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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任運模 任運模<着名>丁錫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8년(고종5) 3월 29일에 임운모가 누군가에게 논 3마지기를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8년(고종5) 3월 29일에 임운모(任運模)가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임운모는 자신이 매득해서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수곡면(水谷面) 칠암촌(七岩村) 모퉁이이고 자호는 형자(形字), 면적은 3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5배미[夜味]인 곳이다. 거래가는 전문 35냥이다. 구문기(舊文記)에는 다른 논이 함께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매수인에게 건네줄 수 없다고 문서 말미에 덧붙였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고, 정석의(丁錫義)가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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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고생원댁 노 봉문(鳳文)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全春成 奴 鳳文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9년(고종6) 12월 12일에 전춘성이 고생원댁 노 봉문에게 2마지기 논과 2마지기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69년(고종6) 12월 12일에 전춘성(全春成)이 고생원댁(高生員宅) 노(奴) 봉문(鳳文)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춘성은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상속을 통해 소유하게 된 전답이라고 소유 경위를 밝혔고, 방매 사유는 이매(移買)라고 적었다. 이매는 원거리의 전답을 팔아 인근의 땅을 산다는 의미이다. 매물의 소재지는 석정촌(石亭村)이고 논의 자호는 우자(羽字)이고 밭의 자호는 상자(翔字)이다. 우자 논의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이고 구획상으로 2배미[夜味], 부수(負數)로는 19속(束)이고, 밭은 2편(片)으로 태종(太種) 2마지기, 부수는 12복(卜) 9속(束)이며, 여기에 묵은 밭 1복 1속을 합하여 전문(錢文) 60냥을 받고 영구히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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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明三 金明三[着名]柳公眞[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3월에 김명삼이 오동면 봉산리 소재 모시밭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매 계약 문서 1903년 3월에 김명삼(金明三)이 저전(苧田) 1마지기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매매계약 문서이다. 매매한 모시밭은 오동면(五東面) 봉산리(蜂山里)에 있으며, 가격은 전문 50냥이다. 매수한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구문기는 값을 받은 후에 내어 준다는 단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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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송윤호(宋允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璟國 宋允浩 金璟國<着名>金軫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6년(고종23) 1월 22일에 김경국이 송윤호에게 밭 6마지기를 8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6년(고종23) 1월 22일에 김경국(金璟國)이 송윤호(宋允浩)에게 밭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경국은 선대로부터 전래된 밭이라고 소유 경위를 적었고 방매사유는 이 밭을 팔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 남양면(南陽面) 하거촌(下巨村) 뒤 금정허동(金丁虛洞)이고 자호는 훼자(毁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6마지기[斗落只], 수확량 기준으로는 3부(負) 5속(束)이며 거래가는 전문(錢文) 8냥이다.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한다고 하였고 본문기(本文記)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 거래에 김진현(金軫鉉)이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흥양군 남양면 하거리는 현재의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와 신흥리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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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曺瑛承 曺瑛承<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6년(고종23) 2월 25일에 조영승이 누군가에게 가대와 전답 등을 37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886년(고종23) 2월 25일에 조영승(曺瑛承)이 누군가에게 가대(家垈)와 전답 등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영승은 세미(稅米)와 각 공전(公錢)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고창군 오동면(五東面) 중리(中里)이고, 매물은 회자(懷字) 자호의 가대 4칸, 대전(垈田) 1마지기[斗落只] 2부(負), 논 1마지기 5부, 모시밭[苧田] 1마지기 2부, 콩밭[太田] 5되지기[升落只] 1부 7속(束), 목화밭[綿田] 3마지기 2부 7속이다. 이들을 모두 합하여 전문 37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는 증인이나 필집의 참여 없이 조영승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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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3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學烈 金學烈<着名>劉洛善<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8월 21일에 김학열이 누군가에게 논 8마지기를 50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2년 8월 21일에 김학열(金學烈)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김학열은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부득이한 상황 때문에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천남면(川南面) 역해하평(驛海下坪)이고 자호는 시자(始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8마지기[斗落只]이며, 거래가는 전문 500냥이다. 구문기(舊文記) 1장을 신문기(新文記)와 함께 매수인에게 넘겨주었다. 김학열의 이름 앞에 도(屠)라고 쓴 것은 백정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낙선(劉洛善)이 이 거래에 증인 겸 필집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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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田福洪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11월 28일에 출신 전복홍이 누군가에게 논 1마지기를 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02년 11월 28일에 출신(出身) 전복홍(田福洪)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전복홍은 선대로부터 내려온 논을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흥양군 남양면(南陽面) 대고음평(大古音坪)이고 자호는 모자(慕字), 면적은 1마지기[斗落只] 2복(卜)인 논을 전문 30냥을 받고 영구 방매하였다. 이 거래에 사촌인 전찬범(田贊範)이 증인으로 참여하였는데 착명을 하지 않아 실제 거래가 이루어진 명문인지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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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이 박사댁(李博士宅)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錫奉 李博士宅 朴錫奉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11월 10일에 박석봉이 이 박사댁에게 논 2마지기를 85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1년 11월 10일에 박석봉(朴錫奉)이 이 박사댁(李博士宅)에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박석봉은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오다가 많은 사채(私債)로 인해 부득이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대면(大面) 학동(鶴洞) 신기후평(新基後坪)이고 자호는 봉자(奉字), 면적은 파종량 기준으로 2마지기[斗落只], 구획상으로 9배미[夜味], 수확량 기준으로 6부(負) 4속(束)인 논을 전문(錢文) 85냥을 받고 팔았다. 구문기는 없어졌으므로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영구 방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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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12년 박원기(朴元箕)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大浩 朴元箕 朴大浩 1顆(적색,원형,1.2cm)朴壕箕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1월 27일에 박대호가 박원기에게 논 1마지기를 13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 1912년 1월 27일에 박대호(朴大浩)가 박원기(朴元箕)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명문이다. 1행에 인증서(認證書)라고 쓰고 매도인, 매수인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본문의 내용은 매매명문의 양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근대 매매계약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는 명문이다. 방매사유는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라고 적었고, 소유 경위는 매득(買得)을 통해서였다고 적었다. 매물의 소재지는 안의(安義) 초호면(草岵面) 초치촌(草峙村) 전원(前員)이고, 자호는 장자(章字), 지번은 28, 면적은 수확량 기준으로 6부(負) 2속(束), 구획상으로 1배미[夜味], 파종량 기준으로 1마지기[斗落只]이며, 매매가는 전문(錢文) 130냥이다. 매도인, 매수인은 매매계약서에 등장하는 용어이고, 일제가 1906년과 1907년에 공포한 토지가옥증명규칙과 토지가옥증명사무처리순서와 관련하여 이장(里長)은 '증명'을 받는 절차상 필요 때문에 명문에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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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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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조국형(趙國衡) 영수증(領受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徐正涵 趙國衡 徐正涵 1課(적색,타원형,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3년 4월 5일에 서정함이 조국형에게 족보 간행비 2원을 받고 발급해준 영수증 1943년 4월 5일에 서정함(徐正涵)이 조국형(趙國衡)에게 족보 간행비를 받고 발급해준 영수증이다. 금액은 2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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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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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0년 이길룡(李吉龍) 산지매매증서(山地賣買證書) 1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崔玩秀 李吉龍 崔玩秀信 1顆(적색, 원형, 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2월 15일에 최완수가 이길룡에게 순창군 무림면 소재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산지매매 계약문서 1920년 2월 15일에 최완수(崔玩秀)가 이길룡(李吉龍)에게 순창군에 있는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산지매매명문이다. 이 산지는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자양리(紫陽里) 와야등(瓦也嶝) 동쪽 기슭에 있는 것으로, 문서상에 산지의 상하좌우(上下左右)의 지형과, 사표(四標)가 기재되어 있다. 매매가는 65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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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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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류영선(柳永善)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柳孝熙 柳永善 柳孝熙信 2顆(적색,원형,1.1cm)柳忠熙信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2년 음5월 13일에 류효희가 류영선에게 3마지기의 논을 240원을 받고 매도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1922년 음5월 13일에 류효희(柳孝熙)가 류영선(柳永善)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토지 소재지는 고창군 오산면(五山面) 봉산리(蜂山里) 120번지이고, 면적은 843평(坪)이며 괄호 안에 옛 면적표기방식인 마지기[斗落] 수로는 3마지기임을 함께 적었다. 이곳의 지가(地價)는 118원 2전이고 매도대금은 240원이다. 류영선에게 영구 방매하며 등기비(登記費)는 매도인 측에서 담당하기로 약정하였다. 문서 말미에 완척(完尺)은 2섬[石] 5말[斗]로 정하고, 소작권을 다른 사람에게 바꾸면 본가(本價)에 환퇴(還退)한다는 조건을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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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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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류영선(柳永善)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金容澈 柳永善 金容澈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 음3월 23일에 김용철이 류영선에게 두 곳의 논과 시장 한 곳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 1923년 음3월 23일에 김용철(金容澈)이 류영선(柳永善)에게 논과 시장(柴場)을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매물은 고창군(高敞郡) 아산면(雅山面) 계산리(鷄山里) 80번지의 논 2,400평과 681번지의 논 260평, 시장 2필지이며 매매가는 각각 108원, 11원 7전, 480원이므로 총 599원 7전이다. 그리고 소유권 보존등기와 이전등기비용은 매수인이 전부 담당하기로 약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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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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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매도증서(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金璟燮 金璟燮信 1顆(적색, 원형, 1.2cm)徐良喆信 1顆(적색, 원형, 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4월 11일에 김경섭이 고창군 소재 논 8마지기를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매도증서 1914년 4월 11일에 김경섭(金璟燮)이 논 8마지기를 매도하면서 상대방에 발급한 매도증서이다. 대상 토지는 고창군(高敞郡) 오산면(五山面) 봉산리(蜂山里)에 있으면 자호는 창(唱), 지번은 24이다. 가격은 224원이며, 매수자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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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김협일(金祫日)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金祫日 李吉龍高昌柱 金祫日信 1顆(적색, 원형, 1.2cm)高昌柱信 1顆(적색, 원형, 1.2cm)趙秉斗信 1顆(적색, 원형, 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12월 25일에 김협일이 이길룡, 고창주에게 순창군 무림면 소재 집터와 밭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문서 1920년 12월 25일에 김협일(金祫日)이 이길룡(李吉龍), 고창주(高昌柱)에게 순창군 소재 가대(家垈)와 전래해 온 밭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물건의 소재지는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월정리(月亭里)이다. 매수인에 이길룡, 고창주 2인의 이름이 쓰여있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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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길룡(李吉龍) 산지매매증서(山地賣買證書) 2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徐正華 李吉龍 徐正華信 1顆(적색, 원형, 1.1cm)金弘燮信 1顆(적색, 원형, 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12월 29일에 서정화가 이길룡에게 순창군 무림면 소재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산지매매 계약문서 1920년 12월 29일에 서정화(徐正華)가 이길룡(李吉龍)에게 순창군에 있는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산지매매명문이다. 이 산지는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자양리(紫陽里) 대적동(大蹟洞) 서쪽 기슭에 있는 것으로, 문서상에 산지의 상하좌우(上下左右)의 지형과, 사표(四標)가 기재되어 있다. 매매가는 1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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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한창석(韓昶錫)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韓昶錫 韓昶錫信 1顆(적색, 1cm)韓星洙 1顆(적색, 1cm)韓永洙 1顆(적색,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3월 19일에 한창석이 순천군 소재 토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도 증서 1935년 3월 19일에 한창석(韓昶錫)이 토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매득자의 이름은 쓰여 있지 않다. 매도한 토지는 순천군(順天郡) 낙안면(樂安面) 목촌리(木村里)에 있으며, 지목은 밭으로 되어 있다. 매도 대금은 27원이다. 문서 작성에는 매도인, 보증인, 입회인이 참여하여 이름을 쓰고 인장을 찍었다. 보증인과 별도로 입회인이 존재하는 것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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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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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조윤주(趙允周) 삼림매도증서(森林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趙允周 李吉龍 趙允周信 2顆(적색, 원형, 1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2년 2월 12일에 조윤주가 이길룡에게 순창군 소재 삼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도증서 1922년 2월 12일에 조윤주(趙允周)가 이길룡(李吉龍)에게 순창군 소재 삼림을 매도하면서 작성한 매도증서이다. 매도한 삼림은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자양리(紫陽里) 뒷 기슭에 있다. 매도대금은 10원이며, 사표(四標)를 대신하여 상한(上限)과 하한, 동쪽과 서쪽 지형을 기록해 놓았다. 문기 끝에는 매매 대금을 받은 매도자 조윤주의 대금 수령 영수증이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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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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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30년 최재풍(崔在豊) 토지매도증서(土地賣渡證書) 고문서-증빙류-영수증 崔在豊 李吉龍 崔在豊信 1顆(적색, 원형, 0.8cm)申判金 1顆(적색, 원형, 0.6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0년 3월 12일에 최재풍이 이길룡에게 순창군 소재 밭 69평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 계약문서 1930년 3월 12일에 최재풍(崔在豊)이 이길룡(李吉龍)에게 순창군 소재 밭 69평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매도증서이다. 매도한 토지는 순창군(淳昌郡) 무림면(茂林面) 자양리(紫陽里) 205번지이며, 지목은 밭이고 규모는 69평이다. 가격은 86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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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박상좌(朴相佐) 계약서(契約書)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朴以馨 朴相佐 朴以馨 1顆(적색,원형,1.2cm)金錫煥 1顆(적색,원형,0.7cm)朴壕箕 1顆(적색,원형,1.2cm)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2년 2월 7일에 박이형이 박상좌에게 송전을 20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토지매매계약서 1912년 2월 7일에 박이형(朴以馨)이 박상좌(朴相佐)에게 송전(松田)을 팔면서 작성한 계약서이다.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간단하게 적었다. 소재지는 신평(新坪)이고 이곳의 양지쪽 한 편(片)의 송전을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박상좌에게 방매한다는 내용이고, 구문기(舊文記)에 대한 언급은 없이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거래에 이장(里長) 박호기(朴壕箕)가 참여하여 이름을 적고 도장을 날인하였다. 이 문서는 일본 연호를 사용하여 연월일을 표기하고 명문 대신 계약서(契約書)라고 썼으며 이장(里長)이 등장한다는 점 등 계약서와 명문의 양식이 혼재하는 이 시기 문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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