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25년 백종현(白琮賢)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國煥 白琮賢 姜國煥<着名>金順孫<着名>白聖春<着名>白元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5년 2월 27일에 강국환이 백종현에게 7마지기 논을 6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25년 2월 27일에 강국환(姜國煥)이 백종현(白琮賢)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강국환은 부모로부터 상속 받은 논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가난 때문에 부득이 할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대아면(大雅面) 신동(薪洞)이고, 자호는 정자(靜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7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 10복(卜), 구획상으로 3배미[夜味]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6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화재로 불타버렸기 때문에 배탈(背頉) 문기를 점련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배탈문기가 배탈사급입안(背頉斜給立案)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간략하게 배면에 변동사항을 기재하였다는 것인지 자세하지 않지만, 배탈은 문서에 적힌 내용의 일부에 매매나 양도 등에 의해 변동이 발생하였을 때 해당 부분을 표시 또는 말소하고 문서의 배면에 변동사항을 기재하는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57년 안상흥(尹相興) 토지교환증서(土地交換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煥 尹相興 張明煥信 1顆(적색,정방형,1.3cm)安德扇 1顆(적색,지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57년 2월 18일에 장명환이 윤상흥에게 자신의 밭 400평 6마지기를 상호 교환하면서 작성한 토지 교환증서 1957년 2월 18일에 장명환(張明煥)이 윤상흥(尹相興)에게 작성해준 토지교환증서이다. 토지의 소재지는 신흥리(新興里) 북수동(北水洞) 윗편이고, 이 밭을 중간에서 나눈 400평(坪) 6마지기[斗落只]이다. 이 토지는 장명환의 소유인데 윤상흥에게 서로 교환하되, 여기에 돈 30,000원을 더 얹어서 피차간에 영영 교환하기로 증서를 작성한다는 내용이다. 이 문서에는 윤상흥의 어느 토지와 교환하는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20년 윤행수(尹行秀) 토지매매증서(土地賣買證書)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尹炳極 尹行秀 尹炳極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음1월 27일에 윤병극이 윤행수에게 밭 2마지기를 82원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증서 1920년 음1월 27일에 윤병극(尹炳極)이 윤행수(尹行秀)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증서이다. 토지 소재지는 울진군(蔚珍郡) 원남면(遠南面) 매화리(梅花里) 909호이고, 지목은 전(田), 면적은 2마지기[斗落只] 137평(坪)이며, 매매대금은 82원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1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士宗 鄭士宗信 2顆(적색,원형,1cm)鄭在源信 1顆(적색,원형,1cm)徐晩容信 1顆(적색,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윤5월 24일에 정사종이 누군가에게 행랑이 딸린 7칸 가옥과 수목 등을 29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4년 윤5월 24일에 정사종(鄭士宗)이 누군가에게 가대(家垈)와 그에 딸린 수목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사종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소유하게 된 가옥을 수년 동안 거주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방화리(芳花里)이고, 가옥의 규모는 체사(體舍) 3칸과 행랑을 합하여 7칸 규모이고, 여기에 시막(柿幕) 2칸과 감나무 9그루, 배나무 1그루가 매물이다. 이 가대는 자호는 적자(積字)이고 면적은 4부(負) 4속(束)이며, 매매가는 전문(錢文) 290냥이다. 이 가대의 구문기(舊文記)는 중간에 화재로 없어졌기 때문에 출급할 수 없다는 내용을 문서 말미에 추기하였다. 이 거래에 정재원(鄭在源)이 보증인으로 참여하였고 이장(里長) 서만용(徐晩容)이 참여하여 도장을 날인하였다. 이 당시에 이장이 매매명문에 등장하는 것은 1906년과 1907년에 공포한 토지가옥증명규칙과 토지가옥증명사무처리순서와 관련된 것으로, 이 증명 규칙에 의하면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뒤에 통수(統首) 또는 동장(洞長)의 '인증'과 군수(郡守) 또는 부윤(府尹)의 '증명'을 받는 절차가 필요하였는데, 지방의 경우는 이장이 매매명문에 서명 날인함으로써 인증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9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聲震 李聲震<着名>姜成運<着名>柳致瑞<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261_001 1890년 3월 1일에 이성진이 누군가에게 15마지기의 논을 19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90년 3월 1일에 이성진(李聲振)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이성진은 수년 동안 세를 받아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高敞郡) 대아면(大雅面) 석동평(石洞坪)이고 자호는 성자(性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15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14배미[夜味], 매매가는 전문(錢文) 19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강성운(姜成運)이 증인으로, 유치서(柳致瑞)는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각기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演注 鄭演注<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고종13) 윤5월 26일에 사돈 정연주가 사돈댁에 논 1마지기를 20냥을 받고 전당을 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 1876년(고종13) 윤5월 26일에 사돈[査末] 정연주(鄭演注)가 사돈댁에 논을 전당(典當) 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이다. 정연주는 긴급한 빚 때문에 부득이 자신이 매득했던 논을 전당 잡게 되었다고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난현내원(蘭縣內員)이고 자호는 국자(鞠字), 면적은 1배미[夜味] 2마지기[斗落只]이다. 가격은 20냥으로 결정하되 1냥에 황조(荒租) 7되[升]씩으로 정하여 상대방에게 전당을 잡혔다. 그리고 훗날 약속한 화곡(禾穀)을 기일 안에 내지 못하면 이 문기를 근거로 다른 사람에게 옮겨 팔아도 된다고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7년 박치윤(朴致允)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致祺 朴致允 朴致祺<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7년(고종14) 10월 26일에 박치기가 박치윤에게 12냥을 받고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77년(고종14) 10월 26일에 동수(洞首) 박치기(朴致祺)가 박치윤(朴致允)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본 동(洞)이 올해 큰 흉년을 당한 나머지 호포(戶布)와 각종 역(役)을 납부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어 부득이 마을 뒤쪽에 있는 동답(洞畓)을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동답은 10배미[夜味]의 콩밭으로 면적이 파종량 기준으로는 10마지기[斗落只]이고 수확량 기준으로는 10부(負) 4속(束)인 곳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12냥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30년 조세주(趙世周)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梁天漢 趙世周 梁天漢<着名>金老東<着名>金麗興<着名>柳就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30년 4월 모일에 조세주가 양천한으로부터 10마지기의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730년 4월 모일에 조세주(趙世周)가 양천한(梁天漢)으로부터 밭을 매입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양천한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처가로부터 상속받은 밭을 팔게 되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라고만 적고 자세한 위치는 기재하지 않았다. 자호는 치자(致字)이고 이 밭의 북쪽으로 면적이 수확량 기준으로 10부(負), 파종량 기준으로 10마지기[斗落只]인 곳을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 1장과 입지(立旨)를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또 화회문기(和會文記)에 효주(爻周) 배탈(背頉)하였다고 하였는데, 화회문기는 분재기(分財記) 류의 문서로서 노비나 토지 등의 재산이 재주(財主) 생전에 재주의 의사에 따라 분재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재주 생전에 지정이 없던 경우 재주 사후에 그 자녀들이 화회(和會)하여 합의에 의하여 분집(分執)된다. 이처럼 화회에 의하여 재산을 분집하는 문서가 화회문기이다. 효주는 거래 대상물이 기재된 본문기 상의 기재처에 가위표나 기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를 하여 지우는 행위를 말하고, 배탈은 문서의 배면에 탈이 난 상황 즉 거래사항이나 특이사항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화회문기에 적혀있는 이 밭 부분을 효주하여 표시하고 문서 배면에 방매한 사항을 기재하였다는 의미이다. 이 거래에 증인으로 참여한 사람이 처남과 사촌처남인 것은 이 토지의 취득 경위가 처가에서 상속받은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安宗修 安宗修<着名><手掌>安一文<着名>任奉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 11월 18일에 안종수가 누군가에게 소송으로 발생한 빚을 갚기 위해 선산의 일부를 허급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1년 11월 18일에 안종수(安宗修)가 누군가에게 선산의 일부를 매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안종수는 자신의 7대조 선산이 무안군(務安郡) 이로면(二老面) 덕정(德亭)의 오른쪽 산기슭 면우동(眠牛洞)에 있는데 집안의 운수가 불행하여 영암(灵岩) 영보(永寶)의 최성윤(崔成潤)이 투장(偸葬)을 한 일로 6~7차례 정소(呈訴)하여 대변(對卞)한 뒤에 그동안 들어간 비용이 7~800냥에 이르게 되었고, 형편이 부득이한 상황이라 선산 아래를 영구히 방매하여 빚을 갚는 의미로 상대방에게 허급(許給)한다는 내용이다. 방매인 안종수와 함께 아들 안일문(安一文)도 함께 이름을 적고 착명(着名)하였다. 매수인의 이름은 기재하지 않았고, 유학 임봉신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2년 김도윤(金道允) 수표(手標)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道允 金道允<着名>丁聖元<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1월 27일에 김도윤이 누군가에게 20냥을 주면서 산소를 함께 사용하기로 약속하는 뜻을 문서로 작성한 수표 1902년 1월 27일에 김도윤(金道允)이 누군가에게 작성해준 수표이다. 자신이 이곳에 무덤을 쓴지 이미 30여년이 되었는데 지금 무덤을 파가라고 운운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김도윤은 무덤주인의 처지에서 상대방에게 무덤을 파내지 않는 대신에 돈 20냥을 주면서 이 수표를 작성하였다. 훗날 자손 중에 누구든 혹은 타인이라도 이에 대해 소란을 야기하는 폐단이 있으면 이 문기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京云 姜京云<着名>姜周一<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 12월 모일에 사형 강경운이 아우에게 4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5년 12월 모일에 사형(舍兄) 강경운(姜京云)이 아우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강경운은 자신이 기경(起耕)하여 수년간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고 또 이매(移買)하기 위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대흥면(大興面) 학무평(鶴舞坪)이고 자호는 단자(旦字),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 4마지기[斗落只] 수확량기준 11부(負) 6속(束)이다. 거래가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히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강경운이 자신을 사형이라고 적은 것으로 보아 매득인은 강경운의 아우로 추정된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72년 신억복(申億福)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氏 申億福 田貴得 母 朴氏<右手掌>金祿福<着名>金重燁<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324_001 1772년(영조48) 11월 13일에 전귀득의 모 박씨가 신억복에게 20마지기의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72년(영조48) 11월 13일에 전귀득(田貴得)의 모(母) 박씨(朴氏)가 신억복(申億福)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박씨는 이사할 때 쓰기 위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고, 소요하게 된 경위는 자신이 매득했다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부내(府內)의 남문(南門) 밖이고 자호는 치자(致字)이며,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0마지기[斗落只]이고 부수(負數)로는 21부(負) 1속(束)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55냥으로 정하여 받고, 본문기(本文記) 6장과 입지(立旨) 1장을 신문기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신억복은 2년 뒤인 1774년에 김광훈에게 이 밭을 파는데 그 때에도 거래가가 55냥이고, 1799년에도 역시 55냥에 거래된 것을 관련문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54년 종계첨원(宗禊僉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舜羽 宗稧僉員 舜羽<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4년(영조30) 10월 25일에 종말 순우가 종계에 8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754년(영조30) 10월 25일에 종말(宗末) 순우가 종계(宗稧)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순우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하게 된 경위는 원생원(元生員)에게 매득한 논이라고 밝혔다. 매물의 소재지는 양천군(陽川郡) 남산면(南山面)이고 자호는 화자(化字), 지번은 10내답(內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8복(卜) 8속(束)이고 파종량 기준으로는 8마지기[斗落只]이다. 이 논을 전문(錢文) 18냥을 받고 종계의 계원들 앞으로 영구히 방매하였다. 본문기(本文記)에는 다른 전답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넘겨줄 수 없고, 대신 이 논이 적힌 부분을 효주(爻周)하여 말소하고 배탈(背頉)하였으며, 원생원으로 부터 매득한 원문기(元文記) 1장과 패자(牌字) 1장을 종계에 넘겨주었다. 효주는 본문기내에 이 밭이 적힌 부분에 가위표시를 하거나 둥그렇게 그려서 삭제 및 정정표시를 하는 행위이고, 배탈은 문서의 배면에 탈이 난 것 즉 변동사항이 생긴 것을 일시와 함께 적는 것을 말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2년 신재철(愼在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承翰 愼在哲 崔承翰<着名>羅弼珣<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2년(순조32) 12월 25일에 유학 최승한이 유학 신재철에게 1마지기의 논과 4마지기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32년(순조32) 12월 25일에 유학(幼學) 최승한(崔承翰)이 유학 신재철(愼在哲)에게 논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이다. 최승한은 자신이 매득해서 경작해왔다고 소유하게 된 경위를 밝혔고, 다른 곳으로 이거(移居)하기 위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장성군(長城郡) 북일면(北一面) 선암촌(船巖村)이고 자호는 성자(星字)이고, 1마지기[斗落只] 논과 4마지기 밭 두 곳이다. 논의 부수(負數)는 5복(卜) 1속(束)이고 밭의 부수는 6복 5속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11냥이다. 이 전답의 본문기(本文記)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면서 영구히 방매하였다. 유학 나필순(羅弼珣)이 증인 겸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을 하였다. 논의 면적을 표기할 때 파종량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과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 있는데, 앞의 마지기는 파종량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곡식의 씨앗을 논밭에 뿌릴 때 그 씨앗의 총부피를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부수는 복수(卜數)라고도 하는데 이는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는 방식이다. 이는 수확된 곡식의 낱알 부피를 기준으로 해서 단계별로 파속결부(把束負結)이 있다. 앞의 파(把)는 한 줌, 속(束)은 한 단, 부(負)는 복(卜)과 같은 의미로 한 짐, 즉 지게로 한 번 질 수 있는 양을 뜻한다. 곡식의 수확량은 토지 면적의 단위로도 쓰이고 동시에 전세(田稅)의 과세 단위로도 사용되었다. 이렇게 두락수와 결부수를 병기하는 방식은 조선 후기로 올수록 증가한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3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白汶洙 白汶洙<着名>金肇業<着名>金元益<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14_001 1834년(순조34) 3월 28일에 백문수가 누군가에게 초가와 밭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34년(순조34) 3월 28일에 백문수(白汶洙)가 누군가에게 초가와 밭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백문수는 올해 춘궁기를 당하여 세미(稅米)를 마련할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덕군(興德郡) 이동면(二東面) 교동(橋洞)으로, 오늘날 고창군 성내면 지역이다. 매물은 존자(存字) 자호의 3칸짜리 초가와 1마지기[斗落只]면적의 집터[家基], 그리고 상동(上洞)에 있는 이자(以字) 자호의 4마지기 14복(卜) 9속(束) 면적의 밭과 올해 모곡(牟穀)까지 포함한 것이다. 결가(結價) 34복(卜)을 쌀 8말[斗] 7되[刀] 4홉[合]과 병모(幷毛) 10말 4되 5홉으로 바치고 상대방이 영영 차지하되, 본문기(本文記)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출급할 수 없다고 적었다. 매매가를 백문수가 직접 받은 것이 아니고 세미를 상대방이 직접 바치는 것으로 거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필집(筆執)을 풍헌(風憲)이 담당하고, 증인을 장차(將差)가 담당한 것 역시 세미를 납부하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문서를 보면 2년 전 백문수가 이 가옥을 포함한 밭을 살 때에는 이름이 백문휴(白汶休)로 되어 있어 어느 한쪽의 오류가 있어 보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68년 김시호(金始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順哲 金始浩 李哲孫<着名>郭致尹<着名>金完守<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3431_001 1868년(고종5) 12월 20일에 이순철이 김시호에게 3마지기의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68년(고종5) 12월 20일에 이순철(李順哲)이 김시호(金始浩)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이순철은 자신이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 사유를 적었고, 소유 경위에 대해서는 선대로부터 전래된 논이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유고개(柳古介)이고 자호는 양자(良字)이며, 지번은 53분답(分畓),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1복(卜) 1속(束)이고 구획상으로는 2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는 정조(正租) 3마지기[斗落只]이다. 사표(四標)를 기재하였는데 동쪽은 같은 논이 있고 북쪽은 작은 도랑이 있으며 서쪽은 남치관(南致官)의 논이 있고 남쪽은 김두송(金斗松)의 밭이 있다. 동쪽의 같은 논은 이 명문의 구문기(舊文記)를 보면 같은 사람의 논, 즉 이순철의 논이 있다는 의미이다. 거래가는 전문(錢文) 40냥이다. 이철손과 곽치윤이 증인으로, 김완수가 필집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4년 노 돌몽(乭蒙)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高春心 奴 乭蒙 高春心[着名]金明德[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2월 3일에 고춘심이 최 예안 댁 노 돌몽에게 홍주 금동면 소재 전답 3곳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문서 1904년 2월 3일에 고춘심(高春心)이 최예안댁(崔禮安宅) 노 돌몽(乭蒙)에게 홍주(洪州) 금동면(金洞面) 소재 전답 3곳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한 토지는 취자(聚字) 자호의 논 2두락과, 취자 자호의 밭 6두락, 또 동일한 취자 자호의 밭 6두락으로 모두 3곳이다. 모두 합해 전문 350냥의 가격에 매매가 성립했으며, 구문기 1장과 신문기 1장을 건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允洪 金允弘[着名]鄭成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4월 그믐날에 김윤홍이 오동면 소재 논 6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4년 4월 그믐날에 김윤홍(金允洪)이 오동면(五東面) 응청평(應靑坪) 소재 논 6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사유는 이매(移買)이고, 값은 전문 30냥이다. 매득한 사람은 기재하지 않았다. 구문기를 서실(閪失)하여 내주지 못하고 신문기 1장만 발급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氣還 姜氣還[着名]韓致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8년 1월 10일에 강기환이 오동면 소재 논 7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8년 1월 10일에 강기환(姜氣還)이 오동면(五東面) 사계촌평(沙溪村坪)에 있는 논 7마지기를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방매한 토지의 자호는 우자(友字)이며, 규모는 7마지기이고 부수(負數)로는 21부이다. 값은 전문 140냥이며, 매득한 사람은 기재하지 않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5년 사윤기(史允基)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樂洪 史允基 金樂洪<着名>金宗元<着名>朴乃聖<着名>金京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5년(고종12) 2월 27일에 김낙홍이 사윤기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 명문 1875년(고종12) 2월 27일에 김낙홍(金樂洪)이 사윤기(史允基)에게 산지를 팔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이다. 김낙홍은 자신의 선산이 고읍(古邑)의 사금(沙金) 뒤쪽에 있는데 생활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선산 터를 사윤기에게 전문(錢文) 35냥을 받고 영구히 판다는 내용이다. 산지의 경우 사방 경계를 명시하는 사표(四標)를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서에서는 쓰지 않았다. 구문기(舊文記)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종원과 박내성이 증인으로, 김경범이 필집(筆執)으로 이 거래에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