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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鞍面化民鄭基·拱采謨·崔學一等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崇賢▣…▣慕先 則寓桒梓之敬 何況杖履逍遙之地氏譜尊閣之所乎 盖 治之北金鞍洞 自 麗朝逮 我朝冠 盖爲里詩禮▣…▣洞中▣…▣立 則文靖公雪齋鄭先生 而文顯公尹先生 文肅公金先生 同學於斯 而其時目以三賢堂繼之 以戶曺判書鄭公 領議政號巖軒申先生 ▣▣▣▣洪公 景武公兵曺判書鄭先生 文忠公保閑齋申先生 領議政思菴朴先生 吏曺判書宋公 邑先生成公 壬辰功臣慶源府使鄭先生 號盤桓洪先生 刑曺參判號羔巖洪公 丙子功臣號錦隱洪先生 順天府使號杏亭洪公諸賢 擧皆講學於斯 題詠於斯 而其餘名碩科宦 亦不可一一枚擧 顧此一洞扶植之功一亭炳朗之迹 雖曠百世 義不可以終閔 故錄之以諱牒 目之以洞案 几坐子斯亭之梁上 而仍以成䂓爲洞案 子孫者世世列錄 父傳子授 至于今五百年 崇賢之義 如彼之篤 慕先之誠 若是之深 斯享之係重 非他亭榭之可比 而尊奉之義 無異乎祠宇 守護之道 殆同於公廨 又況洞䂓剏立之初 勧善懲惡之意 秩秩成軸 而四山內禁葬 亦其一也 亭之前後左右 無遠無邇 無敢一人犯葬者矣 今月初二日 本洞洪聖周 乘夜偸葬於亭之壓臨迫功之地 此誠五百年所無之大變恠也閤洞之臆塞膽慓 莫非在己之痛 而渠之侮賢泰先之罪 雖人人誅之 尙何贖焉 卽當不日內掘去 而事在法典 故齊聲仰籲 伏乞細細洞燭 是後特爲 親審處分 卽刻掘移偸塚 俾遂民等之崇賢慕先之誠 千萬幸甚行下向敎是事城主閤下 處分丙辰三月日 化民 鄭基杓 洪采謨 崔學一 鄭相赫 洪近謨 鄭斗赫 鄭在馨 金奎桓 鄭義赫 洪禹謨 鄭玉奎 洪羲九 鄭國升 洪羲學 鄭智浩 金碩桓 鄭國豊 洪羲赫 鄭鳳赫 洪羲瑞 金學坤 鄭在燦 鄭章赫 崔泰一 洪允周 鄭源悌 洪贊周 洪興周 鄭殷相 洪蓋周 鄭國容 洪轍謨 鄭德運 鄭日烈 洪翊周 鄭斗烈 洪箕謨 鄭鳳烈 鄭長浩 洪榮周 洪仁周 鄭源英 洪範周 金振澤 洪在謨 洪杓 洪煥周 鄭枰 金聖桓 鄭仁赫 洪善周 鄭普赫 洪弼周 鄭在南 洪甲謨 鄭桂 洪南周 崔鳳周 洪祐聲 鄭在寬 金長權 洪鶴周 鄭時浩 洪世周 洪權周 鄭在恒 洪在謨 崔泓一 洪成周 金恩澤 洪祐昶 鄭柱 洪祐燮 鄭在三 洪瓊周 鄭氣浩 洪楨周 鄭在七 洪祐違 鄭源興 鄭燦運 崔翔一 洪鳴周 鄭來東 鄭圭相 鄭源坰 洪祐龍 金在明 鄭源福 鄭國福 洪祐八 洪恩周 鄭俊相 柳秉勛 鄭源德 洪文謨 金碩権 鄭慶雲 洪祐彦 鄭信相 鄭源宗 金運燮 鄭星烈 鄭弼鉉 金奇燮 鄭泰赫 鄭致鉉 鄭鐘夒 鄭玉鉉 鄭源錫 鄭徹相 洪璟周 鄭源智 鄭龜鉉 鄭源伯 鄭?淳 洪貴謨 洪祐乾 等使[着押][羅州牧印](題辭)圖尺以來向事初十日鄕色(背面籤紙)證據一. 二三賢堂의 發見:一九七二年八月二十五日雙溪亭이 바로 三賢堂임을 證明하는貴重한 資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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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정일호(鄭一浩)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상서 鄭一浩 羅州府使 □…□ 6顆(7.0x7.0)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에 10월 정일호 등 112인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 1769년(순조 45) 10월에 금안면(金鞍面)에 거주하는 화민(化民) 정일호(鄭一浩) 등 112인이 나주목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주요 내용은 예전부터 마을 주민 홍성주(洪聖周)가 투장(偸葬)한 일과 관련해서 관에 하소연한 것이다. 그때 관에서는 무덤을 파 옮기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지난해 동안(洞案) 자제(子弟)인 홍승조(洪承祚)가 그의 아내의 무덤을 조상의 무덤 앞쪽에 투장(偸葬)하였기에 동민(洞民)들이 쌍계정에 모여 상의하였고, 투장한 무덤을 파 옮기도록 타일렀으나 끝내 지키지 않았다. 이에 나주목에 이전에 올린 소지(所志)들을 첨부하여 '투장한 무덤을 즉시 파 옮겨 달라'고 다시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관의 첫 번째 판결은 24일 상서를 올린 장민(狀民)과 무덤 주인(主人)에게 '사실을 조사하여 엄히 가두고 독굴(督掘)하기 위해 홍승조를 잡아 오라'고 지시하였다. 배면(背面)에 적힌 두 번째 판결은 '금장해야 하는 땅이건 아니건 간에 도형(圖形)을 살펴 조사해 오라고 이차(吏差)에게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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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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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황철원(黃澈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巳元月日 玉潤 申仁圭 己巳元月日 黃澈源 申仁圭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1월에 황철원(黃澈源)이 사위 신인규(申仁圭)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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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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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위의 글은 통지하기 위해 알리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사람의 본성에는 사강(四綱)이 있는데 인(仁)·의(義)·예(禮)·지(智)입니다. 나라의 강(綱)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충(忠)과 효(孝)와 열(烈)입니다. 그 본성을 따르고 그 도를 준수한다면 사람은 귀하게 되고 나라는 바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성품을 다하고 도를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나라에서는 반드시 정려(旌閭)하고 표창하니, 이는 고금에 모두 통하는 의리입니다.본 군에는 열녀로 천양할 인물이 있으니, 성은 박이고 본관은 밀양이며, 고 사인(士人) 박유삼(朴有三)의 딸입니다. 어려서부터 여자의 일에 익숙하고 부도(婦道)를 익혔으며, 나주 나득수(羅得洙)에게 시집가서는 집안의 법도를 이어받아 집안의 도가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병에 걸리자 시부모님이 집에서 아들의 병을 더욱 걱정하였는데, 밀양 박씨는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고, 수명을 연장해달라고 하늘에 빌고 북두에 빌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더 살지 못하고 문득 세상을 떠나자, 애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고, 차라리 남편의 뒤를 따라 지하에서 남은 인생을 이어가는 것이 낫겠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누가 부양할 수 있으며 어린아이는 누가 양육할 수 있겠는가."라며 돌연히 깨닫고는 강인함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초상과 장례·제의(祭儀)를 한결같이 가례(家禮)를 준수하여 섭섭함이 없게 하였습니다. 효로써 노부를 봉양하고 고아를 보살피며 의리를 가르쳐서 부녀자의 일을 극진히 하여 문호를 보존하였습니다. 열녀의 행실은 아름답다고 칭찬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잇고 집안을 이루는 정성이 과연 어떠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가만히 생각건대, 우리들은 사람의 떳떳한 도리가 있으니, 정렬(貞烈)과 지성(至誠)을 현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실만을 채록하여 우러러 동관(同管)과 서울과 지방의 여러 군자에게 고합니다. 바라건대, 한목소리로 천양하여 사람들이 반드시 성품을 다하고 나라가 반드시 기강을 세워 인·의·예·지의 단서를 따라 충·효·열의 행의를 부지한다면 사람들은 성품을 다하고 나라에는 기강이 세워질 것이니, 이렇게 되기를 무척이나 바랍니다.이상은 여러 고을 향교 유림 첨좌하께 통지하여 알린 것입니다.단기 4288년(1955) 을미 12월 모일에 나주향교 전교 오대선(吳大善), 유도회장 이계두(李啓斗)·이종석(李鍾奭)·이우규(李禹圭), 장의 임인규(林麟圭)·김봉수(金奉洙)·허종(許鍾)·나도인(羅燾仁)·임민호(林珉鎬)·이교창(李敎昶)·김동현(金東賢)·정병호(鄭昺浩)·윤승의(尹承義)·진상수(陳相洙)·오승수(吳昇洙)·이병두(李丙斗)·이양신(李良信)·류재수(柳在壽)·홍조식(洪肇植)·나갑운(羅甲運)·류제봉(柳濟鳳)·나종근(羅鍾瑾)·류영오(柳永五)·오판근(吳判根)·홍동희(洪同憙)·이태형(李泰炯)·정태림(鄭太林)·정동채(鄭東采)·이동범(李東範) 등 通文右文爲通告事 竊以人之性有四綱 曰仁義禮智也 國之綱有三 曰忠孝與烈也 率其性而遵其道 則人而爲貴 國而得正矣 如有盡性行道者 則人必稱美 國必旌褒 古今之通義也 本郡以烈闡揚者有之 曰朴其姓 籍貫密陽 故士人有三女 幼閑女事 能習婦道 及歸于羅州羅得洙 克承刑化 家道安靜矣 及夫有疾 老舅在堂 愈恐惟憂竭誠救調 祝天祈斗 無所不至 以致假年 年未延壽 奄遭崩城 痛殞罔措 自謂曰寧爲下從 以續餘年於九原■(於)之下爲愈也 幡然改悟 曰尊舅誰能扶養 幼孤孰可撫育 强忍忍痛 喪葬祭儀壹遵家禮無憾 養老以孝 撫幼敎義 極盡婦工 以保門戶 非徒烈行之稱美 而已其繼世成家之誠果謂何如哉 竊以 鄙等秉彝所在貞烈至誠 不可不揚 故摭實仰告于同管 僉君子首善之下 望須齊聲薦揚 使之人必盡■(性)必立綱 以循仁義禮智之端 以扶忠孝烈之行誼 則人之惟國之綱千萬幸甚右 敬 通 告 于列郡 鄕校儒林 僉座下檀紀四千二百八十八年乙未十二月 日[羅州鄕校] 羅州鄕校典校 吳大善[羅州鄕校典校之印] 儒道會長 李啓斗 李鍾奭 李禹圭 掌議 林麟圭 金奉洙 許 鍾 羅燾仁林珉鎬 李敎昶 金東賢 鄭昺浩 尹承義 陳相洙 吳昇洙 李丙斗李良信 柳在壽 洪肇植 羅甲運 柳濟鳳 羅鍾瑾 柳永五 吳判根洪同憙 李泰炯 鄭太林 鄭東采 李東範 等[皮封] (前面) 列郡 鄕校儒林 僉座下(背面) 羅州鄕校 發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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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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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이 글은 통지하여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효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고, 열(㤠)은 삼강(三綱) 중의 하나로 만년토록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림들이 천양하고 나라에서 포상하는 은전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본 군의 세지면(細枝面) 오봉리(五峰里) 효열부(孝烈婦) 박씨는 본적이 밀양이고 밀성군(密城君) 언침(彦忱)의 후손이며, 학생 유삼(有三)의 딸입니다. 밀양 박씨는 법도 있는 집안에서 생장하여 옛 가르침을 따랐는데, 방년 18세에 나주 망족 사인 나득수(羅得洙)에게 시집갔습니다. 남편은 금호공(錦湖公) 사침(士忱)의 후손이고 종기(鍾基)의 아들입니다. 나씨에게 시집가서는 몸소 부도(婦道)를 행하여 시부모를 효로써 봉양하고 남편을 공경함으로 받들어 향리와 족척(族戚)이 칭찬해 마지않았습니다.얼마 지난 뒤에 남편이 기이한 질병에 걸렸는데 병석에서 누워 있는 10여 년 동안 침과 콧물, 오줌과 똥을 재빨리 치워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의복은 깨끗이 세탁하여 냄새가 나지 않게 하였고, 몸소 죽을 쑤고 약을 끓였으며, 하늘에 빌고 북두에 빌면서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어 마침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밀양 박씨는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맹세하고 3일 동안 밥을 먹지 않다가 집안사람에게 들켜 시부모님이 울면서 타이르고 종족들이 위로하자, 마침내 돌연히 깨닫고는 강한 의지로 일을 처리하여 죽은 이를 전송하는 모든 절차를 조금도 여한이 없게 하였습니다.삼 년 동안 치전하고 곡하는 것을 옛 법도대로 따랐고 두 뺨에 눈물이 흘러도 구슬픈 곡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시부모가 마음이 상할 것을 걱정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의 도를 더욱 부지런히 하였으며, 변변치 않은 음식을 힘써 제공하여 남편이 살아있을 때보다 배나 흡족하게 하였습니다. 항상 미망인으로 자처하고 빗질하지 않으며 평생을 살았고 고아를 가르치고 기르면서 가문의 명성을 보전하였으니, 옛사람의 이른바 고아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진정으로 부인이 실천하였습니다. 아, 훌륭합니다. 아들 상옥(相玉)·상교(相敎)가 옛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편모를 잘 봉양하였는데, 예천(醴泉)과 영지(靈芝)가 근원이 있다는 것1)은 참으로 실제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저희는 동향에 살면서 이와 같은 탁월한 행실과 아름다운 덕행을 자세히 듣고 알아서 끝내 사라지게 할 수 없기에 이처럼 우러러 고하는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여러 군의 여러 군자께서는 한목소리로 찬양하여 후세에 풍교를 세우기를 몹시 바랍니다. 이 글은 여러 군의 향교 유림 여러분께 공경히 통지한 것입니다.단군 4288년(1955) 모월 모일에 나주군 향교 전교 오대선(吳大善), 유도회장 이계두(李啓斗)·이종석(李鍾奭)·이우규(李禹圭), 임인규(林麟圭)·김봉수(金奉洙)·진상수(陳相洙)·김동현(金東賢)·정병호(鄭昺浩)·이교창(李敎昶)·이병두(李丙斗)·나갑운(羅甲運)·정태림(鄭太林)·허종(許鐘)·정동채(鄭東采)·이태형(李泰炯)·임민호(林珉鎬)·이양신(李良信)·이동범(李東範)·류제봉(柳濟鳳)·나갑운(羅甲運)·이병두(李丙斗), 다사(多士) 홍동희(洪東憙)·류재수(柳在洙)·오판근(吳判根) 류영오(柳永五)·오승수(吳昇洙)·나도인(羅燾仁)·홍조근(洪肇植)·윤승의(尹承義)·나기보(羅基寶)·오남선(吳南善)·홍승천(洪承天)·임선규(林璿圭)·이규봉(李圭逢)·나종성(羅鍾聲)·이민선(李敏璿)·나종근(羅鍾瑾) 예천(醴泉)과 영지(靈芝) 영지는 전설상의 신비한 약초인 지초(芝草)이고, 예천은 감미로운 물이 솟아난다는 신비한 샘으로, 모두 뛰어난 인재를 말한다. 通文右謹爲通告事 孝是百行之源 烈爲三綱之一 亘萬古而不易者也 是故有士林之闡揚 國朝褒貤之典也 今本郡細枝五峰里孝烈婦朴氏籍密陽 密城君彦忱后 學生有三女 生長法家 克遵古訓 芳年十八 㱕于羅州望族士人羅得洙 寔錦湖公士忱后鍾基之子也 及歸羅氏 躬執婦道 養舅姑以孝 奉君子以敬 鄕里族戚莫不稱嘆 居無何夫嬰奇疾 委牀十餘年 唾洟尿糞 亟爲刷除 不令人見 衾?衣服務其凈潔 不欲其臭 煎粥湯藥 躬親爲之 禱天祝斗 願以身代 命數有定 竟至城崩 矢欲下從 不食三日 乃被家人所覺舅姑泣諭 宗族慰憐 遂幡然改悟 强忍視事 送終凡百少無餘憾 三年奠哭 式遵古制 淚泗交頤 不出哀哭聲 恐傷其舅姑之志 尤勤定省之道 務適菽水之供 旨倍於夫在之日 常以未亡人自處 不櫛不梳 度了平生 教養幼孤克保家聲 古人所謂立孤難者 實夫人爲之 嗚乎韙哉 胤子相玉相教不違古訓 善養偏慈 醴芝根源 寔實際語也 鄙等居在同鄕 如此卓行懿德聞之悉知之詳 不可終㱕於泯沒 故如是仰告 惟願列郡 僉君子同聲讃揚 樹風聲於來後 千萬辛甚 右敬通于列郡 鄕校 儒牀 僉 座下檀紀四千二百八十八年 月 日[羅州鄕校]羅州郡鄕校典校 吳大善[羅州鄕校典校之印] 儒道會長 李啓斗 副會長 李鍾奭 李禹圭 掌議 林仁圭 金奉洙陳相洙 金東賢 鄭昺浩 李敎昶 李丙斗 羅甲運鄭太林 許 鐘 鄭東采 李泰炯 林珉鎬 李良信李東範 柳濟鳳 羅甲運 李丙斗多士 洪東憙 柳在洙 吳判根 柳永五 吳昇洙 羅燾仁 洪肇植 尹承義羅基寶 吳南善 洪承天 林璿圭 李圭逢 羅鍾聲 李敏璿 羅鍾瑾[皮封] (背面) 羅州鄕校 敬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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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윤 신인규에게 보내는 편지[與玉潤申仁圭] 【1929년 1월 모일】옥윤의 고아한 의표는 작별한 뒤 더욱 그리워 그리운 마음이 잊히지 않네. 지난번 편지는 책상에 놓여 있는데 때때로 펼쳐서 읽어볼 때면 마치 아름다운 모습을 접하는 듯하니,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네. 모르겠지만, 신정에 중당(重堂)을 모시는 체후가 평온하고 학업은 날로 성취하여 밝고 드넓은 경지에 이르렀는가? 현명한 부형의 아래에서 훌륭한 자질을 겸하였으니, 스스로 면려해야 할 것은 회암(晦庵, 주자) 선생이 가르친, 근근(謹勤, 부지런함과 삼감) 두 자가 위로 통하고 아래로 통하는 그 사이에 있는 것일 뿐이네. 닭이 알을 품고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일에 따라 성찰하고 때에 따라 일깨운 뒤에야 우리 집안의 허다한 사업을 논의하여 이러한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네. 멀리서 몹시 그립네.나는 나이가 점점 들수록 노쇠함이 점점 심해진다네. 오직 식구들이 병이 없는 것이 다행이네. 마음이 자주 오고 가면서 마음속에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온갖 장애가 내 몸을 휘감아 몸소 떨칠 수가 없네. 얼음길에서 가마와 말은 모두 불편하니, 부디 평탄한 길을 따라 날아와 곧장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바라네. 정신이 없어 글을 줄이네. 예식은 갖추지 않네. 與玉潤申仁圭 【己巳元月日】玉潤雅儀別後益戀戀不能忘 向幅留丌時時披玩 如接良眄稍可慰也 未諳新正重堂省韻平吉 課業日就昭曠否 樂有之下 兼有好資質 所可自勉者 只在晦父先生所訓謹勤二字循上循下之間而已 隨事省察 隨時提撕 無暫停息 如鷄抱卵猫捕鼠然後 方可議於吾家許大事業 會得恁麽意耶 遠切溯念翁年益進衰益甚 惟省率免警爲幸 源源而往 源源而來者 未嘗不係戀于中 而百礙繞身 未獲躳攄 氷程轎鬣俱不便 幸乘坦路飛來 卽爲賁然 是望是望 擾刪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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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황철원(黃澈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巳元月日 査弟 黃澈源 己巳元月日 黃澈源 申在熙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4_01_A00002_001 1929년 1월에 황철원(黃澈源)이 사돈 신재희(申在熙)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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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한 뒤로 해가 바뀌었지만 남은 훈기가 여전히 사람을 취하게 하여 깨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삼가 새해에 공부하는 체후가 부모님을 모시며 두루 평안하고 아드님이 평안히 모시며 학업에 열중하고 식구들도 각각 평안하리라 생각되니, 우러러 축하드리는 심정을 가눌 수 없습니다.저는 모친이 근근이 전처럼 지내고 있고, 식구들은 병이 없는 것이 신년의 행운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돌아보면, 늘그막에 가을을 바라보면 곧 쇠잔해지니, 가련함을 몹시 느낍니다. 다만 부음의 행차에 심부름꾼을 빈손으로 보내니 빈한한 선비는 대체로 이렇습니까. 아드님은 명으로 보냈는데, 자제분과 함께 찾아와 주기를 몹시 바랍니다. 나머지는 만나서 회포를 풀겠습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습니다. 삼가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1929년 1월 모일에 사제 황철원(黃澈源)이 두 번 절하고 올림. 別後歲換餘薰尙醉人未醒 伏惟新元經體上在省萬休 令允安侍勤詳 覃內各佳 仰不任溸祝 査弟慈天僅依率下無警爲新年之幸 而自顧鬂邊雪莖望秋便衰 甚覺可隣 第訃行只送空价 寒士措大盖如是耶 允郞命送而聯璧光臨 切企切企 餘在面叙 不備 伏希照亮乙巳元月 日 査弟黃澈源 二拜[皮封] (前面) 謹拜上狀(背面)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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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황철원(黃澈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巳窉月旬日 弟 黃澈源 己巳窉月旬日 黃澈源 申在熙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4_01_A00002_001 1929년 음력 3월 15일에 황철원(黃澈源)이 신재희(申在熙)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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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황철원(黃澈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己巳八月上五日 査弟 黃澈源 己巳八月上五日 黃澈源 申在熙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4_01_A00002_001 1929년 8월 5일에 황철원(黃澈源)이 사돈 신재희(申在熙)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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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깊어 가는 이때 막힌 회포도 함께 깊어 갑니다. 삼가 부모님을 모시며 지내는 체후가 평안하고 아드님은 과업에 열중하고 부모님을 평안히 모시며 식구들도 모두 건강하리라 생각되니, 우러러 축하드립니다.저는 모친이 편찮으셔서 마음이 늘 초조하고 답답하지만, 오직 식구들이 병이 없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입니다. 가깝고 믿을 만한 인편을 찾아서 심부름꾼을 빈손으로 보내니 부끄럽습니다. 아드님은 비록 며칠간 학업을 열심히 수행하였겠지만, 기어이 명하여 보내주기를 바랍니다. 정신이 몹시 어지러워 예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삼가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1929년 3월 20일에 아우 황철원(黃澈源) 春深阻懷俱深 伏惟體氣在省康重 允郞善課安省 大覃幷佳 區區仰祝 弟慈天損攝 常懷焦悶 而惟眷下免警爲幸幸 擬探近信空价送去 愧愧 允君雖費幾日勤工 期於 命送之地爲望望 擾甚 不備 伏希照亮己巳窉月旬日弟黃澈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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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한 뒤로 달이 바뀌었는데 그리운 마음은 더욱 우러러 간절합니다. 서늘한 가을이 점점 깊어지는 이때 부모님을 모시며 지내는 체후가 더욱 건강하고 아드님도 최근 들어 건강하리라 생각되니, 멀리서 그리운 심정이 간절합니다.저는 언제쯤이면 사우들을 만나서 20일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수 있을지요? 모친은 이전처럼 지내고 나머지 식구들도 병이 없이 지내고 있으니, 무척이나 다행입니다. 빈손으로 보내는 심부름꾼을 늦게나마 보낸 것이 부끄럽습니다만, 아드님이 식구들을 보내서 찾아와 준다니 또한 매우 기대됩니다. 저는 정신이 너무 없어 단지 이 정도로만 써서 올립니다.1929년 8월 5일 사제 황철원이 절하고 올림. 別後月改 懷仰益切憧憧謹惟秋凉轉深省候益康 允郞近健 遠溸區區之至 弟郍時尋訪諸士友 費得旬日而歸 慈省依 餘集無警爲幸幸 空价晩去可愧 而允郞命送親率 光顧 亦所大望望擾甚 只此上己巳八月上五日査弟黃澈源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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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황철원(黃澈源)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未至月小晦日 査弟 黃澈源 辛未至月小晦日 黃澈源 申在熙 보성 평산신씨 신연 후손가 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A024_01_A00002_001 1931년 11월 29일에 황철원(黃澈源)이 사돈 신재희(申在熙)에게 보낸 간찰(簡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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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소식이 막혔다가 보낸 편지를 받고 참으로 눈이 밝게 뜨였으니, 진정으로 위로가 됩니다. 삼가 편지를 받고 추운 겨울 날씨에 부모님을 모시며 지내는 체후가 두루 평안하고 식구들도 평안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욱 송축합니다.저는 두어 달 동안 모친의 병환으로 초조하고 답답했습니다. 지금은 모친의 건강이 조금 나아졌지만, 아들이 또한 연이어 병이 들었으니, 너무 괴롭습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그야말로 갖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고, 딸아이는 사돈의 말씀에 따라 다음 달 14일에 데리러 갈 계획입니다. 아드님의 삼여(三餘)1)의 학업은 몇 단계나 성장하였습니까? 듣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유(裕) 형은 언제쯤이면 서로 작별했다가 함께 만나서 며칠간 산을 구경할 수 있습니까? 흥미진진하게 서로 함께하는 즐거움을 정말이지 상상해 봅니다. 나머지는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식을 갖추지 않습니다. 삼가 답장 편지를 올립니다.1931년 10월 30일에 사제 황철원이 절하고 올림.그날 오전과 오후 사이에 득량역(得粮驛)으로 한 사람을 보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삼여(三餘) 공부하기 좋은 세 차례의 여가로, 1년 중의 여가인 겨울과 하루 중의 여가인 밤과 계절의 여가인 장맛비가 내리는 때를 가리킨다. 久阻餘 惠幅 開眼實多 良慰良慰謹拜審寒沍省候萬康 覃引亦慶 尤?頌祝 査弟數月以慈憂焦悶今雖少和 而兒憂又此鱗 至苦誨人事正覺辛酸而已 女阿依 盛敎 以來月十四日率進爲計耳 令郞三餘之業長得幾格 願聞者多端裕兄郍間相別而携手看山爲幾日耶 津津相與之樂正可想也 餘在進攄 不備 謹謝上辛未至月小晦日査弟 黃澈源 拜謝郍日午前後間送一人于得粮驛爲要[皮封] (前面) 寶城馬川申 生員 下執事(背面) 綾雲洞謹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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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시초방매기(柴草放賣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나주 쌍계정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壬午) 7월(내부에는 8월 8일)부터 작성된 평보등(平保嶝) 지역의 시초방매기(柴草放賣記) 제9호까지 있으며 문중 소유 시장 방매 목록으로, 방매 금액은 154圓 80錢이며, 시장 방매 지출 금액은 45圓 88錢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금액은 108圓 92錢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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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朱氏爲貞夫人者同治六年十二月 日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申在文妻 依法典從夫職[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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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族從【相煕】 伊翁本性尙淸眞白首光陰漸覺新東方朔與三千甲南極星回十九辰鳴琴在御和宜室歌瑟過行慶有親雲仍共獻看晩節黃花饒笑碧桃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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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戚兄台叟【昌佑】書【丙申臘月廿二日】 兄與我俱老病不相奉己有年能不懷悵第聞兄鬚髮不白云行何妙理而能不老至此耶不勝健羨意外一札先枉可感厚誼且審虔雪團會佳況尤慰尤慰弟患寒閱用尙未差私悶奈何譜役可尙兄輩收族厚風之盛擧也頃年仲氏兄主修正時弟居隣與知今於此役隨所知有告何必稱謝爲也鄭文成之非叔瞻公之子孫考麗傅明有可据者鄭之祥之非晏之子亦於其傳昭然故又書諸別紙付諸鄭友世佑氏行未知卽傳耶渾之爲之祥子一款旣載輿地誌而謄諸卷端不必疊床玆刪之未知僉意以爲如何僉友竝安否忙欠各修同照爲仰呵凍不具別告義盈庫主簿公職御與掌令何以歸一耶以羅正言妻祖入於吾家譜當從實書之書給家兒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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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安金氏譜卞誤 傳來記聞云新羅敬順王金傅十一代孫移封扶寧或云八代孫作新登文科位登二俯被讒謫扶寧免爲戶長仍貫扶寧而考諸東國通鑑則麗祖十年丁亥敬順王爲甄萱所立至麗祖十八年乙未降于麗且以麗史年表考之則自乙未至文貞公坵生年煕宗七年辛未實爲二百七十七年也以其年紀參量其世代則十一代孫移封之說明是誤也八代孫作新公被謫仍貫之說容或近似作新公果若是敬順王之八代孫則文貞公當爲十代孫也十代之間似當爲二百七十七年而第麗史諸人列傳中若自官吏發身者必曰某邑吏某之子云云而至於文貞公傳則只稱扶寧人免爲戶長之說恐涉未詳扶安金氏之始祖金景脩高麗神宗朝登第云云而按麗史年表則神宗元年戊午卽宋寧宗慶元四年而在位七年傳位于太子卽熙宗也其七年辛未文貞公生而自始祖至文貞公爲六世然則始祖登科之在神宗朝云者明是誤也藥軒遺稿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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