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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12) 噫鄕校誌昔我先父老有志未遑底事居是鄕者未嘗不慨然于玆況今世故如水益深若失今不修則先父老之遺志永歸於烏有故鄕論僉發印成二丹或其規例之糢糊字畫之銀根難免衆誚然但使一鄕士一開卷則如見先父老於曠世矣孰不興感哉斯役之經紀也李謹行氏獨賢之不佞亦任在評議不勝曠世之感忘僭而識其數行云爾癸酉十月下澣坡平尹二炳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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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辭(6) 豫國公程顥字伯淳宋人世居中山後從開封徙河南高祖羽太宗朝三司使父珦仁宗錄舊臣後仕至太中大夫煕寧法行抗議力沮之前後五得任子以均諸父之子孫所得俸錄悉瞻孤寡文彦博輩特表其淸節于朝伯淳擧進士調鄠士元主簿遷晉城令皆繼獄如神明又務德化凡民以事至縣者必告以孝悌忠信度鄕村遠近爲保伍使之相助相恤而姦僞無所容鄕必有校暇時親至爲正句讀敎者不善則爲易置民愛之如父母煕寧初用呂公著薦爲太子中允監察御史裡行神宗素知其名數召見每退心曰頻求對欲常常見卿前後進說甚多大要以正心室慾求賢育材爲言務以誠意感悟主上王安石議更法方怒攻者甚顥赴議事徐曰天下事非一家私議願平氣以聽安石爲之媿屈嘗數論時政有曰自古興治立事未有中外人情交謂不可而能有成者況於排斥忠良沮廢公議用賤陵貴以邪干正者乎又曰興利之臣日進尙德之風漸衰尤非朝廷之福遂乞去言職安石猶敬其忠信出提點京西刑獄固辭改簽書鎭寧軍判官不敍伐閱特遷太常丞帝欲使修三經義執政不可命知扶溝縣所至多善政哲宗立石爲宗正丞未行而卒年五十四資性過人充養有道門人交友從之數十年未嘗見其忿厲之容遇事優爲雖當倉卒不動聲色嘗言曰道之不行異端害之也是皆正路之蓁蕪聖門之蔽塞闢之而後可以入道惜乎蚤世未及著述僅存諸弟子質疑諸益答問之語與夫書疏銘詩之類行于世後潞公文彦博題其墓曰明道先生○宋寧宗嘉定十三年賜諡純公理宗淳祐元年封河南伯從祀文廟元至順元年加封豫國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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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9) 金櫃之封石室之藏蓋出於尊奉堅秘之道而西漢之文未必盡傳於後世也是以我郡鄕校事蹟上下數百載封之庫而藏之櫃未嘗不爲尊閣之秘守之而中間不免有雲空湮滅之嘆若不及今蒐輯則將不知如何散逸而況世故之百川西倒乎此鄕長老之立幟於刊誌之議而合鄕影從也然則是誌之行固當金櫃於人人石室於家家使吾鄕重蹟不湮於永世毌至後人之視西漢也烏不猗哉至於規例節目不待圭興之贅說而詳且明是爲跋癸酉剝月下浣上黨韓圭興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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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10) 夫校之誌大矣竊惟我 文宣先聖之道大德宏與天地相終始者也且生於數千載之下凡有彝性者莫不尊親嗚呼休哉當人獸交攻之日敎化旣頹而倫經而倫經亦斁矣人不得爲人而天地爲之飜覆矣于時也吾鄕之搢紳章甫詢議合謀蒐輯成鹿名曰校誌以擴其傅而壽其來百則豈其豊於古而嗇於今哉朱夫子曰天下事有其實足矣旣有其實而又出於正人君子之手則可以傳遠此千古不易之明訓也吾鄕之宿德君子旣爲摭實前言往行而且人物風敎不下於齊魯而又變而至於魯則安知不無風化之至於先王之道也序次爲之跋癸酉昭陽之小春金海金炳寅謹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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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奠幣禮 贊引引初獻官詣盥洗位北向立○盥手拭手○仍詣良僖公李先生香案前北向跪○搢笏○奉香奉爐升○奉香奉香盒詣獻官之右奉爐奉香爐詣獻官之左○獻官三上香○奉香奉爐還置香盒香爐於故處○降復位○祝奉幣篚詣獻官之右授獻官○獻官執幣以幣授祝○祝自左受之奠于神位前○祝降復位○獻官俯伏興平身○執笏○仍降復位○贊引引初獻官詣恭度公徐先生香案前北向跪○搢笏○奉香奉爐升○奉香奉香盒詣獻官之右奉爐奉香爐詣獻官之左○獻官三上香○奉香奉爐還置香盒香爐於故處○仍降復位○祝奉幣篚詣獻官之右授獻官○獻官執幣以幣授祝○祝自左受之奠于神位前○祝降復位○獻官俯伏興平身○執笏○仍降復位○贊引引初獻官詣 忠簡公李先生香案前北向跪○搢笏○奉香奉爐升○奉香奉香盒詣獻官之右奉爐奉香爐詣獻官之左○獻官三上香○奉香奉爐還置香盒香爐於故處○仍降復位○祝奉幣篚詣獻官之右授獻官○獻官執幣以幣授祝○祝自左受之奠于神位前○祝降復位○獻官俯伏興平身○執笏○仍降伏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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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初獻禮 贊引引初獻官詣良僖公李先生罇所西向立○奉爵奠爵升○司罇擧冪的酒○奉爵以爵受酒○贊引引獻官詣良僖公李先生香案前○奉爵奠爵隨之○獻官北向跪搢笏○奉爵跪獻官之右以爵授獻官○獻官執爵以爵授奠爵○奠爵自左受之奠于神位前西端第一坫○奉爵奠爵降復位○祝升○獻官俯伏興平身少退跪○祝執板詣獻官之左東向跪○讀祝文○訖還置祝板於故處○降復位○贊引引獻官詣恭度公徐先生罇所北向立○奉爵奠爵升○司罇擧冪的酒○奉爵以爵受酒○贊引引獻官詣恭度公徐先生香案前○奉爵奠爵隨之○獻官北向跪搢笏○奉爵跪獻官之右以爵授獻官○獻官執爵以爵授奠爵○奠爵自左受之奠于神位前西端第一坫○奉爵奠爵降復位○祝升○獻官俯伏興平身少退跪○祝執板詣獻官之左東向跪○讀祝文○訖還置祝板於故處○降復位○贊引引獻官詣忠簡公李先生罇所○北向立○奉爵奠爵升○司罇擧冪酌酒○奉爵以爵受酒○贊引引獻官詣忠簡公李先生香案前○奉爵奠爵隨之○獻官北向跪搢笏○奉爵跪獻官之右以爵授獻官○獻官執爵以爵授奠爵○奠爵自左受之奠于神位前西端第一坫○奉爵奠爵降復位○祝升○獻官俯伏興平身少退跪○祝執板詣獻官之左東向跪○讀祝文○訖還祝板於故處○降復位○獻官俯伏興平身○執笏○仍降復位○初獻官再拜【今校院例三獻皆無再拜而考朱文公釋奠儀則三獻皆有再拜之文故今依釋奠儀而改正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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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원【노정】에게 답함 答朴允元【魯貞】 한 통의 편지가 뜻밖에 이르니, 어찌 다만 귀한 공청이나 수벽134)에 그치겠는가. 편지를 받고서 부모를 모시면서 철마다 건강이 좋다고 하니 더욱 걱정하던 마음에 위로가 되네. 다만 잘 모르겠네만, 근래 그대의 학과(學課)는 어떻게 절도 있게 잘 해나가 날로 달로 발전하는 효과가 있는가. 나는 이전 편지를 보낼 때와 완전히 같다네. 대저 공부는 다만 치지(致知)와 거경(居敬)에 달려 있는데 치지하지 않으면 거경할 수 없고 거경하지 않으면 치지할 수 없으니, 수레의 두 바퀴나 새의 양 날개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이 되어야 성취할 수 있네. 윤원은 또한 이를 응당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되니, 반드시 평소하는 일에서 한가하게 출입하거나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등은 완전히 통렬하게 끊어버리고 문을 닫고 휘장을 내린 뒤에 침잠하여 연구하고, 어진 사우 및 나보나 나은 자를 종유하여 잘잘못을 분별하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구범이 말하기를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배로 삼아야 한다."135)라고 했는데, 그 주에서 "인(仁)은 사랑함이다."라고 하였으니, 사랑한다[愛]고 말하지 않고 인하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인(仁)자는 뜻이 상대적으로 깊고 애(愛)자는 뜻이 상대적으로 얕기 때문이네.질문 :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며, 상(喪)은 형식적으로 잘 다스려지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하여야 한다."136)라고 하였는데, 예를 말하면 상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거늘 특별히 그 상을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예는 길례로서 말하였으며, 상은 흉례로서 말하였기 때문이네. 一書出於望外。奚啻空靑水碧之爲貴也。承審侍旁節宣。體事衛重。尤叶懸情。但未知近來盛課。作何如節度。而有日邁月征之效否。義林一如向奉時而已。大抵功夫。只在致知居敬。非致知無以居敬。非居敬無以致知。如車之兩輪。鳥之兩翼。相須交資。乃可有爲。想允元亦應諒之。必於日用事物上。如閑出入閑說話。一切痛斷。杜門下帷。沈潛硏究。從賢士友及勝已者。以辨其得失。如何。舅犯曰。仁親以爲寶。註曰仁愛也。不曰愛而言仁。何也。仁字義較深。愛字義較淺。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言禮則喪亦在其中。特言其喪何也。禮以吉禮言之。喪以凶禮言也。 공청이나 수벽 한약 재료의 하나. 구범이……한다 《대학장구》 전 10장에 보인다. "구범이 말하기를 '도망 온 사람은 보배로 여길 것이 없고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배로 여긴다.' 하였다.[舅犯曰:亡人無以爲寶, 仁親以爲寶.]" 예는……한다 《논어》 〈팔일(八佾)〉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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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경【종기】에게 답함 答金大敬【鍾基】 우리 대경을 보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마음 날이 갈수록 깊어지네. 뜻밖에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못내 잊지 못하는 깊은 마음을 담았으니, 대경도 또한 내가 대경에게 그러한 것처럼 나를 그리워함을 알게 되매 위로가 되어 마음이 매우 놓이네. 잘 모르겠네만, 편지를 보내 뒤에 달이 두 번 바뀌었는데 부모를 모시고 경전을 공부하면서 건강은 날로 좋아지며 전념으로 책을 읽으면서 과연 매우 어질게 발전하는가? 가끔씩 마음을 내달리는데 듣고픈 마음 놓을 수가 없네. 대저 대경은 부모의 명을 받아 나의 집에 와서 공부한 지가 몇 해가 되었네. 이러한 뜻은 얼마나 정중한가마는 못난 나는 그 만분의 일에도 부응하지 못하니, 평소에 뒤미쳐서 생각하면 실로 마음이 편치 않네. 잘 모르겠네만 대경의 생각으로도 또한 몇 해 나를 종유하면서 과연 다소 효과를 보아서 부모가 명하여 나에게 보낸 의도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여기는가. 이미 지나간 일은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비록 지금이라도 반듯한 규칙을 정하여 걸음마다 그것을 따라 조금도 멈추지 않는다면 이전에 빠트렸던 것을 벌충할 수 있을 것이니 부모의 기쁨이 어떠하겠는가. 보내준 편지에서 입지(立志)는 학자에게 제일 중요한 법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그렇다네. 한편 대경의 자질은 근후함에 뛰어나고 용감함에 뒤처지니, 이 때문에 진취에 기력이 부족하네. 그렇다면 입지는 비록 중인(衆人)에게 통하는 일반적인 법이지만 더욱 대경에게 현재 병통에 맞는 올바른 약이 될 것이네. 바라건대 모름지기 이에 맹렬하게 주의를 기울여 용감하게 곧바로 나아가기를 배를 침몰시키고 솥을 깨부수듯이105) 하게나. 不見吾大敬久矣。戀戀懷思。與日俱深。謂外一書。致意繾綣。可知大敬。亦如我之於大敬也。慰豁良深。未詢書後月已再弦。侍經節宣。日臻佳迪。佔畢一着。果能喫緊向上否。種種馳情。不任願聞。大抵大敬。受親命住敝室者。爲幾年矣此意爲何等鄭重。而區區無狀。未有以副其萬一之意。尋常追念。實爲未安。未知大敬之意。亦以爲數年從遊。果有多少見效。可不負親庭命送之意者耶。旣往勿說。雖在今日。辨得畵一規矩。步步遵循。無容間斷。則亦可以迫補前闕。而爲親庭供歡。爲何如耶。來喩所謂立志是學者第一法。此固然矣。且大敬資稟。優於謹厚。而遜於勇敢。此於進就所以小氣力也。然則。立志雖爲衆人通法。而尤爲大敬今日對證之直劑也。望須於此。猛着眼目。勇往直前。如沈船破釜之爲也。 배를……깨부수듯이 원래 살아 돌아올 기약을 하지 않고 결사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와 싸우러 가면서 하수(河水)를 건넌 뒤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양식을 지니고서 사졸에게 반드시 죽을 것임을 보여 주었던 것[沈船破釜甑, 燒廬舍, 持三日糧, 以示士卒必死]에서 유래한다. 《史記 項羽本紀》 여기서는 죽을 각오로 공부에 매진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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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현136)에 대한 제문 祭洪文玄文 공은 순후(淳厚)하고 성각(誠慤)한 자질과 침정(沈靜)하고 안상(安詳)한 자태로 가정의 학문을 계승하고 사우의 가르침에 종유하여 효우의 행실과 화락할 기풍이 집에 있어서도 반드시 달(達)하고 나라에 있어서도 반드시 달하여 젊어서는 근칙(勤勅)한 선사(善士)가 되고 늙어서는 숙석(宿碩)의 위유(偉儒)가 되었네. 오직 조물주가 좋아하지 않고 운명이 떨쳐지지 못하여 전후의 60년 동안 지내온 사업은 단지 궁벽한 산에 하나의 초당뿐이었으니, 양빈(楊貧)137)과 한궁(韓窮),138) 교한(郊寒)과 도수(島瘦)139)가 처음부터 한 사람의 몸에 모이지 않음이 없었네. 그러나 비색함이 형통한 것140)은 무리 짓지 않았기 때문이고 발꿈치가 꾸며짐141)은 수레를 타지 않기 때문이니, 백발의 한 서생이 세상에서 능히 형통하지 못할 형통함을 가지고 남들이 능히 꾸미지 못할 꾸밈을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의림(義林)은 일찍이 그대 중부 봉남옹(鳳南翁)142)과 생사를 함께하는 막역한 교분을 맺었네. 이윽고 옹이 이미 나를 버렸고 그 집안에는 서업을 이어서 전술할 사람은 오직 공이 있었네. 더구나 부조가 대대로 교분을 맺어 어릴 때부터 알아 성기(聲氣)를 함께하여 서로 익숙하고 친밀함은 누가 공보다 앞설 사람이 있겠는가. 풍상에 흔들려 떨어져 어려움 속에 서로 지키던 뜻이 실로 끊임없이 왕래하며 의지할 곳이 있었는데, 어찌 하나의 병이 낫지 않아 마침내 그대가 먼저 감이 이와 같은가. 백아의 거문고 줄이 이미 끊어졌고, 영질(郢質)이 이미 없어지니,143) 금오(金鰲)의 수석과 침정(枕亭)144)의 풍월에 단지 여생의 다하지 않는 슬픔만 있을 뿐이네. 외롭고 쓸쓸하니, 누가 나의 슬픔을 알리오? 公以淳厚誠慤之質。沈靜安詳之姿。承襲家庭之學。游從師友之敎。孝友之行。愷悌之風。在家必達。在邦必達。少而爲勤勅之善士。老而爲宿碩之偉儒。惟是造物不媚。命道不揚。前後六十年經歷事業。只是窮山一草堂而已。楊貧韓窮。郊寒島瘦。未始不萃於一人之身。然否之亨。以其不群也。趾之賁。以其不乘也。誰知白髮一書生。有世所不能亨之亨。有人所不能賁之賁耶。義林早與尊仲父鳳南翁。爲死生莫逆之契。旣而翁已棄我。而其門庭之內。紹述緖餘。惟公在焉。況父祖世交。童穉舊知。同聲同氣。相熟相密。孰有先於公者乎。風霜搖落。艱關相守之意。實有源源毗倚之地。何其一疾不退。而竟爾先着若是耶。牙琴已斷矣。郢質已亡矣。金鰲水石。枕亭風月。只有餘生不盡之悲而已。踽踽凉凉。孰知我悲。 홍문현(洪文玄) 홍우석(洪祐錫, 1843∼?)을 말한다. 자는 문현, 호는 우재(愚齋), 본관은 풍산(豐山)이다. 양빈(楊貧) 한(漢)나라 때 양웅(揚雄)의 가난을 말한다. 양웅은 가난하게 살았는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축빈부(逐貧賦)〉를 지은 바 있다. 한궁(韓窮)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궁함을 말한다. 한유가 궁하여 〈송궁문(送窮文)〉을 지었다. 교한(郊寒)과 도수(島瘦) 맹교(孟郊, 751∼814)의 청한과 가도(賈島)779∼843)의 수척함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제유자옥문(祭柳子玉文)〉에서 "맹교의 시격은 청한하고, 가도의 시격은 수척하다.[郊寒島瘦]"라고 평가하였는데, 이들은 빈한하고 불우한 삶의 풍경을 시에 그대로 담아내었다. 비색함이 형통한 것 《주역》 〈비괘(否卦) 육이(六二)〉에 "대인비형(大人否亨)은 소인(小人)의 무리에게 어지럽혀지지 않는 것이다.[大人否亨, 不亂群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발꿈치가 꾸며짐 《주역》 〈비괘(賁卦) 초구(初九)〉에 "발을 꾸밈이니,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賁其趾, 舍車而徒.]"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봉남옹(鳳南翁) 홍채주(洪埰周, 1834∼1887)를 말한다. 자는 경좌(卿佐), 호는 봉남, 본관은 풍산이다. 저서로는 《봉남집》이 있다. 영질(郢質)이 이미 없어지니 옛적에 영(郢)에 도끼질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의 코끝에다 백토(白土)를 조금 붙여두고 도끼질로 그 백토를 다 깎아내어도 코는 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코를 대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그의 기술을 알기 때문에 안심하고 코를 대주었다. 그 뒤에 그 사람이 죽고 나자 도끼를 던지며, "이제는 나의 바탕이 죽었으니, 어디에 기술을 쓰랴."라고 하였다.《莊子 徐无鬼》 침정(枕亭) 침수정(枕漱亭)을 말한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보리에 있다. 팔우(八愚) 홍경고(洪景古, 1645∼1699)가 17세기 말에 건립하였고, 그의 6세손인 홍채주가 1885년에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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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삼145)에 대한 제문 祭尹亨三文 죽마고우로 백수의 노년까지 상종한 이로는 형 입장에서는 오직 나이고 내 입장에서는 오직 형일 뿐입니다. 전후로 60여 년 동안 한묵(翰墨)의 마당, 문주(文酒)의 자리나 길흉사, 행지(行止)의 의리에 같이 하지 않은 일이 없고 같이 하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그 승화(乘化)146)하는 한 가지 일에도 마땅히 더불어 함께해야 할 것인데 형이 이에 먼저 가기를 이와 같이 급하게 하시는가! 오호 통재라!형의 선공 삼형제와 저의 선친 삼형제는 연세가 모두 80, 70세에 창백한 얼굴 흰머리로 밤낮으로 마주하기를 마치 수양(睢陽)의 오로(五老)147)와 향산(香山)의 구로(九老)148)와 같았으니, 이것은 태평한 시절에 장수 하였던 좋은 기수(氣數)였네. 형과 나는 함께 아롱진 적삼과 색동옷을 입고 달려가 그 곁에서 응대하였네. 이윽고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붙잡을 수 없고 남극성이 빛을 잃자 두 집안의 남은 사람은 모두 부모 잃은 외로운 사람이 되어 서로 덮어주기를 가문 밭의 새싹과 같이 하고 서로 구제해 주기를 수레바퀴에 고인 물속의 물고기 같이 하면서 여생의 계획으로 삼았네. 더구나 이렇게 북풍 불고 눈 내리는 것이 질펀하여 끝날 기약이 없는데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와 손잡고 조만간 함께 돌아가려 하였는데,149) 유명(幽明)으로 작별함이 갑자기 목전에 있어 인생 만사가 모두 허무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나는 올 초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 갔다가 저물녘에 나의 사촌 집에 들어갔는데, 형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나를 데리고 가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가 출발하려 할 때 또 만류하여 이틀 밤을 묵었으니, 어쩌면 형이 돌아가실 날이 장차 임박한 줄 알고서 굳이 머물게 하여 얼굴을 보고서 영결할 계획을 하였던 것인가? 만약 이와 같을 줄 알았다면 아우가 어찌 하루의 시일을 아까워하여 평생의 벗과 영원히 끝나는 작별을 하지 않았겠는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천 권의 책을 쌓아 두고 천 리에 스승을 따라 몸을 닦고 의를 행한 것이 수십 년 이었으니, 그 빼어난 운치는 남에게 추앙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기러기는 아득한 하늘위로 날아가고 매미는 더럽고 탁한 가운데서 허물을 벗어버리듯 하여 원성(元城)의 좋은 명(命)150)과 원우(元祐)의 완인(完人)151)이 되는 것이니, 형은 여기에 대해 또한 유감이 없을 것이네. 구봉(九峯)의 수석과 묵계(墨溪)의 풍월은 백대의 뒤에도 정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니,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어찌 눌와(訥窩) 처사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슬픈 마음 적어 제문을 지어 이렇게 영결을 고하니 영령이여 아실런지요? 以竹馬舊交。而老白首相從。在兄惟我。在我惟兄而已。前後六十餘年。翰墨之場。文酒之席。吉凶之故。行止之義。無事不同。無處不同。則其於乘化一事。亦當與之同之。而兄乃先着若是遽遽耶。嗚呼痛哉。尊先公三昆季。鄙先人三昆季。年皆八十七十。蒼顔白髮。日夕相對。如睢陽之五。香山之九。此是昇平壽域好氣數。兄與我俱以斑衫彩衣。趨走唯喏於其側。旣而西日莫係。南極無光。而兩家餘生。俱俱風樹孤露人。互相芘覆如旱田之苗。互相喣濡如涸轍之鱗。以爲殘生餘日之計。況此北風雨雪。漫無了期。而惠好携手。早晩同歸。豈知幽明去留。遽在目前。而人生萬事。都歸烏有耶。余於歲初。省掃親塋。暮入鄙從家。兄聞之。尋來携去。達夜敍話。其發也。又挽之信宿。豈兄知大限將迫而固留之。爲面訣計耶。若知如此。弟豈悋一日之費。不與平生知舊。爲千古終天之別乎。痛哉痛哉。貯書千卷。從師千里。修身行義數十年。其偉韻逸趣。有以見慕於人者。爲何如耶。鴻飛於冥漠之上。蟬蛻於穢濁之中。而爲元城之好命。元祐之完人者。兄其於此。亦可以無憾矣。九峯水石。墨溪風月。百歲之下。精采可想。人之過之者。豈不曰訥窩處士杖屨之所乎。綴哀緘辭。玆以告訣。靈其知否。 윤형삼(尹亨三):윤자현(尹滋鉉, 1844∼1909)을 말한다. 자는 형삼, 호는 눌와(訥窩),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문인으로, 정의림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눌와유집(訥窩遺集)》이 있다. 승화(乘化) 자연의 조화에 따라 죽는다는 뜻이다. 수양(睢陽)의 오로(五老) 수양(睢陽)은 남경(南京)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상구현(商丘縣) 남쪽의 지명이다. 재상에서 물러난 두연(杜衍)이 80세 때인 송 인종(宋仁宗) 가우(嘉祐) 1년인 1056년 가을에 수양에서 왕환(王渙), 필세장(畢世長), 주관(朱貫), 풍평(馮平)과 오로회(五老會)를 결성하여 시와 술로 서로 즐겼다. 《澠水燕談錄 高逸》 향산(香山)의 구로(九老) 당(唐)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치사한 뒤, 향산에 기거하면서 향산거사(香山居士)라 자칭하고, 호고(胡杲)·길교(吉皎)·정거(鄭據)·유진(劉眞)·노정(盧貞)·장혼(張渾)·이원상(李元爽)·여만(如滿) 등과 함께 모임을 결성하고 향산구로회라고 일컬었다. 《百香山詩集 卷40 香山九老圖幷書》 북풍……하였는데 《시경》 〈패풍(邶風) 북풍(北風)〉에 "북풍이 차갑게 부는 데다 함박눈도 펑펑 내리도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잡고 함께 떠나가리라.[北風其涼, 雨雪其雱. 惠而好我, 攜手同行.]" 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원성(元城)의 좋은 명(命) 원성은 송(宋)나라 유안세(劉安世)의 봉호이다. 그는 사마광(司馬光)의 제자로서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는데 논사(論事)에 강직하기로 유명하였다. 정강(靖康) 1년에 금군(金軍)이 쳐들어와 경사(京師)를 함락시키고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이 북으로 잡혀가는 변이 일어났는데, 유안세는 그보다 1년 앞인 선화(宣和 휘종의 연호) 7년에 죽어서 정강의 변을 당하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宋史 卷345 劉安世列傳》 원우(元祐)의 완인(完人) 원우는 송(宋)나라 철종(哲宗) 때의 연호이고, 완인은 난세(亂世)에도 실절(失節)하지 않고 횡사(橫死)하지 않아서 신명(身命)과 절의(節義)를 지킨 사람을 말한다. 본래는 송 철종(宋哲宗) 원우 연간에 보문각 대제(寶文閣待制)를 지낸 유안세(劉安世)를 가리킨다. 그가 조정에서 쫓겨나 여러 유배지를 거쳐 매주(梅州)에 이배(移配)되었을 때 장돈(章惇), 채변(蔡卞) 등이 하수인을 시켜 그를 죽이려고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면하고 뒤에 풀려났다. 그 후 집에 있는 동안 그의 명망이 더욱 높아지자 당시 한창 권력을 행사하던 양사성(梁師成)이 사자(使者)를 시켜 편지를 보내서 크게 등용하겠다는 뜻으로 달래고 또 자손의 장래를 위하는 계책도 세우도록 권하였다. 유안세가 웃으면서 사절하기를 "내가 만일 자손의 계책을 위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원우의 완인이 되어 지하에 가서 스승 사마광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吾若爲子孫計, 不至是矣. 吾欲爲元祐全人, 見司馬光于地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宋史 劉安世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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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154)에 대한 제문 祭李光彬文 공은 풍골(風骨)과 기격(氣格)의 준수하고 시원함은 실로 속세의 인물이 아니고, 강방(剛方)하고 정직(正直)한 행실과 청결(淸潔)하고 견개(狷介)한 지조는 또 한 무리 군자의 유(儒)가 되기에 족하네. 중년 이후로 종유하여 강론하면서 돌이켜 요약하고 근원을 궁구하여 마음은 날로 열려 시원해지고 행보는 날로 펼쳐지고 넓어져 장차 사문의 희망을 맡기고 후학의 터전이 될 것이 실로 적지 않았네. 이와 같은 선파(璿派)155)의 귀족(貴族)으로 먼 시골에 떠돌며 지내게 되었으니, 그 문벌은 자자한 집안이라 할 수 있고 그 기량은 세상에 쓰일 만 한데도 천진에 맡기고 분수를 미루어 억지로 영위하고 추구하는 것이 없이 손수 농사짓고 몸소 물고기 잡으며 서당을 열고 결사를 맺어 때로 예악을 펼치는 자리에서 시를 읊조리고 산수에 임하여서는 연하(煙霞)의 밖에 마음을 씻어 내었으니, 그 뛰어나고 빼어난 운치와 의표, 맑고 훌륭한 행실과 자취는 실로 보통 사람과 함께 두고 말하지 못할 것이 있네.의림(義林)은 떠돌며 외롭고 괴로워 의지할 곳은 오직 벗들뿐이었는데, 근년 이래 영귀정(詠歸亭)에서 종유하던 동년의 노인들로 문익중(文翊中)156)·박학중(朴學中)157)·김문현(金文見)158)·김보현(金普見)·안순견(安舜見)159)·윤흥서(尹興瑞)160) 등 여러 사람들이 서로 이어서 돌아가시고, 오직 우리 간재(澗齋)만이 우뚝 홀로 살아있어 마치 새벽으로 향하는 별과 같고 가을을 지난 국화 같았네. 적을수록 더욱 귀하고 외로울수록 더욱 친하여 조금 남은 생애 구구하게 의지할 계획으로 삼아 마치 보거(輔車)161)가 서로 기다리고 공거(蛩蚷)가 서로 의지하는 것162) 같이 하려고 하였는데,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고 귀신은 가만히 도와주지 않아 나이 50에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호 통재라!학문의 진전은 아직 힘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고, 강론하며 모이는 규약은 아직 실마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있고, 심성(心性)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분변을 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이 다하지 못한 빚을 가지고 장차 누구에게 설파하겠는가? 또한 묵묵하게 머금고 참아 다만 저승에서 후일의 기약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양호(楊湖)와 음강(陰江), 예성산(禮星山)과 속금산(束金山)은 우리들이 옛날 글을 짓고 술을 마시던 장소가 아니던가. 연운(煙雲)과 수석(水石)은 의연하게 어제와 같은데 함께 유람하며 감상하던 이는 유독 한 사람도 없으니, 인생이 실로 이와 같단 말인가! 눈길 닿고 다니는 곳마다 마음이 상하지 않음이 없네. 거문고 부서지고 줄은 끊어져 만사가 이미 끝났네. 산천이 슬퍼하고 그리하니, 천고에 아득하네. 公風骨氣格。雋茂軒暢。固非俗下人物。而剛方正直之行。淸潔狷介之操。又足以爲一隊君子之儒。中年以來。游從講聚。反約窮源。胸次日以開爽。地步日以展拓。將以寄斯文之望而爲後學之地者。實有不淺。以若璿派貴族。而流落遐荒。其門地可藉矣。其才器可需矣。而任眞推分。無營無求。手把犁鋤。身服漁樵。開塾結社。時以諷詠乎絃俎之場。登山臨水。間以淘暢於煙霞之表。其偉韻遐標。淸裁逸躅。實有非常調人所可同年而語者矣。義林流離孤苦。所賴惟友。比年以來。詠亭游從。年輩耆舊。如文翊中朴學中金文見金普見安舜見尹興瑞諸人。相繼殞逝。惟有我澗齋。屹然獨存。如向晨之星。如經秋之菊。愈少而愈貴。愈孤而愈親。以爲多少餘日區區毗倚之計。如輔車之相須。蛩蚷之相資。誰知天不憖遺。鬼不陰護。而行年五十。遽爾告終耶。嗚呼痛哉。學問進就。尙有未盡力者矣。講聚規約。尙有未盡緖者矣。心性論議。尙有未盡辨者矣。持此未盡之債。其將向誰而說破耶。抑默默含忍。直待泉臺後日之期耶。楊湖陰江禮星束金。其非吾輩疇昔文酒之場耶。烟雲水石。依然如昨。而所與遊賞者。獨無一人焉。人生固如是耶。觸目經行。無非傷心。琴破絃斷。萬事己已。山哀浦思。千古悠悠。 이광빈(李光彬):이기백(李琪白, 1854∼?)이다. 자는 광빈, 호는 간재(澗齋),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선파(璿派) 전주 이씨(全州李氏) 왕실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宗派)를 이른다. 문익중(文翊中) 문봉환(文鳳煥, 1849∼1890)을 말한다. 박학중(朴學中)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을 말한다. 김문현(金文見) 김규원(金奎源, 1852∼?)을 말한다. 자는 문현, 호는 근재(謹齋),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안순견(安舜見) 안국정(安國禎, 1854∼1898)을 말한다. 윤흥서(尹興瑞) 윤자선(尹滋宣, 1852∼?)을 말한다. 자는 흥서, 호는 남계(藍溪),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보거(輔車) 서로 긴밀히 의지하는 관계를 비유한 말이다. 공거(蛩蚷)가……것 공은 공공(蛩蛩)이고 거는 거허(蚷虛)인데, 전설상의 두 짐승의 이름이다. 늘 같이 따라 다닌다고 하여 교분이 두터운 친한 관계를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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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장에 대한 제문 祭李應長文 영남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추로(鄒魯)173)라 일컬어져 근세 이래로 노성하고 덕 있는 분들이 이어져 빛났으니, 군은 그들과 동일한 부류의 한 무리 사람이 아니겠는가.소년 때부터 뛰어난 재주로 기상이 우뚝해 범상치 않았고, 문로가 이미 발라 앞길이 바야흐로 펼쳐지게 되었네. 종산(鍾山)에 가을 비 내리고 영귀정에 봄바람 불면 천 리에서 서로 찾아와 정답게 창수하였고, 쌍계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나 난리를 만나 이루지 못하여 난리가 고요해지기를 기다려 다시 끊임없이 왕래하기를 바랐는데, 조금 더 머물러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실 줄 어찌 알았겠는가. 친구들은 돌아가시고 시국의 상황은 날로 심해지니 외로이 벗들을 떠나 쓸쓸히 지내는 나는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옻칠은 벗겨지고 아교는 떨어지며, 거문고는 부서지고 줄은 끊어져174) 영남의 달과 호남의 구름이 천고에 아득해 졌네. 인하여 들어와 제사 드리며 감히 이것으로 영결을 고하네. 嶠南古稱東方鄒魯。而近世以來。老成宿德。繼以彬彬焉。君其非流亞一隊人耶。少年英才。磊落不群。門路旣正。步趨方張。鍾山秋雨。詠亭春風。千里相尋。唱酬款款。雙溪留約。遘亂未就。冀待風靜。復圖源源。豈知不少留待而遽爾大歸耶。知舊凋落。時象日甚。煢煢離索。誰與爲徒。漆分膠折。琴破絃斷。嶺月湖雲。千古茫茫。因人致侑。敢此告訣。 추로(鄒魯) 추(鄒)와 노(魯)는 모두 춘추 시대의 국명(國名)으로,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맹자는 추나라에서 태어났다. 이 때문에 예교(禮敎)와 학문을 숭상하는 지방을 일컫게 되었다. 옻칠은……끊어져 교칠(膠漆)처럼 친밀한 사이와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를 인용한 말이다. 교칠은 후한(後漢)의 진중(陳重)과 뇌의(雷義)가 돈독한 우정을 발휘하자, 사람들이 "교칠이 굳다고 하지만, 진중과 뇌의의 우정만은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라고 한 것이고, 백아절현은 춘추 시대의 백아(伯牙)가 거문고를 잘 탔는데,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거문고 소리를 잘 감상하였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서 고산(高山)에 뜻을 두면 종자기가 "높고 높기가 마치 태산과 같도다![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고, 또 유수(流水)에 뜻을 두면 "넓고 넓기가 마치 강하와 같도다![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는데,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다 하여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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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견【규원】에게 답함 答金文見【奎源】 이보다 앞서 인편이 출발하였는데 모두 화급(火急)하여 단지 한 폭의 편지만 써서 여러 형이 돌아가면서 보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비록 소략하기는 하지만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뜻밖에 여러 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각각 수백언(數百言)이나 되었습니다. 펼쳐 본 뒤 부지런함과 태만함이 서로 현격한 것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저에 대한 칭찬이 실제보다 지나치니 어찌 아우에게 그런 면이 있겠습니까. 한마디 말로 백대(百代)를 넘어 서로 감동하는 자가 있건만 하물며 한 시대를 함께 하면서 두 차례나 편지를 주고받은 경우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아우가 어찌 다시 훈계를 할 만한 사람이겠습니까. 세상에는 자연히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춘 대가가 있을 것입니다. 등잔을 밝히고 새벽을 잇는다는 것은 전한 사람의 망녕된 말입니다. 예전에 익힌 학업은 기억하지 못하고 새로운 지식은 이어지지 않고 그저 오래도록 세월만 허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함양(涵養) 운운하신 것은 온당하지 못한 듯합니다. 대체로 공부(功夫)는 동(動)과 정(靜)을 통합하여 말하는 것이지 적연부동(寂然不動) 한쪽만 가리켜서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공부에는 본래 존심 양성(存心養性)의 때, 궁리 격물(窮理格物)의 때, 성찰(省察)의 때가 있어 적연부동만으로 이 마음의 이치를 밝힐 수 없습니다. 또 적연부동에만 의지하면서 응접(應接)이 저절로 적절해지기를 바랄 수도 없습니다. 만약 이 말과 같다면 아마도 이보새(伊蒲塞)의 기미와 서로 멀지 않을 것16)16) 이보새(伊蒲塞)의……것:불교의 학설에 가깝게 된다는 말이다. 이보새는 범어 upāsaka의 음역으로, 오계(五戒)를 받은 재가 남자 불교 신도를 말한다. 우바새(優婆塞)라고도 하며 근사남(近事男), 근선남(近善男), 청신남(淸信男), 청신사(淸信士) 등으로 의역된다.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함양은 본래 학문의 본령입니다. 그러나 또한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분을 부라려서 분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고 실심(實心)으로 실천하여 날이 쌓이고 달이 거듭된 다음에야 공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前此便發。擧皆火急。只擧一幅書。爲僉兄輪照計。雖涉草草。而其於力不及何哉。料外得僉兄書。各具數百言。披玩以還。甚愧勤慢之相懸也。吹噓過實。弟豈有是耶。以片言單辭。而有曠百世相感者。況竝一世而有再度往復耶。更加藥石。弟豈其人乎。天下自有一副大方可以當之者。焚油繼晷。傳之者妄也。舊業不記。新知無繼。只是悠悠玩愒而已。涵養云云。恐未穩。大抵功夫。是統動靜說。非但指寂然不動一邊說。且功夫固有存養時。有窮格時。有省察時。不可專以寂然不動。而明此心之理也。又不可專靠寂然不動。而欲應接之自得其宜也。若如此說。則與伊蒲塞氣味。恐不相遠。豈不可懼。涵養固爲學問之本領。然亦非撑眉努眼所可辦。必讀書窮理。實心踐履。日積月累而後。可以見功。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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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5 卷之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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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의 자에 대한 설 鄭元卿字說 원(元)은 모든 선(善) 가운데 으뜸이다.124) 하늘에 있어서는 큰 시작의 뜻[義]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음을 온전히 하는 덕이다. 이것은 모든 변화의 중심이고 만물의 시초이며 무극(無極)의 은미함에 근원을 두고 천지 사이를 가득 채우고 마음의 은밀한 곳에 쌓여서 사물의 밖에 드러난다. 공자(孔子)가 이른 천지의 큰 덕125)이고 맹자(孟子)가 이른 하늘의 높은 작위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126)이다. 책을 읽고 경적(經籍)을 연찬(硏鑽)하는 것은 이 이치를 분명히 하기 위함이고, 놓친 마음을 수습하고 마음을 일깨우는 것은 이 마음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이치가 분명하면 취사(取捨)가 어긋나지 않고 마음이 보존되면 운용(運用)이 어지럽지 않다. 오랜 시일에 걸쳐 익숙해지고 중간에 끊이는 일이 없다면 하늘이 부여한 큰 덕과 높은 지위가 나에게 다시 온전할 수 있다.정군 현춘(鄭君鉉春) 원경(元卿)은 애산옹(艾山翁 정재규(鄭載圭))의 맏아들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초례(醮禮)를 치르고 이름을 지을 때 '춘(春)' 자로 이름을 정하고 '원(元)' 자로 자(字)를 지은 것은 커다란 의리(義理)와 커다란 부담을 자신의 임무로 책임 지우고자 함이었다. 무궁한 애정과 면려의 뜻이 참으로 이와 같았다. 내가 비록 불초(不肖)하더라도 또한 그의 아버지와 벗인 사람이다. 연연(戀戀)하는 정이 아들을 보는 것과 같은 입장에서 유독 그 뜻을 밝혀주어 만에 하나라도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경은 밤낮으로 경계(警戒)하여 명명(命名)한 이 뜻을 저버리지 말라. 元者善之長也。在天爲大始之義在人爲全心之德。此是萬化之機軸。品彙之權輿。原乎無極之微。而塞乎天地之間。蘊乎方寸之密。而著乎事物之表。孔子所謂天地之大德。孟子所謂天之尊爵。人之安宅。讀書窮經。所以明此理也。收放喚惺。所以存此心也。理明而取舍不差。心存而運用不亂。久久積習。無容間斷。則天之所以賦畀者。大德尊爵。可以復全於我矣。鄭君鉉春元卿。艾山翁主器也。竊念其設醮而肇錫也。名之以春。字之以元。使大義理大擔負。責之爲己任。其無窮愛勉之意。固應如此。余雖無似。亦其父友之一也。戀戀視猶之地。獨不爲之發明其義以爲萬一之助乎。惟元卿夙夜惕厲。毋負此命名之義焉。 원(元)은……으뜸이다 《주역(周易)》 〈건괘 문언(乾卦文言)〉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의 대덕(大德)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지위라 한다."라고 하였다. 하늘의……편안한 집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인은 하늘의 높은 작위이고 사람의 편안한 집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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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실의 자에 대한 설 朴元實字說 정(鼎)이라는 그릇은, 귀[耳]는 양의(兩儀 음양(陰陽))를 본뜨고 발[足]은 삼덕(三德)132)을 본떴으며 몸체는 오행(五行)을 두루 갖추고 담긴 물건은 구주(九州)에 응하고 바탕은 금옥(金玉)의 자질을 갖추었으며 의리는 화덕(火德)과 풍덕(風德)을 나타낸다. 성인(聖人)이 만들고 종자(宗子)가 주관하니, 이것은 그릇 가운데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안에 채우고 있는 것이 조강(糟糠 지게미나 쌀겨), 소려(蔬糲 궂은쌀로 지은 밥) 같이 추잡하고 열악한 물건이라면 저구(苴屨 풀로 엮은 신발)에 장보(章甫)를 갖추고 토우(土偶 흙으로 빚은 인형)에 화려한 예복(禮服)을 입히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모름지기 명자(明粢)와 향기(香萁)133)로 밥을 짓고 양[柔毛]과 돼지[剛鬣]로 음식을 마련하고 다섯 가지 훈채(葷菜)와 여덟 가지의 조리법으로 맛을 조절한 다음에야 《주역(周易)》에 나오는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134)는 뜻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법상(法象)을 갖춘 지극히 귀한 기물(器物)에 이렇게 진귀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음식을 담으면 장차 천신 지기(天神地祇)에게 바치고 종묘에 제사를 지내 상제(上帝)와 선왕(先王)을 흠향하며, 흠향하여 드신 뒤의 은택이 천하에 미치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주역》에서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라는 말 다음에 "가는 곳을 삼가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 까닭이다.아, 사람의 몸은 정(鼎)이라는 기물이며 도덕과 재업(才業)은 그 내용물이며, 군주의 신임을 얻고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히는 것은 가는 곳이다. 박군(朴君)은 그것을 아는가? 박군 정현(朴君鼎鉉)이 원실(元實)을 자(字)로 삼았으니 그 뜻을 대체로 여기에서 취하였지만 나아가는 곳을 삼가는 뜻에 대해서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서 삼가 이 내용을 적어 보충한다. 힘쓰거라! 鼎之爲器也。耳象兩儀。足象三德。體周五行。物應九州。質具金玉。義著火風。聖人制之。宗子主之。此器之貴重者也。然其實於中者。若有糟糠蔬糲鹿雜劣惡之物。則其不類於章甫之苴屨。華袞之土偶乎。須以明粢香萁。供其炊爨。柔毛剛鬣。具其烹飪。五葷八珍。調其旨否。然後可以副羲經鼎有實之義也。以此法象至貴之器。具此珍重至美之饍。則將以薦之郊社。奠之宗廟。以享上帝先王。而其餕餘之澤。足以及於天下矣。此羲經所以鼎有實之下。有愼所之之語也。嗚呼。人之身。其鼎器也。道德才業。有其實也。得君澤民。其所之也。朴君知之乎。朴君鼎鉉表德以元實。其意蓋取諸此。而於愼所之之義有不及。故謹書此以足之。勉旃勉旃。 삼덕(三德) 정직(正直), 강극(剛克), 유극(柔克)을 이른다. 《서경》 〈홍범(洪範)〉에 "삼덕은 첫 번째는 정직함이요, 두 번째는 강으로 다스림이요, 세 번째는 유로 다스림이다."라고 하였는데, 채침(蔡沈)의 주(註)에 "강극(剛克)과 유극(柔克)은 위엄을 보이고 복을 주며, 주고 빼앗으며, 억제하고 드날리며, 올리고 물리치는 쓰임이다."라고 하였다. 명자(明粢)와 향기(香萁) 명자(明粢)는 종묘(宗廟)의 제사에 바치는 깨끗한 기장이고, 향기(香萁)는 제사에 쓰이는 기장이다. 《禮記 曲禮 下》 《周禮 春官 大祝》 정(鼎)에 음식이 담겨있다 《주역》 정괘(鼎卦) 구이(九二)의 효사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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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辭(11) 文成公安裕字士蘊號晦軒順興人密直副使孚子高宗癸卯生自幼不妄言笑旣長好學文章夙就元宗庚申登文科忠烈王戊寅累遷至國子司業至是累經兵燹學校頹敗襌佛熾昌士不知學儒風不振先生獨慨然作詩曰香燈處處皆祈佛簫管家家盡祀神獨有數間夫子廟滿庭春草寂無人己丑以儒學提學從王如元過萬里長城有賦詩時朱子書未及盛行先生在元始得見之心自篤好知爲孔門正脈手錄其書摹寫孔朱眞像而歸築精舍於居第後奉安二夫子眞像朝夕瞻謁以寓景慕嘗曰晦菴功足以配仲尼欲學仲尼先學晦菴仍號晦軒忠宣王尙元公主元主徵王入朝先生以修文殿太學士從往留燕京謁文廟學官問東國有聖廟耶曰我國文物祀典一遵華制豈無聖廟耶仍辨論性理實合於朱子說學官等敬歎曰此東方朱晦菴也歸陞中贊元學官差使來請謁文廟時國子監累經兵火只餘數間屋禮官乃指先生宅後精舍謂聖廟引詣展謁元使以殿宇陜隘失伴宮制度勸王新之乃先生卽獻宅移居納土田臧獲百口以供學徒請令百官各出銀布歸養賢庠爲敎育之資送博士金文鼎于江南奉先聖及七十子像具祭器樂器六經諸子史朱子新書以來忠烈王丙午卒年六十四諡文成公忠肅王己未從祀文廟事見晦軒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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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山處士號說 大成學院湖南元玉果立面霽月之坊有遺逸之士卽朴公政鎭是也公生而慧敏頗有慷慨之志隨時靜坐不遊群兒及長就傳課工問義辨理好古尙新先生長者嘗稱之往在壬午軍擾後謝絶名途遂築室于鶴山之下鶉江之上有時乎以詩酒鳴於其間春秋霜露追慕其親歌詠風樹之懷伴麋鹿呼白鷗晝荷鎌夜讀書潛心醫卜施惠及人兼究養生之術愛人如己接物思義能知所止非禮不動其志則淸似白鶴其心則堅如泰山安逸之狀一如處士鄕里景仰噫古之人一有善事偉蹟必號其人別稱之今以朴公高爽之志趣尙無別稱云故本院依倣古人之例以學山爲號贈與之使爲之傳於後日之無窮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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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庵說 詩山許基洪湖之南下雪山許基洪痴獃無似三字擔不起而敢號爲竊惟吾先子講道林樊罏鞴南士從學者衆舍不能容鈔古今格論揭之壁間以備時警而書誠愼二字以授不肖受而尊之不啻懷簡書紳之比然事親而孝未學也友兄弟而愛未學也居處而恭未學也執事而敬未學也處朋友而信未學也乃將誠愼二字誠以字之愼而號之呼之答之庶幾警惕而收諸桑楡之景年邁神散終未免小人之歸虛負先子敎導之勤意午夜思惟不覺涕零如雨只書揭楣之意如右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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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常春齋申公墓碣銘【幷序】 竹溪安塑雪山申君彦繩以樂善嗜學早聞于鄕坊今亦老矣一日齎其曾大父遺事狀索麗牲之刻余辭不敢且曰塑於尊先子幷世而闕納拜之雅雖繞庭幾月安能得安且成三字雖然君之忠信必不以一髭不似誣先子於別人其可終已據狀而撮之曰公諱梃字德化常春齋扁也平山氏以高麗太師壯節公諱崇謙爲太祖入 本朝左議政文僖公寅齋槩貞淸公龜峯命仁功存君國史乘足徵是於公間十五世十二世曰大貞號南下曰綱號正齋其曾大父及大父也父義瀗號桑圃娶光山金嘉善相來女以 仁陵壬辰生公天質英悟甫就傳長者有叩輒解要義早治功令旣而廢擧曰與其覬儻來以榮親曷若盡職於志體之養之爲切近也及長行修于苟庵申文敬公之門先生以宗族之恩兼師弟之義獎與期勉逈出尋常公服膺弗失之所與從遊者崔勉庵益鉉田艮齋愚申陽園箕善申農山得求皆當世名碩也晩而築室于所居里後橫經講道苟以是心至者受之不辭公雅不喜著述卽有之旋卽削藁曰無補闕於有無而用是蘄傳後者陋矣嘗値丙戌大無傾囷儲以賑宗戚流丐儲竭則斥庄以繼之黔敖之爲食於路晏嬰之待以擧火岡俾專美此莫非孝慈之推也公內行純篤居二艱一遵禮制毁則逾之祭致如在踰耋而灌獻未嘗代以子弟恤匱周急槩由誠心而力絀於婚葬者隨分優助俾無愆期公以七十五齡之丙午七月四日考終墓在玉果縣東北虎谷負坤原配玉川趙氏通政奭祥其考三男夏熙商熙周熙三女行盧鎰壽金珍鉉安英燮長房男采均源均奭均寶均女沈圭澤次房男澤均季房男命均順均女羅炯集金瀅斗彦繩寔采均長男曾以下蕃衍不盡名遂爲之銘曰常春一齋宜若小然苟翁錫嘉艮公題顔農山有記不啻自口是亦三絶公優不朽如余人文江湖雙鳧其集其飛焉能有無故述不作非曰揄揚矧敢諛墓君子攸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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