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1년 류영보(柳榮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개인-생활-서간 辛丑至月小晦 宗末 榮輔 辛丑至月小晦 柳榮輔 고흥 고흥류씨 류탁 후손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1년 동짓달 小晦에 류영보(柳榮輔)가 류지호(柳志浩)에게 보내는 답장편지 1841년(헌종 7) 동짓달 小晦에 류영보(柳榮輔)가 류지호(柳志浩)에게 보내는 답장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서울 소식과 함께 보내 준 전복에 대한 감사인사이다. 먼저 한 해가 저물어가니 그리운 마음 절실하던 중 뜻밖에 보낸주신 편지를 받고 마치 한 자리에 같이 있는 것 같았다고 하면서 僉宗들께서 건강하시다니 다행이라며 안부인사를 전하고, 연이어 부모상을 당하였는데도 들을 길이 없고 서신도 받지 못하였으니 어찌 도타운 정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였다. 자신은 노년에 떠도는 나그네의 괴로움을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本倅가 나갔으니 장차 連臂하여 통지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보내 준 전복은 매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이곳의 諸宗들도 잘 있다고 하면서 나머지는 심부름꾼이 와서 재촉하므로 이만 줄인다고 하였다. 연결문서로 피봉 1점이 있다. 편지봉투에 기재된 내용을 통해 1841년 당시 류영보는 한양 고동(雇洞)에 살았으며 벼슬은 승지(承旨)였고, 류지호는 흥양현 호산(虎山)에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류영보는 자가 흥숙(興叔), 본관은 고흥이다. 아버지는 류욱(柳頊)이다. 1813년(순조 13) 증광시(增廣試)에 합격하였으며, 관직은 정언(正言)을 지냈다. 류지호(柳志浩)는 자가 通吾이고, 호가 農隱이며, 본관은 고흥이다. 1793년에 태어나 1856년에 사망하였다. 배우자는 여산송씨이다. 흥양현 읍내면 虎山東邊里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