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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토지문기(土地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章煥 金興培信 2顆(적색,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0년 1월 6일에 박장환 소유 전답의 소재지와 면적, 사표 등을 명시한 토지문기 1910년 1월 6일에 해남군(海南郡) 일도면(一道面) 소재 박장환(朴章煥) 소유의 논에 대해 그 소재지와 면적, 사표(四標) 등을 나열한 문기이다. 하지만 서문 또는 계약관계 등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문기의 용도는 파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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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신병용(愼炳鏞)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賻喪禊中 愼炳鏞 羅錫孝<着名>朴圭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1월 28일에 부상계 계원인 유학 나석효가 유학 신병용에게 논 3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7년(고종14) 1월 28일에 부상계(賻喪稧) 계원인 유학(幼學) 나석효(羅錫孝)와 박규열(朴圭說)이 신병용(愼炳鏞)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들은 계중에서 매득하여 곡식을 받아왔는데 계를 나누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장성군(長城郡) 북일면(北一面) 시소정평(始小亭坪)이고 자호는 인자(人字)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는 9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는 10복(卜) 2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22냥이다. 해당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영구히 방매한다고 적었다. 신문기는 거래 당시에 작성된 명문을 말하고 구문기는 거래 이전에 매물과 관련하여 생성된 문서 일체를 말한다. 구문기가 없이 거래되었음을 밝힘으로써 훗날 분쟁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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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春秀 吳基燮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9년 음8월 5일에 이춘수가 누군가에게 몸채 3칸과 행랑 2칸짜리 가옥을 80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9년 음8월 5일에 이춘수(李春秀)가 자신이 살던 가옥을 누군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담양군(潭陽郡) 대덕면(大德面) 성곡리(聲谷里)이고 번지는 142, 건물은 체사(體舍) 3칸과 행랑 2칸 규모이고, 매매가는 80원(円)이다. 증명(證明)과 관련한 모든 것은 사는 사람이 부담한다고 하였고, 매매가 80원은 당일에 영수하였다고 문서 말미에 부기하였다. 일제가 토지가옥 증명제도를 시행하고자 1906년 토지가옥증명규칙(土地家屋證明規則) 및 일련의 법령을 공포했고 1907년 토지가옥증명 사무처리순서를 발표 시행하였는데, 이 절차로 인해 매매계약을 한 뒤에 통수(統首) 또는 동장(洞長)의 '인증(認證)'과 군수(郡守) 또는 부윤(府尹)의 '증명'을 받게 되었다. 이 문서에서 말한 증명과 관련한 일체를 산 사람이 부담한다는 것은 계약 이후 증명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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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觀三 鄭觀三<着名>林文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 2월 8일에 정관삼이 누군가에게 논 두 곳을 합한 9마지기를 1,48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5년 2월 8일에 정관삼(鄭觀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관삼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부득이한 상황으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덕정면(德井面) 중림촌(中林村) 전평(前坪)에 있는 6마지기[斗落只] 논과 오동면(五東面) 미평(米坪)에 있는 기자(氣字) 자호의 3마지기 1배미[夜味] 논 두 곳이고, 거래가는 1,480냥이다. 문서 말미에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논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신문기(新文記) 1장만 넘겨준다는 문구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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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三鉉 金三鉉印 3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9년 음4월 모일에 김삼현이 누군가에게 논 9마지기를 7,65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9년 음4월 모일에 김삼현(金三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흥덕면(興德面) 사포평(沙浦坪)이고, 자호는 시자(詩字) 지번은 111답, 면적은 파종량 기준 9마지기[斗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 49부(負) 9속(束)이며, 매매가는 7,650냥이다. 신문기 1장과 소유권보존증명도 같이 넘겨주며 영구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김삼현의 주소지는 흥덕면 교운리(校雲里)이다. 논의 면적과 매매가를 기재한 부분에 김삼현의 도장을 날인하여 위조를 방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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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년 김맹호(金孟好)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斗碩 金孟好 金斗碩<着名>金斗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1년 3월 21일에 김맹호가 김두석으로부터 1마지기의 논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71년 3월 21일에 김맹호(金孟好)가 김두석(金斗碩)으로부터 논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두석은 자신의 매부(妹夫)인 정남채(丁南彩)로부터 자신이 매득하여 소유하게 되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신덕원(德新員)이고 자호는 견자(堅字), 지번은 48답,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5부(負) 8속(束)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시종(時種) 1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7냥이다. 김두석의 동생인 김두재(金斗載)가 필집(筆執)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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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김백순(金栢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均賢 金栢淳 安均賢<着名>安一文<着名>安啓默<着名>安仲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1_001 1907년 12월 21일에 김백순이 안균현과 안일문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 1907년 12월 21일에 김백순(金栢淳)이 안균현(安均賢)과 안일문(安一文)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산지매매명문이다. 안균현은 자신의 선산 터를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山直]를 두고 금양(禁養)해 왔는데 사는 형편이 어려워진 가운데 송비(頌費)로 지게 된 빚을 청산하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산지의 소재지는 이로면(二老面) 자봉산(紫鳳山)이고 자봉산 아래 덕정(德亭) 뒤쪽 산기슭을 전문(錢文) 150냥을 받고 김백순에게 영구히 방매하는 내용이다. 산지의 동서남북 사방 경계를 자세하게 기술하였는데, 동쪽은 과협처(過峽處)로 넘어가는 길을 한계로 하고, 남쪽은 최가의 무덤 용미(龍尾) 위쪽의 야트막한 언덕을 한계로 하며, 서쪽은 김가의 무덤 뒤로부터 시등(市嶝) 뒤쪽 밭 위까지를 한계로 하고 북쪽으로 연접해 있는 밭 위로부터 돌아서 과협처를 넘어가는 길까지를 한계로 하는 한 국내(局內)이다. 이 거래에 문장(門長)인 안계묵(安啓黙)이 참여하고 증인으로 안중진(安仲辰)이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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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윤상흥(尹相興) 토지매매증서(土地賣買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禾壽 尹相興 南禾壽 1顆(적색,타원형,1.2cm)崔鉉東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2월 15일에 남화수가 윤상흥에게 2마지기의 논을 134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증서 1928년 2월 15일에 남화수(南禾壽)가 윤상흥(尹相興)에게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증서이다. 매매부동산의 소재지는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매화리(梅花里) 거무곡(巨舞谷)이고, 지목은 답(畓),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이며, 매매대금은 134원이다. 이 토지에 대한 이전(移轉)과 분할 및 보존증명 비용을 매수인이 부담하기로 하며 훗날 피차간에 이의가 없기로 증서를 작성한다는 것을 약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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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5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俊安 姜俊安<着名>張時洪<着名>姜秉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2년(고종29) 11월 6일에 강준안이 누군가에게 논 2마지기를 4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2년(고종29) 11월 6일에 강준안(姜俊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강준안은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자신의 논을 긴요하게 쓸 곳이 생겨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서상림리(西上林里) 불당동(彿堂洞)이고 자호는 일자(日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4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장싱홍(張時洪)이 증인으로, 강병문(姜秉文)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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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泰折 金瓊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고종31) 3월 1일에 김태석이 누군가에게 논 1마지기 3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4년(고종31) 3월 1일에 김태석(金泰析)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태석은 자신이 기경(起耕)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흉년을 당하여 살 방도가 어려워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분방상원(分房上員)이고 자호는 신자(新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4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 1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35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은 전날 화재로 불타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알도록 하라는 문구가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훗날 구문기가 없는 것으로 인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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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7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全文永 全文永<着名>朴允化<着名>高光永<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12월 말일에 전문영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224냥 2전 5푼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12월 말일에 전문영(全文永)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문영은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서면(五西面) 대천평(大川坪)이고 자호는 빈칸으로 두어 적지 않았으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7부(負) 8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224냥 2전 5푼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 1장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박윤화(朴允化)가 증인으로, 고광영(高光永)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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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박건중(朴建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錫謙 朴建中 李錫謙<着名>朴蓍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1년 1월 26일에 박건중이 이석겸으로부터 부모 산소 주변 시장을 매입하는 토지매매명문 1801년 1월 26일에 박건중(朴建中)이 이석겸(李錫謙)으로부터 시장(柴場)을 매입하는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석겸은 자신이 매득하여 장막을 설치한 산의 남쪽 옛길이 있는 작은 고개 남쪽이 박건중의 부모 산소의 주맥(主脈)인 까닭에 그가 사기를 원하였으므로 전문(錢文) 2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에 배탈(背頉)을 한 뒤에 영구히 판다는 내용이다. 본문기는 구문기(舊文記)라고도 하는데 이는 현재의 거래 이전에 해당 매물에 관해 작성된 매매명문을 가리킨다. 그리고 배탈은 문서의 배면에 탈이 난 사항 즉 문서에 적힌 토지 등의 목적물에 변동이 발생한 경우 그 내용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이석겸이 본문기를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건네지 않고 배탈을 했다는 것은 본문기에 이 시장 외에도 다른 전답 등이 기재되어 있고 그 중에 일부를 방매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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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김백순(金栢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振圭 金栢淳 安振圭<着名>安仲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1_001 1907년 12월 21일에 김백순이 안진규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산지 매매명문 1907년 12월 21일에 김백순(金栢淳)이 안진규(安振圭)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안진규는 자신의 선산 터를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山直]를 두고 금양(禁養)해 왔는데 사는 형편이 어려워져서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산지의 소재지는 무안군(務安郡) 이로면(二老面) 자봉산(紫鳳山)이고 자봉산 아래 덕정(德亭) 뒤쪽 산기슭을 전문(錢文) 150냥을 받고 김백순에게 영구히 방매하는 내용이다. 산지의 동서남북 사방 경계를 자세하게 기술하였는데, 동쪽은 과협처(過峽處)로 넘어가는 길을 한계로 하고, 남쪽은 최가의 무덤 용미(龍尾) 위쪽의 야트막한 언덕을 한계로 하며, 서쪽은 김가의 무덤 뒤로부터 시등(市嶝) 뒤쪽 밭 위까지를 한계로 하고 북쪽으로 연접해 있는 밭까지를 돌아서 과협처를 넘어가는 길까지를 한계로 한다는 내용이다. 안중진(安仲辰)이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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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김후철(金后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甘彔 金后哲 金甘彔[着命]張賓錫[着命]金啓根[着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철종 9) 2월 3일에 김감록이 김후철에게 논 4두락지를 방매하며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58년(철종 9) 2월 3일에 김감록(金甘彔)이 김후철(金后哲)에게 논을 방매하며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방매자 김감록 측에 전해 내려온 논으로, 포양면(布陽面)에 있는 여자정(女字丁) 4두락지이다. 방매 사유는 이매(移買)이며, 가격은 전문 4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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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김택림(金澤臨)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光勳 金澤臨 金光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99년(정조23) 10월에 재종형 김광훈이 재종제 김택림에게 20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99년(정조23) 10월에 재종형(再從兄) 김광훈(金光勳)이 재종제(再從弟) 김택림(金澤臨)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광훈은 자신이 매득한 밭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방매 경위는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즉 이곳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의 남문(南門) 밖이고 자호는 치자(致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0마지기[斗落只]이고 부수(負數)로는 20부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55냥이다. 이 매물의 본문기(本文記) 8장과 입지(立旨)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관련문서인 본문기들을 통해 김광훈이 1774년에 신억복으로부터 매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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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義赫 韓義赫<着名>曺慶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0년(헌종6) 1월 20일에 유학 한의혁이 누군가에게 8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40년(헌종6) 1월 20일에 유학(幼學) 한의혁(韓義赫)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한의혁은 자신이 매득한 것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이매(移買)하기 위해 방매한다고 사유를 적었다. 이매는 이 토지를 팔아서 다른 토지를 사는 것으로, 주로 원거리에 있어 경작에 어려움이 있어 이를 팔고 가까운 거리의 토지를 사들이는 행위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 용전평(龍田坪)이고 자호는 직자(職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31부(負)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10냥이고, 해당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기(新文記) 1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유학 조경현(曺慶鉉)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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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노 원봉(元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秋月 奴 元奉 崔奴 秋月<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21_001 1877년(고종14) 7월 23일에 최노 추월이 신노 원봉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7년(고종14) 7월 23일에 최씨의 사내종 추월(秋月)이 신생원댁(愼生員宅) 사내종 원봉(元奉)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최씨의 사내종 추월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동안 경작해오다가 올해 큰 흉년으로 인해 세금을 납부할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장성군 북일면 시동백정촌(始冬百亭村) 앞 자지평(紫芝坪)이고 자호는 시자(始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3말[斗] 5되지기[升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4복(卜) 9속(束)이다. 거래가가 쓰여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전에 전당(典當)을 잡히고 돈을 가져다 썼다가 이를 갚지 못해 영구히 매수인의 차지로 한다는 의미로 문서를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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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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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成澣修 成澣修信 1顆(적색, 0.6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3월 4일에 성한수가 성동면 연동리 소재 3군데 전답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문서 1911년 3월 4일에 성한수(成澣修)가 성동면(星洞面) 연동리(蒲洞里) 소재 3군데 전답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모두 논으로 중보평(中堡坪)에 있는 음자답(陰字畓), 방축평(方丑坪) 선자답(善字畓), 토조상평(土造上坪) 보자답(寶字畓) 3군데이며 모두 합해 21마지기이다. 가격은 전문 1,350냥이며, 매득자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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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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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이승창(李承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鍾湖 李承昌 李鍾湖信 1課(적색, 1.2cm)李承昌信 1課(적색, 1.2cm)李驥秀信 1課(적색, 1.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12월에 이종호가 이승창에게 밭 1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문서 1912년 12월에 이종호(李鍾湖)가 이승창(李承昌)에게 창평군 대면 사창리에 있는 밭 1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토지는 이종호가 매득하여 경작하던 것으로, 그는 부채상환을 위해 토지를 방매하게 되었다. 문기 말미에 매매대상 토지의 사표(四標)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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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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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次三九亭 栗庵李斗永遙憶新亭步出東扶陽一事我心同衣冠彷佛羲皇俗浴詠依然舞雩風群物涵濡春雨裡衆賓絡繹夕陽中靑邱異日看圖史爲此淸庄語不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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