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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정대진(鄭大瑱)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守吉 鄭大瑱 鄭守吉 1顆(적색, 1.2cm)洛元 1顆(적색, 0.5cm)鄭炳淳 1顆(적색,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0년 11월 1일에 정수길이 정대진에게 소나무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매매계약문서 1910년 11월 1일에 정수길(鄭守吉)이 그동안 금양(禁養)해오던 송전(松田)을 정대진(鄭大瑱)에게 방매하면서 발급한 송전 매매명문이다. 이 소나무밭은 방매자 정수길이 매득한 것으로 서상면(西上面)에 있다. 값은 10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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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興培 金敦奎章 1顆(적색, 0.9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0년 11월 10일에 김흥배가 유가면 소재 논 2군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문서 1910년 11월 10일에 김흥배(金興培)가 유가면(柳加面)에 있는 논 2군데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논 2마지기와 1마지기, 부수(負數)로는 12부 4속과 1부 5속이다. 가격은 전문 135냥이다. 매득자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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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노 봉문(奉文)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慶模 奴 奉文 尹慶模<着名>金大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고종7) 11월 25일에 윤경모가 고생원댁 노 봉문에게 밭과 시장, 나무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7) 11월 25일에 윤경모(尹慶謨)가 고생원댁(高生員宅) 노(奴) 봉문(奉文)에게 밭과 시장(柴場)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윤경모는 선대로부터 상속 받은 밭과 시장을 수년 동안 경작하고 가꿔오다가 많은 사채(私債)를 감당하지 못하여 팔게 되었다고 소유경위와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계촌(桂村) 농막촌(農幕村) 앞이다. 매물은 관자(官字) 자호의 밭 1말[斗] 5되지기[升落只], 당목(棠木) 15그루, 마을 뒤편의 시장(柴場) 1편(片), 오동나무 2그루, 시초(柴草) 15복(卜)을 벨 수 있는 곳이다. 이것들을 전문(錢文) 32냥을 받고 고생원댁 노 봉문에게 영영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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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圭鉉 梁日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9년(고종26) 3월 한규현이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7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9년(고종26) 3월 한규현(韓圭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한규현은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을 부득이한 형편으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오지방(吾支坊) 오지촌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피자(彼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4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2복(卜) 7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 7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하였다. 양일룡(梁日龍)이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소재지인 오지방은 남원부의 48방(坊) 중 하나로 추정되고 이후 남원군에서 임실군 삼계면으로 편입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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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蘇輝英 蘇輝英<着名>張時玉<着名>李尙珣<着名>李正會<着名>蘇準述<着名>金赫臣<着名> 3顆(적색,정방형,7.5×7.5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164_001 1891년(고종28) 8월 모일에 둘째 아우인 소휘영이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18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1년(고종28) 8월 모일에 둘째 아우인 소휘영(蘇輝英)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소휘영은 자신의 동생의 옥사(獄事)로 인해 쓴 돈을 갚을 길이 없어 부득이 큰형이 상속받은 논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남원 지사방(只沙坊) 옥산촌(玉山村) 율야미평(栗野味坪)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마지기[斗落只]인데 여기에 지금 자라고 있는 곡식까지 합해서 전문 18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거래시점이 8월로 추수 전이므로 수확할 곡식까지 포함하여 거래가가 결정된 것이다. 옥사가 무슨 일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3개 동(洞)의 동임(洞任)과 풍헌(風憲)이 참여한 것을 보면 상당히 복잡하고 큰 옥사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관인(官印)이 세 군데 찍혀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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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심능희(沈能禧)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審汶 沈能禧 尹審汶<着名>尹炳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고종10) 4월 15일에 윤심문이 심능희의 계중에 논 2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3년(고종10) 4월 15일에 윤심문(尹審汶)이 심능희(沈能禧)의 계중(稧中)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윤심문은 자신의 계답(稧畓)에서 수년간 가을에 세를 받아왔는데 판서공(判書公)의 가증(加贈)과 관련한 일로 빚을 갚아야해서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복하도(福下道) 진항(津項) 미력평(彌力坪)이고 자호는 솔자(率字),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 1배미[夜味]이고 부수(負數)는 6복(卜) 6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 50냥이다.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윤병진(尹炳璡)이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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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申壽命 申壽命<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2월 6일에 신수명이 누군가에게 3냥을 받고 초장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7년(고종14) 2월 6일에 신수명(申壽命)이 누군가에게 초장(草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사유는 이번 흉년을 당하여 세를 납부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초장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사계촌(沙溪村) 뒤편이고 지목은 초장, 면적은 수확량 기준 10복(卜)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3냥이다. 매득인의 이름은 없고 다만 우댁(右宅)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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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麗澤 金麗澤<着名>曺聖鉉<着名>趙華性<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 1월 26일에 김여택이 누군가에게 산지를 1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5년 1월 26일에 김여택(麗澤)이 누군가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여택은 자신이 송추산(松楸山)을 매득하여 수년 동안 소나무를 길러오다가 방매하게 되었다고 소유 경위와 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본면(本面)의 옥천(玉泉) 좌측 산기슭 1편(片)이고 거래가는 전문(錢文) 18냥이며, 구문기(舊文記)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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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전당문기(典當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京七 李京七信 1顆(적색,원형,1cm)柳燉植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7년 윤2월 25일에 이경칠이 자신의 가대를 20원을 받고 전당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 1917년 윤2월 25일에 이경칠(李京七)이 누군가에게 가대(家垈)를 전당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典當文記)이다. 이경칠은 수년 동안 살아오던 자신의 가대를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전당을 잡힌다고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자양리(紫陽里)이고 가대의 규모는 체사(體舍) 4칸, 행랑 3칸, 문간 1칸이다. 자호는 가자(可字)이고 번지는 46번지, 면적은 6되지기[升落只] 2부(負) 5속(束)이다. 이 가대를 전문(錢文) 20원(圓)으로 값을 쳐서 4리(利)로 얻어 쓰면서 전당잡히고 기한은 11월 15일까지로 하되, 기한을 넘기게 되면 이 물건을 영구히 상대방에게 허급(許給)한다는 내용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유돈식(柳燉植)이 보증인으로 도장을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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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윤행수(尹行秀)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相堯 尹行秀 尹相堯印 2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8년 1월 22일에 삼종질 상요가 삼종숙 행수씨에게 2마지기 논을 6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8년 1월 22일에 삼종질(三從姪) 상요(相堯)가 삼종숙(三從叔) 행수씨(行秀氏)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상요는 자신이 매득하여 소유하게 된 논을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후고평(朽槁坪)이고 자호는 강자(崗字), 면적은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며, 매매가는 엽전 600냥이다. 증인이나 필집을 두지 않고 상요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고 도장을 날인하여 삼종숙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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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김정근(金貞根) 계약증서(契約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貞根 玄鶴圭 金貞根信 1顆(적색,원형,1.2cm)全行圭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70_001 1926년 음1월 13일에 현학규가 김정근에게 1마지기의 토지를 매수하기 위해 계약금 30원을 주고 작성한 계약증서 1926년 음1월 13일에 현학규(玄鶴圭)가 김정근(金貞根)에게 30원을 주고 작성한 계약증서이다. 현학규는 담양군(潭陽郡) 고서면(古西面) 고읍리(古邑里) 향교평(鄕校坪)에 있는 1마지기[斗落只]의 토지를 매수하던 중에 계약금으로 30원을 지급하고, 훗날 이의가 있으면 이 금액은 무효로 하기로 약속하는 내용이다. 관련문서를 보면, 양력으로 3월 3일에 현학규가 김정근에게 이 토지를 매입하는 매도증서를 작성한다. 3월 3일은 음력으로 1월 19일이므로 계약금을 지급하고 6일 뒤에 매도증서를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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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장동환(張東煥)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興奎 張東煥 李興奎<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01_001 1790년(정조14) 10월에 유학 이흥규가 유학 장동환에게 5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90년(정조14) 10월에 유학(幼學) 이흥규(李興奎)가 유학 장동환(張東煥)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이흥규는 방매사유를 이매(移買)하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이매는 이 논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는 것인데, 흔히 원거리에 있어 경작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가까운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 팔 때 이매라고 적는다. 매물의 소재지는 경기도 이천군 백토리면(栢土里面) 조읍동(助邑洞)인데 지금은 백사면(栢沙面) 지역이다. 자호는 국자(鞠字)이고 지번이 735답이며 면적이 5복(卜) 6속(束)이다. 여기에 같은 자호의 지번이 4답인 곳이 면적 8복(卜) 중에서 1복(卜)을 합해서 파종량 기준으로 정조(正租) 5마지기[斗落只]를 전문(錢文) 55냥을 받고 영구히 팔았다.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매수인 측에 넘겨주지 못한다고 적었다. 본문기는 매물과 관련한 기존의 권리증빙 문서를 가리키는데 이것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모두 매수인에게 넘겨주는 것이 거래관행이다. 그러나 본문기에 적힌 토지 가운데 일부를 나누어 파는 경우 문서를 넘겨줄 수 없으므로 신문기에 본문기를 넘겨주지 못하는 사유를 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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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김성옥(金成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成采 金成玉 崔成采<着名>徐漢興<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19_001 1839년(헌종5) 12월 21일에 유학 최성채가 유학 김성옥에게 세 곳의 논과 밭 15복 8속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39년(헌종5) 12월 21일에 유학(幼學) 최성채(崔成采)가 유학 김성옥(金成玉)에게 세 곳의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최성채는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 오다가 이매(移買)하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이매는 이 토지를 팔아서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한 것인데, 대체로 원거리에 있어 경작에 어려움이 있다거나 등의 이유를 말한다. 매물의 소재지는 무장(茂長) 성동면(星洞面) 주을촌(注乙村)의 후평(後坪)과 방축(防築) 아래이고, 자호는 선자(善字) 논과 밭, 그리고 복자(福字) 논이다. 선자 논은 4배미[夜味]이고 파종량 기준으로 3말[斗] 5되지기[刀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0부(負) 8속(束)이며, 선자 밭은 5되지기 2복(卜)이며, 복자 논은 1마지기[斗落只] 3부 면적이다. 세 곳을 합하여 15부 8속인 곳을 전문(錢文) 28냥을 받고 김성옥에게 팔았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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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潤八 朴潤八<着名>朴昌允<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2월 12일에 박윤팔이 누군가에게 밭 2마지기를 6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7년(고종14) 2월 12일에 박윤팔(朴潤八)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윤팔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태종전(太種田)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신안면(新安面) 장동촌(藏洞邨) 뒤편 외동산(外東山) 질우평(叱牛坪)이고 자호는 장자(藏字),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 4부(負) 1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6냥이다. 이 밭의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잃어버렸기에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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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德仲 金德仲<着名>朴成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 2월 6일에 유학 김덕중이 누군가에게 논 8마지기를 41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5년 2월 6일에 유학(幼學) 김덕중(金德仲)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덕중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이라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방매 사유는 부득이해서라고 간단하게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봉산촌(蜂山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창자(唱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8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26복(卜) 8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 410냥이다. 문서 말미에 구문기는 중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는 문구가 추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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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孟俊 韓孟俊<着名>金致三<着名>金昌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고종32) 윤5월 28일에 한맹준이 누군가에게 밭 8마지기를 1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고종32) 윤5월 28일에 한맹준(韓孟俊)이 누군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한매준은 처가(妻家)로부터 상속받은 밭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세금을 납부할 길이 없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거야리촌(巨也里村) 뒤편 백정치(百亭峙)이고 자호는 상자(傷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0냥이다. 이 거래에 김치삼(金致三)이 증인으로, 김창현(金昌鉉)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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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有石 朴有石<着名>趙箕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5년(고종32) 8월 12일에 동몽 박유석이 누군가에게 논 1말 5되지기를 3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5년(고종32) 8월 12일에 동몽(童蒙) 박유석(朴有石)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유석은 자신에게 전래된 논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상사면(上沙面) 마륜촌(馬輪村) 전평(前坪)이고 자호는 숙자(夙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말[斗] 5되지기[刀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5부(負)이다. 양안에는 노(奴) 수정(水丁)의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는 논고, 거래가는 전문(錢文) 35냥이다.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수표(手標)를 매수인에게 넘겨주며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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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박조이(朴召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雪云金 朴召史 金雪云金<着名>金重太<着名>金晋岩<着名>趙德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0년 12월 22일에 박조이가 김설운쇠에게 3마지기의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60년 12월 22일에 박조이(朴召史)가 김설운쇠(金雪云金)에게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설운쇠는 본래 이 지역에서 살다가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또 연달아 집안의 화를 당하여 이곳을 버리고 타향으로 이사할 계획에 이 밭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이 밭은 자신이 상속을 통해 소유하게 되었다고 경위를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덕신원(德新員)이고 자호는 아자(雅字)이다.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는 4복(卜)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겉보리[皮牟] 3마지기[斗落只]인 곳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0냥이다. 밭주인은 김설운쇠 외에 김중태(金重太)가 함께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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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가대매매증서(家垈賣買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判德 金判德 3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음2월 12일에 김판덕이 누군가에게 45원을 받고 가대를 팔면서 작성한 가대매매증서 1927년 음2월 12일에 김판덕(金判德)이 가대(家垈)를 매매하면서 작성한 가대매매증서이다. 가대의 소재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현재 김판덕의 주소지는 함양군(咸陽郡) 안의면(安義面) 초동리(草東里)이므로 그 근처로 추정할 수 있다. 자신이 현재 거주중인 가대를 매매하는 것인지 다른 곳의 가대인지는 알 수 없고, 매매대금은 45원이다. 이 금액으로 체사(體舍) 3칸, 감나무 1주(株), 작은 감나무 1주를 확실하게 매도하며, 훗날 문제가 있을 시에는 손해금을 위약인이 부담하고 매수인은 손해가 없도록 한다는 뜻으로 계약한다는 내용이 있다. 매수인의 이름은 기입하지 않았고, 같은 마을의 이진수(李鎭秀)는 연대보증인으로, 박상열(朴相烈)은 간증인(看證人)으로 이 증서 작성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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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徐明善 徐明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고종13) 3월 18일에 서명선이 누군가에게 논 3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6년(고종13) 3월 18일에 서명선(徐明善)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라고 적었고, 소유하게 된 경위는 자신이 매득(買得)한 논이라고 하였다. 매물은 사야평(沙也坪)에 있는 화자(和字) 자호의 1마지기[斗落只] 논과 신보평(新湺坪)에 있는 상자(上字) 자호의 1마지기 논 두 곳을 합하여 3마지기 논을 전문(錢文) 30냥을 받고 판다는 내용이다. 해당 토지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는데 구문기는 중간에 없어져서 내어줄 수 없다고 문서 말미에 덧붙여 적었다. 이 거래에는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서명선이 자필로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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