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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헌에게 보냄 寄憲孫 근래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이 끝이 없다. 지난번에 지은 다섯 첩의 약 가운데 어제 두 첩을 복용하였고 오늘 두 첩을 복용하였는데, 다 복용한 뒤에 재탕할 생각이다. 이미 지어서 보내왔기에 물리칠 수가 없기 때문에 복용하였지만, 그러나 천하에 어찌 늙음을 물리치고 회춘하는 처방이 있겠느냐. 헛웃음만 나온다. 주자가 일찍이 '조심함[謹]'과 '부지런함[勤]' 두 글자를 아들에게 주면서 경계하기를 "다만 이 두 글자를 따라서 올라가면 무한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며, 등지고 내려가면 무한한 나쁜 일이 있을 것이다."197)라 하였는데, 너 또한 이 두 글자를 평생의 가계(家計)로 삼아라. 노쇠하고 병든 몸은 죽음이 드리웠는데 무엇을 구하며 무엇을 기다리랴. 다만 너희 형제들이 본분에 입각하여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질문 : 사상채가 말하기를 "다만 한 개 '오만함[矜]'자를 제거하라."198)고 하였는데, 대개 먼저 경(敬)을 위주로 하여 마음에 아주 조금도 사사로운 뜻이 없으면 긍(矜)자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잘 모르겠는데 긍(矜)은 본래 무엇에서 기인하여 발하는 것입니까.답변 : 본래 마음이 협소함에서 발하는 것이다. 내가 한 바가 남보다 백 배나 훌륭해야 함이 자신이 응당 해야 할 일인 것을 안다면 오만함[矜]이 어떻게 발하겠는가.질문 : 명덕(明德)과 지선(至善)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답변 : 명덕은 마음 위에서 말한 것이고, 지선은 일 위에서 말한 것이다. 명덕은 체(體)를 통합하여 말한 것이고, 지선은 사리의 극처이다. 명덕은 천명이 자신에게 얻어진 것이며, 지선은 천명이 만물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日間爲況何如。馳念無已。向日所制五帖藥。昨日服二帖。今日服二帖服了後又爲再湯計耳旣已制來不可退却故服之。然天下安有回春却老方也。可笑。朱夫子嘗以謐勤二字。授其子而戒之曰。只此二字。循之以上。有無限好事。背之以下。有無限不好事。汝亦以此二字。視作生平家計也。衰病垂死。何求何待。只望汝兄弟依本分做好人也。謝上蔡曰。只去得箇矜字。盖先主於敬心。無纖毫私意。可得去矜字。而但未知矜本何由而發。本自其內俠小而發。我之所爲。百勝於人。惟知自家合做底事而已。則矜何以發出。明德與至善。果是甚底。明德心上說。至善事上說。明德統體說。至善事理之極處。明德天命之得於已者。至善天命之散在萬物者。 다만……있을 것이다 〈주선생계자서(朱先生戒子書)〉에 보인다. 사상채가……제거하라 상채는 사양좌(謝良佐)를 말하고, 긍 자는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을 뜻한다. 그가 헤어진 지 1년 만에 스승인 정이(程頤)를 찾아가자, 정이가 그동안 무슨 공부를 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가 "다만 긍 자를 없애려고 했다.[只去得箇矜字]"라고 대답하였는데, 그 이유를 묻자 "병통이 모두 이 속에 들어 있는 만큼, 이 죄과를 굴복시키면 바야흐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病痛盡在這裏 若按伏得這箇罪過 方有向進處]"라고 하였다. 《심경부주》 권1 〈천선개과장(遷善改過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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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촌 황 처사71) 기현에 대한 제문 祭明村黃處士【紀顯】文 오호라! 선생은천품이 우뚝하고기상이 시원하였네풍상을 다 겪고돌아와 과축72)을 정하였네풍월은 끝이 없고송국은 늘 봄 같았네광채를 거두어 숨기고정신을 모았네보배로운 덕은 더욱 살찌고아름다운 명성 가만히 드러났네후손들 가르침에옛 법도 따랐네옛날 을묘년(1855, 철종6)에소자가 책상 지고 배우러 갔었네가르쳐 인도해 주심이 간절하였고교화를 받은 것 흡족하였네한 번 집으로 돌아오고 부터는온갖 일이 침범하였네멀리서 바라본 것이세월이 오래 되었네누가 알았으랴 역책73)이오늘에 있을 줄을상생74)에 달려가 곡하며슬픈 마음 적어 영결을 고합니다 嗚呼。先生天姿挺邁。氣尙磊落。游歷風霜。歸占薖軸。風月無邊。松菊長春。潛光斂輝。聚精會神。寶德加腴。令聞闇章。敎授來裔。依倣古程。音在乙卯。小子負笈。提撕懇到。董蒸浹洽。一自告歸。百故侵尋。涯角相望。歲月已深。誰知易簀出於今日。奔哭象生。綴哀告訣。 명촌(明村) 황 처사(黃處士) 황기현(黃紀顯)을 말한다. 정의림이 10세에 《소학》을 배웠던 스승이다. 과축(薖軸) 현인이 은거하는 곳을 말한다. 《시경》 〈위풍(衛風) 고반(考槃)〉에 "고반이 언덕에 있으니, 석인의 마음이 넉넉하도다.……고반이 높은 언덕에 있으니, 석인이 한가로이 서성이도다.[考槃在阿, 碩人之薖.……考槃在陸, 碩人之軸.]"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역책(易簀) 스승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증자(曾子)가 임종할 때 일찍이 계손(季孫)에게 받은 대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자신은 대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깔 수 없다며 다른 자리로 바꾸게 한 다음 운명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상생(象生) 궤연을 말하는데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진열하여 살아있을 때를 그대로 본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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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심39)【회일】에게 보냄 與梁海心【會一】 옛날부터 위태로운 때를 만난 열사(烈士)가 어찌 한량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험난함과 괴로움을 두루 경험하기로야 누가 좌우(左右)와 같겠습니까. 소해문옥(蘇海文獄)도 이와 같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하늘이 도와서 속박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와 문간에 기대어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에 부합하였으니 소식을 듣고 감동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거듭 고초를 겪은 나머지 건강이 크게 손상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위로되고 그리운 마음이 절절하여 매우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의림(義林)은 몇 년의 세월 사이에 재앙이 거듭 이르고 질병이 끊이지 않아 이에 얽매여 구차하게 지내면서 문밖을 나서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에 한 번 달려가서 문안을 여쭙는 도리를 갖추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정과 예법이겠습니까.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지금은 제집에 몸을 붙이고 있는데 숙질(宿疾)이 아직 물러나지 않아 추위를 무릅쓰고 길을 나서기에는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결국 한 통의 서찰로 대신하여 근래의 안부를 여쭙습니다. 바라건대 너그러이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自古烈士遭罹危會者。何限。而其備經險苦。孰有如左右。未知蘇海文獄亦如此否。旣而自天佑之。解桎還鄕以副倚閭無窮之忘。足令聞之者動情。未審積苦之餘體度不至有大損否。切切慰戀。殊不勝堪。義林年歲之間。禍故荐仍。疾病連綿。坐此淟忍。不出戶外久矣。玆未能一者趨走。以有相省之道。此豈情禮耶。愧悚而已。今則寄身窮齋。宿疾尙不退聽。觸寒作行。力所不逮。竟不免替修一書。以問近節。幸可恕諒否。 양해심 해심(海心)은 양회일(梁會一, 1856∼1908)의 자(字)이다. 양회일의 호는 행사(杏史)이며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화순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고 가산뿐만 아니라 친척의 토지까지 팔아 군자금을 조달해서 동지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양열묵(梁烈默), 임노복 등과 더불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고심하고 1906년 가을부터 창의를 준비하여 쌍산의소(雙山義所)를 결성해서 1907년 4월 능주(綾州), 화순(和順)을 차례로 공격하여 군아(郡衙)와 주재소(駐在所)를 점령하였다. 여세를 몰아 광주를 공격하려고 의병을 이끌고 행군하다가 판치(板峙, 현 너릿재) 전투에서 동지 5명과 함께 체포되어 지도(智島)에 유배되었고, 1907년 12월 특사로 석방되었다. 1908년에 다시 의거를 모색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장흥경찰서에 구금되어 단식 중에 절명하였다. 1990년에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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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집【재해】에게 답함 答梁順集【在海】 외람되게도 하문(下問)해 주시니 고마움이 가슴 깊이 새겨집니다. 하물며 효자의 비통함은 엄연히 심상(心喪) 중이건만40) 오랜 벗으로서 때맞추어 위문하지 못하고 도리어 먼저 소식을 전하는 수고를 끼쳤으니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부끄럽고 고마움을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서한을 통해 아버님의 안부가 강녕하시고 모시고 생활하는 안부가 더욱 복되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욱 기쁘고 후련합니다. 생업과 독서는 서로 방해가 된다는 말씀은 참으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주부자(朱夫子)는 이에 대해서 이르기를, "이것은 배를 움직이지 못해서 계곡이 굽은 것을 싫어하는 격이다.41) 만약 배를 다루는 기술을 안다면 계곡이 굽이치는 험난한 곳일지라도 어찌 내가 힘을 발휘하여 잘 건너갈 곳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부재모상(父在母喪)의 경우 25개월을 첫 번째 기일로 삼고 치립(緇笠)과 치대(緇帶)를 하면서 27개월의 상제(喪制)를 마칩니다.42) 대체로 27개월의 상【삼년상(三年喪)을 말함】은 사람의 자식이라면 늘이지도 못하고 줄이지도 못합니다. 남의 양자로 간 아들,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간 딸이더라도 역시 이것을 줄이지 못합니다. 또한 치립(緇笠)과 치대(緇帶)는 본래 상복에 규정되지 않은 복이고 단지 길복(吉服)에서 감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꾸고 줄이는 절차 없이 곧장 27개월에 이릅니다. 어리석은 의견은 이와 같습니다만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습니다. 猥荷辱問。已極感鏤。矧伊孝子哀疚。儼然在心制中。爲知舊者。不能隨時相慰。而反有以獲其先施之勤哉。愧感罔喩。因審庭候康寧。侍旁增祉。尤庸欣豁。産業讀書相妨之喩。此固然矣。然朱夫子於此。有一言焉曰。此不能運船。嫌溪曲者也。苟解運船之術。雖溪曲之險。誰非吾施力利涉之地也。此言當深思之也。父在母喪。二十五月爲初忌。而緇笠緇帶。則然二十七月之制也。大抵二十七月爲人子者。加不得。減不得。雖出后之子。適人之女。亦減此不得也。且緇笠帶。木是非服之服。而只是殺於吉服者。故無變殺之節。而直至二十七月。瞽見如此。未知得否。 심상(心喪) 중이건만 부재 모상(父在母喪)의 경우, 아들이 상주가 아니고 남편이 상주이기 때문에 기년(朞年) 만에 복을 벗는 것이 예제(禮制)이다. 그러나 아들은 복을 벗은 뒤에도 남은 기간 어머니를 위해 슬퍼하며 복을 입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삼년을 채워 근신한다. 이것은……겪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 8권 〈총론위학지방(總論爲學之方)〉에 나오는 말이다. 뒤의 내용은 출전을 확인할 수 없다. 부재모상(父在母喪)의……마칩니다 원문에 따른 번역은 이와 같다. 부재모상(父在母喪)은 아버지가 생존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경우에 자식은 아버지가 입는 복과 같은 기년복을 한다. 다만 11개월에 소상제(小祥祭)를 지내고 13개월에 대상제(大祥祭)를 지내며 15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내 공식적인 상기(喪期)를 마치지만 이후 27개월이 될 때까지 심상(心喪)을 한다. 담제를 지내고 3년상의 기간이 끝나는 27개월까지, 즉 심상을 치르는 동안 조선에서는 관례적으로 치립과 치대를 한 듯하다. 이러한 사실에 따르면 본문의 '二十五月爲初忌 而緇笠緇帶'는 '十五月爲禫 而緇笠緇帶'의 오류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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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송규】에게 답함 答文啓元【頌圭】 지난번 전편(轉便 전전(轉轉)하여 가는 인편)으로부터 산방(山房)에서 지낸다고 들었습니다만, 또한 돌아오셨는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뜻밖에 배장(裴丈)께서 저를 찾아오시고 겸하여 전폭(耑幅 심부름꾼을 시켜 보내는 편지)을 받았습니다. 감격스러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자세한 편지 내용을 통하여 존심(存心), 양성(養性), 궁리(窮理), 격물(格物)을 통하여 하루하루 새로워지고자 하는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지난번 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 월파(月波 정백언(鄭伯彦)) 두 어른에게 답하는 서한에서 입우(笠友)가 전에는 고원한 곳으로 내닫는 병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평이하고 실질적인 곳에 나아가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대체로 이처럼 아름다운 자질로 만약 올바른 문을 찾아 들어간다면 앞으로의 진보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사이에 의심이 없을 수 없으니 만약 이로 인하여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다면 아마도 현자(賢者)가 저에게 편지를 보낸 뜻이 아닐 듯하여 감히 다시 말씀드립니다. 무릇 산방(山房)에서 조용히 조섭하는 공부가 겨우 열흘이 지나서 갑자기 총명함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효과를 얻었다면 그동안 미리 기대하고 소득을 계산하는 사사로운 마음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모름지기 때마다 진작하고 곳곳에서 깨닫는 일이 나날이 거듭되고 다달이 축적되어 중간에 끊이는 일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확고해지고 자연스럽게 숙련이 됩니다. 어찌 급박하게 판별할 수 있기를 모색하겠습니까. 인용하신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라는 불자(佛子)의 말은 이미 텅 비어 조짐이 없을 때 만상이 빽빽이 갖추어져 있다1)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자(賢者)께서는 또 "형(形)과 기(器)를 초월하여 안과 밖, 정(精)과 조(粗)가 없다."라고 설명하여 허물을 더하고 잘못을 꾸미시렵니까? 불자들은 성(性)을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말이 이와 같은데 현자의 말씀도 이와 같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성인이 미발한 때의 기상(氣象)을 말씀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비록 미발한 때의 기상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여 학자들에게 보여주더라도 진리를 어지럽히는 학자들의 폐단을 조장하는 데 불과합니다. 그래서 곧 근거하여 지킬만한 형적(形迹)을 얘기해주어 학자들이 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상달(上達)하도록 했을 뿐입니다.서한에서 "근원이 깊으면 물줄기가 길고 뿌리를 두터이 북돋우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라는 말씀은 가장 긴요한 요점이니 감히 명심하지 않겠습니까. 의림(義林)이 근래 《절요(節要)》를 보고 부끄러움이 꽤 많았습니다. 이전의 잘못을 돌아보니 뒤미쳐 보완할 계책은 없고 세월은 나를 돌보아(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책을 어루만지며 마음 아파하려니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계원(啓元)께서 삼가 경책(警責)해주시기 바랍니다. 向於轉便。聞住山房云。而亦不知返仄與未。謂外裴丈見訪。而兼承耑幅。感感何喩。縷縷足見存養窮格。日新又新之意。可敬可敬。向答大谷月波二丈書。以爲笠友向不無騖遠之病。今却就平實地。做將去云。大抵以若資質之美。苟得其門而入。其進何可量也。但其間不能無疑。若因含黙。恐非賢者勤示之意。敢復仰布。夫山房靜攝工夫。纔踰一旬。遽有聰明自然之效。無乃其間或不無預期計獲之私耶。須時時提撕。處處省覺日累月積。無所間斷。則自然完固。自然純熟。豈以急迫模想所可判耶。所引佛子之言。無古無今。何生何死。已非沖漠無眹萬象已具之意。而賢者又以超於形器之外。無內外精粗之說。增其失而補其過乎。佛子以性爲空無一物。故其言如此。不意賢者之言亦似之也。且聖人不言未發時氣象者。非此意也。雖說出十分氣象示學者。只不過爲學者助長亂眞之敝。故就言形迹可據守處。使之由之。而自然上達耳。所喩發源深者。其流泒長。培根厚者。其枝葉茂。此最切要。敢不銘佩。義林近看節要。頗多感悚。回顧前失。追補無計。而歲月之不恤我與者。已多矣。撫卷悲悵。不知爲喩。惟啓元勤賜警責也。 텅 비어……있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에 "텅 비어 조짐이 없을 적에 만상이 삼연히 이미 갖추어져 있으니, 미응이 먼저가 아니고 이응이 뒤가 아니다. 이는 100척의 나무가 근본으로부터 지엽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관된 것과 같다.【沖漠無朕, 萬象森然已具, 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 如百尺之木, 自根本至枝葉, 皆是一貫.】"라는 정이(程頤)의 말이 보인다. 미응은 미발(未發) 즉 고요하여 발동하지 않는 때를 말하고, 이응은 이발(已發) 즉 감응하여 마침내 발동하는 때를 말한다. 《근사록(近思錄)》 〈도체(道體)〉에도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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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원에게 답함 答文啓元 말씀하신 사람과 사물의 기질에 관한 주장이 대의(大意)는 그런 듯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온당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무릇 사람의 기(氣)가 곧 천지의 기이고 사물의 기가 곧 천지의 기입니다. 기화(氣化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변화)의 초기에는 진실로 사람은 기의 빼어난 것을 얻고 사물은 기의 치우친 것을 얻으며, 형화(形化 형체의 변화)의 과정에서도3) 사람은 형체의 빼어난 것을 얻고 사물은 형체의 치우친 것을 얻습니다. 다만 사람과 사물의 기를 자기와 관계된 것【私己】과 그렇지 않은 사물【物事】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별도로 외면에 있는 일종의 음기와 양기 중에서 사람에게 주어지고 사물에게 주어진 것을 구해서 찾지 못하면 도리어 유기(遊氣 유동하는 기)는 치우침과 빼어남에 관여하는 것이 없다고 하고, 또 치우친 기나 빼어난 기를 얻는 것은 기화의 초기에 이미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옳겠습니까. 또 지우(智愚), 미악(美惡), 궁통(窮通), 수단(修短 장수와 요절)은 유기(遊氣)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것 또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무릇 사물이 체단(體段)을 갖추면 곧 자연스럽게 끝없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게 됩니다. 어찌 혈기를 하나의 고깃덩어리로 여기고 유기(遊氣)가 작용한 뒤에야 많은 차이가 있게 되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이 이긴다면 아마도 우리 유학의 본지(本旨)를 잃을 듯합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유기(遊氣)에 관한 언급은 장자(張子 장재(張載))의 학설과 다릅니다. 그러나 장자(張子)는 천지(天地)를 주(主)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과 사물을 유기로 여겼습니다.4) 여기서는 사람과 사물을 주로 여겼기 때문에 음과 양을 유기로 여겼으니 이것은 무방할 듯합니다. 동정(動靜)으로 말하자면 정(靜)이 체(體)이고 동(動)이 용(用)이며, 태극(太極)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일동(一動), 일정(一靜)이 똑같이 유행합니다. 천지의 동정(動靜) 운운한 것도 역시 온당치 못합니다. 응당 "천(天)은 동(動)으로 정(靜)을 머금지만, 지(地)는 정으로 동을 머금으며, 천(天)은 기(氣)로 형(形)을 포괄하지만 지(地)는 형(形)으로 기를 포괄한다. 만물에 대해서 말하자면 천을 근본으로 삼거나 지를 근본으로 삼는 것이 또한 각각 자신에게 맞는 성향을 따른다."라고 해야 합니다. 所喩人物氣質之說。大意似然。但於鄙意。有未安者。夫人之氣。卽天地之氣也。物之氣。卽天地之氣也。氣化之初。固嘗得其秀得其偏。形化之際。亦無非得其秀得其偏也。只是把來人物之氣。作私已物事看。故別求外面一種陰陽之氣。與人與物者。而不能得。乃謂遊氣無與於偏秀。又謂偏秀之得。已在於氣化之初。可乎。又云智愚美惡。窮通脩短。非遊氣不成。此又不成說。凡物纔有一箇體段。便自然有無限不同處。豈以血氣爲一箇肉塊。而待遊氣然後。乃有許多分數耶。此意若勝。則恐失吾儒本旨。愼之愼之。遊氣之云。與張子之說不同。然張子以天地爲主。故以人物爲游氣。此以人物爲主。故以陰陽爲游氣。此則恐無妨。以動靜而言。則靜爲體。動爲用。自太極而言。則一動一靜。均是流行。天地動靜云云。亦似未安。當曰。天以動含靜地以靜含動。天以氣包形。地以形包氣。至於萬物則本天本地。亦各從其類也。 기화(氣化)……과정에서도 주희에 따르면, 기화는 애초 사람이 아무런 종자 없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며, 형화는 사람이 있은 뒤에 낳고 낳아 생겨나는 것이다. 주희는 〈태극도설〉의 "만물을 변화시켜 생성한다.【化生萬物】"를 설명하면서 "사람과 사물이 처음에는 기화하여 생겨나며, 기가 모여 형체를 이루면 형체가 교접하고 기가 감응하여 마침내 형화하는데, 사람과 사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다."라고 하였다. 《性理大全 卷1 太極圖》 장자(張子)는……여겼습니다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유동하는 기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가 모여서 형질을 이룬 것이 만 가지로 다른 사람과 사물을 낳는다.【氣紛擾, 合而成質者, 生人物之萬殊】"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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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기백】에게 답함 答李光彬【琪白】 뜻밖에 혜서(惠書)와 별폭(別幅 별지(別紙))을 받아 두 손으로 받들고 엄숙하게 읽었습니다. 저를 향한 정이 돈독할 뿐만 아니라 다시 익히는 공부가 정밀하고도 활달하여 절대로 속되고 평범한 수준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감격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쓸쓸한 늘그막에 이런 외우(畏友)를 얻었으니 이로 인하여 좋은 영향을 받아 혹시 만년에 조그마한 공이라도 거둘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문〕 삼년상 중에는 조문을 하지 않는데, 지금 세속은 상복을 입은 채 조문하는 사람이 많으니 어찌해야 합니까?〔답〕 공자(孔子)는 "군자는 예(禮)로 정(情)을 꾸민다. 삼년상에 조문하고 곡을 하는 것은 역시 허식이 아니겠는가."5)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보자면 상(喪)을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조문하지 않는 것이 본래 예입니다. 그러나 증자(曾子)는 자장(子張)의 상에 가서 곡을 하였습니다.6) 그렇다면 정의가 두터운 대상에 대해서는 비록 조문하는 예를 행할 수는 없더라도 곡을 하는 것은 무방할 것입니다.〔문〕 《가례(家禮)》 〈대상장(大祥章)〉에 규정된 참포삼((黲布衫)은 지금 세속에서도 행합니까? 이른바 참(黲)이라는 것은 옅은 청흑색인데 길복의 색에 가깝습니까, 흉복의 색에 가깝습니까?〔답〕 참(黲)은 길복에 가까운 색입니다. 따라서 대상제(大祥祭)를 지낼 때는 약간 길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다시 약간 흉한 옷을 입으며 담제(禫祭)를 지낼 때는 완전히 길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다시 약간 길한 옷을 입습니다. 길제(吉祭) 때에는 입지 않는 옷이 없으며 허리에 차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문〕 《가례(家禮)》 〈졸곡장(卒哭章)〉에 따르면 졸곡(卒哭)은 반드시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 사족(士族)과 서족(庶族)의 집안에서도 반드시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까? 만약 매장할 때까지 소요되는 개월 수를 기한으로 삼아 이같이 한다면7) 또 사(士)는 달을 넘겨 장례를 치른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답〕 《예기》 〈왕제(王制)〉에 "대부(大夫), 사(士), 서인(庶人)은 3일 만에 빈례(殯禮)8)를 행하고 3개월 만에 장례를 치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주석에 "대부는 죽은 달을 제외하고 3개월이고 사는 죽은 달을 포함하여 3개월이다. 이것이 한 달을 넘긴다는 것이므로 '달을 넘긴다【踰月】'라고 하였다."9)라고 하였습니다.〔문〕 물들인 종이로 상여를 장식하고 극도로 화려하게 해서 가는 길을 성대하게 하면 효자(孝子 상주(喪主))의 정이 흡족합니까?〔답〕 《예기(禮記)》 〈단궁하(檀弓下)〉에 "사람이 죽으면 혐오감을 갖게 되므로 효(絞 수의를 묶는 베로 만든 끈), 금(衾 염한 시신을 감싸는 이불)을 제정하고 류(蔞)10), 삽(翣)11)을 설치하여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색색의 꽃으로 상여를 장식하는 것도 혐오감이 들지 않도록 하려는 뜻 때문입니다. 料外惠翰及別幅。雙擎莊讀。不惟相向之意。極其綣繾。而溫理功夫。精詳展拓。大非俗下常調之比。感領何謝。晩暮離索。得此畏友。未知因仍濡染。或可以少收桑楡耶。三年之喪不弔。今俗多有喪服而行弔者。如何。孔子曰。君子禮以飾情。三年之喪而弔哭。不亦虛乎。以此觀之。有喪者。不弔人固禮也。然子張之喪。曾子往哭之。然則於其情厚處。雖不可行弔禮。而哭之則無妨耶。大祥章黲布。衫今俗亦行之否。所謂黲者淺靑黑色。近吉乎近凶乎。黲是近吉之服。是以大祥着微吉之服。祭後還着微凶之服。禫祭着純吉之服。祭後還着微吉之服。至於吉祭無所不服無所不佩。卒哭章卒哭必俟三月。今士庶家必以此爲準耶。若以葬之月數爲限而如此。則又不曰士踰月而葬乎。王制大夫士庶人。三日而殯。三月而葬。註大夫除死月爲三月。士數死月爲三月。是踰一月。故言踰月耳.大轝染紙雕畵。極其華麗。以榮道路。孝子之情得之歟。禮曰。人死斯惡之矣。是故制絞衾。設蔞翣。爲使人勿惡也。今之綵花雕轝。亦勿惡之義也。 군자는……아니겠는가 《예기(禮記)》 〈증자문(曾子問)〉에 보인다. 증자는……하였습니다 《예기》 〈단궁하(檀弓下)〉에 "자장이 죽자, 증자가 모친상 중임에도 자최복을 입은 채로 가서 곡을 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최복을 입고는 조문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증자는 '내가 조문한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다.【子張死, 曾子有母之喪, 齊衰而往哭之. 或曰: '齊衰不以弔.' 曾子曰: '我弔也與哉?'】"라는 구절이 보인다. 매장할……한다면 《가례(家禮)》 〈치장장(治葬章)〉에 "3개월 만에 장사 지내되, 기일 전에 장사지낼 만한 땅을 고른다.【三月而葬, 前期擇地之可葬者.】"라고 규정하고 있다. 졸곡은 매장을 한 뒤 삼우제(三虞祭)를 지낸 다음날 지내는 제사이므로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 빈례(殯禮) 대렴을 마치고 입관한 뒤에 매장 때까지 관을 빈궁(殯宮)에 임시로 안치하는 것을 말한다. 천자는 7일째, 제후는 5일째, 대부와 사는 3일째에 빈례를 한다. 천자는 용으로 장식한 수레인 순거(輴車)를 빈궁으로 사용하고, 제후는 용의 장식이 없는 순거를 사용하고, 대부는 순거 없이 서쪽 담장에 나무를 쌓아 올린 뒤 흙을 바르며, 사는 땅을 파서 관을 안치한다. 대부는……것이다 《예기정의(禮記正義)》 〈왕제(王制)〉의 해당 구절에 대한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의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달을 넘긴다'는 말의 의미는 사망한 달과 매장하는 달 사이에 한 달의 기간을 둔다는 의미가 된다. 류(蔞) 관을 가리는 장식물이다. 류(柳)라고도 한다.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윗부분을 류(柳 윗덮개)라 하고 아랫부분을 '장(牆 옆 덮개)이라고 한다. 전현(錢玄) 《삼례사전(三禮辭典)》 삽(翣) 상여와 관을 가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이다. 불삽(黻翣 '己' 자가 등지고 있는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 운삽(雲翣 구름의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 보삽(黼翣 도끼 문양을 그려 넣은 나무로 만든 부채 모양의 장식)의 구별이 있다. 《禮記 喪大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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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경의 자에 대한 설 金周卿字說 한 번 마음을 바르게 하면[正心]146) 바르지 않은 일이 없다. 예의(禮儀) 3천은 바르지 않으면 행하지 못하며 괘효(卦爻) 4백은 바르지 않으면 길(吉)하지 못하다. 공자(孔子)의 오도지일(吾道之一)147)과 맹자(孟子)의 박학지약(博學之約)148)이 이것을 이르지 않겠는가. '정(正)'이라는 글자는 널리 응대하면서도 자세한 부분까지 법도에 부합하여 두루 미치니, 마치 충신(忠信)이 두루 미치며 충신하지 못하면 결함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정(正)'의 반은 '핍(乏)'이다. 핍(乏)하면 결함이 드러나서 두루 미치지 못하게 된다.김씨(金氏)의 아들 정희(正熙)가 삼가례(三加禮)149)를 마치고 주경(周卿)을 자(字)로 삼았다. 이는 대체로 '바르면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다.[正無不周]'라는 뜻이다. 모쪼록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여 정학(正學)에 힘쓰고 정도(正道)를 숭상하고 정위(正位)에 서서 정로(正路)를 간다면 우뚝한 천하의 정인(正人)이 될 것이다. 一正心而事無不正。禮儀三千。非正不行。卦爻四百。非正不吉。孔子吾道之一。孟子博學之約。非此之謂耶。正之一字。泛應曲當。無不周徧。如忠信之爲周。而不忠信則缺露也。是故正之反爲乏。乏則缺而不周矣。金氏子正熙。三加告畢。表德以周卿。蓋正無不周之意也。須顧名思義。務正學。崇正道。立正位。行正路。偉然爲天下之正人也。 마음을……하면 '마음을 바르게 한다'는 《대학장구(大學章句)》의 팔조목(八條目) 중 하나이다. 경(經) 1장에 "옛날에 자신의 밝은 덕을 천하에 밝혀 보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나라를 잘 다스렸고, 제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집안을 잘 단속하였고, 제 집안을 잘 단속하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일신을 닦았고, 제 일신을 닦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제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생각을 진실하게 하였고, 제 생각을 진실하게 하고자 했던 자는 먼저 제 앎을 극대화하였으니, 자신의 앎을 극대화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 달려있다."라고 하였다. 오도지일(吾道之一) 《논어》 〈이인(里仁)〉에, 공자(孔子)가 증자(曾子)에게 "삼아, 우리의 도는 한 가지 이치로써 만 가지 일을 꿰뚫고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박학지약(博學之約) 맹자가 "널리 배우고 상세히 말함은 장차 이를 돌이켜서 요약되게 말하고자 해서이다."라고 한 말이다. 《孟子 離婁下》 삼가례(三加禮) 일반적으로 관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며, 관을 세 차례 갈아 씌우는 의식을 말한다. 맨 처음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씌우고 다음에는 피변(皮弁)을 씌우고 마지막에는 작변(爵弁)을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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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우에게 써서 주다 書贈安景禹 학자(學者)는 우선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분별을 매우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단정하고 의젓하며 고요하고 전일한 가운데 천리를 기르며150) 빈객을 맞이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체득하여 조금씩 쌓아가 세월이 깊어지면 눈앞의 사물은 이 도리가 아닌 것이 없다. 삼공(三公)의 지위로도 고귀함을 비유할 수 없고 만종(萬鍾)의 녹봉으로도 부유함을 견주지 못하며 천하의 모든 사물도 이보다 더할 것이 없다. 이로써 큰일을 처리하고 커다란 변고(變故)에 임하면 장차 그 기세가 패연(沛然)하여 일삼는 바가 없음을 행하게 될 것이다.151) "진정한 대영웅은 전전긍긍(戰戰兢兢)하는 상황에서 출현한다."152)라는 말이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늙도록 무지(無知)한 처지라 감당하지 못하여 부끄럽지만 정의(情誼)를 생각하니 또 그냥 그만둘 수가 없다. 삼가 일상생활에 절실한 학문의 절도(節度)를 적어 주어 이를 대신한다. 學者先須識得天理人欲之分。十分明白。養之於端莊靜一之中。體之於酬酢云爲之際。銖累寸積。日人月深。則眼前物事。無非此箇道理。不以三公而喩其貴。不以萬鍾而較其富。至於擧天下之物而無以尙之。以之處大事臨大變。將沛然而行其所無事矣。所謂眞正大英雄。自戰戰兢兢中出來者。豈欺我哉。白首倥倥。愧無以承當。而撫念事契。又不可以但已。謹述學問節度切於日用者。以塞之。 단정하고……기르며 주자의 《대학혹문》에 "단정하고 의젓하고 고요하고 전일한 가운데 이 마음을 보존하여 리를 궁구하는 근본으로 삼고,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변별할 때에 이 리를 궁구하여 마음을 다하는 공부를 지극하게 한다.[存此心於端莊靜一之中, 以爲窮理之本, 竆此理於學問思辨之際, 以致盡心之工.]"라는 내용이 있다. 일삼는……것이다 맹자가 "지혜를 미워하는 것은 천착하기 때문이니, 만일 지혜로운 자가 우 임금이 물을 흘러가게 하듯이 한다면 지혜를 미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 임금이 물을 흘러가게 한 것은 일삼는 바가 없이 자연의 형세에 따른 것이니, 만일 지혜로운 자가 또한 일삼는 바가 없음을 행한다면 지혜가 또한 클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離婁下》 진정한……출현한다 《회암집(晦庵集)》 권36 〈답진동보(答陳同甫)〉에 다음과 같은 주자의 말이 보인다. 이를 축약한 것이다. "참으로 정대한 영웅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웅이라도 조심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는 곳에서 만들어진다.[眞正大英雄人. 然此一種英雄, 却是從戰戰兢兢, 臨深履薄處, 做將出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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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宮重修記 雪山鄕校昔在邑之西 英廟丙子櫟泉宋先生移建于東而年久圮毁正宗丙辰魏侯伯珪甫重修之今爲五十有五年矣棟宇腐敗塗曁剝落有仆而夷者有欹而撑者不侫掌知邑事章甫吏民咸願改建爭相出力講堂及祭庫一新修葺役旣始焉則 聖殿大樑之朽傷者亦不可仍舊故又明年易其朽者而丹雘之煥然改觀財力則校宮及養士齋歲入條節用而留儲者以爲工費而不煩民是皆諸生慕 聖重學之誠心太守何有焉蓋自國都以至郡縣設置校宮者所以爲崇奉 先聖藏修多士使爲士者瞻依宮墻春詩夏禮朝絃暮誦若七十子之親炙于杏壇春風之下入而修身齊家出而致君澤民以傳其道也孟子曰人必自侮而後人侮之諸君子苟能不自侮其身言行則砥礪之學業則刮磨之道德則切磋之而面粹背盎心廣體胖人侮之無自入推以及之學宮一木之有朽者必易之一石之有傾者必正之則何患乎 聖廟之復毁傷是所望於諸君子也諸君子相戒而相勖焉哲宗元年庚戌五月 日知縣尹會善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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講會儀 入齋之規無論長幼貴賤凡有志於學者皆可入每月朔【或定日】會講別立講長以主之【明經行義衆所推服者爲之】擇有文行者一人爲司講一人爲直月一人爲執禮一人爲讀法○講會日早朝講長率有司及直日及執禮及讀法及諸生先行相揖禮【會中以齒德俱尊者爲東西班首諸生中習禮者爲東西曺司】執禮立於阼階上讀法立於西階上東向讀朱子白鹿洞規約及藍田呂氏鄕約乃升堂就講講長坐北壁下堂中南向【講長有故未參則虛其位】聽講坐西壁下與齋任相對【齋任卽直日執禮讀法】諸生皆行北向西上以齒序立直日詣書案前抽栍示當講者當講者再拜講訖又再拜而出○講畢講長與聽講之應抗禮者交相揖諸生向講長再拜講長答一拜又向聽講再拜聽講答一拜諸生交相揖乃退【升降講長及齋任由東階諸生由西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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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揖笏記 東西班首各率諸生曺司從繩折旋而行○以次詣初立位東西行序立○東西曺司各詣班首前拱揖○班首答揖○曺司退復位○東西班首各率諸生曺司從繩折旋而行○以次至再立位東西行序立○東西曺司各詣班首前拱揖○班首答揖○曺司退復位○東西班首各率諸生曺司從繩折旋而行○以次至進立位東西行序立○東西曺司各詣班首前拱揖○班首答揖○曺司退復位○東西班首諸生曺司向師席拱揖○師席移座答揖○東西曺司各詣班首前拱揖○班首答揖○曺司退復位○東西班首各率諸生曺司從繩周旋而行○以次至再立位東西行序立○東西曺司各詣班首前拱揖○班首答揖○曺司退復位○○東西班首各率諸生曺司相向揖○東西曺司各詣班首前拱揖○班首答揖○曺司退復位○東西班首各率諸生曺司從繩折旋而行○以次至進立位○東西曺司各詣班首前拱揖○班首答揖○曺司退復位○東西班首各率諸生曺司從繩折旋而行○以次至階前東西行序立○讀法抗聲讀白鹿洞規藍田鄕約○東西班首諸生曺司同聽規約訖○執禮讀法立於西階下東西班首諸生曺司立於阼階下相向揖○升堂就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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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校誌成或有問於余曰玉鄕校誌古無而刱於今何所依據而成余曰自有傍郡之規例且依倣邑乘而纘述曰然則人物篇之無新增何也曰人物鄕先進所嘗是正者不敢輕犯手勢且旣有儒林學行諸篇則不必更著人物故依舊不動者亦成例也請問儒林學行之序曰儒林廣汎學行偏重學行優爲儒林而儒林未必居學行學行之於儒林其勢不得不然此玉鄕儒論之特例也曰儒賢篇之見漏何也曰旣有院宇篇詳矣且見于人物故然爾然則忠節亦有分別歟曰以搢紳而殉國曰忠以草茅而殉義曰節要之皆是節義惟看命辭之如何耳孝烈及節婦之分如何曰在家及適人善事父母舅姑曰孝下從曰烈貞苦自守曰節然古有不下從而贈旌者亦看其事行如何耳然則無眞贋之混同歟曰當初有狀牒者入錄而其餘只信有司之明據且當今之時有一行一善皆足以入錄莫非聖化之攸及故也曰文獻佳作之附後有依據歟曰各家文獻足則校中文獻可徵也亦見一方之治化請問此誌之效力曰吾鄕民淳俗雅知尊聖廟知信校議一木一凡之傾壆思有以補完之時果常羞之闕漏思有以豊享之皆出於秉彝好德之良心余在任以來尙有數三人如此者當錄于此誌以示永久也問者退余次其語附于篇未或不以僭越責之歟乙巳五上澣典校寧越辛有善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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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員錄 乙巳五月都有司 金炳基副有司 許再煥 沈均澤總 務 辛有善 朱來植校 正 呂昌鉉 申彦龍 許基洪編 輯 許基俊 吳昌根 權鍾聲正 書 鄭永一 偰寬玉 朴魯鳳收單有司 沈景植 林光鎬 崔正漢 韓晳晉 全允煥掌 財 金玉童雇 問 許日煥 金禎澤 金鎭浩 申正浩 鄭遠采 金錫麟劉洙鍾 沈承求 金麟喜 金聖洙 金容杓 金禹信沈相錄 金三龍 金顯相 沈元植 申健秀贊成員 許相文 金在宇 朴準玖 沈聖求 鄭雲紀 金賢信張金巖 梁薰謨 張鴻植 尹在新 許重坤 許 均 許鴻運金在權 金洛龜 許正煥 許相滿 柳成烈 金洪熺 金容周沈判求 呂泰鉉 許基福 金正永 沈相龍 鄭寅龍 鄭壽采文石基 鄭海日 金判洙 金銓洙 曹大煥 張志孝 辛承吉沈麒植 辛 承 朱宰杓 嚴明涉 李在權 金容元 李太炯申德雨 許東烋 朴永龜 金判德 吳文錫 鄭煥成 鄭東吉辛承滿 許相琭 吳一奉 金一煥 高光洙 金聖旭 金逸洙朴錄圭 崔東洲 姜明洙 朱興中 朴來寧 鄭玉述 徐在烈韓喆鎬 成熙敬 金一男 金東寔 李斗永 朴炳熙 具成述曹榮厦 許敬吉 金聖鎬 安東牽 徐廷甲 金鍾喆 梁正謨【無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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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홍107)에 대한 제문 祭鄭致弘文 백아(伯牙)의 거문고에 그 줄이 끊어지고108) 영근(郢斤)에 그 바탕[質]이 없으니,109) 이것은 사물의 이치와 사람의 정이 고르게 하기 어려운 곳이라, 천년동안 흘러 전해져도 오히려 느껴 아파하며 다하지 않는 뜻이 없을 수 없는데, 더구나 오늘날에 내 몸에서 직접 보았으니 어떠하겠는가.오호라! 나는 형에게 50년의 오랜 친구가 되네. 시절이 춥거나 따뜻할 때, 길흉사에 왕래할 때, 글 짓고 술 마시며 마음대로 놀 때, 상란(喪亂)에 달려가고 숨을 때에 더불어 서로 필요로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마치 보거(輔車)110)가 의지하는 것 같고 봉마(蓬麻)111)가 도와주는 것 같았는데, 더구나 지금 노쇠한 나이에 평소의 친구들을 봄에, 열에 여덟아홉이 죽었으니, 외롭게 서로 향하여 마주할 사람이 또 몇 이나 되겠는가. 형은 어찌하여 조금 더 살지 않고 나를 버리고 잊음이 이와 같이 갑작스러운가? 형은 1월 18일의 편지에서 이 달 안에 한 번 방문하겠다는 말이 있었고, 아우는 2월 7일 편지에서 봄이 다 가기 전에 한 번 만날 기약을 하였는데, 이 달 안의 약속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고 봄이 다 가기 전이 우리 두 사람이 영원히 작별할 때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병들었을 때 부축해 주지 못하였고, 죽었을 때 반함(飯含)112)도 못하였는데, 모습은 이미 감추어 유명 간에 영원히 막혔네. 제문을 지어 슬픔을 드러냄에 눈물이 쏟아지는 듯하니, 영령은 아시는지요? 牙琴之絶其絃。郢斤之無其質。此是物理人情之所難平處。而流傳千載。尙不無感傷不盡之意。況在今日而於吾身親見之乎。嗚呼。吾於兄爲五十年舊要也。時節寒暄。吉凶往來。文酒遊衍。喪亂奔竄。無不與之相須。如輔車之依。如蓬麻之助。況今衰暮之年。見平昔知舊。十亡八九。而煢煢相向。又其幾人乎哉。兄何爲不之少延。而棄我亡我。若是其遽耶。兄元月十八日書。有月內一枉之語。弟二月初七日書。有春暮前一穩之期。誰知月內之約。竟未見就。而春暮之前。爲吾兩人永別之辰耶。病未擧扶。歿未飯含。儀形已閟。幽明永隔。操文泄哀。淸血如注。靈其知否。 정치홍(鄭致弘) 정기현(鄭琦鉉, 1844∼?)을 말한다. 자는 치홍, 호는 만취(晩翠),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백아(伯牙)의……끊어지고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이른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絶絃]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列子 卷5 湯問》 영근(郢斤)에……없으니 옛적에 영(郢)에 도끼질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의 코끝에다 백토(白土)를 조금 붙여두고 도끼질로 그 백토를 다 깎아내어도 코는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코를 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그의 기술을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코를 대주었다. 그뒤에 그 사람이 죽고 나자 도끼를 던지며, "이제는 나의 바탕이 죽었으니, 어디에 기술을 쓰랴."라고 하였다.《莊子 徐无鬼》 보거(輔車) 서로 긴밀히 의지하는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봉마(蓬麻) 봉생마중(蓬生麻中)의 준말로, 좋은 사람과 사귀면 절로 바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대가 삼밭에서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검은 진흙 속에 있으면 진흙과 함께 검어진다.[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반함(飯含) 죽은 사람을 염습할 때에 입에다 구슬과 쌀을 물리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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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형【남헌】에게 답함 答李乃亨【南憲】 어여쁜 댕기머리가 이따금 심목(心目)간에 오가니, 이는 인정상 참으로 당연한 것이네. 편지가 도착하니, 이에 부모를 모시면서 학문하는 건강이 매우 좋다고 하니, 더욱 부탁하고 싶던 바이네. 별지의 여러 조목에서 책을 읽으면서 허투루 넘기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처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차분히 살펴보면, 너의 재성(才性)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며 의향이 좋지 않음은 아니지만, 다만 몸가짐하는 방법에 깊이 힘을 쏟지 않으니, 이는 하찮은 일이 아니네. 만약 몸가짐을 단정하고 엄숙하게 하지 않고서 위로 향하는 공을 구하려고 한다면, 이는 비유하자면 모래에 불을 때서 밥을 짓는 것과 같으니, 어찌 성공할 이치가 있겠는가. 절대로 마땅히 마음에 새겨야 하네. 별지의 물음에 대해 나의 생각을 대략 답하였으니, 보고서 세 번 더 생각하여 올바른 답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예의를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자포(自暴)라고 이르고, 내 몸이 인에 거하고 의를 말미암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한다."155)라고 하였는데, 자포는 예의에 대해 말하고 자기는 인의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따로 해당한 바가 있습니까.답변 : 자포로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예의가 일을 행함에 드러난 것으로 말하였고, 자기로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인의(仁義) 체용(體用)의 실상을 겸하여 들어서 말하였네.질문 : 〈격군심장(格君心章)〉156)에서 먼저 사람 기용의 잘못을 말한 뒤에 정사의 잘못을 말하였는데, 사람 기용의 잘못이 있은 뒤에 정사의 실수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정자의 주에서는 먼저 정사의 실수를 말하고 뒤에 사람 기용의 실수를 말하였는데,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사람을 기용하는 것은 정사를 행함에 중대한 일이니 그러므로 맹자는 그 중대한 것을 먼저 말하였고, 정사의 잘못은 사람 기용의 잘못에서 많이 일어나니 그러므로 정자는 먼저 그 많은 것을 말하였네.질문 : 〈감문우장(敢問友章)〉157)에서 '백승(百乘)의 집' 이하의 여러 내용들은 다만 귀함을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니, 귀함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 당시에 가장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언급한 것입니다. 이른바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으며 형제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 것은 모두 이런 부류를 미뤄 넓힌 것입니까.답변 : 이 장은 임금이 선비를 대하는 도리를 말한 것이니,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거나 형제를 배경으로 삼는 것이 어찌 이에 들어가겠는가.질문 : 선악을 말할 때 모두 선을 먼저하고 악을 뒤로하며, 길흉을 말할 때 모두 길을 먼저하고 흉을 뒤로하며, 시비를 말할 때 모두 시를 먼저하고 비를 뒤로하는데, 사정(邪正)을 말할 때는 사를 먼저하고 정을 뒤로하니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주역》에서 "사특함을 막아 그 성을 보존하다."158)라고 하였는데, 사정이라 이르는 것은 아마도 여기에서 나온 듯하네.질문 : 마음을 기울여 검속해도 평안하고 안정되지 않습니다.……답변 : 마음을 기울여 검속하지 않으면 초학자가 어찌 공부를 착수할 곳이 있겠는가. 마음을 기울여 검속하면 오래 되어 저절로 평안하고 안정됨이 있을 것이네。또한 '마음을 기울인다.[着意]'는 두 글자에 대해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하니, 이미 거짓으로 꾸며서 좋게 보이려는 뜻이 없고 또한 남을 모방하면서 책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둘러대는 뜻이 없다면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 어찌 방해가 되겠는가. 만약 마음을 기울여 힘쓰지 않고서 앉아서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기를 기다린다면 이는 망령된 사람일 뿐이네. 깊이 생각해보게나. 婉孌丱角。種種往來於心目間。此人情乏所固然。書來。仍諳侍傍學履佳迪。尤協願言。別紙諸條。可見讀書不放過。不然。安能會疑如此也。竊覵汝之才性。非不佳矣。意向非不好矣。但於持身之方。不甚着力。此非細故。若不持身端莊。而求向上之功。比如炊沙作飯。豈有有成之理。切宜識之。別紙。謹以鄙意略略答去。覽加三思。歸於稱停如何。言非禮義。謂之自暴。吾身不能居仁由義。謂之自棄。自暴言禮義。自棄言仁義。別有所當耶。以自暴者言。故特以禮儀之著於行事者而言。以自棄者言。故兼擧其仁義體用之實而言。格君心章。先言用人之非然。後言政事之失。有用人之非然後。有政事之失故耶。程子註。先言政事之失。後言用人之非。何耶。用人大於行政。故孟子先言其大者。政事之失。多於用人之非。故程子先言其多者。敢問友章。百乘之家以下諸條。特言不挾貴。挾貴是當時最甚。故言之。所謂不挾長不挾兄弟。皆可類推耶。此章主言人君待士之道。挾長挾兄弟。何有於此。言善惡。皆先善而後惡。言吉凶。皆先吉而後凶。言是非。皆先是而後非。言邪正。反先邪而後正。何也。易曰閑邪存其誠。邪正之云。恐出於此。着意檢束。不得安帖云云。不着意檢束。則初學將安有下手處。着意檢束。久自有安帖處。且着急二字。儘有商量。旣無矯飾要好之意。又無依樣塞責之意。則着意何妨。若不着意勉强。而坐待其入聖。此妄人而已。念之念之。 예의를……한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보이는 말이다. 격군심장((格君心章)) 《맹자》 〈이루 상(離婁上)〉의 "등용한 인물을 군주와 더불어 일일이 다 허물할 수 없으며 잘못된 정사를 일일이 다 흠잡을 수 없다. 오직 대인만이 임금의 나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니, 임금이 인(仁)해지면 모든 일이 인하지 않음이 없게 되고 임금이 의로워지면 모든 일이 의롭지 않음이 없게 되며 임금이 바르게 되면 모든 일이 바르지 않음이 없게 된다. 임금의 마음을 한 번 바루면 나라가 안정된다.〔人不足與適也 政不足間也 惟大人爲能格君心之非 君仁 莫不仁 君義 莫不義 君正 莫不正 一正君而國定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감문우장(敢問友章)〉 맹자의 제자 만장(萬章)이 벗에 대해 묻자, 맹자가 "나이가 많은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귀하다는 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형제를 배경으로 삼지 않고 벗한다. 벗함은 덕(德)을 벗하는 것이니, 배경으로 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不挾長 不挾貴 不挾兄弟而友 友也者 友其德也 不可以有挾也〕"라고 대답하였다。이후로 그 실례를 들어 논의를 이끌어 가는데, 백승지가(百乘之家)인 맹헌자(孟獻子)와 작은 나라 임금인 비혜공(費惠公)과 큰 나라 임금인 진평공(晉平公)의 예를 들고 있다. 사특함을……보존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이(九二) 문언(文言)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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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오공69)에 대한 제문 祭松庵吳公文 공은 어버이를 섬김에 종시(終始)의 효성이 있었고 집안을 일으킴에 이룩한 사업이 있었으며, 몸가짐에 근칙(謹勅)하다는 명예가 있었고 고을에서는 화락한 풍모가 있었습니다. 자식의 혼사를 다 시켜 자손들이 줄을 이루고, 선을 닮도록 하여70) 아들이 계술하는 것이 다함이 없습니다. 걱정 없이 강녕의 복에 응하고 욕됨이 없이 예순의 장수 누렸습니다. 인생의 사업 끝냈다 하겠고, 세상의 책임 마쳤다 하겠습니다. 이것이 유연히 떠나고 호연히 돌아가 근심하며 죽음을 슬퍼하는 뜻이 기미에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이니, 공은 사생의 설을 알고 종시(終始)의 의가 있었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향당(鄉黨)에서는 기구(耆舊)의 명망을 잃게 되었고, 글방에서는 위의를 갖춘 현인이 사라졌고, 붕우 간에는 따를 만한 유익한 벗이 없어졌으니, 뒤에 죽을 사람의 비통함은 그만 둘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영원히 돌아갈 날이 정해져 저승과 이승이 장차 막힐 것이라, 제문을 지어 대신 제사 드리며 슬픈 마음 깃들이니, 어둡지 않은 존령이여 보시고 흠향하소서. 公事親而有終始之孝。起家而有成立之業。持身而有謹勅之譽。處鄕而有愷悌之風。昏嫁畢而孫枝成行。式穀似而子述不匱。無憂而膺康寧之福。無辱而享耆久之壽。人生之業。可謂終矣。世間之債。可謂了矣。此所以悠然而逝。浩然而歸。無慽慽怛化之意。見於幾微。公可謂知死生之說。而有終始之義者也。但鄉黨失耆舊之望。庠塾無風儀之賢。朋友乏從逐之益。後死者之悲痛。有不可已者。大歸有日。幽明將隔。緘辭替侑。以寓一哀。尊靈不昧。庶幾鑑饗 송암(松庵) 오공(吴公) 오수화(吴壽華, 1835∼1895)를 말한다. 자는 태중(泰仲), 호는 송암,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18 〈송암 오공 행장(松庵吳公行狀)〉에 보인다. 선을 닮도록 하여 자식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소완(小宛)〉에 "언덕 가운데의 콩을 서민들이 거두어 가는 것처럼, 명령의 새끼를 과라가 업어 데리고 가서 키우니, 네 자식도 잘 가르쳐서 선을 닮게 하거라.[中原有菽, 庶民采之, 螟蛉有子, 蜾蠃負之, 敎誨爾子, 式穀似之.]"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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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기 靜齋記 한 번의 동함과 한 번의 정함66)은 천지(天地)가 닫히고 열리는 기틀이고, 음양(陰陽)이 유행하는 자취이며, 인심(人心)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묘리이니, 서로 있어야 하고 서로 없어서는 안 되며, 서로 의존해야 하고 서로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덕(德)67)으로 말하면 정(貞)이 줄기가 되고, 본성으로 말하면 의(義)가 바탕이 되며68), 사시(四時)로 말하면 겨울이 갈무리의 시기가 되니69), 이것이 사람의 준칙을 세울 때에 고요함을 주장하는 이유이다.70) 하물며 우리들은 나이와 정력이 이미 저물어 가서 쇠퇴함이 날로 심해져 가니, 이는 천시(天時)에서 한 해의 겨울이 아니겠는가.형체는 동작의 형세를 따를 수 없고, 정력은 사색의 번민을 꿰뚫을 수 없으니, 오직 수습하고 검속하며, 사리사욕을 없애고 말수를 줄여서 마치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철에 바싹 마른 나무가 뿌리를 감추고, 만물이 얼어붙는 엄동설한의 계절에 땅속에 칩거하는 벌레가 자신을 보존하는 것처럼 선천(先天)에서 속세를 잊어버리고 상유(桑楡)에 남아 있는 빛을 되돌려 조용하고 한가롭게 여생이 다할 날을 기다릴 뿐이다. 이것이 노년을 살아가는 계책일 것이다.나의 벗 박공(朴公) 인여(仁汝)가 고요함[靜]을 한 글자의 부절(符節)로 삼아 집의 편액에 써서 표시한 것은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흰 머리를 서로 바라보는 처지로 서로 위로할 길이 없기에 삼가 집에 명명한 뜻을 써서 마음을 부친다. 一動一靜。是天地闔闢之機。陰陽流行之迹。人心生生之妙。可以相有而不可以相無。可以相須而不可以相妨。然以言乎德則貞爲幹。以言乎性則義爲質。以言乎時則冬爲藏。此立人極者。所以主乎靜也。而況吾輩年力已邁。衰替日深。此非天時一歲之冬乎。形體不足以服動作之勢。精力不足以貫思索之煩。惟是收拾斂束。恬澹簡黙。如枯槁之木。晦根於搖落之時。封蟄之蟲。存身於嚴凝之節。忘劫塵於先天。回餘光於桑楡。從容閒暇以俟餘日。此是老年活計也。余友朴公仁汝。以靜爲一字符。而標題於齋顔者。非此意耶。白首相望。無以相慰。謹書其名齋之義以寄情焉。 한 번의……정함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함과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는 말이 보인다. 덕(德) 《주역》 〈건괘(乾卦)〉에 나오는 건도(乾道)의 네 가지 덕인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을 가리킨다. 본성으로……되며 사람은 태어날 때에 건도(乾道)의 네 가지 덕인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을 받아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 네 가지 본성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사시(四時)로……되니 《사기》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무릇 봄에 생겨나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갈무리하니, 이는 천도의 큰 법이다.[夫春生夏長, 秋收冬藏, 此天道大經也.]" 하였다. 이것이……이유인데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성인은 중ㆍ정ㆍ인ㆍ의로 정하되 고요함을 주장하여 사람의 준칙을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라는 구절이 보인다. 《古文眞寶 後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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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재 김공 묘지명 栗齋金公墓誌銘 공의 휘는 종국(鍾國), 자는 성일(聖一), 호는 율재(栗齋)이다. 김씨(金氏)는 계보가 경주(慶州)에서 나왔다. 휘 충한(沖漢)이란 분이 계시니, 호는 수은(樹隱)이다. 고려에서 벼슬하여 예의 판서(禮儀判書)를 지냈다. 본조에 들어와 휘 영전(傳號)이란 분이 계시니, 호는 필암(蓽庵)이고, 참봉을 지냈다. 여러 대를 전해 내려와 휘 대기(大器)에 이르렀는데, 호는 경재(警齋)이고 진사를 지냈고, 중봉(重峯) 조 선생(趙先生)에게 수학하였다. 이분이 휘 명철(命哲)을 낳았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고, 장악원 정(掌樂院正)에 추증되었다. 이분이 휘 횡(鑅)을 낳았는데, 호가 태암(泰巖)이고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우산(牛山) 안 선생(安先生)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다. 모두 그 현조(顯祖)이다. 고조는 휘 운정(運鼎)인데, 감찰을 지냈고, 증조는 휘 희학(希學)인데, 호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조부는 휘 지형(之炯)인데, 장악원 정에 추증되었다. 선고는 휘 홍기(鴻基)인데, 호가 농와(聾窩)이다. 모친은 진주 정씨(晉州鄭氏)로, 정영(鄭爃)의 따님이다. 공은 순묘(純廟) 정축년(1817, 순조17) 2월 28일에 신산리(薪山里)에서 태어났다.공은 타고난 성품이 호탕하였으니, 곡학(曲學)하는 선비의 기습(氣習)이나 구차한 유학자의 기습이 없었다. 처음에 시서(詩書)를 공부하다가 활쏘기와 말타기를 함께 익혔는데, 버들잎을 꿰뚫을 정도로 기예가 정밀하고 심오하였으며 용병술(用兵術)이나 기율(紀律)에도 모두 통달하였다. 술을 마신 뒤에는 《시경》〈진풍(秦風) 무의(無衣)〉 몇 곡조를 읊조렸으며, 《사기(史記)》를 읽다가 노중련(魯仲連)이 동해 바다를 밟고, 장량(張良)이 진(秦)나라를 격파하였다는 등의 구절에 이르러서는 책을 덮고 무릎을 치며 북받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했다. 중년 이후로는 변고를 겪은 것이 점점 깊어지고 세상일을 겪은 것이 점점 많아져, 젊었을 때의 풍도는 규각(圭角)42)을 드러내지 않고 편안하게 수렴하여 날로 노성(老成)한 법도를 이루었다. 또 무사재(無邪齋) 박씨 어른과 만년에 이웃에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교유하여 깨달은 것이 많았다. 병인년(1866, 고종3) 강도(江都)의 난43)에 그 족숙(族叔) 산남공(山南公)을 따라 의병을 일으켰는데, 약속이 이미 정해져 출발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문득 난이 평정되어 그만두었다.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형제에게는 우애 있으며, 붕우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규문을 잘 다스리고 정돈하여 조화로우면서도 예법이 있었고, 자손을 가르침에 엄격하고 법도가 있었으니, 아름다운 명성과 훌륭한 명예가 향리에 자자하였다.기유년(1909, 순종3) 4월 7일에 졸하였는데, 신산(薪山) 오른쪽 산기슭 자좌(子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배위(配位)는 상산 김씨(商山金氏)로, 김욱해(金郁海)의 따님이다.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만원(萬源), 두원(斗源)이고, 딸은 흥덕(興德) 장대규(張大奎)에게 출가하였다. 장방손(長房孫)은 권주(權柱)이고, 손녀는 정재우(鄭在禹)에게 출가하였다. 차방손(次房孫)은 권율(權律), 권하(權夏), 권권택(權澤), 권권후(權厚), 권권신(權信)이고, 손녀는 구교열(具敎烈)에게 출가하였다.아, 공의 평생을 살펴보건대, 풍진세상에서 불우하였지만 뇌락(磊落)하고 강개(慷慨)함은 먼 후대에도 오히려 족히 느낄 수 있다. 더구나 같은 세상 같은 고을에 살면서 직접 인사드리지 못했으니, 그 한스러움이 어떠하겠는가.권하(權夏)가 그 대인의 명을 받들어 가장(家狀)을 가지고 와서 묘지명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옛날엔 광견44)이지만 古之狂狷오늘날은 강개한 기상일세. 今之慷慨이로 인해 분별하여 因是裁之성취할 수 있었네. 可以有造만년에 좋은 이웃을 만나 晩接芳隣순박함을 회복하였네. 于以回淳신산의 기슭에 薪山之麓넉 자의 봉분이 있네. 四尺其崇봄가을로 향기로운 제물 올리니 春秋芬苾자손이 번성하리라. 子孫繩繩 公諱鍾國。字聖一。號栗齋。金氏系出慶州。有諱沖漢號樹隱。仕麗。官禮儀判書。入我朝。有諱永傳號蓽庵。參奉。累傳至諱大器號警齋。進士。受學於重峯趙先生。生諱命哲。壬辰擧義。贈掌樂院正。生諱鑅號泰巖。同中樞。從牛山安先生擧義。皆其顯祖也。高祖諱運鼎監察。曾祖諱希學。贈戶曹參議。祖諱之炯。贈掌樂院正。考諱鴻基號聾窩妣晉州鄭氏爃女公以純廟丁丑二月二十八日生于薪山里。天稟豪爽。無曲士拘儒之氣。初業詩書。兼習弓馬。穿楊碎柳。技藝精深。用兵紀律。無不曉解。酒後歌無衣詩數闋。讀史至魯連蹈海張良椎秦等處。廢書擊節。不勝其慷慨。中身以後。閱世漸深。更事漸多。少年風韻。不露圭角。而帖然收斂。日就孚老成規矩。又與無邪齋朴丈。晩而接隣。日夕遊從。多所契悟焉。丙寅江都之亂。從其族叔山南公。倡起義旅。約束己定。啓行有日。旋以亂平而止。孝於父母。友於兄弟。信於朋友。修整閨門。和而有禮。敎訓子孫。嚴而有法。令聞令譽。藉藉鄕里。己酉四月七日卒。葬薪山右麓子坐原。齊商山金氏郁海女。二男一女。男萬源斗源。女適興德張大奎。長房孫權柱。女鄭在禹。次房孫權律權夏權澤權厚權信。女具敎烈。嗚呼。迹公平生。其落拓風塵而磊落慷慨。百世之下。猶足相感。況在倂世同鄕而未得拜床。其恨爲何如也。權夏以其大人命。奉家狀。謁誌銘。銘曰。古之狂狷。今之慷慨。因是裁之。可以有造。晩接芳隣。干以回淳。薪山之麓。四尺其崇。春秋芬苾。子孫繩繩。 규각(圭角) 위가 뾰족하고 밑이 네모난 벽옥(璧玉 둥근옥)이 규(圭)이고, 이 벽옥의 뾰족한 모서리가 규각이다. 언행이 모가 나서 남과 잘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규각나다'라고 한다. 병인년 강도(江都)의 난 병인양요(丙寅洋擾)를 이른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천주교도 탄압으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이다. 광견(狂狷) 《논어》〈자로(子路)〉에 공자가 "중도(中道)를 행하는 사람을 얻어 함께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광견한 사람과 함께 하겠다.[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뜻이 크고 지조가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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