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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聲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61_001 이성진이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의 일부 답주 이성진(李聲震)이 자신의 논을 팔면서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준 구문기(舊文記)로 추정된다. 대각선 방향으로 두 번에 걸쳐 오려졌다는 것은 이 문서에 적힌 토지를 2회에 걸쳐 일부 방매하였고, 그때마다 해당 토지가 적힌 부분을 대각선 방향으로 오려서 구문기로 매수인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관련문서로 볼 때 고창군(高敞郡) 대아면(大雅面) 석동평(石洞坪)에 있는 성자자(性字) 자호의 논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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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成泰 李炳禮信 1顆(적색,원형,1.4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음1월 27일에 종손 이성태가 누군가에게 논 8마지기를 1,0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6년 음1월 27일에 종손(宗孫) 이성태(李成泰)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성태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문중 땅을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아산면(雅山面) 비석리(碑石里) 후평(後坪)이고, 자호는 내자(內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이며 매매가는 전문(錢文) 1,000냥이다. 이성태의 주소지는 고창군 고수면(古水面) 증산리(曾山里)이고, 같은 마을의 이병례(李炳禮)가 문중의 유사(有司)로서 증인으로 참여하여 도장을 날인하였다. 문서 말미에 소유권보존증명 건은 논 값을 다 받은 뒤에 출급하겠다는 문구가 추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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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小月心 奴 小月心<着名>奴 雲卜<着名>奴 正每<着名>奴 分切<着名>奴 日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11월 9일에 이씨의 노 소월심이 누군가에게 3마지기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3년 11월 9일에 이씨의 노(奴) 소월심(小月心)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씨의 노 소월심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임을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용교동(龍橋洞) 동창원(同窓員)이고 자호는 오자(吳字),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이며 면적은 3마지기[斗落只]이다. 거래가 120냥을 받고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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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錫來 李錫來<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4월 11일에 이석래가 누군가에게 논 4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4년 4월 11일에 이석래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석래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은 무장군(茂長郡) 오리동면(吾里洞面) 사반리(沙盘里) 앞의 중보평(中堡坪)에 있는 호자(戶字) 자호의 면적은 3마지기[斗落只] 1배미[夜味]와 외서평(外嶼坪)에 있는 호자 자호의 1마지기 1배미 두 곳을 합한 4마지기 논이다. 거래가 270냥을 받고 신문기와 구문기 2장으로 방매하였다. 다만, 이후에 살림이 펴지면 본가(本價)에 환퇴(還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고, 도조(賭租)는 매년 1섬[石] 7말[斗]씩으로 정하였다. 이석래가 자신을 인제(姻弟)라고 하였으므로 인척간에 이루어진 거래이다. 문서 말미에 외서평 1마지기 논의 구문기에는 다른 토지가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넘겨주지 못한다고 명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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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 조세주(趙世周)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東伊 趙世周 金東伊<着名>金老同<着名>金麗興<着名>柳就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30년 4월 모일에 조세주가 김동오로부터 10마지기의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30년 4월 모일에 조세주(趙世周)가 김동오(金東仵)로부터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동오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외가쪽으로부터 상속받은 곳이다. 소재지는 부내(府內)라고만 적어 자세하지 않고 자호는 치자(致字)이며 보리 10마지기[斗落只]를 파종할 수 있는 면적이고 거래가는 전문(錢文) 20냥이다. 이 밭의 소유권을 증빙할 수 있는 본문기(本文記) 1장과 입지(立旨)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조세주에게 넘겨주어 영구히 방매하되, 화회문기(和會文記)에는 다른 토지와 노비가 함께 기재되어 있어 효주(爻周) 배탈(背頉)하였으므로 훗날 자손이나 족류 중에 잡담을 하는 일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아뢰어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화회문기는 분재기(分財記) 류의 문서로서 노비나 토지 등의 재산이 재주(財主) 생전에 재주의 의사에 따라 분재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재주 생전에 지정이 없던 경우 재주 사후에 그 자녀들이 화회(和會)하여 합의에 의하여 분집(分執)된다. 이처럼 화회에 의하여 재산을 분집하는 문서가 화회문기이다. 효주는 거래 대상물이 기재된 본문기 상의 기재처에 가위표나 기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를 하여 지우는 행위를 말하고, 배탈은 문서의 배면에 탈이 난 상황 즉 거래사항이나 특이사항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화회문기에 적혀있는 이 밭 부분을 효주하여 표시하고 문서 배면에 방매한 사항을 기재하였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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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김백순(金栢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均賢 金栢淳 安均賢<着名>安一文<着名>安奇默<着名>安啓默<着名>安廣默<着名>安均瑞<着名>安應三<着名>安均龍<着名>安均善<着名>安均燮<着名>安均玉<着名>安均煥<着名>安均相<着名>安宗烈<着名>安宗連<着名>安宗旭<着名>安宗珉<着名>朴炳國<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51_001 1907년 11월 13일에 김백순이 안균현과 안일문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는 토지매매명문 1907년 11월 13일에 김백순(金栢淳)이 안균현(安均賢)과 안일문(安一文)으로부터 산지를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안균현은 자신의 9대조 산소가 무안군(務安郡) 이로면(二老面) 시장(市場) 뒤쪽 산기슭 남서향[艮坐] 언덕에 있는데 잔약한 자손들이 떠돌고 흩어져 수년간 제향을 지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소송 빚이 적지 않아 선산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자세하게 적었다. 선산의 계하(階下)에 있는 빈자리 한 곳을 대대로 함께 쓰기로 하고 김백순이 부모의 묘지로 입장(入葬)하고자 전문(錢文) 300냥을 받고 허급(許給)한다는 내용이다. 신문기(新文記) 1장에 구표(舊標) 1장도 함께 넘겨준다는 내용이 추기되었다. 이곳이 안씨 가문의 선산이기 때문에 문장(門長) 안기묵(安奇黙)을 비롯하여 차문장(次門長), 종손(宗孫)들이 이름을 나열하여 적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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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김만발(金萬發)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先昇 金萬發 金先昇<着名>金光采<着名>白光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0년(영조36) 3월 22일에 김광정이 김만발에게 9마지기와 1마지기의 밭 두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60년(영조36) 3월 22일에 김광정(金光鼎)이 김만발(金萬發)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김광정은 자신의 선대 조상으로부터 전래되어 상속받은 밭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진변(津邊) 점골[點谷]이고 자호는 의자(意字)이며 양작(兩作)을 합해서 면적이 겉보리[皮牟] 9마지기[斗落只]를 파종할 수 있고 부수(負數)로는 3복(卜) 2속(束)인 밭이다. 여기에 화속전(火束田) 1마지기를 합한 두 곳을 전문(錢文) 7냥을 받고 김만발에게 영구히 방매하였다. 이들 밭의 본문기(本文記)는 불에 타버렸기 때문에 입안(立案)에 적혀있는 이 밭을 효주(爻周)해서 말소하였고 문서의 배면에 배탈사급입안(背頉斜給立案)을 받았다고 명기하였다. 효주는 입안에 이 밭이 적힌 부분에 가위표시를 하거나 둥그렇게 그려서 삭제 및 정정표시를 하는 행위이고, 배탈사급입안은 문서의 뒷면에 효주 표시한 부분에 발생한 변동사항을 관청에 신고하여 증명을 받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토지 매매에서 신문기의 작성과 구문기라고도 불리는 본문기 및 기타 증거서류를 매득인 측에 넘겨주는 것이 매매계약의 성립요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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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노 유복(有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萬石 奴 有福 李萬石<着名>韓奴 日德<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2년(순조32) 12월 21일에 이만석이 남생원댁 노 유복에게 5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32년(순조32) 12월 21일에 이만석(李萬石)이 남생원댁(南生員宅) 노(奴) 유복(有福)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이만석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하게 된 경위는 자신이 매득한 논이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구자(駒字) 자호의 25답과 같은 자호의 101답이 매매 대상이다. 25답의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6부(負) 6속(束)이고 101답은 1부이며, 이 두 곳을 합해서 7부 6속, 파종량 기준의 면적으로는 5마지기[斗落只]이다. 이 논의 본문기(本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 측에 넘겨주었고, 도지(賭地)는 3섬[石]으로 정하면서 팔았는데, 다만 기한을 두지 않고 본가(本價)에 준해서 환퇴(還退)하겠다는 조건을 두었다. 환퇴는 팔았다가 나중에 도로 무른다는 뜻이므로, 몇 년이 되었든 기한에 상관없이 본가에 이만석이 되사겠다는 것이고, 명문 내에 이 문구가 있다는 것은 남생원 측도 동의한 것이 된다. 도지를 3섬으로 하겠다는 내용이 있고, 문서 배면에 작인(作人)이 이만석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만석이 이 논을 팔고 경작은 계속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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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김광훈(金光勳)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申億福 金光勳 申億福<着名>李三賢<着名>吳泰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74년(영조50) 11월 8일에 신억복이 김광훈에게 20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74년(영조50) 11월 8일에 신억복(申億福)이 김광훈(金光勳)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신억복은 환자[還上]를 납부하기 위해 판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자신이 매득한 것이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의 남문(南門) 밖이고 자호는 치자(致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0마지기[斗落只]이고 부수(負數)로는 21부(負) 1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55냥으로 정하여 받고, 본문기(本文記) 7장과 입지(立旨)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이삼현(李三賢)이 증인으로, 오태위(吳泰偉)가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김광훈은 이후 1799년에 이 밭을 팔게 되는데 그때에도 55냥에 거래된 것을 관련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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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한기조(韓基朝)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韓光震 韓基朝 韓光震<着名>韓之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4년(정조8) 1월 31일에 유학 한광진이 한기조에게 3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84년(정조8) 1월 31일에 유학(幼學) 한광진(韓光震)이 유학 한기조(韓基朝)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한광진은 빈한한 까닭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는 양부모집에 전래되어 온 밭이라고 밝혔다. 매물은 창자(昌字) 자호의 밭 아래쪽 3마지기[斗落只]이고 부수(負數)로는 6복(卜) 2속(束)이다. 마지기는 파종량을 기준으로 한 면적 표기방식이고 부수는 수확량을 기준으로 한 면적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7냥이다. 사촌동생인 한지술(韓之述)이 필집(筆執)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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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永秀 金永秀[着名]李容悳[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11월 27일에 김영수가 무장 오리동면 소재 논 4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 계약문서 1903년 11월 27일에 김영수(金永秀)가 무장(茂長) 오리동면(吾里洞面) 소재 협자(挾字) 자호의 논 4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값은 전문(錢文) 75냥이며, 매수자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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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黃召史 黃召史<手掌>申哲祿<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고종7) 2월 12일에 황소사가 누군가에게 4마지기의 전답을 4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7) 2월 12일에 황소사가 누군가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황소사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간단히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신방원(新方員)이고 자호는 상자(賞字), 지번은 19, 27, 79, 16이며 이 네 지번의 논을 합한 결부수(結負數)는 13부(負) 8속(束)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마지기[斗落只]의 논과 3마지기의 밭을 합한 4마지기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45냥이다. 이 거래에 신초록(申招祿)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고, 황소사는 수장(手掌)으로 착명을 대신하였는데 이는 황소사가 여성이고 신분이 낮기 때문에 손바닥 모양을 따라 그리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문서 말미 하단에 적힌 시작인(時作人)은 현재 경작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황소사가 이 전답을 방매하기 이전부터 경작을 하고 있다가 방매 이후에도 매득인에게 경작권의 보장을 위해 적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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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노 원봉(元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水伯 奴 元奉 奴 水伯<着名>奴 丁禮<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고종10) 7월 11일에 조생원댁 노 수백이 신생원댁 노 원봉에게 시장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3년(고종10) 7월 11일에 조생원댁(趙生員宅) 노(奴) 수백(水伯)이 신생원댁(愼生員宅) 노(奴) 원봉(元奉)에게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조생원댁 사내종 수백은 법장동(法藏洞)에 있는 시장을 수호해오다가 올해 흉년을 당하여 하는 수 없이 전문(錢文) 22냥을 받고 신생원댁 노 원봉에게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시장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어졌기 때문에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 써서 준다고 하였다. 문서를 작성한 필집(筆執)은 최생원댁 노 정례이다. 시장은 땔나무를 채취할 수 있는 산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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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柳重熙 柳重熙[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6년 윤4월에 류중희가 오동면 소재 논 7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6년 윤4월에 류중희(柳重熙)가 오동면(五東面) 봉산(烽山) 마을 앞에 있는 논 7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하는 논은 자호가 입자(入字)이며, 값은 전문 550냥이다. 매득한 사람은 기재하지 않았다. 구문기를 서실(閪失)하여 내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 발급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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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鍾九 李鍾九[着名]柳鳳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9월 12일에 이종구가 입비동 소재 논 7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7년 9월 12일에 이종구(李鍾九)가 오서(五西) 동면(東面) 입비동(立碑洞)에 있는 논 7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값은 전문 400냥이며, 매득한 사람은 기재하지 않았다. 구문기는 금액을 받은 후에 내주겠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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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신재철(愼在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辛榮邦 愼在哲 羅弼詢<着名>辛榮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7년(헌종3) 12월 7일에 신영방이 유학 신재철에게 초가와 두 곳의 밭 등을 팔면서 작성한 가대 매매 명문 1837년(헌종3) 12월 7일에 신영방(辛榮邦)이 유학(幼學) 신재철(愼在哲)에게 초가(草家)와 두 곳의 밭 등을 팔면서 작성한 가대(家垈) 매매 명문이다. 신영방은 자신이 매득하여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장성군(長城郡) 북일면(北一面) 선암촌(船巖村)이다. 대전(垈田)은 인자(人字) 자호이고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고 부수(負數)는 5복(卜) 5속(束)이다. 여기에 3칸 규모의 초가와 같은 자호의 4마지기 9복 면적의 밭을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팔았다. 해당 토지의 본문기(本文記)를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신영방은 상중(喪中)이라 착명을 하지 않았고 증인으로 이 거래에 참여한 나필순과 필집으로 참여한 신영주는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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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時奉 柳奴 時奉<着名>金致範<着名>柳奴 白今<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고종12) 3월 22일에 유노 시봉이 누군가에게 4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5년(고종12) 3월 22일에 유노(柳奴) 시봉(時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시봉은 내야 할 공전(公錢)이 많아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구개평(舊漑坪)이고 자호는 교자(交字)이며 면적은 4마지기[斗落只], 거래가는 전문(錢文) 60냥이다. 김치범(金致範)이 증참(證參)으로, 유노 백금(白今)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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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奴 㖙同 奴 㖙同<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고종13) 11월 4일에 최생원댁 노 갓동이 누군가에게 논 5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6년(고종13) 11월 4일에 최생원댁 노(奴) 갓동(㖙同)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방매사유는 이매(移買)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는데 이는 원거리의 토지를 팔고 근거리의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서라는 의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영승평(永勝坪)이고 자호는 사자(使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5마지기[斗落只]이고 복수(卜數)는 19복(卜) 3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00냥이다. 매득인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고 택호(宅號)의 앞을 비워두고 노(奴)의 이름을 쓸 수 있는 공간도 비워두었다. 이렇게 매득인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는 관행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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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0년 김재연(金在年)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壽煥 金在年 張永求<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고종7) 12월 11일에 장수환이 문장 김재연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0년(고종7) 12월 11일에 장수환(張壽煥)이 문장(門長) 김재연(金在年)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장수환은 선대로부터 유래되어 온 논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상채(喪債)를 갚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 도양면(道陽面) 유전리(柳田里) 호동평(虎洞坪)이고 자호는 광자(廣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 4마지기[斗落只]이고 1살매(㐊每) 12배미[夜味], 부수(負數)로는 16부(負) 8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08냥이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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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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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庾台鉉 柳永善 庾台鉉信 1顆(적색, 원형,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6년 3월 15일에 유태현이 류영선에게 고창군 오산면 소재 논 5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16년 3월 15일에 유태현(庾台鉉)이 류영선(柳永善)에게 고창군에 있는 논 5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토지는 유태현이 매득하여 경작해 온 것으로,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오산면(五山面) 학산리(鶴山里)이다. 자호는 여자(與字)이며, 부수(負數)는 20부 6속이다. 가격은 전문 500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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