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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 김공113) 한섭에 대한 제문 祭吾南金公【漢燮】文 남쪽 고을에서 우뚝 태어나사문을 창도하여 밝혔네널리 배움에 일정한 방소가 없어세 선생의 문하에서 따라 섬겼네취사는 바름을 얻었고조예는 어긋나지 않았네산림에서 한가로이 지내니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았네운수가 양구114)를 만나사설이 크게 일어났네일대가 물 끓듯 하여피가 천 리에 흘렀네호남의 의사들한 사람이 없다고 탄식하네베옷에 콩잎 먹으면서도분기하여 몸을 돌아보지 않았네고을의 뜰에 급히 달려가니적들이 모이고 병사들은 흩어졌네죽음 보기를 돌아가는 듯이 여겨조용하고 어지럽지 않았네누가 상용115)이라 하겠는가배운 바를 저버리지 않았네사림들 사기가 더해지니풍운이 우뚝하였네수양산 곁에묘소를 만들었네재필116)로 특별히 기록하여만고에 꽃다운 향기 전하네내 병으로 문상가지 못하니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네남을 통해 글을 지어애통한 마음 깃들이네 挺生南服。倡明斯文。博學無方。從事三門。取舍得正。造詣不差。婆娑邱林。世莫我知。運値陽九。邪說大起。鼎沸一路。血流千里。全湖義士。嗟無一人。布衣藿食。舊不顧身。赴急縣庭。賊聚兵散。視死如歸。從容不亂。孰謂傷勇。不負所學。士林增氣。風韻卓犖。首陽之側。衣履是藏。載筆特書。萬古流芳。我病未奔。心焉如摧。因人緘辭。以寓一哀。 오남(吾南) 김공(金公) 김한섭(金漢燮)을 말한다. 자는 치용(致容), 호는 오남,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이항로가 죽은 뒤에 다시 임헌회(林憲晦)와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 되었다. 장흥과 금릉 대명동에 서당을 열고 후진교육에 힘썼으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변을 당해 사망했다. 저서로는 《오남집》이 있다. 양구(陽九) 하늘의 재액(災厄)이 몰아닥치는 불운한 시대를 말한다. 도가(道家)에서는 천액(天厄)을 양구(陽九)라 하고, 지액(地厄)을 백륙(百六)이라 한다. 상용(傷勇)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얼핏 보면 죽을 만하고, 자세히 보면 죽지 말아야 할 경우에 죽으면 용맹을 상한다.[可以死, 可以無死, 死傷勇.]"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재필(載筆) 문구(文具)를 휴대하여 왕의 뒤를 따르는 것으로, 사관이 역사를 기록함을 이른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사관은 붓을 가지고 가고, 사는 말을 가지고 간다.[史載筆, 士載言.]" 하였는데,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왕이 만약 출행하면 사관이 서구를 잡고서 따른다.[王若行,往 則史載書具而從之也.]"라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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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선대부 예조 참판 김공이 의를 베푼 것에 대한 추모불망비 嘉善大夫禮曹參判金公施義追慕不忘碑 옛날 범 문정공(范文正公)이 의전(義田)을 마련하고 봉급을 나눔에 항상 종족에게 균등하게 하였으니,186) 그 의를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는 유풍은 천년 뒤에서 생각해도 사모하고 탄상하는 정을 감당하지 못한다. 더구나 오늘날에 고인의 위대한 행실이 있음을 보게 됨에야 어떠하겠는가.고 예조 참판 김재환(金在煥) 공은 바로 삼족당(三足堂) 선생187) 휘 대유(大有)의 후손이고 증 호조 참판 휘 우직(宇直)188)의 아들이다. 젊어서 매우 가난하여 봉양할 수 없자 드디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산림을 주관하여 집안의 재력이 자못 부유하게 되자 산 사람 섬김에 기쁨을 다하였고 죽은 이를 섬김에 예를 다하였고, 집을 지어 책을 쌓아서 독서하고 의를 행하는 것을 궁극의 계획으로 삼았다. 매번 흉년이나 혹 춘궁기를 만나면 구휼하여 공급하는 은혜가 고을의 가난한 이에게 두루 미쳤고, 족척(族戚)의 친한 이에 이르러서는 더욱 은의(恩意)를 다하여 기포(飢飽)와 한난(寒暖), 고락(苦樂)과 영췌(榮悴)에 한 몸처럼 서로 의지하여 애초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내외의 친소(親疎)에게 모두 마음을 얻었고, 고학(皐鶴)이 하늘에 들리게189) 되자 임금님의 포증이 융숭하고 무거워 지위가 참판[亞卿]에 이르렀고 장수하여 기로사(耆老社)에 올랐다. 임종에 미쳐서는 여러 종족들을 불러 이르기를 "나는 지금 죽을 것이니 능히 다시 서로 정을 지극히 할 수 없을까 두렵다."라고 하고는 드디어 전지(田地)를 나누어 하사함에 각각 차등을 두었다. 전지를 받은 사람은 모두 수십 여 집이었다.공을 이미 장사지내고 나서 여러 종족들이 모여서 도모하여 장차 비석을 세워 그 글을 적으려고 인하여 나에게 물었다.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베풀고 덕을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것은 실로 공의 뜻이다. 그러나 남의 은혜를 받고 차마 잊지 못하는 것 또한 효자와 인인(仁人)의 마음이다. 더구나 지금 세교(世敎)가 밝지 못하여 욕망의 물결이 하늘에 넘쳐 쌀알을 헤아려 밥을 짓고 섶을 저울질 하여 불을 때고,190) 와각(蝸角)의 만촉(蠻蜀)191) 같은 것이 도도하게 모두 이러하니, 공의 지극한 행실과 훌륭한 절도는 어찌 금석에 새겨 사통팔달의 거리에 게시하여 천부(淺夫)와 소인[宵人]으로 하여금 취하여 법으로 삼을 바가 있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 사람은 정(鄭)나라의 한씨(罕氏)와 송(宋)나라의 악씨(樂氏)를 뒤에 망할 자로 여겼으니,192) 지금 공의 적선(積善)과 여록(餘祿)은 또한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감동하여 우러르던 끝에 삼가 그 대강을 서술할 뿐이다. 昔范文正公。置義田分俸祿。常均於宗族。其貴義輕財之風。追惟千載。不勝愛慕嗟賞之情。況在今日而見有古人之偉行乎。故禮曹參判金公在煥。卽三足堂先生諱大有後。贈戶曹參判諱字直子也。少貧甚。無以爲養。遂勤身幹家。以至家力頗溫。而生事盡歡。死事盡禮。築室儲書。以讀書行義爲究竟家計。每遇饑歲或窮春。賑給之惠。遍於鄕坊之貧者。至族戚之親。尤盡恩意。飢飽寒暖。苦樂榮悴。相須一體。未始有間。是以內外親疎。咸得其心。以至皐鶴聞天。天褒隆重。位至亞卿。壽隮耆老社。及其臨終也。招諸宗族謂曰。我今死矣。恐不能復相致情。遂分田地。賜各有差。其受田者。凡數十餘家。公旣葬。諸族聚而謀之。將伐石以識其書。因問於余。余曰。施而不德。此固公之意。然受人恩而不忍忘。亦孝子仁人之心也。況今世敎不明。慾浪漲天。數米秤薪。蠻蜀蝸角。滔滔皆是。若公之至行偉節。豈不可以刻之金石。揭之通衢。使淺夫宵人得有所取法乎。古人以鄭之罕宋之樂爲後亡者。今公之積善餘祿。亦豈有艾乎。感仰之餘。謹述其梗槩云爾。 범 문정공(范文正公)이……하였으니 범 문정공은 송(宋)나라 때 이름난 재상 범중엄(范仲淹, 989~1052)을 말한다. 자는 희문(希文)이고, 문정(文正)은 시호이다. 오현(吳縣) 출신이다. 벼슬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러 귀하게 되었을 때, 여러 자제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우리 오현의 종족이 매우 많아서 나에게 실로 친소가 있으나 조종께서 보신다면 모두 한 자손이니 실로 친소가 없다.……조종 이래로 덕을 쌓기를 백 년 남짓하여 비로소 나에게서 발복하여 높은 관직에 이르렀으니 만약 홀로 부귀를 누리고 종족의 기한(饑寒)을 보살피지 않는다면, 후일 어떻게 지하에서 조종을 볼 것이며, 지금 무슨 낯으로 가묘에 들어갈 것인가.[吾吳中宗族甚衆, 於吾固有親疎, 然吾祖宗視之, 則均是子孫, 固無親疎也.……自祖宗來, 積德百餘年, 而始發於吾, 得至大官, 若獨享富貴, 而不恤宗族, 異日何以見祖宗於地下, 今何顔入家廟乎?]"라고 하고, 오현의 일족을 위하여 자신의 봉급을 덜어 의전택(義田宅)을 설치하고 대소사에 그 경비를 충당하게 했던 일이 있는데, 이것을 의장(義庄)이라고 한다. 《小學 善行》 삼족당(三足堂) 선생 김대유(金大有, 1479~1551)를 말한다. 자는 천우(天祐), 호는 삼족당,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조카이다. 현량과(賢良科)로 나아가 호조 좌랑·정언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청도(淸道)의 자계서원(紫溪書院)과 선암서원(仙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우직(宇直) 김우직(金宇直, 1797~1854)을 말한다. 자는 영윤(永允), 호는 지헌(止軒)이다. 자세한 내용은 기우만(奇宇萬)의 《송사집(松沙集)》 권32 〈지헌 김공 묘갈명(止軒金公墓碣銘)〉에 보인다. 고학(皐鶴)이 하늘에 들리게 은거하는 군자의 덕이 멀리까지 알려지는 것을 비유한다. 《시경》 〈소아(小雅) 학명(鶴鳴)〉에 "학이 구고의 늪에서 우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鶴鳴于九皐, 聲聞于天.]"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쌀알을……때고 각박하여 까다롭게 따진다는 의미이다. 와각(蝸角)의 만촉(蠻蜀) 작은 것을 놓고 서로 아옹다옹하는 것을 말한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 있는 촉(觸)나라와 오른쪽 뿔에 있는 만(蠻)이라는 나라가 영토를 다투느라 전쟁을 벌여 죽은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다는 우화로,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실려 있다. 정(鄭)나라의……여겼으니 《춘추좌씨전》 노양공6(魯襄公六) 26년 조에 "진(晉)나라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정(鄭)나라의 한씨(罕氏)와 송(宋)나라의 악씨(樂氏)는 최후에 망할 것이니, 두 집안 모두 국정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민심이 모두 저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은혜를 베풀고도 스스로 덕으로 여기지 않은 것은 악씨가 한씨보다 더 훌륭하다. 악씨는 아마도 송나라와 성쇠를 함께할 것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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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견【인환】에게 보냄 與安益見【仁煥】 선친의 유고는 말씀을 거역하기 어려워 감히 서툰 솜씨를 부렸습니다만, 반드시 오류가 없으리라는 것을 어찌 보장하겠습니까. 송구스럽습니다. 유고(遺稿) 가운데 시편과 〈통문(通文)〉, 〈유북한록(遊漢北錄)〉 등의 작품은 모두 매우 거대하고 웅장하여 논평할 사항이 없습니다. 서한(書翰)과 서문(序文) 2~3편에 대해서는 감히 저의 생각으로 대략 몇 자를 고쳐서 새롭게 하였습니다. 마음이 매우 편치 못하지만 명을 하셨으니 어찌하겠습니까. 또 연보(年譜) 중에서 '호군곤유(狐群鵾遊)', '제부(薺浮)' 등의 말은 만약 실제 자취라면 밝혀두는 것이 참으로 좋겠지만,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분명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면 이것은 효자가 부모를 현창(顯彰)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무릇 얼음 속에서 잉어가 솟구쳐 나오고 눈 속에서 죽순이 돋아나는 일은 천만고(千萬古)에 걸쳐 매우 드문 일입니다. 이 때문에 주부자(朱夫子)께서 《소학(小學)》에 적어17)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일을 권면하셨습니다. 하지만 어찌 근세 이래로 이를 모방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이러한 효행에 대한 감응(感應)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보는 사람은 염증이 나고 듣는 사람은 번거롭게 여겨서 실제 행적까지 아울러 믿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자질구레함은 진실로 말할 가치가 없습니다. 댁의 선조(先祖)께서 성취한 사업(事業)이 얼마나 높고도 컸습니까. 만약 조금이라도 위와 같은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찌 성덕(盛德)을 갖춘 분에게 작은 흠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은 비록 평소에 서로 친숙한 사이일지라도 또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합니다. 다만 존공(尊公 상대방에 대한 존칭)에 대해서는 비록 평소에 일면식조차 없지만, 뜻이 구차하지 않다는 것을 순견(舜見 안국정(安國禎)의 자)에게 익히 들었습니다. 또 순견과 평생에 걸쳐 거스르지 못하는 의리를 지녀 실상을 감추고 말을 꾸미는 사이가 아니라서 감히 언급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저를 탓하지는 않으실까 모르겠습니다. 할고(割股)18), 여묘(廬墓)19) 같은 일이 만약 여리(閭里)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었다면 참으로 가상합니다. 하지만 댁의 선조께서 이런 일을 하셨다면 그것은 전해도 되고 전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찌 자질구레하고 구차하게 어려운 일을 하여 선조의 명예를 더하거나 덜 수 있겠습니까. 先稿重違尊敎。敢下拙手。安保其必無差謬。悚悚。遺稿中詩什通文。及遊漢北錄諸作。皆極宏偉。無容贊評。至於書序二三篇。敢以鄙意。略加點化。雖極未安。其於有命何。且年譜中。狐群鵾遊及薺浮等語。如其實跡。則著之固好。若或有涉於一毫含糊之地。此非孝子顯親之道也。夫氷鯉雪筍。此是千萬古曠絶之事。是以朱夫子著之於小學。以爲人子事親之勸。豈意近世以來。效嚬成風。此等孝感。不可勝計。觀者厭之。聽者煩之。竝與其實行。而不信之矣。他人區區。固不足言。惟尊先祖所就事業。何等磊落。而若不免小有如右之云。則豈非盛德之微疪耶。此等說。雖平日相熟之地。亦不敢吐口。但於尊公。雖無一面之雅。而其志尙不苟。於舜見聞之已稔且與舜見有平生莫逆之義。而非隱情餙辭之地。故敢及之。倘不以爲罪否。割股廬墓。此事若在於閭里尋常之人。則固爲可尙。若尊先祖而有是焉。則傳之可也。不傳可也。豈以區區苟難之行。有加損也。 주부자(朱夫子)께서………적어 얼음 속에서 잉어가 나왔다는 말은 진(晉)나라 왕상(王祥)이, 어머니가 산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차가운 겨울에 옷을 벗고 강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물고기를 잡으려 했는데, 얼음이 쪼개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뛰어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것이다. 《小學 善行》 죽순이 돋아났다는 것은 삼국 시대 오(吳)나라 맹종(孟宗)이 어머니가 죽순을 좋아하는데 겨울이라 구할 수 없자 대숲에 가서 탄식하고 슬피 우니 죽순이 솟아 나왔다는 고사에서 온 것이다. 《三國志 卷48 吳書 三嗣主傳》 할고(割股) 효자(孝子)가 자신의 다리의 살을 베어, 부모의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당(唐) 나라 진장기(陳藏器)의 《본초습유(本草拾遺)》에 "사람 고기는 파리한 병을 고칠 수 있다." 하였으므로, 후세의 효자들이 이 말에 근거하여 병든 부모에게 자기의 살을 베어 먹였다. 여묘(廬墓) 상주(喪主)가 묘소 근처에 여막(廬幕)을 짓고 살면서 묘소를 지키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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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집에게 답함 答梁順集 한 통의 서한은 확실히 얼굴을 마주하는 것에 버금갑니다. 보내신 서한을 통해 조용히 지내면서 정양(靜養)을 하고 체후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욱이 제가 기원하던 바에 부응합니다. 정자를 짓는 비용을 수습하지 못한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하는 일이라고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선성(先聖)의 책을 읽고 선성의 도를 지켜서 사방(四方)에 있는 벗들과 함께하고 또 뒤를 잇는 자손들에게 전하여 사문(斯文)의 맥을 무궁토록 보존하니, 그 의리가 어떠하겠습니까. 이것을 제이의(第二義)로 간주하여 되는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 지금 상황에서 누구에게 의지하겠습니까. 우리 벗께서는 그 책임을 사양할 수 없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간(比干)은 귀척(貴戚 군주의 친척)의 경(卿)이어서 나라와 화복을 함께하는 의리가 있었으니43) 참으로 다른 사람이 출처를 정하는 일상적인 격식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천작(天爵)을 닦아 인작(人爵)이 이르는 것44)은 이치의 떳떳함이고, 천작을 닦았으나 인작이 이르지 않는 것은 이치의 변고(變故)입니다. 성인(聖人)은 상도(常道)를 말하였지 변고(變故)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勢)는 일시(一時)에 행해지지만 도(道)는 백세(百世)에 행해지니 또 이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억견(臆見)이니 온당하지 않으면 다시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一書亦對面之亞也。因審齋居靜養。體候珍勝。尤副企祝。亭費未了。此非小事。吾輩旣不得有爲於世。而所爲者。只此一事耳。讀先聖之書。守先聖之道。以與四方朋舊共之。又以傳之於後嗣子孫。以存斯文一脈於無窮。其義顧何如耶。此不可看作第二義。而伈伈然。聽其自爾也。嗚呼。在今日而所恃者誰也。恐吾友不可辭其責。如何如何。比干是貴戚之卿。而有與國休戚之義。固不可以他人之出處常格論之也。修天職而人爵至。理之常也。修天爵而人爵不至。理之變也。聖人語常而不語變。然勢行一時。道行百世。則又不可謂無其理也。此是臆見。如有未穩。幸更示及也。 비간(比干)은……있으니 주(紂)의 서형(庶兄)인 미자(微子)와 숙부인 기자(箕子) 및 비간(比干)에 대해 공자는 세 사람의 어진 사람이라고 평가하였다. 미자는 주가 무도한 것을 보고 종사(宗祀)를 보존하기 위해 떠나갔고, 기자는 간언하다가 옥에 갇힌 뒤 이내 종이 되었으며, 비간은 끝까지 간언을 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공자(孔子)는 "은나라에 세 사람의 어진 이가 있었다.【殷有三仁焉.】"라고 하였다. 《論語 微子》 천작(天爵)을……것 천작은 아름다운 덕행과 같은 자연스러운 존귀함을 말하고, 인작(人爵)은 사람이 만든 작위라는 뜻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인의충신과 선을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천작이요, 공경대부는 인작이다. 옛날 사람은 천작을 닦아서 인작이 뒤따랐다.【仁義忠信樂善不倦, 此天爵也. 公卿大夫, 此人爵也. 古之人, 修其天爵, 而人爵從之.】"라고 하였다. 덕을 닦으면 벼슬이 절로 이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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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규에게 답함 答朴大圭 지난번에 돌보아 주신 일은 매우 고마웠습니다. 삼가 요즈음 부모를 모시면서 지내는 안부가 더욱 편안하신지 여쭙습니다. 지난번 서한에서 말씀하신 "강학(講學)의 공효는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지 않고 다만 뒤로 물러나는 것에 달려있다."50)라는 말은 강학의 첫 번째 의의입니다. 우리 벗께서 이미 이것을 아셨으니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방도가 더욱 심오해졌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축하드립니다. 의림(義林)은 날이 갈수록 머뭇거리고 골몰하는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한 몸의 낭패는 참으로 돌아볼 것도 없고 함께 하는 몇몇 사람들에게도 터럭만큼도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일이 없으니 이 때문에 부끄럽고도 송구스럽습니다. 정자(程子)가 "합장(合葬)은 원비(元妃)만 한다……"51)라고 한 것에 관해서 물으셨습니다. 합장은 원비를 하고 합독(合櫝 신주를 같은 궤에 함께 모심)은 종자(宗子)를 낳은 분을 한다는 것은 정자와 장자(張子 장재(張載)) 등 여러 선생의 의론입니다. 그러나 주자(朱子)는 "네 번 장가를 들고 다섯 번 장가를 들더라도 모두 합독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절충한 의론입니다. 다만 4~5위(位)를 합장하는 것은 예(禮)에 불가한 것은 아니지만 할 수 없는 형세이기 때문에 원비만 할 뿐입니다. 頃者寵顧。何等感戢。恭問比來侍旁。節宣增裕。向書所謂講學之工。不在向前。只在退後之語。此是講學第一義。吾友旣有見於此。則其所以溫故知新者。想益情邃矣。爲賀爲賀。義林因循深汨。與日益深。一身狼狽。固不足恤。而於多少相聚之人。無絲毫相長處。用是愧悚。程子曰合葬用元妃云云。合葬用元妃。合積用宗子所出。此固程張諸先生之論。然朱子曰。雖四娶五娶。皆可合櫝。此是折中之論也。但合葬四五位。非是禮不可。只是勢不得。故只用元妃耳。 강학의……있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49 〈왕자합에게 답함〔答王子合〕〉에 "근래에 강학의 공효가 앞으로 향함에 달려 있지 않고 다만 뒤로 물러남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으니, 만약 옛것을 익히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을 알지 못한다. 대개 새로운 것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옛것까지도 기억하지 못하여 일상생활에서 바로 잊어버린다. 비록 그 양심을 놓아 버리지 않으려고 하여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近覺講學之功不在向前, 只在退後, 若非溫故, 不能知新. 蓋非惟不能知新, 且幷故者亦不記得, 日用之間, 便成相忘. 雖欲不放其良心, 不可得矣.】"라고 하였다. 합장(合葬)은 원비(元妃)만 한다 《이정유서(二程遺書)》 권22 〈이천어록(伊川語錄)〉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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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부에게 적어 보이다 書示尹仁夫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첫 번째 절도(節度)이다. 학문과 공부만 그러할 뿐만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것을 만들어내더라도 일찍 잠들고 늦게 일어나면서 공을 이룰 수 있었던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이것이 맹자(孟子)가 선을 실천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 대해서 모두 "닭이 울면 일어난다."120)라고 말한 까닭이다.책(冊)을 마주하면 반드시 단정하고 장중하며 바른 자세로 조용히 앉아 몸을 구부리지 않고 마음을 놓치지 않으며, 보고 또 보아서 그 내용이 마치 자기의 말을 외우는 듯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그 뜻이 마치 자기의 생각을 내놓는 듯하며, 반드시 욕심을 부려서 많이 알려고 힘쓰다가 소홀히 하여 서투르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앉거나 서는 것은 반드시 공경 장엄(恭敬莊嚴)하며 한쪽으로 기울거나 태만하지 말아야 하고, 말을 하는 것은 반드시 말수가 적으며 성급하고 경솔한 말을 하거나 큰 소리로 떠들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반드시 온순함과 공경스러움을 다하여 터럭만큼이라도 오만하고 고집스럽거나 상대를 꺾으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고, 터럭만큼이라도 아첨하며 따르려는 의도가 있어서도 안 되며,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의리(義理)의 가부를 보아야 하고 이해(利害)의 많고 적음을 따져서 그것을 위해 진퇴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이처럼 거듭하여 하루하루 쌓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이치와 익숙해져서 근거로 삼아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된다. 그러나 "요(堯)는 어떤 사람이고 순(舜)은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이 장부이면 나도 장부이다."121)라는 마음을 북돋아 분발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그 일을 떠맡겠다는 뜻이 없다면, 앞의 저 말들 또한 억지로 안배(安排)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기름으로 그린 그림이고 얼음에 새긴 조각처럼 곧 사라질 뿐이다. 어찌 나의 소유라고 여기고 더불어 형이상(形而上)을 말할122) 수 있겠는가.윤군 인보(尹君仁夫)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데 요체가 될만한 말 한마디를 청하였다. 내가 어리석어 지닌 것이 없는 사람이라서 오직 선현(先賢)들이 이미 한 말을 열거하여 그 마음에 답한다. 인보(仁夫)는 특별히 주의해 주기 바란다. 夙興夜寐。此是日用行己第一節度。不惟學問功夫爲然。雖小小生産作業。未有早寐晏起而能有成者。此孟子於爲善爲利。皆以雞鳴而起。言之也。對冊務要端莊。靜坐不撓體不放心。看來看去。使其辭如誦已言。思來思去。使其義如出己意。切不可貪多務廣。忽略鹵莽也。坐立務要恭莊。不可傾倚怠慢。言語務要簡黙。不可躁妄諠譁。接人務要和敬兩盡。不可一毫有傲頑忮克之心。不可一毫有阿附媚宛之意。處事當見其義理可否。不當問其利害多少而爲之前却也。如是積累。日去日來。自然心與理熟。而有得力可據之地矣。然不有堯何人舜何人。彼丈夫我丈夫。激勵振拔。抵死擔當之志。則彼所云爲。亦不過勉强安排。旋消旋滅。如脂之畵。氷之鏤而已。曷足以爲吾有而與之語上哉。尹君仁夫請一言爲日用顧諟之要。余悾悾無所有。惟是擧先賢已成底說話。以塞其意。願仁夫加意焉。 모두……일어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선행을 힘쓰는 자는 순 임금의 무리요, 새벽에 닭이 울자마자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익을 구하는 자는 도척(盜跖)의 무리이다. 순 임금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 싶은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단지 이익을 탐하고 선행을 좋아하는 그 사이에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요(堯)는……사람인가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성간이 제 경공에게 이르기를 '저들도 장부이며 나도 장부이니 내 어찌 저 성현들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하였고, 안연이 말하기를 '순 임금은 어떠한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이와 같다.'라고 하였으며, 공명의가 말하기를 '주공이 문왕은 내 스승이다고 하였는데, 주공이 어찌 나를 속였겠는가?'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더불어……말할 《논어》 〈옹야(雍也)〉에 "중인 이상의 재질을 지닌 사람에게는 차원이 높은 도를 말해 줄 수 있지만, 중인 이하의 재질을 지닌 사람에게는 그런 차원이 높은 도를 말해 줄 수가 없다."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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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정 별동연의 벗들에게 詠歸亭別同硏諸友 조금 나아가다 지리멸렬(支離滅裂)해지고 끝내는 고루해져 머리가 하얗게 된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있으니 여전히 당(堂) 아래 문밖을 서성이는 사람일 뿐이다. 보잘것없는 내가 재숙(齋塾 글방)에 발자취를 붙였던 것이 어찌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었겠는가. 생각지 않았건만 제군(諸君)이 일부러 찾아와서 나를 따르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밤낮으로 함께 모였으니 내가 느끼는 감상(感賞)이 참으로 한량이 없었다. 그러나 제군이 나를 본받고 따랐던 이유가 무슨 일이었던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물며 지금은 한 해가 다 저물어 행장을 꾸려 떠나려 하건만 또 이렇게 한마디 말을 청함에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성사(聖師 공자(孔子))의 격언(格言)이 전적(典籍)에 실려있으니 진실로 나귀를 타고서 나귀를 찾듯이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중복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기질이 치우친 곳, 공력(功力)이 다다른 곳을 가지고 보자면 한두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날 제군의 공력은 그저 어렴풋한 그림자나 메아리만 보았을 뿐 절실하게 담당한 부분이 없고 확실하게 근거한 부분이 없다. 비유하자면 참외 한 개를 구해서 이것이 먹을 만한 음식이라는 것만 알 뿐이지 여전히 쪼개고 씹어서 입안 가득한 자미(滋味)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정부(定夫), 백연(伯淵), 평중(平仲)은 말수가 적고 태도가 신중한 점은 훌륭하지만 활달한 기상이 모자란다. 자인(子仁), 경백(慶伯), 경순(景純)은 자못 영특하기는 하나 돈독함이 부족하다. 인보(仁夫), 보경(甫卿)은 순박하고 듬직하기는 하나 간혹 유유히 시간을 허비하는 데 가깝고, 경원(景元), 사앙(士仰)은 근실하고 영민하지만 또한 고집스럽고 편협한 면이 없지 않다. 형숙(亨叔), 사옥(士玉), 공실(公實)은 순직(順直)하고 진실하기는 하나 정신과 기백이 부족하다. 내원(乃源), 사온(士蘊)은 즐겁고 화평하기는 하나 자세함이나 치밀함이 없다. 사경(士敬), 양로(陽路), 자온(子蘊)은 모두 꼼꼼하고 신중함이 아낄 만하지만, 또한 경솔하고 늑장을 부리는 병통이 없다고 할 수 없다.학문이 이른 곳과 병통이 있는 곳을 알아서 바로잡고 성찰하여 허물을 줄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현철(賢哲)이 되는 것을 누가 불가능하다고 하겠는가. 지금은 제군이 처음으로 학문의 길로 나서는 때이니 만 리 앞길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물며 지금은 세상이 혼란스러워 사람에게 매우 좋지 못한 때이니 바로 학문을 연마하고 의지를 굳게 다져야 하는 시기이다. 만약 머뭇거리면서 노력하지 않아 몸가짐에 법도가 없고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면, 이것이 어찌 오늘을 서로 함께 하는 뜻이겠는가.내가 비록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제군의 스승이 되기에 모자라지만 제군의 뒤에서 장래에 어떠한 성취를 이루는지 보기를 바랄 뿐이다.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立志]이 우선이다. 그러나 경중(輕重)과 취사(取捨)의 분별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슨 뜻을 세우겠는가. 학문은 주경(主敬)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조사존망(操舍存亡)136)의 기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슨 경(敬)을 지키겠는가. 학문은 역행(力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정(邪正)과 선악(善惡)의 분별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무엇을 힘써 행하겠는가. 이것이 격물(格物), 치지(致知)가 《대학》의 시조리(始條理)가 되는 까닭이다.이제 돌아가서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137)에 의거하여 오늘 하나의 이치를 궁구하고 내일 하나의 이치를 궁구하여 궁구한 것이 점점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보존되고 이치가 분명해져 모든 행동이 장차 거침이 없고 여유로울 것이다. 제군은 모두 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넉넉하다. 다만 사색(思索)에 대해서는 아직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부질없이 말이 여기에 미쳤다. 혹시 자기의 결점은 헤아리지 못하면서 하는 말이라는 이유로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다. 走少而滅裂終於固陋。白首倀倀。猶是堂下門外人耳。區區所以寄跡於齋塾之間者。豈好爲人師之意哉。不意諸君專來相從。喫苦耐辛。昕宵聚對。其爲感賞。固無涯量。而但諸君所以傚則於我者何事。愧愧萬萬。況此歲聿載暮。治裝將行。而又有此一言之請乎。聖師格言。載在方策。固不必騎驢覓驢。爲此疊床。而但隨其人氣質之所偏。功力之所至而觀之。則亦不無一二之可言。夫諸君今日之功。只是見得箇依俙影響。而無親切擔當處。無的實依據處。比如得一箇甘瓜。但識得此爲可食之物。而尙未能劈破來咀嚼來。以識其津津滋味也。定夫伯淵平仲。多簡黙而少開爽。子仁慶伯景純。頗穎悟而欠敦篤。仁夫甫卿。朴茂而或近於悠放。景元士仰。勤敏而亦不無固滯。亨叔士玉公實。醇實而少精神氣魄。乃源士蘊。樂易而無開詳縝密。士敬陽路子蘊。皆端詳可愛。而其粗率其怠緩。亦不可謂無是病矣。苟能知其學之所至。病之所在。而矯捄之省察之。損其過而補不足。則爲賢爲哲。誰曰不可。此是諸君最初發軔之日。前程萬里。曷可量哉。況今歲寒風色。甚不宜人。正是琢磨淬礪硬着脊樑之日也。若因循不力。持身無章。是非邪正。謾無所守。則豈今日相與之意哉。吾雖無狀。不足爲諸君之師。而願從諸君之後。第觀其將來成就之何如也。學問以立志爲先。然全不識輕重取舍之分。則立箇甚志。學問以主敬爲本。然全不識操舍存亡之幾。則主箇甚敬。學問以力行爲重。然全不識邪正善惡之別。則力行箇甚。此格物致知所以爲大學之始條理也。今歸且依呂氏童蒙訓。今日格一理。明日格一理。格得漸多。自然心存理明。凡所踐履。皆將沛然有餘矣。諸君皆謹勅有餘。而但於思索一路。尙未知方。故謾及之。儻勿以不恕之言而忽之。則幸矣。 조사존망(操舍存亡)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인용된 "붙잡으면 있다가도 놓아 버리면 없어지고,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이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것이다."라는 공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 송나라 여본중(呂本中)이 편찬한 책으로 정론(正論)과 격언(格言)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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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용의 자에 대한 설 安子容字說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말과 행동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다."155)라고 하였다. 또 "말과 행동은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도구이다."156)라고 하였다. 성현의 수많은 말은 비록 담긴 뜻이 다르고 과조(課條)도 가닥이 많지만, 요컨대 말과 행동이라는 두 가지 일을 벗어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참된 뜻을 드러내려면 반드시 먼저 문사(文辭)를 닦아야 하고 인(仁)을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하니, 이 두 가지 일에서 공부의 선후를 또 알 수 있을 것이다.안생 규삼(安生圭三)은 자(字)가 자용(子容)이다. 대체로 남용(南容)이 백규(白圭) 편을 세 번씩 되풀이했던 뜻157)을 취하여 말을 조심하는 데 매우 유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을 시작하는 시기와 덕으로 들어가는 초기에 힘써야 할 것을 알아서 핵심을 깨달은 것이 어찌 아니겠는가. 옛사람이 학문을 할 때 또한 '불망어(不妄語)'에서 시작하는 경우158)가 있었는데, 부지런히 7년을 행하자 표리가 서로 호응하여 일마다 평온하였다. 자용(子容)은 날마다 이 사람을 본받아 자신의 명(名)과 자(字)를 저버리지 말기 바란다. 易曰。言行。君子之樞機。又曰。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聖賢千言萬語。雖指意不同。課條多端。而要歸則不越乎言行兩端而已。然立其誠者。必先有以修其辭。求其仁者。必先有以訒其言。則於此兩端。而其工夫先後。又可知矣。安生圭三。表德子容。蓋取南容復圭之義。而深有意於謹言者也。此於爲學之初。入德之始。豈非知所務而得其要耶。古人爲學。亦有自不妄語始者。力行七年而表裏相應。隨事坦然。願子容日鑑于玆。毋負吾名與字也。 말과……추기(樞機)이다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보인다. 말과……도구이다 《주역전의(周易傳義)》 권22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보인다. 남용(南容)이……되풀이했던 뜻 《논어》 〈선진(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거늘,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학문을…… 경우 《심경부주(心經附註)》 권2 〈성의장(誠意章)〉에 "유 충정공[유안세(劉安世)]이 사마 온공을 뵙고는 마음을 다하고 몸을 행하는 요점 중에 종신토록 행할 만한 것을 묻자, 공은 '성일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또다시 '이것을 행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음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劉忠定公見溫公, 問盡心行己之要, 可以終身行之者, 公曰其誠乎! 又問行之何先, 公曰自不妄語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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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경에게 써서 주다 書贈曺泰卿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立志]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일상생활의 소소한 일도 뜻이 세워지지 않으면 성취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커다란 공부와 커다란 사업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천지를 위해서 마음을 세우고[立心] 생민(生民)을 위해서 도를 세우고[立道] 옛 성현을 위해서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萬世)를 위해서 태평 성세를 여는 것159), 이것이 사군자(士君子)가 세우는 뜻이다.그러나 일시적인 입지(立志)는 누구인들 없다고 하겠는가. 반드시 뜻을 지키고 잃지 않아야만 큰일을 할 수 있다.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가?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의 삼가고 두려워함160), 탕왕(湯王)과 문왕(文王)의 두려움과 공경스러움161), 공자(孔子)가 말한 의관을 정제하고 시선을 엄숙히 하는 것162), 자사(子思)가 이른 경계하고 근신하며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163)이 그것이다. 이것이 성인과 성인이 주고받은 첫 번째 요결(要訣)이며 치지(致知)와 독행(篤行) 등의 각종 공부가 모두 여기로부터 나왔다. 천하에 어찌 근원 없는 물줄기, 기초 없는 건물이 있겠는가. 이에 뜻을 세우고 뜻을 지키는 데 관한 말로 태경(泰卿)을 면려한다. 學莫先於立志。夫日用小事。未有志不立而能有所就。況大工夫大事業乎。爲天地立心。爲生民立道。爲往聖繼絶學。爲萬世開太平。此士君子所立之志也。然一時立志。誰曰無之。必須持其志而不失。可以有爲。持之如何。堯舜之兢兢業業。湯文之栗栗肅肅。孔子所謂正衣冠尊瞻視。子思所謂戒愼恐懼是也。此是聖聖授受第一要訣。而致知篤行種種工夫。皆從此出。天下安有無源之流。無基之築哉。玆以立志持志之說。爲泰卿勉焉。 천지를……여는 것 《근사록》 〈위학(爲學)〉에 장재(張載)가 이르기를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정립하고 생민을 위하여 도를 정립하며, 옛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하여 태평 시대를 열어야 한다.[爲天地立心, 爲生民立道, 爲去聖繼絕學, 爲萬世開太平.]"라고 하였다. 요(堯)임금과……두려워함 《서경》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에 보이는 말이다. 탕왕(湯王)과……공경스러움 《시경》 대아(大雅) 〈사제(思齊)〉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덕을 찬양하면서 "궁중(宮中)에 계실 때에는 온화하였고, 종묘(宗廟)에 계실 때에는 공경스러웠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항상 임재(臨在)한 존재가 있는 것처럼 여기셨고, 싫증내어 나태하지 않은 때에도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보전하셨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공자(孔子)가……하는 것 《논어》 〈요왈(堯曰)〉에 공자가 자장(子張)에게 다섯 가지 미덕을 가르쳐 주면서 "군자는 의관을 정제하고 시선을 엄숙히 한다."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자사(子思)가……두려워하는 것 《중용장구》 제1장의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보이지 않는 때도 경계하고 근신하며, 들리지 않는 때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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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내선【우종】에게 보냄 與金乃善【佑鐘】 예는 생략합니다. 며칠 전 제 종자(從者)가 와서 말하기를, 존가(尊駕)의 행렬이 제가 사는 부근 점사(店舍)에 이르렀으나 비에 막혀서 잠시 머물러 있다가 곧 처소로 돌아가셨다고 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나아가 뵙고 정담을 나누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또 노형(老兄)께서 근래 이사를 하실 계획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자세히 헤아리고 정밀하게 살펴보셨을 터이니 주변 사람이 간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천박한 저의 견해로는 반드시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릇 이사하는 도리는 마을이 어진 곳을 택하거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환경을 택하거나 이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정(事情)이 크게 다르거나 아주 부득이한 까닭이 아니고 그저 백 보와 오십 보 사이에 불과하다면 어찌 선조의 유물이 있는 땅을 가볍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일은 어진 마을을 택하든 살아가는 환경을 택하든 과연 지금 있는 곳보다 손실이 없을 수 있을지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물며 이렇게 험난한 세월에 당장 살아갈 방도가 더욱 힘들고 고생스럽건만, 오가는 비용과 토목(土木)의 역사(役事)를 어떻게 충당하고 어떻게 마치겠습니까. 훗날의 화복은 본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눈앞의 이해(利害)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합니다. 어찌하여 이리도 잘못 헤아리십니까. 생각건대 노형(老兄)께서 가난과 곤궁함에 마음이 흔들려 계획을 세우고 마음속으로 계산해 온 날들이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좋은 뜻으로 하는 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심이 담긴 계책도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상태가 되셨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민간 속담에서 말하는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알지 못한다."라는 것이 어쩌면 여기에 가까울 듯합니다. 무릇 중요한 일은 한번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천 번 만 번 잘 헤아려 살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省禮。日昨。鄙從來道。尊駕行至鄙邊店舍。爲雨所滯。滯留少頃。旋爲返次云。追念耿耿。恨未得晉拜穩晤也。且道老兄近爲搬移計云。想必有詳量精察。非傍人所可與者。然以淺見。切不能無疑。夫搬移之道。或擇里仁。或取生理。不出二者而已。然非大端懸絶及甚不得已之故。而只是百步五十步之間。則豈可輕棄舊物之地哉。今日之事。以擇以取。吾不知其果能無損於見在之地。而况此險歲。目前計活。尤爲艱辛。其來往之費。土木之役。何以支了耶。日後禍福。固所不知。而目前利害。明若觀火。何其錯料若是也。想老兄爲貧窮所動。經營思算。爲日久矣。是以良言不入忠謀難售。吾恐里諺所謂知得不知失者。或近之矣。夫機事一失。後悔莫追。惟千萬諒之何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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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곡 배공【상섭】에게 보냄 與隱谷裴公【相涉】 천만뜻밖으로 덕문(德門)이 불행하여 갑자기 둘째 영랑(令郞)의 상사(喪事)를 당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말이고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난초가 불타고 보옥이 깨지는 일이 세상에 간혹 있기는 하지만, 어찌 우리 존장(尊丈)께서 만년에 이런 일을 겪으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자애(慈愛)가 매우 지극하고 교회(敎誨)가 참으로 독실하여 우리의 기대가 일찍부터 훗날 존장께서 문호를 세우는 계책에 달려 있었건만, 갑자기 중간에 멈추게 되었으니 참혹한 슬픔을 어찌 견디고 어찌 억누르겠습니까. 사람을 저도 모르게 넋이 나가고 뼈가 으스러지게 만듭니다. 의림(義林)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신세가 낚시에 걸린 물고기와 같아서 병이 들었을 때는 의원(醫員)을 찾고 약을 수소문하지도 못하였고 세상을 떠났을 때도 반함(飯含)60)하는 것을 보거나 상여를 끄는 예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어찌 인정(人情)이겠습니까. 부끄럽게도 유명(幽明)을 저버렸으니 비통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오늘 계원(啓元)61)의 편지를 받았는데, 대체로 병중에 있으면서 작별을 고하는 글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이 가슴 아프고 슬퍼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의 병이 매우 위태롭지는 않은 듯하였건만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예전에 종유하던 이들을 생각하니 정일(正一)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계원이 또 이와 같습니다. 위를 우러러보고 아래를 굽어보아도 심사(心事)가 잊히지 않으니 마음을 둘 방도를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세상의 온갖 일이 모두 이렇습니다. 앞에 놓인 운명은 넘지 못하는 쇠 문턱이라 인력으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백어(伯魚)62)도 일찍 죽었고 수지(受之)63)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자(孔子), 주자(朱子) 같은 성현(聖賢)조차도 일찍이 이런 일을 당하였으니 명(命)을 어찌하겠습니까? 운(運)을 어찌하겠습니까? 부디 이치에 따라 상황을 넘기며 자신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千萬料外。德門不幸。第二郞遽至大故。此何言此何事。蘭焚玉碎。世或有之。而豈謂吾丈晩年遭此耶。伏惟慈愛深至。敎誨誠篤。所以期望未嘗不在於他目門戶之計。而遽爾中閼。悲慘之酷。何以支抑。令人不覺銷魂而鑠骨。義林年來身世。如魚掛鉤。病未有尋醫問藥之節。死未有視含執紼之禮。此豈人情耶。愧負幽明。萬萬悲慘。今日得啓元書。蓋病中告訣文也。辭意悲愴。不覺出涕。其病若不十分危殆。豈至若是也。念昔從遊。正一已逝。啓元又如此。俯仰耿耿。不知所以置心。雖然人間萬事皆是。前程鐵限。非人力所可移易。伯魚早卒。受之先死。以孔朱聖賢。猶嘗遭此。命也奈何。運也奈何。伏乞遣理自寬。 반함(飯含) 습(襲)을 하기 전 시신을 목욕시킨 뒤 진주, 생쌀, 조개 등을 죽은 이의 입에 넣어 아름답게 장식하는 의절이다. 반(飯)은 신분에 따라 잘게 부순 옥(玉)을 쌀과 섞은 함옥(含玉), 수수, 기장 등으로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고, 함(含)은 옥, 조개 등으로 양쪽 어금니 부분과 입 중앙에 놓는 것이다. 반함은 죽은 이에게 음식을 봉양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비어 있는 입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써 죽은 이를 존귀하게 대한다는 뜻에서 하는 것이다. 계원(啓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의 자이다.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구암(龜巖)이다.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하락이수(河洛理數)와 천문(天文)의 물상을 확연하게 융회하였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의 요체를 깨닫고, 심성과 이기의 묘리를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백어(伯魚) 공자(孔子)의 아들이다. 수지(受之) 수지는 주희(朱熹)의 장남 주숙(朱塾)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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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홍120) 인환 에 대한 제문 祭曺元弘【仁煥】文 공은 영특하고 호걸스러운 자질로 가정에서 시례(詩禮)의 기풍을 익혀 문아(文雅)가 넉넉하고 시원하며 행의(行義)가 빛나고 아름다웠네. 사물의 이치와 세상의 일에 이르기까지 환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경륜과 지략은 무리에서 매우 뛰어나 성대하게 남쪽 지방의 명사가 되고 위대하게 이 세상의 통유(通儒)가 되었네. 다만 도가 시대와 어긋나 능히 시험해보지 못하고 산림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세상을 마쳤네.보잘것없는 내가 외람되이 벗이 되어 경계하며 절차탁마한 것이 지금 10년이 되었네. 갑오년의 변란121) 때 자정(自靖)의 마땅함으로 내게 고해 주었고, 병신년의 거사122) 때 의에 처하는 정미한 뜻을 나에게 고해 주었으니, 오호라!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네.모래와 자갈은 뒤에 남았고123) 앞의 바다는 넘실거리는데 키를 잃은 배가 장차 어디에 정박하겠는가? 천지간에 외로운 신세 마음이 타는 듯하네. 세월이 머물지 않아 묘소의 풀이 이미 묵었네. 병을 무릅쓰고 어려운 걸음으로 늦게야 비로소 와서 곡하니, 정은 친밀해도 예는 엉성하여 저버린 죄 매우 깊네. 公以英邁豪傑之姿。擩染乎家庭詩禮之風。文雅贍暢行義煒曄。至於物理世故。無不通曉。而經綸智略。絶出等夷。蔚然爲南服之名士。偉然爲斯世之通儒。但道與時違。莫克有試。而婆娑邱林。聊以卒歲。余以無狀。猥與爲友。規警切磋。十年于玆。甲午之變。告我以自靖之宜。丙申之擧。戒我以處義之精。嗚乎。言猶在耳。沙石在後。前洋瀰漫。失柁之船。將何所依泊耶。俯仰煢煢。心焉如燬。日月不留。墓草已宿。力疾艱步。晩始來哭。情密禮踈。辜負殊深。 조원홍(曺元弘) 조인환(曺仁煥, 1846∼?)을 말한다. 자는 원홍, 호는 병은(病隱),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갑오년의 변란 1894년(고종31) 6월 21일에 일본군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궁궐을 점령한 사건을 말하는데, 이를 통상 갑오변란(甲午變亂)이라고 한다. 병신년의 거사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1896년 2월 11일 친러 세력과 러시아 공사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사건을 말한다. 모래와……남았고 원문의 "사석재후(沙石在後)"를 풀이한 말이다. 진(晉)나라 왕탄지(王坦之)와 범계(范啓)가 서로 앞을 양보하면서 걸어가다가 뒤에 처지게 된 왕탄지가 "곡식을 까불며 바람에 날리면 겨와 쭉정이가 앞에 있게 마련이다.[簸之颺之, 糠粃在前.]"라고 한마디 하자, 범계가 "조리질을 하며 물에 흔들면 모래와 자갈이 뒤에 있게 마련이다.[淘之汰之, 沙礫在後.]"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排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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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아들에게 보임 示家兒 우리 선대는 신라와 고려 시대로부터 앞뒤 수천 년 동안 문학으로 벼슬을 하여 빛나는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일찍이 동방의 사대부 반열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내 위로 5~6대에 이르러 아주 사나운 운수172)를 만나 날로 쇠퇴하였으니, 증조부는 금남에서 낭주로 옮겨왔고 조부는 낭주에서 금릉으로 옮겨왔으며 선고(先考)는 금릉에서 능양으로 옮겨왔다. 반남에 남겨진 장원(莊園)은 풀이 무성하게 묵었으며, 가야산의 선영은 쓸쓸하여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쓸쓸하고 외로운 혼자 몸으로 떠돌아다니며 걸식하여 그 모욕을 받은 것이 적지 않으며 난처한 상황을 만난 것이 대단히 많았으니,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며 말을 하면 목이 매인다. 선고 부군은 아침부터 밤까지 걱정으로 부지런하여 조금도 쉴 틈이 없었으며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빗물에 목욕하면서173)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애써서 겨우 가계를 세워 자손들이 이어나갈 토대를 마련하였다. 아! 불초한 나는 혼매하고 어리석으며 명석하지 못하며 나약하고 게을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나 자신의 측면에서는 심지(心志)가 통투하지 못하여 학문은 이룬 것이 없고, 집안의 측면에서는 대대로 전해지는 가업을 지키지 못하여 처자가 어려움에 처하였으니, 사방으로 떠돌며 남들에게 먹을 것을 의탁할 지경이 되었다. 오호라! 이 어찌 사람이란 말인가, 이 어찌 사람이란 말인가. 나라를 망친 신하와 전쟁에서 패한 장수는 공자가 확상의 향사례(鄕射禮)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였으니,174) 이렇게 집안을 망친 자는 또한 나라를 망치거나 전쟁에서 패한 부류가 아니겠는가. 자식의 처지에서 효도하지 못하고 사람의 처지에서 인(仁)하지 못하였으니, 비록 이전 습관을 통렬하게 고쳐서 천만의 죄 가운데 아주 조금이라도 그 허물을 줄이고자 하지만 흰머리의 노쇠한 나이에 정력이 미치지 못하니 천지를 우러러보고 굽어보며 잊지 않고 근심하는데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하고 있다. 오호라! 슬프도다. 이번 생은 끝났도다. 너는 다만 스스로 도모할 것을 생각하지 않느냐. 너는 경전과 역사를 대략 섭렵했으니, 도의 대경(大經)과 옛날 성패와 존망의 원인을 조금은 알 것이다. 또한 너도 나이가 곧 40이 되니, 자신의 시비득실과 세상의 길흉화복에 대해 많이 경험했을 것이므로 좋아해야 하고 미워해야 하는 것의 취하고 버리는 향배의 구분에 대해 대략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잘 모르겠지만, 너의 마음에 뉘우치고 깨우쳐서 척연(惕然)히 이전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느냐. 아니면 멍청하게 깨우치는 것이 없이 자포자기를 당연하게 여기느냐. 천지의 성(性)을 품부 받고 부모의 기를 받아 장부로 태어나 선비의 신분으로 가문의 지극히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자손을 위한 무궁한 계책을 세워야 하는데, 무엇이 괴로워서 자신을 천박하다고 여기고 스스로 위망(危亡)을 취하여 탄탄한 길을 버리고 가시밭길을 달리며 인(仁)175)을 버리고 구덩이에 몸을 던져서 안으로 부모에게 치욕을 끼치며 밖으로 향리의 조롱을 불러들이려 하느냐. 네가 무언가를 하려하지 않는다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만일 하려고 한다면 자신에게 절실한 병통을 알지 않을 수 없다. 옛사람은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직언을 좋아하였는데 너는 맛있는 술을 좋아하고 직언을 싫어하니, 여러 낭패가 어찌 이르지 않겠느냐. 군자는 고요함으로 덕을 기르는데 너는 항상 동작할 것만 생각하여 어지럽게 출입하니, 너는 한번 생각해 보아라, 평소의 허물이 어찌 일찍이 동작하는 것에서 온 것이 아니더냐. 《시경》에서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은 오직 덕의 기반이어라."176)라고 하였으며, 《논어》에서 "남과의 관계에서 공손하여 예의가 있으면 사해 안이 모두 형제일 것이다."177)라고 하였다. 대저 천기가 온화하면 만물이 번창하고 천기가 차가우면 만물이 시드니, 사람에게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온화함은 덕의 기반이 되며 사해가 귀의하게 됨에 이른다. 너는 쓸쓸히 외로운 몸이라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데, 성기(性氣)가 거칠고 얕은데다가 자상하고 온후한 뜻이 적어서 사물이 너를 친하게 대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너를 친하게 대하겠느냐. 이는 외로워 약한 가운데서도 더욱 외로워 약한 자이다. 많은 사람이 배반하고 친한 이도 떠나면 만승(萬乘)의 천자도 홀로 존재할 수 없는데, 더구나 필부임에랴. 이것이 내가 너를 위해 깊이 걱정하는 바이다. 근래 이래로 집안의 살림이 탕진되어 거함에 한 해를 잘 마칠 계책이 없고 움직임에 손 쓸 방법이 없으니, 너는 어떻게 늙은 부모를 봉양할 것이며 아들을 교육시켜서 위로는 자식 된 도리를 잃지 않고 아래로는 아비 된 책임을 잃지 않겠느냐. 만약 변고를 만나서 거처를 옮기게 된다면 예상의 귀신178)이 됨을 면치 못할까 두려우니, 자신 한 몸도 구원하지 못하는데 부모는 어찌할 것이며 처자는 어찌할 것인가. 이는 목전의 급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게으름은 만 가지 악의 근원이며,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무익한 일은 하지 말며 무익한 사람은 가깝게 지내지 말며 한가로운 이야기를 줄이고 쓸데없는 출입을 생략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실제 일을 행하며 겸손과 공손함으로 몸가짐을 하고 온화함과 부드러움으로 집안을 이끌고 공경함과 조심함으로 사람을 대하며 자신에 대한 책망은 두텁게 하고 남에 대한 책망은 박하게 하며 행동함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든 자신에게 돌이켜 구하여, 부지런히 힘써서 노력하여 선을 행하는 것을 가장 즐거운 일로 삼는다면, 어찌 만년의 공이 젊었을 때의 실수를 벌충하지179)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겠느냐. 옛사람이 초상을 치르면서 슬퍼하지 않는 자를 보고서 "이런 것을 일러 뿌리를 쓰러트린 것이라 하니, 자손이 창대하지 못할 것인져."180)라고 하였으며, 제사에 임하여 공경하지 않은 자를 보고서 "이런 것을 일러 조상을 망각한 것이라 하니, 조상을 망각하면 그 조상도 또한 자손을 잊어버리니 자손을 돕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드시 그러한 이치이다. 대저 사람이 부모를 향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무한한 선의(善意)가 모두 이를 따라서 나오게 된다. 나는 약질로 병이 많은데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데다가 항상 밖에 있으니 어찌 될지 앞일을 알 수가 없다. 또한 지금 상황은 두려울 정도라 앞날에 일어날 일은 알 수가 없으니, 만약 부자간에 서로 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스러진다면 어찌 대단히 한스러울 일이 아니겠느냐. 이에 대략 속에 있는 마음을 기술하고서 미리 너를 위해 말하였는데, 옛사람이 편지 형식으로 준 의미를 본받았다. 잘 모르겠는데 백로처럼 잊어버리고 버려 버릴 것이냐, 아니면 무휼처럼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항상 보고서 평생 활용할 것이냐.181) 이것은 너에게 달렸다. 말하고 싶은 것은 참으로 이에 그치지 않는데, 그러나 네가 만약 기꺼이 이 말들을 받아들인다면 그 말하지 않은 것은 미뤄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만 이 한 편(編)의 말도 또한 무익할 것이다. 더 이상 많은 말을 어찌 하겠느냐, 모름지기 대단히 노력하여라.질문 : 〈홍범〉의 주에서 '본받아 진술한 것[法而陳之]'182)의 법(法)과 《한사》183)에서 말한 '그 모양을 본받는다.[法其象貌]'184)의 법은 같은 의미입니까.답변 : 앞에 것은 그 이치를 본받는다는 것이고 뒤에 것은 그 모양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질문 : 우(禹)가 〈낙서〉를 받고 다만 '9를 머리에 이고 1을 아래에 밟으며, 왼쪽이 3이고 오른쪽이 7이며, 2와 4가 어깨가 되고 6과 8이 발이 된다.'185)는 것을 본받고서 일찍이 말을 덧붙이지 않았는데, 기자에 이르러 비로소 뜻을 미뤄 넓혀서 말을 보탰습니다. 이는 복희가 〈하도〉를 받고서 64괘를 그려서 나열하기만 하고 다른 말이 없었는데, 문왕 · 주공 ·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괘사 · 효사 · 단사 · 상사가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답변 : 그렇다.질문 : 태극이 움직여서[動] 양을 낳고 고요하여[靜] 음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유는 고요한 가운데 양이 있고 움직이는 가운데 음이 있다186)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태극의 동정은 선유가 말한 것과 같지 않습니까。답변 : 위의 한 단락은 두 체(體)가 상대하는 것이요, 아래 한 단락은 두 기가 서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질문 : 맹자는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不動心]'을 말하면서 "뜻은 지극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 뜻을 잡아 지킨다."187)라고 하였는데, 이 단락에서 다만 뜻을 들어서 말한 것은 마음이 간 바에 나아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답변 : 뜻이란 기(氣)의 장수다. 천하의 모든 일이 어찌 뜻이 서지 않고서 성취한 것이 있겠느냐.질문 : '뜻은 도로써 안정시킨다.'188)는 것은 사물이 궁구해져서 앎이 지극한 일에 해당하며, "말은 도로써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일에 해당합니까.답변 : '뜻은 도로써 안정시킨다.'는 것은 마음에 관해 말한 것이고, '말은 도로써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은 행동에 대해 말한 것이다.질문 :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수신(誠意正心修身)은 명덕을 밝히는 것에 속하고, 제가치국평천하(齊家治國平天下)는 신민(新民)에 속하니, 여덟 조목에서 '지극한 선에 그친다.'는 것은 오행에서의 토(土)나 사단에서의 신(信)과 같습니까.답변 : 말은 그럴 듯한데 비교한 대상은 아마도 정밀하지 않은 듯하다.질문 : 근래 들어 항상 이 마음을 수렴하여 억지로라도 침잠하는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만 본래 학문으로 얻은 힘이 없어서 언뜻언뜻 왔다 갔다 하며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장난질을 하니, 눈에 보이고 귀에 보이며 생각이 일어나는 데로 따르는 것이 북소리, 그림자나 메아리보다 빠릅니다. 이런 습관을 통렬하게 끊어내어 장차 어떻게 조금이라도 보존하여 지킬 방법이 있습니까. 또한 한가로이 노닒을 끊어버리며 세상의 교유를 멈추고 암실에 고요히 홀로 처해야만 이에 가능합니까.답변 : 이 단락에서 말한 것을 보면 누가 너를 학문에 뜻을 두지 않았다고 하겠느냐. 그러나 장난질을 하면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면서 곧바로 다시 이전처럼 하니, 어찌 말한 것과 상반되느냐. 외면의 거친 과오를 오히려 그치지 못하는데, 내면의 언뜻언뜻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어떻게 끊어버리겠느냐. 그렇다면 너의 공부는 우선 평소 자신을 이기는 것에 두어야 한다. 我先世。自羅麗來。前後數千年。文學仕宦。奕葉相承。曾不多讓於東方士大夫之列。至五六世以降。運丁百六。日就衰替。曾王考自錦南移郞州。王考自郞州寓金陵。先考自金陵遷綾陽。潘南遺庄鞠爲茂草。伽倻先隴。寂若無人。零丁孤孑。流離假乞。其受侮之不少。遘憫之旣多。念之骨寒。言之哽塞。先考府君夙夜憂勤。不遑暇寧。櫛風沐兩。血心拮据。僅能成立家計。爲予孫可繼之地。嗟余不肖。昏愚不明。懦怠不振。在身則心志不通。學問無成。在家則世業不守。妻子無賴。至於流寓四方。寄口於人。嗚乎。此何人哉此何人哉。亡國之臣。敗軍之將。聖人不與矍相之會。則此敗家之子。亦非亡國敗軍之類耶。在子爲不孝。在人爲不仁。雖欲痛革前習。以爲一分寡過於千罪萬累之中。而白首頹齡。精力不逮。俯仰耿耿。覓死無地。嗚乎痛哉。此生已矣。汝獨不思所以自爲謀耶。汝略涉經史。粗知道之大經。及古成敗存亡之所以然。且汝年將四十矣。身之是非得失。世之吉凶禍福。多所經歷。則其可好可惡取舍向背之分。想有槪焉者矣。未知汝之心有所悔悟。而思惕然懲毖者耶。懵然無覺。甘於自暴自棄而已耶。稟天地之性受父母之氣。生爲丈夫。身爲士子。有門戶至重之責。有子孫無窮之計。何苦而自視菲薄。自取危亡。舍坦道而走荊榛。曠安居而投坑塹。內而貽父母之羞辱。外耳招鄕里之嘲訕哉。汝不欲有爲則已。如欲有爲。切已病痛。不可不知。古人惡旨酒而好直言。汝則好旨酒而惡直言。種種狼狽。何所不至君子靜以養德。汝則常思動作。紛紜出入。汝試思平日愆尤。何嘗不自動作中出來耶。詩曰。溫溫恭人惟德之基。語曰。與人恭而有禮。四海之內皆兄弟也。夫天氣溫溫。則萬物和暢。天氣冷冷。則萬物彫瘁。在乎人者亦然。此溫溫所以爲德之基。而至於四海歸之。汝以隻身煢煢。無賴無聊。而加以性氣粗淺。少慈祥溫厚之意。物不親我。人誰與我。此孤弱之中。尤爲孤弱者也。衆版親離。萬乘不能以自存。況匹夫乎。此吾所以爲汝深憂者也。近年以來。家業蕩然居無卒歲之計。動無措手之方。汝何以奉養老親。敎育子男。上不失爲人子。下不失爲人父耶。若遇事變。有小小移動。則恐不免爲翳桑之鬼。一身不足血。父母奈何。妻子奈何。此不可謂非目前急故也。怠者萬惡之源。勤者無價之寶。自今日爲始。不作無益之事。不近無益之人。少閒說話。簡閑出入。以實心行實事。以謙恭持身。以和順御家。以敬謹接人。躬自厚而薄責於人。行有不得。反求於已。俛焉孜孜。爲善最樂。則安知桑楡之功。不能盖東隅之失耶。古人見臨喪不哀者曰。此謂蹶本。子孫其不昌乎。見臨祭不敬者曰。此謂忘祖。忘祖則祖亦忘其子孫。不爲之祐矣此必然之理也。大抵人有向親之心。則自然有無限善意。皆從此出也。余弱質多病。年邁增甚。而恒在外次。人事難諶且時象凜凜。前頭遭遇。有不可知。若父子不相見。而遽爾溘然。則豈非大可恨耶。玆以略述肝鬲。豫爲汝道之。以效古人授簡之意。未知遺忘廢墜如伯魯乎。記念不忘。視爲平生受用如無恤乎。此在汝而已。所欲言固不止此。然汝若肯向此裏。則其不言者。可以推及。不然。只此一篇語。亦是無益耳。多言何爲。須千萬勉旃。洪範註法而陳之之法。與漢史所謂法其象貌之法。同義否。一則法其理。一則法其象。禹受洛書。只法陳其戴九履一。左三右七。二四爲肩。六八爲足。而曾無敷言。至箕子時。始推衍增益之。如伏羲受河圖。畵列六十四卦。而無其辭。至文王周公孔子。始有卦辭爻辭彖象耶。然。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以先儒靜中有陽。動中有陰言之。則太極動靜。與先儒所說不同。上一段。是二體之對待。下一段。是二氣之互藏孟子說不動心曰志至焉。又曰持其志。此段特擧志而言者。以就心之所之處而然否。志者氣之帥。天下萬事。豈有志不立而能有所成就者哉。志以道寧。物格知至事。言以道接。修齊治平事否。志以道寧。是心邊說。言以道接。是行邊說。格致誠正修屬明明德。齊治平屬新民。則止至善之於八條目。猶五行之土。四端之信否。語則似然。而比類恐不精。入近以來。每欲收斂此心。强着沈潛功夫。而但本不有定力。乍往乍來。放浪戲謔。隨耳目思慮。捷於鼓桴影響其於痛斷刻絶之所。將何以能保其一分持守之方乎。抑絶閑遊。息世交。而處於闇室幽獨之中。斯可矣否。觀此段所說。孰不以汝爲志於學乎。然戲謔放浪。旋復如古。何其與所說相反耶。外面麤粗之過。猶不能遏止。內面乍往乍來者。何以斷置。然則汝之功夫。先在日用克己上。 사나운 운수 '백육(百六)'은 106년을 가리키는데, 4500년이 1원(元)이고 1원 중에 5번의 양액(陽厄)과 4번의 음액(陰厄)이 있어 106년마다 액운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漢書 卷21 律歷志上》 바람에……목욕하면서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우 임금은 몸소 삼태기와 보급을 가지고 구주(九州)의 강들을 바다로 흘러가게 하느라 장딴지의 살은 떨어지고 종아리의 털이 다 닳아 없어졌다. 소나기에 머리를 감고 거센 바람에 머리털을 빗질하였다.[禹親自操稾耜, 而九維天之川, 腓無胈, 脛無毛, 沐甚雨, 櫛疾風.]"라고 하였다. 오랜 세월 객지를 떠돌며 온갖 고생을 겪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나라를……하였으니 확상은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궐리(闕里) 서쪽의 지명으로, 후대에 학궁(學宮)에서 사례(射禮)를 익히는 장소로 쓰였다. 공자가 확상의 포(圃), 즉 노나라 학궁 곁의 택지(澤地)에서 향사례(鄕射禮)를 행할 적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처럼 빙 둘러섰는데, 이때 자로(子路)에게 "패군(敗軍)한 장수와 망국의 대부와 인후가 된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 외에는 모두 들어오게 하라.[賁軍之將 亡國之大夫 與爲人後者 不入 其餘皆入]"라고 말하게 하자, 떠나는 자가 반 들어온 자가 반이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禮記 射義》 인(仁) 안거(安居)는 인(仁)을 가리킨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요, 의는 사람의 바른길인데,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거처하지 않으며, 바른길을 버려두고 따르지 않으니, 슬프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不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는 말이 나온다. 온화하고……기반이어라 《시경》 〈대아(大雅) 억(抑)〉에 나오는 구절이다. 남과의……것이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사마우(司馬牛)가 일찍이 불량한 자기 형 환퇴(桓魋)를 걱정하여 말하기를 "남들은 다 형제가 있는데, 나만 형제가 없구나.[人皆有兄弟 我獨亡]"라고 하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나는 들어 보니,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고 하더라. 군자가 몸가짐을 공경히 하여 실수하지 않고, 남을 대해서도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한다면 사해의 안에 있는 사람이 다 형제처럼 되리니,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다고 걱정할 것 있겠는가.[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라고 하였다. 《論語 顔淵》 예상의 귀신 예상은 옛 지명인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영첩(靈輒)이 이곳에서 굶주리고 있는 것을 조돈(趙盾)이 지나다 보고 먹을 것을 주어 구제해 주었고, 그 뒤에 영첩이 진나라 영공(靈公)의 갑사(甲士)가 되어 위험에 처한 조돈을 다시 구제해 줌으로써 조돈이 죽음을 모면하였다.《春秋左氏傳 宣公2年》 만년의……벌충하지 《후한서(後漢書)》 권47 〈풍이열전(馮異列傳)〉에 "동우에서 잃었으나 상유에 수습한다。〔失之東隅 收之桑楡〕"라고 하였는데, 동우(東隅)는 동쪽 해가 뜨는 곳이니 젊은 시절을 말하고, 상유(桑楡)는 서방 해가 지는 곳으로 만년(晩年)을 비유한다. 이런 것을……것인져 《좌전》 양공(襄公)29년조에 "위(衛)나라 석공자(石共子)의 죽음에 그 아들 도자(悼子)가 슬퍼하지 않으니, 공성자(孔成子)가 말하기를 '이를 일러 그 근본을 뽑아 버리는 짓이라 하니, 반드시 그 종족(宗族)을 보존하지 못할 것이다."라 하였다. 백로처럼……것이냐 조 간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이 백로(伯魯)이고, 차남이 무휼(無恤)이었다. 어느 날 간자가 훈계의 말을 쪽지에 적어 각각 두 아들에게 주고서 잘 기억해 두라고 명하였다. 3년이 지난 뒤에 물어보니, 형 백로는 훈계의 말을 잊어버려 대답을 못 하였고 쪽지도 이미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아우 무휼은 그 말을 암송하여 잘 알고 있었고 쪽지를 꺼내라고 하자 즉시 품속에서 꺼내어 아버지에게 올렸다.《十八史略 春秋戰國 趙》 본받아 진술한 것 《서경》 〈홍범〉의 주에서 "《한지》에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림에 하늘이 〈낙서〉를 내려 주므로 이것을 본받아 진열하니, 홍범이 이것이다.'라고 하였다.〔漢志曰 禹治洪水 錫洛書 法而陳之 洪範是也〕"라는 내용을 가리킨다. 한사 한나라의 사기, 즉 《한서(漢書)》를 가리킨다. 그 모양을 본받는다 미상. 9를……된다 〈홍범〉 장의 집전에서 구궁(九宮)의 수를 두고 "9를 머리에 이고 1을 아래에 밟으며, 왼쪽이 3이고 오른쪽이 7이며, 2와 4가 어깨가 되고 6과 8이 발이 된다. 이는 낙서의 수이다.[戴九履一, 左三右七, 二四爲肩, 六八爲足, 洛書之數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고요한……있다 명대의 전예형(田藝蘅)은 〈혼고시천역(混古始天易)〉에서 "태극의 처음에는 동정이 없다가 처음으로 동정할 때 천지간에 엉긴 것이 점차 녹아내리고 형체를 갖추어 점차로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양은 동하여 위로 올라가 동하는 가운데 음이 있고, 음은 고요하여 아래로 내려가 정하는 가운데 양이 있다."고 하였다. 뜻은……지킨다 맹자가 공손추와 부동심(不動心)을 논하는 대목에서 말하기를 "의지는 기운을 부리는 장수이고, 기운은 몸을 채우고 있는 것이니, 의지가 첫째요 기운이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그 의지를 확고히 세우고도 또 그 기를 거칠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夫志氣之帥也 氣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 故曰持其志 無暴其氣〕" 하였다. 《孟子 公孫丑上》 뜻은 도로써 안정시킨다 주 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에 이긴 뒤에 서려(西旅)에서 큰 개를 공물로 보내오자, 태보(太保)였던 소공이 〈여오(旅獒)〉를 지어 왕에게 경계한 내용 중 하나로, "뜻을 도로써 편안하게 하시며, 말을 도로써 대하소서.[志以道寧, 言以道接.]"라고 하였다. 《書經 旅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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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포 양공에 대한 제문 祭竹圃梁公文 생각건대, 우리 조선은 5백 년 동안 거듭 빛나고 은택이 흡족하여 거실세족(巨室世族)과 저명한 성씨와 집안이 능히 선대의 법을 지켜 오래도록 잃지 않은 이는 위로 경기지역으로부터 아래로 시골에 이르기까지 곳곳마다 서로 바라보입니다. 이것은 지난 역사책에서도 그 비견할 이들이 드물게 보이니, 부터 유래한 것이 깊음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오호라! 공은 호남의 저명한 성씨이고 능주(綾州) 지역의 명가로, 학포(學圃),75) 송천(松川)76) 두 선생으로부터 이후로 위유(偉儒)와 석덕(碩德)이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이었고, 공에 이르러 문학과 행의가 또 능히 전대의 업을 이어 전술하여 아름다운 소문과 명망이 이른 나이에 자자하였습니다. 그러나 발걸음은 성시(城市)에 이르지 않았고 몸은 요직에 있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바위 언덕과 시내 골짝의 사이에 깊이 감추고 멀리 떠나 한가로이 배회하며 여생을 마쳤으니, 그 무너진 풍속을 진정시키고 이 세상에 보탬이 있었던 것은 어찌 이른바 줄어들지 않는 유익함과 보답하지 못하는 은혜가 아니겠습니까.오호라! 의림(義林)의 선대 항렬의 세 분 형제가 여러 대 동안 유리하던 끝에 또 장차 이 땅에 와서 의지하려 하였는데, 그대 선공(先公) 운곡(雲谷) 어른이 실로 주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벗을 떠나 쓸쓸히 지내는 정경은 형용하기 어려웠는데 부축하고 도와주고 구휼하고 보살펴주어 끝내 편안한 집을 얻는데77) 이르게 하고 내가 들로 다니는78) 탄식이 없게 하였으니, 이것은 누구의 은혜입니까? 세시(歲時) 때마다 안부를 묻고 살펴서 행차가 서로 이어졌고, 한가한 날에는 심회를 펼쳐 술잔과 소반이 교차하였습니다. 당시 소자는 이를 갈 나이의 어린아이로 한두 번 곁에서 모실 수 있었는데, 그 기뻐하는 기색과 정연한 위의를 기억함에 지금도 여전히 어제의 일과 같았습니다.오호라! 두 집안의 선대 어른은 모두 이미 천고의 사람이 되었고, 오늘에 이르러 공이 또 갑자기 이 세상을 버렸습니다. 어두운 거리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갈팡질팡 갈 곳이 없는데 한 분의 연세 높고 덕이 많은 분을 잃었으니, 이것은 이 세상의 애통함입니다. 부모 잃은 여생에 외로워 의지할 곳이 없는데 한 분 선대 항렬의 우아한 교분을 잃었으니,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애통함입니다. 그러나 의림 또한 늙어, 저승에 선군자를 따를 날이 장차 멀지 않았으니, 두 집안의 2,3세가 어찌 끝내 저승 누대 위에서 함께 모여 옛날처럼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의 애통함은 이 세상 사람에게 맡기고 내 개인적인 애통함은 또한 거의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의림은 병이 들어 문을 닫고 문밖을 나가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영원히 돌아가게 되는 때에 의리상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병을 무릅쓰고 포복하여 가서 하늘이 다하도록 무궁한 슬픔을 곡하며 고합니다. 惟我朝重熙。累洽五百年。而巨室世族。著姓名家。能守先法。久而不失者。上自畿甸。下至鄕曲。在任相望焉。此在往牒。鮮見其比。而可以見其有所自者深矣。嗚呼。公湖省著姓。綾鄕名家。自學圃松川兩先生以來。偉儒碩德。世濟其美。至于公。文學行義。又能紹述前業。令聞令望。早年藉藉。然足不到城市。身不見要人。而深藏遠引於巖。阿澗谷之間。婆娑徜徉。聊以卒歲。其所以鎭定頹俗。有補斯世者。豈非所謂不損之益不報之恩耶。嗚乎。義林先行三昆季。在累世流離之餘。而又將來依此土也。尊先公雲谷丈。實爲之主焉。離索踽凉。情景難狀。而扶之翼之。恤之存之。使至於其究安宅。而無我行其野之歎。是誰之賜歟。歲時存省。杖屢相尋。暇日敍暢。盃盤交錯。伊時小子。以毁齒之年。得一再侍惻矣。記其怡怡之色。秩秩之儀。至今依依然如昨日事。嗚呼。兩家先公。皆已千古矣。至於今日。公又遽棄斯世耶。昏衢群蒙倀倀莫往。而失一耆舊宿碩。此爲斯世之慟也。風樹餘生。煢煢靡賴。而失一先行雅契。此爲私情之慟也。然義林亦老矣。從先君子於九原。行將不遠。則兩家二三世。豈不終當會聚於泉臺之上。歡然如平昔耶。然則斯世之慟。付諸斯世之人。而私情之慟。亦庶有可以自慰者矣。義林病廢。杜門不出戶庭久矣。而今於永歸之辰。理不可以但已。故力疾匍匐。哭告終天無窮之悲。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호이다. 자는 대춘(大春),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중종조에 수찬, 교리 등의 직을 역임하였다. 1519년(중종14)에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을 위하여 소두(疏頭)로서 항소하였다가 삭직되어 고향인 능주(綾州)로 돌아와 학포당(學圃堂)을 짓고는 독서로 소일하였다. 1630년(인조8) 능주 죽수서원(竹樹書院)에 배향되었으며, 1818년(순조18) 순천 용강서원(龍岡書院)에 추향되었다. 저서로는 《학포유집(學圃遺集)》이 있다.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의 호이다. 자는 공섭(公燮)이다. 시문에 능하여 선조 때 8문장의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졌다. 공조 좌랑, 진주 목사, 공조 참판,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송천집》, 《용성창수록(龍城唱酬錄)》 등이 있다. 끝내……얻는데 《시경》 〈소아(小雅) 홍안(鴻雁)〉에 "비록 고생은 하더라도, 끝내 편안한 집을 얻으리라.[雖則劬勞, 其究安宅.]"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내가 들로 다니는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 〈아행기야(我行其野)〉에서 취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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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빈에 대한 제문 祭趙泰彬文 글을 짓고 술 마시는 벗은 얻기 쉬우나 강마(講磨) 하는 벗은 얻기 어려우며, 강마 하는 벗은 얻기 쉬우나 생사를 함께하는 벗은 얻기 어렵네. 군은 나에게 비록 나이가 조금 적고 교분을 맺은 것이 조금 늦지만, 글을 짓고 술을 마시는 놀이와 강마하는 모임에 함께 한 것은 거의 많은 해가 되었네. 시사(時事)가 한번 변하여 풍색(風色)을 헤아리기 어렵게 되어서는 함께 짝이 되어 자정(自靖)117)의 뜻으로 개연히 스스로 허여한 사람은 대개 몇 명 없는데, 군이 그 중 한 사람이네.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인정상 실로 당연한 것인데 경중과 취사의 분별이 평소 마음에 정해져 있지 않으면 어찌 능히 그럴 수 있었겠는가. 이에 군은 생사를 함께할 벗이 되는 것에 의심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네.강마 하는 벗은 열에 한 사람도 없고 생사를 함께 하는 벗은 백에 한 사람도 없는데, 군은 이미 나를 버리고 가버렸네. 노년에 서로 지키려던 뜻과 북풍(北風) 불 때 함께 돌아가자던 약속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구름처럼 공허해져 오유(烏有)의 고을118)로 돌아가 버려 백아(伯牙)가 홀로 노래하는 슬픔과 동리(東里)에 더불 이가 없다는 탄식119)이 아득한 천지에 어찌 끝이 있겠는가. 천지간에 외로운 몸 눈물이 쏟아지는 듯하네. 노쇠한 몸에 병이 들어 갑자기 달려가 문상하기 어려워 이렇게 제문을 지어 애통한 마음 깃들이네. 文酒之友易得。而講磨之友難得。講磨之友易得。而死生之友難得。君於我。雖年紀稍後。契遇差晩。而文酒之遊。講磨之會。爲幾多年矣。至於時事一變。風色叵測。則以同仇自靖之意。慨然自許者。槩無幾焉。而君其一也。好生惡死。人情固然。而輕重取舍之分。非有素定於內。則安能乃爾。於是而知君之爲死生之友無疑矣。講磨之友。十無一焉。死生之友。百無一焉。而君旣棄我而逝矣。老年相守之志。北風同歸之約。烟消雲空。歸於烏有。而伯牙獨唱之悲。東里無與之歎。悠悠天地。曷有已哉。俯仰煢煢。淸血如注。衰軀嬰病。遽難趨造。聊此緘辭。以寓一哀。 자정(自靖) 자신의 분의에 마땅하게 처신하여 스스로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書經 商書 微子》 오유(烏有)의 고을 허무하게 됨을 말한다. 한(漢)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에서 자허, 오유선생(烏有先生), 무시공(亡是公)이라는 가공의 세 인물을 설정하여 문답을 전개했는데, 자허는 '빈말'이라는 뜻이고 오유선생은 '무엇이 있느냐'는 뜻이고 무시공은 '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후세에 허무한 일을 말할 때 흔히 자허·오유라 하였다. 동리(東里)에……탄식 《장자》 〈서무귀(徐無鬼)〉에 "지금 나도 혜자가 죽은 뒤로 장석처럼 나를 알아주는 상대가 없어져서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졌다.[自夫子之死也, 吾無以爲質矣, 吾無與言之矣.]"라고 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동리와의 관계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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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경【운환】에게 보냄 與權舜卿【雲煥】 헤어진 뒤 벌써 석 달이 지났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지내는 체후는 강녕하신지요. 콩죽을 먹고 물을 마시며20) 부모를 모시는 하루를 삼공(三公)의 자리와 바꾸지 않으시는 것21)을 멀리서 앙모(仰慕) 하려니 간절한 마음을 어찌 견디겠습니까. 접때 제가 변론한 형들의 《답문(答問)》 1책(冊)에 관한 말들은 생각하기에 잘못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모름지기 계남(溪南)과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의 호) 두 어른과 다시 토론하여 확정한 뒤 하나하나 알려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편지에서 언급하신 심의설(深衣說)은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꼼꼼하고 막힌 곳이 없음은 아마도 금일의 절충한 논의가 될 듯합니다. 지난번 산천재(山天齋)에서 올린 말씀은 우리 형께서 이미 소릉(昭陵)을 보듯 했으리라는 것22)을 모르지는 않지만 제가 경애하고 추앙하여 올린 말씀 또한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삼가 보건대 형께서는 학문은 넓지만 정밀함이 부족하고 실천은 올바르지만 돈독함이 부족하십니다. 이것이 분명하지 못하고 유유범범하여 갖가지 병통이 말미암는 곳입니다. 만약 하나의 큰 문제를 잡고 공격해서 깨트리지 않는다면23) 무슨 방도로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경계를 보겠습니까. 이에 미진한 생각을 함부로 추가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別來月已三弦。省衛康寧。啜菽飮水。一日三公。遙遙馳仰。曷在懇情。向者鄙所辨論兄輩答問一冊語。想多件誤。與溪艾兩丈。更須商確。一一示及如何。所惠深衣說。姑未卒業。然其精詳博洽。恐爲今日折衷之論。向於山天齋所奉贈一語。非不知爲吾兄已見之昭陵。而區區愛仰。亦不爲全然無意。竊覸兄學問博矣。而欠精密。踐履正矣。而欠敦篤。此漫渙悠泛種種病痛所由出也。若不於一處大處攻得破。何由見得妥帖境界也。玆以未盡之意。漫加及之。以爲何如。 콩죽을……마시며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어버이를 극진히 봉양하는 자식의 기쁨을 말한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집안이 가난해서 효도를 제대로 못 한다고 탄식하자,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이다."라고 위로했던 고사가 전한다. 《禮記 檀弓下》 부모를……않으시는 것 송나라 왕안석(王安石)의 시 〈송교집중수재귀고우(送喬執中秀才歸高郵)〉에 "옛사람은 하루 동안 부모 봉양하는 기회를 삼공의 자리와도 바꾸지 않았네.【古人一日養, 不以三公換.】"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臨川文集 卷9》 소릉(昭陵)을……것 수많은 학설을 모두 애모하는 마음으로 모두 독파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릉은 당 태종(唐太宗)의 황후인 문덕황후(文德皇后)의 능이다. 태종이 황후를 장사 지낸 뒤 후원(後苑)에 망대(望臺)를 만들어 놓고 늘 올라가 바라보다가 한번은 위징(魏徵)과 함께 올라갔었는데, 위징은 당 태종이 소릉을 가리키는데도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뗐다. 위징의 본의도 모르고 당 태종이 저것이 아니냐고 답답한 듯이 말하자 위징이 비로소 "신은 폐하께서 헌릉(獻陵)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소릉은 신이 진작부터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헌릉은 태종 어머니의 능이니, 이것은 태종이 어머니는 생각하지 않고, 부인만 생각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리하여 태종은 울면서 그 망대를 헐어 버린 고사가 전한다. 《唐書 魏徵列傳》 하나의……않는다면 《주자어류(朱子語類)》 권8 학(學)2 총론위학지방(總論爲學之方)에 "하나의 큰 문제를 잡고 공격해서 깨뜨릴 수만 있으면, 잡다한 다른 문제들도 단지 이 하나의 도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슴속이 바야흐로 시원해질 것이다.【能於一處大處攻得破, 見那許多零碎只是這一箇道理, 方是快活.】"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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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문【인석】에게 답함 答趙景文【寅錫】 칩거를 자신의 분수로 삼아 서신만이 오랜 벗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노쇠함이 더욱 심해져 이마저 종종 걸렀으니 사우(士友)들에게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좌하(座下)께서 특별히 잘못을 따지지 않는 의리52)를 진념하여 이렇게 먼저 은혜를 내리리라고 어찌 생각하였겠습니까. 감사한 마음을 뒤이어 곧바로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서한을 통해서 명령(榠欞) 나무53)가 늙지 않듯 양친께서 모두 평안하시고 화기애애하며 공경이 넘쳐 길상(吉祥)이 한꺼번에 모여드는 것을 알았습니다. 명운이 순조롭고 신이 좋은 복을 내려 주었으니, 천도(天道)는 인자(仁者)를 돕지 않는다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창가에 놓인 책상이 고요하고 연구는 날로 깊어지며 광채가 은은히 드러나 명성이 성대하니 여풍(餘風)을 바라보면 사람이 마음을 기울이게 합니다. 의림(義林)의 천한 운명은 외롭고 고달프기만 하니 처지가 가련합니다. 이전부터 해왔던 보잘것없는 학업도 흩어지고 사라져버려 선천(先天)의 그림자가 있는 듯 없는 듯 아득한 것과 같을 뿐입니다. 지리멸렬한 결과가 참으로 합당합니다. 다만 벗들이 서신을 왕래하면서 이따금 저를 독서인(讀書人)으로 기대하시고 후생(後生)의 젊은이 한둘이 간혹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는 듯함을 보니, 이것이 어찌 꿈에서라도 저에게 견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삼가 스스로 물러나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좌하(座下)의 성실하고 충직한 풍도는 이미 익히 탄복하는 바이건만, 도리어 오늘의 서한에서는 이렇게 실정에 맞지 않고 분에 넘치는 말씀을 하십니까.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 어지러운 세상은 대국이 끝나가는 바둑판 같아서 정세를 예측하기 어렵고, 평소의 옛 벗들에게만 의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호남의 귀퉁이와 영남의 구석에서 보잘것없는 처지로 지내면서 눈앞의 시용(時用)에 절실한 모든 환락과 근심, 크고 작은 의리를 일체 내버려 두고 묻지 않는 채 제쳐 두고 도모하지 않고 있습니다. 궁벽하게 살면서 길게 탄식할 때마다 끝없는 비통함만 절실할 뿐입니다. 존당(尊堂)의 수진운(壽辰韻 회갑 축하시)은 과연 잊고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문득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벗 사이에 서로를 대하는 도리이겠습니까. 대체로 이 몸은 본래 자질이 아둔하고 근년에 이르러서는 기험(崎險)이 겹겹이 닥쳐 온갖 어지러운 일이 밖에서 공격하고 갖은 근심이 안에서 들끓고 있습니다. 일상을 겪으면서 열에서 여덟, 아홉을 잊고 있다가 먼 지방에 있는 어진 덕행을 지닌 친구의 소중한 부탁도 대수롭지 않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워 죽을 지경입니다. 별지(別紙)는, 이같이 어리석은 식견으로 어찌 감히 입을 놀리겠습니까만 이택(麗澤)의 의리54)로 볼 때 강론과 연마의 방도가 없을 수 없기에 이에 감히 조목마다 채워 보냅니다. 회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自分貞蟄。惟是書墨一路。爲知舊相面。而年歲以來。衰索轉甚。亦不免種種廢闕。而得罪於士友者。多矣。豈謂座下特軫不較之義。而有此先施之惠哉。感感之餘。旋愧其不足承當也。因審春幃具慶。榠欞不老。怡愉洞屬吉祥湊臻。好氣數好福力。孰謂天道之不祐仁也。窓几涔寂。硏究日深。潛昭闇章。聲光藉藉。瞻言餘風。令人馳神。義林窮獨賤命。情景可憐。至於平昔之所謂區區爲業者。亦且渙散頹落。如先天影子之茫然有無耳。滅裂之報。固其所也。而但見知舊往復。種種以讀書人期待之。後生少年。或不無一二過從有若請敎者。然此豈夢寐可況者乎。竊欲引身避却而不可得也竊惟座下直諒忠慤之風。已所稔服。而乃於今日之書。亦爲此浮實過當之語乃爾耶。愧汗悚悚。不知攸答。嗚呼。缺界殘枰風色叵測。而所可聊賴者。惟是平素知舊人而已。然而零零落落於湖之隅嶺之角。凡百歡戚。大小義理。有切於目前時用者。一切置之而不問。捨之而不講。每窮居長吁。只切不盡之悲而已。尊堂壽辰韻。果忘之矣。因仍推待之頃。不知不覺。遽至於此。此豈友朋相向之道耶。大抵此身。素以鈍溯之質。至於近歲奇險層至。而百撓攻其外千慮盪其中。日用經過。十忘八九以。至遠外賢朋珍重之托。亦不免尋常遺却。愧死愧死。別紙以若謏見。何敢容喙。而麗澤之義。不容無講磨之方。玆以逐條塡去。幸回敎之爲望。 잘못을……의리 《논어》 〈태백(泰伯)〉에서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사람에게 묻고, 풍부하면서 풍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물으며, 가졌는데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차 있는데도 빈 것처럼 여기며, 잘못을 범해도 따지지 않는 것을, 지난날 내 친구가 실천한 바 있었다.【以能問於不能, 以多問於寡, 有若無, 實若虛, 犯而不較, 昔者吾友嘗從事於斯矣.】"라고 한 증자의 말에서 유래하였다. 명령(榠欞) 나무 명령(冥靈)이라고도 한다. 오래 산다는 남국(南國)의 나무 이름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500년을 봄으로 삼고, 500년을 가을로 삼는다.【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라고 하였다. 이택(麗澤)의 의리 벗끼리 서로 도와 학문을 닦고 힘쓰는 것이다. 《주역》 〈태괘(兌卦)〉에 "두 개의 연못이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이 태괘이니, 군자가 이 괘를 써서 붕우 간에 학문을 강습한다.【麗澤兌. 君子以, 朋友講習.】"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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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유【재업】에게 답함 答廉敬儒【在業】 뜻하지 않게 서찰로 하신 말씀이 이처럼 간절하니 돌이켜 생각해도 감격스러워 대답할 방도를 모르겠습니다. 보이신 뜻에 답이 없을 수는 없기에 매번 바로잡을 방도를 덧붙이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체로 회심(會心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과 상구(上口 입에 올려 외우는 것)는 본래 칼로 자르듯이 앞뒤로 나뉘지 않습니다. 오늘 상구를 하면 내일 회심이 이루어집니다. 또 음식을 한꺼번에 씹는 것처럼 서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형세도 아닙니다. 언사(言辭)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깨우칠 수 있다면 읽는 것이 정밀하지 않을 수 없고 외우는 것이 능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 한가한 낮에 단서를 끌어내고 청정(淸靜)한 밤에 침잠해야 그 의미를 터득할 수 있으니 또한 전혀 깨닫지 못하고서 상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상구와 회심의 근본은 '정(靜)' 자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정(靜)하면 심지(心地)가 맑고 깨끗해지며 정신이 막힘없이 통하게 되어 회심과 상구에 대해 모두 힘을 기울이기 쉽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同異)에 관한 주장은 선유(先儒)의 논의가 진실로 한둘이 아닙니다. 저는 일찍이 망령되게도 인(人)과 물(物)에 대해서 이(理)는 같아도 성(性)은 다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서(朱書)》를 보았더니 또한 여기에 관한 주장이 있어 "물에는 오성(五性)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일찍이 이 내용을 장석(丈席)에서 물었더니 답하시기를 "인자(仁者)가 보면 인(仁)이라 하고 지자(智者)가 보면 지(智)라 한다. 단지 이러한 사물일 뿐이니 사람의 인을 가지고 저 물(物)에게 요구하는 이치는 없다."55)라고 하셨습니다. 오상(五常)은 본래 오성(五性)에 하나하나 분속(分屬)되는 것이 아니고 부부(夫婦)와 장유(長幼)는 모두 예(禮)에 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분속하고자 한다면 예에는 질서의 의미가 있고 지(智)에는 분별의 의미가 있으니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예(禮)에 귀속돼야 할 듯하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지(智)에 귀속돼야 할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謂外翰命。若是繾綣撫念感戢。不知爲對。示義不能無言。而輒付就正之計。以爲如何。大抵會心上口。本非有截然先後。如今日上口。明日會心也。且非一擧竝嚼。混無相資之勢也。得於辭而能通其義。則讀之不可不精。誦之不可不熟然後。紬繹於日間休閒之時。沈潛於夜間淸靜之際。而可以得其義矣。亦非全然不覺而能上口也。且上口會心之本。在於靜之一字。靜則心地虛明。精神流通。其於會心上口。皆易爲力。未知如何。人物性同異之說。先儒之論固不一。愚嘗妄謂人物理同而性異矣。及見朱書。亦有此說。物有五性云云。愚嘗以此問于丈席。答曰。仁者見之謂之仁。智者見之謂之智。只是此箇物事。若以人之仁。去責那物。則無是理矣。五常本非五性之逐位分屬者。而夫婦長幼。皆當屬禮。然必欲分屬。則禮有序秩底意。智有分別。底意。長幼有序。似當屬禮。夫婦有別。似當屬智。未知如何。 인자(仁者)가……없다 《노사선생문집(蘆沙先生文集)》 권12 〈답정계방(答鄭季方)〉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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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주【계반】에게 답함 答魏玖周【啓泮】 생각지도 않았는데 영랑(令郞)이 환하게 문으로 들어오고 아울러 존함(尊緘 상대방의 편지)이 이르러 펼쳐 놓고 여러 차례 정성스럽게 읽었습니다. 구사한 말에 정이 깊고 말씀하신 뜻이 간곡하여 천박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합니다. 지금 존체(尊體)가 평안하고 존종(尊從 상대방의 사촌 형제)인 치검(致儉)은 거상(居喪) 기간이 이미 지났으며 따님을 출가시키고 며느리를 맞이하는 일을 차례대로 치렀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하고 한편으로 기쁘기도 합니다. 영랑(令郞)이 단정하고 점잖으며 언행에 예의가 바르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서신에서 동래(東萊)57) 운운하신 것은 진실로 기질을 변화시키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우리 벗께서 바야흐로 여기에 마음을 다하고 계시건만 도리어 몸에 지닌 신방(神方)을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십니까. 또한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치료할 방도를 모르는 자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미칠 힘이 있겠습니까. 부끄럽고도 감사합니다. 세상 형편은 다시 논할 만한 점이 없습니다. 크게 한숨을 쉬는 것으로 부족하여 눈물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부족하여 통곡을 하지만 통곡도 부족하니 어찌하겠습니까. 응당 문을 걸어 닫고 책을 읽어 자신의 분수를 지키는 방책을 생각할 뿐입니다.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자니 그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謂外。令郞憤然入門。兼玖尊緘。披玩三復。其遣辭之繾綣。命意之懇惻。有非淺淺者所可承當。感愧交至。卽惟辰下。尊體衛重。尊從玖儉喪期已過。而嫁。女娶婦次第徑行。聞之一悲一喜。令郞端詳雅飭。欽艶萬萬。示中東業云云。此眞變化氣質第一法。吾友方且從事於此。而乃別。求肘下神方乎人也。方亦困於膏盲。而不知所以爲醫者顧安有及人之力乎。愧愧謝謝。時象更無可論。太息而不足。流涕之。流涕而不足。痛哭之。痛哭不足。奈何奈何。惟宜杜門讀書。以思自靖之策而已。遙遙相望。不任依然。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 《주자대전(朱子大全)》 권54 〈답노덕장(答路德章)〉에, "지난번에 여백공을 만났는데, 그가 말하길 '젊었을 적에 성품과 기질이 거칠고 포악해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곤 했는데, 후일에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다만 《논어》 책 하나를 아침저녁으로 익숙히 보았다. 그러다가 홀연 마음이 화평해지는 것을 느껴 마침내 종신토록 갑자기 화를 내는 일이 없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기질을 변화시키는 법으로 삼을 만하다.【向見伯恭, 說少時性氣粗暴, 嫌飮食不如意, 便敢打破家事. 後因久病, 只將一冊論語, 早晩閑看, 忽然覺得意思一時平了 遂終身無暴怒. 此可爲變化氣質之法.】"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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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 형중 권하 에게 주다 贈金生亨仲【權夏】 천하의 일에 대해서 뜻을 세웠으나 이루지 못한 자들이 오히려 많다. 하물며 뜻이 없건만 성취하는 바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일상의 예사로운 것들, 예컨대 물을 긷고 땔나무를 하는 일165), 꽃을 보고 버들을 꺾는 일166) 등 모두 그러하다. 하물며 평소에 자기 자신과 집안을 위한 커다란 공부, 커다란 사업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뜻이 확립되지 않으면 한때의 선심(善心)이나 호의(好意)는 기름으로 그린 그림, 얼음으로 새긴 조각에 지나지 않고, 여러 경전(經典)의 격언(格言)이나 핵심적인 가르침은 문구(文具)나 책을 쌓아놓기만 한 책방에 지나지 않는다. "학문은 가장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167)는 선유(先儒)의 말이 이것이다.김군 형중보(金君亨仲甫)가 나에게 일찍이 말 한마디를 청하였으나, 그 뜻이 매우 가상하였지만 군(君)은 입지(立志)의 첫 번째 착수처에 대해서 이미 깨닫고 체득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러 경전의 말씀 하나하나에 대해서 반드시 문구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고 추구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어찌 지리멸렬하다 늙어버려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겠는가. 아니면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듯한 마음으로 다식(多識)하면서도 과문(寡聞)한 사람에게 묻고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자에게 묻는 것이 고인(古人)과 같아서인가?168) 후의(厚意)를 저버리기 어려워 삼가 '입지(立志)' 2자를 경계로 올린다. 이미 알고 있는 소릉(昭陵)이라고 소홀히 하지 말고 더욱 힘쓰기를 바랄 뿐이다. 天下事。有志而未就者尙多。況無其志而能有所就乎。尋常日用。如運水搬柴看花折柳。無不皆然。況平生身家大功夫大事業乎志。苟不立則一時之善心好意。不過爲脂畵氷鏤群經之格言要誨。不過爲文具書肆。先儒所謂學莫先於立志者。此也。金君亨仲甫向余曾有一言之請。其意非不可尙。但未知君於立志一着。已有所理會而體當者耶。然則於群經言言。必不看作文具而其所求所須。無所不備。何侍乎滅裂老昏者之一言乎。抑以其如恐不及之意。或有出於問。寡問不能如古人耶。厚意難孤謹以立志二字奉規焉。勿以已見之昭陵而略之。更加勉旃是所望也耳。 물을……하는 일 물 긷고 땔나무 하는 일상적인 일이 곧 신통(神通)이며 묘용(妙用)이라는 주장은 당나라 때의 사람으로 선종(禪宗)에 통달한 방온(龐薀)의 게송(偈頌)에 나오는 말이다. 꽃을……꺾는 일 주희의 〈답여자약서(答呂子約書)〉에 "불서(佛書)에 능(能)과 소능(所能)에 관한 설이 있는데 능은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고 소능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도(道)는 소능에 해당하고 학(學)은 능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지금 아이들이 대구(對句)를 지을 때 '꽃을 보고 버들을 꺾는다[看花折柳]' 하는데, 여기서 보고 꺾는 행위는 능이고 꽃과 버들은 소능이다.[佛書, 有能與所能之說, 能謂人所做作, 所能謂人所做作底事. 如道則所能之謂, 學卽所謂能也. 如今小兒屬對, 看花折柳, 看與折字是能, 花與柳是所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학문은……한다 이이(李珥)가 《성학집요(聖學輯要)》 〈수기 제2상(修己第二上)⋅입지장 제2(立志章第二)〉에서 한 말이다. 다식(多識)하면서도……같아서인가 《논어》 〈태백(太白)〉에 "유능하면서도 무능한 자에게까지 물어보고, 박학다식하면서도 천학 과문한 자에게까지 물어보고, 있어도 없는 듯하고, 찼어도 빈 듯하고, 누가 덤벼들어도 따지지 않는 이런 태도를 옛날에 우리 벗이 지니고 있었다."라는 증자(曾子)가 안연(顏淵)을 평한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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