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 족숙 낙구에게 올림 을해년(1935) 上河叟族叔 洛龜 乙亥 일전에 말씀하신 초하루 제사를 올리는 축사에 '삭일(朔日)' 하나만 쓸 것이냐, 거듭 '일일(一日)'을 쓸 것이냐는 의심에 대해서는 《송자대전》을 고찰해보니, 〈윤집사를 제사 지내는 글〉에 이르기를 "유 숭정세차기유팔월삭일신유(維崇禎歲次己酉八月朔日辛酉)"2)라고 하였습니다. 고염무(顧炎武)3)의 《일지록(日知錄)》에 이르기를 "한나라 문장에는 삭일에 나아가서 반드시 일일(一日)을 거듭 쓴 경우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광한태수심자거면죽강언비(廣漢太守沈子琚綿竹江堰碑)〉에는 "희평오년오월신유삭일일신유(熹平五年五月辛酉朔一日辛酉)"라고 하였고, 〈수민교위웅군비(綏民校尉熊君碑)〉에 이르기를 "건안입일년십일월병인삭일일병인(建安卄一年十一月丙寅朔一日丙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번다하기만 하고 무용하니 후인의 간소함만 못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 문중에서 10월 1일 지내는 문정공(文貞公)4) 묘제 축식(祝式)은 《송자대전》과 고염무의 《일지록》에 근거하여 정하면 되겠습니다. 前者所謂朔日行祭祀辭, 單書朔日重書一日之疑, 考得《宋子大全ㆍ祭尹執義文》云:"維崇禎歲次己酉八月朔日辛酉".顧氏《日知錄》云:"漢人之文, 有卽朔之日而必重書一日者".《廣漢太守沈子琚綿竹江堰碑》云:"熹平五年五月辛酉朔一日辛酉", 《綏民校尉熊君碑》云:"建安卄一年十一月丙寅朔一日丙寅", 此則繁而無用, 未若後人之簡矣.然則從玆以後, 吾門中十月一日文貞公墓祭祝式, 可準宋書顧錄而定之矣. 유 숭정세차기유팔월삭일신유(維崇禎歲次己酉八月朔日辛酉) 《송자대전(宋子大全)》에는 "유 숭정세차기유팔월신유삭일(維崇禎歲次己酉八月辛酉朔日)"로 되어있다. 《宋子大全 卷153 祭尹吉甫文》 고염무(顧炎武) 청국 초기의 학자로 청조 학풍(淸朝學風)의 시조(始祖). 《일지록(日知錄)》ㆍ《구고록(求古錄)》 등 많은 저서를 남겼음. 문정공(文貞公) 金坵(1211~1278). 본관은 부령(扶寧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 초명은 김백일(金百鎰),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이다. 원나라에 갔을 때 『북정록(北征錄)』을 남겼고, 충렬왕의 『용루집(龍樓集)』에도 김구의 시가 들어 있으며, 특히 변려문에 뛰어났다고 한다. 저서로는 『지포집(止浦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