加勉力。精之又精如何。矧翔復故云云。特言其致憂變常。與夫疾止復故之義而已。他無足辨也。且以有疾而不敢忘孝如此。則豈以疾止而遽忘其孝。以至於任情縱酒者乎。又詈矧變貌。本非任情縱酒之謂也。思其居處。思其笑語云云。雖早而孤露。未及逮事者。其哀慕感想。必有倍於他人矣。豈以未見其音容笑語。而無髣髴如在之儀乎。始祖初祖之祭。若褅若祫。何嘗逮見其音容乎。更詳之。 풍영정(風詠亭) 광주의 선창산과 극락강이 마주치는 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김언거(金彦琚)가 지은 것으로, 그는 이곳에서 김인후, 이황, 기대승 등과 교유를 나누었다. 잇몸이 드러나게 웃지 않으며 활개를 치면서 걷지 않되【矧翔】 《소학(小學)》에 나오는 말로, 부모가 병중일 때 몸가짐의 도리를 가리키는데, "잇몸이 드러나게 웃지 않으며, 활개를 치면서 걷지 않는다.【笑不至矧, 行不翔.】"라고 하였다. 그 거처하던 …… 모습을 생각한다 《예기》 〈제의(祭義)〉에 나오는 말로, "그 거처하던 모습을 생각하고, 그 담소하던 모습을 생각하고, 그 뜻하던 바를 생각하고, 그 좋아하던 바를 생각하고, 그 즐기던 바를 생각한다.【思其居處, 思其笑語, 思其志意, 思其所樂, 思其所耆.】"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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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뜻밖에 한 폭의 서신을 받게 되니, 감사한 마음을 무엇에 비유하겠습니까. 하물며 서신에 담긴 말과 뜻이 모두 지극하여 형식과 실질을 겸비하였으며, 또한 별지(別紙)에 적힌 수십 개의 조항이 모두 스스로 깊이 탐구하여 자세히 풀어내는 가운데에서 나왔으니, 근래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세밀하게 힘써 조예가 깊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구하게 위로가 되어 기쁘니, 어찌 남의 일처럼 느끼겠습니까. 다만 여러 조목 가운데, 구두【句讀】를 말함에 자질구레한 뜻은 많고, 핵심을 논설할 때는 중요한 뜻은 적으니 이는 참으로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학문은 채찍질하여 내면으로 가까이하여 자기 몸에 붙게 하여야 한다."112)라고 하였는데, 어찌 이를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을 신은 채 발바닥을 긁고,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는 격113)이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질문】'존심(存心)'이란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일이니, 이것은 배우는 자들이 처음부터 힘써야 할 곳이고, '진심(盡心)'이란 공부의 가장 지극한 경지인 것입니까?【대답】'마음을 다하여 성(性)을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의 일이고,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은 실행하는 일입니다. 아는 것에는 다소 여러 가지가 있고, 실행하는 것에도 다소 여러 가지가 있으니, 앎이 진보할수록 행실에 힘이 더하게 되고, 힘써 행할수록 앎이 더욱 진보하게 됩니다. 그러니 본심을 잃지 않도록 보존하고 기르는 것【存養】이 초학(初學)이 된다고 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盡心】이 가장 지극한 것이라고 일괄적으로 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질문】"명(命)이 아닌 것이 없다."114)라는 말에서, '명'은 진씨(陳氏)는 '기(氣)'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막비(莫非)' 두 글자는 마땅히 정명(正命)과 합치되는 듯한데, 정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온전히 기(氣)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대답】명(命)은 기(氣)에서 나오는 것이 있고 이(理)에서 나오는 것이 있는데, 이에서 나온 것은 진실로 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는 볼 수 없고, 기에서 나온 것은 진실로 그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질문】《맹자(孟子)》에,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115)라고 하였는데 이는 윗 글에 나온 '진심(盡心)'의 공효(功效)일 것입니다.【대답】만물이 다 나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여 본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는 것이 바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입니다.【질문】"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116)라고 말한 부분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짊과 능함을 보고 자신의 불능을 생각하면, 어느 누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다만 저의 병통은 이러한 마음이 단지 잠깐씩만 있다가 잠깐 사이에 사라져서 확충(擴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대답】이미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다면, 또 성인(聖人)과 같지 못함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확충하는 방법입니다.【질문】"패자(覇者)의 백성은.……"117)이라고 한 부분에서, 먼저 패도(覇道)를 말한 뒤 왕도(王道)에 이른 것은 어째서입니까? 음식으로 비유해 보자면, 패도는 입에 맞는 육류와 같아서, 오래도록 먹으면 물리는 느낌이 있으나, 왕도는 숙속(菽粟)이 입에 들어오는 것과 같아서 평이하고 담백하여 별다른 맛이 있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대답】말은 본디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하고 가벼운 것을 뒤에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가벼운 것을 먼저 말하고 중요한 것을 뒤에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물며 다음 글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왕자(王者)의 일이 아님이 없음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만약 이를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왕자는 굶주린 사람을 보면,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있어 음식을 줄 것입니다. 패자(覇者)는 굶주린 사람을 보면 명예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 음식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감응한 것과 감응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질문】"선정(善政)이 선교(善敎)만 못하다.……"118)라고 한 부분에서, 선정이 세워진 이후에 선교가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선교가 행해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정사를 먼저 말한 이후에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인지요?【대답】만약, "선정이 세워진 이후에 선교를 행한다."고 말하면 괜찮지만, 만약, "선교가 행해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요순시대에 화목해진 것119)과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 형벌을 쓰지 않은 이후120)로 다시는 베풀 만한 정사가 없었던 것입니까?【질문】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이 몸은 단지 한 개의 몸통이니, 안과 밖으로 천지 음양의 기(氣)가 아님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몸통만 유독 천지 음양의 기가 아닌 것인지요?【대답】몸통은 음양이 모이는 곳이요, 안과 밖은 음양이 흐르는 곳입니다.【질문】"마음에는 출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비유하자면, 화로에 한 점의 불씨가 숨어 있는데, 불씨가 다해 갈 때 바람을 불어주면 다시 환해지는 것과 같습니다.【대답】출입한다는 것은 곧 존망(存亡)의 뜻이니, 화롯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질문】하나의 이치가 하늘에 있어, 원(元)·형(亨)·이(利)·정(貞)이 되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仁)·의(義)·예(禮)·지(智)가 됩니다. 그러나 천지의 운용(運用)에는 질서가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대답】하늘의 운행에는 질서가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곧 분수처(分殊處)가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생각이 생겨남에 사계절의 질서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습니다.【질문】구사(九思)121)는 보고 듣는 것을 먼저 하니, 앎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고, 구용(九容)122)은 손과 발로 행동을 먼저 하니, 실천의 차원에서 말한 것인지요?【대답】옳은 듯합니다.【질문】천지가 만물을 생성하게 하고, 성인이 모든 일에 응하는 것이 다 하나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다만 사물에 응할 뿐 만물을 생성하지는 않고, 천지는 다만 만물을 생성할 뿐 지나친 것을 억제하고 모자란 것을 보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하지는 않으니, 반드시 하늘과 인간이 상수(相須)한 뒤에야 도리(道理)에 흠결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겠습니까?【대답】이 단락은 매우 좋습니다.【질문】무릇 '치지(致知)'를 단지 성정(情性)에서 구한다면 간략함을 힘쓰는 것이 심한 것 같고, 단지 만물에서 구한다면 이 또한 넘침에 힘쓴 것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정자(程子)는, "먼저 사단(四端)에서 구하라."라고 하였고 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모름지기 살펴야 한다.……"123)라고 말한 것입니까?【대답】이른바, "체(體)와 용(用)을 모두 거론하고 사물과 자신을 모두 다한다."는 것은 '치지(致知)'에서 또한 볼 수 있을 것입니다.【질문】정자(程子)가 어떤 이의 물음에 답하기를, "성인의 말씀은 절로 가까운 곳에 있다가, 절로 먼 곳에 있다.……"124)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멀고 가까움이 두 가지 일인데, 가까운 곳에 있어서는 억지로 파낸다고 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입니까? 무릇 한 가지 일에는 가까움이 있고 멂이 있으니, 깨끗이 쓸어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지극히 비근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는 이치는 지극히 먼 것이 아니겠습니까?【대답】정자가 여기서 멀고 가까움을 이야기 한 것은, 각 조(條)에서 이야기한 것이니, 땅과 같이 가깝고 하늘처럼 멀다는 말과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질문】정자가 말하기를, "자신으로부터 남에게 미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하고, 자신을 미루어 사물에 미치는 것은 '서(恕)'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以)'라는 글자에도 또한 미룬다【推】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대답】하늘의 도는 변화하여 각기 성(性)과 명(命)을 바르게 하니, 이는 천지의 자연스러운 추이입니다. 하나의 이치가 혼연하여 널리 응하고 세세히 들어맞으니, 이는 성인의 자연스러운 추이입니다.【질문】형이상과 형이하의 뜻에 대해 제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니, 원컨대 한 문장으로 상하의 분별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대답】【형이상과 형이하의】 상과 하는 형체가 나타나는 상하가 아니니, 바로 이 '형(形)' 한 글자는, 도기(道器)125)의 경계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질문】무극(無極)으로 성(性)을 말하고, 태극(太極)으로 심(心)을 말하니, 고요한 가운데 조짐이 아닌 것이 없음이 무극이요, 유행(流行)하여 방체(方體)가 있는 것이 태극입니다.【대답】무극과 태극은 단지 하나의 이치로, 마음에 갖추어진 것입니다. 장차 무극이 도성(道性)을 부르거나 장차 태극이 도심(道心)을 부를 수 없으니, 이는 무극과 태극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아울러 마음과 본성의 분별도 역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질문】항상 온후한 생각을 보존하면 자연히 환히 드러날 수 있게 되고, 자연히 참열(慘烈)하게 되며, 자연히 수렴할 수 있게 됩니다. 세 가지 가운데 온화함이 환히 드러나게 되면 쉽게 볼 수 있는데, 만약 참열(慘烈)·강단(剛斷)·수렴(收斂)과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흔적이 없어 끝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대답】춘하추동(春夏秋冬)의 계절을 보면, 각자 하나씩 그 시기가 있으니, 봄에 생겨나는 기운이 아닌 것이 없으면서 그 가운데 운행하니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질문】음(陰)이 구괘(姤卦)에서 생겨나 곤괘(坤卦)에 이르러 순음(純陰)이 됩니다. 양(陽)은 복괘(復卦)에서 생겨나 건괘(乾卦)에 이르러 순양(純陽)이 됩니다. 양의 극열(極熱)하고 홍염(洪炎)한 기운이 순양월(純陽月)126)에 있게 되면 반대로 양이 쇠하고 음이 생겨나는 때가 되니, 이것은 어떤 이치인지요? 음 또한 그러합니까?【대답】미세한 양의 기운이 아래에서부터 생겨나면, 궁음(窮陰)127)이 위에서 다하게 되고, 미세한 음의 기운이 안에서부터 생겨나면 항양(亢陽)128)이 밖으로 타오릅니다. 이러한 까닭에 아교가 꺾이고 손가락이 얼어 떨어지는 추위와129) 쇳덩이가 흐르고 돌이 녹는 열기는 대부분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이후에 생겨나는 것입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의 주(註)에 의하면, "노심초사하며 억지로 통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는데, 초학자에 있어서 어찌 노심초사하지 않고서 자연히 통철(洞澈)하게 되기를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생각하고 생각하되, 또 거듭 생각해야 한다."130)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대답】이 말은 전적으로 힘써 고심하고 탐색하되 함양(涵養)에 힘쓰지 않는 자를 감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함양이 무르익으면 독서(讀書)와 궁리(窮理)에 모두 힘을 쓰기 쉬워질 것입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에서, "마음을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라."131)라고 하였는데, 억지로 마음이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고자 하더라도 잡스럽게 어지럽고 요란스러운 마음이 머리를 내밀어 일정함이 없습니다. 대개 공부를 시작할 때, 먼저 먼저 의관을 가다듬고 용모를 바르게 한 뒤에, 오래도록 느슨해지지 않는다면, 어느 날 절로 묵묵히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대답】이것이 언제나 마음을 불러 일깨운다는 말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믿고 궁리(窮理)하는 공부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랫 부분의 문장에 담긴 뜻은 약간 이포새(伊蒲塞)132)의 기미가 보입니다.【질문】사람 마음의 어리석고 막힌 부분을 무심(無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자가 말한 '무심'은 그저 사심(私心)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대답】비록 어둡고 막힘이 극에 달하였더라도 본심(本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그러므로 정자가 '무심'은 불가하다고 여긴 것은 이러한 뜻이 아닙니다.【질문】《근사록(近思錄)》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성(性)은 본래 선하니, 순리대로 나아가면 본심 또한 어렵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저의 생각에 내면에 기품(氣稟)의 구속됨이 있고, 밖으로 사물에 얽매이는 폐단이 있으면, 매번 순리대로 나아가면 어려움이 없다는 구절을 외우며 자신에게서 징험해 보이고자 한들, 제지당하고 모순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 어렵지 않은 공부가 가능하겠습니까?【대답】앎이 참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그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앎은 창졸간에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참된 앎을 기다리면서 힘써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아는 바를 따르되 지극히 어려운 공부에 이르게 된다면 점차 어렵지 않은 효험이 나타날 것입니다.【질문】사람의 법도를 세우는 것【立人極】133)은 반드시 정(靜)을 주로 삼아야 하니, 염려되는 것은 이것이 회암부자(晦庵夫子 주희(朱熹))의 말씀인데 다른 날 육씨(陸氏 육구연(陸九淵))의 주정(主靜)을 나무란 것은 어째서입니까? '정'이라는 한 글자에 두 가지 뜻이 있는지 몰랐던 것입니까?【대답】정을 주로 한다는 것은 주자(周子 (周敦頤))의 말이지 상산(象山 (陸九淵))의 말이 아니니, 상산의 학문은 정을 주로 한다는 말과 매우 다릅니다.【질문】《중용》 「귀신장(鬼神章)」의 주에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기에 도달하게 된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천지의 기와 더불어 서로 접속(接續)되지 않아서 끊어짐이 있는 것입니까?【대답】"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134)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몸에서 사체(四體)와 같으니 사물과 닿으면 느끼지 않음이 없으니,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할 때 만약 한 몸이 아니라면, 움직일 때 어찌 능히 서로 느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질문】우진(祐鎭)135)은, "기질(氣質)이 비록 다르더라도 성(性)은 본디 다르지 않다."라고 하였는데, 승환(承渙)은, "본연의 성(性)은 총명하고 밝으나, 기질(氣質)의 성(性)은 맑음과 혼탁, 순수와 잡됨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理)는 본디 혼연하여 잡됨이 없으나, 형(形)과 기(氣)의 가운데로 떨어지게 되면 선악의 편벽되어 다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같다고 한다면, 사람이 태어난 측면을 가리켜 설명하는 것이니 어떠합니까? 우진은, "성은 기질에 있어서 물이 그릇에 담긴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그릇이 더러워진 것을 가지고 물 또한 탁하다고 하겠습니까?【대답】성(性)은 본디 두 가지가 아니나 기질(氣質) 속으로 들어가면, 단지 이(理)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은 본연의 성(性)이고,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은 기질(氣質)의 성(性)이 됩니다. 총명하고 밝음을 본연의 성으로 삼으면, 이는 곧 심(心)을 성(性)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맑고 혼탁하며 순수하고 섞인 것이 기질의 성이 되니, 이것이 바로 기를 불러 이(理)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모두가 사람이 태어난 측면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곧 사람이 태어난 이후에는 다시는 본연의 성이 없는 것입니까? 사증(士拯)의 말은 구절마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니, 문녕(文寧)의 말이 조금 낫습니다. 그러나 그릇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니 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질문】마음은 변할 수 있으나 형체는 변할 수 없다는 뜻을 논하였는데, 우진(祐鎭)은, "우리의 몸이 본래 천지에서 난 것이므로, 우리의 마음이 사계절에 통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는 하나의 빈껍데기요, 사계절은 하나의 도리(道理)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사시(四時)는 1년 동안 변화합니다. 승원(承源)은, "마음이 물과 불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변할 수 있고, 형체는 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변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승환(承渙)은, "매달아 놓는 거울이 진흙에 묻혀있는 것과 같으니 거울을 닦아서 연마할 수 있으나, 그 갑(匣)도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했는데, 마음은 빛과 같고, 형체는 갑과 같은 것입니다.【대답】형체는 국한되어 정해져 있으니 변할 수 없고, 심체(心體)는 허령(虛靈)하여 변할 수 있습니다. 대개 사물의 이치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학문에 힘씀이 지극하면, 형체 또한 바꿀 수 있으니, 이른바 수면앙배(粹面盎背)136)요, 이른바 용모와 자발(髭髮)137)이 평소보다 배로 많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녕(文寧)의 말은 타당하지 못한 듯하니 어찌 천지를 빈껍데기라 하고 사계절을 도리라 하는 것입니까? 마음은 비유하면 천지의 주재(主宰)요, 몸은 비유하자면 천지의 형체입니다. 윤심(允深)의 말이 무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땅히 말하기를, "마음은 오행의 정영(精英)인 까닭에 변할 수 있고, 몸은 오행의 체질(體質)이니 변할 수 없다."라고 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의 몸을 오행과 짝짓는다면, 흙과 돌이 뼈와 피부요, 기와 혈액은 물과 불입니다. 사증(士拯)이 말한, "거울의 빛은 문질러 닦을 수 있지만, 갑(匣)은 바꿀 수 없다."는 이 비유는 매우 정당합니다. 그러나 줄로 갈아내고, 옻칠하여 윤이 나게 하면 갑 또한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질문】"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외면을 방정하게 한다."138)는 구절을 논함에 승환(承渙)은, "'직(直)'은 스스로를 속임이 없는 것이고, '방(方)'은 사물마다 각기 그 마땅히 구분하여 이른 것을 칭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진(祐鎭)은, "'직'이란 근원을 함양하는 공부라고 하였고, '방'은 마땅히 해야 하는 지선(至善)을 얻는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승원(承源)은, "터럭만큼도 사곡(邪曲)이 없어야 '직'이라 하고, 오로지 일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곳을 '방(方)'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대답】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이 방미(防微)139)이니, 기미를 아는 공부를 하여 이로써 마땅히 내면을 곧게 하려는 뜻은 잘못되었습니다. 문녕(文寧)이 이른바 근원을 함양하는 것과 윤심(允深)이 이른바 터럭만큼도 사곡이 없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혹 이전 사람들이 이미 이루어낸 말에 빠지고, 혹은 임시로 안배함이 있으니 모두 실질적인 견해는 아닙니다. 그러니 모름지기 한 번 크게 헤아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질문】《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 첫째 조목으로 5행을 논한 부분은, 당나라 공씨(孔氏)의 주(註)에서, "'윤하(潤下)'부터 '종혁(從革)'까지140)는 모두 성(性)을 말한 것인데, 토가 오행을 겸하여 정해진 위치가 없고, 완성된 성질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승환(承渙)은, "'윤하(潤下)'와 '염상(炎上)', '곡직(曲直)'과 '종혁(從革)'141)은 오행이 나타나 이루어진 체(體)이니, 곧 체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제 생각에는 수(水)의 성질은 차고, 화(火)의 성질은 뜨거우며, 목(木)의 성질은 부드럽고, 금(金)의 성질은 강한데, 토(土)도 오행의 하나인데 어찌 홀로 성질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승원(承源)이 말하기를, "공씨(孔氏)의 설은 그 본연을 가리킨 것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물의 본연이요, 위로 타오르는 것은 불의 본연이며, 굽거나 곧아지며 형태가 변화하는 것은 목과 금의 본연입니다. 토는 네 가지의 가운데에 자리하여 그 성질을 따라서 성(性)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진(祐鎭)은, "네 가지가 그렇게 되는 이유를 일러 성(性)이라고 한다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눈앞에 드러난 당연한 바를 일러 성(性)이라고 이르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있어서는 오행(五行)은 단지 이(理)일 뿐이지만, 땅에서는 오행은 기(氣)가 됩니다. 이(理)는 보기 어렵고, 기(氣)는 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원형(元亨)은 보기 어렵고, 봄과 여름은 쉽게 보이는 것입니다. 네 가지는 기(氣)가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토는 덕을 말하고 성을 말한 것이 아니니, 본래 그 정해진 위치가 없고, 완성된 성이 없기 때문입니다.【대답】"체(體)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는 말을 보면, 사증(士拯)이 성(性)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은 단지 이 기(氣)의 그러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성이 없다면 나무가 어찌하여 곡직(曲直)이 있고, 물이 어떻게 아래로 내려가겠습니까? 이루어진 성이 없는 것이지, 성이 없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토의 본성이 '신(信)'이라면, 단지 진실이 인(仁)이 되고 진실이 의(義)가 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신(信)'이 인의(仁義) 위에 있는 것이고 예지(禮智) 또한 그러하니, 이는 이른바 이루어진 성이 없는 것입니다. 윤심(允深)이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은 아마도 반드시 이처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하의 만물은 본성 외에도 더하여 어떠한 성이 있다는 것이니, 단지 토(土)가 사행(四行)에 머무르며 그 성질을 따라서 성(性)을 삼는다는 말이 좋은 듯합니다. 문녕(文寧)은, "그렇게 되는 이유가 성(性)이요, 소당연(所當然)은 성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소당연은 어떤 물건입니까? 또, 오행(五行)이 하늘에 있으면 이(理)요, 땅에 있으면 기(氣)라는 것 또한 온당치 않습니다. 어찌 천지를 하나의 이(理)와 하나의 기(氣)로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하단에서 말한, "이(理)는 보기 어렵고, 기(氣)는 보기 쉽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진실로 옳습니다. 이로써 생각해본다면 보기 어려운이(理)가 쉽게 볼 수 있는 기(氣)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니 어째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겠습니까.142) 一幅書。獲之不意。感感何喩。況其辭義俱到。華實兼至。又有別紙數十條。無非自沈索細繹中出來。可見近日用功之密。造詣之深也。區區慰悅。曷異在己。但於諸條中。說句讀零碎義多。說肯緊要切義少。此固不可不知也。程子曰學要鞭辟近裏。着己而已者。豈不謂是耶。隔靴而爬癢買櫝而還珠。可戒可戒。存心卽操存求放之事。是學者初用力處。盡心則工夫極至地位否。盡心知性。是知之之事。存心養性是行之之事。知有多少般數。行亦有多少般數。知之進則行益力。行之力則知益進。不可槪以存養爲初學。盡心爲極至也。莫非命。此命字。陳氏謂氣。竊恐莫非二字。似當合正命。非正命。安可謂全指氣乎。命有出於氣者。有出於理者。出於理者。固不可帶氣看。出於氣者。固不可謂無其理也。萬物備我。反身而誠。樂莫大焉。便是上文盡心功效。知萬物備我。是盡心知性也。反身而誠。是存心養性也。不恥不若人云云。羞惡之心。人所同有。見人之賢能。思吾之不能。孰無恥之之心哉。但吾病痛。只在乍存乍亡不能擴充耳。旣恥不若人。則不若聖人。亦吾所當恥也。此擴充之方也。覇者之民云云。先言覇而後及王道。何也。比之飮食。則覇道如芻豢之悅口。久則有厭色。王道如菽粟之八口。平平淡淡。非別有異味。久久不厭。言固有先重而後輕者。亦有先輕而後重者。況下文所陳。無非王者之事耶。若以飮食比之。則王者見人之飢。有哀矜之心。而予之食焉。覇者見人之飢。有要譽之心。而予之食焉。則其人之感與不感。可以知矣。善政不如善敎云云。善政立而後。善敎可行。若善敎行而後。善政無足施矣。故孟子先言政而後言敎耶。若曰善政立而後。善敎行則可。若曰善敎行而後。善政無足施則不可。然則唐虞時雍成。康刑措之後。更無政可施歟。朱子曰。此身只是箇軀殼。內外無非天地陰陽之氣。然則軀殼獨非天地陰陽之氣耶。軀殼是陰陽團聚處。內外是陰陽流行處。心有出入云云。譬如爐有一點火隱伏。若滅吹之。則復光明。出入卽存亡之義。爐火之譬得矣。一理在天。爲元亨利貞。在人爲仁義禮智。然天地運用有序。而人則不然。天運有序。而人則不然者。此便是分殊處。然一念之發。四時之序。無不具焉。九思先視聽。知上說。九容先手足。行上說否。恐得之。天地之生萬物。聖人之應萬事。便是一理。然聖人只應物。而未生物。天地只生物。而不裁成輔相。必天人相須然后。道理無欠缺處否。此段甚好。凡致知。但求之情性。則似涉務約。只求之萬物。則又涉務泛。故程子以爲先求四端之間。又言一草一木。須是察云耶。所謂體用兼擧。物我兩盡者。於致知。亦可見。程子答或問曰。聖人之言。自有近處。自有遠處云。此言遠近爲二事。而於近處。不可强要鑿得深遠也耶。凡一事上。有近有遠。如灑掃應對。雖至近。而其所以然之理。則非至遠耶。程子此言遠近。是各條說。與近如地遠如天之語。恐不同。程子曰。以己及人。仁也。推己及物。恕也。然以字。亦有推去底意。乾道變化。各正性命。是天地自然之推也。一理渾然。泛應曲當。是聖人自然之推也。形而上形而下之義。小子昏愚未瑩。願下一言。以示上下之分。上下非有形底上下。是就一形字。言道器界至如此。以無極言性。以太極言心。則寂然無兆眹者。無極。流行有方體者。太極也。無極太極。只是一理。而具於心者。不可將無極喚道性。將太極喚道心。此不惟不識無極太極之旨。兼亦不識心性之分。常存得溫厚意思。便自然會宣著。自然會慘烈。自然會收斂。三者之中。溫和之爲宣著。可易見。至若慘烈剛斷收斂。無痕迹。終看不出。看春夏秋冬。各一其時。而無非春生之氣。行乎其中。則可以識此矣。陰生於姤。至於坤。純陰也。陽生於復。至於乾。純陽也。陽之極熱洪炎。當在純陽之月。而反在於陽衰陰生之時。何理也。陰亦然也。微陽下生。窮陰上極。微陰內生。亢陽外熾。此所以折膠墮指之寒。流金爍石之熱。多在於冬至夏至之後也。近思錄註曰。不可勞心極慮而强通。其在初學。豈可不勞心極慮而坐待自然洞澈耶。然則思之思之。又重思之。是何意耶。此言爲專務窮索。而不務涵養者發也。涵養熟則讀書窮理。皆易爲力近思錄心潛黙識疆欲潛心黙料。則雜亂紛擾之心。闖發無常。蓋下手之初。先整衣冠正容貌。久久不弛。他日自當有黙識境界矣。此所以有常常喚醒之語。然不可恃此而不務窮理之功。下文語意。些有伊蒲塞氣味。人心之昏愚蔽塞處。不可謂無心。故程子說無心只當云。無私心也。雖昏蔽之極。不可謂無本心。然程子以無心爲不可者。不是此意。近思錄曰。性本善。循理而行。本亦不難云云。顧此愚蠢內有氣稟之拘。外有物累之蔽。每誦循理不難之語。而竊欲驗之於己。則掣肘矛盾。何如可以得不難功夫耶。知不眞。故常苦其難。然知之眞。非倉卒可辦。豈可等待眞知。而不力行乎。但隨所知。而致極難之功。漸見不難之效。立人極者。必主乎靜。恐是晦庵夫子之言。而他日譏陸氏之主靜何也。未知一靜字。有二義否。主靜是周子語。非象山語。象山之學。與主靜之語。大煞不同。鬼神章註云。人心才動。必達於氣。然則人心不動之時。便與天地之氣。不相接續。而有間斷歟。一故神。如人身四體。觸之而無不覺者。一體故也。靜時若非一體。則動時。安能相感也。祐鎭以爲氣質雖不同。而性則固不異。承渙以爲本然之性。聰明睿智也。氣質之性。淸濁粹駁也理。固渾然無雜。而才墮形氣之中。有善惡偏窒之殊矣。若謂之同。則指人生以上說。如何。祐鎭以爲性之在於氣質。如水之在器。豈以器之汚濁。而謂水亦汚濁耶。性本無二。就氣質中。單指理言。則本然之性也。兼氣質言。則氣質之性也。以聰明睿智爲本然之性。則是認心爲性也。以淸濁粹駁爲氣質之性。則是喚氣做理也。又謂同是指人生以上說。則人生以後。更無本然之性耶。士拯之言。節節有礙。而文寧之言。稍長。然亦不是器之汚濁。自無與於水也。論心可變。而形體不可變之義。祐鎭以爲吾身本乎天地。吾心通乎四時。天地一箇空殼。四時一箇道理。天地互萬古不易。四時周一歲變化也。承源以爲心水火所成。故可變。形體木石所成。故不可變也。承渙以爲懸鏡埋塵。光可磨也。匣可變乎。心如光形體如匣。形體局定。故不可變。心體虛靈。故可以變。蓋物理然也。然學問之力至。則形體亦可以變。所謂粹面盎背。所謂容貌髭髮。倍勝平昔者。其非變移者耶。文寧之言恐未穩。豈以天地爲空殼。四時爲道理耶。心比則天地之主宰也。身比則天地之形體也。允深之言。非曰無理。然當曰心是五行之精英。故可變。身是五行之體質。故不可變也。若以一身配五行。則土石是骨肉也。氣血是水火也。士拯之言光可磨。匣不可變。此一節比喩。極正當。然鑢以磨之。漆以潤之。則匣亦可變。如何如何。論敬以直內。義以方外。承渙以爲直是毋自欺也。方是事事物物。各稱其當之分謂。祐鎭以爲直是涵養本源工夫。方是合做得至善處。承源以爲無一毫邪曲。便是直。惟事是是非非處。便是方。毋自欺。是防微知幾底功夫。欲以此當直內之義。則誤矣。文寧所謂涵養本源。允深所謂無一毫邪曲之說。似矣。然或陷前人已成說。或有臨時安排的。皆非實見。更須一番大思量。如何。論洪範一五行。唐孔氏註以爲自潤下至從革。皆以性言。土兼五行。無正位無成性云云之義。承渙以爲潤下炎上曲直從革。是五行見成之體。則指體爲性可乎。竊以爲水之性寒。火之性熱。木之性柔。金之性剛。而土亦五行之一。則豈可謂獨無其性乎。承源以爲孔氏之說指其本然也。潤下水之本然。炎上火之本然。曲直從革木金之本然也。土寓四者中。因其性而性焉。祐鎭以爲四者之所以然。謂之性則可也。其於眼前顯露所當然。謂之性可乎。在天之五行。只是理在地之五行。便是氣理難見。氣易見。故元亨難見。春夏易見。四者非氣之易見耶。土言德而不言性。本無正位。無成性故也。觀指體爲性可乎之語。可知士拯不識性。性只是此氣之不得不然處也。如無此性。木何以曲直。水何以潤下乎。無成性。非是無性之謂也。如土之性信也。而只是眞實爲仁。眞實爲義。則信在仁義上。在禮智亦然。此所謂無成性也。允深所謂本然之性者。恐不必如此說。不然。天下之物。本性之外。更有何性。但土寓四行。因其性而性焉之說。似好文寧以所以然爲性。以所當然爲非性。然則。所當然爲何物耶。又以五行之在天者爲理。在地者爲氣。此亦未安。安有以天地爲一理一氣之別耶。下段有曰理難見氣易見。此語誠是。以此思惟。可知難見之理。不外於易見之氣。何其騎驢而覓驢也。 정자(程子)가 …… 하여야 한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5장의 주(註)에 나오는 정자의 말이다. 신 신은 채 …… 돌려주는 격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준다는 것은, 근본은 모르고 지말(枝末)만 좇는 행위를 비유한 것이다. 춘추(春秋) 시대 정(鄭) 나라 사람이 초(楚) 나라 사람에게서 궤【櫝】를 사오면서 그 궤에 장식되어 있는 좋은 구슬들은 모두 본주인에게 돌려 주고 궤만 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무슨 일을 하느라고 애를 쓰기는 하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해 답답해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명(命)이 아닌 것이 없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맹자가 이르기를, "천명이 아닌 것이 없으나, 순하게 정명을 받아야 한다.【莫非命也, 順受其正.】"라고 하였다. 만물이 …… 큰 즐거움이 없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자기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라고 하였다.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어느 것이 남과 같은 것이 있겠는가.【不恥不若人, 何若人有.】"라고 하였다. 패자(覇者)의 백성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패자의 백성은 매우 즐거워하고 왕자의 백성은 광대하여 스스로 만족한다.【覇者之民, 驩虞如也, 王者之民, 皥皥如也.】"라고 하였다. 선정(善政)이 선교(善敎)만 못하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 있어서는, 법령 위주의 선정(善政)보다는 도덕에 입각한 선교(善敎)가 훨씬 낫다. 선정은 백성들이 두려워하게 되고 선교는 백성들이 사랑하게 되나니, 선정은 백성의 재물을 얻게 되고 선교는 백성의 마음을 얻게 된다.【善政不如善敎之得民也. 善政民畏之, 善敎民愛之, 善政得民財, 善敎得民心.】"라고 하였다. 요순시대에 화목해진 것 《서경》 「요전(堯典)」에서, "만방을 화합하여 융화하게 하시니 백성들이 아! 변하여 이에 화목해졌다.【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라고 하였다. 성왕과 강왕의 …… 않은 이후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서, "그러므로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는 천하가 평안하여 형벌을 놓아두고 40여 년간 쓰지 않았다.【故成康之際, 天下安寧, 刑錯四十餘年不用.】"라고 하였다. 구사(九思) 군자가 생각하는 아홉 가지 일로,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視思明】, 밝게 듣기를 생각하는 것【聽思聰】 등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온다. 구용(九容) 군자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을 가리킨다. 정자는 먼저 …… 살펴야 한다 《이정전서(二程遺書)》 권18에서, 정자의 제자가 아는 것을 이루는 데 먼저 사단(四端)에서 구하는 것이 어떤가를 물었을 때, 정자가 답하기를, "성정에서 구하는 것이 실로 몸에 절실하기는 하지만, 일초·일목에 모두 이치가 있으니 반드시 이것을 살펴야 한다.【求之性情, 固是切於身, 然一草一木, 皆有理須察.】"라고 하였다. 성인의 말씀은 …… 유원한 곳에 있다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 나오는 말이다. 도기(道器)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에 관한 철학적 범주로, 도(道)는 무형의 법칙을 가리키며, 기(器)는 유형의 사물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上」에서, "형이상을 도라 하고, 형이하를 기라 한다."라고 하였다. 순양월(純陽月) 4월을 가리킨다. 궁음(窮陰) 음기(陰氣)가 꽉 찼다는 뜻으로 겨울을 가리킨다. 항양(亢陽) 양기(陽氣)가 꽉 찼다는 뜻으로 여름을 가리키며, 매우 심한 가뭄을 뜻하기도 한다. 아교가 …… 추위와 원문은 '절교(折膠)'와 '타지(墮指)'인데 모두 극심한 추위를 가리킨다. 절교는 활의 재료인 아교가 너무 단단하게 굳어서 활이 부러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며, 타지는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생각하고 …… 생각해야 한다 《성리대전(性理大全)》 권57에서, 정이(程頤)가 관중(管仲)의 말을 인용하여,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거듭 생각할지니, 이렇게 생각을 해도 통하지 않으면 귀신이 통하게 해 줄 것인데,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기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思之思之, 又重思之, 思之而不通, 鬼神將通之, 非鬼神之力也, 精氣之極也.】"라고 하였다. 마음을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라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서, "모름지기 마음을 침잠(沈潛)하여 묵묵히 알아서 완색(玩索)하기를 오래하면 거의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須心潛黙識, 玩索久之, 庶幾自得.】"라고 하였다. 이포새(伊蒲塞) 불교(佛敎) 용어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중을 이른다. 여기에서는 상대방의 글에 불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므로 경계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사람의 법도를 세우는 것【立人極】 송(宋)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성인은 중정과 인의로써 정하되 정(靜)을 위주로 하여 사람의 법도를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라고 하였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一故神】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편(太和篇)〉에, "하나의 물(物)에 두 개의 체(體)가 있는 것이 기(氣)이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고, 둘이기 때문에 변화한다. 이것이 천(天)이 삼(三)이 되는 이유이다.【一物兩體, 氣也. 一故神, 兩故化. 此天之所以參也.】"라고 하였다. 우진(祐鎭) 홍우진(洪祐鎭, 1868~?)이다. 자는 문녕(文寧), 호는 희암(希庵)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능주(綾州)에 거주하였다. 정의림의 제자이다. 수면앙배(粹面盎背) 얼굴에 윤택하게 드러나고 등에 가득 차 넘친다는 말로서, 군자의 내면에 축적된 것들이 넘쳐서 몸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에서,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하여, 그 드러나는 빛이 얼굴에 윤택하게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게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라고 하였다. 자발(髭髮) 코밑수염과 머리털을 가리킨다. 공경하는 마음을 …… 방정하게 한다 《주역》 「곤괘(坤卦)」 육이(六二)에 나오는 구절이다. 방미(防微)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 막 선악(善惡)이 나뉘는 기미를 보고 방비한다는 뜻이다. '윤하(潤下)'부터 '종혁(從革)'까지 《서경》 「홍범」에서, "오행은 첫 번째는 수(水), 두 번째는 화(火), 세 번째는 목(木), 네 번째는 금(金), 다섯 번째는 토(土)이다. 수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 만물을 적셔주며, 화의 성질은 위로 타오르며, 목의 성질은 굽고 곧으며, 금의 성질은 사람의 뜻에 따라 형태가 바뀌며, 토의 덕은 이에 작물을 심고 거둔다.【五行:一曰水, 二曰火, 三曰木, 四曰金, 五曰土. 水曰潤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從革, 土爰稼穡.】"라고 하였다. 곡직(曲直)과 종혁(從革) 곡직(曲直)은 나무가 자라는 것이 굽기도 하고 곧기도 함을 말하고, 종혁은 쇠가 사람이 만드는 대로 그대로 따라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밖에서 구하는 것을 비유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지공화상대승찬(志公和尙大乘贊)〉에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진실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不解卽心卽佛 眞似騎驢覓驢】"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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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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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권7 卷之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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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기 愚齋記 어떤 객이 주인에게 힐난하기를, "무릇 사람이 스스로 자기가 어리석다고 말하면 이는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고, 스스로 자기가 어리석지 않다고 말하면 이는 진실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인께서는 이미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는 어리석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어리석음[愚]'으로 집을 명명하셨는지요?하였다. 옆에 있던 사람이 해명하기를, "어리석음은 지혜로움에 대비시켜 말한 경우가 있으니, 공자의 이른바 '하우(下愚)는 변화시킬 수 없다.'73)라는 것이 이것이고, 또 기교에 대비시켜 말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자의 이른바 '순수한 어리석음을 온전히 할 수 있다.'74)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지금 세상에 살면서 하나의 흠과 하나의 병통이 어찌 일찍이 기교 가운데서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까. 내용이 없이 겉만 화려한 문체를 숭상하고 온갖 솜씨를 펼치는 데 힘쓰는 것은 문사(文詞)의 기교이고, 남의 뜻을 받들어 맞추고 권세를 쫓아 아부하며 용의주도하게 온갖 행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공을 세워 이름을 세상에 떨치려는 자의 기교이며, 은미하고 편벽된 것을 찾아 자신만의 특이한 술책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방술사(方術士)의 기교이고, 술수와 농락으로 이익을 이루는 것은 시정(市井) 상인의 기교입니다. 심지어 언어나 필찰, 의복, 그릇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런 상투적인 기교들이 강물처럼 도도하게 유행하여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이에 대해 우뚝 서서 돌이킬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자가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주인은 타고난 바탕이 순박하고 진실하며, 몸가짐이 바르고 진중하며, 처신하는 데에 부끄러움을 알고, 일을 처리하는 데 근본이 있습니다. 그 말은 간략하고 어눌하며, 그 문장은 평이하고 담백합니다. 부친을 위해 과거에 응시하되 벼슬을 구하거나 청탁하는 일이 없고, 생계를 꾀하기 위해 농사에 힘쓰되 달리 영리를 추구하는 일이 없습니다. 읽는 것은 성현의 글에 지나지 않았고, 거처하는 곳은 비바람을 막는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종일토록 함께 어울리면서도 쓸데없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고, 책상이나 자리 주변에 진기한 물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세상의 기교를 부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지만, 순수한 어리석음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 도리어 어리석지 않게 되는 것인 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아, 주인이 어리석다 자처하는 것은 타고난 바탕에서 얻어진 것일 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이 점차 많아지고, 세간의 일을 겪은 세월이 점점 오래되다 보니 세상의 병이 되는 것으로 기교만한 것이 없고 기교를 치료하는 약이 되는 것으로 어리석음만한 것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힘을 다해 잘못을 바로잡고 고쳐서 일신의 동정(動靜)이 모두 한결같이 여기에서 나오게 하고, 또 온 세상을 들어 치료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 한 글자의 부절(符節)을 게시하여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하니, 주인이 말하기를, "이는 내가 집을 명명한 본래 의도는 아니지만, 집을 명명하여 스스로를 경계하는 뜻에 자못 도움이 될 듯하니, 바라건대 나를 위해 기문(記文)으로 지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客有難於主人曰。凡人自謂已愚。是不愚者也。自謂不愚。是眞愚者也。主人旣知其愚。是不愚也。奚復以愚名齋焉。傍有解之者曰。愚有對智而言者。孔子所謂下愚不移是也。又有對巧而言者。朱子所謂全其純愚是也。居今之世。一疵一病。何嘗不從巧中出也。體尙浮虛。務盡伎倆者。文詞之巧也。承迎趨附。用意百態者。功名之巧也。索隱搜僻。好自立異者。方術之巧也。機關籠絡。以濟其利者。市井之巧也。至於言語筆札衣服器用。都是此個窠臼。如水滔滔。惟恐不及。其能挺然於此而思欲反之者。有幾人也。主人天姿朴實。容儀質重。行已有耻。處事有本。其言也簡而訥。其文也平而淡。爲親應擧而不用干託。計口力穡而無他營求。所讀不過聖賢之文。所居不過風雨之庇。終日遊衍。無一剩語。左右几席。無一長物。以世之巧者觀之。固愚矣。而不知其全其純愚者。乃所以不愚也。嗚乎。主人之愚。不惟其得於天姿。讀書漸多。閱世漸久。知世之爲竊病者。莫如巧。巧之爲藥者。莫如愚。於是用力矯捄。使一身動靜。渾然一出於此。而又欲擧一世而藥之。故揭此一字符。使人人得以見之也。主人曰。此非吾名齋之本意然於名齋自警之義。頗似有補。願爲我記焉。 하우(下愚)는……없다 하우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唯上知與下愚不移]"라고 했는데, 상지(上知)는 이미 선(善)의 극치에 이르렀으므로 더 변화할 것이 없고, 하우는 선을 믿지 않고[自暴] 선을 행하지 않으므로[自棄] 변화해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순수한……있다 주희(朱熹)는 과거 공부의 폐해를 지적하며 "그들이 익히는 것이 과거 공부에 지나지 않아서 기량이 더욱 정밀해질수록 마음씨는 더욱 나빠지니, 이는 가르치지 않아서 오히려 그 순수한 어리석음을 보전할 수 있는 것보다 못한다.[其所習不過科擧之業, 伎倆愈精, 心衍愈壞. 蓋不如不敎猶足以全其純愚之爲愈也.]"라고 하였다. 《朱子大全 卷27 答詹帥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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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와기 謙窩記 높기만 하고 낮추지 못하며, 존귀하기만 하고 굽히지 못하는 것을 교만이라 이르니, 교만하면 흉하게 된다.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을 알지 못하며, 보존하는 것만 알고 망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거만이라 이르니, 거만하면 후회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하늘의 높음으로 땅에 낮추는 것은 〈태괘(泰卦)〉가 되고75), 산의 존귀함으로 땅에 굽히는 것은 〈겸괘(謙卦)〉가 되니76), '겸(謙)'의 시의(時義)가 크지 않은가.지위가 천하에 으뜸이되 필부를 예우하여 자신을 낮추는 것은 제왕(帝王)의 겸이고,77) 때에 맞추어 대유(大有)에 올라 천자에게 향응하는 것은 공후(公侯)의 겸이며,78) 신하로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 입 안의 음식을 뱉어내며 선비에게 몸을 낮춘 것은 재상(宰相)의 겸이다.79) 지혜가 천만 사람보다 뛰어나면서도 나무꾼에게도 묻는 것은 성인(聖人)의 겸이고,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걸치듯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춘 채 담박하고 검소하여 안으로 쌓아 두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학자(學者)의 겸이다. 덕이 넓어도 자랑하지 않는 것은 다스려진 세상에서의 겸이고, 주머니 끈을 묶듯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아서 허물이 없는 것은 어지러운 세상에서의 겸이다.나의 벗 겸와옹(謙窩翁)은 이릉(爾陵 능주(綾州)의 별호)의 북쪽에 은거하여 백발이 되도록 경서를 궁구하고 유유자적하게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그 겸손의 의리를 터득함이 깊었으니, 이를 가져와 호로 삼은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주역》의 여러 괘 중에 순전히 길하여 흉함이 없는 것은 오직 〈겸괘(謙卦)〉만이 그러하니, 그렇다면 옹이 만년에 누리게 될 복은 점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高而不能下。尊而不能降。是謂驕。驕則凶。知得而不知喪。知存而不知亡。是謂亢。亢則悔。是故以天之高而下於地則爲泰。以山之尊而降於地則爲謙。謙之時義。不其大矣乎。位加四海而禮下匹夫。帝王之謙也。時躋大有。而享于天子。公侯之謙也。位極人臣。而吐哺下士。宰相之謙也。智出千人。而詢于芻蕘。聖人之謙也。絅錦淡簡。內而不出。學者之謙也。德博而不伐。治世之謙也。括囊而無咎。亂世之謙也。余友謙窩翁。隱居爾陵之北。白首窮經。囂囂自樂。其有得於謙謙之義者深矣。引而號之。不亦宜乎。易諸卦純吉無凶。惟謙爲然。然則翁晚境所享。不占而可知。 하늘의……되고 《주역》 〈태괘(泰卦)〉의 괘상(卦象)을 말한 것으로, 땅을 상징하는 곤괘(坤卦 ☷)가 위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乾卦 ☰)가 아래에 있어 하늘이 땅에게 몸을 낮추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 산의……되니 《주역》 〈겸괘(謙卦)〉의 괘상(卦象)을 말한 것으로, 땅을 상징하는 곤괘(坤卦 ☷)가 위에 있고, 산을 상징하는 간괘(艮卦 ☶)가 아래에 있어 드높은 산이 평평한 땅에 자신을 굽히는 형상을 가지고 있다. 지위가……겸이고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가 황제에 오른 뒤에 어린 시절 함께 공부하였던 엄광(嚴光)에게 두터운 예물을 보내 초빙하고 벼슬을 주었지만, 엄광은 끝내 거절하고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동강(桐江)에서 낚시질을 하며 종신토록 은거하였는데, 훗날 범중엄(范仲淹)이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에서 "〈둔괘 초구〉에 '양덕이 바야흐로 형통하거늘 능히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몸을 낮추어 민심을 크게 얻는다.' 하였으니, 광무제가 이것을 따랐다.[在屯之初九, "陽德方亨, 而能以貴下賤, 大得民也". 光武以之.]"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83 嚴光列傳》 《古文眞寶 後集 卷6》 때에……겸이며 대유(大有)는 《주역》 64괘 중 14번째 괘의 이름으로, 소유한 것이 많다는 뜻이다. 〈대유괘(大有卦) 구삼(九三)〉에 "공이 천자에게 향응하니. 소인은 하지 못한다.[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라고 하였는데, 《역전(易傳)》에 이르기를, "삼효가 크게 소유한 때를 당하여 제후의 지위에 있으면서 풍부하고 성대함을 소유하면 반드시 이로써 천자에게 향응한다. 이는 자신의 소유를 천자의 소유로 여김을 말한 것이니, 이것이 신하로서의 떳떳한 의리이다.[三當大有之時, 居諸侯之位, 有其富盛, 必用亨通于天子. 謂以其有, 爲天子之有也, 乃人臣之常義也.]라고 하였다. 신하로서……겸이다 옛적에 주나라 주공(周公)이 어린 조카 성왕(成王)을 보필하면서 천하의 어진 인재들을 등용하는 데 급급하여 "머리를 한번 감는 동안에도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서 나갔고, 밥 한 끼를 먹는 동안에도 입 안의 음식을 세 번이나 뱉어냈다.[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라는 고사가 전해진다. 《史記 卷33 魯周公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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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기 藍溪記 《주역》에 이르기를, "군자는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80) 하였고, 공자가 이르기를,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도모하지 않는다."81) 하였으니, 이 때문에 조정에 있을 때에는 조정의 일을 말하고, 관청에 있을 때에는 관청의 일을 말하며, 공인(工人)들은 반드시 공방에 거처해야 하고, 축관(祝官)은 제기(祭器)의 일을 간섭하지 않는다.윤 사문(尹斯文) 흥서보(興瑞甫)는 집이 가천(佳川)인데, 호가 남계(藍溪)이다. 가천은 남계와는 땅과 경계가 다르고, 서로 거리가 현격하게 머니, 이것이 어찌 강을 호수로 알고, 바다를 산봉우리라 부르는 것과 다르겠는가. 비단 지위를 벗어나고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에 비견될 뿐만이 아니다. 남계는 진실로 이름난 지역이지만, 명성을 우선시하고 실질을 뒤로 하는 것은 사문의 뜻이 아니며, 가천의 물이 남계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마치 귀결처로 요약되는 뜻이 있는 것 같지만, 근원을 버리고 말류를 쫓는 것 역시 사문이 행하려는 것이 아니다.옛적에 주 선생(周先生)은 연봉(蓮峯) 아래에 집을 짓고 그 집의 당호(堂號)를 '염계(濂溪)'라 하였고82), 주 부자(朱夫子)는 창주(滄洲) 가에 살면서 그 집의 편액을 '자양(紫陽)'이라 하였다.83) 월(越)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짓고, 북방 오랑캐의 말은 북풍에 의지하니, 사물의 본성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현인군자(賢人君子)로서 근본을 마음에 두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이 응당 이와 같지 않겠는가.사문은 영평(永平 경기도 포천 지역의 옛 지명)의 명문 종족으로, 대대로 영평의 남계에 거주하다가 중간에 이주하여 능주의 가천 사람이 된 지 이미 3대가 되었다. 과축(薖軸)84)을 기구(箕裘)85)처럼 여기고 헌면(軒冕)86)을 진흙처럼 여기며 문밖을 출입하지 않고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으며, 배운 것은 오직 주렴계과 주자양의 학문뿐이었고, 움직이고 고요히 지내는 것 하나하나와 말하고 침묵하는 것 하나하나를 주렴계와 주자양처럼 하고자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그 호칭과 표방함에 어찌 유독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아,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지 않으면 작용이 두루 하지 못한 바가 있고, 흩어져서 각기 다르기만 하고 화합하여 함께하지 못하면 본체가 확립되지 못한 바가 있다. 지금 생각이 지위를 벗어나지 않되 거처함에 편안함을 생각하지 않고, 몸은 산중에 있되 호칭은 산 밖에 있으니, 사문의 학문을 대강 알 수 있다. 내가 비록 영민하지는 못하지만 하얀 실을 그대의 쪽빛에 맡기기를 바란다. 易曰。君子思不出其位。孔子曰。不在其位。不謀其政。是以在朝言朝。在官言官。工必居肆。祝不越俎。尹斯文興瑞甫。家佳川而號藍溪。夫佳之於藍。異壤殊境。相距懸然。是何異於認江爲湖喚海作嶺耶。非特爲出位越俎之比而已。藍固名區。而先名後實。非斯文之意也。佳之水注於籃。似若有要歸之義。而舍源趨流。亦非斯文之爲也。昔周先生築室蓮峯之下。題其堂曰濂溪。朱夫子僑寓滄洲之上。扁其室曰紫陽。越鳥南枝。胡馬北風。物性猶然。況賢人君子而其懷本戀舊。不應如是耶。斯文以永平名族。世居永之藍。中間移而爲綾之佳人。已三世矣。箕裘薖軸。塗泥軒冕。足不出門。名不出世。所學惟是周朱之學耳。一動一靜。一語一黙。無不欲周朱是似。則其於稱號標榜。奚獨不然。鳴乎。樂山而不樂水。則用有所不周。散殊而不合同。則體有所不立。今思不出位。而居不懷安。身在山中。而號在山外。斯文之爲學。可以槩矣。吾雖不敏。願以素絲付子之藍。 군자는……않는다 《주역》 〈간괘(艮卦) 상(象)〉에 "산이 거듭함이 간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생각이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兼山艮, 君子以, 思不出其位.]"라는 말이 보인다. 그……않는다 《논어》 〈태백(泰伯)〉에 보인다. 주 선생(周先生)은……하였고 주 선생은 북송(北宋)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이다. 그는 만년에 호남성(湖南省) 도현(道縣) 여산(廬山)의 연화봉(蓮花峯) 기슭에 거주하면서 그 앞에 흐르는 시내를 염계라 이름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宋史 卷427 周敦頤列傳》 주 부자(朱夫子)는……하였다 주 부자는  주희(朱熹, 1130~1200)를 말한다. 그는 복건성 숭안(崇安)에 살면서 그의 부친 주송(朱松)이 안휘성(安徽省) 흡현(歙縣)에 있는 자양산(紫陽山)에서 독서했던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집 이름을 '자양서실(紫陽書室)'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후인들이 주희를 '자양'으로 불렀다. 과축(薖軸) 은거의 삶을 비유하는 말로, 《시경》 〈고반(考槃)〉에 "숨어 살 집이 언덕에 있으니, 큰 선비의 마음이 넉넉하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라고 한 것과 "숨어 살 집이 고원에 있으니, 큰 선비가 소요하는 곳이로다.[考槃在陸, 碩人之軸.]"라고 한 것에서 끝의 한 글자씩 가져와 합성한 것이다. 기구(箕裘) 키와 가죽옷이라는 뜻으로, 가업(家業)을 비유하는 말이다. 《예기》 〈학기(學記)〉의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을 만드는 것을 배우고, 훌륭한 궁인의 아들은 반드시 키를 만드는 것을 배운다.[良冶之子, 必學爲裘, 良弓之子, 必學爲箕.]"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헌면(軒冕) 수레와 면류관이라는 말로, 관작과 봉록이 높은 벼슬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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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정기 東溪亭記 사군자(士君子)가 이 세상에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없다면 원림(園林)과 천석(泉石)이 뛰어난 곳을 택하여 오만함을 부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산이 굽이지고 물가의 경치가 뛰어난 곳에 있는 별장은 대체로 곤궁한 선비의 쇠잔한 힘으로는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부귀하여 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어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기거하고 여기에 머무는 목적은 글을 짓고 술을 마시며 놀고 즐기거나 한 때의 한가로움을 훔치기 위한 계책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은거하여 뜻을 구하는 유인(幽人 은사(隱士))으로서의 곧음과 길함을 볼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지역을 얻지 못하고, 그 지역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사람을 얻지 못하니, 사람과 지역이 서로 만나는 것이 또한 어려운 일일 것이다.고(故) 처사(處士) 신공(申公) 휘 광택(光宅)은 학술과 의로운 행실이 당시 벗들 사이에서 자자하게 회자되며 존중을 받았는데, 서석산(瑞石山 무등산) 아래 동계(東溪) 가의 한 구역에 집을 짓고 도를 강설하고 학문을 창도하며 유유자적하게 삶을 마쳤다. 대저 신공은 남쪽 고을의 고상한 선비이고, 서석산은 남쪽 지방의 명승지이니, 이는 사람과 지역이 서로 만나고, 정경과 마음이 서로 맞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공이 서석산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진실로 공에게는 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석산이 아니더라도 공이 거처하면 좁은 집은 넓은 집이 될 것이고, 공이 머무르면 노지(露地)는 이름난 정자가 될 것이다. 반면에 만약 서석산이 공을 만나지 않았다면 수백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지역이 반대로 시내와 숲이 부끄럽게 여기는 허물이 있게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당시 서로 만나 알아줌을 얻게 된 것은 공의 복이 아니라, 바로 서석산의 행운임을 알 수 있다. 내가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장차 한번 찾아가서 백 년 뒤에 정채(精釆)를 상상해보고, 인하여 서석산을 위해 축하하려 한다. 士君子旣不得有遇於斯世。則當占園林泉石之勝以寄敖焉足矣。然山之曲水之涯。名區別庄。類非窮士孱力所能排置。而舉爲富貴繁華人粧點。然則其所以爰居爰處者。不過爲文酒遊衍。一時偷閒計耳。曷嘗見隱居求志。幽人貞吉者乎。有其人。未必得其地。有其地。未必得其人。人地相得。其亦難矣哉。故處士申公諱光宅。學術行義。藉藉見重於一時士友之間。就瑞石下東溪上。築一區屋子。講道倡學。優游卒歲。夫申公南州之高士。瑞石南方之勝境。此其非人地相得境情相稱者耶。然公而不遇瑞石。固不害爲公。湫屋是廣居。露地是名亭。若瑞石而不遇公。則百年天荒。反不免有澗愧林慙之累。是知當日之賞音。非公之福。而乃瑞石之幸也。余雖老且病。將一理巾屐。想象精釆於百年之後。因以爲瑞石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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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은기 海隱記 발굽에 고인 물이나 표주박에 담긴 물로부터 도랑이나 시냇물에 이르기까지 백 갈래 만 갈래 온갖 물줄기들이 가까이 흐르고 멀리 흘러서 서로 모이고, 큰물이 서로 만나 합쳐지고 또 합쳐지며, 쌓이고 또 쌓여 어느 한줄기도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바다가 물의 나라가 되는 이유이다.아, 해은(海隱) 조공(趙公)이 출신(出身)하여 벼슬길에 오른 뒤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에 벼슬에서 물러나 천 리 머나먼 바닷가 모퉁이에서 품었던 생각이 무엇이겠는가? 옛사람 중에 맑은 샘을 보고서 서울을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고91), 우물을 치는 것을 보고 임금이 명철해질 것을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92), 하물며 온갖 냇물이 모여드는 바다를 바라보며 아득히 국중(國中 한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에 당시 호를 취한 뜻이 단지 평범하게 은거를 뜻하는 것에 비견될 뿐만이 아님을 알 수 있으니, 벼슬에 나아가든 벼슬에서 물러나든 단연코 다른 뜻이 없음을 대략 상상할 수 있다. 공이 살아계셨을 때에 한번 나아가서 "산에는 개암나무가 있다네."93)라는 몇 곡조에 화답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自蹄涔蠡勺之微。至於溝澮溪澗。百川萬流。遠近相聚。大水相遇。合之又合。積之又積。無一不朝宗於海。此海所以爲水之國也。噫。海隱趙公出身仕路。白首懸車。海隅千里。所懷維何。古人有見洌泉而念京師者。有見渫井而思王明者。況觀乎大海百川朝宗之所。而可無悠悠戀國之心耶。乃知當日取號之意。 非直爲尋常志居之比。而進憂退憂。斷斷無他之意。槩可想矣。恨未及在時一造。以和山有榛數闋。 맑은……있었고 《시경》 〈하천(下泉)〉 에 "차가운 저 하천이여, 우 수북이 자라는 잡초를 잠기게 하도다. 개연히 내 잠 깨어 탄식하니, 저 주나라 서울을 생각하노라.[冽彼下泉, 浸彼苞稂. 愾我寤嘆, 念彼周京.]"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으로, 〈모시서〉에 의하면, 이 시는 주나라 왕실이 쇠망해 감에 따라 작은 나라가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것을 한탄한 것이라 하였다. 우물……있었는데 《주역》 〈정괘(井卦) 구삼(九三)〉에 "우물을 깨끗이 청소했는데도 먹어 주지 않아서 나의 마음이 안타깝다. 내가 그 물을 길어 줄 수 있으니, 임금이 현명하면 함께 그 복을 받으리라.[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竝受其福.]"라는 말이 있다. 산에는……있다네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 시이다. 《시경》 〈패풍(邶風) 간혜(簡兮)〉에 "산에는 개암나무가 있고, 진펄에는 감초가 있도다. 누구를 생각하는가, 서방의 미인이로다. 저 미인은 서방 사람이로다.[山有榛, 隰有苓. 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라고 한 데서 인용한 것으로, 서방의 미인은 서주(西周)의 훌륭한 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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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영에게 답함 答洪文寧 왕림해주신 지 오래되지 않아 또 이처럼 편지를 보내주시니 감격스러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보내오신 글이세 '날마다 하는 공부가 중간에 끊어지고 이어지질 않고 있습니다.【日用工夫, 間斷不接】'라고 한 부분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간단(間斷)이라는 두 글자는 좀 생각할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해야만 끊어지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만 이어지는 것이겠습니까. 또한 끊어질 때는 우리 마음이 어떠하며 이어질 때는 우리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보는 것이 절실하다면 체득함이 정밀해지고, 체득함이 정밀하다면 지키는 것이 견고하게 되고, 지키는 것이 견고하게 된다면 무슨 걱정할 만한 간단함이 있겠습니까? 또 '구용(九容)과 구사(九思)82)의 공효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潛索於九容九思之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모든 일을 절실히 묻고 가까이 생각함【切問而近思】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옛날 요진경(廖晉卿)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청하자,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공은 마음을 놓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우선 정신을 수렴하여야 합니다. 〈옥조(玉藻)〉에서 말한 구용(九容) 부분을 자세히 체인하여 의사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公放心已久, 且合收斂精神, 玉藻言九容處, 子細體認, 待有意思, 却好讀書.】"83)라고 하였는데 일찍이 이러한 말을 본 적이 없는지요? 대저 초학자가 몸과 마음을 수렴하고 근본을 함양하는 방법으로 구용(九容)에서 무엇을 더하겠습니까? 모름지기 착실하게 체득하고 궁구하면 끝내는 원대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비(士抷)께서는 《혹문(或問)》을 다 읽었는지요? 새롭게 얻은 1~2 조목을 보내주실 수 있겠는지요? 오랫동안 과정을 세워 읽은 책은 무엇인지요? 순필(舜弼)과 함께 모이는지요? 그리움과 울적함이 나란히 간절하니 조만간 서로 만나서 쌓인 회포를 풀었으면 합니다. 委枉未久。又此垂訊。感不容謝。示中日用工夫。間斷不接。此固可憂。然間斷二字。儘有合商量處。如何是間斷。如何是接續。間斷時此心如何。接續時此心如何。見之切則體之密。體之密則守之固。守之固則有何間斷之可憂哉。又云潛索於九容九思之功。此可見切問而近思。昔廖晉卿請讀何書。朱子曰。公放心已久。且合收斂精神。玉藻言九容處。子細體認。待有意思。却好讀書。未知曾看此語否。大抵初學者收斂身心。涵養本源之方。孰有加於九容哉。須着實體究。卒臻遠大也。士拯讀或問未了耶。何不以新得一二條見寄耶。允深見課何書。舜弼與之相聚否。倂切戀菀。那間相奉攄此宿蘊也。 구용(九容)과 구사(九思) 구용(九容)은 《예기》 〈옥조(玉藻)〉에 나오는 군자가 수행(修行)하고 처신(處身)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아홉 가지 자세로, '걸음걸이의 모양은 무게가 있어야 하고, 손놀림의 모양은 공손해야 하고, 눈의 모양은 단정해야 하고, 입의 모양은 조용해야 하고, 목소리의 모양은 고요해야 하고, 머리 모양은 곧아야 하고, 기상의 모양은 엄숙해야 하고, 서 있는 모양은 덕스러워야 하고, 얼굴빛은 장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사(九思)는 《논어》 〈계씨(季氏)〉에 나오는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으로, '볼 때는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할 때는 충성되기를 생각하고, 일할 때는 조심하기를 생각하고, 의심날 때는 묻기를 생각하고, 분노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고서는 마땅히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요진경(廖晉卿) …… 말하였습니다 요진경이 "무슨 책을 읽어야 합니까?【廖晉卿請讀何書?】"라고 묻자, 답하기를 "공은 마음을 놓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우선 정신을 수렴하여야 합니다. 〈옥조〉의 구용을 자세히 체인하여 의사가 있기를 기다린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公心放已久, 可且收斂精神. 玉藻九容處, 子細體認, 待有意思, 却好讀書.】"라고 하였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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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일【익호】에게 답함 答文子一【翼浩】 벗의 편지 한 폭이 새 봄과 함께 이르니 저도 모르게 눈이 확 뜨이고 마음이 깨치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통해 어버이를 모시며 지내는 정황이 새해에도 만복함을 알게 되었으니, 더욱 듣고 싶었던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고 한편으로는 더욱 쇠하게 되었으나 도를 듣지도 못한 채 저녁에 죽게 되었으니85) 이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칠월장(七月章)에서, '정삭만 고쳤을 뿐 월수는 고치지 않았다.【改正朔不改月數】'86)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례(古例)입니다. 그에 대한 설이 《서경(書經)》 이훈(伊訓)에 실려 있으니 오직 원사 12월【元祀十有二月】조 아래를 살펴보면 어떠하겠습니까? 공손홍(公孫弘)의 대책(對策)에서 홍수(洪水)의 소치를 말하지 않고 단지 큰 가뭄이 걸(桀) 임금의 잔학한 여세라고 한 것은 선유(先儒)들이 공손홍(公孫弘)의 마음씀이 음사(陰詐)한 곳이라고 여긴 이유입니다. 맹자(孟子)는 '요 임금의 시대에 세상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87)라고 하였는데, 대개 대개 천지가 갈라지기 전의 혼돈의 시대에 물길이 아직 통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공손홍이 이와 같이 애매모호하게 말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음사(陰詐)의 기미가 된 이유입니다.혼(魂)이 함께 배행하는 것은 예에 실로 있습니다. 혼백(魂魄)이 흩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고복(皐復)88)하고 비단을 묶어 혼백(魂帛)을 만들며 영좌(靈座)와 영상(靈床)을 설치하는 것은 모두 혼(魂)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뜻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혼백이 서로 떨어진다는 혐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보지 않는 바에서도 계신하고, 듣지 않는 바에서도 공구한다.【戒愼不睹 恐懼不聞】'는 것은 아래 문장에서 '희로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喜怒哀樂未發】'와 서로 조응(照應)합니다. 운운(云云)계신공구(戒愼恐懼)는 미발(未發)할 때의 공부입니다. 고인(古人)이, '공부하는 곳이 없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라고 한 말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공부의 요처(要處)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 힘쓰는 것에 있습니다.중용(中庸)에 의한 군자(君子)는 잘하는 것으로 성인에 이르는 자와 현격하게 다른 점이 있습니까.백성에게 입각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잘하는 것【能】이라고 하였고, 성인(聖人)에 입각하여 설명하였기 때문에 의한다【依】라고 하였습니다. 의한다는 것은 어김이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사(思)', '려(慮)', '염(念)', '회(懷)', '억(憶)'의 다섯 글자와 '지(志)', '의(意)', '정(情)'의 세 글자는 각각 조리(條理)가 있을 것인데 자세하지 않습니다. 운운(云云)'사(思)'는 생각하는 것이고, '려(慮)'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고, '염(念)'은 좋아하여 그리워하는 것이고, '회(懷)'는 상상하여 느끼는 뜻이고, '억(憶)'은 계속해서 그리워하는 뜻입니다. '지(志)'는 마음이 가는 바이고, '의(意)'는 계교(計較)하고 헤아리는 것이고, '정(情)'은 마음이 갑자기 나아가는【發出】 것입니다. '사(思)'는 넓고 '려(慮)'는 길며, '염(念)'은 가깝고 '회(懷)'는 멀며, '회(懷)'는 부드럽지만 '지(志)'는 강하고, '정(情)'은 빠르지만 '의(意)'는 느립니다. 故人一幅書。與新春俱至。不覺心目開醒。從審侍省餞迓百福。尤庸願聞。義林一番得年。一番添衰。而無聞夕死是爲可恨耳。七月章云云。改正朔不改月數。此是古例也。其說詳具於伊訓惟元祀十有二月條下。考之如何。公孫弘對策不言洪水之所致。而只言大旱之爲桀之餘烈者。先儒以爲此孫弘用心陰詐處。孟子云當堯之時天下猶未平。蓋洪荒未判。水道未通之致。而弘也含糊說如此。此所以有陰詐之譏也。魂與倍行。禮固有之。魂魄離散。故死則皐復束帛。靈座靈床。無非所以安魂之意也。於何而有魂魄相離之嫌乎。戒愼不睹。恐懼不聞。與下文喜怒哀樂未發。相照應云云。戒愼恐懼。是未發時功夫。古人所謂無功夫處。是功夫。是也。功夫要處。正在於此勉之。依乎中庸之君子。與能之之聖者。有懸殊否。就民上說故曰能。就聖人上說故曰依。依是無違之謂。思慮念懷憶五字。志意情三字。各有條理而未詳云云。思是商量底。慮是戒懼底。念是嗜慕底。懷是想感之意。憶是戀注之義。志是心之所之。意是計較揣量處。情是心之猝然發出處。思廣而慮長。念近而懷遠。憶柔而志剛。情速而意緩。 도를……되었으니 《논어》 〈이인(里仁)〉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정삭만 …… 않았다 《서경(書經)》 이훈(伊訓) 첫머리에 나오는 채침(蔡沉)의 주석에 그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요 임금의 …… 평정되지 않았다 《맹자》 〈등문공 상〉에 나오는 말로, "요 임금의 시대에 세상이 아직 평정되지가 않았는데, 홍수가 무질서하게 흘러 온 세상에 넘쳐 흘렀다.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짐승들이 번식하였으며 오곡이 자라지 않고 짐승들이 사람들을 핍박하였다. 길짐승 발자국과 새 발자국이 나라 안에 가득하였다.【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세상에 아직 질서가 잡히지 않고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야만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서양 오랑캐들 때문에 다시 그러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고복(皐復) 사람이 죽은 뒤 지붕 위에 올라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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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의 자설 洪士拯字說 옛적에 소환(蘇渙)의 표덕(表德 자(字))을 처음에는 '공군(公群)'으로 했었는데, 그의 동생 소순(蘇洵)이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이루는지라 크게 길하다.[渙其群元吉]"41)에서 뜻을 취하는 것이 다만 "바람이 물 위에 불 때 문양을 이룬다.[風水成文]"라는 뜻을 취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하고, 인하여 '문보(文甫)'로 바꾸었다.내가 살펴보건대, 바람이 물 위에 부는 때를 만나 구제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흩어지도록 내버려 둔 채 단지 그 문양만을 취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만물이 흩어져 달라지지만 유행은 합쳐져 같게 되고, 억조창생이 지극히 많지만 정신은 감응하여 모이며, 예의(禮義)가 매우 많지만 모두 상세히 알아 통달하는 것은 또한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이룬다는 뜻이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군자가 하루라도 힘쓰지 않는 것이겠는가. 한가로이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여 오히려 화방(畫舫)을 명(銘)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데42), 하물며 흩어지는 때를 만나 어려움을 사양한 채 스스로 편안히 지낼 수 있겠는가.지극한 보배가 깊은 곳에 있거든 배를 타는 괴로움을 꺼려하지 않아서 솜으로 물이 새는 것을 대비하고 밧줄로 짐을 고정해 두면 하룻밤 봄물이 불어나는 때에 이르러 힘들게 애쓰지 않아도 몽충(蒙衝) 같은 큰 전함이 하나의 터럭만큼이나 가볍게 떠 갈 것이니, 홍수나 큰 하천을 건너게 하더라도 거침없이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흩어지는 것을 구제하는 것이 어느 때라도 불가할 것이 없을 것이다.홍씨(洪氏)의 자손 승환(承渙)은 젊은 나이에 준걸차고 재주가 남달랐는데, 나에게 표덕(表德 자(字))을 묻기에 내가 "흩어짐을 구제함에 무리를 이루는 것이 길하다.[用拯群吉]"라는 뜻을 취하여 '사증(士拯)'이라 명명하였다. 아, 사증이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선대부(先大夫) 봉남공(鳳南公)이 명명한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昔蘇渙表德。初以公群。其弟洵以爲取諸渙其群元吉。不如只取風水成文之義。因以文甫易之。以予觀之當風行水上之時。不圖所以拯救之方。而任其渙散。只取其文者。未見其爲至當也。萬物散殊而流行合同。億兆至衆而精神感聚。禮義優優而纖悉會通者。亦莫非渙群之義也。豈君子一日而不勉者乎。人有燕居思危。而猶以畵舫爲銘。況當其渙而辭難自便乎。至寶在深。不憚勤航。袽以備其漏。維以固其載。至於一夜春水。不勞推移之力。而蒙衝巨艦。輕如一毛。則使之涉大浸濟巨川。沛有餘裕矣。然則吾之所以拯渙者。將無時不可矣。洪氏子承渙。妙齡雋異。問表德於予。予取用拯群吉之義。命之曰士拯。嗚呼。士拯顧名思義。必有不負其先大父鳳南公命名之義者矣。 흩어짐에……길하다 《주역》 〈환괘(渙卦) 육사(六四)〉에 나오는 말이다. 한가로이……있는데 송나라 때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조칙에 응해 글을 올려 여러 폐단을 진언하였다가 외직으로 좌천되어 활주(滑州)의 수령으로 있을 때 자신의 집무실 곁에 방을 만들고 화방재((畫舫齋)라 명명한 뒤에 〈화방재기(畫舫齋記)〉를 지어 거안사위(居安思危)의 감정을 서술한 일을 말하는 듯하다. 《文忠集 卷39 畫舫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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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규가 친영할 때의 초사 孫兒憲圭親迎時醮辭 "가서 너를 도울 부인을 맞이하여 우리 종묘의 일을 잇고, 힘써 공경으로 이끌어라. 그렇게 하면 떳떳함이 있을 것이다."56)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옛사람이 초자(醮子)57) 때에 하는 말이고, "힘써서 공경으로 이끌어라."라는 네 글자에 무한한 의리가 담겨있으니, 너는 알고 있느냐?공경은 일신의 바탕이며, 만 가지 선의 근본이니,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일상생활의 온갖 말과 행동이 이것을 말미암지 않고 행할 수 있는 자가 없는데, 하물며 천륜의 큰 벼리가 되는 부부(夫婦)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부부는 군자의 도가 시작되는 단서이고, 친영(親迎)은 부부의 도가 시작되는 단서인데, 전자에 태만하고 후자에 공경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행하기 어렵고, 시작이 없이 끝이 있는 것은 이치상 있을 수 없으니, 네가 몸을 닦고 집안을 화목하게 하며, 앞으로 과정의 잘잘못이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주역ㆍ가인(家人)》의 〈단전(彖傳)〉에서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의 바름이 천지의 대의(大義)이다."라고 하였고, 그 〈상구(上九)〉에서 이르기를, "믿음과 위엄이 있으니, 끝내 길하다."라고 하였으며, 〈상전(象傳)〉에서 이르기를, "위엄이 있으면 길하다는 것은 자신을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이른바 위엄이라는 것은 가혹하고 각박하며 분노하고 사나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세우고 자신을 단속하여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고 행동을 망령되이 하지 않으며, 화순(和順)하고 경외(敬畏)하는 뜻을 보존하고, 태만하고 업신여기는 습관을 경계하여 평소의 행위에 한 터럭만큼도 남에게 비난을 받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른바 힘써 공경으로 이끈다는 것도 이러한 뜻이 아니겠는가. 너는 힘써야 할 것이다. 往迎爾相。承我宗事。勉率以敬。若則有常。此古人醮子之辭也。而勉率以敬四字。有無限義理。汝知之乎。敬者一身之基。萬善之本。人生日用凡百云爲。未有不由此而能行之者。況夫婦之爲天倫大綱乎。夫婦者君子之道所以造端也。親迎者。夫婦之道所以造端也。慢於前而敬於後。勢必難行。無其始而有其終。理所未有。汝之修身宜家。前程得失。權輿於此。易家人之彖曰。男女正。天地之大義也。其上九曰。有孚威如。終吉。象曰。威如之吉。反身之謂也。所謂威如。非苛刻忿厲之謂也。只是立心飭躬。言不忘發。行不忘作。存和順恭畏之意。戒惰慢褻狎之習。使平日所爲。無一毫見非於人是也。所謂勉率以敬。亦非此意也耶。汝其勉之。 가서……것이다 《가례》 〈혼례(昏禮)〉에 나오는 말이다. 초자(醮子) 관례(冠禮)나 혼례(婚禮)에서 부모나 어른이 당사자인 아들에게 술을 따라 주는 의식인 초자례(醮子禮)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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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 영모재 중수기 具氏永慕齋重修記 죽수(竹樹)106)의 동쪽 연주산(聯珠山)은 고 평장사 구공(具公)의 묘소가 있는 곳이고, 산 아래에 날개를 펼친 듯 운림(雲林)의 끝에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손들의 영모재(永慕齋)이다. 대개 상재(桑梓)의 생각107)과 상로(霜露)의 감회108)를 깃들이고, 노래하고 곡하며 종족을 모으는 장소로 삼았으니, 마치 진씨(甄氏)의 사정(思亭)109)과 황씨(黃氏)의 망고정(望考亭)110)과 같았다. 오직 선조를 사모하는 마음이 무궁하다면 이 재사 또한 장차 자손과 더불어 시종 함께 할 것이니 다르게 보아서는 불가하다. 이 때문에 전후로 수백 년 동안 무너지는 대로 수리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후손 본수(本修)가 개탄스러운 심정으로 생각을 내어 도모가 여러 종친에게 미쳤는데, 모모가 그 일을 주관하고 모는 그 재정을 담당하고 모모는 그 일을 감독하여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5개월 만에 공사가 끝났다. 기울어진 것은 바로 세우고 느슨해진 것은 견고하게 하고 세월이 흘러 퇴색 된 것은 깨끗하게 새롭게 하여, 청(廳)·당(堂)·문(門)·무(廡)가 환하게 모습을 바꾸었으니, 《서경》의 이른바 "긍구긍당(肯構肯堂)"111)과 《시경》의 이른바 "사속비조(似續妣祖)"112)를 모두 볼 수 있다.오호라! 고심하고 정성과 힘을 다해 애써 주선하여 여기에 이른 것은 단지 조석으로 첨모(瞻慕)하여 저존(著存)의 정성113)을 지극하게 하고 밤낮으로 강론하고 수양하여 계술(繼述)할 방범을 궁구하여 안으로는 집안의 기대가 되고 밖으로는 나라의 빛이 되는 것이니, 이 재사에 노니는 사람은 어찌 서로 면려하지 않겠는가. 竹樹之東。聯珠之山。故平章事具公衣履之藏。山下翼然。在雲林之端。卽其子孫永慕之齋也。盖以寓桑梓之思。霜露之感。而爲歌哭聚族之地。如甄氏之思亭。黃氏之望考亭也。惟是慕先之心爲無窮已。則此室亦將與子孫相終始。而不可以差殊觀也。是以前後數百年。隨敝隨補。非止一再。後孫本修。慨然發慮。謀及諸宗。某某尸其事。某掌其財。某某董其役。首尾五朔。功役告訖。傾側者峻直。縱弛者鞏固。漫漶者鮮新。廳堂門廡。煥然改觀。書所謂肯構肯堂。詩所謂似續妣祖。皆可見。嗚乎。苦心血力。拮据至此者。只是朝夕瞻慕以致著存之誠。夙夜講修以究繼述之方。內以爲門戶之望。外以爲邦國之光。遊此室者。盍相勉焉。 죽수(竹樹)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의 옛 이름이다. 상재(桑梓)의 생각 부모가 살던 고향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반(小弁)〉에 "부모가 심은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한다.[維桑與梓, 必恭敬止.]"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로(霜露)의 감회 돌아가신 부모나 선조를 슬퍼하며 사모한다는 뜻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군자가 이것을 밟고 반드시 서글퍼지는 마음이 있으니, 추워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진씨(甄氏)의 사정(思亭) 송(宋)나라 때 진씨(甄氏) 집안의 사람인 진군(甄君)의 정자인데, 조상을 추모하기 위한 정자를 가리킨다. 진씨 집안은 원래 서주(徐州)의 부호였는데, 진군 때에 이르러 집안이 가난해졌다. 이에 부모 형제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형편이라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영구(靈柩)를 여럿 마련하여 함께 장사 지내고 무덤가에 집을 지었다. 그러자 당시 문장가인 진사도(陳師道)가 그 내력과 조상을 사모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정기(思亭記)〉를 지었다. 황씨(黃氏)의 망고정(望考亭) 오대(五代) 남당(南唐) 때 황자릉(黃子稜)이 아버지의 무덤을 멀리 바라보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긍구긍당(肯構肯堂) 자손이 선조의 유업(遺業)을 잘 계승한다는 뜻이다. 《서경》 〈주서(周書) 대고(大誥)〉에 "만일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고 이미 그 규모를 정해 놓았는데도 그 아들이 기꺼이 당의 터도 마련하려고 하지 않는데, 하물며 기꺼이 당을 짓고자 하겠는가.[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弗肯堂, 矧肯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사속비조(似續妣祖) 자손이 선조의 유업(遺業)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시경》 〈소아(小雅) 사간(斯干)〉에 "선조를 계승하여 담장이 백도나 되는 집을 지었네.[似續妣祖, 築室百堵.]"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저존(著存)의 정성 돌아가신 어버이에 대해 사랑과 정성을 다 들이면 살아 계신 듯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으로, 공경히 제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예기》 〈제의(祭義)〉에 후손이 조상에 대하여 "사랑을 다하면 혼령이 보존되고, 정성을 다하면 혼령이 드러난다.[致愛則存, 致慤則著.]"라는 말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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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헌기 瑞軒記 남쪽 지방에 헤아릴 만한 명산이 하나가 아니지만 그 체덕(體德)을 말한다면 모두 서석산(瑞石山)만 못하다. 봉우리는 기울지 않았고 돌은 거칠지 않으며 초목으로는 가시나무가 없고 벌레로는 독충이 없다. 정령(精靈)이 내린 바에 현인이 배출되고 지맥(枝脈)이 뻗은 곳에 명구(名區)가 서로 바라보인다. 아마도 천지가 열리던 초기에 일종의 정숙(禎淑)한 기운이 모여들어 응결된 것이 있을 것이다. 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백 여리를 달려 화순[爾陵]의 경계에 이르러 연화봉(蓮花峰)이 되었다. 나의 벗 사문(斯文) 김성중(金誠仲)이 연화봉 끝자락에 한 채의 정사를 지었는데 서석산과 정확히 마주하고 있다.무릇 군자는 산에 대해서 적취(積聚)한 형상을 보고 그 덕(德)을 기르고, 후중(厚重)한 형상을 보고 그 인(仁)을 돈독히 한다. 더구나 늘어선 봉우리와 여러 산들과 견줄 것이 아니고 마치 거인장자(巨人長者)가 높은 갓을 쓰고 넓은 띠를 두른 채 엄연히 창문과 궤석의 앞에 우뚝 서 있는 것 같아서, 출입하고 기거하며 휴식하고 한가로이 지냄에 비록 잠시라도 떨어지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이 헌(軒)이 '서(瑞)'가 된 까닭이다.오호라! 헌이 이미 상서로우니, 사람이 유독 상서롭게 되지 않겠는가. 감히 침을 뱉지 못하는 것이 청성(靑城)의 산과 같고145) 감히 거만하지 못하는 것이 남간(南澗)의 돌146)과 같아 담담하게 마주하고 묵묵히 계합하며, 가만히 수양하고 고요히 함양하여 낮은 곳으로부터 높이 올라가고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루어 명망과 실상이 높고 무거우며 기풍과 운치가 높고 가파른데 이른다면 한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장차 경성(景星)과 경운(慶雲)147) 같이 우러르고 상서로운 봉황과 기린 같이 사모할 것이니, 그 사람 가운데 상서로움이 되는 것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서헌(瑞軒)의 주인이 된 것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南方名山可數者非一。而言其體德。則皆莫若瑞石焉。峯不偏側。石不麤厲。草無荊棘。虫無虺蝎。精靈攸降。賢人輩出。枝脈攸及。名區相望。蓋開闢之初。一種禎淑之氣。有以鍾聚融結者也。山之一支。南走百餘里。至爾陵界爲蓮花峰。余友金斯文誠仲。就峯之趾。築一區精舍。與瑞石的對。夫君子之於山。觀積聚之象以育其德。觀厚重之象以敦其仁。況非列峯群巒之比。而如巨人長者。峩冠博帶。儼然峙立於窓牖几席之前。出入起居。遊息燕閑。雖欲頃刻離之而不可得。此軒之所以爲瑞也。嗚乎。軒旣㙐矣。人獨不爲瑞矣乎。不敢唾如靑城之山。不敢慢如南澗之石。澹對黙契。潛修靜養。自卑而高。積小而大。以至望實隆重。風韻崢嶸。則一世之人。必將仰之如景星慶雲。慕之如祥鳳瑞麟。其爲人中之瑞。果何如哉。庶無負爲瑞軒主人也。 감히……같고 당(唐)나라 두보(杜甫, 712~770)의 시 〈장인산(丈人山)〉에 "청성에서 나그네살이 하게 되면서, 청성 땅에는 침을 뱉지 못하였네.[自爲靑城客, 不唾靑城地.]"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杜詩詳註 卷10》 감히……돌 주자의 시 〈운곡26영(雲谷二十六詠)〉가운데〈북간(北澗)〉에 "흙 끊어지고 시내 또한 나누어지니, 북쪽 아래에 어두운 시내 이루어졌네. 빼어난 돌이 아름다운 이름 얻었으니, 가슴에 새겨 내 감히 거만하랴.[土斷川亦分, 北下成陰澗. 秀石得佳名, 服膺吾敢慢?]"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이 시의 주석에 "시내에 인의석이 있다.[澗有仁義石]"라고 하였다. 남간(南澗)은 북간의 착오로 보인다. 경성(景星)과 경운(慶雲) 고대에 태평 시대에 나타난다고 인식했던 상서로운 현상들이다. 경성은 대성(大星), 덕성(德星)이라고도 하고, 경운은 오색의 채운(彩雲)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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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탄기 松灘記 회옹(晦翁)의 시에 이르기를 "평생 비바람 부는 저녁이면, 매번 명절의 어려움을 생각하네.[平生風雨夕, 每念名節難.]"라고 하였으니,159) 풍우는 어느 때 불며, 명절은 어떤 일이며, 회옹이 탄식을 발한 것은 무슨 뜻인가?오호라! 천하에 선치(善治)가 없었던 것이 오래 되었다. 그러나 선치의 도를 강론하여 밝혀 사람을 선하게 하고 후세에 전하여 한 가닥 양의 기운을 천하에 보존하는 것은 선비 된 자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선비의 추향이 예스럽지 못한 것이 또한 이미 오래 되었다. 이름을 따르고 실상을 잊으며 이익을 보고 의를 배반하여 평소 한가로운 날에도 동서로 넘어지고 기울어 이미 능히 스스로를 부지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비바람을 예측할 수 없는 때에야 어떠하겠는가. 온갖 초목이 모두 병들고 온갖 나무가 함께 시들어 심지어 난초가 변하여 쑥대가 되고 혜초가 변하여 띠 풀이 되지만 세한(歲寒)의 기약을 잃지 않는 것은 오직 시냇가의 푸른 소나무뿐이다.나의 벗 송탄자(松灘子)는 평소 강개하여 어울리는 사람이 적었으니, 까닭에 지극한 뜻을 무의(無意)에 깃들이고 지극한 정을 무정(無情)에 의탁하여 조석으로 서성이며 배회할 곳으로 삼았으니, 생각건대 이것이 회옹이 탄식을 발한 뜻이 아니지는 않을 것이다. 내 장차 한 번 찾아가 물어보고 인하여 가르침에 의지하기를 마치 조라(蔦蘿)가 뻗는 듯이 할 것이다.160) 晦翁詩曰。平生風雨夕。每念名節難。夫風雨何時。名節何物。晦翁之所以發歎何意。嗚乎。天下之無善治久矣。然講明善治之道。淑諸人。傳諸後。以存一縷陽脈於天下者。其非爲士者之責耶。士趨之不古。亦已久矣。徇名而忘實見利而背義。在平常燕閒之日。而東倒西歪。已不能自持。況於風雨不測之時乎。百卉具腓。萬樹同凋。以至蘭變爲蕭。蕙化爲茅。而不失其爲歲寒之期。惟是澗畔蒼然者耳。余友松灘子。平生慷慨。寡諧於人。所以寓至意於無意。托至情於無情。以爲日夕盤桓之地者。想未必不是晦翁發歎之意也。余將一造而問焉。因以依附下風。如蔦蘿之施。 회옹(晦翁)의……하였으니 이 시는 남헌(南軒) 장식(張栻)의 시 〈양정방을 보내며[送楊廷芳]〉3수 가운데 셋째 수에 나온다. 정의림의 착오로 보인다. 조라(蔦蘿)……것이다 《시경》 〈소아(小雅) 규변(頍弁)〉에 "겨우살이와 여라가 송백에 뻗어 있네[蔦與女蘿, 施于松柏.]"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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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편지에 답하지 못한지 또한 며칠이 지났으니, 늘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어버이 곁에서 모시는 상황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정(貞)이라는 시호(諡號)는, "남은 힘이 있으면 학문을 연구하고 분비(憤悱)한다."102)는 뜻입니다. 의심스럽고 답답한 말이 끊임없이 편지에 가득하니 아끼고 우러러 보는 마음은 더욱 보통의 편지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말하기는 쉽지만 그 실상을 보기는 어렵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비유입니다. 대저 한 가지 일을 함양하는 것이 공부의 본령(本領)이니 반드시 착실하게 체득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참된 것이 쌓이고 힘을 오래 쏟은 후에야 볼 수 있으니 어찌 안배하고 배치하는 것을 하여 생각하고 바랄 수 있겠습니까? 마치 천여 장(丈)의 혼탁한 물이 어찌 그 중간에 한 한기만 홀로 맑을 이치가 있겠으며, 사면이 암흑같이 어두운 상황에서 어찌 중간에 한점만 밝을 이치가 있겠습니까? 설혹 그러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이포새(伊蒲塞)103)가 눈을 부릅뜨며 만들어내는 술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다고 하니, 반드시 그 의리를 궁구하여 연구하여 항상 마음속에 침잠하여 스며드는 것이 있으면 또한 날마다 실천하는 사이에 성실함을 기르고 참된 것이 쌓여서 선한 힘이 점차 채워지고 자라날 것입니다. 이른바 미발(未發)의 경지로 쉽게 힘이 되어 밝고 깨끗하며 순수하고 단단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평소에 구구하여 아직 나아가지 못한 경지이니, 이번의 나의 벗이 질문한 것에 대해 가만히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괴로움을 안고 일찍이 겪어온 모습이 이와 같으니 부디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承書未復。又幾日矣。每庸耿耿。未審侍傍節宣貞謚。餘力鑽硏。而憤悱之意。疑鬱之辭。娓娓盈幅。愛仰之私。尤非尋常書尺之比。所謂言之甚易。見之實難者。眞善喩也。大抵涵養一事。是功夫本領。必着實體認。眞積力久而後。可以見之。豈希望懸想安排布置之爲哉。如千丈渾濁之水。豈有中間一條獨淸之理。四面黑窣之地。豈有中間一點獨明之理。設或有之。亦不過伊蒲塞撑眉努眼之術也。其德其不孤矣乎。必須窮硏義理。常常浸灌胸次。又於日用踐履之際。養誠積眞。使善力漸次充長。則所謂未發之地者。易以爲力。而明淨純固矣。此是愚者平日區區未就之地。而今於吾友之問。竊有同病之憐。故玆布其辛苦嘗試之狀如此。惟諒會。 분비(憤悱)한다 몰라서 분하게 여기고 표현을 못해서 답답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논어》 〈술이(述而)〉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학자가 몰라서 분하게 여기지 않으면 나는 알려 주지 않고, 표현을 못하여 답답하게 여기지 않으면 내가 틔워 주지를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이포새(伊蒲塞) 범어(梵語) '우바새(優婆塞 ; Upāsaka)'의 이역(異譯)으로, 속세에 있으면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불교도를 뜻하며, 불교를 믿는 남자의 총칭으로도 쓰인다. 여기에서는 사술을 부리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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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답함 答洪士拯 한 통의 편지에 위로와 감동이 얼마나 큰지 모르겠습니다. 이어 어버이께서 병환이 들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오래 묵은 증세인지요? 아니면 별도로 생긴 병환인지요? 성효(誠孝)가 지극하니 신명(神明)이 도우셔서 병환이 낫는 경사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에 시탕(侍湯)하는 여가에 예전에 배우 학업을 다시 익히기를 바라니, 아마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는 않을 듯합니다. 형제(兄弟)와 숙질(叔侄)이 책상을 마주하여 강습하는 즐거움104)은 어떠한지요? 보내온 편지에서는, "끊어지기는 쉬우나 잇기는 어렵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모두 근심하는 예증(例證)입니다. 공자(孔子) 문하(門下)의 여러 선생님도 오히려, "한 달에 한 번 인(仁)에 이르렀다."105)고 하였는데 하물며 우리에게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다만 마땅히 이것에 대하여 용맹하게 정채(精彩)를 발하도록 노력하여 이어질 때는 많게 하고 끊어질 때는 적게 하되, 많은 것은 더욱 많아지게 하고 적은 것은 더욱 적어지게 하여 타성일편(打成一片)106)한다면 안자(顔子)가 석 달 동안 인(仁)을 어기지 않은 경지에도 거의 가까워질 것이니 어떠하겠습니까? 의림(義林)은 깨진 항아리와 같아 쌓이기가 어렵고 찢어진 북처럼 울리지 않으나 다만 묵묵하게 세월을 보내며 갑작스레 죽을 날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이러한 정경(情景)을 생각하면 어찌 슬프고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우리 벗이 전철로 삼을 경계가 여기에 있으니, 오직 제때에 미쳐 힘쓰고 힘쓰기를 바랍니다. 앞서 선생님의 시호를 내려주는 은전107)이 다음 달로 정해졌는데 이미 들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집을 판각하는 일은 영남에서부터 통문(通文)을 보낸 지 이미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 장성(長城)의 회소(會所)에서 다시 통문이 이어져서 여러 읍에 돌았고 저희 고향에는 두 차례 글이 도착하였기에 일찍 귀하에게 전하려고 하다가 미처 하지 못하였습니다.《중용(中庸)》의 「귀신장(鬼神章)」에서 '사(使)'라는 글자는108) 바로 귀신에게 부림을 받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이(理)의 묘처(妙處)입니다. 게으름은 마음을 두지 않아 생겨나는 병통이고, 어지러움은 마음을 두어 생겨나는 병통이니 이 말이 아마 마땅할 것입니다. 물러난 뒤에 자주 돌아보는 것은 두루 성찰한다는 뜻이고, 손님이 물러갈 때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손님의 예(禮)로써 예의에 맞는 태도【容儀】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一書何等慰感。仍審堂候違和。此是宿證耶。抑別有所愼耶。誠孝之至。神明扶佑。而天和之慶。必有其日。以是祈祝侍湯之餘。溫理一着。想不歇后。兄弟叔侄。聯床麗澤。其樂何如。來諭易間斷而難接續。此是通患例證。在孔門諸子。猶云日月至焉。況吾輩乎。只當於此。猛着精彩。使接續時多。間斷時少。至於多之又多。少之又少。而打成一片焉。則顔子之不違。庶乎幾矣。如何如何。義林敝甕難儲。敗鼓不響只得隱忍捱過。以俟溘然而已。撫念情景。寧不悲歎。吾友前車之戒。有在於此。惟及時勉勉。先先生易名之典。定在來月。想已聞之耶。文集鋟板事。自嶺中發通。已有月矣。其後長城會所。又有繼通。輪於列邑。而吾鄕所到二度文。早欲傳去貴中。姑未之耳。鬼神章使字。是鬼神使之。此便是理之妙處。昏惰爲無心之病。紛撓爲有心之病。此說恐當。退時頻顧。是周旋省察之意也。賓退不顧。是賓禮容儀之則也。 강습하는 즐거움 원문은 '이택(麗澤)'으로,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주는 것을 뜻한다. 《주역(周易)》 「태괘(兌卦)」에 "두 못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태(兌)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강습한다."라고 하였다. 한 달에 한번 인에 이르렀다 《논어》 〈옹야(雍也)〉에서, "안회(顔回)는 그 마음가짐이 석 달 동안 인(仁)의 도리를 어기지 않는다. 그 밖의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쯤 인의 경지에 이를 뿐이다.【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라는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 불교(佛敎)의 용어로, 피아(彼我), 주객(主客), 선악(善惡), 호오(好惡) 등 모든 상대적 대립 관념을 타파하여 차별이 없는 평등의 세계로 조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시호를 내려주는 은전 원문은 '역명지전(易名之典)'으로, 시호(諡號)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시호는 정2품 이상을 지낸 인물의 사후(死後)에 생존 시의 행적을 바탕으로 하여 국왕으로부터 받게 된다. 사(使)란 글자는 《중용장구》 제16장으로, '사(使)'라는 글자는 다음 문장에 나온다.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하여 깨끗이 하고 성대하게 차려 입게 하여 제사(祭祀)를 받들게 한다.【使天下之人, 齊明盛服, 以承祭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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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군오【재규】에게 답함 答權君五【載奎】 영남과 호남이 멀리 떨어져 막히고 어긋난 지 오래이던 차에 중간에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으나, 인편이 없어 답을 하지 못하였으니, 구구한 마음의 서글픔과 답답함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겨울이 깊어지는데 경체(經體)1)는 건강하신지요. 널리 우러러 못내 그립습니다. 의림(義林)은 날로 쇠함이 심해져서 죽을 날이 멀지 않게 되었으니, 이는 곧 자연의 섭리입니다. 오직 옛 업과 묵은 뜻을 생각하면, 백 가지 가운데 하나도 이룬 것이 없고, 평생 지구(知舊)와 유종(遊從)하던 자들의 뜻을 저버린 것이 많으니, 부끄러워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전에 애장(艾丈 정재규(鄭載圭))의 편지에서, "어진 그대는 두문불출하고 독실하게 공부하였는데, 바야흐로 진보가 그치지 않았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세색(歲色)을 헤아리기 어려운 시절이지만, 사문(斯文)의 입장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2) 매번 생각하기를, 남주(南洲) 조장(趙丈 조성주(趙性宙)께서 그대를 칭찬하며, "사람이 그 옥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옥이 그 사람과 같다."라고 하셨는데, 그 딱 맞는 비유에 매우 감탄하였습니다. 한스러운 것은 갈고닦는 학문의 자리에서 만나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 그대와 애산(艾山)과 함께 신안(新安)에서 모여 셋이 솥의 발처럼 둘러앉아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대는 "주재(主宰)하는 것은 마음이고, 주재되는 것은 본성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주자서(朱子書)》에 있는 글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돌아와서 《주자서》를 살펴보니, 그러한 말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한 쪽의 사람들은 마음의 영(靈)이 주재(主宰)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 사람들은 마음의 이치가 주재(主宰)한다고 하면서, 서로 언쟁하며 서로를 능히 받아들임이 없으니, 오직 그대가 말한 바 한 구절의 말이 가장 두루 정밀하여, 양쪽의 설을 단안(斷案)3)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보고 양쪽에 주재(主宰)가 있다고 여기는데, 대개 그 뜻이 전적으로 심(心)의 이(理)가 주재라고 인식한 까닭입니다. 대개 지금 주기(主氣)의 설은 진실로 말하기에도 부족합니다. 주기(主氣)의 잘못됨을 보고 바로잡고자 하는 자는 또한 지나치게 곧게 하려는 폐해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상세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절실할 따름입니다. 그대가 외웠던 한 구절이 과연 주자(朱子)의 말씀입니까? 혹시 다른 선덕(先德)의 말씀입니까? 이 구절의 출처와 맥락에 대해 수고로움을 잊고 편지 한 통에 적어 부쳐 보여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간절히 바랍니다. 만나 뵐 날이 아득하니 편지를 마주하여 슬픔이 더합니다. 嶺湖涯角。阻違許久。中間承惠函一度。而乏便稽謝。區區悵菀。有何可旣。未審冬令垂深。經體衛重。溯仰無任。義林衰頹日甚。去死不遠。此固理也。而惟是舊業宿志。百無一就。而以負平生知舊遊從之意者。多矣。愧恨何及。向得艾丈書。以爲賢者杜門篤學。方進未已云。雖在歲色叵測之日。而以爲斯文之地者。可謂不食矣。每念南洲趙丈稱道賢。以爲不是人如其玉。乃是玉如其人之語。而切歎其比擬稱停。恨不得源源於切磋之末也。昔年與賢及艾山會於新安。而鼎坐夜話也。賢以爲主宰者心。主宰底性云云。而謂在於朱子書。愚退而考諸朱書。姑未見其語矣。今一邊之人。以心之靈爲主宰。一邊之人以心之理爲主宰。互相齗齗。莫能相入。而惟賢所言一句語。最爲周遍精切。可以爲兩說之斷案也。或者見此語。以爲有兩主宰。蓋其意專認心之理爲主宰故也。蓋今之主氣之說。固不足言。見主氣之非。而欲矯之者。又不無過直之敝。未知賢者以爲何如。遠莫詳焉。徒切紆菀耳。未知賢所誦一句語。果是朱子語耶。或是他先德語耶。此句出處首尾。忘勞書寫一通。以付示之如何。切望切望。奉際茫然。臨紙增悵。 경체(經體) 경서를 읽는 상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끊이지 않고 …… 것입니다 원문은 '불식(不食)'인데 이 말은, 《주역(周易)》 〈박괘(剝卦) 상구(上九)〉에서,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는 다섯 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인 상태에서 맨 위의 효 하나만 양(陽)인 것을 석과(碩果)로 비유한 것으로, 하나 남은 양의 기운이 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단안(斷案) 원래는 옥사(獄事)의 판결(判決)에 관한 문서를 가리키는데, 이처럼 옳고 그름을 딱 잘라서 판단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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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직【필승】에게 답함 答曺仲直【弼承】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답답하였는데, 지금 편지 한 통을 받으니 어찌 다만 많은 재물과 같을 뿐이겠습니까? 삼가 집안 어른께서 강녕하시고, 곁에서 모시는 상황이 위중(衛重)함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소공(小功)7)의 참담함은 당내(堂內)입니까? 당외(堂外)입니까? 깊은 사랑을 받았던 처지에 비통한 심정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선조고(先祖考)의 난례(灤禮)는 과연 능히 길일을 택해 안장(安葬)하여 효성스러운 마음에 흡족하신지요?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새로워지는 듯합니다. 이러한 일을 겪으셨지만 직접 가서 살피지 못하였으니, 부끄럽고 슬픔을 어찌 말하겠습니까. 보내주신 편지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은 담벼락을 마주한 듯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스스로 살피는 치밀함과 스스로 꾸짖는 절실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능히 이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학문은 생각함에 근원한다."라고 하였으니, 총명(聰明)함을 개발하고 뜻을 넓게 하여 나아가는 것은 모두 생각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기에서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하니, 어찌 홀로 공부하는 탄식과 담벼락을 마주한 듯한 근심이 있단 말입니까? 일찍이 여씨(呂氏)의 《동몽훈(童蒙訓)》에서, "오늘 한 이치를 깨닫고, 내일 한 이치를 깨닫는다."라는 말을 좋아하였는데, 초학자에게 가장 절실할 것입니다. 보여주신 한자(韓子)의 설 또한 어찌 깊이 본받을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목(問目)은 제 모자란 견해로 대략 답변을 드렸으나, 결론을 내리지 마시고 거듭 여러차례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맹자》 「평륙장(平陸章)」에서, "왕을 알현하는 것"8)의 '현(見)'자와 다른 장에서, "왕을 알현한다."는 '현(見)'은 모두 음을 '현(現)'으로 읽는데, 어찌하여 같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까?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는 장9)과 '옛날의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했습니까' 장10)의 두 장 모두 '주(周)'자는 궁핍한 사람을 두루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전자에서는 범범하게 백성을 두루 구제한다는 뜻을 말하였고, 후자에서는 다만 여러 현인의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대인으로서 자취 없는 화의 경지에 들면 성인이라고 하고, 성인으로서 헤아려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 신인이라고 한다."는 문장에서, 이 '성(聖)'과 '신(神)'자는 성인이 나아간 지위로써 말한 것입니다. "성인이 지나가고 머무는 곳마다 신령스럽게 된다."11)는 것은 다만 공용(功用)이 밖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 것이니, 이는 조금 다를 뿐입니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 행하신 분들이다.……"12)라고 한 것은 평소 인품에 이러한 세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니, 오로지 말구(末句)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신지(身之)'는 '자신의 몸을 돌이킨다'라는 뜻이니, '신(身)'자를 말한 것은 '반(反)'자의 뜻이 그 가운데 있고, '반'자를 말한 것은 '신'자의 뜻이 그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구구하게 그 같고 다름을 분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之)'와 '자(者)' 또한 크게 다름이 없을 따름입니다. 久阻悵鬱。此時一書。奚啻百朋。謹審堂候康寧。侍旁衛重。何等願聞。但小功之慘。堂內耶堂外耶。親愛隆深。悲痛何堪。先祖考灤禮。果能卜吉安兆。愜於孝思耶。追遠之感。想益如新矣。所故如是。而未能躬造相省。愧悵何道示喩獨學墻面云云。可見自省之密。自責之切。不然。安能說到此耶。程子曰。學原於思。夫開發聰明。展拓步趨。皆在於思。苟能於此得力。有何獨學之歎。墻面之憂哉。嘗愛呂氏童蒙訓。今日格一理。明日格一理之說。最切於初學也。所示韓子說。亦豈不深可法耶。問目。自以鄙見。略略奉復。勿爲歸宿。更加三思如何。平陸章見王之見。與他章見王之見。音皆作現。何謂不同耶。士之不託諸侯章。及古之君子何如則仕章。兩處周字。皆是周恤窮乏之義。但上段泛言周民之義。下文特言周賢之義。大而化之之聖。聖而不可知之神。此聖神字。以聖人所造之位而言所過所存之神特以功用之著於外者而言。此其微別耳。堯舜性之云云。此是平說人品有此三者。未見其專爲末句說起也。身之。此是反身之義。說身字。包反字義在其中。說反字。包身字義在其中。不必區區辨析其同異也。之字者字。亦且無甚同異耳。 소공(小功) 5개월 동안 입는 상복. 증조부모, 백숙조부모, 종백숙조부모, 형제의 아내, 외조부모, 외숙 등의 상이 이에 해당한다. 왕을 알현하는 것 평륙장(平陸章)은, 《맹자》 「공손추 하」에, '맹자께서 평륙으로 가시어【孟子之平陸】'로 시작하는 장을 말한다. 이 장의 끝에, '맹자께서 얼마 후에 왕을 뵈었다.【他日見於王】'라는 구절이 나온다. 선비가 제후에게 의탁하지 않는다는 장 해당 구절은 《맹자》 「만장 하(萬章 下)」에 실려 있다. 옛날의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했습니까 해당 구절은 《맹자》 「고자 하(告子 下)」에 실려 있다. 성인이 지나가고 …… 신령스럽게 된다 《맹자》 「진심 상」에서, "성인이 지나가는 곳마다 감화를 받고, 머무는 곳마다 백성들이 신령스럽게 된다.【所過者化, 所存者神】"라고 하였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은 …… 행하신 분들이다 《맹자》 「진심 상」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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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직에게 답함 答曺仲直 영계(令季)13)가 입문(入門)하고 은혜로운 편지가 뒤따랐으니, 떨어져 지내던 차에 얼마나 가슴이 후련한지요. 하물며 어버이를 모시는 상황에 복이 더하게 되셨음을 알게 되었으니 어떠하겠습니까? 다만, "책자(冊子)를 공부하는 것은 사고(事故) 때문에 흔들렸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병통이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이 역시 공부를 하는 실제의 장소가 됩니다. 함께 휩쓸려 가면 참으로 안 되며, 공부를 끊어버리고 하지 않는다면 더욱 안 됩니다. 공자께서도, "행하고 나서도 여력이 있을 경우에는 학문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일마다 도리(道理)를 살피고, 쉽게 지나치도록 하지 말며, 다소 여지가 있음을 따라서 쓸데없는 객들을 만나는 일을 생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도 줄여야 합니다. 오로지 과거를 위한 책을 보려 하거든, 아침저녁으로 외우고 깊이 빠져들어 세밀하게 연구하며, 날마다 이렇게 하여 잠깐의 끊어짐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마음이 안정되고 이치가 분명해지는 경지에 가까워질 것이니, 어떠합니까? 의림(義林)은 젊어서는 뜻에 힘쓰지 않았고, 늙어서는 더욱 황폐해져서 구구하게 슬퍼하고 후회하지만 죽더라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릴 적에는 자라서 학문에 힘쓸 것을 생각하고, 늙어서는 죽을 때까지 가르침에 힘쓸 것을 생각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비록 죽음을 것을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을 가르쳐주지 못하였습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여러 군자들은 어찌하여 장성한 뒤에 앞으로 나아갈 만리 길의 계획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앞서 가던 수레가 엎어지면 뒤에 오던 수레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니, 부디 힘쓰도록 해주십시오. 令季入門。惠函隨之。離索之餘何等慰豁矧審侍省增祉者乎。但冊子功夫。爲事故撓奪云者。此固衆人通患。奈何。然只此便是用功實地也。與之俱往。固不可。絶之不爲。尤不可。孔子不曰行有餘力。則以學文乎。事事看得道理。不令容易放過。隨其多少暇隙。省見得閑人客省說得閒言語。惟將見課文字。夙夜諷誦。沈潛細繹。逐日似此。無容間斷。則庶幾心定而理明矣。如何。義林少不勵志。老益荒廢區區悲悔。有死莫追。孔子曰。幼思其長則務學。老思其死則務敎。吾雖思死。而無以爲敎於人。切願諸君子獨不思長而爲前程萬里之計乎。前車之覆。後車之鑑。勉之勉之。 영계(令季) 상대방의 아우를 높여 부르는 칭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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