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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류중헌(柳重憲)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종교/풍속-관혼상제-제문 己巳十月二十六日 幼學 柳重憲 己巳十月二十六日 柳重憲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0월 26일에 류중헌(柳重憲)이 올린 제문(祭文). 1929년 10월 26일에 류중헌(柳重憲)이 올린 제문(祭文)이다. 기존에 헐었던 재실을 다시 새롭게 만들 날짜를 정해서 고하는 제사를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류중헌은 1873년(고종 10) 10월 5일에 태어났으며 1952년 9월 9일에 졸하였다. 자(字)는 사범(士範)이고 호(號)는 야산(野山)이다. 석농(石農) 오진영(吳震泳)과 학문을 교류하였다. 묘는 호산(虎山) 호서(虎西) 불암동(佛岩洞)에 있다. 부인은 송위희(宋胃僖)의 딸 남양송씨(南陽宋氏)이다. 1872년(고종 9)에 태어났으며 1947년 1월 13일에 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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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박중면(朴重勉) 제문(祭文) 고문서-시문류-제문 종교/풍속-관혼상제-제문 乙亥九月丁未朔十三日 世弟 珍原朴重勉 乙亥九月丁未朔十三日 朴重勉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에 박중면(朴重勉)이 松峴處士 柳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 을해년(1935) 9월 13일에 세제(世弟) 박중면(朴重勉)이 松峴處士 柳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祭文)이다. 제문의 주인공인 송현처사 류공은 柳敬浚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류경준은 1855년에 태어나서 1935년에 사망하였다. 본관은 高興, 자는 乃欽, 부인은 礪山宋氏이며, 큰 아들은 柳重憲이다. 제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옛말에 德은 神明에 통할만 하고 仁은 兩儀에 부합한다고 하였으니 하늘의 부름으로 인해 죽은 이가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서 죽은 이의 가문을 칭송하며 그의 가문은 세상에 덕으로 인망이 두터웠고, 智로써 修身에 府하고, 仁으로써 사랑을 베푸는 근본으로 삼고, 義로써 取興에 戶하고, 勇으로써 恥辱에 決하고, 行으로써 立命의 초석으로 하였다면서 공이 그 집안에서 태어나 옷 속에 옥을 품고 손에 옥 지녔어도 스스로 자기 자랑하기를 부끄러워하고 깊이 은둔하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며,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일에서 대개 懽心과 仁함과 효성스런 사람임은 알지 못해도 오직 하늘이 알아 강녕(康寧)의 성수(聖壽)를 내림으로써 宗族이 尊慕하고, 士林이 본받고 존경하였다고 썼다. 이에 하늘의 부름이 있어서 이에 미루어 하늘의 명에 응한 것이라고 하며 슬퍼했다. 박중면(朴重勉, 1869∼1950)은 일제강점기 문인으로 자는 경여(敬汝), 호는 야은(野隱)이다. 본관은 진원(珍原)이며, 출신지는 전라남도 고흥(高興)이다. 증조부는 박찬성(朴燦珹), 조부는 만회(晩悔) 박예빈(朴禮彬), 부친은 원재(遠齋) 박철현(朴喆炫)이다. 외조부는 여산송씨(礪山宋氏) 송현호(宋現浩)이며, 처부는 여산송씨(礪山宋氏) 송진회(宋鎭會)이다. 어려서부터 과거를 마음에 두지 않고 자신을 닦는 공부에 힘을 기울였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과 족형 학계(鶴溪) 박중언(朴重彦)에게서 사사(師事)하였다. 1905년(광무 9) 경술국치 후 나라가 기울어짐을 한탄하며 두문불출하였다. 향년 82세에 사망하였다. 저술로 시문집 『야은유고(野隱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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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박재주(朴在柱)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辛亥十一月二十六日 珍原 朴在柱 辛亥十一月二十六日 朴在柱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해년 11월 26일에 신랑측 朴在柱가 신부측 柳生員댁으로 사주단자를 보내면서 함께 동봉한 간찰. 신해년 11월 26일에 신랑측 朴在柱가 신부측 柳生員댁으로 사주단자를 보내면서 함께 동봉한 간찰이다. 먼저 안부인사를 전하고, 사주단자[庚帖]을 적어 보낸다고 하면서 혼례 날짜를 정하는데 혹시 걸리는 것은 없는지 묻고 있다. 이 문서는 일종의 혼서(婚書)이다. 당시 박재주는 보성군 道開에 살았고, 류생원은 고흥군 虎山에 살았다. 연결문서로 별지 1점, 사주단자 1점, 관련 피봉 3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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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서> 0473生慈一世已有雅則重爲以連楣此所謂三合俱來矣承拜 惠函感荷良深謹仍審辰下尊體萬旺仰溯區區實愜勞祝第親事庚帖依敎書呈而且涓吉果無所碍留恊從爲料耳不備伏惟尊照謹謝上狀辛亥十一月二十六日珍原朴在柱拜謝<피봉> 0475謹拜上謝狀<피봉2> 0478虎山柳生員宅 執事下回納道開謹謝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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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박재주(朴在柱)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해년 11월 26일에 朴在柱가 柳生員에게 사주단자를 보내면서 함께 동봉한 간찰 별지. 신해년 11월 26일에 신랑측 朴在柱가 신부측 柳生員댁으로 사주단자를 보내면서 함께 동봉한 간찰 별지이다. 내용은 금월(11월) 29일 오전 중에 筏橋에 도착하기 전에 보기를 기대한다고 썼다. 연결문서로 간찰 1점, 사주단자 1점, 관련 피봉 3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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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月二十九日午前中筏橋致前相爲企待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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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박재주(朴在柱)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해년에 신랑 측 박재주(朴在柱)가 혼인 날짜를 정하기 위해 신부측 류생원댁으로 보낸 四柱單子. 신해년 11월 26일에 신랑 측 박재주(朴在柱)가 혼인 날짜를 정하기 위해에서 신부 측 류생원 댁으로 보낸 사주단자(四柱單子)이다. 신랑의 생년월일은 병술년 2월 1일 寅時이다. 연결문서로 간찰 1점, 별지 1점, 관련 피봉 3점이 있다. 사주단자(四柱單子)는 신랑될 사람의 태어난 사주(四柱) 곧 연월일시를 적은 단자이다. 이를 '사성(四星)' 또는 '경첩(庚帖)'이라고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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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안(先生案)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柳乙烟 等 32名의 이름과 거주지가 기록된 名單 柳乙烟 等 32名의 이름과 거주지가 기록된 名單. *상태: 청색볼펜으로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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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戌二月一日寅時皮封庚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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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종교/풍속-관혼상제-혼서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혼인 날짜를 정해서 신랑 측으로 보내는 涓吉單子 己酉年 3월로 혼인 날짜를 정하여 신랑 측으로 보내는 涓吉單子이다. 연길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날짜를 정하여 통보하는 것으로 婚姻擇日紙라고도 불렀다. 이 문서에는 신랑은 乾, 신부를 坤으로 표시하여 태어난 해를 적고 있다. 신랑은 辛巳生이고 신부는 丁亥生이다. 다음으로 대례일과 入門, 奠鴈, 納幣, 신부가 시댁에 들어가는 于歸 등 혼례에 필요한 의례를 진행하기 위한 시간과 방위를 기록하였다. 이 문서에서 大禮(결혼날짜)는 3월 18일과 3월 24일을 정하여 보냈는데 3월 18일이 大吉이라고 써 있다. 전통혼례는 서로 결혼 의사를 타진하는 議婚, 혼인 날짜를 정하는 納采, 예물을 보내는 納幣, 혼례식을 올리는 親迎의 네 가지 의례로 이루어진다. 이 중 납채는 혼약이 이루어져 四柱(생년월일과 출생시간)를 보내고 연길을 청하는 절차이다. 신부집에서 허혼편지나 전갈이 오면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납채문(정식으로 결혼을 신청하는 서장)을 써서 홍색 보자기에 싸 보낸다. 사주를 받은 신부집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혼례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한다. 이것을 연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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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피봉(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泰東謹亟 柳斯文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柳斯文이 받은 簡札의 皮封 柳斯文이 받은 簡札의 皮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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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819년 류일영(柳日榮)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 고문서-치부기록류-중수기 경제-토목/건축-중수기 崇禎四己卯三月日 高興 柳日榮 崇禎四己卯三月日 柳日榮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 3월에 류일영(柳日榮)이 쓴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 1819년(순조 19) 3월에 류일영(柳日榮)이 쓴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이다. 향교의 수선 이력과 함께 일을 주도한 현감에 대한 감사, 대역사를 마친 감회를 적고 있다. 문서 내용에 따르면 봄에 흥양의 명륜당 중수를 마치고 그날 유림들이 모여 낙성을 축하하며 이 글을 지었다고 하였다. 만력 정유년(1597)에 병화로 향교가 소실되어 5聖의 위패를 읍의 동촌(東村)에 이봉(移奉)하였고, 90여 년 뒤인 1701년에 고을 유생들의 건의로 성(城) 서쪽 옛 터에 중건하였으며, 1765년에 한 차례 수선하였다 한다. 지금 수선한 지가 오래되어 당(堂)이 훼손되었고 동ㆍ서재, 전사청 또한 모두 훼손되었다고 하였다. 1815년 현감 안광찬(安光贊)이 봉전(俸錢) 510緡의 중건 비용을 모아 정축년에 동재 및 전사청을 수리하고, 무인년(1818)에 이르러 지금 현감 신의학(愼宜學)이 시전(視篆)하여 서재를 수선하고 기묘년(1819) 봄에 명륜당의 대역사를 완성하였다며 현감 안광찬과 신의학의 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흥양현감으로 재임한 안광찬은 1812년부터 1815년까지 근무하였고, 신의학은 1817년부터 1819년까지 근무하였다. 고흥향교는 세종 23년(1441)에 처음 세워졌으나 초기 운영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숙종 26년(1700)에 재건한 것이다. 순조 17년(1817)에 양사재가 건립되었고 순조 28년(1828)에 대성전이 중수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5년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은 전학후묘의 형식으로 앞쪽에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뒤쪽에 대성전이 자리 잡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대성전과 명륜당 사이에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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