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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록 日誌錄 내 나이가 올해로 44살이다. 이 나이는 옛사람이 말한 불혹(不惑)과 지명(知命)의 시기15)이건만 학문은 더 진전되지 못하고 마음은 더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무지하고 어리석기가 곧 당시 동몽(童蒙) 시절의 우매한 식견일 뿐이다. 그러나 정신(精神)과 기백(氣魄)으로 말하자면 날이 갈수록 쇠퇴하여 예전과 어느덧 너무도 달라졌다. 생각하면 슬픈 탄식만 나올 뿐이니 이번 생을 어찌할까? 다만 평생에 걸친 학업을 늙은 나이에 이르러 바꿀 수도 없으니 그저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뒤늦게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지만, 보고 들은 것을 앞뒤로 잊어버리고 놓쳐서 이해하여 무젖어 들 연고가 없다. 이에 조그만 책자 하나를 마련해 놓고 하루 중에 있었던 응대와 사색을 통한 모든 깨달음을 손이 가는 대로 간단하게 기록하여 한편으로는 온고(溫故)의 계책으로 삼고 한편으로는 취정(就正)16)의 자료로 삼는다.음양(陰陽)의 대대(對待)는 교역(交易)이고 유행(流行)은 변역(變易)이다.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유행 변역(流行變易)을 위주로 말을 하였지만 변역의 기(氣)는 곧 대대 교역(對待交易)의 기이다.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성(性)에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있을 뿐이지 어찌 효제(孝弟)가 있겠는가."17)라고 하였다. 이 말에 근거하면 성(性)에는 효제(孝弟)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 넷의 이면에는 세세한 조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행(五行)에서 목(木)을 말하면 송(松), 백(柏), 상(橡), 장(樟)이 모두 그 이면에 포함되어 있고 수(水)를 말하면 강(江), 회(淮), 하(河), 한(漢)이 모두 그 안에 포함되는 것과 같다.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몸에 가득찬 것이 측은(惻隱)하게 여기는 마음이다."18)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천지 만물이 일체(一體)임을 깨달은 것이 가장 적확하고 확실하다. 만약 몸[腔子] 밖에서 찾는다면 끝없이 광대하여 교섭(交涉)이 없다고 하였다. 사욕(私欲)이 전혀 남아있지 않고 생리(生理, 생생지리(生生之理))19)가 완전하면 미발(未發)일 때는 천지와 동체(同體)이고 이발(已發)일 때는 천지와 동류(同流)한다. 이른바 "공정하면 하나가 된다."20)라거나 "조용한 가운데 만물을 보면 모두 봄의 뜻을 지니고 있다."21)라는 것도 이러한 뜻이다.태극(太極)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하늘의 측면에서는 온갖 이치를 일컫는 총명(總名)이지만 사람의 측면에서는 온갖 선(善)의 총체(總體)이다.음양(陰陽)이라는 양단이 비록 만 가지로 변화하지만 생리(生理)가 두루 흐르지 않는 경우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용은 쟁기, 질그릇, 병기, 문서 따위일지라도 생리(生理)에 필요한 도구가 아닌 것이 없다."명(命)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22) 이 구절에서 '명(命)' 자는 기수(氣數)23)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결같이 천리(天理)를 따르고 인위(人爲)를 범하는 일이 없으며, 길흉과 영욕(榮辱)의 도래에 터럭만큼도 스스로 취함24)이 없는 다음에야 명(命)에 맡길 수 있다. 이것을 안다면 이로움을 보고도 이로움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해로움을 보고도 해로움을 피하지 않으며 오직 의리(義理)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니 어찌 군자가 되지 않겠는가."천하의 한 가운데에 서서 사해(四海)의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을 군자는 즐기지만,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25) 본성으로 여기는 것이 이미 여기에 있지 않다면 유독 다른 곳에 있겠는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천만인이 모두 같지만 지분(地分 지위(地位))은 천만인이 모두 다르다. 같지 않기 때문에 본성으로 여기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같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또 저마다 행해야 하는 도리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부족하고 저것은 풍족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어찌 굳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바라겠는가.유기(游氣)26)는 어떤 기(氣)인가? 천지 음양의 기를 중심으로 삼으면 만물이 유기가 되고 본체(本體)의 기를 중심으로 삼으면 음양이 유기가 된다.사악함을 막아내면 성(誠)이 저절로 보존되는 것이지27) 사악함을 막아내는 것 외에 별도로 성(誠)을 보존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또한 그러하다. 다만 선(善)으로 옮겨 가는 것,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본래 두 가지 일이다. 대체로 마음에서 발(發)하는 것은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두 가지일 뿐이다. 천리가 아니면 곧 인욕이고 인욕이 아니면 곧 천리일 뿐, 이 둘이 서로 대치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일에 응하는 것에는 선한 것이 있고 잘못한 것이 있어 만 가지로 다르다.주자(朱子)의 〈답여자약서(答呂子約書)〉에 이르기를,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 '솔개는 날아 하늘에 다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라고 논한 것은 의미가 또한 매우 합당합니다. 이것이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안 뒤 다시 마음을 비우고 뜻을 넉넉하게 하며, 생각을 바꾸어 비교하거나 헤아리지 말고 밖으로 향하여 뭇 이치를 널리 살피고 더욱 북돋아 준다면 뿌리는 매우 단단해지고 가지와 잎은 더욱 무성할 것이다. 정좌한 곳에서만 탐구한다면 도리어 미리 기대하고 마음에서 잊으며 조장(助長)하는 병통28)을 벗어나지 못할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내 병에 들어맞는 것이 증상에 따라 조제(調劑)를 하는 듯하니, 천 년이 지난 뒤를 기다려 준비한 듯하였다. 여러 번 읽으려니 비통한 마음이 들어 이 말의 의미를 늦게 깨달은 것이 더욱 한스럽다.인욕(人欲)의 해로움은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질(氣質)의 치우침[偏]이고, 둘째는 눈과 귀의 가림[蔽]이고, 셋째는 외물(外物)과 자신의 구별[形]이다. 나약하고 혼란스러우며 포악하고 경박한 것이 기질의 치우침이다. 탐욕과 인색에 빠져 경영에 골몰하는 것이 눈과 귀의 가림이다. 남을 시기(猜忌)하고 각박하게 대하며 잔인(殘忍)하게 구는 것, 교만하게 굴다 부끄러움에 위축되는 것이 외물과 자신의 구별이다. 이 세 가지가 거듭거듭 반복하여 더욱 심각하게 서로를 거들어 준다. 그러나 기질의 치우침이 그 본령이기 때문에 옛사람은 기질의 변화를 말하였다.마음에 편협한 바가 있으면 넓고 큰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허위가 있으면 진실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게으르고 산만한 바가 있으면 엄숙하고 장중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사곡한 바가 있으면 정직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한다. 하루하루가 이와 같아서 선(善)을 행하는 힘이 앞서 말한 것들을 이기기에 충분한 다음에야 진전이 있을 수 있다.정자(程子)는 "성(性)에 어찌 일찍이 효제(孝弟)가 있었는가."29)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효제는 사람을 기다려 배정(排定)되는 사물인가? 그렇지 않다. 본성으로 여기는 것30) 안에는 천리(天理)가 온전히 갖추어지며 이 이치가 부모에게 베풀어지면 효(孝)라고 하고, 군주에게 베풀어지면 의(義)라고 하고, 연장자에게 베풀어지면 제(弟)라고 한다.다만 성(性)은 만물(萬物)의 일원(一原)이고 효제(孝弟)는 사람의 직분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원(一原)이라는 측면에서 효제라는 명칭을 덧붙일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효제의 이치가 본래 일원(一原)에 달려 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되고 군주와 신하가 되고 형이나 연장자가 되는 까닭은 일원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라고. "아버지와 아들, 군주와 신하, 형과 어른은 기(氣)이기 때문에 본래 일원(一原)에 있지 않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되고 군주와 신하가 되고 형과 어른이 되는 까닭은 이미 일원 안에 있다."라고.일본(一本)은 본래 천명의 전체(全體)이고 만수(萬殊)는 천명의 유행(流行)이다. 그렇다면 만수(萬殊)는 과연 기(氣)로 말미암아 있는 것인가?일설에 따르면 궁리(窮理)의 도에는 소당연(所當然)과 소이연(所以然)이 있다. 소당연(所當然)은 아버지의 자애로움, 아들의 효성스러움 같은 것이고 소이연(所以然)은 자애로움과 효성스러움이 비롯된 곳이니 곧 천명의 성(性)이다. 일설에 따르면 소당연은 본래 아버지의 자애로움, 아들의 효성스러움이고 소이연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자애롭고 효성스러워야 하는 이유이다. 두 가지 설이 어떤지 모르겠다.내가 말한다. 궁리(窮理)의 도는 본래 일단(一端)이 아니다. 이치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고 사물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으며 일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다. 자애로움과 효성스러움에서 궁구하는 것은 이치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고,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궁구하는 것은 사물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고,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아들의 효성스러움에서 보는 것은 일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만수(萬殊)에서 일본(一本)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얼마나 많은 곡절이 있는가. 이러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만수(萬殊)에 이른다. 만수(萬殊)의 소이(所以)는 이러한 곡절이 있는 것에서 말미암기 때문에 일본(一本)임을 알게 된다. 이치에 나아가 궁구한다면 소이연(所以然)이 정말 일본처(一本處)이다. 사물에 나아가 궁구한다면 곡절이 다름을 아는 것이 일본에 나아가는 방법이다.전에 〈태극도설(太極圖說)〉을 보니 "동(動)이 극에 달하면 정(靜)하게 되고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었다. 혼자 생각하기를 이것은 유행(流行)이라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고 대대(對待)의 체(體)가 아니라고 여겼다. 얼마 지나 생각해보니 '동(動)하고[動而]', '정(靜)하고[靜而]'라는 것은 유행(流行)의 용(用)이고 소자(邵子 소옹(邵雍))가 이르는 "용(用)은 천지보다 먼저 일어났다."31)라는 것이었다. '양(陽)을 낳고[生陽]', '음(陰)을 낳는다[生陰]'32)라는 것은 대대(對待)의 체(體)이고 소자가 이른 "체(體)는 천지보다 나중에 확립되었다."33)는 것이었다. 다만 한번 동(動)하고 한번 정(靜)하는 용(用)이 천지보다 앞서 일어나서 천지의 뒤에서 유행하는 것이지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뉜 이후에 유행하는 별도의 기(氣)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한다."라고 한다.이 몸은 나의 사유물이 아니다. 무릇 일신(一身)의 시청(視聽), 행보(行步), 의식(衣食), 어묵(語黙)은 천기(天機)가 아닌 것이 없지만 터럭만큼의 사의(私意)가 개입하게 되면 그것은 천칙(天則)이 아니다.기축년(1889, 고종26) 봄, 관산(冠山)의 사문(斯文)인 치운(穉雲) 위용규(魏龍奎)가 벽산 서사(碧山書舍)에서 나와 종유(從遊)하였다. 하루는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뜻에 대해서 강론을 하였는데 치운(穉雲)이 말하기를, "예전에 남파(南坡) 이장(李丈)34)이 노사 선생(蘆沙先生)과 이 뜻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남파가 한 쌍의 부부가 내외에 거처하는 뜻을 가지고 말하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이것은 부부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정해진 짝이 있어 문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부에게 분별이 있는 다음에 부자간이 가까워진다.」35)라고 하고 또 「금수(禽獸)가 어미가 있음은 알지만, 아비가 있음을 모르는 것은 부부의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36)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여태까지 나도 유별(有別)의 뜻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남파의 견해와 같았기에 이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실의(失意)에 빠졌다. 만약 한 쌍의 부부가 함께 지내는 뜻으로 말하자면 반드시 "부부 사이에는 은혜가 있다."라고 해야지 다만 "부분 간에는 분별이 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정해진 짝이 있어 어지럽히지 않는다."라는 것은 진실로 정당한 도리이고 "한 쌍의 부부가 내외에 거처하는 것"은 단지 그 안에 포함된 세세한 조리이다. 아, 선생을 모시던 날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것을 선생이 돌아가시고 십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듣게 되었으니 이것이 모여서 강론하는 즐거움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돕는 것과 잊는 것은 항상 서로 의존한다. 잊기 때문에 돕고 돕기 때문에 잊는다. 잊지 않는다면 어찌 돕는 일이 있겠으며, 돕지 않는다면 어찌 잊는 일이 있겠는가. 모름지기 잊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않는37) 사이가 곧 본심(本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경립(景立 박준기(朴準基)의 자)이 말하기를, "허다한 조리를 어찌 늘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일에 응할 때 또 어찌 유의하여 안배(安排)할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맑은 거울이 사물을 비추지만, 만상(萬象)이 늘 거울 안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만 먼지와 때를 닦아내어 깨끗하고 선명하여 막힘이 없이 두루 비추게 한다면 사물이 비록 이르지 않더라도 만상(萬象)이 여기에 잠겨있지 않다고 이를 수 없다. 어떤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 주장이 진실로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울을 닦는 방법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실천에 공력을 들이는 쪽으로 향하지 않고 그저 두 눈을 부라리고 벽을 향한 채 심성(心性)만 관찰한다면 반드시 텅 비고 적막한 곳으로 들어갈 것이다.요컨대 사려(思慮)를 멈춰야 곧 다소간의 사려가 있게 된다. 장중함과 경건함으로 지키고 기르는 것38)이 가장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요긴한 일이다.묻건대, 격물(格物)의 도에는 소당연(所當然)도 있고 소이연(所以然)도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대답한다. "발의 모습은 진중해야 한다[足容重]39)고 말한다면 발은 땅이다. 일신(一身)의 아래에서 허다한 것들을 떠받드니 그 모습이 진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소이연이다. 단정함과 침착함, 경솔하거나 성급하지 않은 것, 이것이 소당연이다. 또 잰걸음으로 갈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서 있을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나아가고 물러날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부모 앞에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군주 앞에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이 '족용중(足容重)' 안에 있는 세세한 조리이고, 또한 각각의 소이연이 없는 경우가 없다."인(仁)은 애초에 자연적으로 부여받아 본디 존재하는 것이지 천지 만물이 일체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생(生生)40)과 지애(至愛)의 이치가 있기만 하면 곧 천지 만물은 저절로 일체가 되니, 한 개의 종자(種子)가 생생(生生)의 이치를 지니고 있어 수많은 천 개의 가지 만 개의 잎새가 돋는 이치가 저절로 완비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인(仁)하기 때문에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 시용처(施用處)로 말하자면 이 또한 일체이기에 인(仁)하다고 이를 수 있다. 생생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부자의 분변이 있고 부자가 일체(一體)이기 때문에 자애(慈愛)와 효성(孝誠)의 도리가 있다. 지난해 계원(繼元)41)과 이 뜻을 논의하느라 서신을 꽤 많이 주고받아 소소한 결론이 없지 않았다.먼저 일상의 사물을 가지고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대해 사색을 하고 눈앞 가까운 곳에서 천리(天理)가 유행하는 것을 본 다음에야 비로소 근거로 삼아 지키는 곳이 있게 된다. 만약 그저 고묘(高妙)한 곳을 향해서 성(性)을 말하고 이(理)를 말한다면 전혀 손에 잡히는 것이 없게 된다.사(邪)와 정(正)은 본래 병립하지 않고 공(公)과 사(私)는 본래 병행하지 않는다. 날마다 대공지정(大公至正)한 이치를 보고 날마다 대공지정한 영역으로 나아간다면 자질구레한 편벽함이나 사특함은 저절로 용납될 곳이 없게 된다.몸가짐이 반듯한 다음에 예의(禮義)가 행해진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는 것42)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일신(一身)은 태극(太極)의 상(象)이고 형기(形氣)는 음양(陰陽)의 상이다. 기혈(氣血)과 골육(骨肉)은 오행(五行)의 상이고 백해(百骸)와 만규(萬竅)43)는 만물(萬物)의 상이다.허공에 매달린 이치가 없으므로 일찍이 별도로 통체(統體)로서의 태극도 있었던 적이 없다. 다만 양(陽)의 입장에서 하나의 태극이 되고, 음(陰)의 입장에서 하나의 태극이 되고, 오행(五行)의 입장에서 또한 각각 하나의 태극이고, 만물(萬物)의 입장에서 또한 각각 하나의 태극이며, 음양ㆍ오행ㆍ만물을 합쳐 통체의 태극이 된다. 그러나 통체의 태극은 각구(各具)44)의 태극보다 많지 않고 각구의 태극은 통체의 태극보다 적지 않다. 이는 각구 안에 절로 통체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하늘은 만물에 대해서 사물 하나하나를 조각(雕刻)하지 않는다. 또한 아득히 만물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다. 천지 만물은 단지 일체(一體)이고 다시 분별이 없으니, 사람의 일신 사체(一身四體)에 생리(生理)가 두루 돌면서 서로 관여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성선(性善)을 분명히 하고 충신(忠信)을 주로 하는 것, 이것은 "먼저 그 대체(大體 心)를 확립한다."45)고 하는 것이니, 선유(先儒)가 긴요하게 사람들을 위해 말해준 것이다. 학문을 하는 도가 어찌 이것보다 더하겠는가. 이것이 《대학(大學)》이 초학자가 덕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까닭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불성무물(不誠無物)46) 4자를 자세히 완미하고 탐구해야 한다.사심(私心)이 사라지면 동정(動靜), 어묵(語黙)이 모두 천기(天機)이다. 장자(莊子)가 이른 "기욕(嗜欲)이 깊은 사람은 천기(天機)가 낮다."47)라는 말도 이러한 의미이다.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정(正)을 중(中)에 짝지어 놓으면 중(中)이 중요하고, 의(義)를 인(仁)에 짝지어 놓으면 인(仁)이 근본이 된다.……"48)라고 하였다. 정(靜)을 위주로 한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주정(主靜)의 설로 보자면 정(正)과 의(義)가 주가 될 듯하건만 주자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은 어째서인가? 대체로 음양(陰陽)이 서로 뿌리가 되는 것49)은 인의(仁義)가 서로 체(體)가 되기 때문이다. 정(正)과 의(義)를 근본으로 삼으면 중(中)과 인(仁)이 용(用)이 되고 중(中)과 인(仁)을 체(體)로 삼으면 정과 의가 용(用)이 된다."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는 이치상 말하는 것이고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런 형체가 없지만, 만상(萬象)이 빽빽하게 이미 갖추어져 있다."50)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성(性)은 곧 태극(太極)이다. 태극은 음양 동정(陰陽動靜)이 지닌 본연(本然)의 묘(妙)이다. 그러나 유독 미발(未發)을 성(性)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말하자면 미발은 성(性)이 아니다. 다만 미발한 상태에 갖춰진 것이 성이다. 미발한 상태에서는 기(氣)가 용사(用事)하지 못하고 도의(道義)가 온전히 갖추어졌기 때문에 성(性)이라고 이른다.일본(一本 하나의 근본)51)은 이(理)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고 대본(大本 큰 근본)52)은 심(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구(各具)에 일본이 있다고 이르는 것은 가하지만 대본이 있다고 이르는 것은 불가하다.혹자가 "만수(萬殊) 외에 별도로 일본(一本)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천(天)은 만물(萬物)의 일본이고 심(心)은 만사(萬事)의 일본이니 천(天)과 심(心)은 사(事), 물(物)과 구별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한다. "천(天)은 만물에 대해서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가하지만 대본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심(心)은 만사에 대해서 대본이라고 하는 것은 가하지만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대체로 천(天)과 심(心) 또한 만수(萬殊) 안에 있는 일물(一物)이다. 나는 일찍이 천지 만물을 합한 것을 일본으로 여기고 천지 만물을 나눈 것을 만수라고 생각하였다. 지금에 와서 보자니 매우 타당하지 못하다. 일본과 만수는 애초에 위계와 등급이 없다. 다만 일본 안에 만수가 있고 만수 안에 일본이 있을 뿐이다."사람이 태허(太虛)와 음양(陰陽)의 기(氣)에 뿌리를 두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 뿌리를 두고 나무가 흙에 뿌리를 두는 것과 같아 활동과 휴식, 호흡이 한순간도 끊이지 않는다.마음이 장중하면 목소리가 편안하고 마음이 화평하면 목소리가 평안하다. 강론과 연구가 정밀하면 그 말이 조리가 있고 후련하며 존심 양성(存心養性)이 익숙해지면 그 말이 느긋하고 진중하다.묻건대, 천일(天一)이 수(水)를 낳고 지이(地二)가 화(火)를 낳지만53),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 하늘에서 양을 받고 땅에서 음을 받는 것은 어째서인가? 천일(天一)과 지이(地二)는 대대(對待) 안의 착종(綜錯)이고, 양을 받고 음을 받는 것은 착종 안의 대대이다. 음양이 있은 다음에 오행(五行)이 있고 오행이 있은 다음에 만물이 화생(化生)한다. 그러므로 천일(天一)이 수(水)를 낳고 지이(地二)가 화(火)를 낳는 것은 그 위의 하나의 일이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생겨날 때 처음에는 청허(淸虛)했다가 조금씩 견실해져 수(水), 화(火), 금(金), 목(木)이 차례로 생성되는 상(象)이 있게 된다. 기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지만, 이(理)는 일시에 모두 갖추어져 완전하고 자족하여 조금도 모자라거나 남는 것이 없다. 기질의 변화는 이(理)를 분명히 알고 함양이 숙련되는 것에 달려있다. 만일 이(理)임을 알고서도 함양하지 않는다면 구이지학(口耳之學)54)일 뿐이니 어찌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무릇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는 것은 모두 본래부터 절로 있던 도리이다. 바르고 반듯하여 깨달음이 분명하다면, 이는 사물을 각각 사물에 맡겨 두는 것이니55) 어찌 사사로운 뜻에 이끌리는 근심이 있겠는가.만물을 생성(生成)하니 그 덕이 천지보다 위대한 것이 없건만, 천지가 어찌 일찍이 오만한 마음을 가졌던가. 일세(一世)를 빚어내니 그 공이 성인보다 성대한 것이 없건만, 성인 또한 어찌 일찍이 만족스러운 마음을 지녔던가. 비록 효성이 대순(大舜)과 같더라도 이 또한 자식의 당연한 직분이고 학문이 공자(孔子)와 같더라도 이 또한 학자의 당연한 직분이니 어찌 오만하거나 만족스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겠는가. 오만하고 만족하는 자는 단지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余年今四十有四矣。此是古人不惑知命之日。而學不加進。心不加存。其蚩蚩貿貿。卽當日蒙蔀童昏之見耳。然至於精神氣魄。則日衰月頹。與疇昔遽已大不相同。撫念悲歎。此生何爲。但平生之業。不可到老改轍。只有黽勉不舍。庶幾餘效。而聞見所及。先忘後失。無緣會得浹洽。於是置一小冊子。凡日間應接及思索得失。隨手箚記。一以爲溫故之計。一以爲就正之資也。陰陽之對待者。是交易也。流行者。是變易也。周子太極圖說。是主流行變易而言。然變易之氣。便是對待交易之氣。程子曰。性中只有箇仁義禮智。曷嘗有孝弟來。據此似若性中無孝弟。然四者裏面。細條里都包在了。如五行言木則松柏橡樟都包在裡面。言水則江淮河漢都。包在裏面。程子曰。滿腔子是惻隱之心。於此見天地萬物一體最爲的實。若去腔子外尋覓。浩浩茫茫。無交涉云。夫私欲淨盡。生理渾全。則其未發也。與天地同體。其已發也。與天地同流。所謂公則一。所謂靜中觀萬物皆有春意者。亦此意。太極不是一箇可見之物。在天爲萬理之總名。在人爲萬善之統體。陰陽兩端。雖極萬變。而莫非生理之周流。人生日用。雖耒耟陶冶甲兵簿書之類。莫非生理所須之具。不知命。無以爲君子。此命字。指氣數而言也。人生一循天理。無犯人爲。凡吉凶榮辱之來。無一毫自取。而後可諉於命。知此則見利不趨。見害不避。惟知有義理而已。豈不爲君子乎。中天下而立。定四海之民。君子樂之。所性不存。所性旣不存於此。則獨可存於彼乎。所性者。千萬人皆同。地分者。千萬人皆不同。不同故所性不存。而因其不同。又莫不各有當行之道。不爲此嗇而彼豊。何必捨此而慕彼哉。游氣何氣也。以天地陰陽之氣爲主。則萬物爲游氣。以萬物當體之氣爲主。則陰陽爲游氣。閑邪則誠自存。不是閑邪之外。別有存誠也。克己復禮亦然。但遷善改過。自是二事。蓋發於心者。則天理人欲二途而已。非天理便是人欲。非人欲便是天理。無兩相對峙故也。應於事者。則有善底有過底有萬不同也。朱子答呂子約書曰。所論必有事焉。鳶飛魚躍。意亦甚當。知得如此。已是不易。更且虛心寬意。不要回頭轉腦。計較論量。却向外博觀衆理。益自培殖。則根本已固。而枝葉愈茂矣。若只於靜坐處尋討。却恐不免正心助長之病云云。此言偏中我病。如對證下劑。千載之下。似爲等待而準備者。三復悲悵。益恨得味此言之晩。人欲之害。大槪有三。一則氣質之偏也。二則耳目之蔽也。三則物我之形也。柔懦昏濁。曓戾剛輕者。氣質之偏也。貪嗇浸淫。經營汨沒者。耳目之蔽也。忌克殘忍。虛驕羞縮者。物我之形也。三者輾轉因仍。相助益深。然氣質之偏爲其本領。故古人以變化氣質言之。意有所褊隘。則以廣大底意思克之。有所虛僞。則以眞實底意思克之。有所怠散。則以嚴凝底意思克之。有所邪曲。則以正直底意思克之。日日如此。使爲善之力。足以勝彼。然後可以有進。程子曰。性中曷嘗有孝弟來。然則孝弟是待人排定底物事耶。曰不然也。所性之中。天理全具。而此理之施於親者。謂之孝。施於君者。謂之義。施於長者。謂之弟。但性爲萬物之一原。而孝弟是人分上說。故不可就一原上以孝弟之名加之也。曰孝弟之理。固在一原上。而所以爲父子君臣兄長者。則不在於一原耶。曰父子君臣兄長。是氣也。固不在於一原。而所以爲父子君臣兄長之理則已在於一原中矣。一本固天命之全體。而萬殊是天命之流行也。然則萬殊果是因氣而有者哉。一說窮理之道。有所當然所以然所當然。如父之慈子之孝所以然。是慈孝之所從來。卽天命之性也。一說所當然。固爲父之慈子之孝。而所以然。是就父子上所以慈孝之故也。未知二說何如。曰窮理之道。固非一端。有就理上看者。有就物上看者。有就事上看者。就慈孝上窮究。是理上看。就父子上窮究。是物上看。就父慈子孝上窮究。是事上看。自萬殊至一本。中間甚有多少曲折。有如此曲折。故至於萬殊。所以萬殊者。由其有此曲折。故知其一本。就理上窮究。則所以然。固是一本處。就事物上窮究。則知其曲折不同。所以造乎一本。向看太極圖說。動極而靜。靜極復動之語。竊疑此是流行一邊說。而非對待之體。追後思之。動而靜而者。是流行之用。邵子所謂用起天地先者也。生陽生陰者。是對待之體。邵子所謂體立天地後者也。但一動一靜之用。起於天地之先。而行於天地之後。非分陰分陽之後。別生一箇流行之氣也。是故曰靜極復動也。此身非我私物。凡身之視聽行步喫着語黙。莫非天機。纔着一毫私意。不是天則。己丑春。冠山魏斯文穉雲龍奎。從我游碧山書舍。一日講及夫婦有別之義。穉雲曰。昔聞南坡李丈與蘆沙先生論此義。南坡以一夫婦居內居外之義言之。先生曰。非也。此是人人夫婦。各有定偶而不亂之義也。是以有曰夫婦有別。然後父子親。又曰禽獸知有母而不知有父。以其無別也。予從來解認有別之義。亦如南坡之見。及聞此語。不覺怳然。若以一夫婦相與之義言之。則必曰夫婦有恩。不但曰夫婦有別也。人人夫婦。各有定偶而不亂者。此固正義。而一夫婦居內居外。特其中細條理也。嗚呼。摳衣之日。未及聞之。而至於山頹十年之後。乃得聞之。此講聚之樂不可無也。助忘常相因。忘故助。助故忘。不忘則何助之有。不助則何忘之有。須知勿忘勿助之間。乃是本心。景立說許多條理。安能常常記念。應事時。又安能着意安排。比如明鏡照物。不成萬象常在鑑中。但洗磨塵垢。使淸明通徹。則物雖不至。而不可謂萬象不涵於此。未知何如。余謂此說固好。但磨鏡之方。不向格致踐履上用功。而若只撑眉努眼。向壁觀心。則必入空寂寂地去矣。要息思慮。便有多少思慮在。惟莊敬持養四字。最不煩而要。問格物之道。有所當然所以然。是如何。曰如說足容重。則足者地也。在一身之下。而承載得許多。其容不得不重。此所以然也。端重安詳。不輕躁不草率。此所當然也。且趨時當如何。立時當如何。升降時當如何。進退時當如何。在親前當如何。在君前當如何。此是足容重中細條理。又莫不各有所以然。仁者合下天然自有之物。不爲天地萬物一體而有也。然纔有生生至愛之理。則便是天地萬物自然一體。如一箇種子。只有生生之理。所以千枝萬葉之理。自然完具此其仁故一體也。若以施用處說。則亦可謂一體故仁也。有生生之理。故有父子之分。而且父子一體也。故有慈孝之道。昔年與繼元論此義。頗費往復。不無小小歸宿。先就日用事物上。窮索得仁義禮智。見眼前至近天理流行。然后方有據守處。若只向高妙處說性說理。都無着摸。邪正本不倂立。公私本不竝行。日觀大公至正之理。日就大公至正之域。則區區邪私。自無容處。容體正然后禮義行。不遷怒。自正容體始。一身太極之象。形氣陰陽之象。氣血骨肉。五行之象。百骸萬竅。萬物之象也。無懸空之理。故亦不曾別有統體之太極。只是在陽爲一太極。在陰爲一太極。在五行亦各一太極。在萬物亦各一太極。合陰陽五行萬物爲統體之太極。然統體之太極。不多於各具之太極。各具之太極。不少於統體之太極。是各具中自有所謂統體者。天於萬物。非物物刻而雕之也。亦非汗漫不關聽其自爾也。天地萬物只是一體。更無分別。如人之一身四體。生理周流。無不相管。明性善而主忠信。此是先立乎大者云者。此是先儒喫緊爲人處也。爲學之道。豈有以加於此乎。此大學所以爲初學入德之門。可不勉哉。不誠無物四字。當仔細玩求。私意消化。則動靜語黙。皆是天機也。莊子所謂人於嗜欲深者。其於天機淺亦此意。朱子曰。以正配中。則中爲重。以義配仁。則義爲本云云。以周子主靜之說觀之。似以正義爲主而朱子之言如是何耶。蓋陰陽互爲其根者。是仁義互爲其體故也。以正義爲本。則中仁爲用。以中仁爲體。則正義爲用。無極而太極。是理上說。沖漠無眹。萬象森然已具者。心上說。性卽太極也。太極是陰陽動靜本然之妙也。然獨以未發爲性何也。曰未發非性也。但具於未發者。是性也。未發則氣不用事。而道義全具。故謂之性。一本以理言。大本以心言。故各具中。謂有一本則可。謂有大本則不可。或曰。萬殊之外。非別有一本云爾。則天爲萬物之一本。心爲萬事之一本。而天與心。非別於事與物耶。曰天於萬物。謂之一本則可。以不可謂之大本。心於萬事謂之大本則可。而不可謂之一本。蓋天與心。亦萬殊中一物。予曾以合天地萬物爲一本。分天地萬物爲萬殊。以今觀之。殊甚未穩。一本萬殊。初無堦位等級。只是一本中有萬殊。萬殊中有一本。人根於太虛陰陽之氣。如魚根於水。木根於土。其動息呼吸。未嘗須更間斷。心莊則聲宏。心和則聲平。講治精則其言條暢。存養熟則其言舒重。問天一生水。地二生火。然而人物之生。稟陽於天。稟陰於地何耶。天一地二。是對待中綜錯也。稟陽稟陰。是綜錯中對待也。有陰陽然後有五行。有五行然後萬物化主。則天一生水。地二生火。是其上一節事也。然凡物之生。莫不初淸虛而漸堅實。有水火金木次第生成之象。氣則推行有漸。而理則一時都具。完全自足。更無欠剩。變化氣質。只在見理明涵養熟。若見理而無涵養。則只是口耳之學而已。何氣質之可變哉。凡有物有則。皆合下自有底道理。方方正正。見得分明。則此是物各付物。安有私意牽引之患哉。生成萬物。其德莫大於天地。而天地何嘗有驕矜之心。陶鑄一世。其功莫盛於聖人。而聖人亦何嘗有滿足之意。雖孝如大舜。而亦人子分內當然底。學如孔子。而亦學者分內當然底。何驕矜滿足之有。人之驕矜滿足者。只是心狹故也。 불혹(不惑)과……시기 '불혹(不惑)'은 《논어》 〈위정(爲政)〉의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가리키며 '지명(知命)'은 "오십 살에 천명을 알았다."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취정(就正) 스승을 찾아가 학문의 옳고 그름을 질정(質正)하는 것으로, 공자(孔子)는 "군자가 일을 민첩하게 하고 말을 삼가고 도가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질정하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學而》 성(性) 안에……있겠는가 《논어》 〈학이(學而)〉 2장의 주자 주(朱子注)에 보인다. 몸에……마음이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권3 〈답장경부문목(答張敬夫問目)〉에, "가득한 것이 측은지심이니, 이는 사람의 몸에서 이 이치가 충만한 곳을 가장 절실히 가리킨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깨닫는다면 만물이 일체이며 안팎의 구별이 없게 되고, 만약 깨닫지 못한다면 가슴속을 떠나 밖에서 찾느라 아득히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滿腔子是惻隱之心, 此是就人身上指出此理充塞處最爲親切. 若於此見得, 卽萬物一體更無內外之別, 若見不得, 却去腔子外尋覓, 卽莽莽蕩蕩無交涉矣.]"라고 하였다. 생리(生理) 생생지리(生生之理)) 천지가 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자연의 이치를 이른다. 공정하면……된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 〈도체(道體)〉에 "공정하면 하나가 되고 사사로우면 만 가지로 달라지니, 인심이 사람의 얼굴처럼 각기 다른 것은 다만 사심 때문이다.[公則一, 私則萬殊, 人心不同如面, 只是私心.]"라는 이천(伊川) 선생의 말이 보인다. 조용한……있다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류(存養類)에 "마음을 고요하게 한 다음에 만물을 보면 자연히 봄 뜻이 있게 된다.[靜後見萬物, 自然皆有春意.]"라고 한 정이(程頤)의 말이 나온다. 명(命)을……없다 《논어》 〈요왈(堯曰)〉에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기수(氣數) 기운(氣運) 또는 운수(運數)를 말한다. 스스로 취함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동자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빨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겠다.'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소자들아 저 노래를 들어 보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한 것이다.' 하셨다."라고 하였다. 천하의……않다 《맹자》 〈진심상〉에 나오는 말이다. 유기(游氣)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유기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가 모여서 형질을 이룬 것이 만 가지로 다른 사람과 사물을 낳는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음기와 양기의 양단은 천지의 큰 의리를 세운다.[游氣紛擾, 合而成質者, 生人物之萬殊. 其陽陰兩端, 循環不已者, 立天地之大義.]"라고 하였다. 사악함을……것이지 《주역》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평소의 말도 미덥게 하고 평소의 행실도 삼가며 사특함을 막고 성실함을 보존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미리……병통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며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라."라는 말이 있다. 성(性)……있었는가 《논어집주》 〈학이(學而)〉에 "성 가운데에는 다만 인ㆍ의ㆍ예ㆍ지 네 가지만 있으니, 어찌 일찍이 효제가 있겠는가.[性中, 只有箇仁義禮智四者而已, 曷嘗有孝弟來?]"라는 정자(程子)의 말이 보인다. 본성으로 여기는 것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바는 비록 크게 행해지더라도 더 보태지지 않으며 비록 궁하게 살더라도 줄어들지 않으니,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바는 인의예지로서 마음속에 뿌리박혀 그 빛남이 윤택하게 얼굴에 드러나며 등에 가득하며 사체에 베풀어져서 사체가 말하지 않아도 깨달아 올바르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용(用)은……일어났다 소옹(邵雍)의 《격양집(擊壤集)》 권14 〈관물음(觀物吟)〉, "체(體)는 천지 이후에 확립되나, 용은 천지 이전에 일어난다.[體在天地後, 用起天地先.]"라고 하였다. 양(陽)을……낳는다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해지며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라고 하였다. 체(體)는……확립되었다 소옹(邵雍) 《격양집(擊壤集)》 권14 〈관물음(觀物吟)〉에 나오는 말이다. 남파(南坡) 이장(李丈) 이희석(李僖錫, 1804~1889)이다.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효일, 호는 남파(南坡)이다. 장흥군 청적리(聽笛里)에서 출생하였다. 기정진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그를 스승은 벗으로 대하고 이희석은 스승으로 섬겼다. 《남파집》을 남겼다. 부부에게……가까워진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남자가 친영을 하여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가는 것은 강유의 뜻이다.……예물을 들고 만나는 것은 공경하여 분별을 밝히는 것이다. 남녀가 분별이 있은 뒤에 부자가 친하고, 부자가 친한 연후에 의가 생겨나고, 의가 생겨난 연후에 예가 일어나고, 예가 일어난 연후에 만물이 편안하니, 분별이 없고 의가 없는 것은 금수의 도이다.[男子親迎, 男先於女, 剛柔之義也.……執摯以相見, 敬章別也. 男女有別, 然後父子親; 父子親, 然後義生; 義生, 然後禮作; 禮作, 然後萬物安. 無別無義, 禽獸之道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금수(禽獸)가…… 때문이다 위 〈교특생〉의 구절에 대한 진호(陳澔)의 집설(集說)에 나오는 말이다. 잊지도……않는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반드시 이 일에 전념하되, 미리 정해서도, 마음에 잊어서도, 억지로 자라는 것을 도와서도 안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장중함과……기르는 것 《예기》 〈표기(表記)〉에 "군자가 장중하고 경건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하고 방자하면 날로 구차해진다."라는 말이 보이고, 《근사록》에는 정호(程顥)가 "자질이 아름다운 자는 밝히기를 다하여 찌꺼기가 곧 완전히 변화해서 천지 같은 체가 되고, 그다음은 오직 장중함과 경건함을 잡아 길러야 하니, 그 지극함에 이르면 똑같다.[質美者, 明得盡, 査滓便渾化, 却與天地同體, 其次惟莊敬持養, 及其至則一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발의……한다 《예기》 〈옥조(玉藻)〉에 군자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인 구용(九容)에 속하는 것으로, "발의 모습은 진중하고, 손의 모습은 공손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생생(生生)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끊임없이 낳는 것을 '역(易)'이라고 이른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계원(繼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의 자이다.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귀암(龜巖)이다.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하락이수(河洛理數)와 천문(天文)의 물상을 확연하게 융회하였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의 요체를 깨닫고, 심성과 이기의 묘리를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노여움을……않는 것 《논어》 〈옹야(雍也)〉에서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학문하는 즐거움을 버리지 않았다는 안연(顔淵)을 칭찬하는 공자의 말이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가 누구인지 묻자, 공자가 "안회라는 제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학문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만규(萬竅) 땅 위에 있는 모든 구멍이나 사람 몸에 있는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가리킨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거대한 땅덩어리가 기운을 내뿜으면 그 이름을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불었다 하면 온갖 구멍들이 여기에 응해서 성내며 부르짖는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號.]"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통체(統體)와 각구(各具) 통체는 전체로서의 태극을, 각구는 개별 물(物) 속에 있는 태극을 뜻한다. 즉 이일분수(理一分殊)와 같은 말이다. 《성리대전》 권1 〈태극도〉에 "남녀의 처지에서 보면 남녀가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간직하여 남녀가 하나의 태극이요, 만물의 처지에서 보면 만물이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간직하여 만물이 하나의 태극이다. 합하여 말하면 만물이 통합된 본체로서 하나의 태극이고, 나누어 말하면 일물이 각각 하나의 태극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自男女而觀之, 則男女各一其性, 而男女一太極也; 自萬物而觀之, 則萬物各一其性, 而萬物一太極也.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라고 하였다. 성선(性善)을……것이다 《근사록(近思錄)》 권2 〈위학(爲學)〉에 보이는 내용이다. 원문은 "知性善, 以忠信爲本, 此先立其大者."로 되어 있다. 불성무물(不誠無物)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5장에 "진실함은 사물의 시종을 이루는 것이니, 진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진실함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기욕(嗜欲)이……낮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말이다. 정(正)을……된다 《주자대전》 권31 〈답장흠부서(答張欽夫書)〉에 보인다. 음양(陰陽)이……되는 것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아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아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텅 비고……있다 《근사록》 권1 〈도체(道體)〉에 있는 말로, "지극히 고요하여 조짐이 없을 적에 만상이 빽빽하게 갖추어져 있다.[冲漠無眹, 萬象森然已具.]"라고 하였다. 일본(一本 하나의 근본) 《논어집주》 〈이인(里仁)〉에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는 증자(曾子)의 말에 대한 주희의 주에 "'지극히 성실하여 쉼이 없는 것'은 도의 체이니 만 가지 다름이 하나의 근본인 것이며, 만물이 각기 제 곳을 얻는 것은 도의 용이니,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 다름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은 것'의 실제를 알 수 있을 것이다.[至誠無息者, 道之體也, 萬殊之所以一本也; 萬物各得其所者, 道之用也, 一本之所以萬殊也. 以此觀之, 一以貫之之實, 可見矣.]"라고 하였다. 대본(大本 큰 근본) 《중용》에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때를 '중'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음을 '화'라고 이르니, 중은 천하의 대본이고 화는 천하의 달도이다. 중과 화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 잡히고 만물이 길러진다."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1章》 천일(天一)이……낳지만 《근사록》 권1 〈도체(道體)〉의 주희주에 "오행이 생겨남은 대개 두 가지 기(氣)가 서로 변하고 합하여 각각 이루어진다. 천일은 수(水)를 낳고, 지이는 화(火)를 낳고, 천삼은 목(木)을 낳고, 지사는 금(金)을 낳고, 천오는 토(土)를 낳는다. 이것이 이른바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 화, 목, 금, 토를 낳는다.'는 것이다.[五行之生也, 蓋二氣之交變合而各成. 天一生水, 地二生火, 天三生木, 地四生金, 天五生土. 所謂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 是也.]"라고 하였다. 구이지학(口耳之學) 남에게 배운 것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옮기기나 하는 천박한 학문을 말한다. 《순자(荀子)》 권1 〈권학(勸學)〉에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 입과 귀의 사이는 4촌일 뿐이니, 어찌 7척의 몸을 아름답게 하겠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고 하였다. 바르고……것이니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存養)〉에 "사람이 어떤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다른 일에 구애된 나머지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 두면 이는 내가 사물을 부리는 것이지만, 사물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면 이는 사물에 의해 부림을 받는 것이다.[人不止於事, 只是攬他事, 不能使物各付物. 物各付物, 則是役物, 爲物所役, 則是役於物.]"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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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열읍의 유생들에게 통고하는 글 通告嶺南列邑章甫文 백이(伯夷)를 탐욕스럽다고 하고 유하혜(柳下惠)를 포악하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장차 믿겠는가. 아마도 사람들이 믿지 않아서 사설(辭說)을 늘어놓고 교묘하게 전거(典據)를 끌어들이며 휘황찬란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이다. 이것이 성인이 교묘한 말을 두려워하고56)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며57) 아첨하는 자를 멀리한58) 까닭이다.오직 우리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께서 세도(世道)가 쇠미해진 뒤에 태어나 선학을 계승하고 후학을 인도하였으니 그 공이 적지 않았다. 멀리로는 사수낙민(洙泗洛閩)59)을 받들고 가까이로는 동방의 제현(諸賢)을 모범으로 삼았으며 율곡 선생(栗谷先生)을 더욱 독실하게 믿으셨다. 이(理)에 대한 논의는 율곡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60)을 종지(宗旨)로 삼고 성정(性情)에 대한 논의는 율곡이 말한 "수만 가지의 정(情)이 모두 이(理)에서 발(發)한다."61)는 것을 명확한 의론으로 여기셨다. 〈신구율곡소(伸捄栗谷疏)〉62)를 보고는 만세(萬世)를 위해서 비태(否泰 행(幸)과 불행(不幸))의 소장(消長)에 대하여 전하는 것으로 여기고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외우고 본받는 것을 보고는 《논어(論語)》, 《맹자(孟子)》에 견주어 논의하셨다. 이와 같은 부류는 일일이 적을 수 없으며 문집(文集)을 펼치면 뚜렷하게 볼 수 있다.다만 "음(陰)이 정(靜)하고 양(陽)이 동(動)하는 것은 기기(氣機)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63)라는 단락의 말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매번 문구에 얽매이지 않고 본의를 살펴 이해한 뒤 이것은 유행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여겼다. 근래 주기설(主氣說)이 세상에 성행하면서 태극(太極)과 천명(天命)의 본체(本體)가 가려지고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께서 몹시 탄식하시고 문답을 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깊이 분변하고 통렬히 질책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는데, 혹자가 그때마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말을 끌어들여 주기(主氣)의 관련 증거로 삼았다. 그래서 선생께서 비로소 조어(措語)가 타당하지 못하여 이렇게 저렇게 변하여 잘못된 뜻에 이르렀음을 분변하고 이로 인하여 "전현(前賢)께서 이에 대해 본디 명쾌하게 말씀하셨으나 훗날의 폐단이 여기에 이를 줄을 살피지는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현이 다하지 못한 뜻을 펴서 요즘 사람들의 무궁한 폐단을 없애려는 목적이었다.그러나 여전히 감히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못하여 외필(猥筆)이라고 하고, 여전히 감히 스스로 전단(專斷)하지 못하여 "실로 질정을 드리고자 한다."라고 하고, 여전히 감히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못하여 "내가 의심하는 바가 사라지면 유문(儒門)의 다행이겠다."라고 하셨다. 말씀이 간절할수록 예는 더욱 공손하였으며 의지가 간절할수록 뜻은 더욱 겸손하였으니 전현을 더욱 영광스럽게 하고 선철(先哲)을 실제로 존숭한 방도가 어떠하였는가. 만약 이것을 가지고 율곡을 헐뜯었다고 여긴다면 주자(朱子)의 《본의(本義)》는 정자(程子)를 헐뜯고 회재(晦齋)의 《보유(補遺)》64)는 주자를 헐뜯은 것이 되는가. 율곡 또한 성정(性情)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분변에 대해서 어찌 한결같이 퇴계(退溪)의 설을 따르지 않았던가.일전에 영남 사람인 최동민(崔東敏), 권봉희(權鳳熙)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통문(通文)을 돌려 노사 선생이 지은 《외필》이 율곡을 공격하고 배척한다고 하였다. 아, 이것이 무슨 일인가! "기(氣)가 이(理)의 지위를 빼앗았다.", "두 개의 본령", "허명(虛名)만 있고 실사(實事)는 없다." 등의 말은 이(理)가 통솔하고 기(氣)가 부림을 받는다는 뜻이었건만, 이것을 일러 율곡을 공격하고 논척한 것이라고 하였다. "치우치고 지나치고 부정하고 회피한다.[詖淫邪遁]"65)와 "전도되고 제 멋대로이다.[顚倒昌披]"는 오늘날의 주기론(主氣論)이 야기하는 폐단이 장차 이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었건만, 이것을 일러 율곡을 공격하고 배척한 것이라고 하였다.이 몇 마디 말만으로도 이미 매우 거짓이건만 또 다른 당(黨)의 도움을 끌어내고자 하여 "퇴계를 침해하고 배척하였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비난하였다"라고 하였다. 사설을 늘어놓고 교묘하게 전거(典據)를 끌어들이고 시비를 변환(變幻)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하였으니, 《예기(禮記)》에서 이르는 "배운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면서도 해박하고 행동이 잘못되었으면서도 견고하여 대중을 현혹하면 사형에 처하고 사면하지 않는다."66)는 것이 이 무리를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남들은 그의 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않건만 자식인 자가 스스로 욕설(辱說)을 만들어 불러들인다면 이것은 스스로 자기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율곡을 헐뜯는 것이 이쪽에 있는가, 저쪽에 있는가? 또 노사 선생은 4조(朝)에 걸쳐 예우를 받은 유신(儒臣)으로 존귀함이 삼달(三達)67)을 겸하고 온 나라에 명망(名望)이 높았건만 보잘것없는 저 후생(後生)들이 도리어 감히 성명(姓名)을 지적하면서 끝없이 욕보이고 있으니, 이것 또한 세도(世道)와 관련된 커다란 변괴이다.영남은 예부터 추로(鄒魯)의 문명(文明)을 보존한 고을로 일컬었건만, 저 괴이한 무리가 이처럼 날뛰는 것을 내버려 두고 돌아보지 않는단 말인가. 참으로 매우 통탄스럽다! 이에 고하여 알리니 영남의 군자들이 그들의 죄를 성토하여 사류(士類)의 지위에 머물지 못하도록 한다면 사문(斯文)에 큰 다행이고 세도(世道)의 큰 다행이겠다. 謂伯夷貪。謂柳惠暴。則人將信之乎。恐人之不信。而文致辭說。巧引援據。玲瓏閃忽。致人眩惑。此聖人所以畏巧言惡利口遠侫人者也。惟我蘆沙奇先生。生於世衰道微之餘。而繼往開來。其功爲不少矣。遠宗洙泗洛閩。近法東方諸賢。而於栗谷先生尤篤信焉。其論理。則以栗谷所言理通氣局爲宗旨。其論性情。則以栗谷所言萬般之情。皆發於理爲確論。見伸捄栗谷疏。則以爲此是爲萬世傳否泰消息。見誦法擊蒙要訣。則以論語孟子。擬而議之。若此之類。不可殫記。而放諸文集。歷歷可見。但於陰靜陽動。其機自爾。非有使之一段語。有少未契而每活看而通之。以爲此特流行邊說話矣。近來主氣之說。盛行于世。而太極天命之本體。掩蔽而不明。故先生深加憂歎凡於問答往復之際無不深辨而痛斥之。則或者輒引非有使之之語。以爲主氣之證案。於是先生始辨其措語之未妥。以至輾轉差謬之意。而因曰前賢於此。發之太快。而未究乎後蔽之至此也。此所以發前賢未盡之意。微今人無窮之蔽者也。然猶不敢自安而曰猥筆。猶不敢自專而曰實有奉質之願。猶不敢自是而曰吾之所疑者忘。則儒門之幸也。辭益切而禮益恭。志愈苦而意愈遜。所以增光前賢。實尊往哲。爲何如耶。若以此爲誣毁栗谷。則朱子之本義。爲誣毁程子。晦齋之補遺。爲誣毁朱子耶。栗谷於性情四七之辨。亦何不一從退溪之說乎。日者嶺中人崔東敏權鳳熙輩。先後投通。以蘆沙所著猥筆爲攻斥栗谷。噫嘻。此何擧也。曰氣奪理位。曰兩箇本領。曰有虛名無實事等語。是說理氣帥役之義。而謂之攻斥栗谷。曰詖淫邪遁。曰顚倒昌披。說今人主氣之弊獘。將至於斯。而謂之攻斥栗谷。只此數語。已極誣虛。而又欲招引黨援。則曰侵斥退溪。曰譏切尤庵。文致辭說。巧引證據。變幻是非。眩惑視聽。禮所謂學非而博。行僞而堅。以惑衆。則殺無赦者。非此輩之謂耶。人不辱其父。而爲子者。自做辱說以徵成之。則是自辱其父者也。然則今日之誣毁栗谷。在此乎在彼乎。且蘆沙先生。以四朝禮遇之儒臣。尊兼三達。望重一國。而以彼幺麽後生。乃敢指斥姓名。詬辱罔極。此亦世道之一大變怪也。嶺中古稱鄒魯文明之鄕。而任他怪鬼輩之跳踉如是而不恤乎。誠極痛歎。玆以奉告。惟嶺中僉君子。聲討其罪。俾不置士類之地。斯文幸甚。世道幸甚。 교묘한 말을 두려워하고 《주역》 태괘(兌卦)에 "구오는 양(陽)을 해치는 박을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에 대해서 정이천(程伊川)이 전(傳)에서 "비록 순임금과 같은 성인이라도 말을 교묘하게 하고 안색을 좋게 하는 자를 두려워하였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쁨이 사람을 미혹하게 함은 받아들여지기 쉬워 이처럼 두려워할 만하다.[雖舜之聖, 且畏巧言令色, 安得不戒也? 說之惑人, 易入而可懼也如此.]"라고 하였다. 말재주……미워하며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을 미워하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벼 싹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를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말이 많은 자를 미워함은 진실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정나라 음악을 미워함은 정악(正樂)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간색(間色)인 자색(紫色)을 미워함은 정색(正色)인 주색(朱色)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향원을 미워함은 진정한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아첨하는……멀리한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안연이 나라 다스리는 것을 묻자, 공자께서 말하기를 '하(夏) 나라의 책력을 행하며, 은(殷) 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周) 나라의 면류관을 쓰며, 음악은 소무(韶舞)를 써야 한다. 정나라 음악을 추방해야 하며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할 것이니, 정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위태롭다.'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사수낙민(洙泗洛閩)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 곡부의 수수(洙水)와 사수(泗水) 근처에서 공자가 강학을 하였기 때문에 '사수(洙泗)'는 공자와 그 학문을 뜻하게 되었다. '낙민(洛閩)'은 송나라 때의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 '이통기국'은 이(理)는 형체도 없고 작위도 없어 만물에 두루 통하여 내재하지만, 기(氣)는 형체도 있고 작위도 있어 만물에 국한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서 이르기를, "이와 기는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아 한 물건인 것 같으나 다른 까닭은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며,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기 때문이다. 무형과 무위이면서 유형과 유위의 주(主)가 되는 것은 이(理)이고, 유형과 유위이면서 무형과 무위의 기(器)가 되는 것은 기(氣)이다.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므로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되는 것이며,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므로 기가 발하면 이가 타는 것이다.[理氣元不相離, 似是一物, 而其所以異者, 理無形也, 氣有形也, 理無爲也, 氣有爲也. 無形無爲而爲有形有爲之主者, 理也; 有形有爲而爲無形無爲之器者, 氣也. 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 理無爲而氣有爲, 故氣發而理乘.]"라고 하였다. 수만……발(發)한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9 〈답성호원 임신(答成浩原壬申)〉에 보인다. 원문은 "情雖萬般, 夫孰非發於理乎?"이다. 신구율곡소(伸捄栗谷疏) 하락(河洛, 1530~1592)이 지었다. 하락의 본관은 진양(晉陽)이고 자는 도원(道源), 호는 환성재(喚醒齋)이다.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선조 때 진사 시험에 장원하여 왕자사부로 지내다가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이 무고를 받아 조정을 떠나자 그들을 신구(伸捄)하는 소를 지었다. 《노사집》 권20에 〈환성재유고서(喚醒齋遺稿序)〉가 실려 있다. 음(陰)이……아니다 《율곡전서》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 보인다. 보유(補遺)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를 가리킨다. 이언적이 1549년(명종4) 강계(江界)로 귀양 가서 지은 글로, 주자의 《대학장구》의 편차를 일부 개정하고 독자적인 해석을 제기한 글이다. 치우치고……회피한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의 "한쪽으로 치우친 말에서 그의 마음이 가려 있음을 알며, 지나친 말에서 마음이 빠져 있음을 알며, 부정한 말에서 마음이 도(道)와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며, 회피하는 말에서 논리가 궁함을 알 수 있다."에서 유래하였다. 배운……않는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행동이 거짓되면서도 견고하고, 말이 거짓되면서도 논리적이고, 배운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면서도 해박하고, 행동이 잘못되었으면서도 문식을 잘하여 유려해서, 이런 것으로 대중을 현혹시키면 사형에 처한다." 삼달(三達) 삼달존(三達尊)의 약칭으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존숭하는 작위, 연령, 덕망을 말한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서 "천하에는 보편적으로 존경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작위가 그 하나이고 연령이 그 하나이고 덕망이 그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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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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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열읍의 유생들에게 통고하는 글 通告湖南列邑章甫文 세상에 미워할 만한 자가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마는 성인(聖人)께서 특별히 겉으로는 비슷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자를 미워한68) 까닭이 무엇인가? 대체로 옳은 듯하면서 그른 것이 대중을 쉽게 미혹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머리 위에는 선정(先正)을 떠받들고 명분은 현인을 존경한다고 일컬으면서 시비(是非)를 어지럽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는 자가 겉으로는 비슷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자들이 아니겠는가.노사 선생(蘆沙先生)께서는 일생에 걸쳐 율곡(栗谷)을 우러러 흠모하며 태극(太極), 이기(理氣)에 관한 학설이나 천명(天命), 성정(性情)에 관한 논의가 서로 부합하고 일치하여 독실하게 믿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문집(文集)을 살펴보면 하나하나 징험할 수 있다. 다만 "음(陰)이 정(靜)하고 양(陽)이 동(動)하는 것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매번 문구에 얽매이지 않고 본의를 살펴 이해한 뒤 이것은 특별히 유행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여겼다. 오늘날 주기설(主氣說)을 주장하는 자들을 보면 오로지 이 말에 집착하여 자기 견해를 입증하는 증거로 삼고 있지만, 선생께서 비로소 이 구절의 조어(措語)가 타당치 못하여 이렇게 저렇게 변하다 잘못된 뜻에 이르렀음을 분변하였으니, 이것은 곧 전현(前賢)의 도를 명백히 밝히고 오늘날의 폐단을 바로잡는 방도였다.뜻하지 않게 근래에 영남 사람인 최동민(崔東敏), 권봉희(權鳳熙) 무리가 이 말을 가리켜 율곡을 헐뜯었다고 하면서 열군(列郡)에 통문(通文)을 보내 방자하게 노사 선생을 논척(論斥)하였다. 버릇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도리는 무궁하지만 시세(時世)가 다르기 때문에 앞뒤의 성현께서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 대략 차이가 없을 수 없었으니, 예를 들자면 정자(程子)의 《역전(易傳)》, 주자(朱子)의 《주역본의(周易本義)》 등등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만약 이것을 가지고 전현(前賢)을 헐뜯었다고 한다면 정자, 주자부터 이후의 제현(諸賢)은 전현을 헐뜯는 방자함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된다.또한 노사 선생은 4조(朝)에 걸쳐 예우를 받은 신하로서 존귀함은 삼달(三達)을 겸하고 온 나라에 명망이 높았건만, 저 보잘것없는 후생(後生) 무리가 감히 직접 성명(姓名)을 지적하면서 극도로 욕을 보였다. 이 또한 세도(世道)의 큰 변괴이다. 온 나라 사람이 함께 물리쳐야 하는 자들이니, 하물며 선생의 고을에서 유자(儒者)의 관을 쓰고 유자의 복장을 갖추고 있는 자들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도내의 군자들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함께 분개하고 함께 미워하는 마음이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모쪼록 9월 17일에 능주(綾州)의 영귀정(詠歸亭)에 모두 모여 한 차례 충분히 상의한 뒤 일제히 죄를 성토하는 자리로 삼는다면 매우 다행이겠다. 天下之可惡者何限。而聖人特言惡似而非者何耶。蓋似是而非。易以惑衆故也。今頭戴先正。名稱尊賢。而眩亂是非。熒惑視聽者。非似是而非耶。惟蘆沙先生一生尊慕栗谷。而於太極理氣之說。天命性情之論。無不脗合而篤信焉。考之文集。歷歷可徵。但於陰靜陽動非有使之一句語。有少未契。而每活看而通之。以爲此特流行邊說話矣。及見今人之主氣者。專執此語。以爲己見之證案。則先生始辨此句下語之未妥。以至輾轉差謬之意。是乃所以講明前賢之道。而矯捄今日之弊也。不意近者嶺人崔東敏權鳳熙輩。指摘此語。以爲誣毁栗谷。飛通列郡。肆其詆斥。人之無狀。一至於此乎。道理無窮。而時世有異。是以前後聖賢。捄世立言。不得不略有異同。如程子易傳朱子本義之類。不可殫記。若以此而誣毁前賢。則自程朱以後諸賢。無一人免於誣毁前賢之肆矣。且蘆沙先生。以四朝禮遇之臣。尊兼三達。望重一國。而彼幺麽後生輩。敢自指斥姓名。極其誣辱。此亦世道之一大變怪也。擧國人人所與共斥者。而況在先生之鄕冠儒服儒者乎。道內僉君子聞之。想不無同憤共疾之心。須以九月十七日齊會于綾州之詠歸亭。以爲一席爛商。齊聲致討之地。幸甚。 겉으로는……미워한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을 미워하노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벼 싹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요,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를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다."라는 공자(孔子)의 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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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회소의 통문에 답하는 글 答通長城會所文 음양의 성쇠는 비록 역대에 걸쳐 이미 그러했지만 나라에 미친 재앙이 지금보다 심한 시절이 언제 있었는가. 일성(日星)이 어두워지고 천지(天地)가 뒤집혀 500년 사직이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위태롭고 3천 리 강산이 금수(禽獸)의 발굽에 어지럽혀졌다. 의사(義士)는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겠다는 뜻을 품고69) 필부(匹婦)도 도랑에서 목을 매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문신하거나 몸을 훼손하는 저 오랑캐들은 어찌하여 참으로 잠깐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온 나라를 죽음으로 시커멓게 물들이는가.애처로운 이 수많은 생령(生靈)이 다행히 선왕의 은혜로운 배양(培養)에 힘입어 다양한 방법으로 충의를 떨치는 거사를 일으켰다. 경기(京畿)와 관동(關東)에서는 이미 군위(軍威)가 진동하고 영남(嶺南)과 호서(湖西)에서는 의로운 선전포고가 번갈아 일어나, 병들어 쇠약한 자, 늙어 파리해진 자도 죽지 않은 채 보기를 기다리고자 하고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도 모두 기운을 북돋아 달려 나가고자 하였다. 어찌하여 이 1천 리 호남 고을에서만 안진경(顔眞卿)70) 같은 의리를 지닌 사람이 하나도 없는가. 어찌 사력(事力)의 차이가 있는가. 아, 인정(人情)이 고르지 못하도다!다행스럽게 우리 노사 선생의 집안에서 침랑(寢郞)71)을 지낸 현손(賢孫)이 궐기하여 마침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계책을 내어 한 도 백성들의 마음을 창도(唱導)하였다. 문서(文書)를 돌려 오래도록 억눌려있던 바람을 달래주고 방법과 계략을 제시하니 진실로 군율을 갖춘 군대에 부합하였다. 우리 고을이 멀고 후미진 구석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또한 소화(小華)의 땅이다. 병이호덕(秉彝好德)72)의 성품이 자연히 무너지지 않았으니 휴양(休養)의 은혜 또한 어찌 일찍이 감히 잊었겠는가. 기약하지 않고도 서로 부합하였으니 단지 이를 알리고 주선하고자 한다.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알리고 또 선비, 서리와 함께 모의하였으니, 창졸간에 준비한다는 것이 가난한 시골에서는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고생스러운 주선이나마 스스로 구원병을 뒤따르고자 한다. 물고기를 먹고자 한들 어찌 곰 발바닥만큼 맛이 좋겠는가. 옥(玉)이면서 깨지는 것이 기왓장으로 온전하기보다는 낫다. 하물며 천도(天道)는 반드시 상도(常道)로 돌아오고 나라의 기틀은 재조(再造)의 운이 있음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에 답하여 알리며 삼가 기일(期日)을 알려주기를 기다린다. 陰陽盛衰。雖已然於歷代。邦國喪亂。孰有甚於此時。日星晦沈。天地飜覆。五百年社稷。危如贅旒。三千里江山。交於蹄跡。義士懷蹈海之志。匹婦持經瀆之心。雕題毁形。豈願須臾喘息。黑死全局。哀此億萬生靈。幸賴先王培養之休。爰有多方奮忠之擧。畿輔關東。軍威已振。嶠南湖西。義聲迭興。癃疾老羸。願母死而俟見暗聾跛躄。皆增氣而欲趨。惟此湖南千里之鄕。胡無眞卿一人之義。豈事力之有異。嗟人情之不平。幸我蘆沙先生之門。第有寢郞賢孫之作。乃出萬死之計。以倡一路之心。輪廻文移。治慰久鬱之望。指授方略。允符以律之師。敝邑雖在遐僻之隅。亦是小華之地。彛好之性。自有所不墮。休養之恩。亦何嘗敢忘。有不期而脗合。第奉喩以周旋。旣輪告於村閭。又合謀於儒胥倉卒綢繆。雖甚難於巖邑之貧。艱關拮据。願自附於蟻援之後。魚之欲。曷若態之美。玉而碎。勝於瓦而全。況天道有必反之常。而邦基膺再造之運。玆庸答告。恭俟示期。 의사(義士)는……품고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고사 노중련(魯仲連)이 신원연(新垣衍)으로부터 진(秦) 나라를 황제(皇帝)로 받들자는 말을 듣고는 매우 분개하여, "불의한 진 나라가 황제가 되어 천하에 정사를 펴게 된다면 나는 차라리 동해(東海)에 빠져 죽고 말 것이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史記 魯仲連傳》 안진경(顏眞卿) 709~785. 당 현종(唐玄宗) 때의 명신으로, 평원 태수(平原太守)로 있으면서 안녹산(安祿山)이 배반할 것을 알아차리고 미리 그에 대비하였다. 후에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북(河北)의 24개 군이 모두 무너졌지만, 안진경이 군사를 일으켜 적병을 토벌하였다. 현종이 기뻐하면서 "나는 안진경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그가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하였다. 《新唐書 卷153 顔眞卿列傳》 침랑(寢郞) 침랑(寢郞)은 능참봉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시대에 왕릉(王陵) 및 원(園)의 관리를 맡은 참봉으로 종9품의 실직(實職)이다. 병이호덕(秉彝好德) 사람이라면 모두 천성적으로 덕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시경》 〈증민(烝民)〉에서 "사람이 떳떳한 본성을 가진지라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도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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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앙 제태 에게 증정하다 奉贈崔而仰【濟泰】 경인년(1890, 고종27) 1월 8일에 내가 영남에 갔다. 상원일(上元日)에 산음(山陰)에 도착하고 다음 날 강성(江城)에 당도하여 신안강(新安江) 기슭으로 계남옹(溪南翁)73)을 찾아뵈었다. 안부 인사가 끝나자 옹의 조카인 이앙(而仰)이 말하기를, "지난밤에 계방(季方 정의림(鄭義林)의 자(字))과 노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깬 뒤 혼자 말하기를, '나는 계방과 평소에 일면식도 없건만 갑자기 꿈에 나타났으니 무엇 때문일까? 일찍이 계방이 영남에 오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가까운 시일 안에 만나려는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우두커니 기다리면서 한참을 있었더니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인하여 적어 놓은 꿈 내용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바로 7일이었다.아, 나와 이앙은 과연 일면식도 없지만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것은 자못 오래되었다. 동서로 500리를 벗어난 아득히 먼 곳에서 앞서지도 않고 뒤서지도 않게 서로 감응하는 것이 북채와 북,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을 줄 누가 알았는가. 천지 간에 의기가 서로 감응하여 걷지 않아도 이르게 되고 빨리하지 않아도 빠른 것74)이 진실로 이와 같았다. 예전에 호상(湖上)에서 선사(先師)를 모실 때 나와 애산(艾山)75)이 두 차례나 기약도 없이 서로 만나자 선사(先師)께서 이르기를, "기이한 일이다. 어찌 기록으로 남기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다. 만약 선사께서 살아 계신다면 또한 어찌 기이한 일이라고 하지 않으시겠는가.이에 대략 전말(顚末)을 적어 이앙에게 준다. 이앙은 언제나 나를 일깨우고 분발시켜 지극히 어리석고 근기(根氣)가 낮은 이 사람이 동성상응(同聲相應)76)하고 함께 돌아가는 결과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歲庚寅元月八日。余作嶺行。上元日到山陰翌日到江城。訪溪南翁於新安江上。寒暄畢翁從子而仰言曰。疇昔之夜。夢與季方遊。旣覺自語吾與季方。未有一面之雅。而遽爾入夢何也。聞季方嘗有意嶺行。其將從近見遇耶。佇俟久之。果爾果爾。因出所記夢蹟示之。乃七日也。嗚呼。吾與而仰。果無一面。而其有書路往復。則頗久矣。誰知東西遙遙半千里之外。不先不後。相應相感。如桴鼓影響哉。天地間氣類之感。有不行而至。不疾而速者固如此。昔年侍先師於湖上也。吾與艾山。有再次不期之遇。先師曰奇事也。盍記諸。若使先師而在焉。則亦豈不曰奇事也。玆以略述顚末。以呈而仰。願而仰爲之終始警策。使此至愚下根。無愧爲同聲同歸之歸也。 계남옹(溪南翁) 남옹은 최숙민(崔琡民, 1837~1905)의 호이다. 자는 원칙(元則),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에서 살았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서로는 《계남집》이 있다. 걷지……빠른 것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신묘하기 때문에 빨리 하지 않아도 신속하고, 행하지 않아도 이른다."라는 말이 있다.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 1843~1911)를 말한다. 자는 영오(英五) 또는 후윤(厚允), 호는 노백헌(老柏軒)ㆍ애산(艾山),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인이다. 동성상응(同聲相應) 동류(同類)끼리 서로 기맥이 통하여 자연히 의기투합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같은 소리끼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끼리는 서로 찾게 마련이니,……이는 각자 자기와 비슷한 것끼리 어울리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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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김공 묘지명 松巖金公墓誌銘 공의 휘는 영록(榮祿), 자는 처국(處國), 호는 송암(松巖)이다. 김씨(金氏)는 계보가 진양(晉陽)에서 나왔으니,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 무진(茂珍)의 후손이다. 고조는 응복(應福)이다. 증조는 재탁(再鐸)으로, 진사(進士)이고 호가 백파(白波)이다. 조부는 한익(漢益)이다. 부친은 호상(浩相)이고, 모친은 문화 유씨(文化柳氏)로, 유사봉(柳思鳳)의 따님이다. 헌종(憲宗) 기유년(1849, 헌종15) 9월 24일에 능주(綾州)의 도장리(道莊里)에서 공을 낳았다.공은 체격이 크고, 자질과 성정이 영특하였다. 효성과 우애를 타고났으며, 지극한 행실이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다.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의열(鄭懿烈)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다. 3남 1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홍기(弘基), 원기(元基), 형기(炯基)이고, 딸은 양회익(梁會翼)에게 출가하였다. 을미년(1885, 고종32) 11월 23일에 정침(正寢)에서 별세하였으니, 향년 47세이다. 도장면(道莊面) 야산(夜山) 뒤 산기슭 유좌(酉坐)에 장사 지냈다.아, 홍기(弘基)는 나와 교유한 지 몇 해 되었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왕래하여 공을 잘 알고 있었다. 대개 공은 용모가 준수하고 수염이 아름다웠다. 자상하고 화락하였으며, 꾸밈이 없고 진실하며 말수가 적고 태도가 신중하여 기쁨과 노여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말은 어눌한 듯하였지만 몸가짐은 삼가고 조심하였으며, 가정을 거느림에 검소하였다. 형제를 대할 적에는 화락하였고, 친족과는 화기애애하였다. 집안이 안팎으로 조용하며 정돈되고 여유가 있었으며 온화한 기운이 넘쳤다. 비속하고 괴이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고, 거만하고 음탕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이롭고 은혜롭게 하는 것은 그의 심덕(心德)이고, 분수에 편안하고 낙천적인 것은 그의 신념이었다. 남의 성내는 말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게 하고 방자한 기색은 자신에게 미치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이구동성으로 칭송하였고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다. 거처하는 곳에는 샘과 바위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어 초가집을 짓고 오솔길을 내었으며 샘물을 끌어들이고 꽃을 심어 은자의 자취를 다 누렸다. 스승을 맞이하고 서적을 소장하여 자손을 가르쳐 가업의 전통을 힘써 보존하였다. 평소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아 문밖을 나가지 않아서 자신은 즐거움을 누리고 가정은 평안하였다. 매우 번성한 자손을 잘 가르쳐서 좋은 방향으로 닮도록 하여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라는 바람9)이 성대하게 있으니, 이른바 슬찬황류(瑟瓚黃流)10)라는 것은 그 이치가 참으로 그러하다.내가 만년에 이러한 벗을 사귀어 교유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다시 잃고 사석(沙石)만 남아 있으니, 벗들을 떠나 쓸쓸히 홀로 사는 슬픔만 간절할 따름이다.홍기(弘基)가 어느 날 책 하나를 소매에 넣고 와서 보여 주며 말하기를 "이는 선인의 유장(遺狀)입니다. 선인의 벗으로 선인의 행적을 서술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공이 있을 뿐입니다. 바라건대, 은혜롭게 한마디 말을 하여 묘도(墓道)에 기록할 글을 지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아, 어찌 차마 사양하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천도는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니 天道福善누가 그렇지 않다고 하겠는가. 孰云不然더구나 후손들은 矧伊雲仍남은 복록 끊임없이 이어짐에랴. 餘祿綿綿흰 물결 일렁이는 물가 白波之濱돌 무지개 다리 드리운 길. 石虹之阡지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過者指點바라보는 사람은 오래 머무네. 瞻者留連 公諱榮祿。字處國。號松巖。金氏系出晉陽。晉陽府院君茂珍后。高祖應福。曾祖再鐸。進士號白波。祖漢益。考浩相。妣文化柳氏思鳳女。憲宗己酉九月二十四日。生公于綾之道莊里。體質峻茂。才性開爽。孝友根天。至行聞人。聘河東鄭氏懿烈女。育三男一女。曰弘基元基炯基。女梁會翼。以乙未十一月二十三日。終于正寢。得年四十七。葬于道莊面夜山後麓酉坐。鳴呼。弘基從余遊有年。是以往來綢繆。得與公熟。盖公好容顔美鬚鬢。慈祥樂易。質實簡默。喜怒不形。言若不足。持身謹勅。御家儉約。處兄弟恰怡如也。與族戚訢訢如也。門闌內外。從容整暇。和氣盎然。鄙俚詭譎。不出於口。戱慢淫媟。不接於身。利人惠物。其心德也。安分樂天。其志守也。忿言不反於身。橫色不及於已。知不知。無不一辭稱道而無間言焉。所居有泉石之勝。結茅開逕。引流栽花。備餉幽逸之趣。邀師儲書。課子訓孫。勉存箕裘之傳。平日不求聞達。不出戶庭。身享安樂。家用平康。螽斯兟兟。式穀似之。蔚然有碩果不食之望。所謂瑟瓚黃流。其理信然。余在晩暮。得此一友而遊從。未幾旋復失之。沙石在後。只切雖索之悲。弘基一日袖示一冊曰。此是先人遺狀也。以先人友而加以述先人行者。惟公在焉。乞惠一言以識幽道。嗚呼。豈忍辭哉。銘曰。天道福善。孰云不然。矧伊雲仍。餘祿綿綿。白波之濱。石虹之阡。過者指點。瞻者留連。 큰……바람 《주역(周易)》 〈박괘(剝卦) 상구(上九)〉에 "큰 과일은 먹히지 않는다.[碩果不食]"라고 하였다. 이는 다섯 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인 상태에서 맨 위의 효 하나만 양(陽)인 것을 석과(碩果)에 비유한 것으로, 하나 남은 양의 기운이 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복을 다 누리지 않으면 자손이 대신 누리게 되리라는 바람을 말한다. 슬찬황류(瑟瓚黃流)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의 "산뜻한 저 옥돌 잔에 술이 들어 있네.[瑟彼玉瓚, 黃流在中.]"에서 나온 말로, 귀중한 그릇에는 그에 맞는 음식이 담기고 황류(黃流) 즉 울창주는 질장군에 담지 않는다면 뜻이다. 즉 성덕(盛德)은 반드시 녹(祿)과 수(壽)를 누리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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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안공 묘지명 錦舫安公墓誌銘 창업(創業)과 수성(守成 선조의 업적을 지킴)의 어렵고 쉬움에 대해서는 고인의 설에 자세하다. 어떤 가문의 선조가 바야흐로 창업할 적에는 모두 노심초사하며 온갖 고초를 겪고, 가시덤불 헤치며 비바람을 무릅쓰고 거의 망하려는 지경에서 보존하고 거의 죽으려는 지경에서 살아나 겨우 가문을 세워 자손을 공고하게 하려는 계책으로 삼았다. 자손이 된 자는 일찍이 조금의 공로나 수고로움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평안과 부귀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먹는 것을 계산하고 일에 걸맞게 하는 것은 또한 하는 일 없이 얻어먹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편안하고 부유함에 익숙하면 교만하고 사치한 마음이 생기고, 풀어지고 방탕함을 좋아하면 게으른 마음이 싹트기 마련이니, 게으르고 교만하고 사치하면 패가망신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어떻게 그 즐거움을 누리겠는가.이로써 말한다면 어떤 가문의 자제로서 끝까지 수성하는 자는 겉으로는 마치 도모하는 것이 없는 듯하지만 필시 그 마음 씀이 조심성 있고 치밀하여 남들이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위태로울 적에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망할 적에 망함을 잊지 않는 것은 실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보존될 때 망함을 잊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는 기미를 봄이 심오한 자가 아니면 능하지 못하니,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다는 말에 대해서 누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나는 여기에서 금방(錦舫) 안공(安公)의 어짊이 우연이 아님을 알겠다. 공의 대인(大人) 덕림공(德林公)이 창업하고 공이 이어서 수성하였으며, 또 자신이 수성한 것을 가지고 그 자식을 가르쳐 수성이 무궁함에 이르게 하였으니, 대대로 계승하는 가풍과 가법의 아름다움은 사림(士林) 집안의 모범이 되었다.공의 휘는 영(潁), 자는 도형(道亨), 금방(錦舫)은 그의 호이다. 안씨(安氏)는 계보가 순흥(順興)에서 나왔으니, 문성공(文成公)의 휘는 유후(裕后)이다. 3대를 내려와 휘 원형(元衡), 시호 문혜(文惠)에 이르렀으니, 공로로 죽성(竹城)에 봉해졌기에 자손이 이 때문에 관향으로 삼았다. 2대를 전해 내려와 직제학 휘 정생(挺生)에 이르러 조선에서 벼슬하였다. 그분의 아들 을겸(乙謙)이 영암 군수(靈巖郡守)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이 고을에 거주하였다. 그분의 아들 여주(汝舟)는 직장(直長)을 지내고 장흥(長興)에 우거하였는데, 자손이 이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9대를 내려와 휘 한징(漢徵)에 이르렀는데, 바로 공의 고조이다. 증조는 휘 택인(宅仁), 호 해옹(海翁)인데, 문학으로 세상에 이름났다. 조부는 휘 몽원(夢元)이고, 부친은 휘 수책(壽策), 호가 덕림(德林)이다. 모친은 전주 이씨(全州李氏)로, 이진방(李震芳)의 따님인데, 부덕(婦德)을 지녔다. 순묘(純廟) 신사년(1821, 순조21) 10월 1일에 강진(康津) 용정리(龍亭里)에서 공을 낳았다. 무신년(1848, 헌종14)에 능주(綾州)에 우거하다가 병인년(1866, 고종3) 7월 6일에 졸하였으니, 향년 46세이다. 고을의 서쪽 작약산(芍藥山) 아래 창포등(菖蒲嶝) 유좌(酉坐) 언덕에 장사 지냈다. 배위(配位)는 해주 최씨(海州崔氏)로, 최수완(崔粹玩)의 따님인데, 온순하고 행실이 얌전하였으며 예법을 어김이 없었다. 후사가 없어서 차자의 소생인 국정(國禎)을 양자로 들였다. 3녀가 있으니, 문방호(文邦浩), 민정호(閔禎鎬), 이교일(李敎馹)에게 출가하였다.공은 타고난 자품이 매우 훌륭하였다. 어려서 숙사(塾師)에 나아갔는데, 걸음걸이가 이미 단정하였다. 날마다 학습의 과정(課程)을 세웠는데 한결같이 《소학(小學)》에 근거하여 진행하였다. 자라서는 근체시(近體詩)와 당시 유행하는 문체를 함께 익혀 문장이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니, 이는 부모의 기대와 가문을 위한 계책으로 어쩔 수 없이 과거 공부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청탁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았으니, 득실에 대해서는 담담하였다. 어버이를 섬길 적에는 마음을 다해 기쁘게 해드리고 상례를 거행할 적에는 슬픔을 극진히 하였다. 사계절의 향사(享祀)에는 돌아가신 선조를 서글피 사모하는 마음을 지극히 하였으며, 원근에 있는 묘소에는 성묘하는 절차를 신중히 행하였다. 내외 친족에게는 은혜와 의리를 두루 베풀었으며, 향당의 붕우에게는 빠짐없이 안부를 물었다. 매양 명절이나 좋은 계절을 만나면 번번이 동지들과 술을 가지고 명산의 경치 좋은 곳에서 시를 읊조리다가 날이 저물면 돌아오곤 하였으니, 담박한 마음과 뛰어난 흥취는 세속의 번잡함을 시원스럽게 벗어난 의표가 있었다. 아, 이는 공이 자신을 수양하고 의리를 행하여 대대로 수성하는 효가 될 것이니,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나는 공에 대해서 집안 간의 교분이 있었지만 한스럽게도 한번 찾아뵙지 못하였는데 공은 이미 천고의 사람이 되었다. 백발 노년에 이르러 공의 아들 국정(國禎)과 더불어 막역한 교분을 맺어 뒤미처 공의 맑은 행실과 아름다운 법도를 더욱 자세하게 들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옛날을 회상하고 오늘날의 세태를 살펴보니 서글픈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이에 묘소의 지문(誌文)을 지을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다.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아버지가 시작하고 자식이 계승하는 것 父作子述천지간의 당연한 이치일세. 天經地義왕왕 실패하는 것 往往覆墜터럭을 태우는 것처럼 쉽네. 燎毛之易탁월한 금방 공은 有卓錦舫온후하고도 공손하였네. 溫溫其恭시례로 자신을 단속하였고 詩禮律已화락함으로 풍도를 이루었네. 愷弟成風위로는 선조를 욕되게 하지 않았고 上無所忝아래로는 후손에게 전해 주었네. 下爲可繼남은 경사 이어져 餘慶綿綿천년만년 누리리라. 於千萬世 創業守成之難易。古人之說詳矣。夫人家祖先。方其創業也。莫不困心衡慮。勞筋苦骨。披荊棘櫛風雨。存於幾亡之中。生於幾死之餘。僅能樹立家戶。以爲輩固子孫之計。爲子孫者。曾無錙銖之功。涓滴之勞。而坐享平康富貴之樂。其計食稱事。亦可爲不素餐者歟。然人情狃安富則驕侈生。樂舒肆則怠惰萌。怠惰驕侈。敗於不暇何以享其樂乎。以此言之。人家子弟終始守成者。外若無所猷爲。而必其用心謹密。行人所不能行者多矣。危不忘危。亡不忘亡。固人之所可能。而至於安不忘危。存不忘亡。則非見幾之深不能也。守成之難於創業。孰云不可。吾於是乎知錦舫安公之賢。爲不偶爾也。公大人德林公。旣創業之。公繼而守成之。又以守成於已者。敎誨其子。使之守成於無窮。而世述之風。家法之美。爲士林家楷範。公諱潁。字道亨。錦舫其號也。安氏系出順興。文成公諱裕后也。三傳至諱元衡謚文惠。以功封竹城。子孫因貫焉。二傳至直提學諱挺生。仕本朝。子乙謙。宰靈巖。因居是郡。子汝舟直長。寓居長興。子孫因居焉。九傳至諱漢徵。卽公之高祖也。曾祖諱宅仁號海翁。文學名世。祖諱夢元。考諱壽策號德林。妣全州李氏震芳女。婦德甚備。以純廟辛巳十月一日生公于康津龍亭里。戊申寓綾州。丙寅七月六日卒。享年四十六。葬于州西芍藥山下菖蒲嶝酉坐原。配海州崔氏粹玩女。婉順貞靜。閫範無違。無嗣。國禎以次房出。入爲後。有三女。適文邦浩閔禎鎬李敎馹。公天稟甚美。幼就塾師。步趨已正。日用課程。一依小學書。及長。兼習近體時文。葩藻贍麗。盖以父母之望。門戶之計。而不得不屈首場屋。然亦不爲干託僥倖之計。於得失泊如也。事親盡歡。執喪盡哀。四時享祀。極其霜露之感。遠近墳墓。愼其省掃之節。內外族戚。恩義周洽。鄕黨朋友。存訊無闕。每値良辰嘉節。輒與同志携酒。暢詠於名山水石之間。竟日而還。其沖矜逸趣。灑然有出塵之標。嗚呼。此公所以修身行義而爲世世守成之孝者也。曷不偉哉。余於公。有通家之誼。恨未得一拜。而公已千古矣。豈知至於老白首。而得與公之子國禎爲莫逆之交。追聞其行範爲加詳哉。緬古觀今。不勝悲悵之感。玆於幽堂之誌。不敢以非其人辭。銘曰。父作子述。天經地義。往往覆墜。燎毛之易。有卓錦舫。溫溫其恭。詩禮律已。愷弟成風。上無所忝。下爲可繼。餘慶綿綿。於千萬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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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자후에게 답함 答權子厚 전년에 두 차례 귀중(貴中 상대방이 머무는 지역)의 여러 곳으로 서한을 보냈으나 우리 형에게만 빠트렸습니다. 대체로 뵌 지가 오래되어 갑자기 자호(字號)와 지명(地名)을 잊어버렸습니다. 골똘히 생각하여도 끝내 떠오르지 않아서 함자를 적는 봉투 표면에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내 붓을 잡았다가 도로 놓는 일을 면치 못하고 겨우 순경(舜卿)에게 답한 편지로 인하여 감히 존함을 거론하고 대략 안부를 물었습니다. 어찌 10년 동안 의기가 투합했건만 하루아침에 상대를 잊어버리는 자가 있겠습니까. 마음 밖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마음 안에 있는 것은 잊지 않기 때문일까요. 부끄럽습니다. 뜻하지 않게, 혜서(惠書)가 초지(草枝)에서 왔는데 대략 편지를 보낸 지 이미 3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어찌하여 지금까지 시일을 끌었고 또 끝내는 지체되지 않고 전달되었을까요. 이어서 또 지난달 4일에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아, 인편이 있으면 소식이 없고 편지를 보내면 답장이 없던 것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았으니, 일반적인 인정으로 헤아리자면 누가 버림을 받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잘못을 따지는 일도 없고 망설임도 없이 은혜를 베푸는 마음이 더욱 근실하시니, 이처럼 보잘것없는 처지에 어떻게 이런 대우를 받겠습니까. 아우는 사문(師門)께서 돌아가신 뒤 또 대곡(大谷 김평묵(金平黙))을 잃고 쓸쓸하게 지내며 어울리는 사람이 없고 오직 영남의 몇몇 군자만 멀리서 의지하면서 우러러 받들 뿐입니다. 다만 세상의 변고가 어지럽고 처지가 얽매여 있어 도를 갖춘 이에게 나아가고 덕을 지닌 이에게 묻는 날은 아득히 멀어지고 미천한 모습은 하루하루 심하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이따금 동쪽을 바라보면 저도 모르게 허탈한 마음에 한숨이 납니다.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은 부모님 상을 당하고 풍오(豐五 김현옥(金顯玉))와 순경(舜卿 김운환(金雲煥))은 다른 지방으로 이사하였으니 모두가 간절히 그립습니다. 회옹(晦翁 주희(朱熹))이 말한 "생존하여 살아간다.31)"는 일도 오늘날 또한 매우 쉽지 않으니 어찌하겠습니까. 前年兩次修貴中諸處書。而於吾兄獨闕焉。蓋奉接之久。遽忘其表德與地名。雖著意思想。終是不起。而於封面標題處。難以下筆。故竟未免握管還停。而只因答舜卿書。敢擧尊啣。略致意焉。豈有十年受契。而一朝相忘者耶。抑所忘在外。而所不忘在內耶。愧愧。謂外惠幅自草枝來。蓋書出已三年。何其沈滯至此。而又竟不沈滯耶。繼而又拜去月初四日書。嗚呼有便無信。有書無答非止一二。揆以常情。孰不棄斥乎。然而不較不猶。施意愈勤。顧此無狀。何以得此。弟自師門逝後。又失大谷。孑然索居。無與爲徒。而遙遙倚仰。惟在於嶺中數君子而已。但世變支離。身事局束。就道問德。茫然無日。而賤狀衰徵。日深一日。有時東望。不覺曠然發喟也。艾山遭故。豊五舜卿搬移他地。俱切關情。晦翁所謂存活得過者。在今日亦甚不易。奈何。 생존하여 살아간다 《회암속집(晦庵續集》 권4 〈답저행지(答儲行之)〉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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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여【승우】에게 답함 答李寬汝【承愚】 적막한 타향살이에 참으로 그리움이 절실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한 폭의 서한이 훌쩍 날아와 서안에 놓였습니다. 손을 씻고 반복해서 읽자니 한 지붕 아래 한자리에 함께 있는 듯하여 이 몸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산을 나서고 산으로 들어온 것이 과연 말씀하신 대로이니 정처 없는 인생이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나 쑥대와 같습니다. 예전에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어찌 오늘과 같은 날이 있겠습니까. 요컨대 '명(命)'이라는 글자를 벗어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우리 관여(寬汝)처럼 친한 벗만이 지극한 정성으로 가엽게 여기고 앞뒤로 안부를 물어주시는 것이 정중할 뿐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정의(情意)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텅 빈 나머지 새로운 거처의 모든 일이 괴롭고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러나 오직 귀댁에 매우 가까워 이전에 견주어 끊임없이 서로 어울리는 것이 위안일 뿐입니다. 서울에 가신 춘부장(春府丈)께서는 언제 돌아오시는지요? 몹시 추운 겨울에 오가는 원로(遠路)가 노년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서 매우 염려가 됩니다. 서석산(瑞石山) 정상과 백암(白巖)으로 가던 길 중간에 두 차례 책망을 받았다고 운운하셨는데, 말의 맥락이 어떠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혹시 제가 분별없이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았는지요? "사색하는 공부가 적다.……"고 한 것은 과연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좌우(左右)께서 저를 허물하지 않고 받아들여 자신의 병통으로 여기시니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도량이 존경스럽습니다. 자기 잘못에 대한 말을 들으면 기뻐했던 것이 어찌 자로(子路)뿐이겠습니까.33) 대체로 좌우께서는 독실하게 지키는 일은 확실히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일이 매우 쉽지 않지만, 현자(賢者)께서 갖추시기를 기대합니다. 모쪼록 마음을 더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寄寓離索。懷想政切。謂外一幅德音。翩然賁案盥手三復。便若同堂合席。不知身之在遠也。出山入山。果如所喩。人生無根。如飛花飄蓬。前此非不知之。而豈有如今日者耶。要之。一命字出脫不得。順受之外。有何方法。惟親如我寬汝。曲垂矜憐。前後致意。不啻鄭重。此意何可忘。蕩然之餘。新寓凡百。無非辛酸。而惟以貴庄甚邇。從逐較前源源爲慰耳。春府丈洛旆。何時返次耶。嚴冬遠征。非老年可堪之事。殊切關慮。瑞石山上白巖途中。兩次受責云云。不記其語脈云何。或不至於妄發耶。小思索功夫云云。果有此說矣。左右不以爲咎。引以爲病。其受人之量。可敬可敬。聞過則喜。豈獨子路也。大抵左右篤實持守。的有餘地。此在吾儕。甚不易得。然求備之責。於賢者。幸須加意也。 자기……자로(子路)뿐이겠습니까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자로는 사람들이 그에게 허물이 있음을 말해 주면 기뻐하였다.【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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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일【영만】에게 보냄 與趙和一【泳萬】 동문(同門)이 수십 년이 지난 뒤 흰머리의 늙은이가 되고서야 비로소 얼굴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일이 어긋나는 것이 온통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유람은 한 세상에서 덕이 융성한 분들과 동문의 옛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방장산(方丈山 지리산)의 명구 승지(名區勝地)에서 한가롭고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었으니, 오직 이 일만이 이른바 "동우(東隅)에 잃고 상유(桑楡)에 수습하는"68) 것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감격스럽고 위로가 됩니다. 가을 기운이 점점 스산해지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시는 안부는 더욱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아우는 집으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도록 남은 피로가 사람을 괴롭히지만, 노쇠한 지경의 허약한 몸이니 당연한 형세일 따름입니다. 근래 영남의 상황은 어떠한지요? 외진 곳이라 들리는 소식이 없으니 늘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 일의 실마리를 찾자면 당장은 미리 헤아리지 못하지만, 동문 가운데 노성(老成)하고 기력(氣力)을 지녀 의지할 만하기로 노형(老兄)을 능가하는 이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모름지기 자세히 살피고 꼼꼼하게 따져서 일의 체모를 잃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총계 정사(叢桂精舍)의 속운(續韻)69)은 지난번 어지러운 여정(旅程) 중에 다급하게 엮은 것이라서 매우 말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윤색(潤色)을 했으나 역시 예전의 기량(伎倆)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적어 올리니 지난번 것을 대체해 주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同門數十年。至於老白首。而乃始面焉。人事差池。一至於是耶。然曩日之遊。俱得一世長德。同門舊要。從容敘暢於方丈名勝之區。所謂失之東隅。收之桑楡者。惟此一事可以當之。感感慰慰。未審秋氣漸肅。侍傍節宣。體事增重。遠溯不任。弟歸巢有日餘憊惱人。衰境孱質。勢固然耳。嶺中爻象。近來云何。僻居無聞。每切悶鬱。此事究緖。故未豫料而同門老成。有氣力可倚仗。無過於老兄。幸須詳審周察。無失事體。如何。叢桂精舍續韻。向於旅撓中。悤悤構作太不成語。今加潤色。亦不免前日伎倆。玆以書上用以替舊。如何。 동우(東隅)에……수습하는 후한(後漢) 때의 장수인 풍이(馮異)가 적미(赤眉)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다가 처음 싸움에서 대패하고, 얼마 뒤에 다시 군사를 정비하여 적미의 군대를 격파하였는데, 황제가 친히 글을 내려 위로하기를 "처음에는 회계에서 깃을 접었으나 나중에는 민지에서 떨쳐 비상하니, '동우에 잃었다 상유에 수습하였다.'라고 할만하다.【始雖垂翅回谿 終能奮翼黽池 可謂失之東隅 收之桑榆】"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동우(東隅)'는 동쪽 모퉁이로 해가 뜨는 곳인데 젊은 시절을 가리키고, '상유(桑楡)'는 뽕나무와 느릅나무로 해가 지는 곳을 가리키며 만년을 비유한다. 《後漢書 卷47 馮異列傳》 총계 정사(叢桂精舍)의 속운(續韻) 《일신재집(日新齋集)》 권1에 실려 있는 〈제조우화일총계정사(題趙友和一叢桂精舍)〉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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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 이공80)에 대한 제문 祭芝南李公文 祭芝南李公文오호라! 공은 여기에서 그친단 말입니까, 공은 여기에서 그친단 말입니까!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고 귀신은 어찌 갑자기 빼앗아 가는 것입니까! 만류해도 할 수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저승에서 끝내 다시 일어날 수 없고 긴 밤은 끝내 다시 새벽이 오지 않는 것입니까? 예순이 멀지 않으니 그 나이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며, 두 아들이 관례를 치르고 결혼을 하였으니 그 빚을 끝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잘것없는 내가 공을 위해 애통해 하는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과거 시험에 합격여부는 족히 비교할 것 없고 공명과 득실은 족히 따질 것 없지만 오직 세도(世道)가 날로 떨어지고 이단의 설이 날로 치성하니,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 개탄하고 담당하여 부축하고 호위하려는 뜻은 늙어서도 조금도 쇠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문의 큰일에 관계되어 조금이라도 보탤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이해를 돌아보지 않고 평탄하고 험난함을 가리지 않고 좌우로 주선하고 전후로 허겁지겁 힘을 다하였지만 혹 시행하였으나 능히 수정 윤색하지 못한 것이 있고, 혹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나 능히 시행하지 못한 것이 있고, 혹 기약하여 하려고 하였으나 능히 시작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이 한두 가지 일이 아닙니다. 시행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장차 상숙(庠塾)이 이루어져 향음주례의 향약이 흥성할 것을 보고 선현의 문집이 또 장차 차례로 간행되어 한 가닥 사문(斯文)으로 하여금 회태(回泰)의 조짐이 있게 할 것 같았는데, 뜻을 가지고도 펼치지 못하고 중도에 막힘이 이와 같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의림(義林)은 외람되이 고을 이웃에 있으면서 지우를 받아 친밀하여 낡은 집으로 나를 위로하고 예를 행하는 곳에 나를 맞이하고 강론하는 모임에 나를 불러 담론하고 토론한 것이 정성스러웠고 아취와 즐거움이 진진하여, 봄가을로 기약을 두어 혹 두세 차례 모여서 여생에 서로 지킬 계획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끝나버렸으니 향리에서는 누구에게 의뢰하며 붕우들은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상여가 이미 출발하여 유명간이 장차 막힐 것인데 병으로 상여 줄을 잡지 못하니 저버린 죄 산과 같습니다. 바람에 임하여 절하고 영결하니 눈물이 샘처럼 쏟아집니다. 오호라, 슬프도다! 영령께서는 흠향하소서.祭芝南李公文嗚呼! 公其止於斯耶, 公其止於斯耶! 天不憗遺, 鬼何遽奪? 挽之不得, 喚之不應, 九原終不可復作, 大夜終不可復曉耶? 六旬不遠, 其年紀非不多矣;二子勝冠, 其債業非不了矣, 而區區所以爲公痛惜者, 其意何居? 科第陞沈, 不足爲輕重;功名得失, 不足爲有無, 而惟是世道日下, 異說日熾, 其所以憂懼慨歎擔着扶衛之意, 不以老而少替也。凡係斯文大事, 有可以裨補萬一者, 不顧利害, 不擇夷險, 左右周章, 前後竭蹶, 或有施行而未克修潤者, 或有經始而未克施行者, 或有期擬而未克經始者, 非一二事也。行未幾年, 將見庠塾之就, 飮射鄕約之興, 而先賢文獻, 又將次第見行, 使一線斯文, 有回泰之漸, 豈知齎志未伸, 中路遽閼其若是耶? 義林忝在鄕鄰, 知遇密勿, 弔我乎弊廬, 邀我乎禮塲, 會我乎講社, 譚討款款, 趣樂津津, 春秋有期, 或再或三, 而爲餘年相守之計也。今焉已矣, 鄕里誰賴, 朋徒奚依? 靈輿已駕, 幽明將隔, 病未執紼, 辜負如山。臨風拜訣, 淚隕如泉。嗚呼哀哉! 靈其尙饗。 嗚呼。公其止於斯耶。公其止於斯耶。天不憗遺。鬼何遽奪。挽之不得。喚之不應。九原終不可復作。大夜終不可復曉耶。六旬不遠。其年紀非不多矣。二子勝冠。其債業非不了矣。而區區所以爲公痛惜者。其意何居。科第陞沈。不足爲輕重。功名得失。不足爲有無。而惟是世道日下。異說日熾。其所以憂懼慨歎擔着扶衛之意。不以老而少替也。凡係斯文大事。有可以裨補萬一者。不顧利害不擇夷險。左右周章。前後竭蹶。或有施行而未克修潤者。或有經始而未克施行者。或有期擬而未克經始者。非一二事也。行未幾年。將見庠塾之就。飮射鄕約之興而先賢文獻。又將次第見行。使一線斯文。有回泰之漸。豈知齎志未伸。中路遽閼其若是耶。義林忝在鄕鄰。知遇密勿。弔我乎弊廬。邀我乎禮塲會我乎講社。譚討款款。趣樂津津。春秋有期。或再或三。而爲餘年相守之計也。今焉已矣。鄕里誰賴。朋徒奚依。靈輿已駕。幽明將隔。病未執紼。辜負如山。臨風拜訣。淚隕如泉。嗚呼哀哉。靈其尙饗。 지남(芝南) 이공(李公) 이지호(李贄鎬, 1836∼1892)를 말한다. 자는 동현(東賢), 호는 지남(芝南),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자세한 내용은 《일신재집》 권18 〈지만 처사 이공 행장(芝南處士李公行狀)〉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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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범【권현】에게 답함 答任士範【德鉉】 병으로 궁벽한 움집에 칩거하고 세상에 버림받아 오랜 옛 친구가 안부를 묻는 길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세상의 정취이니 감사하는 마음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편지를 받고 여름날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신명이 애처롭게 여겨 기거(起居)가 평안하시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로 축원하는 바에 합치합니다. 둘째 영랑(令郞)은 몸가짐이 조심스럽고 지각이 열려서 성취한 바가 사리에 어그러지지 않고 온당하니 덕문(德門)이 아직 누리지 못한 복록과 남은 희망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의탁하는 마음도 소소하지 않습니다. 아우는 지난 몇 해 동안 병에 잘 걸려서 기혈(氣血)이 날로 손상되었으니 배우지 않으면 곧 쇠하는 것이 이치상 참으로 당연합니다. 무후(武侯)가 궁벽한 집에 살면서 탄식한 것100)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도 없건만 어찌 남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병입니다. 그러나 병이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는 것이지 스승이 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후생 소자(後生小子)가 어디에서 도를 듣겠습니까. 형의 염려가 지나치다고 이를 만합니다. 일부(一副)의 좋은 약제(藥劑)는, 세간에는 본래 창공(倉公)이나 편작(扁鵲) 같은 명의(名醫)가 있으니 아우처럼 천석고황(泉石膏肓 산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계책을 내겠습니까. 듣자니 저도 모르게 이마에 흐르는 땀이 발바닥까지 적십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病蟄窮竇。見漏於世。只有知舊存訊一路。此爲陽界意況。感佩曷任。仍審維夏省歡神勞。起居珍勝。實協祈祝。二郞謹勅開悟。所就穩藉。德門不食。餘望可量。區區寄意。亦爲不淺。弟年來善病。氣血日敗。不學便衰。理固宜然。武侯窮廬之歎。不能以自遣耳。奈何好爲人師。此固病也。然病在於好爲。而不在於爲師。不然後生小子。何從而聞道乎。兄可謂過慮矣。一副良劑。世間自有倉扁大手。如弟之方困於膏肓者。安能爲人謀也。聞之不覺頂汗流跖。諒恕如何。 무후(武侯)가……것 무후는 중국 삼국 시대 촉(蜀)나라 제갈량(諸葛亮)의 시호이다. 그가 지은 〈계자서(戒子書)〉에 "나이는 시시각각으로 들어가고 뜻은 해가 갈수록 사라져 버려 마침내 고락하여 세상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초라한 오두막에서 슬퍼하며 탄식한들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여기서는 젊은 시절에 부지런히 자신의 본업에 힘쓰지 못하여 마침내 이런 신세가 된 것이 한스럽다는 뜻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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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중81)에 대한 제문 祭朴學中文 하늘이 현철한 분 낸 것은 장차 큰일을 함이 있게 하기 위한 까닭인데 이에 그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그 행하는 것을 막히게 하여 혹 그 장수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데 이르니, 조물주는 여기에 그 어떤 마음을 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어리고 장성할 때 효도하고 공손하며 늙어서 예를 좋아하였으니, 행실은 옥루(屋漏)82)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학문은 고금을 종합할 수 있으며, 인(仁)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물에 은택을 끼칠 수 있고, 지(智)는 일을 도모하고 계책을 헤아릴 수 있으며, 곧으면서도 남과 절교하지 않고 화합하면서도 남과 얽매지 않는 것은 형이 거의 가까웠다고 하겠습니다. 오직 이 마경(馬卿)의 병83)과 현안(玄晏)의 질84)이 계속 이어져 남아 있어 일어날 수 있는 날이 없어, 신음 속에 세월을 보낸 것은 겨우 요절을 면하는데 이르렀고 그 건강했던 날을 찾아보면 또 삼분의 일이 되지 못하니, 어찌 덕은 넉넉하고 명에는 곤액을 당함이 이와 같습니까.오호라! 한 방에서 문을 닫은 채 고요히 지내며 병을 요양하여 사려는 점점 끊어지고 기욕은 점점 담박해져 본원의 자리에 조용하고 연구 탐색하는 즈음에 침잠하여 천하의 의리를 열람하고 천하의 지극한 즐거움을 알았던 것은 애초에 병을 요양하는 가운데로부터 터득한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혹 하늘의 뜻은 이런 질병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무너진 풍속의 도도한 가운데 섞이지 않고 사도(斯道)에 힘을 다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면, 어찌 학문이 진보함에 병 또한 심해져 이런 지경에 이를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오호라! 선왕의 전례(典禮)가 하루아침에 쓸어버린 듯 없어져 시상(時象)과 풍색(風色)은 극히 헤아리기 어려운데, 이에 능히 초연(超然)히 먼저 가서 숭정(崇禎)의 유민85)과 우리나라[小華]의 완인(完人)이 되는 것을 잃지 않게 하였으니, 또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닌 줄 알겠습니까. 효성으로 편모를 모시면서 봉양을 마치지 못하였고 여러 아들에게 공부를 권면하여 학업을 마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노형의 눈은 생각건대 응당 지하에서 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완인이 되었는데 또 완전한 복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여러 아들이 어질고 효도하니 그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소원을 족히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형께서는 마음 놓고 어두운 지하에서 걱정하지 마소서.아우는 부로를 잃은 외로운 처지에 쓸쓸히 지내고 있어 여생이 근심스러웠는데 중년 이후로는 오직 형에게 의지하였습니다. 경인년(1890, 고종27)에 식구들을 데리고 가까이 가서 살게 되었는데 형은 마침 병들었고, 지금 같은 마을에 와서 머물고 있는데 형은 또 돌아가셨습니다. 애달픈 나의 박한 운명은 단지 붕우와 지내는 한 즐거움이 있었는데 또한 능히 그 끝을 보장하지 못하단 말입니까. 형과 작별한 이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사이 세월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장차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험한 길이 앞에 있는데 맹인은 지팡이를 잃고 풍파가 끝이 없는데 외로운 배는 키를 잃었으니, 무엇으로 기대하고 면려하여 훗날 지하에서 보고할 것으로 삼겠습니까. 天生賢哲。將以有爲也。而乃拂欝其心。室塞其行。以至或不得其壽焉。造物於此。未知其何所用心耶。幼壯孝弟。老而好禮。行可以不愧屋漏。學可以經緯古今。仁可以利人澤物。智可以圖事揆策。貞而不絶於人。和而不泥於物者。兄其庶幾焉。惟是馬卿之病。玄晏之疾。沈綿彌留。無日可起。其所以捱過得呻吟中光陰者。僅至免夭。而求其康適之日。則又不得爲三之一矣。何其優於德而厄於命若是耶。嗚呼。杜門一室。靜居養病。思慮漸熄。嗜欲漸淡。從容於本源之地。沈潛於硏索之際。閱天下之義理。會天下之至樂者。未始不自養病中得來。或者天意降此疚疾。使之不雜於頹俗滔滔之中。而得以盡力乎斯道也。豈知學進而病亦進以至於此耶。嗚乎。先王典禮。一朝掃如。時象風色。極其叵測。乃能超然先逝。不失爲崇禎之遺民。小華之完人者。又安知非天意耶。孝奉偏闈。未得終養。勉課諸郞。未見卒業。老兄之目。想應不暝於地下矣。然旣爲完人。又求完福。其不難乎。況諸郞賢孝。足以了厥考未了之願。願兄釋然無虞於冥冥之中也。弟孤露離索。餘生惸惸。中年以來。所賴惟兄。庚寅之歲。絜家就近。而兄適病焉。今也來留同塾。而兄又逝焉。哀此薄命。只有朋友一樂。而亦不能保其終耶。別兄以後。屬纊以前。未知其間日月幾何。而將誰賴依。險路在前而盲人失相。風濤無涯而孤舟失柁。其何以期勉以爲他日下報之地耶。 박학중(朴學中) 박인진(朴麟鎭, 1846∼1895)을 말한다. 자는 학중, 호는 우인당(愚忍堂)·즉이재(則以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옥루(屋漏) 집에서 가장 어두운 서북쪽 방구석을 가리키는데, 아무도 모르는 자기의 마음속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네가 네 집에 있을 때에 보니 옥루에 있을 때에도 부끄러움이 없었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라고 하였다. 마경(馬卿)의 병 마경은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그의 자가 장경(長卿)이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을 앓아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여 무릉(茂陵)에 살다가 죽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현안(玄晏)의 질 현안은 진(晉)나라 황보밀(黃甫謐)의 호이다. 그는 일생 풍비(風痺)에 시달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서음(書淫)이라는 칭호를 얻었는데, 은거하며 저술을 일삼았다. 《晉書 卷51 皇甫謐列傳》 숭정(崇禎)의 유민(遺民)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남긴 백성이라는 뜻으로, 명나라는 망하고 숭정제는 죽었지만 여전히 숭정제를 황제로 여기고 명나라를 정통으로 여겨 그 백성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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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안순견86)에 대한 제문 祭安友舜見文 오호라! 대박(大檏)87)이 한 번 흩어져 기운이 가지런하지 않아 선한 사람이 반드시 복을 얻는 것은 아니고 어진 사람이 반드시 장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이 여기에 그칠 줄 누가 생각했겠는가. 체상(體相)이 단정하고 순수하며 풍의(風儀)가 자상(慈祥)하며 아량(雅量)이 굉후(宏厚)하며, 천리(踐履)가 신밀(愼密)하며, 지절(志節)이 강방(剛方)하며 재성(才性)이 영오(頴悟)함은 실로 천품으로 타고난 것이네. 그리고 출입하며 종유함에 어진 이를 친하게 여기고 단정한 사람을 취하였고, 강토(講討)와 문변(問辨)을 더하고 존양(存養)과 성찰(省察)로 이루었네. 문로(門路)가 이미 바르고 편책(鞭策)이 바야흐로 펼쳐져 안목은 날로 열리고 넓어지며, 근저[脚跟]가 날로 개척되었네. 응수하는 것이 분답해도 마음에 두지 않았고 험고함을 만나도 개의치 않았네. 얼굴빛에 드러난 것은 난폭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고, 마음에 드러난 것은 시기하거나 잔인한 뜻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네. 사람을 접함에는 온화한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들었고 사물에 응함에 정성스러운 뜻이 사물을 감동시켰네. 만약 나이를 빌려주어 지극하지 못한 것을 힘쓰게 하였더라면 이와 같은 천성으로 타고난 자질의 아름다움과 배우기를 좋아하는 독실함으로 반드시 장차 정미함을 끝까지 궁구하여 다스림이 광채를 드러내어 사문(斯文)과 세도(世道)의 책임이 그에게 있지 않았겠는가. 오호라! 하늘의 이치는 알기 어렵고 사람의 일은 도치되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른단 말인가!나와 군은 소년 때부터 알았던 벗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마음을 열어 정성을 드러내어 정히 의리의 교분을 하기에 이른 것은 10여 년 전부터인데 친밀한 정은 교칠(膠漆)88)도 그 깊음을 비유하기에 부족하고, 화합[諧和]하는 의는 궁상(宮商)89)도 그 지극함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네. 스스로 평생을 돌아보건대 한 가지 일도 고인과 견줄 만한 것이 없는데 오직 우리 두 사람을 관포(管鮑)90)와 뇌진(雷陳)91)의 사귐에 비기는 것은 사양하지 않을 바이네. 내가 굶주리고 곤궁한 것을 보면 창고를 다 기울여 도와주고, 내가 병든 것을 보면 의원을 찾고 약을 구해주고, 내가 환란을 당한 것을 보면 밥을 먹다가도 뱉어내고 달려와 주었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문득 편지를 보내 물어주고, 한 가지 의리라도 분명하지 않으면 문득 모여서 분변하였네. 버들 푸른 둑에 석양이 지거나 산 속 누대에 밤에 달이 뜰 때에는 혹 시를 읊조리며 배회하고 혹 술에 취해 강개한 회포 풀면서 유연히 천만 사람이 다하지 못하는 정과 천만 세월이 다하지 못하는 회포를 가졌네. 비록 시국의 상황이 날로 잘못되고 세상의 변화를 헤아리기 어렵지만, 죽으면 절의로 함께 죽고, 살면 학문으로 서로 마치자고 여겼는데, 군이 조금 더 머물지 않고 나를 버리듯이 떠날 줄 어찌 알았겠는가.갑오년의 변란92) 때 영평(永平)의 지역으로 동시에 달아나 숨었고, 병신년의 변고93) 때 화순[山陽]과 동복[福川] 사이로 손잡고 함께 도망가 숨었네. 앞으로의 풍랑은 이것보다 심함이 있을 것인데 급난(急難)을 주선함에 다시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 들어가서는 의지할 곳 없고 나가서는 갈 곳이 없으니 외롭고 쓸쓸하여 만사가 끝났네. 산은 높고 물은 넓으니 이 한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애달픈 마음 진술하여 영결을 고하니 눈물이 샘처럼 쏟아지네. 오호 통재라! 영령이여 아시겠는지? 嗚呼。大樸一散。氣運不齊。善者未必獲福。仁者未必得壽。而誰謂君之止於斯耶。體相之端粹。風儀之慈祥。雅量之宏厚。踐履之愼密。志節之剛方。才性之頴悟。固得於天資。而出入遊從。親賢取端。加之以講討問辨。濟之以存養省察。門路旣正。鞭策方張。眼目日以開廣。脚跟日以展拓。酬應紛沓而不以經心。遭遇險若而不以介懷。見於色者。未見有暴戾狷忿之態。發於心者。未見有忌克殘忍之意。接人而和氣薰人。應物而誠意動物。若使假之以年。而勉其所未至。則以若天姿之美。好學之篤。必將究極精微。出治光彩。而斯文世道之責。其不有在乎。嗚呼。天理之難諶。人事之倒置。一至於此耶。吾與君。不可謂非少年朋知。而至於開心見誠。定爲義理之交。則自十餘年前。而密勿之情。膠漆不足以喩其深。諧和之義。宮商不足以喩其至。自顧平生無一事。可況於古人。而惟以吾兩人擬之於管鮑雷陳之契。則所不辭也。見我飢困。傾囷倒廩。見我疾病。尋醫問藥。見我患厄。撤食吐哺。一日而不見。則輒書而問之。一義而未瑩。則輒聚而辨之。至於楊堤夕陽。山樓夜月。或吟哦徜徉。或酣醉慷慨。悠然有千萬人不悉之情。千萬古不盡之懷。雖時象日非。世變叵測。而以爲死則以節義同歸。生則以學問相終。豈知君不少留而棄我如遺耶。甲午之亂同時奔竄於永平之地。丙申之變。携手逃匿於山陽福川之間。前頭風浪。如有甚焉。則周旋急難。更與何人共之耶。入無所聊。出無所適。踽踽凉凉。萬事已矣。山長水濶。此恨何極。述哀告訣。淚落懸泉。嗚呼痛哉。靈其知否。 안순견(安舜見) 안국정(安國禎, 1854∼1898)을 말한다. 자는 순견, 호는 송하(松下),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집(松沙集)》 권38에 〈송하거사안공묘갈명(松下居士安公墓碣銘)〉이 실려 있다. 대박(大樸) 원시의 질박한 큰 도를 가리킨다. 교칠(膠漆) 부레풀과 옻나무의 칠처럼 뗄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의 진중(陳重)과 뇌의(雷義)가 돈독한 우정을 발휘하자, 사람들이 "교칠이 굳다고 하지만, 진중과 뇌의의 우정만은 못하다.[膠漆自謂堅, 不如雷與陳.]"라고 칭찬했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81 獨行列傳》 궁상(宮商)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오음(五音) 가운데 두 음을 가리킨다. 이 두 음은 위아래에서 서로 응하여 소리를 잘 조화시키기 때문에 옛사람들이 흔히 두 사람의 친밀한 정을 궁음과 상음이 서로 떠나지 않고 조화를 잘 이루는 데에 비유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친구 사이의 친밀함을 의미한다. 관포(管鮑) 춘추 시대 끈끈한 우정의 대명사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를 말한다. 뇌진(雷陳) 후한(後漢) 때 우정이 깊었던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을 말한다. 갑오년의 변란 1894년(고종31) 6월 21일에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궁궐을 점령한 사건을 말하는데, 이를 통상 갑오변란(甲午變亂)이라고 한다. 이후 민씨(閔氏) 정권은 붕괴되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섭정하여 제1차 김홍집(金弘集) 내각을 성립시키고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를 설치하여 갑오개혁(甲午改革)을 단행하게 된다. 이에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한 유생(儒生)들은 갑오변란과 일본의 사주를 받은 친일적 개화 정권의 개혁 정책을 민족 존망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상소를 올리는 한편 의병을 모집하는 활동까지 전개하였다. 《김상기, 조선말 갑오의병전쟁의 전개와 성격,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3권,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편, 지식산업사, 1989》 병신년의 변고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1896년 2월 11일 친러 세력과 러시아 공사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사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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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서【계】에게 답함 答黃國瑞【稽】 이별한 뒤 언제 만났는지 아득하여 돌이켜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돌아보건대 이렇게 천한 목숨이 지난 몇 년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거나97) 후미진 구석을 떠돌거나 문을 닫고 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을 겪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곳은 사방의 벗들과 평소에 교유하던 곳과 비교하면 아득하기가 마치 세상 소식과 막혀있는 듯합니다. 뜻하지 않게 노형(老兄)께서 그래도 이렇게 저를 잊지 않고 버리지 않고 친필로 쓰신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장황하고 자세하여 매우 간절하였습니다. 편지를 펴놓고 여러 번 읽어보니 저도 모르게 고질병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 다시 옛날에 모시고 뒤따르던 때의 기분이 완연합니다. 감격스럽기 그지없어 대할 방도를 모르겠습니다. 서신을 통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새해를 맞아 모든 복이 모인 것을 알았습니다. 신명이 덕을 지닌 군자를 도와주는 것이 이치상 응당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우러러 축하드리며 실로 저의 간절한 마음에 부합합니다. 아우는 죽을 지경에 이르러 숨쉬기도 벅차고 날이 갈수록 더욱 쇠약해져 애타는 심정을 달래면서 그저 빈궁한 집에서 비탄에 잠길 뿐입니다. 선대부장(先大夫丈)의 묘갈문(墓碣文)에 관한 일로 또 이미 중암 선생(重菴先生)98)을 찾아뵈었습니까? 어버이를 현창(顯彰)하는 정성이 사람을 감탄하여 우러러보게 합니다. 아우는 참으로 하찮은 존재이건만 선생께서 어떻게 아셨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형들이 종유하는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곡진하게 말씀드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듣자니 놀라워 얼굴이 붉어집니다. 一別會在何時。茫然不可追記矣。顧此賤命。年來經歷。無非雲雷水山。流離僻隅。杜門病廢。此於四方知舊平昔交遊之地。漠然若隔世消息。不謂老兄猶且不忘不遺。親賜手書。張皇覼縷。極其懇惻。披玩三復。不覺沈痾之祛身。而完然復是昔年陪從時氣味。感領萬萬。不知所以爲對。仍審侍省迓新。百福湊集。神相愷悌。理應如此。仰賀區區實副懇情。弟風樹殘喘。日益衰頹。撫念耿耿。只有窮廬悲歎而已。先大夫丈碣文。又已奉謁於重菴先生耶。顯親之誠。令人嘆仰。如弟何等蟻蝨。而先生何從而知之。此必兄輩。以從遊之私。而曲爲之說耶。聞之瞿然騂顔。 어려운……있거나 원문은 '운뢰수산(雲雷水山)'이다. '운(雲)'과 '뢰(雷)'로 이루어진 것이 둔괘(屯卦)이고 '수(水)'와 '산(山)'으로 이루어진 것이 건괘(蹇卦)로서 모두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나 곤고(困苦)한 처지에 놓인 것을 상징한다. 중암 선생(重菴先生) 중암은 김평묵(金平默, 1819~1891)의 호이다. 자는 치장(稚章),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1776~1852)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중암집》이 있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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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함92)에게 써 보이다 書示黃景涵 성(性)은 도(道)의 형체(形體)이고 심(心)은 성(性)의 부곽(郛郭 성곽(城郭))이며 신(身)은 심(心)의 구우(區宇 구역(區域))이고 물(物)은 신(身)의 주거(舟車)이다.93) 이것은 형기(形氣)와 신리(神理)를 가지고 정밀함으로부터 조악함으로 나아가 말한 것이며 강절(康節 소옹(邵雍))이 이른 "기(氣)는 신(神)의 집이고 체(體)는 기(氣)의 집이다."94)라는 것이다. 이(理)는 형체가 없지만 성(性)이 감싸고 있으므로 형체(形體)라고 하고, 심(心)은 성(性)을 담고 있으므로 부곽이라고 하고, 신(身)은 심(心)을 담고 있으므로 구우라고 하고, 신(身)은 물(物)을 이용하여 물(物)을 움직일 수 있으므로 주거(舟車)라고 한다.그렇다면 부곽은 기(氣)의 정령(精靈)으로 말하는 것이고 구우는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니 그 정조(精粗)와 선후(先後)가 뚜렷하지 않겠는가. 주자(朱子)가 언급한 주재(主宰)와 부곽(郛郭)은 각각 별개의 설이니 연관 지어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노사 선사(蘆沙先師)의 기질설(氣質說)도 본래 이것 때문에 펼친 것이 아니다. 선사께서는 두 개의 기질이 잘못됨을 변별한 것이지, 어찌 일찍이 기질은 있지만 정령은 없다고 하셨는가. 부곽(郛郭)은 부곽일 뿐이지 어찌 부곽이 주재(主宰)와 묘용(妙用)의 뜻을 지녔겠는가. 부곽을 주재(主宰)로 여긴다면 저 세 번 신칙하고 다섯 번 명령하거나95), 잡았다 풀어주면서 기미에 따라 처리하는 사람은 또 주재자의 주재이겠는가. 만 리나 되는 성도 성이 스스로 굳건하지 못하고 7리짜리 곽(郭 외성(外城))도 곽(郭)이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면 주재의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끝내 조리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일단 처중(處中)96)과 논의하라. 절충한 논의를 듣고자 한다. 性者道之形體。心者性之郛郭。身者心之區宇。物者身之舟車。此以形氣神理。而由精趨粗說。如康節所謂氣者神之宅。體者氣之宅也。理無形而性爲結窠故曰形體。心具性故曰郛郭。身具心故曰區宇。身藉於物而能運物故曰舟車。然則郛郭以氣之精爽而言。區宇以人之軀殼而言。其精粗先後。不其瞭然乎。朱子主宰及郛郭。各是一說。不可連累看。且蘆沙先師氣質說。本非爲此而發也。先師辨兩箇氣質之非。何嘗言有氣質而無精爽乎。郛郭只是郛郭安有以郛郭而有主宰妙用之義。若以郛郭爲主宰。則彼三申五令操縱合變之人。是又主宰之主宰乎。萬里之城。城不能自固。七里之郭。郭不能自守。則烏在其主宰之義乎。思之思之。終是不倫。未知以爲如何。且與處中講質焉。願聞折中之論。 황경함(黃景涵) 경함은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의 자이다. 호는 중헌(重軒)‧은구재(隱求齋)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기정진(奇正鎭)의 제자인 정의림(鄭義林)과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외필변변(猥筆辨辨)〉‧〈납량사의기의변(納凉私議記疑辨)〉‧〈납량사의기의추록변(納凉私議記疑追錄辨)〉을 지어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성리설(性理說)을 논박하였다. 저서로 《중헌집(重軒集)》이 있다. 성(性)은……수레이다 소옹(邵雍)의 《격양집(擊壤集)》 〈자서(自序)〉에 나오는 말이다. 기(氣)는……집이다 소옹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나오는 말이다. 세 번……명령하거나 손자(孫子)가 오왕(吳王) 합려(闔閭) 앞에서 여자들을 부하로 삼아 시범을 보일 적에 "일단 약속을 정하여 선포한 다음에 부월을 설치해 놓고는 곧바로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신칙하였다.[約束旣布, 乃設鈇鉞, 卽三令五申之.]"라는 말이 《사기(史記)》 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나온다. 처중(處中) 양회락(梁會洛, 1862∼1935)을 가리키는 듯하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처중(處仲), 호는 동계(東溪),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다.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과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납량 사의(納凉私議)》와 《외필(猥筆)》 등을 마음속으로 터득하고, 주리론(主理論)을 발휘하고 천명하여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성사 심제설(性師心弟說)을 통렬히 반박하였다. 문집에 《동계당 유고(東溪堂遺稿)》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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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여주에게 써 주다 書贈吳汝周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단지 하려고 하는 것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의 다툼일 뿐이다."97)라고 하였다. 대체로 기품(氣稟)이 편벽되어 기호(嗜好)가 다르고 견문(見聞)에 얽매어서 추향(趨向)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평생토록 독서를 해도 읽는 내용이 무슨 일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교유(交遊)하는 이들 사이에서 말이 간혹 여기에 이르면 거리낌 없이 난폭하게 굴거나 반드시 멍하니 반성하지 못하여 인가하고 승낙하는 자가 대체로 적었다.병술년(1910, 순종4) 봄, 내가 오봉(五峯)에서 객지 생활을 할 때 오군 여주(吳君汝周)가 날마다 나를 찾아와 함께 어울렸다. 또한 "게으름을 피우다가 학문의 기회를 놓친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간절히 이 일에 마음을 두고자 하니 경계가 되는 한 말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자네가 이미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찌 내 말이 필요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경중(輕重)의 권도(權道)가 내면에 명확하지 않고 취사(取捨)의 분별이 외부에서 결정되지 않으면 길을 나섰다가 전도 착란(轉倒錯亂)되어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떨어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것을 여주(汝周)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다.무릇 부귀와 빈천은 사람의 일생에서 미리 정해진 분수이고 도덕과 인의(仁義)는 사람의 마음에 고유(固有)한 성(性)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가벼운가? 무엇이 추구할 수 있고 무엇이 추구할 수 없는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입각(立脚)98) 초기에 팔자타개처(八字打開處)99)를 헤아려 변별해야 한다. 이 단계를 지나서 나아가면 또 하나의 험난한 관문이 나타나 눈에 힘을 주어야 할 곳이 있으니 위기(爲己)와 위인(爲人)100)이 그것이다.일찍이 생각해보니,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받은 모든 이치와 모든 법칙은 저절로 해야 하는 일인가, 외부의 사물을 쫓아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인가? 일상생활에서 이르는 곳마다 성찰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본령(本領)이 수립된다. 이로 말미암아 정밀하고 투철하며 숙련되고 정통한 단계에 이르는 것은 곧 부지런히 힘쓰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맹자(孟子)가 "천하의 넓은 집[인(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大道)[의(義)]를 행하고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며 빈천(貧賤)이 절개를 옮겨놓지 못한다."101)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비로소 남아 대장부의 일이다. 바라건대 여주(汝周)는 힘쓰거라! 朱子曰。人之爲學。只爭箇肯與不肯。蓋氣稟所偏。嗜好不同。見聞所拘。趨向不一。是以終身讀書。而不知是所讀爲何事者多。交遊之間語或及此。則非悍然不顧。必茫然不省。其印可而肯諾者蓋少矣。丙戌春。余客於五峯吳君汝周。日來相從。且曰。因循失學久矣。自今切欲留心此事。願賜一言警砭也。予曰子旣有肯可之意。何須於我言。然輕重之權。不明於內。取舍之分。不決於外。則未有不臨途顚錯半上落下者。此則不可不爲汝周告之。夫富貴貧賤。人生素定之分也。道德仁義。人心固有之性也。然則何者爲重。何者爲輕。何者可求。何者不可求。何者當求。何者不當求。立脚之初。所當商量辨別八字打開處。過此以往。又有一層重關猛着眼目處。如爲己爲人是也。試思天命人受。萬理萬法。是自然合做底事耶。是徇外自私底物耶。日用之間。隨處省察。不容放過。則本領立矣。由此而至於精透純熟。則在乎勉焉爾。孟子曰。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富貴不能淫威武不能屈。貧賤不能移。如此方是男兒事。願汝周勉之。 사람이……뿐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 〈독해학법(讀大學法)〉에 나오는 내용이다. 입각(立脚)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몸을 의연히 지키는 것을 말한다. 팔자타개처(八字打開處) 팔자 모양의 형태로 문을 활짝 열어젖혀서 가려져 있던 앞산을 보여 주었다는 뜻으로, 조금도 숨김없이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희의 편지에 "요즈음 《대학》을 보다가 이러한 뜻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현이 이미 '팔(八)' 자가 벌어지듯 활짝 펼쳐 주었건만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서 오히려 밖으로 미친 듯이 치달리고 있다.[近日因看大學, 見得此意甚分明, 聖賢已是八字打開了. 但人自不領會, 却向外狂走耳.]"라고 하였다. 《晦庵集 卷35 與劉子澄》 위기(爲己)와 위인(爲人)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을 한다."라는 공자의 말이 보인다. 천하의……못한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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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지의 자에 대한 설 吳永之字說 무릇 인정(人情)은 나쁜 점을 미워하고 훌륭한 점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몸과 마음을 다해 애를 써서 훌륭한 점을 키우는 쪽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은 지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따지고 터럭만큼도 헤아려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고 한칸 한칸 더하여 반드시 천 리 멀리 뻗어나가고 만 장(丈)에 이르도록 높이 쌓고자 하여야 한다. 그러나 키우는 방법에는 가함과 불가함이 있으니 가한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키우는 방도가 도리어 줄이는 것이 된다. 곤궁함과 통달함, 높고 낮은 우열은 사물의 장단(長短)이고 선악(善惡), 사정(邪正)은 이치의 장단이다.천하의 사물은 모두 형통하기만 하고 막히지 않거나 높아가기만 하고 낮아지지 않은 법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본래 처음 생겨났을 때 얻은 것이고 지력(知力)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천하의 이치는 본래 모두 지선(至善)하고 악(惡)이 없으니 이 또한 처음 생겨났을 때 얻은 것이고 터럭만큼도 이지러트릴 수 없는 것이다. 저쪽에서 잘한 것이 많더라도 이쪽의 잘못을 보충할 수 없지만, 안에서 힘입은 것이 이미 깊다면 외부의 가벼운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사람은 그 물체를 볼 수는 있어도 그 이치를 보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각기 잘하는 것을 지키면서 스스로 만족해한다. 이는 마치 철 따라 나타나는 곤충이나 철새가 어지럽게 다투듯 울어대다가도 순식간에 아득히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다.아, 하늘과 땅이 장구(長久)한 까닭, 해와 달이 항구(恒久)한 까닭, 험준한 산이 무너지지 않는 까닭, 강과 바다가 마르지 않는 까닭, 사람의 병이(秉彝)가 추락하지 않은 까닭은 과연 어째서인가? 이것이 예부터 뜻을 지닌 선비가 두려워하고 분발하여 물루(物累)에 얽매지 않고 형해(形骸)에 구애되지 않으며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고 천하의 큰길[大道]을 다니며 천하의 대장부가 된78) 다음에야 멈추었던 까닭이다. 일상을 떠나지 않아도 존재하고79)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지 않아도 풍족하고 집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교화를 이루고80) 처신은 매우 간략하면서도 지극히 광대하고 힘쓰는 바는 매우 비근하면서도 지극히 장대하니, 이것이 삶과 죽음을 떠나 끝까지 추구해야 하는 가장 첫 번째 일이다.《주역(周易)》에 "항(恒)은 형통하다."81)라고 하고, 또 "원서(原筮)하여 크고 떳떳하고 올곧다."82)라고 하였다. 오군 장섭(吳君長燮)이 영지(永之)를 자(字)로 삼았으니 장구하고 항구한 뜻에 대해서 반드시 구별하고 힘을 쏟은 바가 있을 것이다. 삼가 나 자신의 고루함을 잊고 설(說) 한 편으로 거듭 면려한다. 夫人之情。莫不惡短而好長。其所以勞心勞力。使之趨於長長者。錙銖計量。毫釐揣摩。分分增累。寸寸附益。必欲引而至於千里之遠。築而至於萬丈之崇。然長有可不可。苟不擇其可。則其所以長之。適以短之。窮通軒輊。物之短長也。善惡邪正。理之短長也。天下之物。不能皆通而不窮。皆軒而不輊。則此固得於有生之初。而不可以知力推移者也。天下之理。本皆至善而無惡。則此亦得於有生之初。而不可以絲毫虧欠者也。得於彼者雖多。而不足補此之失。資於內者旣深。則可以見外之輕。但人能見其物。而不能見其理。是以各占所長。自多爲得。如候䖝時鳥。紛然競聒。而須臾之頃。漠然無有也。嗚呼。天地之所以長永。日月之所以恒久。山嶽之所以不頹。河海之所以不渴。人彛之所以不墜。其故果何爲哉。自古有志之士。所以惕勵奮拔。不囿於物累。不局於形骸。而居天下之廣居。行天下之大道。爲天下之大丈夫而後己者也。不下帶而存。不求人而足。不出家而成。所處至約而至廣。所務至近而至長。此是生死究竟太上第一着也。易曰。恒亨。又曰。原筮元永貞。吳君長燮。表德以永之。其於長永常久之義。必有所擇而用力者矣。謹以一副說。忘其固陋。而重加勉焉。 천하의……대장부가 된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천하의 넓은 집[仁]에 거처하고,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그것을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기에, 부귀가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그 절개를 바꾸지 못하며, 위세나 무력이 그 지조를 꺾을 수 없을 때, 이를 일러 대장부라 한다."라고 한 데에서 온 말이다. 일상을 떠나지 않아도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말은 평이하면서도 뜻은 심원한 것이 좋은 말이고, 지키기는 간단해도 베풀어질 수 있는 것이 좋은 도이니, 군자의 말은 눈앞의 일상을 얘기하지만 거기에 도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희의 주에 "옛사람들은 시선이 허리띠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허리띠 위는 바로 눈앞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지극히 가까운 곳이다.[古人視不下於帶, 則帶之上, 乃目前常見至近之處也.]"라고 하였다. 이는 군자의 말은 눈앞에 보이는 일상적인 일을 말하지만 도는 항상 여기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집을……이루고 《대학장구》 전 9장에 "군자는 집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나의 효(孝)를 신하가 본받으면 임금을 잘 섬기게 되고, 제(弟)를 본받으면 장관을 잘 섬기게 되고, 자(慈)를 본받으면 대중을 잘 부리게 된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항(恒)은 형통하다 《주역》 항괘 괘사(卦辭)에 보인다. 원서(原筮)하여……올곧다 《주역》 〈비괘 단(彖)〉에 "원서(原筮)하여 크고 떳떳하고 올곧아야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은 강중(剛中)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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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증에게 적어 보이다 書示洪士拯 학자(學者)는 배우지 않으면 그만이다. 만약 배우고자 했다면 반드시 먼저 성인(聖人)의 뜻을 구하는 것이 마치 활 쏘는 자가 과녁을 보듯 하고 나그네가 집을 향해 가는 듯한 다음에야 지향이 있어 어긋나지 않게 된다. 이른바 성인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평상시 짧은 시간을 통해 대략만 알고서 함부로 말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쪼록 진실하게 감당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 천만인을 능가하는 정신과 기력을 갖추어 용이나 뱀을 사로잡듯 하고 호랑이나 표범을 때려잡듯 하며 하루 24시간 동안 조금도 나태함이 없게 하는 것, 이것을 일러 뜻을 지킨다[持志]고 한다. 이와 같다면 이른바 경(敬)을 주로 삼는 공부도 안배나 탐구에 기대지 않아도 이 과정에서 저절로 갖추어진다.무릇 경(敬)은 주일(主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이르고 일(一)은 무적(無適 다른 데로 가지 않는 것)을 이른다. 이것이 학문(學問)의 밭이고 만사(萬事)의 본령이다. 항상 보존하여 수신 양성(修身養性)에 익숙해지면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이 모두 여기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치지(致知)는 학문을 하는 관건이고 성문(聖門)으로 들어가는 길이니, 반드시 일용(日用)의 절실한 곳과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에 나아가 차례대로 지선(至善)에 꼭 들어맞는 곳을 궁격(窮格)83)하여 마음과 눈에 밝게 드러나도록 해야만 세월이 지난 뒤에 응당 패연(沛然)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 요지와 핵심은 단지 '신독(愼獨)' 2자에 있다. 이것을 놓치면 보존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고 거짓된 것으로 돌아가 끝내 덕을 닦는 단계로 들어갈 방도가 없다. 《중용(中庸)》에서 "군자의 미칠 수 없는 점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바이다."라고 하였으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입지(立志), 주경(主敬), 치지(致知), 신독(愼獨), 이 네 가지는 형세로 볼 때 서로 의존하므로 있으면 전부 있게 되고 없으면 전부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조리(條理)와 두서(頭緖)는 또 각각 진력(盡力)하지 않을 수 없다.가만히 사증(士拯)이 학문으로 시작하는 정로(正路 정도(正道))를 보건대 연력(年力)이 매우 넉넉하니,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이단 사설(異端邪說)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아마도 옛사람이 말하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기쁜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의림(義林)은 오랜 세월 힘을 기울이지 않아 40, 50의 나이에 이르도록 알려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보면 놀랍고 부끄러울 뿐이며 죽더라도 따라잡을 길이 없다. 다만 그를 아끼는 나의 처지를 참람되고 망령되다는 이유로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삼가 그의 청으로 인하여 내 생각을 대략 얘기해주어 한거(閑居)하면서 수양하는 것을 거드는 방도로 삼는다. 學者不學則已。旣欲學之則必須先有求爲聖人之志。如射者之視的。行者之赴家。然后有所向望而不差矣。所謂求聖人之志者。不是尋常霎時略知漫說而已也。須是眞實擔當。奮迅激勵。有聳千萬人底精神氣力。如捕龍蛇。搏虎豹。使一日十二時。無少懈怠。此之謂持志也。如此則所謂主敬之功。亦不待安排尋覓而卽此自在矣。夫敬者主一之謂。一者無適之謂。此是學問之田地。萬事之本領也。常常存存。涵養得熟。則致知力行。皆從此中出。自然充將去。然致知是爲學關鍵。入聖路脈。必須就日用切近心術隱微處。次第窮格得至善恰好處。令其昭著於心目之間。日累月積。自當沛然。然其要歸肯綮。只在於愼獨二字。於此放過。則所存所知。皆歸虛假。而終無以入德矣。中庸曰。君子之所不可及者。其惟人之所不見。可不勉乎。大抵立志主敬致知愼獨四者。其勢相須。有則俱有。無則俱無。然其條理頭緖。又不可不各致其力也。竊覵士拯發軔正路。年力甚富。不爲曲技所泥。不爲異說所劫。進進不已無容間斷。則古人所謂平生一大歡喜事者。庶乎有以見之矣。嗚呼。義林悠悠不力。至於四十五十。猶是無聞人。俯仰駭慙。有死莫追。但區區相愛之地。必不以僭忘見斥。故謹因其請而略道鄙意。以爲燕居潛修之助云爾。 궁격(窮格) 궁리 격물(窮理格物)의 준말로, 사물의 이치를 철저히 연구하여 물리(物理)의 극치에 도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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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경에게 적어 보이다 書示閔子敬 집안에서의 일상생활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며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이 낮 동안의 첫 번째 일이다. 몸은 먼지와 때를 깨끗이 씻어내어 더럽게 하지 말고, 의관(衣冠)은 단정하게 정리하여 흐트러트리지 않게 하고, 집안은 깨끗하게 청소하여 산만하거나 난잡하게 하지 않고 책상은 가지런히 정리하여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용모와 몸가짐은 매우 단정하고 낯빛은 매우 엄숙하고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는 매우 장중하고 말하는 것은 매우 장엄하고 남을 대하는 태도는 온순하고 공경스럽기에 힘쓰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의(義)와 이(利)를 변별한다.모든 일상생활에서 자신과 집안에 무익한 일을 헤아려 일체 제거해야 하니, 예를 들자면 쓸데없는 출입과 쓸데없는 말 따위가 그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전심치지(專心致志)하여 의미(意味)와 종지(宗旨)를 궁구하기에 힘쓰고 대강만 훑어보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간혹 생각해보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그때그때 적어 놓아 나중에 질문할 기회를 기다린다. 독서와 궁리(窮理)의 여가에는 늘 정신을 보양(保養)하여 깊이 생각하는 듯 진지한 태도를 취한다.대체로 하루 열두 시각 자신을 일깨우고 각성하여 조금도 방탕 안일(放蕩安逸)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저절로 보존될 것이다. 마음이 보존되면 대본(大本)이 확립된다.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는 이르기를, "지극히 고귀한 것이 도(道)이고 지극히 존귀한 것이 덕(德)이다."84)라고 하였다. 주자(朱子)는 이르기를, "세상만사는 잠깐 사이에 바뀌고 사라지니 모두 마음에 둘 필요가 없고 오직 궁리(窮理)와 수신(修身)을 구경법(究竟法)으로 삼아야 한다."85)라고 하였다. 아, 힘쓰거라! 마을에 흔히 보이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데 그치지 말라. 居家夙興夜寐。昏定晨省。爲日間第一事。在身則洗濯塵垢。毋令汚穢。在衣冠則整齊緊束。毋令寬慢。在室庭則灑掃潔淨。毋令殽雜。在几案則秩秩整勑。毋令紛散。容體極其端莊。顔色極其齊肅。坐立極其凝莊。言語極其簡重。接人務令和敬。處事辨別義利。凡日用之間。度其無益於身事家事者。一切裁省。如閒出入閒說話之類是也。讀書則專心致志。務窮義趣。不可涉獵放過。其或有思不得處。隨卽箚記。以俟後日質問。讀書窮理之餘。常常休養精神。儼然若思。大抵一日十二時。提撕警覺。母令少有放逸。則心自存。心存則大本立矣。周子曰。至貴者道。至尊者德。朱子曰世間萬事。須臾變滅。皆不足置胸中。惟有窮理修身爲究竟法。嗚呼勉之。母止爲閭巷間尋常人也。 지극히……덕(德)이다 주돈이(周敦頤)의 《통서(通書)》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만사는……한다 《주자전서(朱子全書)》 권1 학일(學一) 〈소학(小學)〉에 "세간의 온갖 일은 잠깐 사이에 변화하여 없어지는 것인 만큼 모두 가슴속에 담아 둘 가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오직 궁리하고 수신하는 것이야말로 구경법이라고 하겠다.[世間萬事, 須臾變滅, 皆不足置胸中. 惟有窮理修身, 爲究竟法耳.]"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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